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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07:12:10

문명 6/등장 문명/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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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thiopian_(Civ6)3.png
에티오피아
Ethiopia
문명 특성 파일:에디오피아.png
악숨 왕국 유산
(Aksumite Legacy)
에티오피아의 국제 교역로가 출발지의 자원당 신앙 +0.5를 부여합니다.
도시가 소유한 개발된 자원의 개수마다 신앙 +1을 제공합니다.[1]
신앙으로 고고학 박물관과 고고학자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고유 유닛 파일:오모로.png
오로모 기병대
(Oromo Cavalry)
에티오피아 특유의 중세 시대 경기병 유닛입니다.
대체하는 군마보다 더 강력한 힘과 뛰어난 시야를 자랑합니다.
언덕에서 이동 시 이동력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고유 시설 파일:앰굴.png
암굴 교회
(Rock-Hewn Church)
에티오피아 특유 건물인 암굴 교회를 건설할 수 있는 건설자 능력을 잠금 해제합니다.
신앙 +1을 제공합니다. 인접한 산맥 및 언덕마다 신앙 +1을 제공합니다.
비행 연구 후 신앙으로 관광을 제공합니다.
매력도 +1을 제공합니다.
(몰려드는 폭풍) 자연재해로 인해서만 약탈당할 수 있으며 파괴되지 않습니다.
다른 암굴 교회에 인접하지 않은 언덕 또는 화산토에만 건설할 수 있습니다.
시작 지점 2단계[2]: 평원 언덕, 초원 언덕, 사막 언덕, 툰드라 언덕.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인간의 옛 선조들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화를 거쳤으며, 1974년에 발견된 3백만 년 전의 인류인 '루시'는 아와시 밸리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에티오피아만큼 긴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인간 진화, 기독교 확산과 식민주의 몰락의 교차로에 위치했으며, 이러한 각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동쪽으로는 홍해(홍해 너머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가 위치)가, 서쪽으로는 나일 강이 흐릅니다. 초기의 인류 문명에 이토록 근접한 '푼트' 왕국이 고대의 이른 시기에 에티오피아의 부유한 교역지로 부상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푼트는 금, 몰약, 유향, 흑단과 상아 등의 귀중품을 생산하여 수출했습니다. 이러한 귀중품 덕분에 푼트는 이집트 상인들 사이에서 '신의 땅'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독립 왕국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악숨은 기원전 1세기 경에 홍해에서 아라비아 남부에 걸쳐 현재 수단에 해당하는 나일 계곡의 내륙까지 아우르며 가장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 중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향후 몇백 년에 걸쳐 이집트가 로마에게 넘어가는 동안 악숨은 번영을 누렸습니다. 교역의 중심지에 위치한 왕국은 아름다운 염료, 무기 제작을 위한 철과 유리 제품을 거래했습니다. 로마의 한 기록서에는 멀게는 인도까지 교역망을 갖추고 있었던 악숨에서 거래 가능한 모든 다양한 물품을 기재하기 위해 무려 한 페이지 전체를 할애할 정도였습니다.

서기 4세기에는 기독교가 유입되었고, 악숨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 최초의 기독교 왕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로마가 바로 뒤를 이었습니다.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역사가들은 왕이 시리아의 기독교인을 생포한 후 그와 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과정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어서 왕실의 주화에는 십자가가 새겨졌지만, 왕국 전체에는 전파되지 못한 기독교는 (기독교가 평민들과 훨씬 연관성이 높았던 로마와 달리) 귀족들만의 종교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발생한 기독교 숙청 사태 도중 다수의 기독교 성인들이 에티오피아로 대피했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백성들의 수도 점차 늘기 시작했습니다(이때 살아남은 전통 종교와 유대교는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도 9인의 성인으로 알려진 단체가 악숨으로 와서 그리스어로 작성된 성경을 현지 언어인 게즈어로 번역하고 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판도는 변화했습니다. 로마는 몰락했고 무슬림 통치자들이 홍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악숨의 피지배자들은 건조하고 약한 토양을 혹사시켰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권력은 남쪽으로 흘러 내륙을 향했습니다.

