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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22:39:09

남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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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문서 모기업 SK에너지
연고지 제주특별자치도
구단 제주 유나이티드 FC
주요 인물 현재 김학범 감독 | 선수단
역대 역대 감독 | 프랜차이즈 선수 | 역대 주장 | 역대 유니폼
시설 관련 문서 홈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제2 홈구장 제주종합경기장
클럽 하우스 서귀포 클럽하우스
역사 시기별 유공과 SK 시절 | 제주 유나이티드 FC
시즌별 시즌별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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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현재 시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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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고 이전 이전의 상황 (유공 코끼리/부천 SK)3. 제주로 연고 이전4. 연고지 이전 이후5. 관련 문서

1. 개요

2006년 부천시에서 제주특별자치도연고지를 이전제주 유나이티드 FC를 비하하는 용어.

2. 연고 이전 이전의 상황 (유공 코끼리/부천 SK)

1983년 슈퍼리그 창설에 맞춰 창단된 유공 코끼리 축구단은 경인 지역[1]에서 연고 창단부터 1998 시즌까지 중위권~중하위권의 클럽이었다.[2] 이후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이해 SK는 운영하던 스포츠단을 줄줄이 해체했고[3], 축구단은 폭풍을 피했으나 모기업의 지원금이 줄어듬과 동시에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던 선수 연봉에 대해 새로운 고과평가제도가 실시되었다.[4] 신임 강성길 단장은 축구단 운영에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5]이었는데, 홍보 효과도 없는 축구단은 최소비용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이 양반의 축구 철학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단장 개인의 뜻이 아니라 모기업 수뇌부의 마음이 떠났다는 뜻이었다. 축구단에 투자는 기대할 수 없었고 쓸만한 선수는 다 팔아먹고 있는 선수로 돌려막으면서 그냥그냥 운영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똥누는 놈 주저앉히는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 소버린 사태[6]#인데, 이 사태로 인해 그룹의 존망 위기까지 내몰린 SK는 축구단 매각을 검토했으며 실제로 부천시에 무상기부, 중국 스더그룹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흐지부지되었다.[7] 어찌저찌 소버린 사태가 잘 수습된 후 2004년부터는 축구단 정상화를 위해 정해성 감독을 영입하고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수, 조준호 등을 영입하는 등 본격적인 정상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팀이 정비된 2005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 탈락하기도 했으며 평균관중도 대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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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주로 연고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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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일 오전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구단 연고지를 경기도 부천시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옮긴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 연고이전 이후 2년 만에 전해진 또 하나의 충격적 연고지 이전 발표였다. 구단의 연고이전 발표가 진행된 이후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8]와 헤르메스에 동조하는 K리그 타 구단 서포터스 회원들이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붉은악마 서포터스도 3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앙골라와의 친선 A매치 때 검은색 옷을 입고 전반전 초반 응원을 거부하기도 했다.[9]

SK 축구단의 연고지 이전 사유는 클럽 하우스 문제였다. 당시 부천 SK는 인천광역시 용현동에 위치한 SK저유소 부지[10]에 위치한 훈련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부지가 재개발됨에 따라 새로운 클럽하우스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11] 이에 부천시측에 새로운 클럽하우스 건설을 위한 부지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부천시에서는 단칼에 거절했고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나날히 늘어가는 인구밀도와 도시화를 자랑하는 부천시에 클럽하우스 건설 부지를 구입하는 것은 비용이 한두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고심하던 SK는 축구단을 부천시에 유지, 제주도로 연고이전, 제3지역으로 연고지 이전이라는 세 가지 방안을 놓고 외주용역조사를 했으나 결국은 클럽하우스 부지 무상제공을 떡밥으로 던진 서귀포시로 연고이전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12]
"그 따위로 축구하려면~ 그따위로 축구하려면~ 나가 뒤져라! 나가 뒤져라! SK 나가뒤져라~!"
연고이전 이후 분노한 부천 서포터들이 부른 노래. 이 곡은 원래는 수원 서포터즈의 안티콜이며 2015년 12월 5일에 부산 아이파크가 결국 강등되었을 때 분노한 부산팬들이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영상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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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후 FC 서울과 함께 연고지를 옮겼기(2006년 부천시 → 제주) 때문에 남쪽 패륜이라고 해서 남패라고 불리고 있다. 연고지 이전에 대한 입장은 두 구단이 다르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반강제로 옮긴 이전 연고지 중 하나인 서울로 돌아간 FC 서울은 이를 연고복귀로 주장하고 안양 연고 시기를 부천의 목동 시절처럼 남의 집살이 시절로 치부하지만 일절 연고가 없는 제주도로 간 SK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 말 그대로 연고이전을 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4. 연고지 이전 이후

