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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가요. 연합군과 추축군 양 진영의 장병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2]
이 곡의 가사는 1915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 징집되어 육군에서 복무한 한스 라이프가 썼다. 당시 보초를 서고 있던 한스는 짝사랑하던 간호사 마를렌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지만 마침 위병하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답례를 할 수가 없었으며 그는 마를렌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쓸쓸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막사로 돌아온 라이프는 침대에 누워서 여자친구인 릴리와 마를렌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다가,
그러던 중 1938년에 라이프의 시집에서 젊은 초병의 노래를 본 작곡가 노르베르트 슐체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 바로 릴리 마를렌이다.
2. 상세
원래 슐체는 이 곡을 얀 바에른이라는 테너 가수에게 주기로 했지만 얀은 곡이 단조롭다는 이유로 릴리 마를렌을 거절했고, 대신 나이트클럽에서 가수로 일하고 있었던 랄레 안데르센에게 건네진 뒤 엘렉트롤라 사에 의해 레코드로 출판되었다. 다만 레코드가 제작된 1939년은 2차 대전이 개전된 판이라 겨우 700장밖에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사장되나 했으나...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 당시 독일군이 베오그라드를 점령하고 베오그라드 라디오 방송국이 독일군 방송으로 전환되었고, 방송국의 음반 더미에서 릴리 마를렌을 찾았는데, 마침 음반들이 부족하던 판이라 릴리 마를렌을 자주 틀었다고 한다. 당시 전투 중이었던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송출되었고, 독일군에게 퍼진 것과 같은 전파를 수신하던 북아프리카의 영연방군 병사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게 된 것. 특히 독일령 체코에서 무시무시한 출력으로 송출되는 라디오전파는 유럽의 정중앙[3]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타고 전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퍼졌다.고향을 떠나서 이역만리의 전쟁터에 있던 군인들에겐 릴리 마를렌은 가족과 연인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었기 때문에 이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엔 전투가 중단되기도 했다. 전투가 벌어지던 도중 소강상태에서 릴리 마를렌이 들리자 더 큰 소리로 틀어달라고 말한 영연방 병사도 있었다. "Speak!! Louder!!"
하지만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이 곡의 가수 랄레 안데르센이 반나치주의자란 이유로[4] 이 곡을 금지곡으로 정했다. 하지만 얼마 안되어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릴리 마를렌을 방송하였고, 방송국에는 이 음악을 틀어달라는 군인들의 편지가 쇄도하자, 결국 괴벨스도 어쩔 수 없이 릴리 마를렌의 방송 금지 명령을 풀었다. 이후 릴리 마를렌은 매일 오후 9시 55분에 방송됐다. 이러한 인기 탓인지 당시 릴리 마를렌의 가사가 수록된 다양한 그림 엽서(본 페이지의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사진)가 발행되기도 했다.
이렇게 괴벨스조차 막을 수 없었던 릴리 마를렌은 훗날 40여 개의 언어로 변역되어 불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군인들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아서 포로로 잡힌 독일군이나 영국군이나 서로 이 노래를 불러댔는데, 발지 전투에서는 포로수용소에서 릴리 마를렌으로 서로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심지어 유고슬라비아에서 독일군에 맞서서 게릴라전을 지휘했던 티토마저도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하였고 특수부대의 원조로 유명한 영국의 SAS도 행진곡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군 저격수에게 공격당한 미군부대의 한 병사가 가지고 있던 트럼펫으로 이 노래를 연주해주자, 그 저격수는 노래를 듣고선 공격을 멈추었고 이후 눈물을 흘리며 항복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존재한다. 위 일화의 실제 주인공 인터뷰
물론 연합군의 윗선들은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 영국군 병사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특히 가사가 독일어로 되어있는 것이 그들은 못마땅했다. 어느 날 영국에 돌아온 제 8군의 몇몇 제대장병들이 어느 날 밤 악보출판업자인 J.J 필립스가 자주 드나드는 술집에서 "릴리 마를린"을 소리높여 노래했다고 한다. 필립스가 그들에게 경찰관이 보면 독일 스파이로 오인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영어로 된 노랫말을 써주시구려!" 한 병사가 소리쳤다.
필립스는 작사자인 토미 코너의 도움을 얻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나의 릴리"란 영어 노랫말이 나오게 되었다. 영어 노랫말에서는 안개와, 릴리에게 키스하려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은 빼버렸다. 새로운 릴리는 싸움터에 나간 애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가씨로 변했다. 영어로 된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히트했다. 이 노래의 악보는 6개월 만에 50만 장이나 팔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있는 병사의 두려움과 애인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어하는 열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에디트 피아프는 프랑스 군인들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었고,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미국의 제5군 장병들은 "릴리"를 노래하면서 피렌체로 입성했다.
