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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ethod acting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인물을 최대한 진실되게 연기하기 위해 고안한 연기론 및 훈련법을 이후 여러 연극인들이 각자의 이론을 덧붙이거나 개선해 발전시켰다. 연극영화학에서 배우는 학문이다.
2. 역사
스타니슬랍스키는 1922년에 미국에서 첫 공연을 올렸으나 이미 이전부터 그가 전설이라는 사실은 미국 연극 배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공연 후 미국연극계에선 그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생겼고 스타니슬랍스키의 방법론은 연극 배우들 사이에서 30년대엔 상식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이를 알려고 노력하느냐 거부하느냐 받아들이느냐 등 배우 개개인 간에 수용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1931년엔 명망 있는 연극인들의 모임인 그룹 시어터(Group Theatre)가 결성돼 스타니슬랍스키 방법론의 장점을 연구하고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으로 미국식 메소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메소드 연기가 대중들에게까지 인식되는 계기를 만든 건 1947년에 이 그룹 시어터 출신인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연극 연출가 셰릴 크로포드(Cheryl Crawford), 배우 로버트 루이스(Robert Lewis)[1]가 함께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을 차용해 세웠던 액터스 스튜디오다. 이름에 들어간 "스튜디오"라는 말 자체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체계를 모방했음을 티낸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 각자의 생각에 달라 메소드 연기가 체계적으로 훈련됐다기 보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방법론들 중 일부만이 선택적이고 산발적으로 훈련되고 있었다. 당시 '액터스 스쿨'에서 연기를 배운 사람들은 칼 말든, 일라이 월릭, 몽고메리 클리프트[2], 시드니 루멧[3], 로드 스타이거 등이 있다.
액터스 스튜디오에 메소드 연기가 본격적으로 이식된 건 카잔이 본인의 작업으로 바빠 1951년에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모든 걸 일임하면서부터다. 스트라스버그는 죽기 전인 1982년까지 수많은 배우들을 교육했다. 그의 휘하에서 알 파치노, 제임스 딘, 폴 뉴먼, 더스틴 호프먼, 마릴린 먼로, 제인 폰다 등이 배출되었다.
말론 브란도도 그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으나 브란도는 그보다는 스텔라 애들러의 제자였다. 40년대부터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을 가르치기 시작한 애들러 역시 그룹 시어터 출신이지만 액터스 스튜디오와는 견해차가 너무 커 갈라섰다. 스텔라 애들러는 1949년 스텔라 애들러 연기 스튜디오를 설립해서 이곳에서 연기를 가르쳤다. 애들러의 밑에서 훈련받은 배우들 중엔 마틴 신, 하비 카이텔, 멜라니 그리피스, 워렌 비티,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이 있다.
브란도와 마찬가지로 두 곳 모두에서 훈련 받은 배우로는 로버트 드 니로가 있다.
할리우드에 메소드 연기를 알린 상징적인 작품이 브란도가 나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그 외에 로드 스타이거로 대표되는 연극계 출신 영화배우들이 이 가이드라인을 이용해 연기파 배우로 알려지게 되면서 유명해진다. 장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의 즉흥연기론도 메소드 연기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은 이 새로운 연기법은 이후 뉴 할리우드 시대에 제대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로드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마저 태동시키는 대업적을 이룬다.
