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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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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
Eastman Kodak Company
파일:이스트만 코닥 로고.svg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 헨리 A. 스트롱
설립일 1888년
CEO 짐 콘티넨자 (2019년 2월 20일~)
본사
[[미국|]][[틀:국기|]][[틀:국기|]] 뉴욕주 로체스터
산업 분야 이미지 솔루션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설립2.2.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2.3. 특허와 코닥2.4. 코닥의 황금기2.5. 디지털과 코닥2.6. 코닥의 파산
2.6.1. 파산 원인2.6.2. 미래를 부정한 대가가 결국은 오명과 위기로
2.7. 재기를 노리는 코닥
3. 현재 생산 제품
3.1. 컬러 네거티브 필름
3.1.1. 컬러플러스 2003.1.2. 골드 2003.1.3. 프로이미지 1003.1.4. 울트라 맥스 4003.1.5. 포트라 160, 400, 8003.1.6. 엑타 1003.1.7. 비전3.1.8. 에어로컬러
3.2. 흑백 네거티브 필름3.3. 슬라이드 필름
4. 카메라
4.1. 디지털 카메라
4.1.1. 미러리스4.1.2. 컴팩트 카메라4.1.3. 울트라 컴팩트 카메라 및 기타4.1.4. 즉석카메라
5. 단종 제품
5.1. 필름5.2. 카메라
5.2.1. 필름 카메라5.2.2. 디지털 카메라
5.2.2.1. P&S, 하이엔드5.2.2.2. DSLR
6. 기타
6.1. 코닥이 관여한 필름 포맷6.2. 참고 항목
7. 라이선싱 사업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이스트만 코닥 구 로고.svg
2016년 10월까지 쓰던 로고
Share Moment, Share Life

미국의 기업. 공식 명칭은 이스트만 코닥이다. 필름아날로그 카메라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1888년 미국에서 창립된 다국적 기업으로 카메라와 같은 영상 제품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메라의 역사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설립자 조지 이스트만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지냈기 때문에 본사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1], 결국 2012년 1월 19일, 끝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대한민국에는 1970년에 두산그룹 계열의 두산상사[2]를 통해 들어왔으며 이후에는 한국코닥으로 독립하여 현재까지도 존속되고 있다. 현재는 인쇄 제판쪽 비즈니스만 운영하며 카메라, 필름, 포토프린터, 스캐너 등 B2C 제품에 대한 비즈니스는 진행하지 않는다.

한때 필름 생산을 위한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했던 이스트만 화학(Eastman Chemical)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었으나 1994년에 완전히 분사하였다. 이쪽은 수많은 화학 특허로[3] 사업 호조를 보이면서 포춘500 기업 목록에 등재될 정도니 계속 자회사로 있었다면 코닥의 파산은 없었을지도. 1990년대에는 필름 카메라 사업도 절호조였고 자회사는 자회사대로 각종 합성수지 사업을 늘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전문분야에 집중하기 위한 분사는 당시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4] 하지만 분사 후 겨우 10년 후인 2004년부터 파산설이 돌기 시작했으니, 결과적으론 미래를 읽지 못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2. 역사

2.1. 설립

1878년만 해도 사진기는 크기와 무게가 CRT 모니터와 비슷했다. 거기에 화공약품과 유리판같은 별도의 촬영 장비까지 옮기려면 사람 두 셋이 들고 가야 했다. 그 무렵, 뉴욕에 있던 로체스터 은행 서기였던 조지 이스트만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이런 무거운 장비가 필요하다는 걸 듣고 좀 더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없나 하여 손수 사진기술을 배우고 여러 실험을 직접 하면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1882년에 필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걸 대량으로 만들자면 엄청난 돈이 들기에 여러 사업가들을 만나 설득과 시범을 보이면서 드디어 사업가 헨리 스트롱의 투자를 얻어냈고, 1883년 감광필름을 만들어내면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걸 대량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성인 이스트만이 여러 언어에서 발음하기가 어렵다는 걸 생각하여 여러 논의 끝에 '코닥'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래도 어떤 나라에겐 어렵다더라... コダック... 덕분에 설립자 이름이 이스트만 코닥이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2.2.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파일:코닥광고.jpg
New Kodak Cameras.
새로 나온 코닥 카메라.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합니다.

