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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시리즈의 도시 국가 | |
문명 5 | 문명 6 |
1. 개요 및 시스템2. 등장 도시 국가
2.1. 과학 중심
2.1.1. 제네바(Geneva)2.1.2. 하투사(Hattusa)2.1.3. 서울→바빌론→안산(Anshan)2.1.4. 스톡홀름→볼로냐(Bologna)2.1.5. 팔렝케→미틀라(Mitla)2.1.6. 페즈(Fez)2.1.7. 타루가(Taruga)2.1.8. 날란다(Nalanda)
2.2. 군사 중심2.2.1. 발레타(Valetta)2.2.2. 카불(Kabul)2.2.3. 프레슬라프(Preslav)2.2.4. 카르타고→느가자르가무(Ngazargamu)2.2.5. 그라나다(Granada)2.2.6. 아카드(Akkad)2.2.7. 라호르(Lahor)2.2.8. 볼린(Wolin)
2.3. 문화 중심2.3.1. 난마돌(Nan Madol)2.3.2. 모헨조다로(Mohenjo Daro)2.3.3. 빌뉴스(Vilnius)2.3.4. 쿠마시(Kumasi)2.3.5. 안타나나리보(Antananarivo)2.3.6. 라파누이(Rapa Nui)2.3.7. 카구아나(Caguana)2.3.8. 아유타야(Ayutthaya)
2.4. 산업 중심2.4.1.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2.4.2. 브뤼셀(Brussels)2.4.3. 홍콩(Hong Kong)2.4.4. 토론토→멕시코시티(Mexico City)2.4.5. 오클랜드(Auckland)2.4.6. 카디프(Cardiff)2.4.7. 싱가포르(Singapore)2.4.8.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2.5. 상업 중심2.5.1. 잔지바르(Zanzibar)2.5.2. 자카르타 →반다르 브루나이(Bandar Brunei)2.5.3. 암스테르담→안디옥→베네치아(Venice)2.5.4. 리스본→모가디슈(Mogadishu)2.5.5. 무스카트(Muscat)2.5.6. 카호키아(Cahokia)2.5.7. 훈자(Hunza)2.5.8. 사마르칸트(Samarkand)
2.6. 종교 중심2.6.1. 라벤타(La Venta)2.6.2. 예레반(Yerevan)2.6.3. 예루살렘(Jerusalem)2.6.4. 캔디(Kandy)2.6.5. 아마(Armagh)2.6.6. 나스카(Nazca)2.6.7. 바티칸 시국(Vatican City)2.6.8. 싱게티(Chinguetti)
2.7. 문명의 등장으로 대체된 도시 국가1. 개요 및 시스템
처음 시작 시에 플레이어와 똑같이 개척자, 전사로 시작을 하며 운이 좋으면 이 상태로 도시 국가를 만날 수도 있다.[1] 모든 도시 국가는 각각 특유의 종주국(suzerain) 보너스를 가지고 시작하며, 플레이어가 각 도시 국가에 가장 많은 사절을 보냈을 때 제공된다. 플레이어가 보낸 사절 수 (1, 3, 6)에 따라서 보너스 수준도 차이가 난다. 각 도시 국가를 표현하는 로고가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토론토의 단풍 문양, 라벤타의 할머니 조각상 문양과 같은 한 문명을 대표하는 고유 문양을 도시 국가도 가지게 되었다.
도시 국가와 교류를 하면 도시국가의 타입, 종주국, 사절의 수, 영향을 끼치는 문명, 사절 퀘스트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전작과 같이 선전 포고도 가능하다. 또한 종주국인 문명이 종속국 도시 국가의 군사 유닛을 징병하여 일정 시간 동안 사용할 수도 있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지나갈 수는 있던 전작과 달리 초반이 지나면[2] 중립적인 상태에서는 도시 국가의 영토를 지나갈 수 없으며, 현대 시대 사회 제도인 이데올로기로 열리는 '포함 외교' 정책 카드를 사용해야만 후반에도 종주국이 아닌 도시 국가의 영토를 지나갈 수 있게 된다. (포르투갈은 예외)
전작과 마찬가지로 확장팩이나 DLC 등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면 해당 문명에 속하는 도시 국가는 도시 국가 리스트에서 빠지고 새로운 도시 국가가 들어온다.
