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뉴먼'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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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1994년 2월 1일 | ||
위치 | 7050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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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62626><colcolor=#ffffff> 폴 뉴먼 Paul Newman | |
본명 | 폴 레너드 뉴먼 Paul Leonard Newman |
출생 | 1925년 1월 26일 |
미국 오하이오주 셰이커 하이츠 | |
사망 | 2008년 9월 26일 (향년 83세) |
미국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묘지 | 없음[1] |
신체 | 177cm |
직업 | 배우, 감독, 프로듀서, 레이싱 드라이버, 사업가 |
데뷔 | 1954년 영화 '은배'[2] |
활동 | 1953년 – 2008년 |
배우자 | 재키 위트 (1949년 결혼~1958년 이혼) 조앤 우드워드 (1958년 결혼) |
자녀 | 아들 스콧 뉴먼 (1950년생) 딸 수잔 뉴먼 (1953년생) 딸 스테파니 뉴먼 (1954년생) 딸 넬 뉴먼 (1959년생) 딸 멜리사 뉴먼 (1961년생) 딸 클레어 올리비아 뉴먼 (1965년생) |
종교 | 무종교[3] |
계급 | 미국 해군 상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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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이 반항적인 미국인 남성을 음울함으로 표현했다면, 폴 뉴먼은 그 이미지를 사랑스러운 변절자로 재창조했다. 이 푸른 눈에 짐승같은 기백을 가진 사나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 그 배역이 허드였건, 쿨 핸드 루크였건, 버치 캐시디였건.[5]
뉴욕 타임스[6]
미국의 영화배우, 사회 운동가이자 카레이서.뉴욕 타임스[6]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로 반드시 거론된다. 오드리 헵번과 함께 1960년대 초중반 과도기를 상징하는 배우이며, 동시에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주역 중 하나이기도 했다. 30대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기 시작하여[7] 노년이 다 되어서도 정상급의 위치에 올라 있었던, 영화계 최후의 클래식 시대 스타.[8]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배우 활동 이전
미국 오하이오 주 셰이커 하이츠에서 태어나 1943년 오하이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뉴먼은 조종사를 지망하여 예일 대학교에서 해군의 V-12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색맹이었던터라 조종사 과정에서는 제외되었고, 대신 뇌격기의 무전수겸 후방기총 사수가 되기 위한 기본 훈련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후 하와이의 바버스 포인트에서 나머지 훈련 과정을 마치고 어벤저 뇌격기의 후방기총 사수로 항공모함에 배치되었다.
<rowcolor=#FFF> 18살 입대 당시 사진 |
1945년 오키나와 전투를 앞두고 에식스급 항공모함 벙커힐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뉴먼이 탑승할 뇌격기의 조종사가 귀 염증으로 그라운딩 조치되면서 후방사수였던 뉴먼도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벙커힐이 오키나와 전투의 와중에 일본군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입은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종전 후 뉴먼은 1946년 워싱턴에서 제대했다.
뉴먼은 복무 중 선행기장(Navy Good Conduct Medal)과 2차세계대전 승전기장을 수여받았다.
2.2. 배우 활동
예일 대학교 연극대학원(스쿨오브드라마)을 통해 연기자 수업을 쌓고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메소드 연기를 배운 뒤 1955년 예수의 성배 이야기인 <은술잔>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이 데뷔작은 대실패였다. 얼마나 영화가 엉망이었는지 나중에 그가 대배우로 성공한 뒤 TV 방영 계획이 잡히자 "제발 시청하지 말아달라"는 신문 전면광고를 냈다고 한다.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예상외로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고 그리고 뉴먼이 시대극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때 얼마나 심하게 데었는지, 이후 벤허를 제작할 당시 폴 뉴먼에게도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9]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복싱 영화 <상처뿐인 영광>(1956)에서 가난한 무명 복서 그라지아노 역[10][11]으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Somebody Up There Likes Me(하느님은 나를 좋아하신다)"라는 대사는 냉소와 유머가 뒤섞인 그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유명한 대사.
이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공동 주연의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8)로 할리우드 톱스타로 자리 잡는다. 또 《길고 긴 여름날(The Long, Hot Summer)》(1958)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할리우드의 정상급 배우로 성장했다. 여담으로 《길고 긴 여름날》(1958)에서 함께 공연한 조앤 우드워드와는 실제로 결혼했다. 당시 폴 뉴먼은 유부남이었으므로 불륜이었다(...). 다만 조앤 우드워드 역시 폴 뉴먼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유명 작가 고어 비달과 약혼을 발표하기도 했다.
