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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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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제17대
이상열
제18~20대
박지원
현직

박지원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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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emocraticparty2008logo.jpg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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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정세균
비대위
박지원
2대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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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emocraticparty2008logo.jpg 민주당 원내대표
(통합민주당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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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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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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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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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제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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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원혜영
이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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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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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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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김동철
제2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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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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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비서실장
이승만 정부
허정 과도정부
초대 2대 3대 4대 5대
이기붕 김양천 고재봉 유창준 장일강
청와대 비서실장
장면 내각
6대
김준하
대통령비서실장
장면 내각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정부
초대 2대 3대 4대 5대
이재항 이동원 이후락 김정렴 김계원
위기관리정부
전두환 정부
6대 7대 8대 9대 10대
최광수 김경원 이범석 함병춘 강경식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이규호 박영수 김윤환 홍성철 노재봉
노태우 정부
문민정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정해창 박관용 한승수 김광일 김용태
국민의 정부
21대 22대 23대 24대 25대
김중권 한광옥 이상주 전윤철 박지원
참여정부
26대 27대 28대 29대
문희상 김우식 이병완 문재인
대통령실장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초대 2대 3대 4대 5대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정부
30대 31대 32대 33대 34대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이원종 한광옥
문재인 정부
35대 36대
임종석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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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와대 반전.png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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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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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명단
재정경제부장관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전윤철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한완상이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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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장관박정수홍순영이정빈한승수최성홍
법무부장관박상천김태정김정길안동수최경원송정호김정길심상명
국방부장관천용택조성태김동신이준
행정자치부장관김정길김기재최인기이근식
과학기술부장관강창희서정욱김영환채영복
문화관광부장관신낙균박지원김한길남궁진김성재
농림부장관김성훈한갑수김동태
산업자원부장관박태영정덕구김영호신국환장재식신국환
정보통신부장관배순훈남궁석안병엽양승택이상철
보건복지부장관주양자김모임차흥봉최선정김원길이태복김성호
환경부장관최재욱손숙김명자
노동부장관이기호이상룡최선정김호진유용태방용석
여성부장관한명숙
건설교통부장관이정무이건춘김윤기오장섭김용채안정남임인택
해양수산부장관김선길정상천이항규노무현정우택유삼남김호식
기획예산처장관진념전윤철장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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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지원대안신당의원.jpg

△ 2019년 모습
이름 박지원(朴智元 / Park Jie-won)
출생일 1942년 6월 5일 ([age(1942-06-05)]세)
출생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관 밀양 박씨
종교 천주교(세례명: 요셉)
우석(雩石)
가족 배우자 이선자[1], 슬하 2녀
학력 광주교육대학교 초등교육학 학사
단국대학교 상학 학사
목포해양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정당 [[민생당|
민생당
]]
지역구 전라남도 목포시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4, 18, 19, 20
소속 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경력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데일리팻숀스 대표이사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
제14대 국회의원(비례)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민주당 대변인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
대통령비서실장
제18~20대 국회의원(전남 목포)
민주당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당대표
외부 링크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트위터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페이스북

1. 개요2. 생애
2.1. 재미 사업가2.2. 정치 활동
2.2.1. DJ의 심복2.2.2. 대북송금 특검2.2.3. 재기와 분당2.2.4. 문재인 정부 시기
3. 뛰어난 정치력과 처세술4. 비판과 논란5. 선거 이력6. 어록7. 여담8.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관료, 기업인이다.

2. 생애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출생했으며, 2019년 기준 77세로 20대 국회 내에서는 강길부 의원과 함께[2] 최고령[3]이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1. 재미 사업가

목포시 문태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대학 졸업 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등 기업에서 근무했다.[4] 이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피혁과 가발 수출 사업을 운영하면서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을 지냈다.[5][6] 그러다 김대중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정치 행보를 함께 하였다.