(OR YOU CAN DO IT YOURSELF)
(아니면 당신이 전부 하시든가)

1887년 세계 최초 휴대형 사진기를 개발하여 이듬해 판매에 들어가는데 좀 더 편하게, 가볍게, 누구라도 마음껏 찍는다는 걸 강조하면서 본격적인 카메라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닥이 개발한 카메라와 필름은 전문가에게서나 호응을 얻었지 대중적으로는 큰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 때문에 코닥은 당시 이벤트로만 기획된 광고에 고정적인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잠재 시장을 빠르게 넓혀갔다. 무엇보다 전문가와 극지에서 활동하는 모험가의 리뷰를 광고매체에 포함하여 과거 방식으로 사진을 찍던 전문 사진기사의 이목을 휘어잡는 데 성공하고, 또한 파란 스트립의 원피스를 입은 '코닥 걸' (Kodak Girl)[5]라는 캐릭터를 광고에 기용함으로써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한 잠재 시장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카메라의 대중화를 이끌면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코닥은 이스트만의 꿈이었던 싸고 사진 찍기 편리한 카메라를 판매함으로써 더욱더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단순무식한 상자 모양의 코닥 사진기는 당시 일회용 컨셉으로 판매되었는데, 사용자는 카메라를 사서 사진만 줄창 찍고, 필름을 다 쓰면 통째로 코닥으로 보내서 현상과 인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파일:kgmisccountercard1.jpg

이러한 코닥의 경영 방식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당시 '코닥'이라는 단어는 카메라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곤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많은 이들은 빠른 성장 속에서 독과점의 형태를 이루어낸 코닥과 카메라 시장을 어둡게 생각했는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코닥이 독과점을 이용하여 수익을 올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사업을 카메라에 대한 호기심, 흥미로부터 시작한 이스트만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기계 대량 생산으로 자신의 꿈에 그리던 1달러 카메라, 그리고 이후에 브라우니(Brownie)[6]를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카메라 업계에서 다른 회사가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가 된다.

코닥이 일회용 카메라나 염가형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게 매출의 대부분이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초기의 주름관이 달린 일안/이안 뷰 카메라 중에는 화질이나 성능에서 쓸만한 것들이 많다. 렌즈도 일회용의 플라스틱 렌즈가 아닌 독일제 슈나이더-제나 렌즈를 쓴 것도 있었고. 영화용 카메라도 직접 만들었다. 무엇보다 코닥 사는 무거운 유리 건판이었던 것을 유연한 플라스틱에 젤라틴 감광제를 칠한 필름을 최초로 양산하였고 여러 규격의 표준을 만들어내어 영화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며, 그로 인해 아카데미 상도 여러번 탄 회사이다. #

2.3. 특허와 코닥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성공적인 경영으로 빠르게 성장한 코닥이었지만, 당시 코닥이 고용한 과학자의 수는 불과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1911년 이스트만은 독일의 한 화학 공장을 견학하게 되는데, 이 독일 화학 회사는 700여 명의 독일인 엔지니어와 화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시장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던 코닥이었지만, 코닥의 성공이 상품 개발과 혁신으로부터 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스트만은 이를 계기로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지속적인 투자로 상품 개발에 착수한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7] 당시 연구소장에게 2가지의 임무를 부여하는데, 첫째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연구해봐라.'였고 둘째는 '당신의 임무는 사진술의 미래다.'였다. 또한 이스트만은 평생동안 MIT에 기부를 하였는데 1912년 150만 달러의 기부를 시작으로 죽기 직전까지 MIT에만 총 45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8] 이런 이스트만의 기부와 투자는 코닥을 단순한 카메라 필름 회사가 아닌 수많은 특허를 갖춘 견실한 기업으로 만드는 현명한 선택이었고, 코닥은 한 세기 동안 특허를 통해서 가장 큰 이익을 남기는 회사 중 하나로 남게 된다.

