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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4:41:38

오스만-페르시아 전쟁(1743-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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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스만 제국 국장.svg 오스만 제국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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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르 샤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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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페르시아 전쟁(1743-1746)에서 전투가 치러지던 지역들(붉은색), 나디르 샤가 함락했던 지역들(파란색)이 표시된 지도

1. 개요2. 배경3. 극한의 동원4.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격전
4.1. 모술 공성전
5. 캅카스 지역의 재점화
5.1. 의지박약5.2. 마지막 불꽃
6. 어쩡쩡한 마무리

1. 개요

오스만-페르시아 전쟁은 오스만 제국아프샤르 왕조 사이에서 두번째로 일어난 전쟁[1]이며, 아프샤르 왕조에겐 사실상의 총력전이었다는 점에서 페르시아 최후의 불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2]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 정벌을 위해 시민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겼으며, 이는 연쇄적인 반란과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 배경

인도 원정과 중앙아시아 원정 이후, 아프샤르 왕조의 전성기는 다게스탄 원정을 기점으로 끝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디르 샤가 본격적으로 폭군이 되어가고 자신의 맏아들 레자 콜리와의 갈등 이후엔 더욱 막장을 달리고 있었다. 다게스탄의 여러 부족들은 나디르 샤의 폭정과 가혹한 대우에 반발하여 게릴라전으로 대응하였고, 이에 나디르 샤는 다게스탄 지역을 쓸어버리려 했으나 다게스탄 부족들의 '히트 앤 런' 전략에 고전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나디르 샤의 역량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다른곳을 정벌하는 동안 굳이 뒤치기를 시도하기 보다는 반 나디르 샤 세력을 지원해주며 발목을 잡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따라서 다게스탄 원정 당시 오스만 제국은 몰래 다게스탄 부족들을 지원해줬으며, 곧 나디르 샤에게 들키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은밀한 지원은 나디르 샤에게 다시 한번 오스만 제국을 정벌하는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3. 극한의 동원

1743년 5월 18일, 나디르 샤타브리즈를 거쳐 마리반(Marivan) 지역에 도착하였으며, 곧이어 페르시아 역사상 유래없는 대군을 동원하였다. 동원한 페르시아군의 총 규모는 자그마치 375,000명에 달했다. 총 구성원은 투르크+우즈벡 60,000명 아프간+인도 70,000명 호라산 65,000명 서페르시아 120,000명 아제르바이잔+캅카스 60,000명이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동원력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아마도 십 만 단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격전

나디르 샤의 첫 목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방어선의 핵심인 바그다드바스라(Basra) 지역이었으며, 두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주변의 도시나 요충지 등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나디르샤는 압도적인 병력을 나누어 각각 사마라(Samarra), 나자프(Najaf), 카르발라(Karbala), 샤트 알아랍(Shatt al-Arab)강 지역을 장악하게 하였다.[3] 나디르 샤 본인은 1743년 7월 1일에 대량의 곡물 수송부대와 함께 합류하였으며, 따로 20만대군을 이끌고 8월 5일에 키르쿠크를 장악한 뒤, 선발대로 아르빌(Irbil)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렇게 37만이 넘는 대군은 각각 나뉘어져 해당 지역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는데, 나디르 샤는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키르쿠크 지역과 아르빌 지역을 통과한 뒤 모술 지역을 향했으며, 나머지 17만 병사들은 바그다드와 바스라 지역 주변의 도시들을 공격하며 이라크 지역의 방어선을 서서히 압박해오고 있었다.

4.1. 모술 공성전

파일:Afsharid Imperial Persian Colonial Army Artilleryman with Short Barrel Cannon 18 AD.jpg

아프샤르 왕조 소속 페르시아군 박격포병의 모습

1743년 9월 14일, 나디르 샤는 20만 대군으로[4] 모술지역을 포위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동원한 대포는 390문, 거기에 박격포 230문을 동원한 나디르 샤 역사상 최대 스케일의 공성전이었다.

페르시아 포병대는 소수 유럽제 대형 공성포와 신형 박격포까지 동원해가며 포격을 퍼부었다. 거침없는 포격으로 성벽이 파괴되었으나, 도시민들의 단합으로 임시 성벽이 금방 세워졌다. 당시 모술 지역의 도시민들은 나디르 샤가 지나가는 길에 있던 마을이나 지역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기살기로 저항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성은 포격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간자 공성전에서 시도했었던 갱도 공격을 실행하여 일부 성벽을 폭파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더불어 공성용 사다리 1700여개를 동원해 적극적인 도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도성 시도는 성곽이나 탑에 있던 병사들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만다.