이러한 격리 기간 동안 모든 것이 상실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9인의 성인이 확립시킨 전통은 계속되었고 자그웨 왕조(900~1200년대) 시대에 건축된 랄리벨라의 고대 교회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도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영영 휴면기에서 정체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황제, 예쿠노 암라크는 자그웨 왕조의 마지막 왕들을 제거했으며, 자신의 통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살해당한 왕들의 딸 중 한 명과 결혼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이 고대의 왕 솔로몬시바 여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이 왕조는 솔로몬 왕조로 명명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조의 통치 하에 역사적 암흑기를 탈출한 에티오피아는 다시 한번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국 전체가 유랑하는 야영지 형태로 유지되었던 그들에게는 고정된 수도가 없었지만, 제국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군사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아프리카의 뿔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지역의 종교적 열정은 지속되었고, 특히 1400년대 후반부터 1500년대 초반까지는 유럽 강대국과의 접촉을 늘렸습니다. 이 기간에는 미술가와 작가 역시 번영을 누리며 위대한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개중에는 케브라 나가스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즈어로 집필된 이 성서에는 시바 여왕의 이야기, 그녀와 솔로몬 왕의 관계, 그리고 성궤가 어떻게 그들의 아들인 메넬리크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돌아오게 되었는지가 재연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500년대 중반에는 에티오피아가 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아비시니아)와 무슬림 소말리아(아달) 사이에 발발하여 1528년부터 1543년까지 지속된 아바니시아-아달 전쟁은 에티오피아를 참혹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교회와 성서가 불길에 휩싸였고 수많은 이들이 전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황제 레브나 덴겔은 포르투갈에 도움을 요청했고, 포르투갈은 1541년에 머스킷총병을 동반한 함대를 마사와로 보냈습니다. 포르투갈 함대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정복자' 아흐마드 그란을 쉽게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갈라우데워스 황제는 남은 포르투갈 병력과 합류한 후 다시 한번 정복자와 맞서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아흐마드 그란은 마침내 와이나 다가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의 군대는 에티오피아에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1559년부터 이어진 소규모 접전은 갈라우데워스가 어리석게도 최소한의 부대로 하라르를 공격한 시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처형당했고 왕정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1636년까지는 영구적인 수도가 다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곤다르의 건설은 에티오피아가 일관성을 되찾는 데 기여했지만 셰익스피어 수준의 정치적 흥미와 드라마로 이어진 궁중의 혼란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다시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곤다르는 상당한 기반 시설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귀족들은 새로운 궁정과 아름다운 정원을 건설하여 철학가들과 예술가들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곤다르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는 여러 지방 간의 분쟁을 남겼습니다. 세 명의 황제가 각자의 재위 기간에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주방장의 아들이었던 테오드로스 2세는 지역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결국에는 여러 도적단 무리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현명한 지도자이자 유능한 전사였으며, 덕분에 자신의 도적단 무리가 작은 군대의 규모를 갖출 때까지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해진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황후 메넨 리벤 아메드는 자신의 손녀와 그의 정략결혼을 추진했습니다. 한동안은 효과가 있었지만 테오드로스는 새로 얻은 친척과의 관계를 끊고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찬탈을 감행한 후 정복을 통해 지역의 대부분을 통일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동정심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해한 왕세자의 아들을 받아들였고, 나중에는 그를 자신의 딸인 알리타쉬와 결혼시켰습니다. 청년으로 성장한 소년은 테오드로스에게서 도망친 후 에티오피아를 식민주의에 대한 보루로 확립시킨 메넬리크 2세가 되었습니다.