2.4. 코닥의 황금기

한때는 필름을 코닥이라고 부를 정도로 필름의 대명사가 되었던 만큼, 이스트만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독신이었던 그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보다 사회에 막대한 기부를 하였고, 회사 직원들에 대한 풍요로운 노동조건[9], 복지에 신경쓰면서 코닥 직원 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대단한 존경을 받는 사업가가 된다.

1932년 코닥의 발전을 이룬 천재 사업가이자 카메라 연구자였던 이스트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이는 코닥의 사업에 전혀 지장이 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에는 더욱 더 진보된 필름을 개발함으로써 다시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하는 등 코닥은 계속 발전해나갔다. 비록 1950년대에 이르러서 코닥이라는 카메라 하나가 지배하던 카메라 시장이 카메라 바디, 렌즈, 필름으로 세분화 됨에 따라 독일의 콘탁스, 라이카, 일본의 니콘, 펜탁스, 캐논이 등장하게 되면서 카메라 시장에서의 코닥의 입지는 줄어들었지만, 이스트만의 카메라 철학이었던 '값싸고 편리한 카메라'를 모토로 개발된 인스터매틱 카메라로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코닥은 가장 많은 이익을 올리던 필름 사업에서 착실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었고[10], 과거 이스트만의 과감한 투자 덕분에 특허 부분에서의 코닥의 독보적인 위치는 모두가 코닥의 앞날을 밝게 예측하는 이유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코닥은 1억 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를 판매하고, 각종 특허와 디지털 기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대내외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고 미국 25대 기업이 될 정도로 모든 사업가의 귀감이 되는 기업이 되기까지에 이른다. 이스트만의 도전 정신을 이어받은 코닥은 지속적인 기술에 대한 투자와 각종 기부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을 받는 기업이었고 미국 공학도가 가장 취직하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코닥의 광고 문구에서 나온 Kodak moment라는 말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라는 의미의 숙어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올림픽 대회의 공식지정 필름 제조업체가 되기도 했었다. 다만 1984년 LA 올림픽 때에는 후지필름이 가져갔다.

2.5. 디지털과 코닥

필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코닥이지만, 사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든 것 역시 코닥[11]이었다. 문제는 이를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것. 1981년에 내부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시장을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상용화를 사양했고, 그 결과 동년에 일본의 소니가 마비카 계열을 공개하며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시킨다. 이렇게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하지 않은 것은 독이 되었고 결국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도래하자 선두 주자였던 코닥은 후발 주자가 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기사

2.6. 코닥의 파산

파일:스크린샷 2023-11-12 오후 10.48.04.png 파일:PinnIKodak.jpg[12]
코닥의 파산 보호 신청에 언론들이 올린 이미지

2004년부터 매년 파산설이 흘러나오다가, 2012년 1월 19일 끝내 챕터 11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

필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회사가 파산했다는 점에서, 이로써 카메라의 시대는 완전히 디지털로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되었고,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하고도 상용화하지 않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며 시대의 변화를 과소평가하다가 실패한 사례로도 남게 되었다.

다만 미국의 파산은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코닥이 신청한 Chapter 11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파산 신청과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회생 절차에 가깝다. 따라서 기업 자체가 망한 건 절대 아니고[13], 정확히는 일반 필름과 디지털 카메라 시장[14]에서 발을 뺐을 뿐 인쇄 출판 업계에서는 계속 거대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양의 특허[15]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플구글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도 코닥은 파산보호 이후 5억 2500만 달러 어치의 특허를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출자한 특허 전문 기업에 팔아치웠다. 또한 코닥은 OLED에 관한 특허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분야는 LG전자가 인수해 갔다.

디지털 시대의 코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코닥 센서 특유의 결과물이나, 코닥 브랜드 자체가 어떻게 쓰일 것인지이다. 코닥의 센서 사업부는 트루센스라는 명칭으로 독립했으며, JK 이미징이라는 회사[16]는 코닥 브랜드로 컴팩트 카메라와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를 제조하고 있다.