그렇게 공성전은 시간이 지체되어 겨울 시즌이 오기 시작하였고, 나디르 샤는 포위를 풀고 병사들을 회군시켰다. 더불어 다른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의 도시들을 공격하던 군사들도 대부분 오스만-페르시아 국경 지대로 회군시키게 하였는데, 이는 겨울 시즌은 물론 오스만 제국 측에서 협상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과의 협상을 원했으며, 따라서 최대규모의 압박을 지속하다가 발을 뺀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나디르 샤의 열정과 의지력이 약화되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불과 10년전의 전쟁에서만 해도, 바그다드 총독을 교체시키고 협상을 재시도한 오스만 제국에게 협박을 바가지로 퍼붓고 재침입한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협상 제안 떡밥 한번에 제 발로 돌아갔으니...

5. 캅카스 지역의 재점화

1744년 1월부터 봄까지 나디르 샤는 호라산 지역에서 벌어진 반란을 제압하는 와중에, 여전히 오스만 제국과의 협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나디르 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으며, 계속 저항하는 다게스탄 지역의 여러 부족들과 페르시아 내 반란 세력들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이에 나디르 샤는 협상의 희망이 거의 없음을 깨달았으며, 반란 진압 이후 다시 서쪽으로 진군하였다.

1744년 8월 21일, 나디르 샤는 병력을 이끌고 카르스(Kars) 지역을 포위하였다. 이번에도 대규모 병력과 각종 중장비를 동원하였으나, 포위전이 지체되자 겨울 시즌이 다가오면서 10월 9일에 또다시 후퇴하고 만다.

5.1. 의지박약

나디르 샤는 1745년 1월에 다르반드(Darband) 지역으로 이동하여 약 3달동안 하렘에 들어가 여자들을 끼고 지냈으며, 그 3달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10여년 전하고 비교했을때, 나디르 샤는 너무 쇠약해졌으며 불편한 잠자리와 혹독한 기후를 피해다니기만 했다. 더불어 예전과는 달리 여자들을 끼고 살았고 재물에도 은근 탐을 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타락은 다게스탄 원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었는데, 아마도 10여년전 전쟁에서 얻은 질병과 온갖 정치적 사정들에 엮이고 맏아들 레자 콜리와의 갈등과 암살시도까지 겹쳐 생긴 의심병과 정신병 등은 나디르 샤를 크게 약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5.2. 마지막 불꽃

1745년 6월, 나디르 샤예레반 지역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는데, 오스만 제국의 대군이 둘로 나뉘어 각각 카르스, 모술 지역으로 행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나디르 샤는 나쉬롤라에게 다수의 병력을 주어 모술 지역으로 보냈으며, 나디르 샤 본인은 8월 7일에 병력을 이끌고 카르스 지역에 도착하였다.

나디르 샤는 14만명의 오스만 제국군과 마주하였으며, 다게스탄 원정때부터 사라진 듯한 용맹이 잠시 부활하면서 오스만 제국군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는 공세적 수비였으며, 나디르 샤의 본질적인(?) 정복 야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6. 어쩡쩡한 마무리

카르스 전투의 승리는 나디르 샤의 마지막 투혼이었다. 그러나, 아프샤르 왕조 내의 반란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고, 결국 나디르 샤는 다시 회군하여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 이때 오스만 제국은 많은 병력을 잃고 동부지역이 위기에 처할뻔한 상황이었으니 다행인 셈이다.

반란 진압 와중에도 오스만 제국과의 협상은 진행되었고, 결국 1746년 9월 4일에 코스탄티니예 조약이 성사되었다. 조약의 내용은 (1), 17세기 초반의 오스만 제국-사파비 왕조 시절의 국경으로 돌아가며 (2), 각국의 포로들을 교환하고 서로 대사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결국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혼신의 투혼을 발휘하여 유리한 기회를 얻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현상유지 수준의 조약을 맺고 물러나고 말았다. 반면, 오스만 제국은 나름대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데 성공한 셈이였다.


[1] 첫번째 전쟁은 1730년부터 1735년 사이에 일어났으나 이때는 아직 나디르 샤가 사파비 왕조를 멸하지 않았기에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간의 전쟁이다.[2] 왜냐면 오스만 제국에 비해 아프샤르 왕조는 국력에서 열세였기 때문이다.[3] 여러 도시들이 나와서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바그다드바스라가 주요 목표이고, 나머지 도시들은 위의 두 도시 공략 이전에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고립시키려는 작전의 희생양(?)으로 생각하면 된다.[4] 영문위키에서는 4만+a라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 전투병의 숫자는 20만 중에서 만 단위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