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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5:51:05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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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파일: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jpg
장르 대체역사, 게임빙의
작가 마늘맛스낵
출판사 JHS BOOKS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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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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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2020. 07. 05. ~ 2023. 04. 10.
이용 등급 전체 이용가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특징5. 등장인물
5.1. 김상민(태조 해민)5.2. 상민의 배우자들5.3. 고려 황실5.4. 고려인5.5. 조선인5.6. 옥저인5.7. 러시아인5.8. 도이치인5.9. 프랑스인5.10. 네덜란드인5.11. 잉글랜드인5.12. 루테니아인5.13. 지나인
6. 개변된 역사
6.1. 예맥한계 국가6.2. 아시아6.3. 유럽6.4. 알비온 연합6.5. 사국동맹6.6. 중동6.7. 아프리카6.8. 기타 국가6.9. 용어
7. 평가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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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폴란드 여왕 키우기를 집필한 마늘맛스낵.

2. 줄거리

고려 시대 삼별초의 무장으로 살아남아라.
그것도 남미에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상민은 어느날 역사 대전략 게임[1]을 하던 도중, 게임 속으로 빠져들며 고려삼별초의 일원이 되어 남아메리카[2]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려를 새롭게 건국하며 역사가 개변되게 된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0년 7월 5일부터 일일연재 중이다.

2021년 1월 13일부터 네이버 시리즈에서도 연재를 시작했다.

2022년 3월 기준, 주 5일 연재 중이다.

2022년 7월 13일 휴재 겸 연재주기 변경 공지가 올라왔다. 완결까지 주4회 연재될 예정이며, 현재 월화목금 연재 중.

작가의 건강 문제 때문인지 연재 지연과 휴재가 잦은 편이다.

2023년 2월 10일 본편이 완결되었다.

2023년 2월 16일부터 외전이 자유 연재[3]로 연재가 시작되었다.

2023년 4월 10일 외전이 완결되었다.

4. 특징

연재 초반의 제목은 남미에 떨어진 고려였고, 대체역사 갤러리에서는 지금도 남미고려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주인공이 게임 속 캐릭터를 만들 때 불로불사[4] 특성을 부여하여, 소설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나가며 긴 시간 동안 국가를 경영하고 기술을 개발해나간다. 그 결과 대체역사물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남북미를 동시에 먹고도 태평양과 대서양의 대다수의 섬, 남극까지 먹어치우는 그야말로 크고 아름다운 판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역사적 주요국 버프를 추가하고 인물간 유사성을 조금 높게 설정했기 때문에 역사가 개변된 와중에도 유럽이 열강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으며, 원역사의 위인들이 등장한다.

2022년 만우절 당일만 표지가 옥좌에 앉은 역시 불로불사 종특의 이 황제로 바뀌었다.

5. 등장인물

5.1. 김상민(태조 해민)

金常民. 본작의 원탑 주인공. 역사게임을 좋아하는 현대의 회사원에서 대몽항쟁기의 삼별초의 무장으로 빙의하였다. 남미에서 병자년(1276년)에 고려를 새로 건국하면서 성을 부여의 해모수에서 따온 해씨로 바꾸고 해민(解旻)으로 개명한다.[5] 연호에서 따와 개천제라고도 불린다. 인두법 보급, 화약 개발, 한글 및 아라비아 숫자 도입, 직결식 글꼴 인쇄술 보급, 관료제 개편, 미터법 도입, 과거제 도입, 마약 금지 등의 업적을 남긴다. 불로불사 특성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아 자신이 신적 존재로 우상숭배받는 것을 피하고자 태자에게 제위를 넘기고 훈요 128권[6]을 전한다. 황제가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자 가면을 쓰고 시중으로 활동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중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수백 년 동안 제국을 암중에서 통치하고 있으며 막대한 권력과 무력, 금력[7]을 보유하고 있다.

존재 자체가 고려 최고의 기밀로 취급된다. 그의 조력을 목적으로 창설된 정보총국 제 4국(여의국), 황실 직계 일원들, 각 부처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최고참급 신료들, 그리고 그들과 밀접하게 선이 닿아있는 재계의 거물급 기업인 몇몇 등 정말 극소수만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
실로 신적인 존재라 종교적으로는 그를 깃털 달린 뱀으로 여기며 신격화하는 쿠쿨칸교,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선지자로 여기는 제국교가 있으며, 중동 지역에서도 무함마드의 재래라고 봐도 좋을 만큼 거한 활약을 펼치는 바람에 그 쪽에서도 종파가 생겨났다. 팬들은 농담삼아 전 세계에 정체가 들통난 주인공이 황금 옥좌에 앉는 것으로 작품이 끝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원래는 싸움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었지만, 특성 덕분에 빙의한 삼별초 무장의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데다 프랑스 기사들과 교류로 그들의 검술까지 받아들인 최고 수준의 무장이 된다. 그리고 수백 년의 세월동안 넘쳐흐르는 시간,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은 회복력 덕분에 점점 더 강해져, 완력만으로 맹수의 목을 돌려버리고, 회색곰과 아무렇지 않게 뒹굴며 놀 수 있고, 방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총알을 튕겨내며 수류탄이 손 안에서 터져도 생채기 하나 없는 초인이 되어 버린다. 본편 종료 시점 즈음해서는 방사능 지대에서 맨몸으로 활동하고 진심으로 살의를 품자 철갑판이 진동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일종의 초능력이 있는지 회색곰이나 고래 같은 생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불완전하며 단편적이긴 해도 미래를 예지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돌발상황에서의 임기응변이나 판단력도 완벽한 수준이다.[8]

여담으로,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고 코카콜라보다 펩시콜라를 더 좋아한다.