<rowcolor=#FFF>베니스 영화제 참석 (1963) 당시의 폴 뉴먼 |
몽고메리 클리프트,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과 함께 50년대 미국의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배우. 나쁜 남자의 진정한 원조 몽고메리 클리프트,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보여준 강한 야성성이나 모성애를 자극하는 제임스 딘의 위태로운 반항아 이미지와는 달리, 도시인의 풍모가 강한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반항아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미국 쿨남, 시크남의 원조.[12] 말론 브란도가 야성적인 미남이었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게 폴 뉴먼이었다. 다만 출중한 연기력에 비해서는 상복이 상당히 없는 편이어서, 1958년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물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무려 여섯 번이나 연달아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도 탈락하는 쓴 맛을 보았다. 결국 61세가 된 1986년에 공로상을 받았고 다음해(1987년)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컬러 오브 머니로 주연상을 수상하기는 했으나 "이번에도 보나마나 안 줄텐데 뭘"이라는 생각으로 시상식에 불참하고 말았다.[13] 사실 1961년 작 <허슬러>로 수상했어야 됐었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그 속편인 컬러 오브 머니로 주연상을 받은 것도 아카데미의 뒤늦은 인정이라는 평이 있었다.[14] 이후 7년 후인 1994년에 특별상 격인 진 허숄트 박애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 영광의 탈출에 나온 것 때문에 터키를 제외한 아랍권 및 이슬람권에서는 평생입국금지를 당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유대인들의 항쟁을 다룬 이야기라서 아랍-이슬람권 국가들에겐 매우 불편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동남아 이슬람 나라 여행을 가보고 싶어하던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둘 다 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둘이 터키 여행은 여러번 다녀왔지만 이스라엘 여행은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동세대 배우 가운데 스티브 맥퀸과의 라이벌 의식으로도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 타워링 항목을 참고. 60년대의 양대 인기배우로 경쟁심을 불태웠지만 실제로 둘의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어서 뉴먼이 <내일을 향해 쏴라> 에 부치 캐시디 역으로 캐스팅되었을 때 맥퀸에게 직접 찾아가 선댄스 키드 역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여러가지 사정으로 맥퀸이 거절하면서 선댄스 역은 신인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돌아갔지만.[15][16]
뉴먼은 말론 브란도와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남자 배우 스타일을 결정하는 양대 산맥 중 하나이다. "너는 반항아인가? 신사인가?"[17]
2.3. 자선활동과 정치 성향
할리우드에서는 보기 드문 상식인으로 무명시절 결혼했다가 이혼한 적이 있으나 1958년 두 번째 부인인 조앤 우드워드와 결혼한 이래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한 번의 스캔들 없이 금슬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했다.[18] 다만 조앤 우드워드와의 시작은 불륜이었다. 폴 뉴먼은 두 부부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때 이 부정한 시작점이 숨겨져선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었다.할리우드 식의 사치스런 생활을 혐오해서 유명해진 뒤에는 아예 헐리우드와 멀리 떨어진 코네티컷으로 이사해서 평생을 살았으며, 비영리 식품회사 Newman's own을 설립해서 뉴먼 사망 이후에도 모든 수익을 아동 복지나 빈민 구제 등의 사회사업에 쓰고 있다. 이 회사는 창립 이후 현재까지 2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고 한다. 뉴먼은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기에 우리처럼 부유층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름없다. 나는 운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정치적으로는 완고한 진보 성향으로 헨리 폰다와 함께 고전 영화계를 대표하는 진보주의자이다. 60년대에는 FBI의 사찰 대상에 오르기도 했으며. 50년동안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FBI 존 에드거 후버 국장이 가장 싫어하는 배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실제로 워터게이트 스캔들 당시 상원 청문회에서 공개된 "닉슨의 정적 명단" (Nixon's Enemies List) 20명 중 당당히 19위에 올랐다. 이 명단에는 노조 간부, 진보적 지식인, 좌파 언론인들이 올라 있었고, 폴 뉴먼은 나중에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이룬 최고의 업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정계 진출설도 나돌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만한 인내심도 없고 자격도 없다"라고 고사했다.