메소드 연기법의 대중적인 보급에 영화 〈대부〉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알 파치노는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로버트 드 니로도 시칠리아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시칠리아에 가서 직접 살았다. 이러한 〈대부〉가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33년 만에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평론에서도 대성공하면서 연기법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모든 영화계에서 널리 쓰이는 주류 연기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메소드 연기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대한민국에도 상당히 일찍 소개되었다. 특히 한국의 전현직 교수진 중에는 스타니슬랍스키의 극단을 통해 그의 연기론을 직접 체득하여, 법통(法統)을 물려 받은 사람이 제법 된다. 즉, 한국에서 연극영화/연기를 전공한 학생이라면 좋든 싫든 그 상당수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손(師孫)이래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뉴 할리우드와 80년대 브로드웨이의 침체기를 거치며 메소드 연기법은 다듬어졌고, 요즘엔 리얼리즘은 그대로 살리면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캐릭터와 어투를 큰 변화 없이 배역에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연기법이 주를 이룬다.#
3. 방법론들
러시아어의 장벽으로 생긴 오해들과 연기 지도자들 사이의 시각차 때문에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과 훈련법은 미국에서 다양하게 해석됐다.3.1. 액터스 스튜디오
매소드 연기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액터스 스튜디오의 방식이다. 리 스트라스버그는 배우가 배역의 상황과 가장 비슷하게 겪었던 개인 경험을 찾아내고 내면에서 소위 정서기억("Emotional Memory")을 끌어내 당시 느꼈던 감각과 기분을 재현해, 맡은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할법한 반응을 대체("Substitution")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단순히 그런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본인의 실제 경험을 재경험하며 그로 인해 촉발되는 감정을 신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배우 본인이 경험으로 충분히 아는 축적된 감정을 꺼냄으로 배우로부터 순간의 진실된 반응을 끌어내는 동시에 연기의 정확성을 높이고 즉흥성의 위험은 낮추기 위함이었다. 즉 액터스 스튜디오 출신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 중에 나타나는 애드리브는 연기의 결과물에 불과하지 목적이나 방법론이 아니다. 제임스 딘으로 대표되는 사단이라 워낙 오해를 많이 받는데, 딘이 연기과정에서 보인 즉흥성은 딘 개인의 성격이고 성향이지 메소드 연기법을 써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연기술은 오히려 즉흥성에 기대지 않고 배역에 순간 몰입도에 기댐으로써 실수나 NG를 최대한 줄이는 걸 목표로 한다. 아이러니하게 즉흥성에 기대는 것처럼 비칠 뿐이다.액터스 스튜디오의 훈련법은 역시 오역 및 번역 지연 등의 문제로 스타니슬랍스키 본인은 도중에 버린 방식들이 꽤 포함된 채로 발전했다.
잭 니콜슨은 액터스 스튜디오 출신은 아니지만 1955년 지원자 500여명 중 스티브 맥퀸과 함께 유이하게 합격했던 마틴 랜다우에게서 몇 년 동안 스트라스버그의 훈련법 그대로 메소드 연기를 배웠으며, 이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메소드 연기자다. 함께 활동해온 배우들 가운데 메소드 연기의 이론에 가장 정통하다고 자부할 정도다. 자신은 철저한 분석과 기술로 연기하는 메소드 배우인데 다들 자신이 본능적인 감각에 기대어 연기하는 배우라고 착각해 메소드 배우들이 언급될 때 자신의 이름은 항상 빠진다고 말한 적도 있다. 연기에 들어가기 전 특유의 방식으로 노래[4]를 부르며 연기도구인 몸을 방해하는 심신의 긴장을 완전히 제거해 신체를 중립인 이완 상태로 만드는 액터스 스튜디오의 노하우도 그대로 써먹었다.##
'액터스 스튜디오' 방식의 핵심은 '너의 배역에 잡아먹히지 마라.'이다. 영화 한편 찍고 배우일 접을 거 아니면 배우로서 자신의 스타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액터스 스튜디오' 연기법은 연극의 막과 막 사이, 영화의 장면과 장면 사이의 해당 신(Scene) 촬영 전엔 배우가 연기도구인 몸을 방해하는 심신의 긴장을 완전히 제거해 신체를 중립인 이완 상태로 만든 다음 텅 빈 그릇 상태인 배우가 해당 배역의 입장에서 해당 배역의 감정과 가장 유사한 해당 배우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방법을 쓴다. 이 방법 또는 방식은 극 전체의 연결이나 흐름을 고려하지 않으며,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는 것은 컷 사인 떨어지기 직전까지의 순간이다. 참고로 '배우는 배역에 몰입해 영화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해당 배역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입장의 스텔라 애들러는 액터스 스튜디오의 이 부분을 끔찍이 싫어했다.