식민주의는 마치 열병처럼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고, 뒤늦게 합류한 이탈리아는 제국 건설을 위한 나름의 기회를 모색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오랫동안 집권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무력과 술책을 통해 이집트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프랑스는 소말리아를 점령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점령지 사이에 위치한 홍해의 길고 가느다란 땅(현재의 에리트레아)은 아프리카 고지로의 진출을 위한 중요한 해두보가 되었고, 프랑스의 패권에 대한 두려움과 에티오피아의 통치에 대한 의구심을 안고 있었던 영국은 이 땅을 이탈리아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는 유럽인들에게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수적 열세를 안고 모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워야 했던 이탈리아인들은 학살을 당했고 패전병으로 귀향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세상은 감히 유럽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아프리카의 통치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다시 공격을 감행했고 이번에는 승리했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웠던 황제, 메넬리크처럼 하일레 셀라시에(태명: 라스 타파리 마콘넨, 오늘날의 라스터패리언이 동질감을 느끼는 '라스타파리'가 맞음) 역시 유럽의 지배에 대항한 유명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의 인구조밀국입니다. 에티오피아 역시 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국가처럼 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분열과 유혈 사태에 직면했으며, 1974년에는 공산주의자의 반란으로 인해 솔로몬 왕조가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에리트레아(과거의 이탈리아 식민지이자 에티오피아의 홍해 항구)의 독립에 직면한 에티오피아가 다시 한번 서구를 향해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파일:Ethiopian_(Civ6)3.png
메넬리크 2세
Menelik II
파일:Menelik II(Civ6).jpg
인용문
"멀리서 온 세력들이 아프리카를 나눠 먹으려고 한다면 무심하게 쳐다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የሩቅ ሃይላት አፍሪካን ለመቀራመት ወደፊት ከገቡ እኔ በቸልታ አልመለከትም::)[3]
소개
위대한 왕이자 황제인 메넬리크 2세시여, 당신에겐 백성들을 위한 꿈이 있습니다. 우정과 공장, 동맹과 철도 양쪽을 쌓아 올리며 기지와 지혜로 에티오피아를 밝고 자유로운 미래로 이끌어야 합니다.
지도자 특성 파일:메넬리크.png
각료 회의
(Council Ministers)
언덕에 세운 도시에서 생성되는 신앙의 15%에 준하는 과학과 문화를 얻습니다.
유닛이 언덕에서 전투력 +4를 얻습니다.
안건 에티오피아 고지
(Ethiopian Highlands)
가능하면 언덕 주변에 건설하는 것을 선호하며, 그를 위해 언덕 근처 영토를 비워두는 문명을 좋아합니다. 언덕 근처에 정착해 건물을 짓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위대한 자는 벗에게서 배우고 더욱 위대한 자는 적에게서 배웁니다. 메넬리크 2세(살레 미리암)는 1844년 8월 17일, 에티오피아 쉐와에서 태어났습니다. 메넬리크는 테오드로스 2세가 쉐와 지역을 침략하여 자신의 아비인 왕세자 하일레 멜레콧을 살해했을 당시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하일레 멜레콧의 계보를 끊어 위협 요소를 없애는 대신 테오드로스 황제는 어린 소년을 막달라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들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메넬리크는 자유의 신분이 아닌 정치적 인질이었습니다. 하지만 테오드로스는 메넬리크를 외딴 탑에 가두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테오드로스는 그를 자신의 친자녀들과 함께 양육하며 잘 보살폈습니다. 메넬리크는 테오드로스의 슬하에서 지내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웠고, 궁극적으로는 에티오피아를 통일시키겠다는 테오드로스의 염원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넬리크는 여전히 자유의 신분이 되기를 원했고 1865년에는 다른 쉐와 인질들의 도움을 얻어 궁정에서 탈출했습니다.

메넬리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쉐와의 총독은 도주했고, 귀향한 왕세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쉐와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쉐와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메넬리크는 테오드로스를 지켜보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심지어는 테오드로스 황제가 1868년에 사망했을 때도 그는 인내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메넬리크는 차기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근대화된 통일 에티오피아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이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려면 동맹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쉐와와 인접한 왕국과의 관계를 체결했습니다. 북부 이집트의 확장주의 유럽인들과 서부 수단의 종교 근본주의 운동 사이에 끼어 버린 요하네스 황제가 전쟁에서 패배하자 메넬리크는 자신의 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메넬리크는 1889년 11월 3일에 황제의 지위에 오른 후 메넬리크 2세로 개명했습니다. 그는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로부터 새 이름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메넬리크 2세는 에티오피아 백성들을 위한 번영으로 가득한 장기 집권을 계획했습니다.

황제로서 메넬리크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이탈리아의 침략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영국령 즉, '주어진' 홍해 연안(영국은 새로 점령한 이집트와 프랑스령 소말리아 사이의 완충 지역을 원했음)에 대한 이중 거래를 시도 중이었습니다. 메넬리크는 이탈리아인들과의 협상 끝에 위찰레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은 새로운 식민지인 에리트리아만 이탈리아에 인계하는 것이 원래의 의도였지만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메넬리크는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조약을 거부하고 에티오피아 영토를 방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소접전과 나중에 아두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 끝에 메넬리크와 에티오피아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얻은 승리를 바탕으로 그는 에티오피아의 독립성을 추가적으로 확립하는 아디스아바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아두와 전투는 세계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전의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어느 국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 국가로부터 국토를 성공적으로 지켜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식민지 사람들은 이러한 성공을 목격했으며, 이는 식민주의의 종식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조약을 체결한 후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를 근대화하여 고유의 정체성을 갖춘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 나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차지한 오로모 족의 땅에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세우고 국가의 통화를 만들었습니다. 메넬리크는 국가의 기반 시설 개발을 위한 노력을 확대했으며, 학교를 세우고 철로를 깔아 통행을 장려하고 편의를 도모했습니다. 또한 그는 국민들이 우편 및 전보 체계를 통해 소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메넬리크는 자신의 국가가 번영하고 국가가 말 그대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전의 연합 덕분에 국경을 오늘날에 가까운 크기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넬리크는 여전히 묵과되고 있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발언권이 피력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내의 노예 거래를 진압하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이전의 통치자들은 '산업'을 금지했지만 메넬리크는 노예 상인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노예 거래에 가담하는 마을을 분쇄했습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지만, 앞으로의 세대를 위한 씨앗을 심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앞서가는 생각이었으나, 에티오피아의 소수 민족들에게는 닿지 못했습니다. 이후 메넬리크의 치세는 메넬리크의 암하라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했다고 느낀 소수 민족들에 의해 비판받았습니다.

