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00:14:07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한국
미국 중국 에스파냐
발칸반도 / 동남아시아 / 중동 /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1
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러시아 인도와 인도아대륙
공정성 구성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1. 개요2. 들어가며3. 훈(흉노) 제국4. 괵튀르크와 셀주크제국5. 오스만제국의 창건과 발전6. 제국의 전성시대7. 기우는 제국8. 개혁의 몸부림 탄지마트9. 무너져내리는 제국10. 제국의 멸망11. 튀르키예 공화국

1. 개요

먼나라 이웃나라 20권, 오스만제국과 튀르키예 편의 오류들을 나열한 항목이다. 세계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소신(?)을 당당히(?) 밝힌 것치고는 오류가 굉장히 많다. 일단 목차에 따라 분류하고 오류가 실린 부분의 페이지를 적으며, 비슷한 오류가 여러 번 나온 경우 따로따로 서술하지 않고 그 오류가 처음 나온 부분에서 한꺼번에 모아서 서술한다.

2. 들어가며

3. 훈(흉노) 제국

4. 괵튀르크와 셀주크제국

5. 오스만제국의 창건과 발전

6. 제국의 전성시대

7. 기우는 제국

8. 개혁의 몸부림 탄지마트

9. 무너져내리는 제국

10. 제국의 멸망

11. 튀르키예 공화국


[1] 영토를 나누지 않고 황제가 둘이었던 사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루키우스 베루스가 처음이다.[2] 일단 전대 황제의 황후랑 결혼해서 즉위한 거라, 황후는 맞다.[3] 덧붙여 룸 술탄국이 이렇듯 통째로 잘려나간 것은, 한국사로 비유하면 "신라는 신문왕 때까지는 잘 나갔으나 이후 허약해져 여러 지방 세력가들의 손에 의해 나라가 산산조각났으며, 그 세력가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왕건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재통합해 고려를 세웠다" 라고만 소개하고 혜종과 정종은 이름만 언급한 다음 광종으로 넘어가는 격이다.[4] 심지어 75쪽에서는 같은 페이지도 아니고 같은 컷에 "술탄(왕)" 이라는 단어와 "술탄(황제)"라는 단어가 나란히 나와 있다. 작가의 실수가 아니라면 황제와 왕의 차이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의심되는 대목이다.[5] 시기 구분이라는 건 정답이 없는 것이며 각자 자유롭게 할 수 있으므로, 저자가 "내가 만든 구분이다!" 라고 주장해도 문제가 안 되긴 한다. 다만 통합기라는 것이 이렇게 어색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며, 책의 뒤쪽에 나오듯이 저자는 1683년의 2차 빈 공방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시기 구분에서는 1683년이 아니라 1774년이 통합기와 쇠퇴기의 경계이므로 모순이 발생한다.[6] 이 구분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기준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하다. 1453년은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해, 1566년은 쉴레이만 1세가 서거한 해, 1700년은 대튀르크 전쟁이 종결된 무렵이며, 1828년은 예니체리가 해산된 무렵, 1908년은 청년 튀르크당이 봉기하여 압뒬하미드 2세의 전제정치를 무너뜨린 해다. 그리고 이 다섯 모두 이 만화에도 나올 정도로 중요한 사건들이다.[7] 여담으로 오르한은 동생의 겸양에 감격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고 통치를 돕게 했는데, 이로써 그는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재상이 된다.[8] 여담이지만 시작이 이렇다는 것이고, 예니체리라고 평생 군인 일만 하거나 관료가 된다고 평생 문서만 만졌던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은 각 지역에 파견한 지방관들에게 그 지역의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군사권도 주었고, 유목전사집단에서 출발한 나라답게 관료들의 공과를 평가하여 승진과 강등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보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군공이었기 때문이다. 즉 관료 수업을 받다가 지방관으로 나간 경우라도 유사시에는 전투에 임해야 했고, 반대로 예니체리 군단장이라도 중요한 국경 지대의 지방관으로 부임하기도 했다.[9]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문과와 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이 국왕을 알현하는 그림이 있다고 하자. 이 때 "국왕과 문무과 급제자들" 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국왕과 무과 급제자들" 이라고 하면 문과 급제자는 뭐가 되는가.[10] 이후 라자르의 아들로 중세 세르비아의 마지막 번영기를 이끌었던 스테판 라자레비치가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데스포트 직을 받기도 했다.[11] 이 때 즉위한 사람이 어린 메메드 2세였다. 다만 즉위했을 당시 만 12세로 너무 어렸던데다 이것을 기회로 본 헝가리와 폴란드 등이 침입해 와 무라드가 급히 군대를 이끌고 나서야 했으며, 이후 아들을 폐위시키고 복위했다.