2021년 2월 무료 업데이트로 야만인 부족 모드가 추가되었는데, 이 모드를 활성화하고 게임을 진행하면 야만인 전초기지가 도시 국가로 발전헐 수 있다. 어떤 도시 국가가 될 것인지는 무작위로 정해지며, 알림도 뜬다.
1.1. 사절
본작에 새로 도입된 시스템으로 도시 국가와의 교류는 사절(envoy)을 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전작의 경우 외교 승리가 경제 승리로 여겨질 정도로 도시 국가와의 외교는 거의 금에 달렸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모든 문명은 우호도 점수를 쌓아 사절을 모을 수 있고, 외교정책과 정부 형태에 따라 사절 모이는 속도가 달라진다. 보통 속도 기준으로 우호도 점수와 그에 따른 사절은 다음과 같다.
- 족장제: 턴당 1 우호도 점수, 우호도 점수 100 도달 시 1사절
- 1티어 정부: 턴당 3 우호도 점수, 우호도 점수 100 도달 시 1사절
- 2티어 정부: 턴당 5 우호도 점수, 우호도 점수 150 도달 시 2사절
- 3티어 정부: 턴당 7 우호도 점수, 우호도 점수 200 도달 시 3사절
- 4티어 정부: 턴당 9 우호도 점수, 우호도 점수 250 도달 시 4사절
하나 이상의 사절을 갖고 있으면 원하는 만큼의 사절을 각 도시국가에 보낼 수 있다. 사절 탭을 ESC로 닫지 않고 마우스로 닫으면, 사절을 일부만 보내고 나머지는 저장할 수도 있다. 다만 보낸 사절은 다시 되찾아 올 수 없고, 이 사절단은 특정 경우(도시 국가의 멸망, 스파이의 공작 등)를 제외하면 영구적으로 해당 도시 국가에 머물게 된다.
도시 국가가 부여하는 퀘스트를 달성해도 도시 국가에 사절을 하나 보내는 효과를 얻는다. 전작과 다르게 퀘스트는 한 번에 하나씩만 활성화되고, 플레이어와 최초 조우 시, 그리고 시대가 바뀔 때에만[3] 새로 부여된다. 퀘스트의 종류는 특정 유닛 생산, 특정 위인 영입, 특정 특수지구 건설, 유레카나 영감을 충족, 6타일 내 야만인 주둔지 철거, 종교 개종(종교를 창시한 경우) 등이 있다.
플레이어가 세계 최초로 도시 국가를 만났다면 사절을 하나 얻고 시작하고 이 효과가 매우 강력하다. 별다른 투자 없이 특수지구를 올리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시 국가 첫 사절로 인해 초반 러쉬의 타이밍이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근처에 보너스와 사치 자원 하나 없는 땅도 도시 국가만 잘 만나면 게임이 쉬워질 정도다. 몰려드는 폭풍 초기에는 도시 국가가 서로 뭉치는 경향이 다소 심해 한 문명이 첫 사절을 연속해서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결국 이는 패치로 다소 수정되었다. 하지만 도시 국가 1사절의 영향력이 아직도 매우 큰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는 도시 국가 1사절의 초반 산출량이 하락하고 중후반 기대 산출량은 늘리는 식으로 개편되었다.
사절에 영향을 주는 다른 수단들은 다음과 같다.
- '신비주의' 사회 제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회 제도를 해금할 경우, 1~3개의 사절 획득.
- '카리스마 리더'[4]/'포함 외교'[5] 정책카드에서 턴당 우호도 점수 +2/+4.
- '외교 연합'[6] 정책카드: 각 도시국가에 최초로 보내는 사절을 2명으로 증가.
- '외교 지구' 특수지구를 도심부 옆에 건설할 경우, 사절 1개 획득. 외교 지구의 부속 건물인 '영사관'/'상법부'에서 각각 턴당 우호도 점수 +2/+3 제공.
- 불가사의 아파다나[7]를 건설 시, 사절 2개 획득. 이후 같은 도시에 불가사의를 하나 건설할 때마다 추가 사절 2개 획득.
- 불가사의 킬와 키시와니[8]를 건설 시, 사절 3개 획득.