메넬리크는 재위 전과 재위 기간을 통틀어 세 번 결혼했습니다. 그는 테오드로스 황제로부터 탈출한 후 자신의 첫 번째 아내를 두고 왔습니다. 둘 다 이른 시일 안에 재혼을 한 걸 보면 작별로 인한 상심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메넬리크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해에 워이제로 베파나 울드 미카엘과 결혼했습니다. 메넬리크는 그녀를 무척 사랑했지만 여러 차례의 반역 혐의에 휘말린 그녀와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메넬리크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타이투 베툴과 결혼할 때까지 그녀를 향한 사랑을 천명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마지막 부인과 함께했습니다. 타이투는 이미 결혼 전부터 강력한 군주, 그리고 영향력 있는 여성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1909년에 뇌졸중을 앓은 메넬리크는 예전의 기력을 잃고 말았으며, 라스 비트와다드 테셈마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황후가 그를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고 메넬리크가 사망한 1913년까지 통치하기 위한 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원통하게도 초대받지 못한 황후는 위원회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습니다. 메넬리크의 장례식은 조용하고 급작스러웠습니다. 어떠한 발표나 예식도 없었고,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사랑받은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군주와의 조용한 작별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근대화 이후에도 지속된 정체성을 가진 안정적인 국가였습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에티오피아의 몇몇 소수 민족들이 암하라 사람들에 대한 메넬리크의 편애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1. 개요2. 고유 요소
2.1. 문명 특성2.2. 지도자 특성2.3. 오로모 기병대2.4. 암굴 교회
3. 운영
3.1. 잘 어울리는 승리 유형
4. AI5. 도시 목록6. BGM
6.1. 시대별 BGM6.2. 인게임 BGM
7. 대사 목록

1. 개요


뉴 프론티어 패스의 세번째 문명으로 아프리카 시드권 중 동아프리카 문명이다. 원래 거의 비슷한 지역으로 붙어있는 누비아가 먼저 등장했던 관계로 이번 시리즈에서의 등장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으나, 뉴 프론티어 패스 DLC 문명으로 추가 확정되었다. 지도자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느구서 너거스트 메넬리크 2세. 전작을 플레이한 사람들은 '아도와 전투'[4]란 단어가 익숙할 것인데, 메넬리크 2세는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주변의 부족들을 무력으로 점령한 뒤 지방호족들을 잔혹하게 숙청하여 에티오피아를 제국으로 만들고 근대화한 명군이다.

초상화 모델링이 중절모를 쓴 모습이어서 하일레 셀라시에와 혼동되기도 했는데, 실제 메넬리크 2세의 사진 중에 중절모를 쓴 사진도 많으므로 고증이 틀리지는 않다.

뉴 프론티어 DLC의 다른 지도자들처럼 메넬리크 2세 또한 첫 조우시 재생되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키루스의 모션을 재사용하였다.

문명 아이콘은 이스라엘 민족과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유다의 사자로, 창세기에서 야곱이 아들인 유다에게 내린 축복이 그 기원이다.

2. 고유 요소

지도자 특성과 고유 유닛, 고유 시설, 아젠다가 모두 언덕과 관련이 있다. 이는 에티오피아가 고원 지대에 형성된 국가라는 점을 고증한 것인데, 이런 언덕 특성을 받는다는 것은 곧 스타팅에서 언덕 보정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문명 6에서 언덕 보정을 듬뿍 받는 문명들이 대체로 강력하다는 것[5]은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거기다 문명 특성과 고유 시설 모두 신앙 스팸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므로, 이것이 지도자 특성과 맞물리면 신앙이 쏟아져 나오는 언덕 도시에선 과학과 문화도 함께 상승하는 재미난(?) 모습을 볼 수 있다.

2.1. 문명 특성

문명 특성은 개발된 자원 수에 따라 도시와 국제 교역로에 신앙을 주고, 박물관과 고고학자를 신앙으로 뽑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2.2. 지도자 특성

도시를 언덕 위에 짓기만 하면 신앙의 15%만큼 과학과 문화도 준다. 에티오피아를 타 종교 문명들보다 훨씬 균형 잡힌 문명으로 만들어주는 특성. 아래 운영 부분에서도 언급하듯, 덕분에 에티오피아는 신앙만 왕창 찍어내도 과학과 문화가 어느 정도 커버되는 신기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효과는 언덕에서 전투 시 추가 전투력을 얻는 것인데, 공격에 있어서는 특별히 강한 효과는 아니지만 방어에 있어서는 상당히 강력한 효과다. 공격 시에는 적이 있는 타일이 언덕이어야 하기 때문에 언덕 자체의 방어도 보정도 있어 크게 체감되지 않지만, 방어 시에는 아군 타일이 언덕이기만 하면 되는지라 언덕 자체의 방어도 보정 3 + 지도자 특성 4로 총 +7을 얻게 돼 체감이 상당한 편.

