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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2:49:55

노량: 죽음의 바다/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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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정보등장인물줄거리평가흥행역사 재현성

1. 개요2. 히데요시의 죽음3. 왜군의 철수4. 노량 해전 전반부5. 노량 해전 후반부6. 노량에 떨어진 별7. 에필로그: 대장별이 된 충무공

1. 개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히데요시의 죽음

조선을 침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마지막 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히데요시의 가쁜 숨소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1] 히데요시는 사세구를 읊으면서 자신의 원대한 야망이었던 조선과 명나라 정벌을 상징하는 병풍을 본다.[2] 이후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어린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자신을 부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에게 히데요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묘한 웃음을 짓는 걸 보자, 그의 진의[3]를 알아챈 히데요시는 "이에야스... 네 이놈...!"이라 울부짖으면서 사력을 다해 이에야스의 멱살을 잡으려 하지만 결국 숨이 끊어진다.[4]

3. 왜군의 철수

1598년 음력 8월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철병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절명한다.
1년 전 명량(진도 울돌목)에서 조선의 배후를 노리던 왜 수군이 뜻밖에 패배하자
당황한 왜 육군들은 남해안 일대로 일제히 후퇴한다.
그리고 울산, 사천, 순천에 왜성을 쌓고 웅거한다.
이에 조선과 명의 연합군은 그곳들을 4곳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사로병진 전략을 실행하고
이때 순천 왜성(예교성)에 웅거하고 있던 왜군의 주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은
조명연합수군에 의해 해안봉쇄까지 당한다.
조명연합수군은 순청 왜서(예교성) 바로 지척인 광양만 장도 앞바다까지 들어와
350여척의 조명연합함대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 수군들의 공세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고니시 유키나가는 단 한 척의 배들도 철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들 앞에 이순신이 있었다.
오프닝

명량 해전으로 전쟁의 전세가 역전되고 일본군은 남해안 일대로 후퇴해 농성전에 돌입한 가운데, 순천왜성(예교성)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조명연합군의 사로병진책 탓에 조선 수군과 명 수군의 포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채 공격을 받고 있었다. 봉화를 피워도 구원군은 오지 않고, 군량도 닷새분량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 명나라 유정이 '육군은 약조대로 움직이지 않겠으나 수군은 자신의 관할이 아니니 수군 도독에게 따로 말해보라'는 전갈을 보내오자 고니시는 "그동안 먹인 뇌물이 얼마인데 이러냐"며 분노한다.[5] 거기에 고니시는 철군을 하라는 명령을 가장 늦게 전달 받기까지 했는데, 이에 고니시는 이에야스가 자신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한탄한다.[6] 이에 고니시의 부하인 아리마 하루노부가 이에야스와 친한 기요마사보다 귀환이 늦어질 것을 염려하고, 고니시도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의 안전을 걱정하며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이는...

그시각 조선 수군은 장도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다른 지역에서 집결하고 있는 왜군의 행방을 다 꿰뚫고 있었고, 이운룡은 이 집결에 대해 자신들이 봉쇄하고 있는 고니시를 도우러 오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송희립은 고니시가 봉홧불을 피운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이를 도우려는 적들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이운룡의 우려를 일축하고, 입부권준이 이에 호응한다.
"아니다. 쉽게 끝나지 않는다. 7년, 이 전쟁의 중심에 저 행장이 있었다. 행장은 저대로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어떤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 철저히 대비하고 막아야 한다. 알겠느냐?"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이들과 달랐으며 앞으로 적들이 어떻게 대응해올지 모른다며, 부하들에게 단단히 일러둔다.

고니시도 사람이니만큼 어떻게든 살기 위해 자신의 부하인 아리마를 명나라 수군 도독인 진린에게 보내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아리마는 선물할 보검[7] 한 자루를 가지고 진린에게 가서 어차피 끝난 전쟁에 더 희생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자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말아달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명나라와 더 싸울 뜻이 없음을 피력하지만 진린은 애시당초 전쟁의 명분이었던 정명가도를 언급하면서 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비난하고, 너희들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있다는 뜻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아리마에게 히데요시는 미친 자였다고도 덧붙인다. 불쾌해진 아리마는 자신들은 항복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화친을 청하려 온 것이라 말하고 거절하면 어쩔 거냐는 진린의 응수에 지난번처럼 명군이 피해를 볼 것이라 답한다. 이에 진린은 격분하면서 선물로 받은 칼을 아리마에게 던져버리고 평화에는 큰 대가가 필요한 법이라며 썩 물러가라고 한다.[8] 이를 전해들은 고니시는 대가를 원한다면 그리 해주겠다며, 조선에서 거둔 수급과 귀중품을 모조리 진린에게 주기로 한다. 진린을 꼬셔도 이순신이 이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아리마가 우려하지만, 고니시는 진린은 돌아가야할 본국이 있다며 이순신과 다르다고 한다. 그리곤 다시 연락선을 보낸다.[9]

잠을 자던 이순신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비명 소리에 집 안으로 달려가보자 마당엔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고 후원으로 가보니 아들인 이면이 일본군 여럿에 둘러싸여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순신은 아들에게 달려가보지만 물에서 시체처럼 생긴 일본군 여럿이 튀어나와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고, 그 사이 이면은 열심히 싸워보지만 결국 이순신이 보는 앞에서 목이 베여 죽고 만다. 이에 이순신은 절규하고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깬다. 밖에는 준사가 와 있었고 준사는 명군 진영으로 들어가는 왜선을 발견했음을 보고한다. 돌아가려는 준사에게 이순신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서 고향에 돌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이에 준사는 높으신 분들은 모르겠으나 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전쟁이 끝나야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며, 온전히 전쟁이 다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리마가 진린에게 왕래할 무렵 명군은 일본인 포로 셋을 폭행하고 있었다. 진린이 병사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포로들의 검을 던지며 검에 새겨진 가몬이 너희들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신을 속이려 하냐고 묻는다. 진린은 포로들 중 한 명의 얼굴을 손수 닦아 주고 안대를 바로 잡아 주는 등 달래주면서, 너희들이 충남 아산을 거쳐 왔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아산에서 이순신의 3남인 '이면'을 살해했음도 알고 있다고 내비치면서 입을 열도록 회유한다. 그러나 포로들이 겁을 먹고 말을 하지 않자, 분노한 진린은 친히 죽빵을 날려 그들이 끝내 장소까지 세세히 실토하게 만든다.[10]