5.2. 상민의 배우자들

주인공인 상민이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아내들. 다만 첫 부인인 왕예 시절을 제외하면 모두 상민이 배후의 통치자로서 활동하던 시절에 만났기 때문에, 이들 모두 공식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상민을 보좌하는 여의국의 사도들은 상민이 오히려 여인들을 사귈 것을 바라고 있는데, 초인으로서 만사에 권태를 느끼는 상민이 여성에게 마음을 붙여 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 중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데[9], 여기에 더해 역사적 인물 중 상민이 처음으로 맞은 재혼 상대인 잔 다르크가 가슴이 컸다는 기록을 종합해 상민의 취향이 "박복한 거유 미녀"라는 드립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작품 외적으로 팬덤에서 나온 드립에 불과했으나, 나중에는 상민을 섬기는 인물들까지 언급하는 준공식 설정이 되어 버린다.

5.3. 고려 황실

5.4. 고려인

5.5. 조선인

5.6. 옥저인

5.7. 러시아인

5.8. 도이치인

5.9. 프랑스인

5.10. 네덜란드인

5.11. 잉글랜드인

5.12. 루테니아인

올가의 혈통과 정통성은 인정하나, 올가가 모스크바를 수복하면 키이우가 아닌 그곳을 중심지로 둘 거라 생각하며 편을 들지 않았지만 남편을 죽이려던 암살자들의 머리를 잘라서 내던지면서 경고를 보이는 올가의 카리스마와 키이우의 올가를 자처하는 그녀의 말에 매료되어서 영원히 키이우의 올가로 남을 것을 약속받자 충성을 맹세한다.
그 후, 손자를 올가의 장녀랑 혼인시켜 손자가 차기 국서의 자리를 약속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루테니아의 늙은 재상으로서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도 못함에도 키이우가 함락될 위기일 때, 최전선에서 함께 했던 올가에게 뒤를 맡기기 위해 피신시키고 마지막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한다. 루테니아인들에게 사후에도 존경받으며, 키이우의 올가라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올가를 대견하고 감사하게 바라볼 정도로 루테니아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었다.[44]

5.13. 지나인

6. 개변된 역사

많은 나라들이 삼별초의 부재부터 시작해 고려의 영향까지 합쳐지며 수많은 나비효과를 거쳐 원래의 역사와 달라졌다. 다만 상민이 현대에 있을 때 게임 옵션을 설정한 영향으로 역사적 주요 인물들은 달라진 역사에 상관없이 등장하고 있다.

6.1. 예맥한계 국가

현실의 한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 동북아시아를 뿌리를 두고 고조선, 고려(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내세우고 있다. 고려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17세기에 이미 세계에서 잘 나가는 열강 국가로 취급되고 있으며 조선, 옥저, 백제 모두 상당한 군사력이나 국력을 가진 열강이며 배후에 있는 고려는 아예 세계 질서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유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위치에 예맥한계가 서있다고 여긴다.

6.2. 아시아

6.3. 유럽

6.4. 알비온 연합

원역사의 영국에 해당한다. 대영제국으로 통일되지 못하고 3개국 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유럽의 친 고려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나하나로는 프랑스나 도이치에 견주기는 부족했지만, 알비온 연합으로 뭉칠 경우 프랑스에 비해서는 크게 꿀리지 않는 듯. 잉글랜드가 공산화되어서 현재 해체된 상태다.

6.5. 사국동맹

고려의 패권에 도전하는 유럽국가 동맹. 러시아, 프랑스, 베네치아, 오스트리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 역사의 1차 대전 패전국 역할을 하고 있다.

6.6. 중동

상민이 신분을 숨기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공작을 시행하여 원역사의 사우드 가문은 사라졌으며 그들이 지원한 극단주의 무슬림 학파도 함께 사라졌다. 덕분에 온건주의 이슬람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6.7. 아프리카

북부는 이슬람교가 득세하나 중부와 남쪽은 고려에서 건너온 만종에 의한 불교가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관직에 오른 승려 출신들도 흔할 지경.

6.8. 기타 국가

6.9. 용어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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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69 / 10 | 조회 수 431만 2023. 11. 11.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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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96 / 5.0 | 참여자 168명 2023. 11. 11. 기준



극초강대국 상황임에도 사회 내부의 모순, 이념갈등, 주인공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국민적 각성에 의한 도덕주의적 관념의 확립 등을 묘사하며 고려의 국력이 점점 압도적으로 강해지면서도 긴장감이 비교적 하락하지 않은 대체역사소설이란 기록을 세웠다. 연재에 대한 비평도 타 소설에서도 지적되는 수준이라서, 작가가 어떻게 수위를 조절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다소 편의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또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 점 또한 호평받는다. 말 그대로 세계의 지도를 다시 구축한 대체역사물은 현 시점 이 소설이 유일하다.

