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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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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Dubrovnik | Rag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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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전경
파일:external/planner.expoaus.org/Old-port.jpg파일:두브로브니크성벽투어.jpg
두브로브니크 항구 성벽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
<colbgcolor=#ff0000><colcolor=#fff> 국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주
면적 142.6㎢
인구수 41,562 (2021년 기준)
인구밀도 290/㎢
시간대 UTC+1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자연 환경3. 역사4. 경제5. 교통6. 옛 시가지7. 기타8. 미디어에서
8.1. 드라마8.2. 영화8.3. 게임
8.3.1. 대항해시대 시리즈8.3.2. 도미네이션즈
9. 둘러보기

[clearfix]
아드리아 해의 진주
- 조지 고든 바이런
지상 낙원을 찾는 사람은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 조지 버나드 쇼

1. 개요

파일:untitled.croatia.view.png

크로아티아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관광 도시. 행정구역상으로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 주(Dubrovnik-Neretva County)에 속한다. 2021년 인구는 41,562명.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시가지와 그곳을 둘러싼 성벽의 경관으로 유명하다.

남북으로 긴 형태의 크로아티아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최남단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물가가 가장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수도인 자그레브의 물가는 두브로브니크의 물가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반 이상 저렴하다. 두브로브니크는 관광도시인 탓에 물가가 비싼 편인데 두브로브니크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해안 소도시 차브타트(Cavtat)만 가도 물가가 두브로브니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라구사(Ragusa)라고 불렸다. 라구사는 구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플라차 대로를 기준으로 바다 쪽을 이르던 말로, 원래 섬에 가까웠던 이곳에는 로마계 주민들이 거주했다. 슬라브계 주민들이 거주지를 형성한 육지 방면의 이름은 두브로브니크였다. 어원에서도 양측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라구사는 돌을 뜻하는 라틴어 Lausa에서, 두브로브니크는 떡갈나무를 뜻하는 크로아티아어 Dubrava에서 왔다. 1차 대전 이후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외래어의 영향을 받은 지명인 라구사 대신 크로아티아어에서 나온 두브로브니크를 택했다.

참고로 이탈리아시칠리아에도 철자가 똑같은 라구사라는 지역이 있는데, 여기는 이름만 같을 뿐 현 두브로브니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이다.

2. 자연 환경

아드리아 해를 따라 펼쳐진 좁고 긴 해안선에 위치한다. 육지 쪽으로는 산지가 계속되며, 해발 412m의 스르지(Srđ) 산[1]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앞바다에는 로크룸 섬이, 북서쪽에는 엘라피티 군도가 있다. 이 일대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 전 계절에 걸쳐 따뜻한 날씨를 보이며 맑은 날이 연중 240일 이상이다. 강수량은 여름에 적고 겨울에 많다.

알프스-히말라야 지진대가 지나가는 곳으로 지진이 잦다. 지진 피해를 입은 기록이 숱하게 남아 있으며, 1667년에는 규모 10으로 추정되는 기록적인 대지진으로 도시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1979년 몬테네그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진도 7의 피해를 받아 1,071곳의 건물이 손상되었는데, 이 중 대부분은 문화재에 해당했다. 1995년과 1996년에도 지진이 발생했다. 1996년 도시 북서쪽 20km 지점에서 규모 6의 지진이 발생, 두브로브니크로 통하는 도로가 차단되었다.

3. 역사

7세기 후반 라구사를 건설한 사람들은 아바르슬라브 등의 이민족들에게 약탈당한 도시를 뒤로 하고 새 거주지를 찾던 인근 로마 식민시 거주민들이었다. 이들은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요새를 건설했다. 시간이 지나 라구사인들은 좁은 해협 건너 스르지 산 기슭에 살던 슬라브계 크로아티아인과 차츰 동화되기 시작해, 나중에는 해협을 메워 대로를 건설한 뒤 성벽도 그 너머로 확장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보호를 받던 866년에는 한창 세력을 뻗치던 아글라브 왕조의 포위공격을 받았다. 15개월 동안 공격을 버티던 라구사는 황제 바실리오스 1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바실리오스 1세는 선단을 보내 라구사를 구원했다.