2.6.1. 파산 원인

코닥의 파산 원인은 결정적으로 필름에 고수한 나머지 디지털 사업을 천대한 것 인데, 한마디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였지만 필름 시장의 고수를 위해 상용화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결국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일찍이 상용화했더라면 필름 시장이 더 빨리 잠식되었을지언정 파산까지 당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하면 전통적인 필름 시장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하여 이를 사양하였는데, 그것은 창업자인 조지 이스트만의 창업정신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17] 그러나 코닥의 이러한 필름 고수는 시대와 맞지 않는 선택이 되었고 대세는 점차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게 되면서 필름 시장을 고수하던 코닥에게는 퇴물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라는 오명을 쓰게 만들고 말았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디지털 시대를 거부한 코닥을 퇴물에 수구적인 사상을 가진 뒤쳐진 기업이라는 비판까지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를 통해서 시대의 변화와 역동을 읽지 못하거나 무시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쓰라린 교훈과 대가를 얻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업이라는 존재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래를 내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쓰라린 대가와 시대의 흐름에 보수적인 색채의 오명을 쓴 코닥은 결국 이를 후회하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디지털 시장을 인정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후발 주자로 참여하게 된다.

2.6.2. 미래를 부정한 대가가 결국은 오명과 위기로

코닥의 디지털 상용화 거부는 코닥의 역사에 있어서도 큰 실수이며 미래를 부정한 것이 오명을 불렀다는 일설도 있다. 만약 코닥이 디지털로 넘어갔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코닥은 필름에 이은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닥은 창업자인 조지 이스트만의 필름에 대한 창업정신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면서 점차 디지털을 거부하고 필름을 고수하며 결국은 일부로부터 시대를 역행하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그리고 디지털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트렌드도 창업 정신에 매달리는 바람에 철저히 외면하였다. 위에서 수없이 언급했겠지만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지만, 코닥의 필름에 대한 고수는 조지 이스트만의 창업 정신을 고수하려는 방침은 물론 세계 최초로 필름 카메라를 발명한 선구자이니만큼 디지털로 상용화하면 그의 업적이 지워질 것을 우려하여서 필름 사진을 고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GE가 창립자였던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이자 회사의 상징인 조명 사업을 매각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GE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코닥은 창업주의 정신을 고수하는데는 충실했으나 지나치게 그것에 집착하고 자존심에만 매달린 나머지 결국은 세상과 소비자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디지털을 외면해버린 시대착오적인 기업으로 전락하면서 스스로를 나락으로 몰아내고 말았다.

2.7. 재기를 노리는 코닥

뒤늦게 지옥 같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 영국의 Bullitt 그룹과 합작해 데뷔작인 IM5를 2015년 1분기에 출시했다. 5인치 터치스크린에 LED 플래시, 1300만 화소의 카메라를 갖춘 보급형 사양이다. 사진과 연관이 많은 기업답게 기본 카메라 어플에 WiFi를 이용하여 바로 인쇄할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가 있으며 얇은 외관에 iOS처럼 최소한의 간편한 UI로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잡았다. 그러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은 듯하다(...). 자세한 정보는 IM5 문서 참조.

이후 카메라 특화 스마트폰 '엑트라(Ektra)'를 발표하였다. # 대부분의 반응은 '카메라에 스마트폰 기능을 넣은 것 같다'는 평. 센서는 1/2.4인치인데 주변부 링은 왜 그리 크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에 슈퍼 8 필름과 그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시네마 카메라의 출시 소식을 밝혔다. 단, 디지털 시대에 맞게 USB 포트, Mini HDMI, LCD 모니터 등을 지원하고, 음성 파일을 저장하기 위한 SD 카드 슬롯도 있다. 더욱이 옛날에 했던 그 서비스, "셔터만 누르세요. 그 다음은 저희가 책임집니다!"를 시행한다.[18] 렌즈는 C 마운트 렌즈를 사용한다. 작동 모습 하지만 치일피일 미뤄지다가 2023년 11월이 되어서야 출시됐는데, 예상 출시가격이 400~700달러였던 2016년 발표 당시와는 달리 한 놈만 걸려라식 한정판 굿즈로 아예 노선을 돌린 듯한 가격으로 나왔다(...). 자세한 건 슈퍼 8 항목 참조.