8. 기타



[1]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사의 게임으로 묘사된다. 다만 역설사 게임이 삼별초가 진도로 향하는 시기인 1270년을 커버하는 건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뿐인데, 이 시리즈는 한국이나 신대륙 쪽을 구현한 적이 없다. 묘사되기로는 그동안 역설사에서 나왔던 게임들을 총망라한 궁극의 신작인 것으로 묘사된다. 지도자에게 불로불사 능력이 부여되는 것으로 보아 모드를 여럿 섞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사적 인물 등장' 옵션 덕분에 세종대왕 이도, 나폴레옹, 워싱턴 등도 등장한다.[2] 우루과이 근처로, 진도로 향하던 원래 삼별초 선단의 위치의 대척점[3]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JHS입니다.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의 외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외전은 자유 연재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네이버 시리즈 작품 페이지의 이용안내)[4] 정확히는 늙지 않고 독이나 질병에 면역에 걸리지 않을 뿐 죽음에 이를만한 큰 부상을 입으면 죽는 불로영생에 가까운 형태. 주인공도 그걸 알고 있기에 위험한 일에 직접 뛰어들거나 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백 년을 살다보니 지루해서 익스트림 스포츠나 특수 작전을 직접 지휘하기도 한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초인조차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5] 개명했지만 작품에서는 계속 상민으로 지칭된다.[6] 이는 후일 제국 통치론이라는 열 권짜리 책으로 개정된다. 128조도 아니고 128권이란 걸 안 후손들은 기겁을 한다.[7] 미래인 치트로 온갖 사업아이템을 선점한 덕에 수많은 기업들을 수중에 두고 있으며 개인 자금으로 항모전단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외전 시점 전 세계 GDP의 총량의 7할을 고려가 보유중인데, 그 고려 부의 절반 가까이가 상민의 소유다.[8] 이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불로불사 특성 외에도 설정했던 특성 몇개가 시너지를 내면서 이런 효과가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 일당백+적응력+문무겸전. 일당백에 의해서 평균적인 인간을 초월하는 무력을 내며, 동시에 적응력으로 인해 시대의 흐름에 의해 개인의 무력이 변화하더라도 그에 적응하는 무력을 낼 수 있으며, 문무겸전으로 인해 동시에 지력까지 같이 보장받는 게 아니냐는 추측.# 즉 초기에는 칼 든 백 명의 병사와 같은 무력(일당백)과 그 당시 모사 백 명 수준의 지략(일당백+문무겸전)을 갖췄다면, 이제는 거기에 적응력이 덧씌워져서 방탄복 입고 RPG-7든 백 명의 보병과 같은 무력(일당백+적응력)과 박사급 지식과 현장 경험을 갖춘 장군 백 명 수준의 지략(일당백+문무겸전+적응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그것과 별개로 초능력 각성은 아무리 봐도 스텔라리스다.[9] 잔 다르크는 화형당했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여러 번 정략결혼에 이용당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사형,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도박 중독으로 전 재산을 탕진했다. 게다가 이들 모두 마흔이 되기 전에 요절했다. 게다가 (이름이 남진 않았지만) 오스만에 의해 멸망한 왕가의 후예, 사우드 가문에 의해 밀려난 부족의 딸도 좋은 운명을 맞았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스포주의] 외전 시점에서 600년의 세월을 넘어 조선에서 왕예진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다. 부활한 후 어릴 때부터 꿈에 전생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학 입학을 위해 고려로 가자마자 점점 기억이 돌아오더니 청해에 도착하자마자 기억이 완전하게 돌아왔다. 상민도 왕예의 기운을 느꼈고 결국 다시 만나 재결합한다.[11] 강대한 무력과 힘을 갖추어 여러 차례 전장에 나아가 외적을 정벌하며 국가를 평안하게 하여 붙은 시호로, 이하 묘호는 전부 환생한 왕예가 내렸다.[12] 이를 두고 상민은 '이젠 하다 하다 정략결혼까지 나한테 떠넘기는구나.' 라며 루크레치아 앞에서 푸념했다. 물론 고려말이라 루크레치아는 못 알아들었다[13]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고려군이 쓰는 군가. 제국행진곡.[14] 평소 언행으로 미루어보아 이슬람교 계통의 종교적인 신격화로 추정된다.[15] 고려로 이주하자마자 고기 요리에 빠진 것도 웃음 포인트.[16] 고려 황제에게 이성계의 피도 흐르기 때문에 조선은 안심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계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것은 왕건의 피 외에도 이성계의 피가 흐르는 고려 황실에 대한 도전도 되는 셈이었기 때문.[17] 앞에 그의 이름을 붙여 주로 파라콜라라고 불린다.[18] 해승원은 정중한 학자였는데, 어차피 5형제고 형들이 여럿 있다보니 자신의 성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19] 자치권을 준 연방 제도지만, 타국에서는 이를 대공국 정도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20] 예를들어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 그리스의 불과 보라색 염료가 그 예다.[21] 상민이 직접 납치를 지시한 건 아니었다. 