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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10:23:40

김영일(법조인)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헌법재판소 재판관 (대법원장 지명, 대통령 임명)
이재화
윤관 대법원장 지명, 김영삼 대통령 임명
김영일
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김대중 대통령 임명
이공현
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노무현 대통령 임명
<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영일
金榮一 | Kim Young-Il
파일:1704769748756_x45qgv_2_0.jpg
출생 1940년 3월 13일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2024년 2월 21일 (향년 83세)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괴산호국원 (충청북도 괴산군)
재임기간 제30대 부산지방법원장
1998년 8월 24일 ~ 1999년 10월 11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 김대중 대통령 임명)
1999년 12월 30일 ~ 2005년 3월 12일[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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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경력 제5회 사법시험 합격
대구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제30대 부산지방법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1999.12. ~ 2005.03.)
김영일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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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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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이자 前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2. 생애

1940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현 서울북부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쳤다.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9월 22일에 "아파트 착공 당시 대지였고 사업허가조건으로 집중호우에 대비할 것을 지시하여 옹벽, 석축을 건설한 대지개량을 했다는 이유로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택지조성사업으로 본 것은 잘못이다"면서 "성동구청은 43억원의 개발부담금 부과를 취소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것은 시행 2년째인 개발부담금제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다. 11월 6일에는 국제노동기구 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경찰이 금지한 것은 부당하다며 청구한 옥외집회 금지통고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금지처분의 효력을 취소한다"고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을 맡아 1996년 8월 26일, 전두환에게 사형을,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참고.

최종영 대법원장 추천 몫으로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되어 2005년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중인 2004년 3월 12일 선고한 2004헌나1에서[2] 재판관 의견에 관하여 구체적인 의견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있었지만 탄핵 당일 추측과 10년 후의 취재 결과에서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3명이 인용, 5명이 기각, 1명이 각하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용 3인에는 대법원장 지명인 김영일 본인을 포함해 이상경[3], 권성[4] 재판관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위법이 있었고 국회가 결의를 했다면 인용해야 한다며 탄핵에 찬성했다고 전해진다. 김영일 재판관과 관련해서는 에피소드가 더 있는데 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문서 참고.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특별법 사건에 대해서는 관습헌법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행정수도 이전, 관습헌법 문서 참고.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헌법재판소를 향해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2005년 3월 11일에 있었던 퇴임식에서 김 재판관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중요한 결정들을 폄하하는 이런 지각 없는 행위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자 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고 하면서 "헌법재판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여당의 헌법재판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법의 고유 의미를 찾고 헌법정신을 해석하는 작업은 오랜 세월 법을 해석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며 흔들림없이 헌법정신을 찾아온 법률가만이 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관 다양화 시도에 대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SBS

재판관 퇴임 이후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으나 현재는 휴업.

2024년 2월 21일, 숙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향년 83세.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다. 장지는 충북 괴산 호국원이다.


[정년] 김 재판관 재임 당시 헌법재판소법은 만 65세를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퇴임했고, 후임으로 이공현 前 행정차장이 취임했다. 이후 개정된 재판관의 정년규정은 만 70세로 하고 있다.[2] 주심 주선회 재판관.[3] 2004년 2월 새천년민주당 선출.[4] 2000년 9월 한나라당 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