2017년 1월 미국의 가전쇼 CES에 참가하여 엑타크롬 필름의 재생산을 알렸다. 35mm 규격의 사진용과 슈퍼 8 카메라용 양쪽으로 모두 출시된다고 한다. 여러모로 필름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는 있으나 이젠 매니아들의 물건으로 전락한 필름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진 불확실했으나, 2020년 E100 엑타크롬 필름이 대박을 치게 된다.

2018년 CES에서는 뜻밖에도 암호화폐 발행 계획과 채굴기 사업 진출(...)을 알렸다. 이로 인해 하루만에 주가가 125% 급등하기도 했지만, 전문가들과 여러 투자자들은 많은 우려를 표했다.

국내 업체의 라이센스 생산을 통해 패션 업계에도 진출하였다. 단, 내셔널 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채널의 의류 브랜드처럼 상표만 빌려준 것이지 정식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브랜드 라이센싱 사업을 통해 몇몇 제품을 코닥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에 잘 알려진 것이 SD카드다.# 디지털 카메라(스마트폰 포함)의 저장 장치가 사실상 SD카드로 통일된 형태라서 과거 카메라에 코닥 필름이 들어간 것처럼 이제는 카메라에 코닥의 SD카드가 들어가는 셈이다. 또한 한국 기업 프리닉스가 개발한 휴대용 포토 프린터에도 코닥 브랜드를 라이선싱하여 판매 중인데, 워낙 코닥이 필름으로 유명했던지라 라이선싱인지 모르고 코닥이 본업으로 귀환했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 게 함정.

3. 현재 생산 제품

3.1. 컬러 네거티브 필름

3.1.1. 컬러플러스 200

동네 사진관에 가면 후지의 C200, 아그파 비스타 플러스 200/400 (2018년 단종)과 함께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필름이 이것이다. 가장 저렴한 만큼 입자감이나 선예도에서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으로 커버.

2020년대 이후로는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매물을 구하기 힘들다. 가격이 2배로 뛰는 등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 2023년 이후로는 가격 안정화에 상대적으로 성공했다. 2만원을 넘던 가격도 13000원대로 낮아졌고, 대부분의 필름 취급 매장에서 1인 1개 구매제한도 풀렸다. 또한 후지의 C200의 가격이 17000원 이상으로 상승함에 따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고, 가장 저렴한 필름 중 하나가 되었다.

3.1.2. 골드 200

과거 필름사진 시대, 코닥의 주력 보급형 필름이었다. 감도 100짜리도 있었으나 단종되고 현재는 200만 존재. 컬러플러스 200보다 약간 개선된 입자감 및 색감을 보인다.[19]

3.1.3. 프로이미지 100

컬러플러스 및 골드와 큰 차이 없는 저렴한 가격에 보다 좋은 발색으로 인물사진에 주로 사용된다. 그레인이 다소 거칠지만 코닥 특유의 노란색과 투명함을 잘 표현해 준다. 명시감도는 100이지만 네거티브 필름인 만큼 노출 관용도가 좋아서 실사용에서는 200으로 잡고 사용해도 문제 없다.

3.1.4. 울트라 맥스 400

감도 400의 범용 컬러 네거티브 필름. 원래 이름은 한글 표기로 '맥스 사백' (MAX 400)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울트라'를 붙여 Ultra Max가 되었다.[20] 코닥스러운 느낌(다소 거친 그레인, 옐로우 발색)을 잘 보여주면서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편리하다. 다만 물빠진 색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패키지에 파란 색이 들어간 것처럼 파랑색을 상대적으로 청량하게 보여준다는 이야기도 많다. 과거에는 800짜리도 존재했다.[21]

컬러플러스나 골드에 비해 가격이 조금 더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ISO 400의 고감도 필름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편이라 수요가 상당하다. 특히 렌즈가 어두운 토이카메라, 플래시가 없는 카메라를 쓰거나, 혹은 실내 촬영 등에 고감도 필름을 구해야 하는 경우 울트라맥스 400 말고는 죄다 가격이 2만원을 우습게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가격적인 이점이 상당히 큰 편.