2.2. 정치 활동

2.2.1. DJ의 심복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등원하였다. 1996년에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하지만,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대변인으로 대언론 소통창구를 맡았으며,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중용돼, 기존의 동교동계 가신[7]들이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에[8] 뛰어들어 틈을 메꾸는 역할을 맡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북한 측이 조의화환과 함께 공개적으로 보내온 편지의[9] 수신자 두 사람(임동원[10], 박지원) 중 1인이었을 만큼 DJ의 최측근으로 간주되었다.[11]

2019년 서거 전까지 이희호 여사의 병세를 가장 먼저 관심갖고 지켜보는 입장일 정도로, DJ 사후에도 10년째 완벽한 DJ의 심복임을 행동으로 자처하고 있다.

2.2.2. 대북송금 특검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서 현대로부터의 150억 원 수뢰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SK그룹에서 7,000만 원, 금호그룹에서 3,000만 원을 받고(알선수재죄) 직권남용, 외국환거래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2004년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했다. 대북송금사건 당시 구속되어있는 동안 지병인 녹내장이 악화되어 왼쪽 눈에 이어 오른쪽 눈을 실명할 뻔 했다. 왼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을 착용하게 된 이유가 대북송금사건 구속 때문이라고 와전되기도 하는데 왼쪽 눈은 이미 그전에 실명된 상태였고, 박지원 본인도 대북송금사건 재판 당시 '남은 한쪽 눈마저 실명될 위기다'라며 선처를 호소하며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이후 2007년 2월 사면을 받아 징역 3년 중 1년 5개월 정도를[12]을 구속된 채로 있다가 출소하게 된다.[13]

2.2.3. 재기와 분당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통합민주당에 복당했다. 그리고 복당인사였음에도 2010년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이후 2010년 7월 28일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자 당시 대표였던 정세균이 사퇴를 했고 결국 임시로 다음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5월 민주통합당의 19대 첫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는데 이때 초대 지도부가 총선패배로 인해 모두 사퇴한 상황이었기에 역시 임시로 다음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당선된 이해찬 대표와의 담합 의혹이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선 패배 이후 원내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자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임하고 뒤를 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마저도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2015년 2월 8일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에서 결국 2위로 석패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22일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3월 2일 국민의당에 합류했다.박지원, 국민의당 입당키로…18번째 현역

국민의당 합류 이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당선되어 4선의 중진이 되었다. 2016년4월 27일 경기도 양평군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김성식 당선인과 함께 원내대표로 만장일치 합의추대되었다. 이로써 박 의원은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에 이어 이례적으로 3번이나 원내대표를 맡는 진기록을 세웠다. # 2016년 6월 29일 천정배,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였고, 박지원은 만장일치로 원내대표를 겸하면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2016년 12월 5일부로 김동철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이임하였다. 곧바로 국민의당의 당대표 및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에 출마하기위해 원내대표직도 사임하였다.

그리고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전국당원대표자회의에서 1인 2표제, 전국 당원 전체 투표로 200% 중 61.58%의 득표율로 국민의당의 2대 당대표로 선출되며 자신의 정치인생 중 처음으로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가 되었다. 지금까지 당 대표 직함은 비상대책위원장직이 전부였으니 그야말로 말년에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다.

2017년 5월 10일,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2기 지도부가 총사퇴를 결의하면서 박지원 본인 역시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2.4. 문재인 정부 시기

2017년 9월 12일의 대정부질문에서는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다른 야당 의원들과 달리, 이낙연 총리와 제대로 된 질의응답을 주고받아 그나마 좀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낙연 총리는 박지원의 후임 대변인으로 같이 한솥밥을 먹었고, 이 총리가 동교동 출입기자였을 때는 박지원 대변인이 자리를 종종 마련해 기자들과 만나곤 했기[14]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박지원이 더민주당을 탈당한 후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로 추정된다.[15]

그러나 전날인 11일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로 인해 국민의당과 안철수가 여론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고, 박지원 본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사태의 책임을 청와대와 여당에게 전가하는 발언[16]해서 그나마 훈훈한 이런 장면도 묻히고 있다.

