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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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吉成詵생몰연도 불명
후진의 인물. 진주(秦州) 남안군(南安郡) 출신.
2. 생애
건초 원년(386년) 8월, 무소제 요장이 군대를 일으켜 진주(秦州)를 침공하고, 전진의 진주자사 왕통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강족 등 여러 이민족 20,000여 호가 요장에게 호응하며 들고 일어났다. 길성선은 이를 기회로 삼아 요장에게 접근하여 말했다."신(臣)의 고장은 험하고 뛰어난 인재들이 숲처럼 많으며, 무력을 사용하기 좋아하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왕 진주자사는 현자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삼분정족(三分鼎足)하여 옥구슬을 가지고 놀기만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폐하께서는 진주에 금과 비단을 나누어 육군(六軍)에 주시고, 현자를 표창하시어 진주 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하셔야 합니다."
요장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길성선을 상서랑으로 삼았다.무소제 요장이 전진의 고제 부등과 여러 해 동안 전투를 벌였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이때 상서좌복야 윤위(尹緯)와 상서령 요황이 길성선에게 물었다.
"부등은 궁지에 몰린 도적이나, 여러 해가 지나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간웅(姦雄)들이 요지에 모여, 도처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합니까?"
길성선이 답했다."주상께서는 권세와 전략이 무궁하시고, 상과 벌을 믿음직하게 행하시며, 현명한 인재들이 모두 즐겨 추종하고 있건만, 어찌 큰 일을 이루지 못하고, 적을 멸하지 못할까 염려하십니까?"
윤위가 말했다."부등은 궁지에 몰린 도적이나, 간웅들과 결탁하여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습니까?"
이에 길성선이 답했다."삼진(三秦)은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주상께서 이미 열 중 여덟을 차지하고 계십니다. 지금 염려할 곳은 부등, 양정, 뇌악지(雷惡地)뿐이고, 그 외의 작은 문제들은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뇌악지가 차지한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등은 오합지졸을 모아 겨우 살아있을 뿐, 그의 지혜와 용기는 존엄하신 주상에 필적할 수 없으니, 패왕의 기상으로 기필코 제거하시어 대업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한(漢)과 위(魏)가 일어날 때도 모두 10여 년이 걸려 천하를 통일했으며, 5~6년 정도로는 오래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주상의 신략(神略)과 영무(英武)는 천하에 무적이니, 부등을 잡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덕을 베풀고 인을 행하여 현자를 초대하고 인재를 받아들이며, 병사를 훈련하고 말을 기르며 천시를 기다리면 됩니다. 만약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면, 청컨대 저를 요참(腰斬)하여 공명정대함을 보여주십시오."
윤위가 이 말을 요장에게 전하니, 요장은 크게 기뻐하여 길성선을 관내후(關內侯)로 봉하고, 급사황문시랑으로 승진시켰다.길성선은 용모가 빼어나고, 비범하여 항상 천하의 시비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한번은 경조(京兆)에 위고(韋髙)라는 사람이 방탕하고 속세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며 죽림칠현의 일원인 완적을 본받았다. 위고는 어머니 상중에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셨는데, 길성선이 이를 듣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사사로이 죽여 풍속과 교화를 높여야겠다."
그리고 검을 빼들고 위고를 찾으로 갔다. 위고는 두려워하여 도망가 숨었고, 평생 동안 길성선을 감히 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