- 정부 체제 '군주제' 선택 시, 턴당 우호도 점수 50% 증가.
- '봉쇄'[9] 정책카드: 도시국가에 사절을 보낼 때 종주국의 정부가 플레이어의 정부와 다른 경우, 해당 도시 국가에 보내는 사절이 2배가 됨.
- 총독 아마니의 조종자 진급: 아마니가 배치되어 있는 도시국가의 사절이 2배로 취급됨.
- 스파이의 공작 임무인 '추문 날조' 성공 시,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해당 도시국가에 사절을 가장 많이 보낸 문명의 사절을 감소시킬 수 있다.
도시 국가가 멸망하여 점령되거나 파괴되면 모든 사절이 없어지고, 도시 국가를 해방시킬 때에는 해방자에게 시대에 따라 3/6/9명의 사절이 부여된다. 다른 문명의 사절은 0으로 초기화된다.
자신이 도시 국가에 직접 전쟁을 선포하면 모든 사절이 파괴된다. 그렇지 않고 해당 도시 국가가 적과 동맹을 맺어서 자신과 전쟁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절 수가 그대로 유지되며, 이 상태에서 사절을 늘려서 적과의 동맹을 풀어버릴 수도 있다. 적과 동맹 상태로 전쟁 상태가 되면 종전 전까지 무슨 수를 써도 동맹 관계를 되돌릴 수 없었던 전작과 크게 다른 점이다. 동맹을 풀어버리면 시대 점수 2점을 준다.
도시 국가에 사절 1개를 넣으면 영토가 1타일 늘어나고 도시 방어력도 1 오른다. 이는 '외부 우호도로부터 전투력 +n' 으로 나타나며, 성벽 방어력이 아니기에 공성 지원 유닛의 효과가 먹히지 않는다.
사절에 대한 보너스가 있는 문명/지도자 특성은 다음과 같다.
- 그리스: 고유 특수지구인 아크로폴리스를 건설할 때마다, 사절을 1개 획득.
- 노르웨이-하랄드 하르드라다(바랑인): 고유 건물인 목조 교회 하나당, 턴당 우호도 점수 +1을 얻는다.
- 미국-테오도어 후즈벨트(의용 기병대): 교역로가 있는 도시 국가로 보내는 사절이 2배가 된다.
- 조지아-타마르: 같은 대중 종교를 가진 도시 국가로 보내는 사절이 2배가 된다.
- 헝가리-마티아스 코르비누스: 도시 국가의 군대 동원 시, 해당 도시 국가의 사절이 2만큼 증가.
- 바빌론-함무라비: 전문 특수지구가 아닌 다른 특수지구[10]를 처음으로 건설할 때마다 사절을 1개 획득.
1.2. 도시 국가 보너스
도시 국가는 사절단이 1/3/6명일 때마다 보너스를 부여한다. 과학 도시 국가인 제네바를 예로 들자면, 오리지널 기준으로 1명일 때는 수도에 과학 +2, 3명일 때는 각 도시의 캠퍼스마다 과학 +2, 6명일 때는 각 도시의 캠퍼스마다 과학 +2(총 +4)를 제공한다. 확장팩마다 보너스가 다르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3개 이상의 사절을 배치하고 다른 문명들에 비해 가장 많은 사절단을 가졌다면 해당 도시 국가의 종주국이 되며 다음과 같은 혜택을 받는다.
- 각 도시 국가만 가지고 있는 강력한 특유 보너스를 제공한다.
- 해당 도시 국가가 보유 중인 전략 자원과 사치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
- 금을 지불하여 일정 턴 동안 도시 국가의 유닛을 조종할 수 있다. 이 경우, 군사 유닛의 유지비는 도시 국가가 부담한다.
- 전쟁/휴전 상황을 공유한다.
- 영토를 지나갈 수 있게 되고, 건설자로 도시 국가의 영토에 시설을 건설할 수 있다.
- 해당 도시 국가의 영토가 우호 영토 취급을 받는다. 유닛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고 치유량이 증가하며, 전투 시 전쟁 피로도와 전쟁광 패널티가 감소한다.
- 도시 국가의 첫 종주국이 된 문명에게 시대 점수 2점을 제공한다.