상민이 뉴턴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이랑 대략적인 생몰년도뿐이었는데, 단순히 이름만 갖고 사람을 찾기엔 잉글랜드에 동명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상민의 지시를 따르던 부하들은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다 데려오자고 발상의 전환을 한 것. 엄연히 납치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고려에서 풍족하게 잘 살게 됐다며 오히려 좋아했다고 한다.[22] 처음 만났을 땐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어서 범인들을 모조리 광산으로 보내버렸고, 말년에 주식투자 실패로 날렸던 돈도 뒤에서 손을 써서 전액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을 보전해 줬다[23] 사실 황실 모독이 될 수도 있기에 타인종에 대한 모욕은 금기사항이다. 하는 놈이 이상한 것.[24] 이 부분에서 같은 충격을 받은 조광조와 개혁의 노선이 다른데, 남곤은 중상주의적 기조의 점진적인 개혁을, 조광조는 중농주의적 기조의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다.[25]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사절이 전부 모인 연회에서, 고려 황제가 전국 옥새를 자랑하며 천명이 짐의 손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는데, 유럽의 사신 하나가 천명이 뭐냐고 물었다. 이걸 어떻게 유럽인들이 알아듣게끔 설명한다고 하는 것이 천명을 잃었다=>신에게 버림받았다=>파문당했다! 라고 알아들어 버린 것. 이 문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에 퍼졌고 저놈들은 파문당한 놈들이니 얼마든지 털어먹어도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버리고 말았다.[26] 원래 이순신 4형제의 이름은 중국의 전설상 성인의 이름을 따 신/신/신/신이었는데, 본작에서는 고려가 천명을 가져가며 요순의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에 대신 군주의 상징물의 이름을 따 호신(臣)/조신(臣)/윤신(臣)/규신(臣)이 되었다.[27] 이 방탄복 덕분에 바부얀 해전에서 근거리 저격을 맞고도 목숨을 건졌다. 그 이전에도 방탄복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긴 적이 몇 번 있는 듯.[28] 여담으로, 분명히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 고려인으로 여기곤 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에도 그렇듯 배의 이름에 위인들의 이름을 붙일 때, 조선에서 이윤신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정도.[29] 온건 사민주의자들은 도이치, 프랑스 등 각국이 혼란을 막기 위해 포섭해서 노동당쪽 좌파계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직접 법안들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정치계에 완전히 편입됐다. 무리해서 내전 같은 걸 일으키지 않아도 법안을 고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는 부류에 공산주의자 이외는 모두 죽여야한다는 과격파로 갈라진 셈.[30] 왕예진은 몸매도 뛰어나다는 묘사가 나옴으로써 상민의 거유 취향의 시작의 이유가 전생인 왕예가 아닐까하는 독자들의 추측도 나온다. 또한 작중 공주 해지예의 평가에 따르면 아이돌을 하더라도 중심 멤버를 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고려의 황족들도 왕예진의 외모를 보면서 폐월수화라 감탄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인데 동시에 초대 황후인 왕예를 닮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31] 사실 공간이동을 했던 것.[32] 월도 하나로 삼백 명을 베어 쓰러트릴 정도로 무력 또한 출중하다.[33] 단 모스크바는 막장도시로 전락했기에, 키이우가 슬라브족의 중심지로 바뀌었다.[34]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가 딸 루이제가 고려 황태자이던 시절의 해원과 결혼하는데 성공하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됐기에 원역사의 1세는 자연히 2세가 됐다.[35] 단 부친이 다르다.[36] 2차 세계대전 후 도이치는 이 유언에 따라 핵무장에 관해서도 고려에 거스르지 않았다.[37] 클로드의 무덤에서 운수 좋은 날을 재현한 건 덤[38] 온건파는 차후 국제 외교 관계를 우려해 무기징역형을 내려서라도 루이 13세를 살리려 들었다. 덕분에 후작부인은 자길 버리고 아내와만 탈출하려 든 루이 13세의 죄 일부를 뒤집어쓰는 데 더해, 그가 악녀의 손아귀에 놀아난 남자란 동정표를 사 감형받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했다.[39] 훗날 도이치[40] 고려의 타협을 받아들여 자신이 지도자에서 물러나는 자유선거까지 받아들였기 때문.[41] 샬럿의 지시를 받은 감시병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총구를 겨눈 것[42] 블라디미르 1세의 딸로 올가의 고모[43] 루테니아 지역은 마초 성향이 강한데 여자의 카리스마는 드문 것이라 오히려 이것을 매력적으로 느꼈다. 당장 코자키들의 우두머리인 키릴로 라주모프스키가 충성을 맹세했다.[44] 결국 루테니아가 유럽 3위의 강대국이 되고, 식량생산량 2위의 국가가 됐으며 슬라브의 중심지이자 자존심이 됐으니 그가 바라던 슬라브족의 중심지인 키이우(루테니아)는 이뤄진 셈이다. 또한 손자는 장녀와 결혼하고 올가에겐 딸밖에 없어서 차기 역시 차리차이기에 루테니아의 왕가는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전사했지만, 그야말로 최고의 명예를 누리게 된 셈.[45] 류용이 본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수준이라고 한다.