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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5:45:29

서훈(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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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장 (1961~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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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실장 (201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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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 제3차장 (1981~1990)
<nopad> 전두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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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 운영차장 (1995~1997) 국가안전기획부 제3차장 (1997~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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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제3차장 (2000~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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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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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최용환
제14대
김선희
제15대
백종욱
제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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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대 국가안보실장
<colbgcolor=#06377a><colcolor=#fff> 대한민국 제34대 국가정보원장
서훈
徐薰 | Suh Hoon
파일:2007031555571450.jpg
출생 1954년 12월 6일[1] ([age(1954-12-06)]세)
서울특별시
본관 이천 서씨[2]
재임기간 제4대 국가정보원 제3차장
2006년 12월 2일 ~ 2008년 3월 9일
제34대 국가정보원장
2017년 6월 1일 ~ 2020년 7월 3일
제4대 국가안보실장
2020년 7월 28일 ~ 2022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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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6377a><colcolor=#fff> 배우자 오해정[3]
자녀 슬하 1녀
학력 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 25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 / 학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북한학 / 박사[4])
병역 육군 일병 소집해제
경력 국가정보원 대북전략조정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
국가정보원 대북전략국장
제4대 국가정보원 제3차장 (참여정부)
남북총리회담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제34대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정부)
제4대 국가안보실장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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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비판 및 논란
3.1. 청주 간첩단 사건 수사 무마3.2. 서훈-양정철 회동 논란3.3. 정규필 예비역 대령 간첩 몰이 사건3.4.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련 논란3.5.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의혹
4. 사건사고
4.1. 채용비리 의혹 (무혐의)
5. 대북관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고위공직자.

1980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입부했고 이후 28년 3개월 동안 줄곧 대북, 정보 부문에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제34대 국가정보원장이며, 국정원장 퇴임 이후 2020년 7월 3일,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2. 생애

1954년 12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서용달(徐龍達, 1909. 7. 25 ~ )[5]과 어머니 수안 이씨(遂安 李氏) 이칠보(李七寶, 1919. 9. 14 ~ 2014. 2. 23)[6] 사이에서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서울고등학교(25회)[7]를 졸업했다. 1975~1976년 육군 일병 의가사제대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76년 서울대학교 교육계열(인문계)에 입학(당시 배치표)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가안전기획부공채 17기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 신포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북한 금호사무소 현장사무소장으로 1997년부터 2년간 북한에 상주했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이때 유서까지 썼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에 투입되어,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과 협상했다.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정원 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실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고, 이후 2000년 10월 박재규 당시 통일부장관의 김정일 전 위원장 면담부터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김 전 위원장 면담까지 모두 배석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배석했고,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 대표단에도 포함됐다.

2004년 1월 김만복의 후임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승진해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연을 맺었고, 2004년 12월 서영교 국장의 후임으로 국가정보원 대북전략국장으로 복귀했다. 2006년 11월에는 국가정보원 제3차장으로 승진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서 김정일과 만났던 대한민국의 고위 인사들을 모두 수행하면서, '한국에서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로 기록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2008년 3월 국가정보원 3차장을 끝으로 퇴직하였으며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18대 대선에는 남북경제위원, 19대 대선 때는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겸 안보상황단장으로 문재인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파일:external/gdimg.gmarket.co.kr/155181751.jpg

국정원 퇴직을 앞두고 <북한의 선군외교>라는 주제의 학위 논문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국정원 간부 출신이 쓴 북한연구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점에서,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논문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초빙교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 연구원 등을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