- 자신이 종주국인 도시 국가 하나당 턴당 1의 환심을 얻으며, '헝가리 국회의사당' 불가사의를 건설하면 턴당 2의 환심을 얻는다.
종주국과 전쟁 상태가 되어 도시 국가와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기존의 사절단은 없어지지 않고, 사절단을 기존 종주국 이상으로 보내서 회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시대 점수를 받으며, 둘 이상의 문명이 같은 수의 최대 사절을 가지면 어떤 문명도 종주국이 되지 않는다.
종주국 보너스가 도시 국가의 중심 속성과 다를 때가 가끔 있다. 과학 중심이지만 전략 자원을 주는 하투사, 산업 중심이지만 쾌적도를 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등. 종주국 보너스는 특히나 후반에 무한 경쟁을 하게 되므로 상황에 맞게 필요한 도시 국가에 몰아주는 것이 좋다.
1.3. 싱글 AI와 도시 국가 운영
AI들은 여러 도시 국가에서 골고루 보너스를 받기보다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절을 자기 주변의 원하는 도시 국가에 몰아박는 경향이 있다. 고난이도 AI는 사절도 보너스를 받는 듯하지만 데이터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자신이 관심없는 도시 국가들은 점령을 하는데, 심지어 보너스를 받고 있는 도시 국가도 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도시 국가 유닛은 고난이도 AI가 받는 전투력 보너스를 받지 못하므로 밀리는 게 보통이지만, 간혹 좋은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 국가를 어줍잖은 병력으로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병력이 궤멸당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확장팩을 거치면서 AI의 도시 국가 상대 공격성이 증가해서 AI가 도시 국가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난이도 AI는 문명에 상관없이 초반 1~2개의 주변 도시 국가를 점령하며 시작하고, 후반에도 승리 지향과 상관없이 도시 국가를 종종 점령한다.
전작과는 달리 플레이어를 종주국으로 모시고 있다고 해서 자동 보호가 되지 않으며, 다른 문명들도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그냥 침공해온다. 이를 막으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다.
- 보호전쟁: 도시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군사력이 근처에 충분하면 전쟁광 페널티 없이 적 유닛을 처치한 다음 배상금도 받아낼 수 있다.(물론 공개비난이 선행되어야 한다.)
- 해방전쟁: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가 점령당했을 때 사후 액션을 취하는 방법이다. 도시 국가를 해방시키면 시대에 따라 3/6/9개의 사절을 주므로 더 많은 사절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기껏 해방시켰는데 AI들이 축적해온 사절과 아마니 총독 콤보를 박아서 종주국을 빼앗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해방의 경우에는 자신이 종주국의 지위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가 자신의 종주가 아닌 타 문명에 의해 뺏길 경우, 8턴을 기다리거나, 그 문명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걸면 된다.
- 유닛으로 도심부 포위: 군사력을 직접 투사하기 힘든 상황이면 이 방법밖에 없다. AI가 자기 주변에 군대 배치하지 말라고 짜증을 낼 가능성도 있다. 우호나 동맹 문명이 자기 도시 국가를 점령하는 일도 빈번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닛 6기를 동원하게 된다.
- 도시 국가 비상: 흥망성쇠부터 등장하는 '도시 국가 비상'에 참여한다면,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또한 비상 전쟁은 해방전쟁과 다르게 적 도시를 점령해도 똑같이 패널티 감소를 받으므로 이걸 기회로 마음에 안드는 적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위의 방법들과는 다르게 플레이어가 종주국이 아니어도 참여가 가능하다. 다만 우호 문명이 내 도시 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 이후 친선관계 이상의 우호적 국가들은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2019년 4월 패치에서 불멸자, 신 난이도에서는 도시 국가가 처음부터 고대 성벽을 갖고 시작하게 바뀌어 도시 국가의 초반 생존력이 크게 증가했다.