말년에도 팀 로빈스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대인 혈통이긴 했으나 유태교를 믿지 않고 시오니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유대인 단체들의 기부 요구에 대하여 비아냥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에서도 그리 좋아하지 않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많은 위대한 영화인들이 무대 위의 이미지와 사생활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의 갭이 컸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진정한 나이스 가이. 그가 2008년 83세를 일기로 폐암으로 사망하자 그가 살던 웨스트포트 마을의 주민들은 배우가 아닌 '훌륭한 동네 이웃'으로서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마을의 주요 건물이 모두 그를 추모하는 조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3. 대표작
- 은술잔 (1954)
- 더 랙 (1955)
- 상처뿐인 영광 (1956)
- 언틸 데이 세일 (1957)
- 추억 (1957)
-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1958)
- 길고 긴 여름날 (1958)
- 왼손잡이 권총 (1959)
- 영광의 탈출 (1960)
- 폴 뉴먼의 고독한 관계 (1960)
- 허슬러 (1961)
- 파리블루스 (1961)
- 애인과 정부 (1962)
- 젊은이의 모험 (1962)
- 국제 음모 (1962)
- 뉴 카인드 오브 러브 (1963)
- 허드 (1963)
- 아웃레이즈 (1964)
- 루이자의 선택 (1964)
- 명탐정 하퍼 (1965)
- 찢어진 커튼 (1966)
- 옴브레 (1967)
- 폭력탈옥[19] (1967)
- 레이첼 레이첼 (1968)
- 내일을 향해 쏴라 (1969)
- 영광이여 영원히 (1969)
- 스탬퍼가의 대결 (1971)
- 폴 뉴먼의 법과 질서 (1972)
- 포켓 머니 (1972)
- 스팅 (1973)
- 맥킨토시의 사나이 (1973)
- 타워링 (1974)
- 명탐정 하퍼 2 (1975)
-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 시팅 불의 역사수업 (1976)
- 슬랩샷 (1977)
- 타워링 (1977)
- 퀸테트 살인게임 (1979)
- 샤도우 박스 (1980)
- 암흑가의 투캅스 (1981)
- 폴 뉴먼의 선택 (1981)
- 폴 뉴먼의 심판 (1982)
- 해리와 아들 (1984)
- 글래스 미네저리 (1986)
- 대지진 (1986)
- 컬러 오브 머니 (1986)
- 블레이즈 (1989)
- 멸망의 창조 (1989)
- 브릿지 부부 (1990)
- 노스바스의 추억 (1994)
- 허드서커 대리인 (1994)
- 트와이라잇 (1998)
- 병 속에 담긴 편지 (1999)
- 웨어 더 머니 이즈 (2001)
- 로드 투 퍼디션 (2002)
- 엠파이어 폴스 (2005)
- 카 (2006)[20] - 허드슨 호넷 역
4. 기타
<rowcolor=#FFF>70년대 시절 | 노년 시절 |
- 외모도 외모지만 새파란 눈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 팬들이 말하길 "분명히 흑백영화에 출연했는데도 폴 뉴먼 눈만은 컬러인거 같더라"라고. 얼마나 유명하면 "Paul Newman's Eyes"라는 노래도 있다.[21] 하지만 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허구헌날 "눈 좀 보여줘여"라고 부탁해대서 귀찮아했고 일부러 선글라스를 자주 끼고 다녔다고 한다.[22] 다니엘 크레이그가 로드 투 퍼디션에 캐스팅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푸른 눈이 폴 뉴먼을 닮아서라고.
- 말론 브란도에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란 거장이 있었다면, 폴 뉴먼에겐 조지 로이힐이 있었다. 둘은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슬랩샷> 3작품을 함께한 페르소나 관계의 인물이다.
- 허영만 화백의 만화 <타짜> 3부 초중반에 꽤 여러 번 언급된다. 좀 쓸데없는 방향으로. 물론 개그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실제 폴 뉴먼을 몰랐던 사람(외국영화에 무관심, 젊은 사람들 등)도 이 작품 덕분에 알게 된 경우가 꽤 많은 모양이다.
- 미국에 있는 몇몇 대학에서는 매년 4월 24일 이 폴 뉴먼의 이름을 딴 뉴먼 데이라고 해서 비공식적으로 학생들이 24시간동안 24캔의 맥주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 생전에 자동차와 모터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닌 실제 프로 레이서로 활약했으며 1979년 24시간 동안 살인적인 경주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르망 24시에 참여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79세(!)까지 현역 레이싱 드라이버로 참가했으며 1997년에는 72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데이토나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3위에 오르면서 '자동차 경주 공식 대회 최고령 수상자'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 사업가인 칼 하스와 함께 1983년에 뉴먼-하스 팀을 설립하여 챔프카 레이스(CART)에 출전하였다. F1 챔피언인 마리오 안드레티와 그의 아들 마이클 안드레티를 드라이버로 영입하여 총 8번의 챔피언을 달성했던 명문 팀이다. 2008년부터는 인디 500에 출전했는데, 폴 뉴먼이 사망하고 칼 하스도 경제적 상황이 안좋아지자 2012년에 팀을 청산했고 칼 하스도 2016년에 사망하였다. 이런 폴 뉴먼의 취향과 커리어 덕분에 2006년 모터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카에 허드슨 호넷 역으로 목소리 출연하였고 이것이 뉴먼의 영화배우로서의 생전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 닛산은 스카이라인의 6세대 모델에 폴 뉴먼을 섭외해 광고를 찍었으며, 광고에서 그가 서킷에서 주행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인기가 높았는지, 얼마 후 그의 이름을 딴 '뉴먼 스카이라인'도 출시 되었다.