3.1.5. 포트라 160, 400, 800

전통의 고급 네가필름 포트라. 과거 필름 시대 VC와 NC로 나누어져 있던 라인을 2010년 말 개편하며 통합한 필름이다. 3가지 감도가 있다. 이름에서 말하듯(Portra ← Portrait) 인물사진에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엑타와도 차이 없는 가격이 가장 큰 문제이며 특히 포트라 800은 영화용 필름의 렘젯을 제거하여 일반 현상이 가능하게 만든 800T 제품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감도 800 필름이기 때문에 가격이 유난히 비싸다.

특이점으로는 ISO 400짜리의 경우 비전3를 개발할때 쓰였던 (최신)기술을 활용하여, 관용도가 매우 좋은편이다. 증감에도 유리.

3.1.6. 엑타 100

영화 촬영용 필름인 비전 시리즈를 기반으로 사진가들이 선호하는 색감에 맞게 개발된 최고급 컬러 네거티브 필름. 울트라컬러 100UC의 후속 제품으로 디지털 카메라와 경쟁하기 위하여 코닥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제품이다. 현존하는 전세계의 네거티브 필름 중 최상의 입자감과 색재현성을 보여 준다. 또한, 디지털 센서에서 촬영한 느낌이 들 정도로 뉴트럴해진 색감과 개선된 선예도가 특징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흉악하다.[22]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가 된 21세기가 되어도 비전2, 비전3와 함께 필름 매니아층의 꾸준한 수요를 누리고 있다.

한편 반대로 2020년대 빈티지한 질감의 필름 사진이 다시 한번 유행하면서 워낙 선예도와 색감이 훌륭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마치 최신식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다"며 사진이 너무 잘나와(..) 실망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

3.1.7. 비전

ECN-2 프로세스로 현상하는 영화 촬영용 네거티브 필름이다. 영화 카메라가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로 거의 완전히 대체된 와중에도 필름의 질감과 색감을 선호하는 일부 촬영 감독들에 의해서 아직도 쓰이고 있다.

사진용으론 2010년대 이후로 필름 색감과 동시에 영화적인 느낌을 추구하고자 하는 매니아 층에서 많이 찾고 있다. 영화촬영용 필름이기에 일반적인 35mm 매거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400ft 단위의 롤필름으로 판매되므로, 35mm 필름카메라에 사용 시 로더기 등을 이용해 감아서 사용해야 한다.

영화용 필름의 경우 할레이션 방지용의 특수 레이어인 램젯(ramjet)층이 도포되어 있는데, 이를 다른 업체에서 제거하여 일반적인 네거티브 필름과 같이 C-41 프로세스로 현상할 수 있게 한 후 36컷으로 감은 필름들이[23] 일반 소비자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비전의 경우 1996~2002년의 코닥 비전, 2002~2007년의 코닥 비전2, 2007~현행의 코닥 비전3로 세대가 나뉘어진다. 현행 비전3는 다시 자연광 촬영용의 D(Daylight)타입과 텅스텐 조명 촬영용의 T(Tungsten)타입으로 나뉘어지며, 현재 50D, 250D, 200T, 500T가 판매되고 있다.

3.1.8. 에어로컬러

코닥이 중-고고도 항공 매핑 및 항공 정찰 사진 촬영를 위해 만든 35mm 필름. 이를 가공해서 산타 필름 같은것이 나왔다. 특성 자체가 지질학, 오염, 고고학, 농작물 및 임업 연구, 교통, 도시계획, 기타 사진 측량을 사용하는 분야에 사용되게 만들어서 정전기 방지라던가 내구성이 높게 만들어졌다. 또 입자가 곱다. 다만 일반적으로 스캔하면 사진이 상당히 붉으스름하게 나오기 때문에 별도로 보정을 거치기도 하고, 그 붉은 톤을 즐기기도 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건, 일반 네거티브 필름처럼 C-41로 바로 인화할수 있다는 점인데, 영화용처럼 카트리지로 파는게 아닌 대규모 고객에게만 팔기 때문에 소분해서 구할수 있다. 125가 기본이긴 한데, 100에 놓고 찍어도 상관은 없다.