릴리 마를렌이 작곡되었던 병영은 1차 대전 후 프로이센 경찰이 접수했으나 2차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 이후 동독 시절에는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의 이름을 딴 스포츠 스타디움이 병영 자리에 건설되었다. 1953년 동독 봉기 당시 시민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던 이 경기장은 통독 이후 헐렸으며 2019년부터는 그 자리에 독일 연방정보국의 거대한 청사가 들어서 있다.
3. 가사
절 | 독일어 | 한국어 번역 |
1 | Vor der Kaserne Vor dem großen Tor Stand eine Laterne Und steht sie noch davor So woll'n wir uns da wieder seh'n Bei der Laterne wollen wir steh'n Wie einst Lili Marleen. Wie einst Lili Marleen. | 병영 앞 대문 앞에 가로등이 서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고자 하네. 가로등 곁에 서 있고자 하네. 예전에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예전에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
2 | Unsere beide Schatten Sah'n wie einer aus Daß wir so lieb uns hatten Das sah man gleich daraus Und alle Leute soll'n es seh'n Wenn wir bei der Laterne steh'n Wie einst Lili Marleen. Wie einst Lili Marleen. | 우리 두 그림자는 하나처럼 보이네. 우리가 아주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곧장 보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볼 것이라네. 우리가 가로등 곁에 서 있다면. 예전의 릴리 마를렌처럼. 예전의 릴리 마를렌처럼. |
3 | Schon rief der Posten, Sie blasen Zapfenstreich Das kann drei Tage kosten Kam'rad, ich komm sogleich Da sagten wir auf Wiedersehen Wie gerne wollt ich mit dir geh'n Mit dir Lili Marleen. Mit dir Lili Marleen. | 이미 초병이 외쳤네, "귀영 나팔 소리가 들리는데 어기면 3일간 영창행이야!" "전우야, 나 금방 올게, 작별 인사를 할 테니까." 내가 얼마나 그녀와 함께 가고 싶었던가,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
4 | Deine Schritte kennt sie, Deinen zieren Gang Alle Abend brennt sie, Doch mich vergaß sie lang Und sollte mir ein Leids gescheh'n Wer wird bei der Laterne stehen Mit dir Lili Marleen? Mit dir Lili Marleen? | 가로등은 알고 있다네, 당신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저녁마다 가로등은 켜지지만 그녀는 나를 잊은 지 오래. 그리고 나에게 고통이 생긴다면 누가 가로등 곁에 서 있을 것인가,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
5 | Aus dem stillen Raume, Aus der Erde Grund Hebt mich wie im Traume Dein verliebter Mund Wenn sich die späten Nebel drehn Werd' ich bei der Laterne steh'n Mit dir Lili Marleen. Mit dir Lili Marleen. | 조용한 공간으로부터 , 대지의 땅 밖으로 꿈 속에서처럼 나를 꺼내올리는 사랑에 빠진 그대의 입술. 밤중에 안개가 소용돌이치면 나는 가로등 곁에 서 있을 것이라네.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그대 릴리 마를렌과 함께 |
4. 바리에이션
4.1. 독일어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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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전설적인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부른 버전. 당시 가수였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뒤, 이 곡을 불러 유명세를 타게 됐고, 2차대전 때 서유럽에서 싸우던 미군 병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에서 이 노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배우로 전직했다. 1960년에는 서독에 와서 공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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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크빈(Freddy Quinn) 가창 버전. 남자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릴리 마를렌 음원은 여자가 독창한 것이라서 남자가 독창한 음원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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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발라드인 곡을 스윙 밴드인 Swing Swindler가 연주한 버전. 리더인 Mart Sander(남자) 가 1절, 5절을 부른다.
4.2. 영어 버전
영상 링크랄레 안데르센이 1942년에 가창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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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레네 디트리히 가창(라이브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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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린(Vera Lynn) 가창. 베라 린은 잉글랜드의 올드 팝(traditional pop) 가수, 작곡가, 배우이다. 그녀는 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집트, 인도, 미얀마를 순회공연 다니며 군인들을 위문해 'The Forces' Sweetheart'라는 별명을 얻어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음반과 공연들은 2차세계대전 동안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전후에도 음반을 내면서 계속해서 인기를 얻었다.