라구사는 동로마 제국에 이어 베네치아 공화국헝가리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지만 여전히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다. 도시는 일찍이 중요한 무역 거점으로 성장하여 라구사의 상인들은 이탈리아와 발칸은 물론 영국까지 돌아다니며 상업 행위를 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에도 라구사 출신 선원이 끼어 있었다. 1358년 자다르 협약 이후 시작된 헝가리 지배 당시 라구사는 금전을 바치는 대신 상당한 자치권을 위임받아 공화국 체제로 전환했다. 도시의 책임자는 렉터(rector)[2]라고 불렸다. 상인 공화국 라구사의 부는 날로 늘어나 15세기에는 국고에 7백만 두카트를 보유할 정도였다. 전성기의 라구사는 4만 인구에 3백 척이 넘는 선단을 보유한 부유한 도시였다.

라구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이념을 가진 도시로도 유명했다. 비슷한 시기 유대인을 추방한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라구사는 쫓겨온 유대인들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1389년 오스만 베이국과 기독교 연합군이 격돌한 1차 코소보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친 세르비아 왕족도 받아들인 적이 있다. 여기에 분노한 오스만에 대한 라구사의 반응은 당신네가 도망쳤어도 받아 줬어. 라구사는 이러한 이념과 충분한 재원을 바탕으로 각종 사회 제도를 정비했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보건, 교육, 요양 부문에서 공공 서비스를 제공했다. 건축에도 많은 예산을 투자해 성벽을 보강하고 도로와 급수 시설 등을 정비했다. 필레 게이트 바로 안에 있는 오노포리오 급수대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파일:external/www.essaysx.com/Potres-u-Dubrovniku-1667_clip_image006.jpg
1667년의 지진을 묘사한 그림

시간이 흐르면서 정세는 라구사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의 힘을 압도하면서 라구사는 더욱 오스만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라구사는 스페인아르마다 함대에 선박을 보내기도 했는데, 아르마다가 잉글랜드 해군에게 무참히 깨지면서 라구사와 잉글랜드와의 관계도 악화되어 무역에 지장을 받기 시작했다. 지중해 대신 대서양 항로가 주목받으면서 라구사는 무역의 중심에서 밀려났다.[3] 라구사의 쇠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667년의 대지진이었다. 4월 7일 오전 8시경 발생한 지진지진해일로 도시와 선단이 파괴된 것은 물론이고 공화국의 최고위층을 포함한 수천 명의 시민이 희생당했다. 살아남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도시는 복구되었지만 라구사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는 재현하지 못했다. 지금의 도시는 당시 행해진 대대적인 복원 계획의 산물이다.

19세기 발칸을 둘러싼 강국들의 쟁탈전은 라구사 공화국 멸망의 신호탄이었다. 라구사는 러시아 제국몬테네그로 주교후국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1806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를 받아들였다. 한번 들어온 나폴레옹 군대는 이 땅을 떠나지 않았고, 1808년 나폴레옹은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시켰다. 나폴레옹 휘하 지휘관 오귀스트 마르몽은 라구사 공작에 봉해졌다. 도시는 이후 프랑스 제1제국 일리리아 주(Provinces illyriennes)의 일부가 되었다가 나폴레옹이 실각한 다음에는 빈 회의오스트리아 제국으로 넘어갔다. 20세기 초 두브로브니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인 크로아티아 독립국 치하에 있다가 전후 유고 연방의 구성국이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인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과 몬테네그로 영토방위군이 도시를 포위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고, 이 지역을 모두 차지해 세르비아인의 지배 아래 둘 계획이었다. 도시 근교를 약탈하고 세계유산에 포격을 퍼붓는 행위에 비판이 쏟아졌다. 유네스코는 두브로브니크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고, EEC는 유보적인 태도를 버리고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유고 측은 '세르비아인이 크로아티아 수용소[4]에서 죽어갈 때 국제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라며 무시해버렸다. 포위는 7개월 동안 이어졌지만 크로아티아군은 끝까지 도시를 지켰고, 유고 측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전 종식 후 공격 행위의 책임자들은 전범 재판에서 최대 7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세르비아의 대통령으로 이 사태의 최고책임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재판 도중이던 2006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 경제