진린은 본국에서 온 전 사령관 양호의 밀지를 받게 되는데, 밀지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고 본국 철군령이 내려신 사실, 육지의 유정이 고니시에게 매수되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부하들도 유정이 고니시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곤 이미 다 끝난 전쟁이라 더 이상의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아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탄한다. 한양에서도 선조가 사로병진이 실패했음을 질책하지만, 윤두수는 선조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제 없으며, 열도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니 이미 승리한 전쟁이라며 달랜다.[11]

전라좌수영[12]을 시찰하던 이순신은 거제도 칠천량 해전 이후 표류하다가 이제서야 끌고 온,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판옥선을 살펴본다. 그러고는 칠천량 해전 때 원균이 달아나고 지휘체계가 무너졌음에도 끝까지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는 이억기의 용맹한 최후를 전해들으면서 다가올 전투에 이 판옥선을 대장선으로 삼아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13]

그때 이순신의 아내인 방씨 부인이 이순신을 찾아오고 탕약을 달여주기도 하며 이순신이 자고 있는 옆자리를 지킨다. 부하의 부름에 나가보려는 부인에게 이순신은 꿈에 아들인 면이가 나왔다고 말하고, 부인은 꿈이라도 좋으니 어미 꿈속에도 한번 나와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씁쓸하게 말하며 방을 나간다.

진린을 다시 회유하러 찾아온 아리마는 가져온 뇌물들을 풀며 자신을 봉쇄망 건너로 보내주면 지금 주는 것의 열 배를 주겠다고 설득한다. 구원병을 청하려는 것이냐고 의심하는 진린에게 아리마는 명군이 봉쇄를 푼다 한들 이순신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봉쇄를 풀고 안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선 약간의 무력시위는 필요하며, 이로 인해 명군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설득한다. 결국 진린은 뇌물을 챙기고는 이순신 몰래 아리마를 포위망 너머로 보내준다.[14] 그 시각 등자룡은 이순신과 함께 그로부터 선물받은 판옥선을[15] 둘러보며 배의 튼튼함을 칭찬하고는 이순신과 필담을 나눈다.[16] 그러던 중 왜선 세 척이 명 진영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둘은 급하게 상황을 알기 위해 진린에게로 달려온다. 저 멀리 포위망을 벗어나는 왜선을 본 등자룡은 화를 내며 자신의 배를 타고 왜선을 쫓겠다 하고, 진린이 뒤에서 그를 불러 만류하려 하지만 등자룡은 듣지 않고 추격을 시작한다.[17] 그는 왜선을 끝까지 쫓았으나 그곳에는 안개 너머로 얕은 바다에 세키부네가 처박혀 있던 막다른 길이 있었다. 아리마는 자신들의 배를 버리고 육로를 통하여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이미 가버린 뒤였던 것이다.[18]

아리마는 시마즈에게 제발 고니시를 버리지 말고 그가 순천왜성에서 탈출할 수 있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시마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은채 아리마가 고니시의 쓸데없는 점(혓바닥이 긴 점)을 닮았다면서 이를 거절하고, 자신들은 순천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산포로 향해 퇴각할 것임을 밝힌다. 다급해진 아리마는 히데요시의 유언이었던 사세구를 읊고, 이에 시마즈는 미천한 것이 감히 태합 전하의 유언을 입에 담냐며 밖으로 나와 아리마를 위협한다.[19] 시마즈와 대면한 아리마는 이것이 고니시의 진짜 뜻이라며 본디 가져온 서찰 외의 서찰 하나를 급히 꺼내 시마즈에게 건넨다. 그 서찰에는 고니시가 시마즈를 무려 "시마즈 님"이라고까지 칭하면서, 자신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 (패권 승계 문제 등으로)이에야스와 충돌은 필연이며 형세가 매우 혼란할 텐데 그 와중에 이순신이 일본까지 와서 공격해오면 누가 그를 당해내겠냐면서, 어떻게든 이순신을 처리하고 가서 안정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를 지켜야 하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이순신을 죽인다면 이후 "시마즈 님"을 당해낼 자가 누가 있겠냐고 치켜세운다. 이를 읽고 난 시마즈는 전쟁 이후 정세까지 정확히 파악하는데다가, 자신을 "시마즈 님"이라고 부르면서까지 굽히고 들어오는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순신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부탁해오는 고니시를 영리하다고 평하며, 생각을 바꿔 밖으로 나와 순천왜성으로 출정할 것을 밝히고, 아리마는 거듭 머리를 조아린다.

이후 씬은 막사에 진린과 마주앉은 이순신으로 변경된다. 진린은 이순신을 노야[20]라고 부르면서 나름 온화하게 이순신에게 고니시는 그냥 보내주고 남해도로 가서 적의 잔당을 소탕하자고 설득하지만 이순신은 원수와 화친할 생각도, 그냥 보내줄 생각도 없다고 거절하고는 일이 바빠졌다며 가려고 하자, 사로잡은 왜군 포로를 직접 심문하여 이순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진술을 받아냈던 진린은 이를 한동안 숨기고 있다가, 이순신에게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유가 왜인에게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 때문이냐고 묻는다. 돌아가려던 이순신은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다가 진린의 막사 한쪽에 쌓여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이를 열어보고, 그 안에 담긴 남녀노소를 불문한 여러 조선 사람들의 수급을 보게 된다. 분노한 이순신은 이 수급이 일본군의 것이 아닌 조선인들의 것이라 말하고, 진린은 이순신에게 지금 일본군 부역자들을 옹호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이순신이 진린에게 그가 명나라 황제로부터 조선을 도와 일본군과 싸우라는 명을 받고 온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분노한다.
"도독은 귀국의 황제께서 조선을 구원하라 보낸 사람이오. 헌데 어찌 원수같은 적들을 살려보내고, 죄없는 백성들을 죽인단 말인가!!"
그에 진린은 이순신의 말에 일부 수긍하고 그리고 황제가 그 말의 뒤에 덧붙여 자신에게 칼을 하사하면서 자신의 행동은 곧 황제의 뜻이니 이에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그 칼로 베어버리라고도 하였다며 칼을 빼어 이순신에게 겨눈다.[21] 하지만 이순신은 전혀 굴하지 않고 칼을 겨눈 진린에게 다가가고, 진린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이순신은 "한 번 죽는 것은 아깝지 않다. 허나 대장이 되어 적을 놓아주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지 않겠나? 함께 싸우고자 하지 않는다면 조명연합수군은 오늘로 해체하겠소." 라고 말하고는, 자신을 재차 부르는 진린을 뒤로 한 채 막사를 나가 버리고 송희립에게 장수들을 모으라 하여 조선 수군 단독 출정을 명한다.