- 폴 뉴먼은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그가 자주 착용하였던 롤렉스 사의 DAYTONA (ref.6239) 모델 때문이다. 2017년 10월 27일 뉴욕에서 열린 필립스 경매에서 그가 직접 착용한 DAYTONA가 1775만 2500달러[23], 한화로 약 200억원에 낙찰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로인해 명품 시계 중고 시장에서 동일 모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라 약 1억~1억5천만원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 뉴먼은 그 자신과 닮은꼴로 회자되는 후세대 배우 매튜 매커너히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1] 화장 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달되었다.[2] 잭 팰런스 등이 출연 영화이다.[3]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4] #.[5] If Marlon Brando and James Dean defined the defiant American male as a sullen rebel, Paul Newman recreated him as a likable renegade, a strikingly handsome figure of animal high spirits and blue-eyed candor whose magnetism was almost impossible to resist, whether the character was Hud, Cool Hand Luke or Butch Cassidy.[6] #.[7] 말론 브란도보다 한 세대 뒤에 전성기를 맞은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말론 브란도보다 겨우 한 살 어리다. 50년대에도 큰 인기를 얻었지만 폴 뉴먼의 경우 1960년대에 더 큰 인기를 얻었으며, 클래식 시대가 종결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도 정상의 위치에 있었다.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주름잡았던 케이스가 동갑내기 배우 잭 레먼이 있다.[8] 그와 라이벌로 거론되던 말론 브란도의 경우 노년기의 연기 활동은 비교적 초라한 편이며, 동시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오드리 헵번은 클래식 시대가 완벽히 끝난 1970년대 이후로 활동이 굉장히 많이 줄었다. 물론 당시 임팩트나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오드리 헵번과 말론 브란도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요즘 세대들에게 있어서 인지도는 이 둘에게 크게 밀리지만 연기자로서의 활동 기간으로 보자면 폴 뉴먼은 영화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수명이 긴 편이었고, 클래식 시대의 스타들 중에서는 가장 늦게까지 정상의 위치에 있었다. 사망하기 직전인 2000년대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할 정도이니.[9] 게다가 그는 무신론자[10] 같은 시기에 미들급에서 활동했던 강타자이다. 마르시아노와 그라지아노는 이름이 같고 강펀치를 지닌 이탈리아계 복서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11] 원래 제임스 딘의 차기작이었다.[12] 그의 계보를 잇는 배우로 흔히 리처드 기어, 매튜 매커너히 등이 언급된다.[13] 이후에도 후보에 두번 더 올랐지만 추가 수상은 하지 못했다.[14] 비슷한 예로 영화 디파티드로 스코세시가 꿈에 그리던 감독상을 받았던 것이 있다. 다시말해 진작에 받을걸 아카데미가 미안한 마음에 나중에라도 챙겨줬다는 평.[15] 그 둘은 또 그 둘대로 친해서 나중에 '스팅'에도 함께 출연했고 레드포드가 뉴욕으로 처음 이사왔을때 보증인 노릇도 해줬다.[16] 또 다른 일화로는 만날때마다 레이싱 얘기만 해대는 폴 뉴먼에 질린 레드포드가 교통사고로 반파된 포르쉐를 구해서 폴 뉴먼의 집으로 배송해버린 이야기가 있다. 폴 뉴먼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 반파된 포르쉐를 압축해서는 레드포드 거실에 옮겨놨다고 한다.[17] 이 둘을 잘 비교 설명해놓은 좋은 블로그 글이 있어 소개한다.http://blog.naver.com/oldcine/70171083433[18] 심지어 직접 감마선은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라는 영화를 감독해 조앤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줬을 정도였다. 이 영화에는 딸 넬 포츠도 나온다.[19] 원제는 쿨 핸드 루크(Cool Hand Luke). 일본 제목(暴力脱獄)을 베껴서 한국 타이틀도 폭력탈옥이 되었다.[20] 유일한 애니메이션 출연작이자 배우로서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다.[21] https://www.youtube.com/watch?v=6yDVd5TsSu8[22]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에도 그의 눈이 언급된다.[23] 경매수수료 포함. 그 당시 손목시계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