2.1. 문재인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

"서훈 국정원장은 대통령-미국-북한이라는 삼박자를 다 갖춘 인물이다. 미국 정부가 서 원장의 대북 정보 분석 능력 등에 대해 신뢰가 높고 지금까지 CIA 등 미 정보기관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 박지원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대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겸 안보상황단장으로 문재인 캠프의 외교안보 핵심참모로 활동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이튿날인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하루라도 공석으로 둘 수 없는 중요한 자리라며, 직접 1호 인사로 국무총리 후보자(이낙연)와 함께 문재인 정부초대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표되었다. 서 원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짜는 데 참여해 국가안보실장으로도 유력했으나 정보기관 개혁과 남북한 채널 복원의 시급한 임무를 띠고 일찌감치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을 지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 후보자는 평생을 국정원에 몸 담아왔던 남북관계 전문가로, 6·15, 10·4 두 차례 회담을 모두 기획하고 실무협상을 하는 등 북한 협상에 정통한 분"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서 후보자가 외교라인 협력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정원 개혁과 남북관계 안정을 신속하게 해줄 수 있도록 국회가 총리후보자와 국정원장 지명자에 대해 조속히 인준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와대 측의 발표 자료를 인용하자면, "국정원이 해외와 북한 업무에 집중하도록 이끌고",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행위를 근절하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인선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받았으나,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해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원장이 되면 (업무특성상) 얼굴보기도 힘들어지는데[8] 질문을 해달라"고 아예 대놓고 질문을 자청했을 정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댓글부대로 대표되는 국정원의 여론조작에 대해선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당론과는 반대로 테러방지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9]

5월 31일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었고, 6월 1일에 정식으로 국정원장에 취임하였다. 취임과 동시에 1호 지시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의 동향파악을 해오던 국내 정보담당관(IO·Information Officer)을 전면 폐지했다. 또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개혁위)를 출범시켜 '2012년 대선 댓글 사건'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개입이 의심되는 정치적 사건 15개를 조사했다. 국정원개혁위의 조직쇄신 권고대로 국내 정보의 수집·분석을 담당하던 2개 부서를 해체하는 등 조직도 축소했다.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카운터파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전선부는 조선로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이자 대남 정책을 총괄한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우리 측 정부 기관은 없다. 다만 그동안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우리 측 카운터파트는 통일부 장관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가 김 부위원장 카운터파트를 서 원장이라고 공개한 것은 향후 남북 대화 및 북·미 대화 타진을 '정보기관 채널'을 통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8년 3월 4일, 정의용국가안보실장이 단장을 맡은 문재인 정부 첫 대북 특별 사절단 일원으로 포함됐다. 정부 의전서열상 우위에 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단장을 맡아야 하나, 서울고등학교 16회로 고교 9년 선배인 정의용 전 안보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미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단장을 정의용 전 안보실장이 맡았고, 실질적인 대북 협상은 서훈 전 국정원장이 맡았다.

2018년 3월 5일, 대북특사단 일원으로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으로 방북하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했고, 이 자리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를 성사시키고 돌아왔다. 3월 8일에는 정의용국가안보실장과 함께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그와 조속히 만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뜻을 전해 5월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이끌어냈다.

2018년 3월 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첫째 날에는 고노 다로 당시 일본 외무대신과 만나 남북-미북정상회담 진행 과정을 설명해주었으며, 둘째 날에 아베 신조일본 총리를 접견했다. 이날 면담은 당초 15분으로 예정됐으나 아베 전 총리가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진의, 북한-일본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 예정 시간의 4배가 넘는 1시간 5분으로 길어졌다.

서 전 장과 정보 라인을 구축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CIA 국장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되며 '정보수장 라인'이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전망이 나왔다. 실질적으로 남북 재교류의 물꼬를 튼 문재인 정부의 1순위 인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회담장에 배석했다. 그리고 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을 들으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듯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기획,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고, 또 이번 회담의 성사를 위해 달려온 과정에서 마음고생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이나 대공수사의 책임자이기도 한 국정원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냐는 논란이 있었다.