날이 저물고, 명나라 진영에서 진린, 등자룡, 심리는 논의를 하고 있었다. 심리는 조명연합함대 해체를 들먹였다며 이순신을 군령으로 참하라고 하지만, 이순신을 참하면 조, 명 양측끼리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연합함대는 황제의 뜻이라며 뒷수습을 우려한다. 진린은이를 듣는둥 마는둥 이전에 회의 도중 이순신의 아들 이면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이순신이 비틀거리며 나간 것을 회상한다.[22] 그리곤 이순신에게 아들에 대한 복수를 하여 적들을 놓아주자고 설득하고자 부하들에게 이면을 죽인 일본군 포로들을 준비시키라고 지시한다.[23]

이순신은 아들인 이회가 가져온 서애 류성룡의 서찰을 읽는다. 류성룡은 조정의 상황을 언급하며 윤두수가 벌써부터 광해군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역할이 절실하니 다 끝난 전쟁에 부디 수군을 온전히 보전하기 바란다고 전하였고, 서찰을 읽은 이순신은 이를 즉시 화톳불에 태워버린다.[24]그러고는 이회에게 다들 전쟁이 끝난 이후만을 보고 있다며 한탄하고는 간만에 부자지간에 술이나 마시자며 이회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나 이회가 나간 그때 송희립이 찾아와 명의 등장군이 보낸 전갈이 와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순신이, 이회. 송희립이 같이 명군 진영으로 가보니 등자룡은 명군이 미리 붙잡아둔 일본군 포로 셋을 이순신 앞에 대령하게 한다. 등자룡은 이순신에게 이들이 충남 아산에서 이순신의 셋째이자 막내 아들인 이면을 죽인 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순신이 그냥 가버리려 하자 뒤쪽 천막에 있던 진린이 나와, 그들은 정말 이면을 죽인 자들이 맞다며, 이순신이 그들의 목을 베어 원한을 풀고 더이상의 불필요한 희생을 만들지 말자며 봉쇄를 풀어 본영인 고금도로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이순신은 그 셋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얼마 전 꿈에서 봤던, 아들을 죽인 일본군의 얼굴과 같았다. 부모의 직감으로 이들이 범인임을 깨닫지만, 그렇다고 진린의 말을 들어줄 수도 없는 이순신은 애써 이들은 아들을 죽인 자들이 아니라고 하며 돌아선다.
"이리까지 싸우려는 연유가 대체 무엇이오? 파렴치한 그 임금에 대한 충성이요? 아니면 이 전쟁에서 당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오? 이제 다 끝났다고 하는 전쟁이오! 심지어 당신네 임금조차도!"
진린은 이순신에게 답답해하며 화를 내지만 이순신 일행은 결국 가버리고, 진린은 화풀이로 그 일본군 셋을 모두 베어버린다.

그날 밤, 진린은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늘 유난히 빛난다며 북쪽의 대장별을 발견하고, 저 별이 아니었더라면 조선은 진작에 명운이 다했을 것이라 말한다. 이를 옆에서 보던 진잠은 그것이 이순신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챈다. 저 멀리에서 출정 준비를 하는 조선 수군 병사들을 보며 저리 한들 자기 임금이 기뻐하기나 할까라며 자문한다. 진잠이 통제공이 왜 전쟁을 계속하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동조하자, 진린은 "죽음을 작정했거나, 아니면..."이라고 대답하고는 조선 수군에 가봐야겠다며 조선 수군 진영으로 향한다.

진린이 향한 곳에는 이순신과 휘하 장수들이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고, 진린은 조명연합수군은 아직 해체된 게 아니라며 자신도 조선 수군의 전략을 들어보겠다 하며 합석한다. 시마즈가 이끄는, 왜란 이후 최대 규모인 500여 척의 왜 수군은 남해도 건너편 창선도에 정박해 있는 상태, 조명연합수군이 있는 이순신은 외해에서 순천왜성 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노량에서 시마즈 군을 맞이할 것이라 하고 진린은 그럼 동쪽에서는 시마즈 군, 서쪽에서는 고니시 군 이렇게 양쪽으로부터 적들을 맞아 싸우게 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한다. 이에 이순신은 고니시가 출정하지 못하도록 포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해둘 것이라 말한다. 심리가 영리한 적들을 속이는건 불가능하다고 따지자, 이순신은 장시간동안 속일 수는 없을테니 속전속결이 중요하다며 동 트기 전까지 이곳으로 왜군을 유인해 섬멸시켜야 한다고 말한다.[25]

4. 노량 해전 전반부

늦은 밤, 이순신은 순천왜성 위장 포위망 유지를 맡은 준사에게 만일 고니시가 출정한다고 해도 응전하지 말고 퇴각하여 자신에게 고니시가 출정했음을 알리기만 하라고 일러둔다. 그 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시마즈 군을 맞으러 노량으로 출정한다.

출정한 배 위에서 이순신은 미리 준비해둔 전쟁 중 조선 수군 희생자 명부를 받아들고 거기에 쓰인 이들을 한 명씩 회상하기 시작한다.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전라우수사 이억기, 한산도 해전 등 숱한 전투에서 함께 싸운 향도 어영담, 한산도 해전을 함께했으나 그 후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녹도 만호 정운, 그리고 원균을 차례로 회상한 이순신은 명부를 태우며 전의를 다진다.[26]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해주소서.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조선 수군 희생자 명부에 적힌 이들을 회상하며 이순신이 올린 기도.

노량으로 접근해오는 시마즈 군.[27] 시마즈 군은 선봉 데라자와 히로타카, 중군 시마즈 토요히사, 후군 타치바나 무네시게, 그리고 본대 시마즈 요시히로, 이렇게 진을 짜 순천왜성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에 탄 쵸주인 모리아츠는 옆의 아리마 하루노부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이순신이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떵떵대고, 이에 아리마는 이순신은 오사카나 교토에마저 정보원을 둔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며 그가 이미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일축한다. 기분이 상한 쵸주인은 아리마에게 살마군이라고도 불리는 시마즈 군의 강함과 끈질김에 대해 언급하며 오니처럼 이순신에게 끝까지 달라붙을 것이라며 아리마를 위협한다.