3.2. 스텔라 애들러
스텔라 애들러는 액터스 스튜디오보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최종 방법론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애들러의 방법론을 익힌 사람 중 가장 유명한 배우는 말론 브란도다.스트라스버그의 "대체" 방식에 반대한 애들러는 대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인물의 내면, 경험, 환경 등 대본에 주어진 실제 조건을 해석해 인물에 대한 이해를 극대화해 배우가 인물에게 깊이 공감함으로써 인물이 배우를 통해 살아나게 만드는 방법을 추구했다. 인물의 상황을 배우 본인의 가치관에 입각해 판단하지 않고 해당 인물이라면 어떤 표정, 어떤 어조, 어떤 행동을 하였을지 등을 해당 인물의 입장에서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화 속 가상 인물이 마치 실존 인물이란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물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본을 여러 작은 장면들로 나누고 인물이 한 장면 내에서 도달하려 하는 목적, 인물이 이야기 전체 내에서 추구하는 초목적,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요소 분석하고, 연기의 의도를 이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적 및 초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설정해 연기를 계획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의 아주 작은 제스처에도 인물의 서사와 배우의 의도가 담긴다.
이 방법론은 인물에 대한 상상력을 매우 중시하는데, 대본에 아예 없는 내용을 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물의 진실성을 극한으로 추구하기 위해 나노 단위로 분석을 끝낸 대본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현장에서 발견된 새로운 요소까지 해석해 집어넣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인물 탐색을 위해 영화의 원작까지 깊게 파고들기도 한다. 맡은 배역이 장애 혹은 특정직업을 가졌을 때 일부러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생활하거나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경험해보는 것도 전부 대본에 나타난 인물됨을 더 깊이 탐구하려는 일환이다.
사진은 영화 〈맨〉(1950)에서 신체가 마비된 군인을 연기하는 말론 브란도. 그는 촬영하지 않을 때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인물을 탐구했다.
스텔라 애들러의 '메소드 연기법'[5] 방식의 핵심은 '너의 배역을 사랑하라.'이다. 이 방법 또는 방식은 담당 배우의 해당 배역 이해도를 매우 중시하며,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해당 배역의 톤마저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로버트 드 니로는 '액터스 스튜디오'와 '스텔라 애들러 연기 스튜디오' 양쪽 모두에게 사사한 후 이 두 방식을 절묘하게 합쳤고, 이후 일본 영화계에선 이런 방식을 '드니로 어프로치'라 구분 지어 부르며 높이 평가한다. 일례로 그가 연기한 비토 콜레오네는 말론 브란도의 목소리까지 따라 하는 스텔라 애들러의 기법과 실제로 시칠리아로 가서 4개월가량을 살며 실제 경험을 쌓은 액터스 스튜디오의 기법이 모두 들어가 있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매우 정교한 계산이 돼있기 때문에 연기하는 순간 즉각적이면서 진실된 배우의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좋은 애드리브가 나오지만 액터스 스튜디오와 마찬가지로 애드리브를 지향하는 방법론이 아니다. 말론 브란도는 〈대부〉에서 자신의 돈 콜레오네란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관객에게 제대로 된 첫인상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고민했고 당시 촬영장에선 편지 뜯는 칼을 만지작거린다거나 시가를 피운다거나 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브랜도는 돈 콜레오네의 이미지가 배후에서 정재계를 주름잡는 블로펠드의 흑막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 고양이를 안고서 쓰다듬는 방법을 즉석에서 선택했다. 원래 이 설정은 대본엔 없었지만, 오늘날까지 애드리브의 좋은 예라고 회자되는 사례이다. 흔히 메소드 연기가 애드리브를 허용하지 않는 연기법이란 오해가 있는데, 허용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지, 미국의 '메소드 연기'는 배우가 해당 배역을 표현해 내는데 설령 대본에 없는 부분이라도 그것이 최상이라면 허용하는 입장이다. 다만 영화가 여러 스태프들의 합작품이므로 권장되진 않지만, '액터스 스튜디오'의 경우는 오히려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면 '좀 더 자유롭게 가볼까요? 또는 다른 버전도 있는데요?' 등등의 조율이 가능하도록 가르친다. 왜냐면 이 방식은 배우의 스타성을 최대한 지켜내는 것 역시 주목적인 연기법이기 때문이다. 스텔라 애들러 역시 애드리브를 권장하진 않지만 배우의 해당 배역 몰입보다 대본[6]을 우선시하거나 더 중요시하진 않는다.