[46] 발해는 대씨 고려, 고구려는 고씨 고려라 부른다. 외국에서는 고려제국의 Greater Korea와 반도의 고려 Lesser Korea라고 부르기도 한다.[47] 시중 다음 가는 지위. 사실상 진짜 1인자였던 당시 상민 다음가는 실권만 따지면 2인자급이었다.[48] 경신대기근이 일어난 시기가 1670~71년인데 이 시기에 고려에서는 사진기를 동원해 조선의 참상을 알리고 무려 1, 2차 지원으로만 쌀 4만톤, 제분된 밀가루 3만톤, 스팸 9000톤, 초콜릿 및 과자류 40톤, 땅콩버터 30톤, 기름 30톤, 소 500마리, 돼지 300마리를 보내는 정신나간 국력을 자랑했다. 그것도 모잘라 3차 지원까지 했으니...[49] 당시 계몽전제주의와 절대왕권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번국들에게 의회 정치 제도를 권하던 고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신하들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자립을 외치면서 버티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량으로 고려의 압도적인 국력 수준 차이을 체감하고 충격받아 심리적으로 굴복한 것에 더해, 신하들이 모든 사안에 '상국의 전례선현의 말씀'를 논하게 되면서 왕권이 사실상 추락하게 된다.[50] 역사에 남을 대업적을 세운 이윤신도 말년에 고려로 건너갔는데, 그 이유 중 일부로 작용했다고 한다.[51] 처음에는 몽골의 독립운동에 시달린 옥저에서 자국 광산기업의 이권을 보장해 주면 독립시켜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몽골에서 이를 서류상으로만 독립 후 경제적 식민지화하여 수탈,탄압하려는 수작으로 잘못 해석하여 무력 투쟁을 벌였다. 결국 견디지 못한 옥저가 몽골을 중화 8제국에 팔아버렸는데, 중화 8제국에서는 몽골인들을 대학살해버린다. 이 때문에 옥저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몽골의 복구를 지원했다.[52] 원나라의 협조 요구에 고려가 내부 반란군의 위험을 핑계로 대는건 고사하고, 삼별초가 제주도에서도 발견되지 않자 일본으로 갔다고 판단되면서 명분상 오히려 원나라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원정 지원 규모 축소도 실패하고 시간도 빨라진다[53] 원나라가 일본 남부와 교토를 점령한 뒤 고려에 그러했듯 원나라 공주를 천황에 결혼시켜 원 대칸의 부마로 만들고, 천황의 오배삼고지레와 함께 천황 명칭이 공식적으로 취소된다. 이에 왜왕이 된 천황을 비난하고 새로운 왕을 내새우면서 일본이 남조와 북조로 나뉜다. 체급과 국력은 북조가 훨씬 더 강해서 몽골군이 떠난 이후 남조를 밀어냈지만 남조가 몽골군 지원을 받아 다시 밀어올리면서 균형이 유지된 상태.[54] 남왜에서는 백제의 후손을 주장하는 오우치 가를 도래인 쇼군으로 불렀다.[55] 오우치 가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백제의 본래 성을 내세운 것이다.[56] 세계 최강국인 고려와 언어가 같다는 장점 + 바로 위에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인 조선과 세계 11위의 옥저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언어가 동일하며 사이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보르네오를 통한 산유국이기 때문. 홋카이도는 없지만, 이런 효과로 인해서 현대의 일본 이상의 저력이 됐다.[57]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 도쿄로 개명했다.[58]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말년에 백제와 조선 정벌을 외쳐서 내부결집용인지 그냥 노망인지남일본 통일도 못했는데 조선정벌은 노망이다 국내 무사 세력들을 자극해버리는 바람에, 내부 불만 해소와 정권 유지를 위해 뒷감당을 걱정하면서도 침공했다.[59] 본디 실권을 쥔 쇼군의 에도성이 천황이 머무는 황거 궁전 뒤에 더 높이 솟아올라 위세를 자랑했다. 그걸 몰랐던 고려군이 설마 천황이 에도성에 있지 다른데 있겠느냐며 확실하게 겁을 주기 위해 주변을 포격하는 과정에서 황거째로 날아가버린 것.[60] 도쿠가와 노부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숙청당한 이후 고려로 망명하여 해군에 투신했다[61] 여전히 남은 국내 반고려 감정으로 입조까지는 하지 않았다.[62] 그 대가로 반고려 감정을 내새워 명 조정에서 가장 득세했던 친강화파가 전멸한다.[63] 즉 도쿠가와 가문은 도태될 위기인 북왜를 강화로 이름을 바꾸고, 열강까지 성장시킨 것이다. 또한 고려가 원하는 바를 읽어내 백제의 위협을 차단했다.[64] 애초에 원역사와 다르게, 바로 옆에 백제라는 비교대상이 있어서인지 대전 패배 직후 도쿄를 버리고 도망친 수뇌부가 총옥쇄를 외쳤음에도 일반 국민들은 심드렁해하며 오히려 고려군을 환영하는 수준이였다. 동군연합 이후 강화에서 사는 백성들도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백제 사람이라고 할 정도.[65] 얼마나 호구였냐면, 조선이 경신대기근으로 골골대던 당시 그나마 멀쩡한 군병들을 명나라 땅으로 보내 약탈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조정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원역사의 조명관계와는 백만광년쯤 떨어진 아스트랄한 대목.[66] 몽골은 주우철을 철창에 가두고 끌고 다녔지만, 몽골군을 격파한 고려는 포로로 주우철을 확보하긴 했어도 일단 황제로서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 개성에서 화려한 거처에 감금하여 술과 음식은 호화롭게 지급하며 옷도 비단옷으로 지급했다. 이 때 화려한 옷과 호화로운 음식, 편안한 침상 속에서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며 명으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할거라 다짐했으나, 명나라 조정에서 몽골에 잡혀가버린 주우철을 대신해 사촌동생 주우민을 즉위시켜버렸고, 귀환한 후에도 유폐됐다가 원역사의 정통제처럼 주우민이 아픈 틈에 탈문의 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복위를 했다. 