두브로브니크를 먹여살리는 것은 단연 관광업이다. 2015년 두브로브니크를 찾은 관광객은 2백만 명에 육박했다. 국적별로는 영국, 미국, 독일 순. # 관광의 중심인 옛 시가지는 말 그대로 굴뚝 없는 공장인 셈이다. 두브로브니크 주민들은 관광업을 제외하면 수산과 선박 정비 등 해양에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대학은 이러한 산업 인력 수요에 맞춰 수산, 요트와 마리나 기술, 선박 운용과 선박 공학, 문화재 복원 등의 학과 과정을 갖추고 있다.

5. 교통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는 필레 게이트 앞에서 출발한다. 버스 티켓은 사용 후 1시간 동안 유효하다. 시내 버스 노선 중에는 새벽까지 운행하는 것도 있다.

보스니아네움이 중간에 있어 크로아티아의 다른 영토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 보스니아를 우회하는 펠레샤츠 대교를 건설하여 네움을 거치지 않고도 크로아티아 본토로 향하는 육로가 생겼다. 그러나 대교 건설 이후에도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타고 와야 하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에, 아예 페리와 크루즈선을 이용해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5]

항공교통의 경우 근교의 두브로브니크 공항을 이용하면 된다. 공항에서 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구시가지 시내까지 25~30분 가량 걸린다. 공항버스 요금은 왕복 15유로, 편도 10유로이다. 공항에서는 크로아티아 항공이 오시예크, 스플리트, 자그레브로 가는 국내선을,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지로 가는 국제선을 운항하고 있으며, 봄~가을에는 외항사 및 이지젯, 위즈에어 등 다양한 저가 항공사가 유럽 전 지역을 오가는 항공편을 운용한다. 여기로 바로 오는 한국 항공사는 없으나,[6]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선 노선에 터키항공과 함께 공동운항을 시행 중이다.[7] 공항에서 옛 시가지의 입구인 필레 게이트까지는 버스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철도는 없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인 가벨라(Gabela)와 젤레니카(Zelenika)를 잇는 협궤 철도(독어 위키백과)의 지선이 두브로브니크까지 들어왔었지만,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계획 하에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몬테네그로 일대의 해안으로 바로 가는 철도가 완공되면서 운용 목적을 잃고 폐선되었다. 당시 철도 노반은 현재 자전거 일주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두브로브니크 신시가지 쪽 항구에서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남부 바리로 가는 페리편도 있으며, 이 페리편을 통해 자동차를 끌고 이탈리아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주간편밖에 없어 야간이동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야간편이 있는 스플리트로 넘어가는 걸 추천. 봄~가을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로마나 나폴리, 베네치아로 바로 가는 편이 가장 저렴하고 빠르지만, 수하물이 많은 여행객들에겐 선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6. 옛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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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및 유럽의 기타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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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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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
영어 Old City of Dubrovnik
프랑스어 Vieille ville de Dubrovnik
국가·위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8]
등재기준 (i)[9], (iii)[10], (iv)[11]
지정번호 95
파일:external/planner.expoaus.org/21-Dubrovnik-Rectors-Palace-aerial-view.jpg
옛 시가지 동쪽. 성 블라이세 성당(좌),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우).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는 1979년에 플리트비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유산의 영역은 성벽 안쪽 뿐만 아니라 성벽 바깥에 있는 로브리예나츠(Lovrijenac) 요새와 로크룸 섬 전체를 포괄한다. 1991년에는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위험에 처한 유산목록'에 올랐다가 복구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1998년에야 비로소 이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필레 게이트와 항구를 잇는 플라차 대로[12]가 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7. 기타