문제는 배우가 어느 수준에서 욕심을 못 버리고 현장 혹은 대본에서 새로 발견한 사실을 끝없이 분석해 자신이 맡은 인물에 도입하며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려 들면 상대 배우들은 연기를 쉽게 맞춰나갈 수가 없고 감독은 배우 본인은 물론 현장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7]은 1984년에 발간한 저서 "On Screen Directing"에서 브란도를 이렇게 평했다.
글렌 포드는 프로다. 프로 연기자들이 늘 그렇듯이 포드는 현장에서 제작사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집에서 준비를 해온다. 포드의 연기는 초반 시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좋다. 반면 말론 브란도는 훌륭한 배우지만 여러 번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배우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안다. 내가 브란도를 〈젊은 사자들〉에 캐스팅하기 전에 그와 일했던 한 감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브란도는 처음 70번은 꽤 엉망이지만, 71번째엔 갑자기 기적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71번째 촬영에서 포드는 녹초가 된다는 거다. 이런 연기술의 차이는 (포드와 브란도가 함께 연기한) 〈8월 달의 찻집〉 촬영 현장에서 끝없는 다툼을 발생시켜 영화에 악영향을 줬다.
포드나 감독 대니얼 만(Daniel Mann)과 잘 지내지 못했다는 건 브란도 본인도 자서전에 적고 있다.
브란도의 연기술은 자신에겐 큰 효과를 낳았다. 브란도는 〈8월 달의 찻집〉의 일본인 배역을 완벽히 분석해내기 위해 몇 달 동안 일본에서 지내며 문화, 언어, 몸의 자세 등을 익히는 등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 덕에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이 브란도가 나오지 않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의 여담
영화 제작은 수많은 인원과 돈이 투입되어 공동으로 하는 작업인데, 배우가 이런 식으로 연기에 접근하면 팀워크를 해하거나 심지어 영화 자체를 자신의 원맨 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브란도는 연기력을 인정 받았음에도 팀워크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너지를 자랑해 후기로 갈수록 스태프와 감독들이 꺼리던 배우였다.[8] 그래도 브란도는 사망 3년 전까지 〈스코어〉를 찍는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었다. 〈스코어〉 이후에도 건강 악화 때문에 촬영이 중단된 작품이 많은 것이지, 작업 중인 영화들은 많았다. 고전 할리우드 클래식 배우 중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영화 찍은 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3.3. 샌포드 마이스너
샌포드 마이스너는 스텔라 애들러가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스타니슬랍스키 본인부터 '정서기억'(Emotional Memory) 법을 폐기했다는 경험담에 동의하며, 정서기억("Emotional Memory") 기법의 상당 부분을 배제하고, 배우의 행동 패턴 부분을 강조한 마이스너 기법이란 방식으로 연기를 가르쳤다.##2 이 기법의 핵심은 '상상 속의 상황 아래서 진실하게 생활하기'(Living Truthfully Under Imaginary Circumstances)라고 한다.3.4. 드니로 어프로치
자세한 내용은 드니로 어프로치 문서 참고하십시오.일본영화계에서 분류하는 메소드 연기법의 일종이다.