2017년 추석 연휴 동안 전남 곳곳을 돌아보며 민생 행보를 펼쳤기 때문에 전남 지사 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힌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는데, 10월 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의당이 지방선거에 승리하지 않으면 존폐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왕에 말씀드린 대로 안철수, 손학규,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이런 당대표급 인사들이 이번에는 전면에서 뛰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한번 이끌고 가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며 강하게 출마 의사를 보였다. 그래서 민주평화당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에도 부정적인 의사를 표출했는데, 교섭단체를 만들려면 자신이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이후 입장을 선회해서 지사직에는 불출마하였다.

2018년 2월 민주평화당 창당 이후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문모닝을 보여주고 있는데, SNS나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 특히 대북 정책에 든든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다. 가끔가다 보면 남들 모르게 복당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자 ”저래서 문재인이 대통령됐구나,역시 나보다 낫다고 인정한다“고 누가보면 민주당 논평이 아니고 싶은 정도로 극찬했다. 물론, 박 의원이 대북 송금 사건으로 처벌 까지 받았는데도 지금도 자신의 정치 목표는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고 하는 사람이지만, 외부적으로 봤을 때는 차기 전남지사 출마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아무래도 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낮아도 80%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

실제로 문 대통령의 복심이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비서관의 북콘서트 게스트로 등장해서 대놓고 민주당과의 연대를 말하며 민주당에 구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의원의 이러한 행보에 넷 상의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응 안돼"로 종합 할 수 있겠다. 민주당 역시 내부적으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합쳐서 제적 과반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압도적인데 굳이...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딴지일보 김어준 대표가 진행하는 TBS의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인 강적들에 자주 게스트로 초빙되고 있다.

2019년 7월에 대안정치연대 소속 비당권파들과 민주평화당을 탈당하기로 했다. 2020년 1월 대안신당 창당일을 결정한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서는 대안신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합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흩어져있는 옛 국민의당 세력들의 통합을 주장한 것이다.

2020년 1월 9일 법무부장관이 된 추미애의 윤석열 라인을 겨냥한 검찰인사에 대해서 "역시 추미애답게 통쾌?[17]하게 했더라."면서 후속 인사는 차장, 부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제 (정권을 겨냥한) 수사 라인 차장, 부장들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추 장관의 "(윤 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라는 발언에 대해 "왕조시대도 아니고 지나친 표현이다."며 비판했고, "수사라인을 좌천성 승진이나 좌천시킨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라고 평가했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버텨야 되고, 버티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앞선 2019년 12월에는 유재수·김기현 의혹 수사, 검찰 수사관 사망과 관련해 "마치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 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특히 청와대 사정 기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아니냐, 쉽게 간과될 일은 아니다", "감찰 무마 의혹은 조국 사태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갈 것"[18]이라며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니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바 있다.#

2020년 1월 안철수가 귀국해서 신당 창당을 선언하자 " 안철수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 라고 비판했다. #