2.3. 오로모 기병대

파일:오모로.png
오로모 기병대
파일:Oromo_Cavalry_%28Civ6%29.png 파일:nfp_oromo1.jpg
오로모'라는 단어는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에티오피아의 지배적 인종 집단을 지칭합니다. 오로모도 가끔은 자신들만의 왕국, 언어와 종교를 보유했습니다(하지만 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로 균등하게 분할되어 있음).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삼으려고 시도했던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황제는 오로모 기병을 이용하여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특히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 아드와 전투).

오로모 기병은 진정한 기병이 아닌 기마보병이었습니다. 즉, 승마 자세에서 무기를 발사하는 대신 이탈리아인들에게 돌진하여 말에서 내린 후에야 무기를 발사했습니다. 사자 갈기로 만든 쓰개와 난폭함으로 유명한 그들은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군부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침략 당시 이탈리아의 야영지 주변에서는 오로모 기병(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을 '갈라'라고 불렀으며 오로모는 이 단어를 매우 불쾌하게 여김)이 무기를 잡은 적을 거세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소문 때문인지 오로모가 돌진하는 모습을 본 다수의 이탈리인들은 즉시 소지한 총기를 던져 버렸습니다. 이탈리아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동지들이 오로모와 대면하는 대신 총구를 자신들에게 겨누었다고 합니다. 한 보고서에는 오로모의 공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이탈리아 병사가 얼이 빠진 상태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말만 되뇌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갈라 기병. 갈라 기병. 공포. 공포."
해당 유닛을 대체다음 유닛으로 승급
파일:꾼마.png
군마
파일:external/hydra-media.cursecdn.com/Icon_unit_cavalry.png
기병대
필요한 사회 제도 테크
파일:Castles_(Civ6).png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Civ6Movement.png
이동력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Civ6StrengthIcon.png
근접 전투력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iv6Production.png
필요 생산력
파일:external/946afca9aacd6f4c7519e9620b2f7efbefec750c59e02cc30f91bdffc33fdac4.png
유지비
5482003
기타 특성군마보다 전투력이 2 높음. 더 넓은 시야를 가지며 언덕 이동 시 이동력 페널티 없음.
(오리지널~흥망성쇠) 말을 요구하지 않음.
(몰려드는 폭풍) 군마보다 말을 적게 요구함.[7]
아도와 전투에 참전했었던 8000명 가량의 기병들 전작의 황실 근위대의 일원이다. 잡아서 거세한다는 소문은 에리트리아 한정이며 포로로 잡은 이탈리아군은 곱게 돌려보내줬다. 보다시피 창을 들고 있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병도와 기병창은 유효한 공격수단으로 유럽 열강을 비롯해 각국에서 이용되고 있었다. 심지어 세계 1차대전에서도 참호로 도배된 서유럽을 제외하면 여러 활약을 벌였으며 2차대전 초창기까지도 기병대에게 냉병기는 사용 가능한 옵션으로 여겨졌다.

오로모[8]라는 이름은 문명 4에서 '오로모족 전사'로 등장한 바가 있다. 문명 4에선 머스킷총병을 대체했다면 이번작에서는 군마를 대체하여 기병유닛이 되었다.경기병 특유의 단점이 보완되고 장점이 극대화된 유닛으로 기본 전투력이 군마보다 2 높으면서 언덕 이동 패널티가 없기 때문에 메넬리크의 지도자 특성인 언덕에서 전투력 보너스를 누리기가 쉽고,덕분에 경기병이 특유의 낮은 전투력으로 전면전에 부적합한 반면 오로모 기병대는 중기병을 상회하는 높은 전투력과 경기병의 장점인 기동력 역시 더 극대화되어 파괴적인 돌파력을 자랑한다.

소위 지형빨을 탄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평지에선 어차피 경기병을 따라잡을 유닛이 없으며 오히려 언덕에서 패널티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다양하게 진입루트를 짤 수 있어서 지형을 가리지 않는다고 보는게 맞다.