하지만 아리마의 말대로 이윽고 시마즈 군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 함대와 조우하게 되고, 그 옆에는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북쪽에서 가만히 대기를 하고 있었다.[28] 조선 수군은 선봉군인 데라자와의 함대를 향해 포를 발사하고[29], 구선을 투입시킨다. 데라자와의 함대를 휘젓는 거북선을 본 시마즈 요시히로는 분명 자신이 직접 칠천량 해전에서 죄다 불태웠을 텐데 그 사이에 복구해서 온 것이냐며 의아해하고는 그럼에도 대응법은 세워 뒀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반응한다. 궁지에 몰린 데라자와 군은 깃발로 뒤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에 호응한 시마즈는 더욱더 속도를 높여 전진할 것을 명한다. 뒤이어 이순신은 돌격 선봉장 이운룡이 이끄는 판옥선들을 일자로 내보내 적선에 충돌시켜 적선들을 멈춰 세우고는 기름을 붓고 물러나서 불화살을 날리는 식의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조선 수군은 신기전(화차), 불을 붙인 대장군전 등의 무기로 멈춰세운 데라자와 함대에 화공을 가한다. 시마즈는 급히 함대를 멈춰 세우고는 데라자와 군의 불탄 배가 맞바람이 불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자 이순신을 두고 재밌는 자라 한다. 그러곤 변화무쌍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저렇게 대담한 일을 벌였으니 자신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면서, 이전에 노획한 조선군 화포를 끌고 와 불타는 배들에 포격을 퍼부어 가라앉혀야 한다며 아직 남아있던 데라자와군의 배까지 포격한다.[30] 선봉인 데라자와 군은 시마즈 군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결국 궤멸하고, 선봉장 데라자와는 안택선이 불타며 무너져 내린 대들보에 깔려 죽는다. 데라자와 군 한가운데를 휘젓고 있던 거북선들은 시마즈의 대장선을 발견하고 돌진[31]하나 화포에 피격당한다.[32][33] 시마즈 군이 데라자와 배들을 모조리 수장시키면서 방패가 되어주던 데라자와의 잔해들이 사라지면서 거북선은 완전히 노출된 상태. 그럼에도 대장선을 향해 결사적으로 돌격하지만, 결국 화포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린다. 침몰하는 거북선을 본 시마즈 군의 사기는 크게 오른다.

뒤이어 중군인 시마즈 토요히사의 함대가 선봉이 되어 더욱 속도를 높여 조선 수군에 접근한다. 이에 이운룡의 선봉 함대가 따라잡히고 백병전에 휘말려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를 본 이순신은 이운룡의 함대를 구원하고자 전군에 진격을 명해 조선 수군 전 함대가 토요히사의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해 토요히사가 밀리기 시작한다.

한편 시마즈 군과 조선 수군의 싸움을 지켜보던 진린은 분명 무력 시위라고만 했는데 그것치곤 싸움이 너무 치열하다며 의아해한다.

노량에서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순천왜성에선 이제 군량도 군마도 고갈되어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고니시는 시마즈가 배신한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는 부하들의 말을 일축하며 시마즈는 반드시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조선 수군의 포위망을 살펴보던 부하가 오늘 유독 조선 수군의 횃불이 많아보인다며 낙심하고, 이에 불현듯 힌트를 얻은 고니시는 그것이 위장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즉시 출정할 것을 명한다. 고니시가 출정하는 것을 눈치챈 준사는 이순신의 말대로 조심스레 철수한다. 순천왜성 밖으로 나와 출정한 고니시 군은 역시 횃불이 위장이었음을 확인하고는 시마즈 군이 자신들을 구하러 왔음을 확신하고, 그들을 도우러 노량으로 향한다.
''통제공의 원수는 곧 우리의 원수다! 한놈도 살려두지 마라!'''
다시 노량 시점, 싸움을 보다 못한 등자룡은 이순신으로부터 선물받은 판옥선을 타고 단독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멀리서 이를 본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니시가 분명 명나라 수군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고니시가 자신을 미끼로 쓴 것이냐고 옆의 아리마를 문책한다. 아리마는 등자룡의 단독 행동이라며 명 본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린은 왜군들의 의중이 뭔지 알아봐야겠다며 명나라 본대를 북과 피리로 크게 요동하며 진격하게 한다. 명 본대의 진격을 본 시마즈는 크게 분노하여 부하들에게 아리마의 혀를 자르고 세키부네에 묶어 보내 총알받이로 만들라고 지시한다. 아리마는 마지막까지 고니시가 분명 올 것이라며 끈질기게 매달리지만 결국 시마즈의 부하들에게 끌려가버린다.

5. 노량 해전 후반부

선봉대인 토요히사 함대가 조선 함대에 고전하고 명의 함대까지 개입하자, 속히 저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는 쵸주인의 말에 시마즈 요시히로는 아니라며, 11시 방향의 남해 바다 방향 바닷길이 열려 있으니 저기로 이순신을 꾀어내 고니시와 협공하겠다며 전속력으로 그쪽으로 향한다. 뒤이어 시마즈 토요히사도 요시히로의 뒤를 따라 빈 물길로 향한다. 이를 본 이순신은 바짝 추격하지 말고 천천히 쫓을 것을 명한다. 진린과 명군 부하들은 과연 명군이 나서니 적들이 물러난다며 기뻐한다. 쵸주인은 저들이 추격을 포기한 것 같다고 하나 시마즈 요시히로는 반드시 쫓아올 것이라며 전속력으로 전진하라고 명하나 곧 이상함을 깨닫게 된다. 어둠과 안개 너머 앞에 산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혀가 잘리고 돛대에 묶여 있던 아리마는 이 광경을 보고 재갈이 물린 채 처절하게 절규한다. 그 앞에는 관음포라는 막다른 포구가 있었고, 움푹 패인 모양의 지형에 시마즈의 전군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34] 뒤이어 어느새 쫓아온 조선 수군이 일자 모양으로 포구를 에워싸고, 패닉에 빠진 시마즈 군 일부 병사들은 육지에 상륙해 도주하려고 하다가, '도망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냐'며 도망치는 자는 모두 처단할 것이라는 쵸주인의 지시에 따라 조총을 맞고 쓰러진다. 붙잡힌 나머지 병사들은 이내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에 끌려온다.