3. 뛰어난 정치력과 처세술

오랜 정치 경력으로 인해 정치 9단, 족집게, 꾀돌이 등의 별명이 있는 수완가이다. 깔끔하고 명쾌한 메시지와 능수능란한 정치적 감각, 상대방의 약점과 흠결을 타격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민의당 시절, 당대표는 안철수, 천정배였지만 국민의당이 제20대 총선에서 호남 표를 싹쓸이하고 제대로된 정당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원내대표로 활약하던 박지원의 공이라는 평이 많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거대야당은 더불어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정국을 이끌었다. 권력의 곁에 있어보기도, 권력을 가져보기도 한 정치인으로써 그 생리를 잘 알고, 고령이지만 여전히 빠르고 맥을 잘 짚는 상황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2월 9일 헌정 사상 2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진행돼 가결된 후, SBS에서 박지원을 초청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정계의 원로로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여의도의 정치 9단이라는 이름은 결코 허풍이 아닌지라 시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홍준표도 여의도의 요물이라고 칭했을 정도. 그 때문에 프로에서 초청되면 차분하지만 매우 예리한 면모를 보인다. 자유한국당/2.27 전당대회에서 모든 선거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당대표 선거 2위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일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바른정당국민의당의 합당후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의당에 이어 2차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을 내놓았다. 이후 바른미래당의 합당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으면서[19] 박지원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고무되어 이후 바른미래당이 과연 자유한국당과 합쳐질 것도 맞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김대중의 야당 총재시절부터 대언론소통을 맡아, 기자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정동영이 갓 정계입문 후 DJ에게 아침보고를 올리고자 출근하면, 전날까지 기자들과 만난 박지원이 차 안에서 운전사와 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과도 곧잘 친근하게 지냈기 때문에, 일설에 따르면 뉴스 기사에서 "야권의 한 고위 관계자"라는 지칭이 나오면, 사람들이 대체로 박지원이라 간주한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서 그런지 MB정부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작으로 추정되는 혐의가 생기자 이명박을 공격하는 말을 쏟아내었다. MB정부의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지 뒷조사를 하고,[20]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모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신의 SNS에 즉각적으로 "천하의 못된 짓은 다 모아 자행한 MB와 MB정부 주동자, 가담자는 철저히 발본색원, 처벌해야 한다"며 "이미 수상한 DJ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 모의했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극렬한 반응을 쏟아냈다. 게다가 2017년 국정감사에선 "다스는 MB 거"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며, 11월 1일에 출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내가 미워하는 MB가 곧 구속되게 생기니 기분이 좋다"는 발언으로 대놓고 확인사살. 다만 그러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의 "MB가 아버지의 국장을 마지못해 결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부정하며 "MB가 국장에 적극 협조해줬으며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때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문재인과도 사뭇 노선이 달랐다.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참여정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영향이 있는 듯. 19대 대선 시기에는 '문모닝'으로 대변될만큼 대립각을 세웠고, 후일에 스스로도 "반문의 괴수"였다고 시인할 정도.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유세중에 느닷없이 '문재인이 되어야 호남의 정치적 몫을 가져올 수 있다'라며 말실수를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문재인을 매우 의식해서 나온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때로는 지지, 때로는 비판을 하고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지지하는 모습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튼튼한 안보와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 "DJ였다면 대일문제(강제징용)를 이렇게 악화시키지 않고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을 것."#,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기조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는 항공모함인데 정부가 고무보트처럼 획 돌려 좌초될 위기."#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한바 있다.# #

