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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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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3. 군부4. 경제5. 외교6. 방송7. 의료8. 교통9. 교육10. 인터넷11. 민간12. 문화예술13.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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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석열 정부비상계엄을 선포함에 따른 국내/외의 영향이다.

2. 정치

3. 군부

4. 경제

5. 외교

6. 방송

파일:Resized_20241203_225323_1733234118146.jpg파일:Resized_20241203_225328_173323411847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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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료

8. 교통

9. 교육

10. 인터넷

접속량 폭증으로 인해 각종 포털 및 커뮤니티 사이트의 접속이 느려졌으며, 계엄 사태에 불똥이 튀는 소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들은 뉴스 댓글창을 막았다.

11. 민간

12. 문화예술

13. 스포츠



[1] 직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은 당대표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명태균 게이트와 김건희 여사 등의 문제로 보수 진영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결정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큰 불법적 행위를 저지름에 따라,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주목이 완전히 묻히게 되었다.[2] 설상가상으로 사건 이후 국민의힘이 군사쿠데타를 결사옹위하며 실질적 위헌정당, 내란동조정당으로 전락하였고 이에 따라 차기 대통령 집권 이후 정당해산심판을 당할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하며, 87년 체제 내내 이어진 민자당계 보수정당 / 민주당계의 양당제 역시 일본 자민당 스타일로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올 정도다.[3]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4] 12월 7일 있었던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 결정이 났지만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 될때까지 발의를 계속하겠다는 경고를 날린 상태다.[5] 계엄령 선포 직후, 곧바로 코스피의 야간선물옵션이 급락하였다.[6] 빠르게 해제 되었음에도 이런 결과를 냈으므로, 만약 계엄령 해제가 되지 않았다면 증시의 낙폭은 이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7] 풍자성 기사로는 S&P 사무실 컴퓨터 고치러 오는 시간보다 더 빨리 계엄이 끝난걸 이유로 보고있다.[8] GM은 미국 기업이지만 한국에 소형차 연구개발 및 생산기지를 두고 있으며, 2002년부터 지금까지 9조 원 이상의 금액을 한국사업장에 투자해왔고, 100조 원 이상의 부품을 국내 업체에게서 사갔기에 거대 외투 기업에 속한다. 구체적으론 3개의 공장(부평, 창원, 보령)을 운영 중이고,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뷰익 엔비스타/뷰익 앙코르 GX 등 4개 차종을 연 50만대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9] 댓글 반응들 중에서도 "이 차량이 미국에서 제작되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라며 "이제 한국 말고 미국에서 미국 차를 만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10] 이는 한국사업장의 수익 구조에 따른 영향도 크다.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을 통해 확보되는데, 불안정이 장기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11] 한국은 1997년 IMF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나라다.[12] 사족으로 전두환 집권기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정확히는 세계 평균보다도 가난한 신흥공업국)이었다.[13]베냐민 네타냐후마저 이스라엘 사법개혁 반대 시위에서 계엄령을 선포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시위는 삼권분립 무력화 법안으로 시작되었으나 삼권분립 하의 대법원의 무효 판결로 종결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도 민간인 지지자들에게 국회의사당 습격을 선동하긴 했어도 계엄령을 발동한 후 군을 투입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지는 않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도 대선 패배 후 친위 쿠데타 계획을 짜긴 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14] OECD 국가까지 범위를 넓히면 튀르키예에서도 여러 번 쿠데타가 일어난 바가 있으며, 포르투갈도 선진국 진입 전이던 1974년 카네이션 혁명 과정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단순 계획이나 시도만 보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모두 냉전 시기와 그 이후에도 여러번 있었다.[15] 세계 각국 정부가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외교적 수사를 고려하면 사실상 전세계가 윤석열 정부의 명분없는 계엄령 선포에 가장 강한 어조로 규탄한 것이다.