시마즈 군을 에워싼 이순신은 즉시 진격하려 하나, 진린이 찾아와 간밤에 100척 넘게 가라앉혔다며, 이쯤 하면 적들도 꽤 많이 피해를 받았으니 놓아주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이에 이순신은 지금까지 함께 싸워줘서 고맙다면서 이제부터는 조선 수군만으로 적들을 섬멸할 테니 조심히 돌아가라고 말하며 여전히 전의를 불태운다.[35] 그때 순천왜성에서 위장 포위망을 지휘하던 준사가 찾아와 고니시가 예교성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전한다. 이에 진린은 이순신에게 고니시와 시마즈의 협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물으며 물러나자고 설득한다. 이순신은 그런 진린에게 부탁 하나 하겠다고 말한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물리고, 대신 명나라 수군이 들어와 관음포 앞을 막는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진린 따위로 자신을 막을 수 있겠느냐며 비웃는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도망치려다 끌려온 병사들에게 "살고 싶은가?"라 묻고,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말하기를 주저한다. 그러다가 한 병사가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시마즈는 그에게 어디 마을에서 왔는지, 그리고 가족은 있는지 묻는다. 병사는 자신의 소속 마을을 밝히고, 가족들로는 "갓 결혼한 처와 그 사이에서 난 아이가 있는데, 전쟁이 시작할 당시[36] 갓난아기였으니 지금쯤[37]..."이라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러자 나머지 병사들도 일제히 살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에 시마즈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바로 저기![38] 저 마귀들을 물리쳐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저 마귀들을 뚫고 간다! 그래! 꼭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 몸부림쳐라! 그러면 반드시 돌아갈 수 있다."
라고 연설하고, 이 연설로 필사즉생필생즉사 상황이 조성되면서, 시마즈 군의 사기는 되려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방금까지만 해도 도망치려던 병사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전의를 불태운다.[39]

시마즈 군은 관음포를 봉쇄한 명 수군을 향해 사기충천하여 돌진해온다. 시마즈 군은 안택선이 앞서서 사격을 받아내다가 어느 정도 근접하면 좌우로 길을 열어주고 뒤에 대기하던 세키부네를 앞으로 보내는 정교한 진법으로 명 수군에게 접근하고, 진린의 휘하 장수는 이를 보며 굉장히 잘 짜인 진법이라고 감탄한다. 명 수군은 화포를 방포하나 조선 수군만큼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고, 명 수군이 공격받기 시작하자 진린은 후퇴를 명한다. 그러나 훈련이 부족한 명군은 배를 돌리다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그 모습을 보고 왜군은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며 비웃는다. 쵸주인과 시마즈 요시히로는 저 멀리의 판옥선 위에 등자룡을 발견하고, 쵸주인은 이번에야말로 저 늙은이의 목을 베어다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왜군이 명군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던 그때, 시마즈군의 왼쪽에서 무거운 포탄 음이 들려오더니...
"이순신이다!"
시마즈 군의 왼쪽에서 조선 수군이 포격을 하며 나타나고 단숨에 시마즈 군의 허리를 끊어낸다.[40] 적의 허리를 단숨에 끊고 뒤쪽 함대를 신속히 섬멸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지휘에 따라 조선 수군은 시마즈 군의 가운데를 관통해 지나가며 화포를 퍼붓는다. 동시에 물러나던 명나라 수군도 시마즈 군을 향해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진린의 부하들은 계획과 다르지 않냐며 말리지만 진린은 "상황이 바뀌었고 지금은 밀어붙일 때"라며 돌격을 명한다.[41]

다가오는 명 수군을 본 시마즈 요시히로는 그들이 멍청하다면서, 진린을 잡아 이 전쟁을 끝내겠다며 계속하여 명 수군을 향해 나아간다. 이내 명 수군과 시마즈 군은 접촉하여 시마즈 군이 명나라 배마다 여럿 달라붙어 월선해오기 시작한다. 명 수군은 화포를 쏘아대나 명중률이 영 좋지 않고, 세키부네들은 명나라 배 주위를 빙빙 돌다가 포위하여 월선해온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신이 직접 진린을 잡을 것이라며 돌격을 명하는데, 갑자기 등자룡이 탄 판옥선이 시마즈가 탄 대장선으로 돌격해 멈춰세우고 대장선과 백병전을 치른다. 안택선으로 건너뛴 등자룡은 강력한 월도로 일본군들을 베어 넘기며 무쌍을 선보이고 쵸주인에게 일격을 내리치지만, 쵸주인은 어깨에 일격을 맞았음에도 철갑옷으로 월도를 받아내며 양손으로 칼날을 잡고 버틴다. 등자룡은 잡힌 월도를 빼내려 하다가, 기습적으로 들어온 시마즈의 일섬에 당하고 만다. 진린의 배 역시 월선해오는 시마즈 군에 맞서서 백병전을 치르게 되고, 진린은 매우 고전한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진린을 생포하여 인질로 잡음으로써 이 위기에서 탈출하겠다는 계획 하에 결국 진린의 배까지 넘어와 진린과 마주하게 되고,[42] 진린은 큰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이순신으로부터 진린 구출을 명 받은 준사가 등장하여[43] 연막탄을 던져대며 난전을 펼치고, 이를 틈타 진린은 물러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시마즈 군과 준사, 그리고 명나라 수군의 백병전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진린의 휘하 장수인 진잠이 전사하고 만다. 뒤이어 또 다른 휘하 장수인 심리가 진린에게 그를 잘 보필하지 못한 죄로 자신은 남아 싸우겠다면서, 시마즈 요시히로의 지시에 따라 진린을 잡으러 온 일본군과 일대 다수의 싸움을 벌이다가 역시 전사한다. 그 사이 진린은 협선을 통해 성공적으로 구출되어 이순신이 있는 대장선에 타고, 이순신에게 자신이 어리석었다면서 사과한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진린을 잘 보호할 것을 지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준사의 행방을 물었으나, 나머지 병사들은 그저 명나라쪽 배를 쳐다볼 뿐이었다. 끝까지 배에 남아 싸우던 준사는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달려들지만 시마즈가 공격을 흘리고 역으로 준사의 왼팔을 베어내 주저앉는다. 시마즈는 준사에게 '네놈은 조선인이냐, 열도인이냐'[44]고 묻는다. 준사는 대답하지 않다가 배의 대들보가 무너지는 틈을 타 다시 달려들지만 호위로 있던 쵸주인의 칼에 배를 관통당한다. 마지막을 직감한 준사는 "7년간 이어온 의를 위한 싸움[45]을 하면서,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일본어로 말한다.[46] 이에 시마즈는 준사의 목 앞부분을 베어 치명상을 입히고, 준사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배 밖으로 투신하여 최후를 맞는다.[47]

준사의 전사에 분노하듯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돌진해오자, 쵸주인 모리아츠는 퇴각을 제안한다. 하지만 시마즈는 이순신을 잡아야 이 전쟁이 끝난다라며 이순신쪽으로 돌진할 것을 명한다. 배를 돌리라는 말에 당연히 퇴각하는 줄 알고 있다가 이순신에게 돌격한다는 시마즈의 말을 듣고 쵸주인은 입을 쩍 벌린다. 하남자 쵸주인 양측의 함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이후 조선 수군, 시마즈 군, 명나라 수군 함대가 완전히 뒤엉킨 가운데 3군 사이의 백병전이 계속된다.[48] 그 사이에 밤이 새고 아침이 밝아오는데 자신에게 달려오는 일본군 병사를 베어버린 이순신은 일출과 함께 대장선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을 바라보며 정운, 어영담, 이억기, 그리고 죽은 아들인 이면이 함께 싸우고 있는 허상을 보게 된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북채를 잡아들고 직접 북을 크게 치면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기 시작한다.[49] 이를 본 송희립은 급히 이순신을 호위한다.
진린: ''노야가 아니냐?''
입부: ''장군께서 우리를 독려하고 계신다.''
이순신의 북소리와 함께 힘을 얻은 조명연합수군은 시마즈 군에 대해 점점 우세를 점한다.
입부: ''힘을 내자! 우린 이길 수 있다!''