8. 미디어에서

8.1. 드라마

8.1.1. 왕좌의 게임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여러 시즌에 걸쳐 킹스 랜딩으로 등장했으며 콰스에 있는 언다잉의 집은 두브로브니크 성벽의 민체타 탑이 배경. 등장인물들이 자주 거닐던 성벽도 두브로브니크 성벽이다. 조프리 바라테온마저리 티렐의 결혼식,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알몸으로 거리를 걷는 장면 등 킹스 랜딩을 무대로 하는 중요한 야외 씬들이 촬영되었다. 시즌 2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시즌 6에서는 킹스 랜딩의 야외 씬이 적어 촬영도 줄어들었다. 도시 외곽의 몇몇 장소들도 활용되었는데, 오베린 마르텔거산의 결투는 인근의 옛 호텔 건물에서 촬영되었다. 도시 안에는 드라마 관련 상품을 파는 상점이 여러 곳 있고 드라마에 나온 장소를 둘러보는 투어까지 나와 있다.

8.2. 영화

8.2.1. 스타워즈 시리즈

파일:external/www.starwarsdubrovnik.com/swud2_6E8.jpg

* 스타워즈: 에피소드 8: 2016년 3월, 스타워즈: 에피소드 8이 구 시가지 곳곳에서 촬영되었다. 약 일주일간 몇몇 장소들은 문을 닫고 스타워즈의 컨셉에 맞게 조형물을 설치했다. 플라차 대로변에 늘어선 상점도 미래 느낌이 물씬 나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어떤 스타워즈 팬들은 이곳까지 찾아와서 위와 같은 코스프레를 시전하기도. #

8.3. 게임

8.3.1. 대항해시대 시리즈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라구사가 더 친숙할 것이다. 게임 상에서는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중요 항구인데, 보통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 술집이 없어 선원 보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8.3.2. 도미네이션즈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두브로브니크(도미네이션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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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둘러보기

파일:Travellers’ Choice 2022.svg
트립어드바이저 선정
세계의 뜨는 여행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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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의 뜨는 여행지
<colbgcolor=#FFFFFF><colcolor=#000> 1위 마요르카, 발레아레스 제도
2위 카이로, 이집트
3위 로도스, 도데카니스 제도
4위 툴룸, 멕시코
5위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6위 이비사, 발레아레스 제도
7위 나타우, 브라질
8위 아루샤, 탄자니아
9위 괴레메, 튀르키예
10위 산토리니, 키클라데스 제도
11위 파라티, 브라질
12위 아루바, 안틸레스 제도
13위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14위 플라야 델 카르멘, 멕시코
15위 하와이 섬, 하와이
16위 룩소르, 이집트
17위 도미니카 공화국
18위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19위 생마르탱/신트마르턴
20위 북 말레아톨, 몰디브
21위 잔지바르, 잔지바르 군도
22위 라 포르투나 데 산 카를로스, 코스타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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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 카가 있다.[2] 이탈리아어로는 rettore, 크로아티아어로는 knez.[3] 베네치아제노바 등의 도시도 이 과정에서 비슷하게 몰락했다.[4] 크로아티아 독립국 시절 수십 곳의 크로아티아 수용소에서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5] 스플리트 등지에서 성수기 주말에 온다면 고속도로보다는 배를 타고 오는 게 훨씬 더 빠르다.[6] 2022년 대한항공에서 계절편으로 인천국제공항 직항을 운영한 바 있다.[7] 참고로 이 이스탄불행 터키항공편은 두브로브니크 공항 유일의 상설 운행 외항사 노선이다. 나머지는 전부 계절편.[8] 1994년 등록확장[9]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10]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11]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2] 스트라둔(Stradun)이라고도 한다.[13] 왕좌의 게임 킹스 랜딩 촬영지 중 하나이다.[14] 이 문장은 이솝 우화에서 기원한 것으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