4.2.1. 디데이 기피자들
릴리 마를렌의 음을 사용한 영국군 장병가요. 보수당 하원의원 애스터 자작부인 낸시 애스터[5]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을 "노르망디에서 결전이 벌어지는 동안 별로 안 중요한 이탈리아에서 놀고 먹는다"라는 의미의 "디데이 기피자"라고 비하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된 제8군 소속 해리 핀(Harry Pynn) 병장이 가사를 만들었다. 애스터 의원은 당연히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문제는 이 낸시 애스터란 작자가 그 악명높은 나치 동조자이자, 외국인 혐오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로, 나치 독일과 치고받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실상 영국 내부의 반역자나 다름없는 작자였단 점이다.[6] 이런 사람이 군인을 공공연히 비하했다는 소문은 엄청난 속도로 퍼져 큰 공분을 샀다. [7]
가사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최소 수천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영국 군인이 희생되었던 끔찍한 전투가 치러진 격전지들이다. 가사는 "그래, 우리는 이런 곳에서 아주 꿀이나 빨았지?"하고 비웃는 블랙 유머다. 그러다가 마지막 소절에서는 블랙 유머가 아닌 진짜 비참한 모습을 노래하는 것으로 비꼼에 쐐기를 박는다. 전장에 비참함이 없는 곳은 없음은 당연하고 이탈리아전선 역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서 그렇지 양측 합쳐 약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낸[8] 굉장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전선이었다. 몬테카시노 전투와 안치오 전투를 치른 독일의 팔쉬름예거와 헤르만 괴링 기갑공수사단등 최정예 사단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서부전선이나 동부전선과 달리 히틀러의 간섭이 덜한 편도 있어 독일군은 안정적으로 참호를 파고 연합군을 저지할 수 있었다. 이러니 전장에 한 번도 와 본 적도 없고 나치 옹호 발언만 쏟아내는 낸시 에스터에 대해 병사들의 반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병사들 사이에서 퍼진 구전가요라 여러 가사가 존재한다. 아래 가사는 위 영상 버전의 가사다.
절 | 영어 | 한국어 번역 |
1 | We're the D-Day Dodgers out in Italy Always on the vino always on the spree Eighth Army scroungers and their tanks We live in Rome, among the Yanks We are the D-Day Dodgers way out in Italy | 우리는 이탈리아에 간 D-Day 기피자들 언제나 와인을 마시네 언제나 진탕 마시네 제8군의 밥벌레들과 그 전차들 우리는 양키들과 함께 로마에 사네 우리는 이탈리아에 있는 D-Day 기피자들 |
2 | We landed at Salerno a holiday with pay The Jerries brought the bands out to greet us on the way Showed us the sights and gave us tea We all sang songs, the beer was free To welcome D-Day Dodgers to sunny Italy | 우리는 살레르노에 내렸네 유급휴가였어 제리들이 우릴 맞이하려고 악단을 불러왔다네 명소도 보여주고 차도 내줬지 우린 노래를 불렀네, 맥주는 공짜였어 화창한 이탈리아에 온 D-Day 기피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
3 | Naples and Cassino were taken in our stride We didn’t go to fight there we went just for the ride Anzio and Sangro were just names We only went to look for dames The artful D-Day Dodgers way out in Italy | 우린 나폴리와 카시노를 단번에 함락시켰지 싸우러 간게 아니었어 그냥 가본거였지 안치오와 상그로강[9]은 이름 뿐이었지 그냥 여자 찾으러 간 것 뿐이었어 이탈리아에 있는 교활한 D-Day 기피자들 |
4 | Dear Lady Astor you think you know a lot Standing on a platform talking tommyrot You’re England’s sweetheart and her pride We think your mouth’s too bloody wide That’s from the D-Day Dodgers way out in Italy | 친애하는 애스터 부인 당신은 자기가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연단에 서서 헛소리를 지껄인다네 당신은 잉글랜드의 애인이자 긍지지만 우린 자네 입이 존나 크다고 생각하지 이게 이탈리아에 있는 D-Day 기피자들의 의견이라네 |
5 | Look around the mountains in the mud and rain You’ll find the scattered crosses there’s some that have no name Heartbreak and toil and suffering gone The boys beneath them slumber on They are the D-Day Dodgers who stay in Italy | 진흙과 빗속에서 산맥을 뒤져보시게 흩어진 십자가들을 찾을테니 그 중 일부는 이름도 없어 비통과 노역, 고통이 끝나면 저 십자가 밑에서 잠들게 되지 이게 이탈리아에 머무른 D-Day 기피자들이라네 |
4.3. 프랑스어 버전
프랑스어판 릴리 마를렌의 곡명은 Lily Marlène이다.영상 링크
프랑스 외인부대 군악대
4.4. 스페인어 버전
영상 링크스페인 버전.