3.5. 잘못된 대표 이미지
오늘날 대중에게 메소드 연기는 단순히 카메라 밖에서도 그 인물로서 사고하거나 행동해 연기의 전체 완성도를 높이는 시도로만 알려져있는데, 이는 스타니슬랍스키가 초기에 폐기한 훈련법이다. 그러나 미국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저서 번역의 문제, '미국의 연기론은 러시아와 다르다.'라는 자존심 문제 등으로 미국 일부에 훈련법으로 정착됐으며, 하필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배우들 중 극소수가 배우들의 배우로 여겨질 정도의 명연기를 구사하면서 이게 메소드 연기의 전부인 마냥 유명해졌다. 대부분의 배우들에겐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여겨지나 다니엘 데이루이스 등 전설적인 배우들의 성공담 때문에 여전히 많은 배우들이 이 방식을 시도한다. 평소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메소드 배우들이 가끔 선을 넘어 이 지경에 도달하기도 한다.이 방법의 최대 문제점은 간혹 배우가 배역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배역이 배우를 잡아먹는 수준에 이르러 사고방식과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더스틴 호프만은 이혼 과정에서 심하게 다투며 서로 상처를 주는 부부의 얘기인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를 찍을 때 카메라 밖에서도 상대역인 메릴 스트립에게 언어폭력을 쓰다가 급기야 스트립의 뺨을 때린 적도 있다. 있는 힘껏 때리는 바람에 호프만의 손모양이 스트립의 볼에 그대로 남은 채로 영화에 나왔다. 스트립은 자신의 연기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호프만의 그런 돌발 행동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메릴 스트립은 여러 연기 테크닉을 활용하는데, 그중엔 메소드 연기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주변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긴 했지만 카메라 밖에서도 인물로서 행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깊은 우울감을 느끼고 이렇게는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서 이를 마지막으로 메소드 연기는 그만뒀다.#
자레드 레토는 사이코 악당 조커 역을 배정 받은 뒤 역할에 심취하기 위해 조커가 할만한 행동을 동료 배우들에게 저질러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 중에는 정말로 경찰에 신고해야 할 정도로 섬찟한 행위도 있었다. 다만 이는 나중에 배우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며 해명했다.
최민식도 이 부류의 메소드 기법에 가까운데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마역을 맡았을 때 너무 몰입하면 자기는 지금 구치소에 있어야 된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반가워하면서 "아이구~ 어디 최 씨야?"라며 물을 때 처음에는 웃으면서 대답했는데 맡던 배역 때문인지 갑자기 속으로 '그런데 이 XX, 왜 처음 보면서 반말이지?'하고 좋지 않은 생각이 들기에 '이번에는 너무 몰입하면 안 되겠구나'했단다. 그후로는 메소드 연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하다.
꽃잎(영화)에서 소녀 역을 맡은 이정현도 메소드 연기 때문에 감독인 장선우과 문성근, 설경구 등의 배우들이 걱정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촬영기간 내내 미친 소녀처럼 행동했다. 당시 "어차피 연기는 내가 못 하는 거니까 연기를 하지 말고 내가 소녀가 되자"고 이정현이 첫 촬영날에 감독에게 혼난 이후에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 2~3시간 전부터는 촬영지 주변을 배회하다보니 주민들이 이를 연기가 아닌 실제로 착각해서 씻겨주거나 밥을 먹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감독과 배우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촬영이 끝나게 되면 반드시 해당 배역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주의를 줬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미성년자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서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정현의 경우 배역이 배우를 잡아먹지 않았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역할에서 빠져나왔다.
연기력으로 칭송 받는 유명 배우들 중에 이 부류의 메소드 연기에 비판적인 배우들이 상당히 많다. 게리 올드먼은 한 인터뷰에서, "연기는 진짜처럼 보이게 할 트릭일 뿐이지 굳이 그 캐릭터가 될 필요는 없다"며 이런 류의 메소드 연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임을 밝혔다. 니콜라스 케이지도 데뷔 초엔 이 부류의 메소드 연기법을 따라가려 하다가 후에 연기를 깊이 익히고서는 "메소드 연기자와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Q: 〈링컨〉에 출연한 배우들(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이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촬영 기간 내내 (촬영하지 않을 때도) 그 역할로 살았다는 것이 화제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하시나요?