연고지 이전에 대한 사죄의 목적인지 기업 이미지 제고가 목적인지는 몰라도 2007년 부천 FC 1995 창단이나 프로리그 참가 준비 기간에 SK그룹[14]이 약간의 지원도 해 주었다. 그래서 제주 팬들은 연고지 이전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부천 팬들에게 지속적으로 "부천 팬들 여러분!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의 표현도 했기 때문에 적어도 FC 서울보다는 이미지가 나은 편이고 서로 악감정을 내밀면서 거론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건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부천 FC의 응원가에서도 "SK 떠나가도 철새들 떠나가도 내 여자 떠나가도 나는 변치 않아." 라고 부르지 대놓고 남패라고 폄하하지 않는다.[15]

서포터즈 풍백[16]도 부천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 걸개를 거는 등 부천 SK 서포터즈에게 사죄의 뜻을 표명해 별다른 충돌이 없고 이후에도 연고지 이전 관련해선 발언을 극히 조심하고[17] 여타 폭력사태에도 연루된 적이 없었다. 전력이 약해 오랫동안 중하위권을 해맨 탓에 연고이전 외의 일로 타팀의 미움 받을 일이 없었고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팬, 특히 원정팬 숫자도 적어서 FC 서울만큼 까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연고지 이전 초기인 2000년대 후반까지는 육지 원정때 진짜 1~2명이 원정와서 응원하는 일도 있어서 타팀 서포터들이 개인적으로 격려해 주는 일도 왕왕 있었다.[18]

또 같은 SK 계열사인 SK텔레콤에서 부천 FC 1995와 잉글랜드 7부리그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19]와의 친선경기를 주선하고 비용을 부담해줬다.

부천시가 축구단을 위해 2,000억원을 들여 수용인원 35,000명의 부천종합운동장을 지어 주었는데 얼마 쓰지도 않고 가버려서 시 재정만 축냈다는 주장은 지어낸 이야기다. 부천종합운동장은 1996년 전국체전 유치용으로 부천시에서 건설한 경기장이고 이와 별도로 SK에서는 신도시 계획이 한창이던 상동 신도시 내에 축구전용구장을 건립하려고 했다.(현 부천터미널 인근) 그러다가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축구전용구장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면서 부천종합운동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20]

쉽게 정리하면 SK 축구단은 클럽하우스 부지 매입 비용 절감을 위해 연고지 이전을 한 것이다. 이는 보다 큰 마켓, 무주공산인 수도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한 FC 서울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거대한 수도권 마켓을 버리다시피 하는 바람에[21] 관중 동원이 썩 좋지 않고 되려 기업과 구단 이미지만 왕창 깎아먹었다고 까이는데, 상술했듯이 당시 SK 프런트는 연고지나 구단에 대한 애착이 없었고 지금도 깊다고는 못 한다.

프런트의 지속적인 파행으로 열성팬들 사이에서 SK그룹의 이미지는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태여서 더 깎아먹을 이미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박대가 화룡점정에 치닫던 와중에 제주도에서 지원해 준대서 제주도로 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용인으로 연고이전설이 돌았고 구단측에서 협상시 유리한 고지를 잡고자 연고지 이전을 거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 연고지 이전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구단에서 돈 때문에 다시 연고지 이전이라는 얘기를 꺼냈다는 것 자체가 2006년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이전할 당시 배운 게 전혀 없고 모기업이나 프런트에서 어떤 마인드로 구단을 운영하는지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2019년 시즌 37라운드에서 제주의 강등이 확정되면서 결국 부천과 더비 성사가 확정되었다. 부천 측은 지옥을 보여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었다.

2020년 5월 26일 제주의 부천 원정 일정이 잡히면서 부천 팬들의 현장 반응을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고 제주가 1:0으로 이겼다.

지속적이었던 코로나19의 확산 상황으로 인해 2020 시즌 제주와 부천의 경기는 모두 무관중으로 열렸으며 제주가 3전 전승을 거두었으며 제주가 다시 1부리그로 승격한 뒤에는 강등당하지 않았고 부천은 2부리그에 잔류하면서 2021 시즌 이후 양 팀은 만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2020년 제주와의 홈경기는 코로나19로 모두 무관중으로 치른 것을 다행이라고도 하는데, 부천의 서포터즈 헤르메스상대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는 등 강성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집단인 만큼 만일 코로나 인한 무관중 경기만 아니었다면 제주전에서 분노와 흥분을 참지 못한 부천 팬들로 인해 뉴스에나 나올 법한 대형 사고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5. 관련 문서