영상 링크
칠레 버전. 남미의 독빠 칠레답게 릴리 마를렌을 군가로 쓰고 있다.
4.5. 기타
영상 링크이탈리아어 버전.
영상 링크
러시아어 버전.
영상 링크
불가리아어 버전.
영상 링크
세르비아어 버전.
영상 링크
한국어 버전.
5. 대중매체
- AVA에서 포인트맨 캐릭터로 등장한다. 당연하지만 상술했듯 '음악' 릴리 마를렌은 비록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으나 그 실존 인물이 '릴리 마를렌'이란 이름은 아니었던고로 이 캐릭터는 가공의 인물을 베이스로 한 또 다른 가공의 캐릭터, 즉 3차 창작 캐릭터인 셈이다. 설정상 그 음악 릴리 마를렌의 이미지를 구현화한 캐릭터다.
- 강철의 왈츠의 이벤트 중 군량문제의 사병의 노래가 릴리 마들렌이다.[10]
- 스트라이크 위치스 1기 8화에서 미나 디트린데 뷜케 역의 다나카 리에가 부른다. #
[1] 아들이 쿠스코의 멤버였던 크리스티안 슐체이며, 2011년에 사망했다.[2] 1차 대전에 It's a Long Way to Tipperary가 있었다면, 2차 대전에는 이 곡이 있었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라디오 생방송에서 이 노래가 나오자 전투가 잠깐 멈추었다.[3] 지리학상 기준인 우랄 산맥을 경계로 하는 유럽 대륙이 아니라, 러시아를 뺀 유럽 '반도'의 정중앙이다. 그래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하던 지역과 영국,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이집트까지 전부 커버하고도 남는다.[4] 이것 외에도 괴벨스는 랄레 안데르센에게 유대인 친구가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유대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독일을 탈출하겠다는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이후 랄레 안데르센은 스위스로 가는 도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고, 그 소식은 영국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따라서 독일은 국제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석방된 랄레 안데르센은 활동 제한 조치를 받았다가 종전 후인 1952년에 무대로 복귀했고 68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 노래를 계속 불렀다. 참고로 랄레 안데르센은 전쟁 도중 조부가 있었던 독일 북서부의 외딴섬 Langeoog에 몇 년간 피신해 있었는데, 훗날 그녀의 시신은 이곳에 안치됐으며 그녀의 기념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을 살펴보면 랄레 안데르센이 곡의 가사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5] Nancy Astor, Viscountess Astor.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으로 귀족이 된 남편 월도프가 의원직을 박탈당하자 대신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대 영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였으며 당선 기간 동안 공무원 남녀 동등권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알코올 구매 가능 나이를 18세로 끌어올리는 등의 공을 세우기도 했다.[6] 그녀는 극심한 반공주의 성향이었던 점 때문에 평소 공공연히 히틀러의 정책을 바람직한 것이라며 칭송했고, 단순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정치인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정신나간 짓을 했다. 전후에도 인종차별 및 제국주의 망언을 일삼아 말년에는 가족들에게도 절연당한다. 아들 존 에스터는 어머니가 혐오하던 천주교 신자와 결혼까지 해버렸다.[7] 한가지 일화도 있는데 낸시 애스터는 의회에 출석한 윈스턴 처칠에게 "Sir, if you were my husband, I would poison your drink." (내가 당신 부인이었다면, 당신의 찻잔에다 독을 탔을 거에요.)라고 독설을 내뱉었고, 처칠도 지지않고 "Madam, if you were my wife, I would drink it." (애스터 부인, 당신이 내 부인이었다면, 난 당신 남편으로 사느니 차라리 그 (독이 든) 찻잔을 마셨을 거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8] 연합국 사상자 358,295~376,637명, 추축국 사상자 1,549,590~1,793,570명.[9] 아브루초 주에 있는 강. 구스타프 방어선이라고 불리는 독일군 방어선의 일부로 영국 제8군은 1943년 11월부터 12월까지 벌어진 전투를 통해 강 너머에 교두보를 구축했다.[10] 이 게임의 특수 미션이나 이벤트는 당시 2차 세계 대전의 사건 혹은 문화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11] 린 민메이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는 설정이다. 통합군 홍보 광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