안소니 홉킨스: 아닙니다. 뭐 자기가 원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히치콕을 연기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히치콕 씨라고 불러달라고 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그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짓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본인들이 그리 연기하고 싶다면 좋습니다. 만약 (비참한 연기를 하려고) 정말 비참해지려고 한다면 그건 자기들 자유죠. 전 그런 연기 방식 관심 없습니다. 연기는 그저 일이에요. 전 일을 합니다. 그 캐릭터가 된다고 일부러 비참해지고 그럴 생각은 없어요. 정말 골치가 아픈 일이에요. 세상에 누가 연기를 제대로 한답시고 진짜 늙고 불행한 인간으로 살고 싶고 주변에서 (그 배우를) 역할 이름으로 불러줘야만 합니까? 그런 배우들하고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정말 골치 아파요. 같이 일하기 불쾌한 배우들이고 그런 배우들이 그런다고 연기를 더 잘하지도 않아요. 그런 이상한 배우들하고 일을 해봤지만 다행스럽게 그런 배우들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전 그렇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겪으면 절대 다시 작업하지 않습니다.[9]
{{{#!wiki style="text-align: left"
안소니 홉킨스 #}}}안소니 홉킨스: 아닙니다. 뭐 자기가 원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히치콕을 연기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히치콕 씨라고 불러달라고 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그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짓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본인들이 그리 연기하고 싶다면 좋습니다. 만약 (비참한 연기를 하려고) 정말 비참해지려고 한다면 그건 자기들 자유죠. 전 그런 연기 방식 관심 없습니다. 연기는 그저 일이에요. 전 일을 합니다. 그 캐릭터가 된다고 일부러 비참해지고 그럴 생각은 없어요. 정말 골치가 아픈 일이에요. 세상에 누가 연기를 제대로 한답시고 진짜 늙고 불행한 인간으로 살고 싶고 주변에서 (그 배우를) 역할 이름으로 불러줘야만 합니까? 그런 배우들하고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정말 골치 아파요. 같이 일하기 불쾌한 배우들이고 그런 배우들이 그런다고 연기를 더 잘하지도 않아요. 그런 이상한 배우들하고 일을 해봤지만 다행스럽게 그런 배우들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전 그렇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겪으면 절대 다시 작업하지 않습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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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은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개X식들을 연기할 때만 메소드 연기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3.6. 여러 방법론의 공통된 문제점
장르 특성상 연극과 뮤지컬 등의 장르와 메소드 연기법은 상극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10] 때문에 메소드 연기법과 거리를 두는 경우도 많은데, 영국 연극계가 대부분이 그러하다. 낭만파 대표 작가 셰익스피어를 반드시 거치는 영국 연극계의 특성상 메소드 연기법으로써 그 수많은 대사를 접근하려면 대사를 소화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말의 기교를 이용하여 운율로, 배우가 대사를 먹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희비극이나 셰익스피어에서는 운율이 첫째고 감정이 둘째다. 오랜 발성 훈련과 화술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는 낭만파 희곡 자체를 다룰 수가 없고 그것은 현대극에서도 당연히 이어지는 문제이다. 1850년대 헨리크 입센으로 시작되는 현대극에서는 대사가 날마다 늘 하는 말과 비슷해지기에 메소드 연기법이 적절한 답안일 수 있으나 그 전 시대 연극의 대사는 길이가 매우 길어 운율과 발성을 살리는 기교다운 면이 매우 중요하다.[11]영화감독이 영화배우의 재량을 허용하기보단 엄격히 통제하기를 좋아할 때에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앨프리드 히치콕은 프랑수아 트뤼포와의 대담에서 "폴 뉴먼은 감자 푸대를 앞에 놓고도 뭔가 심각히 노려본다."라고 불만을 표했고[12] 하워드 혹스는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붉은 강〉에서 메소드 연기법으로 연기하려고 해서, 존 웨인과 내가 주의를 줬다"고 말한 바 있다.[13] 시나리오에 의존하지 않고 즉흥 연기를 선호하는 로버트 올트먼이나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로베르 브레송[14] 같은 사람들도 메소드 연기법으로써 연기하는 배우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
4. 기타
- 단순히 배우가 역할에 깊이 공감한다든가 하는 이유만으로 즉 겉으로 봤을 때 메소드 연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메소드 연기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메소드 연기법은 훈련을 통해 체득하는 기술이고, 실제로 기술을 실천해서 연기 했을 때만을 메소드 연기라고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체중 변화와 촬영장에서 표출되는 성격에 대한 소문 덕분에 흔히 메소드 연기자로 오해받는 크리스찬 베일 역시 자신은 메소드 연기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런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메소드 연기자라고 하면 실제 메소드 연기자들에게 누가 된다. 나는 (메소드 연기와 관련한) 어떠한 훈련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15]
- 한국에서도 '메소드 연기'를 상찬의 의미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성동일의 경우에도 메소드 연기로 대표되는 내면 연기를 하지 않고 외면 연기로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인데 "물아일체의 메소드 연기자"라는 엉뚱한 상찬을 받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도 직접 "제 주변 배우들과 다르게 저는 '이 배역의 태생이 어떻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라며 메소드 연기를 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부정한 바가 있다.