[16] 그나마 계엄령이 국회의 의결을 통해 신속하고 평화롭게 종료되면서 오히려 한국의 발달한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보여주게 되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주한 미국 대사관에선 "계엄령 해제 후에도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어서 미국인은 각종 지장이 초래될 가능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만큼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것만큼은 국제 사회에서 확실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17] 어찌 보면 현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생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18] 시사기획 창 방영 중 특보 방영하고 끝까지 이어 방송하려다 다시 중단 후 특집 뉴스라인 W 방영.[19] PD수첩 방송 중단 후 특보 방송.[20] 수시로 정규 방송을 중단한 후 특보 방송.[21] 2TV는 모퉁이를 돌면 방영 중 속보 방송.[22] 라디오본부 포함.[23] 문화공감, 경제로 통일로, 세월따라 노래따라, KBS 오디오북-최고의 클립, 소설극장. 건강 365[24] KBS 제1라디오 정시 뉴스, 오늘 아침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KBS 1라디오 오늘 세계는, 세상의 모든 정보, 뉴스 중계탑, 라디오 전국일주[25] 시선집중의 토요일과 일요일 녹음본은 방송 취소되고 생방송으로 대체되었다. 그와 더불어 토요일에는 김치형의 뉴스하이킥과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이 연이어 편성되었다.[26] 뉴스특보에서 뉴스특보로 이어지는 4분간의 공백기동안 잠시 전파를 탔다.[27] 23시 교계뉴스, 일부 시간대 노컷뉴스, 15시 수도권 뉴스, 말씀의 향기, 김은영의 축복송, 찬송의 향기, 정민아의 Amazing Grace(음악FM, JOY4U 쪽은 정상적으로 방송), 김윤주의 랄랄라, 유지수의 해피송, 이봉규의 어떤가요, 유영석의 팝콘, 이강민의 잡다한 지식사전, 라이키 팝.[28] 국제방송 및 미국 내 방송 모두[29] CNN과 JTBC는 제휴관계에 있기 때문에 CNN은 JTBC의 영상을, JTBC는 CNN의 영상을 사용할 수 있다. JTBC도 세계사회 뉴스나 북한 관련 보도 등에서 CNN의 영상을 이용하곤 했다.[30] 계엄 선포 3시간 후 계엄령 해제 안건이 여의도 국회에서 통과되기 한시간 정도 전에 일본에서는 한국이 준전시 계엄령 상황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보도했을 정도로 상당히 늦게 보도 하였다.[31] 단, 12월 4일 시점에서는 1TV에서 이미 특보를 편성하는 관계로 2TV에 편성된 스트레이트 뉴스는 일부 방송이 취소되었고 뉴스 중 월드24는 정상 방송되었고, 경제콘서트"트레킹노트 세상을 걷다 스페셜"로 대체 편성 되었다.[32] 대표적으로 생방송 오늘 저녁, 친절한 선주씨.[33] 쇼! 음악중심의 경우 방송 자체가 사전녹화 방송으로 변경되어 12월 14일에 방송되었고, 탐나는 TV의 경우 오전 5시로 앞당겨졌다.[34] MBC의 경우 원래는 일반 뉴스로 대체되는 MBC 뉴스투데이를 일요일에 특집으로 직접 편성했다.[35] 계엄 당일 현장 생방송이 실시간 시청자 수 64만명을 기록했으며, 일주일 새 구독자가 4만명이 증가했다.[36] 12월 4일 최고 동시시청자 103만명을 기록하면서 당일 유튜브 전체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37] 계엄 이후 동시접속자가 5배 이상 증가했고, 특히 탄핵 표결 전날인 12월 6일 하루에만 6천5백여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또한 일주일 새 구독자 수가 10만명 가량 증가하며 12월 8일에는 대한민국 뉴스 유튜브 채널 최초로 구독자 수 500만명을 돌파했다.[38] '처단'이라는 어휘가 법률상에 명시된 것도 아니고, 포고령에서도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처단한다는지도 명시되지 않았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의료관계자는 적대적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상검증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이러한 무책임한 어휘 선정에 대해 파장이 크다.[39] 대한중소병원협회, 국립대학병원협회 포함.[40] 파일:20241204_000317.png[41] 파일:20241204_000431.png[42] 파일:네이버 카페 긴급서버점검.jpg
안내에서는 정기점검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카페 앱에서 개별 카페 접속이 되지 않는 오류로 인해 긴급 점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43]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글쓰기, 댓글 작성 등 각종 카페 시스템은 점검 종료 시간을 넘긴 약 1시 20분부터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44] 정규 4집의 수록곡을 공연명으로 지은 것이다.[45] 마인크래프트하이픽셀 서버도 국내 이용자들이 잠깐 튕기는 현상이 발생하였다.[46] 다만 AGF의 경우 성우 와타세 유즈키의 내한이 취소되며 해당 행사에서의 무대 인사 역시 취소되었다.[47]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스포츠는 1982년에 출범한 KBO 리그다. KBO 리그의 출범 1년여 전인 1981년에 비상계엄이 해제됐는데, 이 비상계엄이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전의 마지막 계엄 사례였다.[48] 남자농구 DB-정관장, 여자농구 BNK-우리은행, 남자배구 우리카드-삼성화재,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정관장.[49] 실제로 과거 KBO 리그에서 뛰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로 불안에 떨었다는 발언을 한 선수가 있었다. 물론 그 선수는 KBO 리그에서 뛰던 당시 실력, 워크에식 모두 엉망이었기에 변명에 가까운 망언이기는 했다.[50] KBO스포츠조선이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KBO 리그 각 팀의 감독과 골프를 취미로 즐기는 주요 선수 등이 참석하는데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우승턱'의 성격으로 대회 비용을 후원하는 골프 대회다. 2024년 대회는 한국시리즈 우승팀 KIA 타이거즈가 후원 구단으로 나서기로 했다. 1980년대부터 유지된 전통의 행사다.[51] K리그는 신군부 5공 시절부터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리그 규정이 여러차례 변했고 민주화도 이뤄졌으니 굳이 계엄 관련 규정을 넣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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