군마는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 추가된 반면 에티오피아는 오리지널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데, 확장팩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대체하는 유닛이 없는 고유 유닛으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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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암굴 교회

파일:앰굴.png
암굴 교회
파일:암굴.png
11세기의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고립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몇백 년까지 고대 기독교의 중심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성지를 여행하곤 했지만 무슬림의 정복으로 인해 이러한 순례 여행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러자 랄리벨라 왕은 고국과 가깝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지역을 횡단할 필요 없이 지역의 순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구조물을 건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위를 잘라 만든 랄리벨라의 교회들 즉,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교회들은 평범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각 교회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잘라내어 건축되었으며, 문, 창문, 기둥은 물론 배수로, 지하 묘지와 은둔자의 동굴과 같은 실용적인 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명령에 따라 이 교회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신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예수의 탄생지와 묘지를 내부에 재현했습니다. 이 장소는 순례지 겸 콥트 기독교인들의 예배처로 기능했으며, 이러한 역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필요한 사회 제도 테크
파일:Drama_and_Poetry_(Civ6).png 드라마와 시
입지 조건 기본 산출
사막(언덕), 설원(언덕), 초원(언덕), 툰드라(언덕), 평원(언덕), 화산토
다른 암굴 교회와 인접하지 않은 타일
파일:1신앙.png 신앙 +1
인접 타일 매력도 +1
추가 보너스
[펼치기/접기]
인접한 언덕/산 하나당 파일:1신앙.png 신앙 +1 추가

과학 기술 비행 연구 이후 파일:1신앙.png 신앙 산출량만큼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Tourism6.png 관광 생성
기타 특성
(몰려드는 폭풍) 이 시설은 자연재해로 인해 약탈될 수 있지만, 파괴되지 않음
4세기 악숨 왕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시기부터 만들어진 수 많은 교회들 중 가장 특이한 교회들로 무려 100년 넘게 석공들을 바위에 넣고 말그대로 갈아서 만든 교회로 13세기에 완공하여 지금까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교회로 기능하고 있다. 먹고 살만한건 아무것도 없는 고산지대에 뜬금없이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덕분에 세계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현재까지도 주민들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초반에 열리는 주제에 특수지구인 성지 정도의 신앙을 퍼주는 시설. 언덕 및 화산토로 지형이 제한되고 주변 지형빨도 타지만 특성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언덕 근처에 도시를 피는 경우가 많아서 짓는데는 무리가 없다. 자연재해로 인한 시설파괴에 면역[9]이라 화산토에도 안심하고 설치할 수 있다.

초반부터 고유시설 건설 시대점수 +4점을 주고, 신앙을 퍼주니 고전시대 황금기 기념비성과 매우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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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영

핵심은 언덕신앙. 서브로는 문화와 관광이 되겠다. '성(城)'과 관련된 컨셉이 없다는 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조지아가 기존의 구린 특성들 대신 달고 나왔어야 했다고 평가받을 정도.

이중 사실상 '신앙'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고유 시설인 암굴교회가 주축이 된다. 초반에 뚫리는 암굴교회의 막대한 신앙 펌핑을 기반으로 기사단장의 예배당으로 병력 창출을 통한 정복 승리, 록밴드/박물관/고고학자 구입을 통한 문화 승리, 종교 유닛 스팸을 통한 종교 승리 등을 노려볼 수 있다. 심지어 '언덕에 지을 것'이라는 간단한 조건 하나로 도시가 생산하는 턴 신앙의 15%만큼 턴 과학/문화도 오르기 때문에 캠퍼스를 아예 짓지않거나 적게 지어도 된다.[10]

지형빨을 다소 탄다는 평이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에티오피아는 언덕 스타팅 보정을 받아서 수도는 반드시 언덕 위에 건설할 수 있고, 굳이 모든 도시를 언덕 위에 건설하는게 아닌,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에 산출을 몰아주고 키우는 운영을 하면 된다.[11] 또한 신앙 플레이의 가장 큰 딜레마인 캠퍼스 입지에서도 자유로운데, 성지와 인접경쟁을 하는지라 입지가 까다로워지는 캠퍼스를 에티오피아는 말끔하게 포기해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연경관이나 산이 없어도 언덕만 있으면 암굴교회를 통해 신앙을 많이 확보할수 있다.

비밀 결사 모드를 켜고 플레이하면 극한의 뽕맛을 느낄 수 있는데 보이드싱어스 2진급(도시의 신앙 생산량의 20%만큼 과학, 문화, 금 추가)과 함께라면 언덕에 지은 도시에 한하여 총 보너스 35%라는 괴랄한 산출량이 나온다. 이 사실을 이용하여 캠퍼스를 짓지 않고 과학승리하는 영상도 있다.# 단 범람원과 대욕장, 대재앙 모드의 예언자는 필수다.

3.1. 잘 어울리는 승리 유형

문명 특성과 고유 시설물 덕분에 막대한 양의 신앙을 얻을 수 있으며, 문화와 정복, 종교 중 어느 유형의 승리를 노리든 신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 과학
메넬리크의 지도자 특성 덕분에 과학이 추가로 주어지며, 지도자 특성을 잘 써먹으라는 의도에서 언덕에서 게임을 시작할 확률이 높아 생산력 보너스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정도를 가지고 과학 승리에 도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므로, 꼭 에티오피아로 우주선을 날려야겠다면 신자 교리 예수회 교육을 비롯해 과학이나 생산력과 관련된 교리들을 반드시 확보하도록 하자.