- 캐서린 헵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4회 수상에 가장 근접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3회 수상자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미지와 다르게 메소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연기법으로 배역에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노매드랜드〉 촬영장에서 진짜 '노매드'로 오해받았다.
- 할리우드는 각본 유출을 막고자 배우에게 각본을 주지 않고 담당할 배역을 뭉뚱그려 설명하고서 일을 맡을지 정했는데 메소드 연기법이 보급되면서 각본이 제공되었다.
- 일본 성우업계에서는 큰 명성을 얻은 성우 상당수가 메소드 연기법으로써 연기력을 연마했기에 여러 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다수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계열을 대표하는 주자라고 하면 역시 오가타 메구미와 하야시바라 메구미. 특촬배우 출신인 나카타 조지는 메소드 연기 덕에 나스 키노코에게서 타입문의 종신성우[16]직을 요청받았다. 반대로 메소드 연기를 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성우로는 모리카와 토시유키가 있다. 자신은 연기 할때의 on/off가 확실한 타입으로, 그렇지 않으면 동시 작업중인 다른 배역에도 영향을 준다고.
- 만화 《유리가면》에서 기타지마 마야가 하는 연기법의 묘사를 보면 메소드 연기, 혹은 그에 준하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되는 묘사가 종종 나온다. 전매특허의 대사인 "나는 ○○... ○○를 연기할 수 있어!" 같은 말도 그렇고... 다만 마야의 경우 몰입도 잘하지만 회복도 쉽게 하는 걸 보면 메소드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배역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고도의 집중을 통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예를 들어 마야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뭐든 가리지 않고 그렇다보니 상당한 다작 배우인데 위에 나와 있지만 메소드 연기자는 다작이 힘들다. 또, 마야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이 섬뜩함을 느끼는데 직후 마야가 방긋 웃자 그 관객이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두 사람의 왕녀' 편에서 커튼콜 이후로도 캐릭터를 깨지 않은 부분 등을 보면 그 에피소드에서는 메소드 연기를 했었을 가능성도 있다.[17][18]
- 일본 만화 액터주 act-age의 주인공 요나기 케이가 바로 독학으로(!!!) 메소드 연기를 터득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묘진 아라야는 요나기 케이의 상위호환형의 메소드 연기를 선보인다.
- 천사나 악마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를 연기하는데도 메소드 연기가 제격이다. 로버트 드 니로는 엔젤 하트에서 '악마는 이런 것이다'를 삶은 달걀 하나 까먹는 걸로 표현해냈다. 또한 역사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실존 인물들을 연기할 때 메소드 연기가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다루었다.