2017년 4월 북한이 한반도 긴장상황에도 불구하고 열병식을 하면서 ICBM을 공개하자 "제 정신인 거냐"고 비난했다. # 앞선 2월에는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3월초에는 사거리로 보아 ICBM(대륙간,장거리)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4발 시험발사하였다. 이에 3월31일 트럼프 정부의 첫 무더기 대북제재 법안이 발효됐으며 같은날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북한은 이란보다 시급한 위협.”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21]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햇볕정책을 기본으로 한 대북 문제에 대해선 상당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 시절에는 물론이고 국민의당-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이 분야에서 박지원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야당 유력 인사 중에서는 이 대북 문제와 관련해 정부 및 여당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인사이기도 하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DJ는 외교 강화론자이며 늘 국익을 생각하라 하셨다. DJ는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한일회담 찬성, 일본 대중문화 개방, 비난을 감수하며 4대국 보장론을 주장하고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외교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류가 시작됐으며 중국과 외교관계 시작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고, 튼튼한 안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중러의 협력으로 햇볕정책을 이끌었다." 고 그를 회상했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북핵문제에 대한 '햇볕정책 책임론'을 제기하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4번의 북한 핵실험이 있었고, 북한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던 대통령께서 '대화 위해 북에 준 돈이 핵개발 자금 됐다'며 햇볕정책에 책임을 떠 넘기고 있다.", "정부 말대로 하면 북한은 이미 망했거나 오늘 망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동안 준 돈이 없는데 북이 핵 SLBM 미사일 핵잠수함까지 건조해서 실험을 하는건 무엇인가.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나면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묘소로 가서 항의하냐"고 반박한바 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JTBC 인터뷰에서 앵커가 "햇볕정책은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 아니었습니까?"라고 묻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튼튼한 한미 동맹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후 미국에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대북정책을 이렇게 하자고 설득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클린턴 메시지를 가지고 6.15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던 겁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미 간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주도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클린턴 대통령 때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설득돼서 이제 대북정책의 운전석에 김대중 대통령이 앉고 자기는 조수석에 앉겠다, 이렇게 합의되어서 한 겁니다. 현재 햇볕정책의 추진이 별로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 정책도 늘 고착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거죠. 계속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설득을 해야 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설득해야죠. 우리는 한미 동맹 속에서 북한과 전쟁을 막고 어떤 무력도발보다는 대화로 해결하자 하는겁니다. 남북 관계 개선은 2000년 6.15 정상회담 정신으로, 북한의 핵 문제는 6자회담 9.19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해결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9월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동성애·동성결혼 개헌 반대 국민대회' 집회에 참석해 "동성 결혼은 섭리에 반하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발언을 하였으며#, 2018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안인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는 '워마드를 이해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의 무차별적인 문자폭탄을 받았고, 결국 직접 페미니스트들에게 문자폭탄 발송을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4. 비판과 논란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박지원(1942)/비판 및 논란 항목 참조.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당 6,004,578 (29.20%) 당선 (21번) 초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소사) 새정치국민회의 31,786 (37.2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무소속 45,415 (53.59%) 당선 (1위) 재선[22]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민주통합당 63,705 (71.17%)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국민의당 58,630 (56.38%) 당선 (1위) 4선[23]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민생당