* 문화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먼저 문명 특성과 고유 시설물 덕분에 신앙이 넘쳐나는데, 문명 특성에는 이 신앙으로 고고학 박물관과 고고학자를 구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붙어 있다. 또 비행을 연구하면 고유 시설물이 관광을 뱉어내며, 지도자 특성 덕분에 문화에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다.

* 외교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 신앙을 외교 호의로 바꿔먹을 수 있다면 유리할 테지만, 그건 아니기에.

* 정복
다시 한 번 쓰지만 에티오피아는 많은 신앙을 얻을 수 있는 문명이며, 신권정치 정부를 도입하고 기사단장의 예배당을 건설하면 이 신앙이 유닛으로 바뀐다. 또 메넬리크의 지도자 특성에는 언덕이라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전투력 보너스를 직접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도 붙어 있다.

* 종교
종교만 어떻게든 창시하면, 그 다음은 쉽다. 에티오피아가 작정하고 찍어 내는 종교 유닛들을 같은 종교 유닛으로 맞받아칠 수 있는 문명은 몇 없을 것이다.

4. AI

종교 창시시 수천년간 기독교를 믿은 국가답게 동방 정교를 창시한다. 메넬리크 2세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믿었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무슬림들과는 친하게 지냈다. 현재에도 에티오피아에 무슬림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종교 알박기를 시도하는데 꽤나 상대하기 까탈스럽다. 먹으려고 놔둔 땅에 어느새인가 도시를 펴고 앉아있다. 도시 알박기와 도시국가 포섭에 뛰어난 편이기 때문에 다른 AI와는 척을 지려 하지 않지만, 유독 플레이어 문명과는 척을 지려하는 특성이 있어서 중후반부에는 꽤 거슬리는 적으로 돌변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견제를 해두는 편이 좋다. 높은 확률로 종교비상을 거니 성전 명분으로 전쟁을 걸어주자.

5. 도시 목록

도시 이름으로 몇 번째 도시인지 알 수 있었던 문명 1~5와 달리 수도 이름만 고정되어 있고, 그 후에 세워지는 도시는 리스트에 있는 이름에서 무작위로 나온다. 아래 리스트는 게임 데이터 순서대로 되어 있다. (수도는 ★)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 ★
곤다르(Gondar)
하라르(Harar)
악숨(Axum)
아두와(Adwa)
랄라벨라(Lalibela)
메켈레(Mekele)
데시에(Dessie)
짐마(Jimma)
소도(Sodo)
디레 다와(Dire Dawa)
아디그라트(Adigrat)
웰디야(Weldiya)
앙코베르(Ankober)
알라마타(Alamata)
이르갈렘(Yirgalem)
고레(Gore)
네겔 보라나(Negele Borana)
허니르(Ginir)
데바르크(Debarq)
네요(Nejo)
데브레 베란(Debre Berhan)
아비 아디(Abiy Addi)
메르사(Mersa)
소코타(Soqota)
사인트 아헤바르(Sayint Ajebar)
첸차(Chencha)
안탈로(Antalo)
이파트(Yifat)
다바트(Dabat)
데브레 시나(Debre Sina)

6. BGM

6.1. 시대별 BGM


6.2. 인게임 BGM










원곡은 Tizita로 중세한정으로 Bati도 편곡되어있다.고대및 중세시대 BGM에선 코러스가 들리는것이 특징이다.

7. 대사 목록

대사는 파일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적혀진 대사로, 실제 게임 내에서는 스킵 등으로 출력되지 않는 대사들이 존재한다. ★는 실제 출력되지 않는 대사.

