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8:50:21

닉슨 쇼크

닉슨쇼크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81018><tablebgcolor=#e81018> 파일:닉슨-투명.svg리처드 닉슨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e81018> 선거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정치인 헨리 키신저 · 스피로 애그뉴 · 제럴드 포드존 코널리 · 멜빈 레어드 · 제임스 R. 슐레진저 · 조지 W. 롬니 · 헨리 M. 잭슨 · 존 F. 케네디 · 휴버트 험프리 · 조지 맥거번 · 아치볼드 콕스 · 존 시리카 · 마오쩌둥
발언 닉슨 독트린 · 닉슨 쇼크
사건사고 데탕트, 라인배커 작전, 욤 키푸르 전쟁, 1973년 칠레 쿠데타, 전략무기제한협정, 워터게이트 사건, 피닉스 프로그램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


1. 개요2. 배경3. 결과

1. 개요

Nixon shock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시행한 세계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일련의 경제 정책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 태환 제도를 폐지한 사건을 의미한다.

당시 미국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무역 적자를 포함한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경제의 근본과도 같았던 금본위제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화폐제도는 달러를 금과 연동하고[1] 나머지 화폐를 달러와 연동해서, 세계 화폐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금과 연동시켜 놓았다. 이렇게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금 본위 제도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하는데,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금 그 자체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화폐 발행이 늘어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즉, 닉슨 쇼크는 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끝내고 현대의 금융체제로 넘어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초강대국이 되었고 그에 따라 브레튼우즈 협약을 승전국들과 맺었는데 그 내용은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가 될 것이며 35달러가 금 1온스와 동급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합의했다. 이 말이 무엇인고 하니 미국이 금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2]

그러나 1960년대 린든 B. 존슨 행정부는 위대한 사회 계획으로 인한 복지지출 증액, 소련과의 냉전을 위한 군비확충, 베트남 전쟁 전비 조달을 위해 보유한 금 따윈 신경쓰지 않고 마구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3] 그러자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단단히 열받았고[4] 미국 은행들에게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1. 1971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35달러당 금 1온스를 교환해 주는 금 본위제를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금이 늘어나지 않으면 달러 자체는 늘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전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3. 금은 늘어나지 않는데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것을 보는 프랑스 등 몇몇 나라는 정말 미국에 달러를 바꿔줄 만한 금이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4. 미국 달러를 돌려줄 테니 약속한 대로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다.[5]
5.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금과 달러 교환을 못 해 주겠다고 선언하며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종식된다.
6. 닉슨 쇼크 이후 금 1온스의 가치는 35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올라가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미국 달러의 가치가 순식간에 1/30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3. 결과

1971년 8월 13일 닉슨 미국 대통령은 16명의 관료들과 비밀리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였고 8월 15일 특보를 통해 이제 미국이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일어난 일이라서 세계경제도 이로 인해 혼란을 겪었다. 하루아침에 금과 달러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림으로써 그간 금 교환권이라고 믿어 온 달러와 그 달러에 연동되어 있었던 전 세계 화폐 모두를 종잇조각으로 전락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모든 수입품의 관세를 10% 올리는 보호무역을 단행하고 국내적으로는 90일간 물가와 임금을 동결시켰으며 대외적으로는 달러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목표 금값을 온스당 35달러에서 38달러로 변경했다.

전세계의 물가원유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이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하락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도 당연히 영향을 받았는데 1971년 3분기 11.3%였던 경제성장률이 같은 해 4분기에는 6%, 1972년 1분기 5.3%까지 하락하는 등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전해진다.

현대 금융시스템의 인플레이션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는 금의 채산량 증가에 따라 연동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그러한 식의 제한이 사라져 신용창출에 기반한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 1온스당 35달러의 고정 환율이었다.[2] 당시 미국은 전세계 금의 70%를 가지고 있었다.[3] 당연히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4] 왜냐하면 달러를 마구 찍으면 그만큼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인데 자칫했으면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고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안전자산으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던 각국들도 상당히 큰 손실을 보게 된다.[5] 당시 프랑스 드골 정권에서 실제로 시행했던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