1.4. 도시 국가 징병
자신이 종주권 보너스를 받고 있는 도시 국가에 돈을 지불하고 일정 턴 동안 도시 국가의 전투 유닛들을 조종할 수 있다. 징병에 필요한 비용은 도시 국가가 보유한 유닛 전체의 생산 비용과 같으며[11], 일단 징병을 하면 군사 유지비는 도시국가가 지불한다.징병된 유닛들은 플레이어의 유닛으로 취급되어 업그레이드시키거나[12] 삭제(체력이 100일 때)할 수 있고 진급도 시킬 수 있다. 다만 4티어 이상으로 진급은 불가능하다. 기존에 찍힌 진급들은 유지되지만 애초에 진급된 도시국가 유닛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징병을 하면 플레이어의 컨트롤이 AI보다는 우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훨씬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 최신 유닛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도시가 포격할 수 있는 범위 내를 전장으로 삼으면 다수의 공세 병력을 막아낼 수도 있고 턴이 충분히 남아 있다면 장거리 원정도 보낼 수 있으므로 공격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으며 평화적으로 시한부 길막을 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종주권 보너스를 잃는 순간 남아 있는 턴 수와 관계 없이 즉시 징병이 끝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흥망성쇠 확장팩에서는 징병을 했을 때 시대 점수를 받고, 자신과 전쟁 중인 문명에 인접한 도시 국가에서 징병 시 추가 시대 점수를 받는다. 도시국가 징병에 혜택을 주는 정부 청사 건물인 외무부가 생겼다.
도시국가는 종주국의 군사력이 막강하면, 병사를 자체적으로 해산하기에 외교 승리가 아닐 경우에는 점거해 두는 편이 좋다.
에티오피아 팩에서 외교 지구가 등장함에 따라 모든 사절 보너스가 외교 지구에 맞춰 재조정되었다. 대체로 너무 빠른 초반 스노우볼링을 막고 후반 건물까지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끔 조정된 듯하다.
징병에 대해 보너스를 받는 문명은 다음과 같다.
- 노르웨이의 지도자 하랄드 하르드라다(바랑인)는 징병 비용이 75% 감소한다.
- 수메르는 징병 비용이 절반이 된다.
- 헝가리는 징병할 때 해당 도시 국가에 사절이 2명 추가되며, 도시 국가 유닛의 업그레이드 비용이 75% 감소한다.
2. 등장 도시 국가
등장하는 도시 국가의 수는 오리지널 기준, 각 유형별로 4개씩 총 24개이다.바이킹 시나리오 팩 DLC에서 각 유형별로 하나씩 추가되어 총 30개,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 또 하나씩 추가되어 총 36개, 마지막으로 뉴 프론티어 패스 DLC의 마야&그란 콜롬비아 팩, 바빌론 팩에서 각각 하나씩 추가되었다.
최종적으로 각 유형당 8개씩, 총 48개의 도시 국가가 등장한다. 이중 게임에서 등장 할 수 있는 도시국가는 24개가 최대치이다.
도시 국가 기술 순서는 오리지널 → [DLC] 바이킹 시나리오 팩 → [GS]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 → [NFP] 뉴 프론티어 패스 DLC 순이며, 교체된 도시 국가는 뒤로 오도록 했다.
2.1. 과학 중심
과학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과학 +2. |
3 | 모든 캠퍼스에 과학 +2. |
6 | 모든 캠퍼스에 추가 과학 +2. |
흥망성쇠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과학 +2. |
3 | 모든 도서관 건물에 과학 +2. |
6 | 모든 대학교 건물에 과학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와 모든 도서관 건물에 과학 +1. |
3 | 모든 대학교와 영사관 건물에 과학 +2. |
6 | 모든 연구소와 상법부 건물에 과학 +3. |
2.1.1. 제네바(Geneva)
제네바 |
구석기 시대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건설한 제네바는 기원전 500여년 경에 켈트족의 요새 도시가 되었다가 기원전 121년에는 로마인들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이 도시에 대한 소유권은 인접한 여러 분쟁 국가 사이를 오가다, 1033년에 독일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당시 제네바는 기독교의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으며 도시의 주교는 신성 로마 황제의 직접적인 봉신으로써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교회와 국가가 정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관계로 향후 500년에 걸쳐 사부아 가문의 공작들과 가톨릭 교황들이 제네바에 대한 통치권을 두고 경합을 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시를 통치했던 주교가 1533년 도시에서 도망치자 제네바의 시민들은 가톨릭과 사부아 가문을 모두 몰아내기 위한 위험한 시도를 했고, 도시는 개신교 국가였던 베른과 동맹을 맺으며, 1536년에 제네바를 개신교 자주국으로 선포했습니다. 