6. 어록

날카로운 촌평과 깔끔한 메시지로 정평이 나있다. 그만큼 어록이 많다. 추가 바람
"정치는 생물입니다."
ㅡ 본래는 김대중이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박지원이 자주 이 말을 사용해왔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탈세. 이 4가지 다 지키면 뭐가 되는줄 아십니까?"
"장관!"[24]
ㅡ 이명박 정부시절 어느 유세 현장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가족하고 친구하고 밥 먹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삼시 세끼를 기자하고 먹는 것이 제일 좋다."
2016년 5월 3일 국민의당 초선 국회의원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특강을 하면서
"정권이 끝나면 저처럼 불행한 사람이 안 나와야 한다. 순간은 막아도 영원은 막을 수 없다."
2016년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대해 방어하던 안종범 청와대 정책수석에게..
"골프하고 선거는요, 고개 쳐들면 그 순간 집니다."
ㅡ 썰전 244화에서 전남도지사 당선 가능성에 대한 답변.[25]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중 2가지를 이행하셨다. 삭발,단식투쟁 다음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는 법인데 의원직이 없으니 당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
ㅡ 2019년 11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물에서
"제게 재판장처럼 말하지 말아주세요."
ㅡ 2019년 12월 30일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26]
"나는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지만 와신상담을 할 수는 없다."
ㅡ 2020년 1월 8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5회 출연분에서[27]
"국가를 위해서 정치인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누웠다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ㅡ 2020년 1월 8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5회 출연분에서, 기회주의자라는 세간의 평판에 대해 물었을 때.
"정치인은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 또 정적을 폄훼해야 할 때에는 사정없이 해야 한다."
ㅡ 2020년 1월 8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5회 출연분에서,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대해 악담한 후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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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3 ~ 2018 , 2018년 10월 15일 오후 1시 5분 사망.[2] 심지어 생년월일도 같다![3] 사실 선거직후에는 김종인이었지만, 탈당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어서 박지원이 되었다.[4] 그래서 스스로 가끔 "금성(LG전자의 전신)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5]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맨해튼에 건물 5채를 매입할 정도의 자산가였고 이것을 팔아 정치 밑천으로 요긴하게 썼다고 한다.[6] 이 시절 12.12 군사반란5.18 민주화운동 진압을 영웅적 결단이라며 찬양한 이력이 있다. # 이후에 김대중을 만나 얘기하며 실상을 깨우치면서 통렬히 반성했다는 얘기도 유명하다.[7]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한광옥, 김상현[8] 친분관계에 있어서는 DJ가 젊었을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호형호제까지 하는 권노갑, 김상현보다 못하지만 일하는 수완이 뛰어나, 한광옥을 제외한 권노갑, 김상현, 한화갑(언변을 인정받은 측근), 김옥두(민주화 투쟁 시절, 징역과 고문을 견딘 사람) 등이 대통령이 된 DJ에게 부담지우지 않고자 당무에만 전념할 때,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9] 명목상 수신인은 이 두 사람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뭔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언론에서 그 함의를 추정하기도 했다.[10] 국민의 정부의 대북정책 바탕을 기조한 사람이다.[11]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 역할도 주무부서가 아닌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맡길 정도였다. 이 때문에 당시 정가에선 박 장관을 두고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오래 얘기하는 사람”, "명실상부한 권력 제2인자”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종종 언론에선 그를 대신할 대(代)를 써서 '代統領'이라는 칭호로 부르곤 했다.[12] 2003년 6월 18일 구속 후 2004년 2월 구속집행정지(8개월 구속), 2004년 3월 재구속 후 2004년 5월 4일 구속집행정지(2개월 구속), 2004년 6월 재구속 후 7월에 다시 구속집행정지(1개월 구속) 연속 2번, 2004년 11월 2일 재구속 후 16일 다시 구속집행정지(14일 구속) 2번에 2005년 3월에 보석, 1년 뒤 2006년 5월 25일 파기환송심 최종 선고로 재구속 후 2006년 11월 3일 형집행정지로 3개월 만에 석방(5개월여 구속), 2007년 2월 9일 석방된 상태에서 사면.(법적으로는 2007년 2월 3일에 재구속되었다가 6일 만에 풀려났어야 되지만 실제로는 구속되지 않았는데, 사유에 대해 자세히 공개된 보도 정보가 없다. 아마 그 재구속될 시기에 이미 특사여부가 결정됐기 때문에 형집행정지 연장을 형식적으로라도 했는데 언론이 보도를 안 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월 1일 특별복권. 총 약 1년 5개월 구속. 무려 구속집행정지 6번(10개월)에 형집행정지 1번(3개월)을 받았으며, 보석으로 1년 2개월 이상을 나와 있었기에 총 수감생활 2년 3개월을 넘게 쉬었고, 이 기간 대부분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통원치료를 했다. 파기환송심 당시 언론이 구속집행 정지 기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보도한 탓에 2년 정도 감옥에 있던 걸로 알려진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1년 반도 안 된다.