이런 소분으로 인해 위에 설명한 다른 코닥 필름들보다 가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물론 소분하는 업체마다 가격차이가 있으니 검색후 구입하자.

3.2. 흑백 네거티브 필름

3.3. 슬라이드 필름

4. 카메라

4.1. 디지털 카메라

JK Imaging과의 글로벌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생산되는 제품들로 pixpro 명칭을 달고 나온다. 컴팩트 카메라의 경우 AZ(아스트로줌, 고배율)/FZ(프렌들리줌, 초경량화)+숫자 세 자리가 모델명인데 최대 배율 등을 의미한다. WPZ라는 방수모델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에 기술력도 처진다. 코닥이 직접 만드는 제품이 아니어서 과거 명성이 높았던 코닥 특유의 색상 표현력도 이 라인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렌즈도 자체 개발 렌즈를 사용하며 슈나이더 크로이츠나흐 렌즈를 쓰던 이지쉐어 시리즈보다 광학계 성능도 부족하다. 때문에 정가에 사면 돈낭비일 수밖에 없지만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사이트가 더러 있고 나름의 독특함도 있다.

4.1.1. 미러리스

4.1.2. 컴팩트 카메라

AZ(아스트로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배율 망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Pixpro AZ652와 AZ901은 니콘 쿨픽스 시리즈, 캐논 파워샷 시리즈 등과 비교해도 크게 처지진 않는다. 초망원 카메라나 똑딱이 매니아라면 보유한 제품들 간 비는 구간을 채워줄만한 제품도 있다.


그밖에는 AZ528, AZ252, AZ405, AZ421 등 다양한 모델이 있으나 모두 위의 모델들만 못하다. 그나마 이것들은 가격이 150달러(20만원) 내외라 적당히 싸게 사 갖고 놀기 좋은 장난감 취급을 받는 듯하다. 일부 모델은 할인 크게 받고 사면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가격대 신품이 사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물건인지는 제쳐두자

4.1.3. 울트라 컴팩트 카메라 및 기타

FZ, WPZ, SP 등의 모델군으로 나오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레트로와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이 쪽이 더 팔리는 것으로 보인다.

4.1.4. 즉석카메라

5. 단종 제품

5.1. 필름

5.2. 카메라

5.2.1. 필름 카메라

5.2.2. 디지털 카메라

코닥의 디지털 카메라는 특유의 컬러 사이언스에서 기인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색감과 빼어난 인화물의 퀄리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느린 AF와 셔터랙 등 기기 성능상의 약점 또한 시대를 막론하고 코닥이 보였던 특징이었다. 이것이 코닥이 일본의 후발 주자들에게 시장에서 뒤처지는 이유가 되었으며, 그럼에도 기기적인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코닥을 사용하려 했던 마니아층이 존재했다.
5.2.2.1. P&S, 하이엔드
5.2.2.2. DSLR

6. 기타

6.1. 코닥이 관여한 필름 포맷

6.2. 참고 항목

7. 라이선싱 사업

한국에서 판매 중인 코닥 상표의 의류, 가방 등은 코닥의 자체 제작 상품이 아니며 한국 회사가 라이선스를 통해 제작, 판매하고 있다.

과거 광고 모델은 정해인 등이다.