심지어 사촌동생에게 감금됐을 때는 바투몽케에게 잡혔을 때보다 대우가 더 열악했다보니 이가 갈렸는지, 주우민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의문사를 했다고 한다. 고려에 대해서는 악감정은 없는 것이 적어도 고려는 포로라도 황제로서의 인권을 존중해서 좋은 대우를 해줬고, 명나라에서 새 황제가 등극했다는 소식에 주우철을 아무 대가 없이 풀어줬기 때문이다. 고려에게 아우국을 자처할 생각까지도 있었으나, 고려에서 거절하고 대신 주나라의 형님이 되게 하는 것을 권유하면서 차관을 내어주고 구형 함선들도 내주면서 지원을 해줬다.[67] 동남아시아에서 위세를 뿌리던 거대 해적세력들에게 명나라 제후 자리와 영토 분봉까지 내어주며 끌어들였던 해전은 고려 유학파 출신의 이윤신(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백제-옥저 연합함대를 상대로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고, 육전에서도 인해전술을 사용해 봉명관[120]을 뚫고 요서까지 진군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공세가 돈좌되면서 결국 패배한다.[68] 육전에서 인해전술의 실패로 어마어마한 병력-인구 손실을 겪어 국력이 뚝 떨어졌고, 외국 출신의 해적들에게 벼슬과 함께 내린 권리와 영토에 대해서 해당 국적의 유럽 국가들이 정당한 주인임을 주장하거나 값을 치르고 사들였음을 주장하면서 명나라의 이권이 본격적으로 사방에서 뜯어먹히기 시작했다. 추가로 주익상이 열강들을 따라하겠다며 전국에 깔아놓은 철도[121]를 주민들이 뜯어가자 주변 지역에 사는 모든 주민을 강제차출했는데, 그 탓에 국가의 혈관이어야할 철도가 기피지역이 되어버렸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실시간으로 깍이는 상황.[69] 양이 + 동이[70] 특히 옥저의 경우는 명나라 입장에서 친근하게 느낄 정도로 용병으로 와서 반란 토벌을 자주 해줬다. 돈만 주면 와서 반란 토벌을 해주고 돌아가며, 산동 지역도 백제와 친분을 쌓고 고려의 경고로 인해서 조선이 하북 병합을 포기하는 등 예맥한계 국가들은 고려에 의한 타의적이긴 해도 중화사상에 심취한 한족들이 아니었다면 크게 적대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다.[71] 특히 친고려 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들의 잔혹함은 네덜란드 같은 친고려 유럽 국가들이 경악하고, 희생당한 사람을 보며 슬픔을 느끼며 문명인으로써 이건 아니라고 질려서 철수해버릴 정도다. 만약 명나라에서 식인 행위를 해서 여론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고려에서도 대대적인 압박을 놨을지도 모를 정도.[72] 결국 태평천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프랑스,오스트리아,포르투갈 3개국이 무창에서 대대적인 약탈,방화,살인을 저지르는 '무창 대학살'을 일으키면서 반외세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이후 반개혁-반외세 세력을 기반으로 둔 동황비가 정권을 잡고 태평천국과 손을 잡으면서 정작 만악의 근원인 3개국 군대는 뒤통수 맞고 궤멸 수도 경사 내 폭동이 일어나 외국인 거주지와 대사관들이 습격받는 지경에 이른다. 고려와 다른 국가들은 모든 사태의 원인인 3개국에 이를 갈면서도 명나라에 국제법 준수와 민간인 안전 보장을 요구했으나, 명나라가 거부한 것에 더해 폭동 세력이 외국인들을 삶아 죽이거나 식인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고려 특유의 트리우마를 건드려 외국인들을 한곳으로 모아 방어전을 펼침과 동시에 비행선으로 해안 요새를 폭격해버린다.[73] 태평천국 사태의 결과로 동황비가 실각하고[122] 서황비가 실권을 잡아 마지막 개혁인 변법자강 운동을 진행했으나, 친개혁-친외세 성향의 서황비는 원래부터 인기가 적었던데다 집권 과정에서 지지기반이 된 일부 가문들과 보수세력의 손을 들어주며 개혁이 어정쩡하게 진행되다가 서황비와 태자가 총에 맞고 암살당하며 명 황실이 어이없이 끊겨버린다.[74] 당시 상민은 중동에서 사우드 가문을 몰아내고 아랍 에미르 연방을 세우고 정비하느라 명나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끌 생각은 아니어서, 충성심과 능력이 검증된 여의국 제1사도를 주명고려대사로 보내놓았지만, 명나라의 급변사태는 상민 본인이 아닌 그 부하가 감당하고 통제하기엔 너무 크고 거센 흐름이었다.[75] 이전의 일곱 제국은 차례대로 진(秦), 한(漢), 진(晉), 수(隋), 당(唐), 송(宋), 명(明).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나라부터 지배층이 한족이 아닌 유목민족몽골족이던 원나라를 제외한 역대 중화제국이었다. 물론 사실 지배층이 유목민족 출신인 선비족이었던 수, 당을 포함시킨 점에서 모순이며, 이는 소설에서도 그리 서술돼있다.[76] 당시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느슨해져있던 조선이 고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에 가장 호응했다가 중화제국이 전면 국유화를 실시하며 엄청난 손해를 봄과 동시에 상당한 산업력을 공짜로 줘버렸다.[77] 다만 고려는 융화가 안되는 화교와 유대인의 이민을 꺼리고 제한했기에 효과가 비교적 적었다.[78]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중국도 고려처럼[123]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북쪽 유목민들의 침공과 견제 때문에 멸망하거나 국력을 낭비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꺽였다는 논리[79] 탐라는 진주만처럼 해군기지 공격이지만, 고려와 조선의 민심에 공포를 주겠다는 이유로 공격한 개성은 일부 군기지를 제외하면 엄연한 민간 도시다. 심지어 일반 폭탄이 아닌 가스탄을 써서 대량 살상을 일으켰으니 일제보다 훨씬더 막나간 셈.