메넬리크 2세는 암하라어를 사용한다.성우는 Debebe Eshetu
메넬리크 2세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최초 조우
나는 솔로몬가문과 혈통의 유다사자[12]이자 에티오피아의 황제인 메넬리크입니다.[13] 안녕하십니까.
(እኔ የይሁዳ አንበሳ ቤቴና ሀረገ ትውልዴ ሰለሞናዊ የኢትዮጵያ ንጉሰ ነገስት ምኒልክ ነኝ:: ሰላም::)
어젠다 긍정적
평원에서 편안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언덕은 나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ሜዳማውን ምድር በመውደድህ ደስ ብሎኛል፣ ተራሮቹ የኔ ናቸውና::)
어젠다 부정적
권리와 관습에 따라 높은 언덕은 내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ከፍ ያሉ ተራሮች በመብትም በባህልም የኔ ናቸው:: ሌላ ቦታ ብትሰፍር ይሻልሃል::)
플레이어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함
유다사자가 정복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음... 곧 충분히 알게 될 것입니다.
(የይሁዳ አንበሳ ምንግዜም አሸናፊ መሆኑን አታውቅም? ደህና በቅርብ እስኪበቃ ታየዋለህ::)
메넬리크 2세가 플레이어에게 선전 포고
당신의 행동은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모욕했으며 따라서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ስራህ ለኢትዮጵያውያን ስድብ ነው፣ እናም ከባድ ዋጋ ትከፍልበታለህ::)
패배
신이 에티오피아를 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이 당신의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승리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እግዚአብሔር ኢትዮጵያን የሚተዋት ይመስልሀል? እውን ላንተ የሚያደላ ይመስልሀል? በዛሬው ድልህ አትፈንድቅ::)
정보 대사
수도 정보 교환
당신이 호의에 보답한다면 우정에 입각해 나의 고향에 대해 말해주겠습니다.
메넬리크 2세가 플레이어를 근처 도시로 초대
인제라 빵과 팁, 키트포가 올려진 식탁을 차렸습니다. 우리와 함께 드시겠습니까?
플레이어가 메넬리크 2세를 근처 도시로 초대
예.
★방문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거래 관련 대사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승낙
공평한 거래는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줄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거절
이 쓸데없는 제안을 내 눈 앞에서 치우십시오.
★메넬리크 2세가 국경 개방 승낙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자유롭게 돌아다니십시오. 그러나 사자는 조심하십시오.
★메넬리크 2세가 국경 개방 거절
우리는 독립해 있고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에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넬리크 2세가 국경 개방 제안
우리의 군대가 당신의 영토에 용무가 있습니다.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우호 관련 대사
메넬리크 2세가 우호 제안 거절
나를 용서하십시오. 에티오피아는 외국인과 경솔한 계약을 맺어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메넬리크 2세가 우호 제안 승낙
함께하면 우리 국민들은 신의 빛 아래에서 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메넬리크 2세가 우호 선언 제안
솔로몬의 혈통과 유다의 사자의 우정을 제안합니다!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거절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계십니다.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승낙
역사의 바른 편에 서 계십니다.
★메넬리크 2세가 동맹 제안
이 자유의 노래들을 부르도록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전쟁 관련 대사
메넬리크 2세가 플레이어를 공개 비난
당신의 모든 말이 불경스럽습니까? 당신의 모든 행동이 기만적입니까? 당신의 규칙에서 구원을 받을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메넬리크 2세를 공개 비난
당신의 규칙은 불명예스럽고, 당신의 말은 거짓이며, 나는 당신의 기만적인 마음을 세계에 알릴 것입니다.
★메넬리크 2세가 평화 협정 승인
신의 은총 속에서 평화롭게 지냅시다.
★메넬리크 2세가 평화 협정 거절
에티오피아는 정복당한 적이 없으며 군인들은 아직도 전투를 갈망합니다.
★메넬리크 2세가 평화 협정 제안
이 전쟁은 양쪽의 국민들을 아프게 합니다. 어서 전쟁을 끝냅시다.
플레이어 군대가 에티오피아 국경에 접근
정말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장 군대를 이동시키십시오!
대표단 관련 대사
메넬리크 2세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수용
대표단이 돌아오면 대화를 거십시오. 그러면 아프리카의 지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줄 것입니다.
메넬리크 2세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거절
우리는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메넬리크 2세가 대표단을 보냄
에티오피아가 커피, 인제라 빵 그리고 훈훈한 인사를 보냅니다.

[1]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문명 특성 부분 참조.[2] 숫자가 적을수록 우선도가 높으며 5단계까지 있다.[3] 1891년 4월 10일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4] 전작의 텍스트는 아두와 전투로 나왔다.[5] 대표적으로 그리스, 한국 등이 뽑힌다[6] 원문: Improved resource tiles receive +1 Faith for each copy of that resource the city owns.[7] 일반 속도 기준 10.[8]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고대부터 에티오피아의 정체성을 이어온 암하라인과는 다른 민족으로, 16~17세기 즈음 남쪽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였다.[9] 약탈은 될 수 있다.[10] 단, 캠퍼스와 달리 성지와 인접 경쟁을 하지 않는 극장가는 꼭 지어주자.[11] 신앙플레이 특성상 빠른 개척자 스팸을 통한 다도시 확장에 유리한데 이는 에티오피아 역시 마찬가지며, 이는 입지가 좋은 도시를 많이 확보하기 쉽다는 뜻과 일맥상통 한다.[12]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자 에티오피아의 국수이다. 특성에 박혀있는 사자 문양이 유다의 사자이다.[13]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리크가 에티오피아에서 왕국을 건설하였다는 아랍권의 전설을 채용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