[12] 다만 나폴레옹도 처음에는 신성 로마 제위를 노리다 오스트리아가 제국을 선포해 별 의미가 없어지자 태도를 바꿔 신성 로마 제국 폐지를 요구했다. 그렇다 해도 제국을 직접 멸망시킨 것은 프란츠 2세가 맞다.[13] 조지 3세 치하에 미국이 독립해 나가자 신하들이 울적함도 달랠 겸 영국과 아일랜드의 황제라는 논리로 조지 3세에게 황제 칭호를 쓰도록 권유한 일이 있다. 다만 조지 3세 스스로가 거부해서 일단락.[14] 다만 코스탄티니예를 강요한 건 아니어서 이스탄불이라는 이름도 널리 쓰였고, 관직명 중에서도 현대 대한민국의 수도방위사령관 쯤 되는 자리를 이스탄불 아아스라고 했고 서울특별시장을 이스탄불 에펜디시라고 불렀다.[15] 이 때 황제는 니들은 다 틀렸고 내 말이 맞다며 회의의 결정을 뒤집을 수도 있었으나, 재상을 비롯해 제국의 최고 브레인들이 모인 자리이니만큼 결정을 뒤집기보다 존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재상이 황제를 어떻게 알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이 없어서, 황제의 성향이나 사정에 따라 직접 만날 수도 있었고 회의의 결론을 문서로 적어서 제출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한편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해야겠다거나 하는 등 황제가 디완 회의에서 논의되기를 원하는 사항이 있을 경우, 환관을 회의장으로 보내 이러저러한 것을 논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16] 나중에는 이러다 못해 디완 회의는 건성건성 하고 정해진 회의 시간이 끝나면 다 같이 재상의 저택에 모여 제대로 국정을 논의하기 시작하는 관행도 나타났고, 한 술 더 떠서 조선 시대의 편전이나 고려 때의 교정도감처럼 아예 재상이 거처도 하고 이런 회의를 비롯한 업무를 보기도 하는 것을 상정한 재상 전용 관저가 건설되기도 했다.[17] 일본 만화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에서 이렇게 그리긴 했는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고증 오류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18] 엄밀히 말하면 위베이스라는 이복동생이 있긴 했다. 다만 생모가 행실에 문제가 있다 하여 아들을 낳기 전에 출궁당했는데, 이 경우는 황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처형되는 대신 부황 셀림 1세와 이복형 쉴레이만의 보호를 받았다. 이후 위베이스는 바그다드 대총독에 올라 오늘날의 예멘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다가 전사했는데, 소식을 전해들은 쉴레이만은 아우가 죽었다며 통곡했다고 한다.[19] 다만 카를로비츠 조약이 오스만의 외교사상 의미가 있긴 한데, 무라드 2세 때의 조약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오스만이 승자 측에서 체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정교한 외교술 같은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오늘날의 외무장관에 해당하는 자리는 카를로비츠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본래 디완 회의에서 기록을 담당하고 보관하는 니샨즈라는 관직이 있었는데,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려다 보면 이때까지 이 나라와 오스만 제국의 관계가 어땠으며 어떤 조약들을 체결해 왔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즉 "네가 다른 나라와의 조약을 보관해 왔으니, 그걸 잘 읽어보고 새 조약을 체결하는 일에 임하라." 라는 식으로, 이후 니샨즈가 외무장관 역할까지 맡게 된다.[20] 이와 비슷한 예는 이스탄불의 한 구역인 Beyoğlu. ğ는 음가가 없고 앞의 모음을 장음으로 발음하라는 것임을 안다고 하더라도 "베요올루" 로 표기하기 딱 좋은데, Bey(베이)와 Oğlu(아들)의 결합이므로 "베이오올루" 로 써야 한다.[21] 174쪽에서 탄지마트를 청나라의 양무 운동과 비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둘은 비교하는 게 많이 어색하지는 않으므로 문제가 덜하지만.[22] 이렇게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독일의 통일을 주장한게 대독일주의,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의 통일을 주장한게 소독일주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제2제국은 소독일주의 제3제국은 대독일주의와 비슷하다.[23] 사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일에 대해서도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일원이었다는 얘기는 전혀 없고 뜬금없이 히틀러가 "내가 태어난 곳이었으니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한 나라인겨!"라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내용만 나와있다.[24] 그렇지만 여기에 세르비아도 할 말이 있는게 원래 세르비아 몫이었던 알바니아를 삼국 동맹이 압력을 넣어 토해냈기 때문이다. 또 불가리아가 차리그라드를 차지하겠답시고 트라키아에 집중하는 사이 세르비아가 차지한 북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가 열심히 피를 흘려 정당하게 차지한 영토인데 줄 이유가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