그 와중 폐허가 된 채 표류하던 일본군의 배에 살아남아 있던 일본군 병사 한 명이 북을 치는 이순신을 향해 조총을 겨냥하지만, 그 병사는 이를 발견한 이회가 쏜 화살을 맞아서 쏘기 직전에 사망하고, 이순신은 아군의 방패 뒤로 쓰러진다.[50] 다행히 총알은 북채에 맞아서 이순신은 무사했고, 그는 송희립에게 계속 진격할 것을 명한다. 이에 희립은 "장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며 이번만큼은 명을 받들지 못하겠다고 거부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대로 적들을 살려보내서는 올바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 반드시, 놈들을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서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어야 한다."
이순신의 결연한 의지에 결국 그의 명령을 따른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새로운 북채를 가져올 것을 명하여 계속하여 북을 치고 시마즈 군의 패색은 더욱 짙어진다. 이때 북소리를 들은 진린은 그의 부하들에게 "적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리자!" 라고 중국어로 외치고, 조선의 장군들 또한 "장군께서 우리를 독려하고 계신다. 우린 승리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전의를 불태운다.

시마즈와의 협공을 위해 진군해오던 고니시는 날이 밝을 무렵 전선 근처까지 오게 되는데, 전쟁터에 떠다니는 배들의 잔해들 중에서 혀가 잘리고 재갈이 묶인 채 세키부네에 묶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리마의 시체를 발견하고, 분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않고 잔해들 너머로 계속 전진한다.

백병전이 한창인 전장에서 이순신을 호위하던 방패들이 잠시 사라진 사이, 갑자기 총소리가 한 번 더 울리더니 이순신의 북소리가 끊긴다. 그러자 싸우고 있던 조선 수군 지휘관들과 진린 등이 왜 북소리가 들리지 않냐면서 의아해하고, 다들 대장선 쪽을 바라보는 빠진 찰나 다시 그쪽에서 이순신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일어서며 북을 치기 시작한다.[51]
진린: ''적들을 마저 쓸어버리자!''
입부: ''돌격하라!''
류형: ''모두 돌격하라!''
이에 다들 더욱 힘을 얻고는 싸움을 이어서 하였고, 조명연합수군은 승리에 더욱 다가간다.

북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시마즈 요시히로는 끝이 없다면서 그동안 유지하던 평정심을 잃고 패닉에 빠지기 시작하고, 쵸주인은 주군인 시마즈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마지못해 퇴각을 외친다. 시마즈는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식의 말만 계속 반복하면서 포격을 맞으며 부서져가는 대장선 안의 방으로 쓰러지듯 들어가 귀를 막으며 쓰러진다. 방으로 들어간 시마즈는 가벼운 구토까지 하며 누가 저 북소리 좀 멈춰보라고 말하면서 패배의 충격으로 괴로워한다.[52]시마즈가 있는 곳으로 계속 다가오던 고니시는 셀 수도 없는 배의 잔해들과 계속 울리는 북소리를 들으며 이미 시마즈 군이 개발살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결국 시마즈를 돕지 않고 그대로 철수 명령을 내린다. 부하들은 "하지만 시마즈는..."이라 말하지만 곧바로 다른 배들에 명령을 전하며 고니시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를 돌려 도망친다.[53]

6. 노량에 떨어진 별

''노야, 우리가 승리했소.''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기쁨을 나누러 진린은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넘어오고, 북을 치고 있던 사람에게로 다가간다. 그런데, 북을 계속 치던 그는 이순신이 아니라 함께 싸우던 그의 장남 이회였다. 게다가 대장선은 병사들이 승리에 기쁜 게 아닌, 모두 지휘대를 향해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진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방패로 둘러싸인 지휘대 안에서 침울하게 나오는 송희립을 지나 다급히 노야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서고, 전사한 이순신을 보며 절규한다. 이후 판옥선들이 대장선 주위로 몰려드는 모습이 나오며 화면은 암전된다.

그렇게 7년 간의 잔인한 전쟁이 끝나고 이순신의 장례식이 열린다. 수많은 백성들이 장례 행렬 주위에 늘어서서 통곡하고, 아이들은 길가에서 즐겁게 뛰어놀다가 장례 행렬을 지켜본다.[54] 이후 비화가 밝혀지는데, 이순신은 이전에 북소리가 갑자기 끊겼을 때 조총에 왼쪽 겨드랑이 부분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고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어 이순신은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서는..."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55]

7. 에필로그: 대장별이 된 충무공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 해전이 끝나고, 세자 광해군은 수도 한양에서 순천으로 내려와 고니시가 농성했던 순천성에 입성한다.

광해군은 송희립으로부터 이대로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이순신의 유언을 전해듣고 이에 동의한다. 이후 조선 육군의 명장 권율로부터 순천성을 완전히 접수했다는 보고를 받고, 드디어 왜란이 끝났다는 권율에게 "이것은 왜인들의 난이 아닌 참혹한 전쟁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때 하늘 위에서 대장별이 빛나고, 광해는 별을 아는 자들은 저 별이 없었다면 조선의 명운은 끝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낮에도 어찌 저리 밝게 빛나냐는 권율의 물음에, 광해는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남았거나, 행하지 못한 일이 남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느냐."고 답한다.[56]