제네바는 이후로 오랫동안 개신교 신앙인을 위한 보루로 남았지만 인구 중 일부는 17세기 초에 가톨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네바는 과학적 학문과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559년, 존 칼뱅은 '인문주의' 신학대학으로 제네바대학교(구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했습니다. 머지않아 선구적인 지질학자였던 제안 안드레 데루크, 물리학자 피르맹 아바우스트 및 박물학자 프랑수아 후버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자가 이곳에 도착하여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하였고, 1909년에는 이 대학교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최초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최근에는 1978년에 노벨상 약학 부문을 수상한 베르나 아르버와 도시 북서부 교외 지역에 위치한 CERN(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의 초대 소장인 펠릭스 블록이 제네바에 거주했습니다. 심지어 제네바에서 비롯된 이러한 모든 과학적 진보를 기념하는 과학사 박물관(Musée d’Histoire des Sciences)도 볼 수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가 다른 문명과 전쟁 중이 아닐 때, 플레이어의 도시에 과학 +15% 제공 |
모든 도시에 과학 +15%라는 심플하고도 강력한 효과를 자랑한다. 금이나 생산력이면 몰라도 과학을 곱연산으로 뻥튀기할 수단은 제네바 이외엔 거의 전무하다. 내정을 돌릴거라면 1순위로 가져와야 할 도국. 다만 전쟁이 난무하는 멀티에서는 간단하게 무력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의외로 AI가 종주국을 가져가는 경우가 높지는 않다. 공중정원이 있는 문명은 종주국으로 잘 삼으려 하지 않는다.
문양은 성 베드로의 열쇠에서 온 것으로, 이렇게만 써 놓으면 스위스와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오늘날 제네바 시기와 문장에 이 열쇠가 그려져 있다. 지금의 깃발은 15세기부터 쓰여 왔으며, 성 베드로의 열쇠가 제네바를 상징하게 된 것은 더 이른 1293년부터다.
2.1.2. 하투사(Hattusa)
하투사 |
한때 강대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사는 오늘날 햇볕에 그을린 그저 그런 폐허로 변해버렸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 히타이트족은 뷔위칼레 산마루의 선사시대 폐허에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 곳은 방어에 용이하다는 점 외에는 큰 장점이 없었습니다. 기원전 19세기와 18세기에는 아시리아의 상인들이 도시에 교역소를 건설했고 이 곳을 통해 설형 문자가 유입되었습니다. 100년 후에 아니타 왕은 도시를 파괴하고 "나를 이어 왕이 되는 자가 하투사를 재건한다면 그에게 폭풍 신[16]의 형벌이 있을지어다."라고 도시를 저주하는 내용을 바위에 새겼습니다. 불과 한 세대의 시간이 흘렀고 그의 저주는 무시되었습니다. 히타이트의 왕은 이 곳에 새로운 궁전과 수도를 세우기로 결정했고, 이는 히타이트의 '위대한 왕' 27명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왕들은 현재까지도 이름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투사는 제국의 학문, 종교 및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성기에는 도시의 영토가 1.8 제곱킬로미터에 달했으며 기원전 1333년경에 재위한 수필루리우마의 시대에는 도시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도 건설되었습니다. 남쪽 구역에는 흙벽돌 가옥과 상가에 둘러싸인 네 개의 거대한 석조 사원이 서 있는데, 한 때 하투사에는 4만에서 5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하투사는 히타이트족이 고안한 수 많은 기술 중 대부분이 탄생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철을 사용하여 더 나은 무기와 도구를 제작한 최초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타이트족은 처음으로 전차에 두 마리의 말을 사용했으며 바위투성이의 길에 좀 더 적합한 철테 바퀴를 활용했습니다. 농부들은 관개 방식을 개선했고 작물을 바꿔 심었으며 다수의 농기구를 고안했는데, 이러한 모든 노력이 종국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도시는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 제국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발견했지만 개발하고 있지 않은 전략 자원을 턴당 종류별로 2개씩 제공 |
문명 3에서는 플레이할 수 있는 문명이었지만 본작에서는 도시 국가로 등장한다. 전략 자원을 제공하는 종주국 보너스가 특징으로, 석유, 알루미늄, 우라늄 등 희귀한 전략 자원이 필요할 때 이 도시 국가가 있으면 그야말로 구세주로 느껴진다. 다만 이미 전략 자원을 확보했다면 필요성이 급감한다.