4월 29일, 일본을 재방문해 아베 전 총리를 만나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5월 26일, 급작스럽게 열린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북한 측 시설인 통일각까지 들어가 유일하게 문재인 전 대통령 옆에 배석했다. 참고로 이때 김정은 위원장 옆의 카운터파트는 김영철 당시 통일전선부 부장이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6월 11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장기간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가 지지부진해졌던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만찬행사에 가는 길에 기자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직접 품에서 꺼내 보여주며 김 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당시 서훈 전 국정원장도 미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언론 일각에서는 북한이 서훈 전 원장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했고 서 원장이 이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게 전달한 게 아니냐는 가설을 제시했었다. * 이에 국정원은 친서와 관련해서 국정원은 관여한 바가 없다며 언론의 가설을 부인했다. *

2019년 4월 김영철의 뒤를 이어 북한의 새로운 통일전선부 부장(우리나라로 치면 통일부장관)이 된 장금철을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만났다고 한다. 둘이서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방법이 없으나 이후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회동에서 큰 소득이 없었거나 그냥 단순히 서로 얼굴만 익히는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2.2. 국가안보실장

2020년 7월 3일 국가정보원장에서 물러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되었다 (부임일: 2020년 7월 6일).# 후임 국정원장에는 박지원민생당 국회의원이 내정됐다.

국가안보실장 임명 이후 7월 8일 기타무라 시게루 전 본 국가안보국장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으며, 8월 22일에는 부산에서 양제츠 전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2.3. 안보실장 퇴임 후

대선 후 미국 워싱턴에 가서 연수를 받으려고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는데,# 2022년 6월 12일 관광비자로 출국하여 딸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2022년 7월 8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으로 한평생 몸담았던 국가정보원에 의해 후임 국정원장이었던 박지원과 함께 고발되었다. 일주일 쯤 후 검찰은 입국시 통보 조치를 했다.

8월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초청으로 현지에 머물던 서 전 원장이 지난달 말 귀국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 전 원장 등의 소환 일정에 대해선 "수사 일정에 따라 필요한 때 필요한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8월 2일 김규현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이 박지원, 서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 "고발과 관련된 사실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께서 승인하셨다"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 대통령실은 "보도자료 보고 알아"…국정원은 "서훈·박지원 고발 방침 尹에 보고", 국정원 "원장 2명 고발 尹에 보고"…대통령실은 몰랐다는데?, 국정원 "박지원·서훈 고발 건 尹대통령에 사전 보고"

3. 비판 및 논란

3.1. 청주 간첩단 사건 수사 무마

2018년 초, F-35 도입 반대 운동 간첩 개입 사건에 대한 관련 증거가 확보되었음에도 수사를 재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2023/01/19 기사). 덕분에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충북동지회는 2019년에 북한과 접선하여 활동 자금까지 지원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서훈은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했다.

3.2. 서훈-양정철 회동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훈-양정철 회동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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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3. 정규필 예비역 대령 간첩 몰이 사건

‘문재인 국정원’은 對北 핵심 공작관을 간첩으로 몰려고 했다 (2022/09)
[인터뷰] 文정권 제기 간첩혐의 벗어난 정규필 정보사 예비역 대령 (2024/04/27)

3.4.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련 논란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련해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상균 전 국정원 2차장이 고발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2019년 11월 4일, 어선이 나포된 지 이틀만에 탈북 선원 강제 북송이 결정되자, 서훈은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에 걸쳐 보고서를 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지시로 인해 '진술 검증과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을 하겠다'는 향후 조사 계획을 삭제되고, '탈북 어민들은 진정한 귀순으로 보기 어렵고 희대의 살인범으로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다' 등의 문구를 추가되었다.#

2023년 2월 28일, 서훈은 이에 대해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당했다.

3.5.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의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서욱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모두 구속되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사건 발생 후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자진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방침을 관련 부처에 전한 정황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

결국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12월 2일 영장심사를 진행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는 역대 최장 소요 시각[10]인 10시간 5분 신기록을 경신하며 오후 8시경 종료됐다. 그리고 숙고 끝에 심사 종료 9시간 후인 오전 5시경 끝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영장전담 판사가 보기에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중대하거나 어느 정도 인정된다 해도 도주 우려, 증거 인멸 가능성 등 구속이 불가피한 사유가 있지 않으면 영장 기각이 원칙이기 때문이라는 것.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미국에 연수를 가셨다가 수사 협조를 위해 돌아오기까지 해 도주 우려는 전혀 없고, 이미 현직에 있지 않으며 당시 모든 기록은 현재 정부 부처에 남아 있으므로 증거 인멸 가능성도 어불성설"이라며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

