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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colcolor=#fff> 대한민국 제20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낙년 金洛年 | Kim Nak-neon | |
출생 | 1957년 1월 12일 ([age(1957-01-12)]세) |
경상북도 안동시[1] | |
자 | 창우(昌宇) |
본관 | 신 안동 김씨[2] |
현직 |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재임기간 | 제20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
2024년 7월 30일 ~ 현직[3] | |
학력 | 충암중학교 (5회 / 졸업) 충암고등학교[4] (5회 /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 / 학사) 도쿄대학 대학원 (경제학 / 석사 · 박사[5]) |
병역 | 육군 제515보병지단 일병 복무만료[6] (1981년 3월 23일 ~ 1982년 4월 26일) |
경력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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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경제사학자.낙성대 연구소 출신이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라고 할 수 있다.
2. 생애
1957년 1월 12일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아버지 김석현(金碩顯, 1930. 1. 22 ~ )[7]과 어머니 동래 정씨(1932. 5. 23 ~ 2004. 5. 1)[8] 사이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충암중학교(5회), 충암고등학교(5회)를 졸업한 뒤 1981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81년 3월 23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515보병지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했고, 1982년 4월 26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1982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93년 동 대학원에서 「일본의 식민지 투자와 조선경제의 전개(日本の植民地投資と朝鮮經濟の展開)」라는 학위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3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 부임하였다. 2000년부터 경제사학회 이사를 지냈다. 2015년 11월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 당시 현대사 집필진으로 초빙되기도 하였다. # 2020년부터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겸직하였다. 2022년 동국대학교에서 퇴임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2024년 7월 30일 제20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경제사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학자인데,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식민지기 한국 경제사를 연구해온 경제학자이기 때문이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반일 종족주의를 이영훈과 함께 저술한 공저자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득 불평등에 관련해서도 계속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문제 제기를 하여 이쪽으로도 유명한 학자이다. 저술한 저서 목록을 보면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책 외에는 소득 불평등에 관련된 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의 소득격차가 2000년대 이후 점차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의당에서 소득불평등 관련하여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 여러모로 통계청의 부실한 경제통계 때문에 한국의 심각한 빈부격차가 사실상 은폐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대 한국의 실제 지니 계수는 0.405 내외로 통계청과 한국은행에서 집계하는 0.3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9]
식민지 시기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는 보수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좌파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별종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보수당 청년정치학교 강사로 활동한 적도 있고, 정의당 당원교육 강사로 초청되기도 했다. #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해서는 우파 뉴라이트 성향의 사람들이, 소득 불평등 관련해서는 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이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한다.
2024년 7월 30일 윤석열 정부에 의해 제20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에 취임했다. # # 이에 과거 본인이 했던 발언과 함께[10] 일본의 한국수탈 부정과 식민지 근대화론 등이 떠오르면서 큰 논란과 반발이 일고 있다. # #
3. 비판 및 논란
3.1. 식민지 근대화론 및 친일 옹호 논란
자세한 내용은 반일 종족주의/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1] #[2] 승의랑공(承議郞公) 극(克)파 30세 년(年) 항렬.[3] 임기는 2027년 7월 28일까지이다.[4] 총동문회 감사를 지낸 바 있다.# 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충모(윤석열 동문을 사랑하는 충암인 모임)에 회비를 납부하기도 했다.충암고총동문회회보 충암인 5호[5] 박사학위논문 : 日本の植民地投資と朝鮮経済の展開 (1993)[6] 소집해제[7]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8] 정수철(鄭壽哲)의 딸이다.[9] 다만 이 걸 내놓은 통계청장 중 한 명이 유경준이다.[10] "당시 조선경제는 기본적으로 자유거래의 시장체제였고 민법 등이 시행되고 있어서 조선인, 일본인 구분없이 개인의 재산권이 보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