이후 빛나는 대장별을 비추며, 충무공 이순신의 장대한 이야기는 완전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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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작인 한산과 마찬가지로 롯데엔터테인먼트 인트로가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나온다.[2]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다소 닮았다.[3] 향후 일본에서 벌어질 세키가하라 전투오사카 전투를 암시할 수 있다.[4] 본편의 숨겨진 명장면으로, 짧은 분량에도 히데요시의 최후와 이에야스의 야심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연기도 뛰어나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관객들도 장차 일본의 미래 전개를 가늠할 수 있도록 그려졌지만, 본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이상은 묘사되지 않는다.[5] 유정은 고니시에게 뇌물을 받고 전쟁을 회피하고 있었다.[6] 고니시 가문은 아무 기반이 없던 히데요시가 도요토미 정권의 번영을 위해 키운 신흥세력 중 하나로 명백한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이었다. 그래서 친도요토미파인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이에야스가 일부러 사실 전달이 늦게 되게끔 손을 쓴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일본으로 귀환한 고니시는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에 합류한다.[7] 3부작 내내 활약한 우치카타나[57]가 아니라, 그보다 이전 시대의 형식인 타치다. 검집에 패용 고리가 있어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8] 이런 호통에도 아리마는 버티고 서있다가 부도독 등자룡이 재차 꾸짖은 뒤에야 썩은 표정을 지으며 나간다.[9] 이 연락선을 정찰선에 타고 있던 준사가 발견한다.[10] 하지만 진린은 이를 이순신에게 곧바로 알리진 않았다.[11] 그러면서도 선조의 노력(?)으로 명이 조선에 파병을 했기에 승리한 것이라며 아첨하기까지 한다.[12] 정유재란 때 파괴된 진영을 재건 중인 모습이 보인다.[13] 미공개 신에 의하면 판옥선 일부를 거북선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이곳에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운룡의 말에 의하면 급조한 탓에 이전의 구선만큼 튼튼하진 못하다고.[14] 이 시점에서 진린의 전투에 대한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한다. 육지에서 유정이 고니시에게 뇌물을 받고 '다 끝난 전쟁'이라 더 이상의 피해를 내지 않고자 움직이지 않은 데다가, 아리마도 진린을 설득하면서 '다 끝난 전쟁'이라며 지금 돌아가는 이치를 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꺾여버린 것으로 추정된다.[15] 이억기가 타던 판옥선을 대장선으로 삼고 이순신이 원래 타던 판옥선을 선물한 것이다.[16] 등자룡도 이토록 싸우려는 이순신을 이해할 순 없지만, 진린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기꺼이 판옥선을 받는다.[17] 진린이 배 한 척 보내준게 뭐 그리 큰일이라며 비웃었지만, 그 뒤에서 이순신과 송희립이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던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18] 실제로 험한 길을 달려왔는지, 사천에 도착했을 때 아리마는 온 몸이 흙투성이였다.[19] 시마즈와 도요토미의 지난 악연을 생각해보면 진심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위협일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지난 3부작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인물관계성 고증오류, 혹은 무시거나. 어쨌든 시마즈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친도요토미 세력인 서군에 가담했던 건 사실이기에 그걸 반영한 것일수도 있다. 실제 시마즈 가문은 임진왜란 300여년 뒤에 사쓰마 번의 번주로서 무진전쟁 당시 도막의 깃발을 들고 도쿠가와 막부의 숨통을 끊기도 했으니.[20] 어르신[21] 이 장면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이충무공행록에 나온 그대로이나, 실제 역사에서 진린이 정말로 이랬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22] 이때 진린 본인도 이순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다 휘청이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일어서며 팔을 뻗었었다.[23] 전쟁을 계속 하려는 이유가 아들 때문이냐고 들먹이긴 했지만,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순신을 지켜봤기에 마음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들 때문에 전쟁을 계속 하려는거냐며 이순신을 질책할 때에도 이순신이 그 말을 듣고 뒤돌아봐 노려보자, 자신도 순간 못할 말을 했다 생각하여 당황했는지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4] 편지를 화톳불에 태운 이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라 혹여 들킨다면 류성룡의 입지에 타격이 갈 수 있는지라 이를 막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순신 자체가 정치싸움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25] 이순신이 왜군을 유인할 장소를 보고 등자룡이 놀라워 하는데, 이는 복선이었다.[26] 여담이지만 전사자 명단에 적힌 한자 이름을 보면 이순신이 손으로 잡고 있는 부분 옆에 이억기, 어영담, 정운과 함께 이순신 3부작에는 등장하지 않은 황세득의 이름도 있다.[27] 이쯤부터 시작되는 전투신부터 전작의 한산에서 그러했듯이 전투 중 잘 들리지 않는 대사 소리를 우려하여 한국어 대사에도 자막이 달린다.[28] 더 이상의 희생을 피하고 싶어하는 진린은 아리마(혹은 고니시)와의 약속을 통해 일본군은 절대 명나라 수군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일종의 무력 시위만 할 것이라는 말을 믿고 이순신에게 일단 자신들은 전장에서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해두었다. 명 수군이 근처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적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29] 처음에는 협선을 내보내 정찰을 하더니 적의 선미가 보이자 하늘을 향해 불화살을 날려 신호를 하고, 앞의 수평선을 가득 메울 만큼의 포화가 보이더니, 이어서 잠깐의 포성이 들리자 무수히 많은 포탄이 밤하늘을 가르며 함선으로 날아든다. 야간전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었을 하이라이트 중 하나.[30] 불타는 아군 배를 빨리 바다로 수장시키지 않으면 시미즈의 본대까지 불이 옮겨붙기 때문. 이때 오니처럼 싸울 것이라고 큰소리쳐 놓고서는 시마즈의 아군마저 버리는 과감한 결단에 입을 쩍 벌리는 쵸주인의 모습이 백미.[31] 거북선의 주요 전술로 당파라고 한다. 적진 한가운데를 헤집으며 진형을 파괴하고 정예함선을 격파하는 것이다. 십자화포 맞기 딱 좋은 상당히 무모한 전술이지만 일본군에게 중화포가 없어서 유효했던 전술이다. 허나 해당 영화에서는 칠천량 때 중화포, 그것도 가장 위력이 강했던 천자총통을 노획당했다는 것이 문제였다.[32] 지붕과 용머리를 임시로 판옥선에 덧대서 급조한 거북선이어서 3층 구조이고 기동력과 방어력이 약했던 것이다. 물론 진짜 거북선이 왔더라도 천자총통을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33] 조선군 장수들이 당황한 것을 보면 시마즈의 대장선에 돌진한 것은 거북선 함선 인원들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34] 다름아닌 등자룡이 아리마를 추격하다가 낚인 곳이다. 초반에 등장했던 처박힌 세키부네의 잔해가 재등장한다.[35] 명군의 병사를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이때 진린은 이순신의 명령을 전달하러 가는 송희립을 부하들로 막았을 정도로 진심으로 이순신을 말렸다.[36] 1592년[37] 1598년[38] 관음포 입구를 가리키며[39] 군법에서 탈영은 곧 죽음인데, 이를 자비롭게 용서해 주고 되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그들을 복돋는 시마즈의 모습으로 덕장의 모습을 부각한다. 