[1] 몇 차례 연고 이전이 있었으나 인천, 서울, 부천 등 경인 지역에서만 이동했다.[2] 1990년대 중반 니폼니시 부임 후 패싱 축구로 이목을 끌긴 했으나 성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1990년대까지 대우, 일화, 포철, 현대 정도가 상위권, LG, 유공 등은 하위권으로 인식되었다.[3] SK증권 여자 농구단SK케미칼 배구단이다. SK증권은 1998년 2월에 농구대잔치 우승을 한 다음 날에 해체라는 어이가 가출한 발표로 여자 농구단의 연쇄 해체를 이끈 시발점이었으며, 여자 배구도 슈퍼리그 준우승을 기록한 준수한 팀이었으나 역시 1998년 4월에 해체됐다. 당시 두 팀의 선수들이 현재는 각각 여자 농구와 여자 배구의 레전드급 선수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SK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올드 스포츠 팬들이 많다. 외환 위기 와중에도 남자 농구단을 인수해 청주 SK 나이츠가 탄생했는데, 당시 농구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남자 농구단 인수를 위해 여자 농구단과 여자 배구단을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남자 농구는 인기에 힘입어 프로 리그를 막 출범한 상태였고 여자 농구와 여자 배구는 실업팀이었다.[4] 기본급은 줄이고 출전 수당을 대폭 늘리는 방식이었는데, 주전급 고참 선수들은 이에 반발했으며 주장 강철을 비롯한 많은 고참급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5] 선수들이 전지훈련 갔을 때 열악한 숙소 문제로 하소연하자 "다음번엔 여관방으로 잡고 식사도 라면으로 때워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6] 2003년 당시 모나코의 소버린자산운용의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이 ㈜SK 주식 14.99%를 확보하여 최대 주주로 등극하면서 SK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사건이다. 다만 한국 소액주주들의 외국계 자본에 대한 반발로 인해 SK 경영진을 지지하여 실패한 후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7] 이 시즌에 단 3승만 거두는 등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8] 훗날 이 서포터스를 주축으로 축구단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부천 FC 1995다.[9] 당시 붉은악마 측은 "연고지 이전이야말로 한국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죽이는 행위"라며 "한국축구가 죽었다"는 의미로 상복을 착용했다.[10] 현재 이 부지에는 인천 SK 스카이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용현동 일대에서는 가장 큰 아파트 단지 중 하나다.[11] 이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SK 축구단은 물론 인천에 연고를 둔 같은 그룹 야구단도 졸지에 연습구장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부천 SK의 클럽하우스 바로 옆에 SK 와이번스 연습구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용현동에서 쫓겨난 SK 와이번스숭의야구장과 송도 LNG 야구장 등을 떠돌다가 제대로 된 연습구장을 다시 갖게 된 것은 2015년 4월이었다.[12] 아이러니하게도 연고지 용역조사 결과는 부천시 연고 유지가 최선이라고 결과가 나왔다.[13] 사과문에 나온 구장의 사진은 수원 월드컵 경기장이다. 남의 구장 사진을 사과문에 쓰는 정신나간 짓을 했다.[14] 부천 FC 1995 창단을 지원한 건 SK텔레콤인데 연고지 이전의 주체였던 SK에너지부천 FC 1995 창단 과정에 일부 도움을 주고 부천 FC 공식 연혁을 보면 SK에너지가 창단 과정에서 후원했다는 흔적이 있다.[15] 링크 하지만 부천FC 응원가 샘플의 상대팀 칸이 모두 패륜인것은 유머.[16] 제주 연고 이전 초창기에는 두 서포터즈 그룹 풍백과 제우스(JEUS-JEju United Supporters의 약자.)의 대립건도 있었다. 풍백은 자연발생적으로 조직하고 모인 거지만 제우스는 제주 유나이티드 구단측에서 모으고 관리하던 "어용 서포터"였다. 여느 서포터와 똑같이 유럽식 연고주의 쫒던 풍백과 달리 친구단적이었고 연고이전에 대한 개념이나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 이둘은 한동안 대립하다가 연고이전 이후 제주가 부진할 때 제우스도 인원이 줄어들더니 결국 사라지고 풍백과 새롭게 조직된 인세인 아일랜더스만 남았다.[17] 연고지 이전 관련 토론같은 게 있으면 내가 지지하는 구단이 연고이전 구단이라며 아예 말을 안 했다. 반면 성남 일화는 조명탑 사건을 들먹이면서 자기들이 반강제로 쫒겨났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며 당당하게 서울, 제주 비난하는 데 끼어들었다. FC 서울은 연고복귀라고 주장한다.[18] 현재는 육지 사는 제주 출신들이 경기할 때마다 들리는 등의 원군도 꽤 있다.[19] 통칭 유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나친 상업화에 반발한 맨체스터 시민들이 만든 구단.[20]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에 상동신도시의 성공으로 돈도 좀 만졌겠다, 전철역도 생겨서 접근성도 괜찮아졌겠다 겸사겸사 해서 종합운동장 옆에 인조잔디 연습구장을 철거하고 소규모의 전용구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축구단을 위해 만들어 줄 거면 전용구장으로 만드는 게 타당하다.[21] 서울 서부, 인천 동부, 부천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시장을 버렸는데 그 동네에 사는 인구 수만 해도 최소 250만명 이상은 된다. 홈경기를 치르는 서귀포시의 인구가 18만명 안팎이고 제주도 전체 인구가 60만명 수준인 것을 감안한다면 부천 연고의 시장성은 제주도의 최소 5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