현재 광고 모델은 김혜윤 등이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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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는 디지털에 적응하지 못했다기보다 당시 잘 나가고 있던 필름 사업에 더욱 주력하고자 디지털을 등한시했다는 탓이 더 큰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후술.[2] 1998년에 OB맥주와 합병되어 (주)두산으로 출범하여 '글로넷BG'로 개편, 2007년 BU 단위로 바뀌었다가 2013년 물류사업 중단 후 2018년 '바이오BU'로 바꿨다. 이마저도 2019년 '두산솔루스'로 분할할 당시 그쪽으로 흡수.[3] 이스트만 화학의 제품 중 친숙한 물건으로는 트라이탄 소재가 있다.[4] 실제로 이후 이스트만 케미컬과 여기서 다시 분사한 회사들이 전세계 PET수지 생산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5] 젊음과 자유를 상징했던 이 코닥 여인은 해외에서 코닥 여사, 파란 옷의 여인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며 일대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6] 간편한 조작성, 단순하고 멋진 디자인의 카메라로 1년만에 25만 개가 판매될 정도로 성공적인 제품이었다. 이 카메라는 이스트만이 고용한 화학자 브라우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7] 이스트만이 세운 연구소는 미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상업 연구 단지 중 하나였다.[8] 이스트만은 다른 미국 대학에도 막대한 기부를 하였지만, MIT가 기부 금액이 가장 컸던 건 이스트만이 개인적으로 존경했던 대학이었기 때문이다.[9] 코닥은 종신고용의 대명사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초창기에 이스트만이 주식 사업으로 번 수입을 일개 노동자에게 나눠준 일화는 유명한 일화. 그러나 1970~1980년대의 미국 경제의 불황과 후지필름이라는 라이벌 기업의 등장으로 고전하던 코닥은 결국 종신고용을 포기했다.[10] 필름은 카메라 바디와 렌즈와는 다르게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던 제품이었다. 비록 필름 한 개의 값은 싸지만, 소비자는 이를 계속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인화 비용에 대한 지출 역시 컸었던 점을 생각하자.[11] 1975년 CCD 센서, 베이어 필터 발명[12] 힌덴부르크 참사 배경을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13] 점유율과 수익성에서 고전할 뿐이지 특허는 여전히 괴물급으로 갖고 있는 회사이기에 특허만 정리해도 엄청난 현금이 나온다.[14] 산업용 필름, 영화 필름 및 종이는 여전히 팔린다.[15] 그 유명한 이미지 미리보기가 코닥의 특허였다.[16] 중국계로 알려졌으나 본사는 미국에 존재. 과거 GE 브랜드의 디지털 카메라를 제조한 회사이다.[17] 거듭 이야기했듯 이스트만은 세계 최초로 카메라 필름을 개발하여 대중화까지 성공시켰던 선구자였다.[18] 촬영한 필름을 코닥으로 보내면 현상과 4K 스캔을 하여 클라우드에 디지털 영상 파일로 올려준다고 한다. 이때 SD 카드를 동봉하면 녹음된 사운드와 싱크를 맞춰 준다.[19] 골드를 쓰다 컬플로 가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보이지만, 컬플을 쓰다가 골드로 가면 큰 차이를 못 느낄 수 있다.[20] 외포장에는 'ULTRAMAX'라고 적혀 있지만, 코닥 알라리스의 문서상 공식 표기는 띄어쓰기까지 포함하여 'Ultra Max'이다.[21] 현재 펀세이버 일회용카메라에 들어가는 필름이 울트라 맥스 800과 동일한 필름이다. 로모그래피에서 포장만 바꿔서 판매중이라는 말도 있으니 참고.[22]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컬러 네가 제조사들이 저가 라인업의 생산물량을 조절하고 가격을 인상시켜 감에 따라, 소비자들도 20000원 넘게까지 오른 C200 살 바에야 22000원 정도로만 오른 엑타를 산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런 현상은 저가 라인업이 불안정할 때마다 계속 나올 듯.[23] 대표적 브랜드로 씨네스틸(Cinestill)이 있다.[24] 다만 본래 필름 시대 슬라이드 필름의 '가장 현실적인 색을 추구한다'는 의의를 생각하면 이것이 본질적 방향에 부합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실제 E100VS나 벨비아 등의 고채도 필름은 특수한 작업에만 사용되었다.[25] 초기에는 렌즈 호환을 미고려한 건지 오류가 많이 났지만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했다.[26] 그 얼마 안 되는 구매자 중에서도 적잖은 수가 기기 고장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