실제로 시마즈의 퇴각 같은 전법은 부하들의 신망이 아주 높은 다이묘들만 쓸 수 있는 전법이다.[40] 실제 역사에서 이런 기동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한 허리끊기 전략은 원래 시마즈 가문이 다스리는 사츠마 군의 주력 전략이었다. 역사를 알고 나서 보면 자신들의 주 전략에 자신들이 당하는 시마즈 군의 모습을 보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41] 아마 이순신은 진린에게 앞에서 적당히 거리만 유지하며 막아주면 자신이 허리를 끊고 섬멸하겠다고 부탁한 듯하다.[42] 동시에 진린을 향해 전사한 부도독 등자룡의 목을 던지고, 이에 명군은 크게 동요한다.[43] 이순신이 진린을 구하려 배를 돌리려 하나 적선과 한데 뒤엉켜 거동이 곤란하자 준사가 협선으로 가겠다고 자청하고, 이순신은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고 말한다.[44] 첫 번째 작품인 명량에서도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똑같이 준사에게 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45] 전작인 한산에서 준사가 이순신에게 투항하면서 대체 이 전쟁은 무엇이냐고 묻고, 이에 이순신이 "불의의 싸움이지"라고 말한 것과 이어진다.[46] 시마즈의 이 질문은 명량에서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마지막에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준사에게 달려들며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47] 시마즈의 수급이 되지 않게 하고 자신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배 밖으로 투신한 것이다.[48] 이 부분에서 묘사가 1인칭에 가까운데, 병사 한 명의 동선에 초점을 맞춰 명나라 군사가 고함을 지르며 돌격해 열심히 싸우다가 왜군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그걸 한 조선군이 구해주고 그 직후 명나라 군사가 조총에 맞고 전사하면 방금 그를 도운 조선군이 돌격하는 장면이 나온 뒤 그 조선군도 조총에 죽고, 그 뒤 그를 쏜 일본군 병사의 시점으로 이어 전개되어 그 일본 병사가 이순신을 죽이려다 칼에 베여 쓰러지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특이하게 묘사했다.[49] 배우 김윤석은 인터뷰에서 아비규환이 된 전장에서 장군님이 아군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무전기가 없고 북소리와 깃발이 신호이던 시절이라 북은 곧 진격의 소리다. 그러니 북으로 아군들을 독려하는 것은 장군으로서는 가장 논리적이고 정확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정말 연습을 많이 했던 장면이라고 한다. 북 치는 게 생각보다 자세가 잘 안 나와, 연습하지 않으면 북에 자기 몸이 막 휘청휘청 끌려간다고. 북채가 참나무 재질 같은데 워낙 단단해서 그걸 들고 힘을 다해 치다 보니 어깨, 갈비뼈에 담이 오더라고 한다. 북소리가 그냥 그대로 가슴을 때리는데, 사운드를 입혀 완성된 영화를 보니 스크린에서 북소리가 가슴을 향해 그대로 그냥 직진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래서 영화 보고 관계자들끼리 '관객들이 나오는 길에 옆에 북을 하나 두자. 한 번씩 쳐 보실 수 있게.'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보고 나면 북을 쳐보고 싶어지니까. 아닌 게 아니라 촬영할 때도 휴식 시간이면 병사 역할을 한 엑스트라들이 와서 쳐보기도 했다고 한다(...)[50] 이 부분의 묘사가 마치 이순신이 죽을 때의 상황을 연상케 해 이미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결말을 아는 사람들이라도 긴장감 있게 보게 된다.[51] 이때 배 한 편에서 장수들과 병사들이 쓰러진 누군가를 살피고 있다.[52] 조금 전 시마즈가 저 마귀들을 물리치고 가야 한다며 군사들을 독려한 것과, 시마즈 본인이 명나라군 사이에서 "귀신" 시마즈라고 불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의미심장하게 볼 수도 있는 장면이다.[53] 영화상에서는 고니시가 자신의 심복인 아리마를 시마즈가 죽인 것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시마즈의 마지막 행적이 표현이 안되었는데 시마즈는 함대 대부분을 손실하고 굴욕적으로 일본으로 도망갔다.[54] 이 장면에 대해 돈도 많이 들고(...) 굳이 없어도 자막으로 처리해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거의 300명이 동원되었고 온종일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찍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3부작을 마무리하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이 이순신 장군을 온전하게 보내드리는 의미로서의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 그 장면에서 생각지 못한 어떤 깊은 여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장면을 넣으면서 생각지 못한 효과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찍어 놓고 그게 다른 장면과 잘 안 붙어서 큰일이다 했는데, 장례식과 함께 가니까 무리 없이 붙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55] 감독은 이 장면을 전투가 끝난 후에야 보여준 것에 대해, 사실 전사 장면 자체를 안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괜히 찍어서 득 될 게 없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장면이라 일단 새롭지 않고, ‘저 장면을 저렇게 찍는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실망감을 드릴 수도 있으니 안 찍고 가는 게 더 신선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러다가 꼭 찍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영화를 내가 찍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리고 장군님의 한마디가 더 있었다면 아마 그 말이었을 거라는 확신에 찬 판단이 생겼다고 한다. 어떻게든 그 말을 하시면서 돌아가시는 장면이 필요하다. 그게 이순신 장군의 진정성이고 내가 이 <노량>을 만드는 의미이기도 하다 싶었다고. 다만 그 장면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는 그건 또 다른 문제여서 죽는 바로 그 타이밍에 배치는 하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가 같이 응원하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음을 상징하는 식으로 해서 죽음의 그 시점은 우리가 피해 가자, 그리고 이제 그다음 어떤 타이밍에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장면을 꼭 넣자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김한민 감독, “<명량> 때 불가능했던 것들, <노량>에서 모두 가능해졌다.”[56] 이 부분은 기록에서 모티브를 딴 장면이다. 진린이 떨어지는 대장별을 보고 ‘저 별이 떨어지다니, 저 별은 당신을 의미하는데 당신이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제갈공명의 비법이라도 빌어서 하늘에 기도를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했을 때 이순신은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하늘에 그냥 달린 거지, 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군의 생사관이 드러나는 지점. 또 선조실록을 보면 1604년에 초신성 폭발을 관측한 기록이 130여회 남아있다.(이 초신성이 "케플러의 초신성"이다.) 하늘에 크게 뭔가 배열이 빛나는 것처럼 큰 빛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런 부분을 이순신 장군과 그 별을 한번 연관지어서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별빛이 낮에도 환하게 비침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 주고 유지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이순신 장군의 유지나 대의를 후대 관객들이 느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걸 당시 어떤 위정자들, 그중에 아주 핵심이라고 하는 광해가 한번 되새기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