[80] 항복하는 자국 포로들한테 탄져균 등 생화학 병기을 감염시켜놓거나 민간인들이 폭탄을 들고 달려드는 등 소련 패전 후 동아시아 전선으로 배치된 유럽군이 이건 대체 무슨 지옥이냐며 경악할 정도. 전쟁 후반부엔 피난가는 자국 백성들을 상대로 생화학 공격을 하는 악랄한 짓을 보여줬다.[81] 독립한 몽골, 무주지가 된 호북성, 대만의 주나라에 흡수된 복건성 제외[82] 베이징(칸발리크)을 수도로 삼았던 원나라 이후 명나라의 북경 천도, 청나라의 중원 통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화북이 정치 중심지가 되지도 않았고, 난징을 중심지로 삼아 국공내전을 벌이고 '순혈한족'을 추구한 선전한 중화제국에 의해서 유목민/공산주의자와 피가 섞였거나 부역자라는 명목으로 도매급으로 엮여서 차별,탄압 받았다. 대놓고 화북의 유목-멘셰비키라고 할 정도.[83] 고려, 조선, 옥저, 백제, 강화, 유구, 주나라, 루밀 키치파닐(현실 뉴질랜드에 위치한 마야쪽 고려계 국가), 네덜란드, 마긴다나오, 에이레, 잉글랜드. 네덜란드는 파푸아 섬을, 에이레와 잉글랜드는 호주의 동서를 각각 식민지가 아닌 고유의 영토로 만들었기 때문[124] 아직 부족한 나라들은 참가하지 못했지만, 주나라는 적어도 저기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사회적 발전이 됐다는 뜻이다.[84] 대만섬에 살던 이들은 고려의 질서하에서 예맥계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서 풍요롭게 살았는데, 왜 굳이 저런 전쟁범죄자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희생해야 하냐고 반발했다. 이미 근대화는 이전에 이루고, 선진국급 경제력을 갖춘 기존 주나라인들의 경우는 대만인으로 따로 구분되기까지 했다.[85] 옥저의 배후인 고려가 과거의 원한으로 탄압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인권 중시문화를 가진 고려의 영향을 받는 옥저는 몽골을 탄압할 생각이 없었다.[86] 이에 몽골을 열등민족으로 규정하던 중화제8제국이 미개한 혼사라고 비난하면서 고려가 분노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엔케바토르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87] 18세기 기준으로도 네덜란드의 왕은 고려의 황제인 해원과 절친이라 국가들끼리 연합을 만들 당시에 오랜만에 재회해 반가워하며 포옹하기도 한다. 각각 왕과 황제가 된 후에는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예전처럼 같이 장난 치고 놀지는 못해서 그리움이 많았었다.[88]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거리가 먼 파푸아네덜란드에서 독립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 동시에 네덜란드에 왕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도 하는데 거리가 먼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기 때문.[89] 고려에서 프랑스의 처벌을 약하게 하면서 풀어준 이유가 프랑스가 부활해서 도이치를 어느 정도 견제해줘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정도.[90] 이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모렐리가 도저히 공산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고 볼 정도. 물론 여기에다가 전쟁 직후라 적국이던 프랑스인을 상대도 안 해주려는 도이치인들의 풍토에 프리드리히 대왕부터가 하층민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고려식 정책을 하고 있던 것도 영향이 컸다.[91] 대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피해가 심했던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서, 개혁의 방해물이자 잠재적 암덩어리였던 융커들을 숙청할 수 있었다. 전후에도 프리드리히 2세는 대전쟁의 승전과 대독일의 달성이라는 업적을 내세워 내부 반발을 찍어누를 수 있었고, 테레지아는 상민에게 집착하면서 그가 설계했던 제국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닮으려고 애를 썼다.[92] 소련군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도이치와 프랑스 군인들의 보급품이나 식량도 훌륭했기에, 소련 내부에서는 고려 이전에 도이치와 프랑스에게도 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93] 유럽연합을 창설하기 전부터 양측은 거대 경제동맹체의 필요성을 느껴서 유럽연합을 함께 구상하면서도 유럽의 패자 자리를 두고 경쟁에 들어갔다.[94] 알렉산데르 6세체사레 보르자가 원 역사대로 말라리아에 걸리긴 했지만, 상인으로 위장한 고려 첩보원이 곧바로 치료약을 넘겨준 덕분에 죽지 않았다.[95] 피렌체가 통일 이탈리아에 흡수합병당하는 과정에서, 메디치 가문 중 일부가 고려로 망명해 고려 최초의 민간 은행인 메디치 은행을 설립한다.전화위복도시국가 지배자 자리에서 쫒겨나서 극초강대국의 은행-금융업계 최강자로 진화 그 과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던 예술가들까지 뒤따라 온 건 덤.[96] 아센재웅이 고려에서 좋아하던 음식이 아이작 겹빵 배달이었다. 그래서 고려와 불가리아를 비교하면서 드는 예시에는 거의 반드시 겹빵 배달 얘기가 들어가고, 이게 나중에 대외적으로도 알려진 듯하다.[97] 자신들의 군주로 적임인 이가 (로마의 피를 이은) 고려 황제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추대하는가 하면, 이를 거절당하자 다음에는 주 그리스 고려 대사를 '고등판무관'으로 명칭을 변경해줄 것을 거듭 요구해 관철시켰다.[98]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강들은 핵무장을 하지 않는 대신 안보를 고려가 책임져줄 것을 요구한 후 그 돈을 죄다 자국의 경제발전에 써버린 듯 하다. 