[13] 참여정부 시절 징역을 산 이후로는 야당의 친노 및 그 후신이라 볼수있는 친문계열 정치인들과 일정 거리를 두는 모습이 관측되는게 이 일과 관련있다고 추정하는 이들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논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탄핵정국에서, 박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이, 여당이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어느 한쪽과도 일방적으로 가깝게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 열린우리당의 일과 연관지으며 해석하려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술된대로 박지원을 사면해 준 것은 노무현이기에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의견 많다. 대통령 사면이 아니었다면 그 다음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징역을 살다가 풀려날뻔(2007년 2월 사면 기준으로 2008년 9월 석방 예정) 했다. 근데 이미 당시 형집행정지 상태여서 사면결정 나기 전에 더 연장신청했을 가능성이 높아, 사면을 안 했다면 언제 다시 감옥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14] 정치권에서는 이를 기름칠한다고 표현한다. 언론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한 편, 실력이 괜찮은 언론인은 정계로 끌어들이는 경로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15] 실제로 이날 박지원 의원은 거창하고 강한 어조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실제 질의응답은 상식선에서 세간이 정말 궁금해할만한 내용으로 채워졌으며, 이낙연 총리가 답변 괜찮게 한다 싶은 대목에서는 박지원이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의 비판을 받은 백악관 발언 신뢰 관련 발언 역시 자세히 보면, 미국에서 사업을 하며 그쪽 사람들의 생리를 경험한 박지원이 후배 정치인에게 충고하는 내용에 더 가까운 대목.[16] 요약하자면, 박성진 장관내정자, 류영진 식약청장, 탁현민 비서관을 인사조치하는 조건부로 김이수 표결에 협조해주겠다고 제안했었다는 말.[17] 맥락을 보면 지지발언은 아니고 평소 소신이 뚜렷한 추미애답다는 의미.[18] TV조선 시사프로 강적들에서는 조 前 장관이 조국 일가의 비리인 '조국 사태' 보다도 '유재수 건'으로 더 곤혹스러워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확산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19]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가 김문수에게도 밀리는 3위에 그치면서 크게 타격을 입었다. 결국 해당 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1석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전패하였다.[20] 비자금은 찾지 못했고, 해당 국정원 간부는 구속되었다. #[21]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 8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미국을 위협하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군사적옵션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실제 미군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며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22] 2008.8 민주당 복당[23] 2018.02.05 국민의당 탈당
2018.02.06 민주평화당 창당
2019.08.12 민주평화당 탈당
2020.01.12 대안신당 창당
2020.02.24 민생당 합당
[24] 그가 문광부 장관직을 역임했던 것을 두고 역공한 것.[25] 이후 247회에서 유시민유승민제일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다니시는 분이라며 반 농담삼아 이 발언을 디스했다. 사실 썰전 이외에도 판도라, 강적들, 외부자들 등 온갖 시사 평론 프로그램에 여러번 나왔는데 나올 때마다 저 말을 했고,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곳에서도 하고 심지어 YTN의 뉴스프로그램 같은 진지한 곳에 나와서도 "제가 선거에 대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저 똑같은 말을 했다. 20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 생활과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부터 2년 6개월간 TV방송에 일주일 평균 출연횟수 1회(뉴스보도나 국회 내, 야외에서 한 인터뷰 같은 걸 모두 제외한 순수 방송국 스튜디오 출연만 따질 때)가 넘을 만큼 많이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말한 것만 10번은 무조건 넘고, 수십번 정도 된다.[26] 실제로 판사 출신인 추미애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추미애가 전임자 조국 교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청자들에게 상기시키는 언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27] 한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 수술 후유증으로 수감생활중 쓸개를 잘랐는데 그래서 그의 건강을 이유로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것이다.[28] 이에 대한 아내의 대답은 "그러다 네 남편도 감옥 갈라" 였다고...[29] 이정현 前 새누리당 대표의 흑역사인 충성충성충성 사건 때도 이정현이 박지원을 '장관님'으로 칭하였다.[30] 평균적인 국회의원[37]보다 평균적인 장관이[38] 권력과 희소성이 큰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원내교섭단체 정당의 당대표(당대표 대행 및 비대위원장은 제외하고, 전당대회로 뽑힌 정식 당대표만)는 의전서열 고민할 필요없이, 희소성 뿐만 아니라 정부 독립성에서 장관보다 훨씬 강하고, 권력은 비슷하거나 실제로는 좀 더 클 수도 있으므로 (원내교섭단체 지선, 총선 공천권이나 내부경선 주도 권력은 의회정치에서 엄청나게 큰 권력이다) 보통 장관을 했어도 원내 당대표를 했으면 장관 대신 대표로 부른다.[31]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지냈다.[32] 같이 초청된 국회의원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그외 도종환, 김현미 의원도 참석하였으나 이 둘은 부처 장관 자격으로 참석[33] 본인의 언급으로는 병중인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전남도지사에 불출마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본인이 출마할 경우 공동교섭단체가 깨지는데, 재보선에서 민주평화당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만은 없어 리스크가 컸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34] 강부자, 김구라, 정형돈, 김풍, 셔누의 방송에서 모인 기부금 총합.[35] 이 날 방송에는 박 의원 없이 김구라만 출연.[36]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기환송심 등의 재판이 남아있고 법정다툼이 길어져 확정된 형만 받고 2021년 4월 출소하더라도 검찰에서 박근혜를 구속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