[1] 로버트 루이스(Robert Lewis)는 이후 예일 대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쳤고, 그에게 메소드 연기를 배운 학생이 바로 메릴 스트립이다.[2]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다른 곳에서 이미 메소드 연기를 배우고 익힌 상태였다.[3]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배우이기도 했다.[4] 동요 Three Blind Mice 등.[5] 스텔라 애들러는 리 스트라스버그와 앙숙인 것과는 별개로 그의 예술적 업적은 인정했다. 당장 그녀부터 '메소드 연기'란 용어를 사용했다. '메소드 연기'란 용어는 리 스트라스버그가 만든 조어로 원래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라 불러야 한다.[6] '대본'과 '각본'은 혼용되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대본은 '대사'를 의미하고 '각본'은 '대사'와 '행동' 모두를 포함한다. '희곡'은 각본 중 연극을 위해 쓰인 글을 일컫는다.[7] 근데 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감독은 글렌 포드와 함께 작업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8] 성격 문제에다 상술한 약점과 겹쳐져 제작이 지지부진해지는 경우가 있었다.[9] 실제로 홉킨스는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바운티호의 반란〉에서 한 번 합작한 이후 다시는 같이 작업하지 않았다.[10] 근데 이거 편견이다. 마릴린 먼로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 또는 말론 브란도의 〈아가씨와 건달들〉 등등 메소드 배우들의 뮤지컬 걸작들은 많다.[11] 여기에는 국가의 자존심 문제도 있다. 수많은 명작 각본을 쓴 안톤 체호프와 메소드 연기법을 창시한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파트너 관계로 러시아의 연극의 한 기둥을 이루면서 영국 연극계는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한 기둥을 이루는데 각국 조상들이 물려 준 문화상 가치가 워낙 크니 타국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대표할 정도로 특징이 잘 나타난 예로는 영국의 전설 같은 연극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도 메소드 연기법에 반감을 품었다.[12] 다만 배우를 하나의 부품으로 여기던 히치콕의 영화관이 지금의 관점에선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히치콕은 '나의 영화에서 배우는 가구와 같은 존재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전체를 자신이 철저하게 통제하는 감독이였다. 그는 촬영 전에 시나리오와 콘티를 철저히 준비해서, 촬영이 끝나면 추가로 촬영을 하거나 삭제할 부분도 없었고, 심지어 별도의 편집작업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만약 그런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그의 장기인 서스펜스와 스릴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히치콕이 모든 메소드 배우와 불화를 겪은 것은 아니다. 스티브 맥퀸과 같이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은 마틴 랜다우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촬영장에서 케리 그랜트에게 '감독님이 제게 아무 얘기도 안 해서 고민'이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랜트는 "히치콕은 배우가 마음에 안 들 때만 지적을 하는 사람이야. 그가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건 자네 연기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네."라고 대답했다.[13] 그리고 〈붉은 강〉 개봉 후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메소드 연기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호평이 쏟아지고, 언론이 클리프트를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예견하자 이 사실에 배가 아파진 웨인은 하워드 혹스와 이야기해 오스카 레이스에서 의도적으로 클리프트를 배제시켰고##, 결국 영화는 각본상, 편집상 두 부분 후보에 오르는데 그쳤다.# 그리고 클리프트도 이때의 경험으로 단단히 빡쳤는지 혹스의 1959년작, 〈리오 브라보〉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고, 이후 다시는 혹스와 같이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클리프트의 연기력에 웨인이 열폭해서 난리 친 이 영화는 웨인이 처음으로 거장 존 포드에게 연기로 인정받은 영화란 사실이다. 포드는 "난 그 덩치 큰 개자식이 연기할 줄은 몰랐지!"(I never knew the big son of a bitch could act)란 평을 남겼다고. 즉 혹스와 웨인은 남의 연기 지적질 할 자격이 못된다.팀워크 붕괴는 니가 한거 같은데 존 웨인은 이외에도 논란 많은 배우로 항목 참조.[14] 항목에도 나오지만 브레송의 연기론은 배우의 자의적인 연기를 극렬히 거부했다. 연기론이라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반-연기 성향이 강한 편이고 영화에 맞는 모델을 찾는 걸 선호했다고 봐야 할 정도. 그래서 브레송 영화에서 프로 배우로 뜬 사람은 별로 없다. 안 비아젬스키나 도미니크 산다 정도가 예외.[15] 크리스찬 베일은 연기를 자신의 생계를 위한 직업이자 일로 보고 있는 안소니 홉킨스와 비슷한 성향의 배우다. 연기 성향도 체중 변화를 제외하면 안소니 홉킨스나 게리 올드먼 같은 성격파 유형의 직업형 배우다.[16] 모든 작품에 출연하는 성우.[17] 무엇보다 역할을 이해시키기 위해 얼음 창고에 가뒀다든가, 마야는 일부러 부잣집에 들어가서 부잣집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에 대해 익히고 반대로 아유미는 일부러 거리의 껄렁패처럼 분장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메소드 연기를 위한 특훈이라고 할 수 있다.[18] 애시당초 홍천녀 역은 연기 자체가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정도인 만큼 메소드 연기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