현실의 유럽의 군축과 무임승차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99]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서로의 영역권으로 인정하는 조약. 남미에 있던 고려가 해류를 타고 유럽보다도 먼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곶을 발견해서 깃발을 꽂은 상태였다.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희망곶과 아프리카 항로를 넘겨준 것.[100] 조약이 깨질 경우 고려가 아프리카 이권을 건드릴까봐 고려를 상대로 서방 해상십자군이 벌어졌을 때도 중립을 지켰다[101] 네드 러드와 추종자들은 무슨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굶주리는 잉글랜드 인민들이 굶주림이 없이 모두 문제없이 살 정도만을 원했던 소박한 이들이었고, 네드 러드부터 권력에 타락하지 않은 작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소시민 마인드를 유지했다보니 발전이 가로막혀 한계에 다다라버렸다. 그러나 북한처럼 빈민은 아니고, 구매력 PPP가 지구를 기준으로 1인당 18000달러 수준을 할 정도로 중진국 이상은 된다. 땅이 워낙 생산력이 좋은데다가 기본적인 설비 등도 갖춰졌으며,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의 모순성 때문에 성장의 한계는 있어도 일단 부패하지 않은 덕분인듯.[102] 사실 아일랜드의 공식 국명이 에이레(Éire)이다.[103] 18세기부터는 소비에트 연방[104] 해방제는 고려의 산업력을 보고 실제 러시아와 격차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려가 공러증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맞춰줄 뿐, 실제로 고려와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현실파악을 못하는 아들 블라디미르 2세가 러시아가 진짜로 강한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서 현실을 알려주는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차르 자리를 찬탈한 후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의 거품만 드러나며 나라를 말아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에게 의존하고자 애걸복걸하다가 차남이 옥저군에게 살해된 줄 모르는 해방제는 자신이 키운 제국을 말아먹은 멍청한 아들을 끌어안고 러시아를 위해 동반자살했다.[105] 고려 정부는 외젠의 프랑스 정부를 쿠테타 세력으로 판단, 정권의 정통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프랑스인들은 자신들 멋대로 생각하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106] 학자들은 아예 외젠을 또 다른 군주제에 불과하다고 크게 비판했다. 철학자 존 로크는 가면시중들의 치세가 끝나서야 고려는 제대로 된 국민국가에 들어섰다고 여겼다. 이때는 민선시중이 되기 이전에 간선시중으로 중서성(의회)에서 선출하는 구도지만 현대의 의원내각제(의회정부제)와 흡사한 방식이기에, 일단 민주주의에 속하는 방식이라 거부감이 없던 듯. 물론 이후 상민의 뜻에 따라 아예 시중들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형태로 굳혀졌다.[107] 북왜가 도쿠가와가 정권을 잡고 나서 백제의 성장을 어느 정도 견제해주길 바라는 고려의 뜻을 읽어내 이를 이용해 강화로 이름 바꾸고 열강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프랑스 역시 도이치와 관계개선을 하면서도 고려의 뜻을 읽어 도이치를 내부에서 견제해주는 유럽 강국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108] 쑥쑥 자라서 열여섯 나이로 174cm나 되는 거구의 사내가 되었다고 한다.[109] 상민이 아무리 업적을 많이 해도 집정을 될 수 있을지언정 무슬림이 아니기에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슬림인 아들을 술탄으로 해놓고, 부족들이 모두 만족하면서도 후대에도 좋은 제도를 제안하여 정리한 것.[110] 콘스타티니예를 자유시로 지정해 모든 종교활동을 중지하고 부르사로 수도를 옮겼다.[111] 가장 가까운 게 에이레 소속의 누아 에린(호주 동부)과 잉글랜드 소속의 뉴펀들랜드(호주 서부), 네덜란드령 파푸아인데 전부 고려와 우호적인 국가다. 그나마 잉글랜드가 작품 후반부에 고려를 적대하긴 하지만, 뉴펀들랜드는 대동주의(공산주의)와 관련이 없어 왕가가 피신해 온 곳이니 논외다.[112] 이주민들을 흡수 통합하며 인구를 늘리려 했던 고려로서는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유대인을 받을 이유가 없다.[113] 유럽에서는 친고려 국가들도 유대인들을 싫어하는지라 사실상 유대인들 입장에선 이곳에 가는 숫자가 상당할 것이다.[114] 시중 자리도 사실 엄청난 혹사가 동반되는 자리라고 한다. 그 탓에 처음 시중이 된 이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지만,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시중의 과도한 업무량에 힘겨워하는 묘사도 있다.[115] 아시아 쪽 친 고려 국가들에겐 일부러 팔지도 않고 다 너희들을 위해서 안 파는 거라고 언질까지 줬었지만 각국 수뇌부는 이를 상국의 견제로 오해하는 바람에 기어이 건함경쟁에 뛰어들고 만다.[116] 유인작전을 벌이느라 주요 혁신점 중 두 가지, 사거리와 속도를 사실상 봉인하고 싸웠는데도 4대 1의 싸움에서 적을 압도했다.[117] 중간에 평정급이라는 함급도 있었지만 설계부터 불량이었다고 한다.[118] 만재배수량이 무려 8만 5천톤으로, 원역사의 야마토급 전함의 그것보다 1만3천톤이나 더 나가는 괴물이다.[119] 그 당시 물품 그 자체이므로 탄소검사를 하건 뭘 하건 고려 삼별초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