영장심사 전 서훈은 북한의 구조 정황을 담은 보고 문건을 제출했다.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검찰의 공격에서, 북한의 구조가 시행된 만큼 협상을 통한 송환을 추구했다는 변론이다.# 그러나 이 문건 제출이 서 전 실장에겐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증거인멸 정황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김정민 영장 전담 부장판사도 문건의 출처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요구했다고 한다. # 변호인단은 내보 보고 과정에서 입수한 사본으로 위법성이 있는 문건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이 직접 국정원 관계자들을 '입단속'했다는 진술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12월 9일 기소되었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서훈이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날까 봐 이러한 빠른 기소를 행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12월 2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박지원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용전자기록등손상·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서욱 전 장관도 불구속 기소했다. 서훈 실장에 대해서는 계속해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4월 3일, 구속 4개월만에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주거지 제한, 보증금 1억 5,000만원 납부 조건이 붙었고, 관련자 진술번복 설득과 강요 금지, 공동피고인 및 관련자들과 접촉 금지 등의 지정조건도 붙었다.

4. 사건사고

4.1. 채용비리 의혹 (무혐의)

경찰, 국정원 압수수색…박지원·서훈 '채용비리' 수사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시기 인사업무를 자체 감사한 결과 전직 국정원장이었단 서훈, 그리고 박지원 전 원장이 재량권을 남용해 직원 채용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2023년 5월 24일 오전 서훈과 박지원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재임 시기 업무와 관련한 기록을 확보하고 있다.

이후 1년이 지나 2024년 7월 31일에 검찰에서 정황상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

5. 대북관

공직을 떠나 있던 2014년,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한 특강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전쟁을 수행할 능력은 없다", "전면전이 아닌 작은 도발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조금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남북 협상 과정에서) 북한 고위 관료들이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결정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래된 북한의 숙청사(史)의 영향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심해야 감옥에 가는 것으로 그칠 뿐이지만, 북한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 김정은 체제를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핵 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훈 전 국정원장은 "현재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북한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기껏 북한에 들어갔던 주방장 같은 사람의 전언을 듣는 수준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김정은의 협상 전략을 누가 이해하겠느냐"고 말하며 남북 접촉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

6. 여담


[1] 음력 11월 12일.[2] #. 양경공파(良景公派)-경주(慶州) 문중 29세 수(洙) 항렬. 족보명은 서광수(徐光洙).[3] 吳海禎. 해주 오씨이다.[4] 박사 학위 논문 : 북한의 先軍(선군)외교 연구 : 약소국의 對美(대미) 강압외교 관점에서(2008. 1).[5] 족보명은 서철석(徐哲錫).[6] 이창현(李昌顯)의 딸이다.[7] 정의용(16회) 전 외교부장관, 이수혁(19회) 전 주미대사의 서울고등학교 후배이고, 서울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이민 가서 CIA 부국장을 지낸 앤드루 김과는 동창으로 서울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8] 비상 상황이 아니더라도 비정기적인 국회 정보위원회에 종종 출석한다. 물론 국정원장이 다른 기관장과는 다르게 외부 활동이 잦은 편은 아니다.[9] 사실 테러방지법은 더불어민주당의 직계선조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에서 처음 주장했던 법안이고, 당시 서훈은 국정원 3차장이었다. 따라서 현재 여당과 서훈 후보자 간의 입장이 완전히 정반대라고 보기는 어렵다.[10] 이전까지 최장 기록은 8시간 40분이었다. 이 때 피구속 대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11] 정두언 전 의원은 그때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책사로 꼽혀온 인물이었는데, 이상득 의원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친형인 이상득을 밖으로 밀어낼 생각이 없었기에 도리어 정두언 전 의원이 내쳐지는 결과가 빚어졌고 그로 인하여 정두언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