다만, 이것도 채굴중이 아닌 자원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군사공학 연구를 했다면, 이후부터 AI들이 서로 종주국이 되겠다고 사절을 꼬라박는 결과를 볼 수 있다. 질산칼륨부터 종주국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극 후반부 전략자원인 우라늄은 회소성이 높아서, 사절을 20개씩 꼬라박는 문명이 존재하기도 한다.
문양은 히타이트 시대의 유물인 히타이트 태양면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20세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확히는 하투사가 아니라 오늘날 알라자회윅이라고 불리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하투사가 바로 근처라 큰 상관은 없을 듯. 또 이 유물 자체가 히타이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으며, 알라자회윅에서 그닥 멀지 않은 앙카라는 1974년에 이 유물에서 본떠 시 로고를 만들어 1995년까지 썼으며 앙카라 대학은 오늘날까지도 이 유물을 상징으로 쓰고 있다.
2.1.3. [교체]서울→바빌론→안산(Anshan)
안산 |
엘람 예술에는 두드러지게 감성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과 동물의 형태를 결합시키는 것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원시 엘람의 '단지를 든 무릎 꿇은 황소'는 황소의 머리와 발굽을 하고 컵을 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매끄럽고 볼륨이 있는 은제 조각상입니다. 여성적인 동시에 남성적이며, 동물인 동시에 인간입니다. '무릎 꿇은 황소'와 대조적으로 '구엔놀의 암사자' 석회석 조각상은 발톱과 꼬리, 암사자의 머리를 가진 강인한 근육질의 양성적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힘을 발산하는 동시에 중성적입니다. 젖은 점토 위에 굴려서 그림을 찍어낼 수 있는 원형 기둥인 엘람 문장은 특히 정교하며, 조각상과 다른 그림들은 종교적 중요성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문장은 거래에서 개인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문명은 흥망성쇠를 겪는 법이지만, 안산은 상당 기간 존속했었습니다. 안산은 기원전 2700년대에 한동안 수메르에게 정복되었었고, 현재 이란 지역 출신의 인근 무리들에게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그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1000년이 지난 1500년대에 안산은 바빌론과 싸웠고 이 거대한 도시를 약탈해 바빌론의 신왕 마르두크의 석상을 전리품으로 가져온 새로운 제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람의 지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이 도시는 기원전 500년대에 쇠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서의 에스겔서는 엘람의 쇠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에스겔서 32:24) |
종주국 보너스 |
걸작 저서마다 과학 +2, 성유물 및 유물마다 과학 +1 제공 |
문화 승리를 하려고 걸작을 모으는 문명에게 과학을 보태주는 고마운 효과를 가지고 있다. 물론 비교적 초반부터 얻을 수 있는 저서의 효과가 크다보니 꼭 문화승리를 하려는 문명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이 문명의 효과를 받기 위해서는 비밀결사인 보이드 싱어스가 필요하며, 부족마을로 가입하는 오벨리스크가 완소하기 때문에, 저서를 뽑아먹는 문명은 종주국을 가져간다. 온라인 속도라면 51턴 이후부터, 사절이 줄줄이 올라간다.
원래 서울의 자리였으나, 흥망성쇠 확장팩에서 한국이 플레이어블 문명으로 추가되면서 바빌론으로 변경되었고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 바빌론 문명이 공개되면서 안산으로 다시 한 번 변경되었다. 참고로 원문인 Anshan은 원래는 안산이 아닌 안샨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으며, 대한민국 안산시나 중국의 안산시와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 지역 지명이다.
문양은 지구라트를 본땄다. 다만 수메르나 바빌론은 물론 엘람 문명에서도 지구라트를 지었으며, 그 중에는 초가 잔빌이라고 해서 제법 규모가 큰 것도 있다.
2.1.4. [교체]스톡홀름→볼로냐(Bologna)
볼로냐 |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이 도시에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 대학교는 표준 정의에 따른 세계 최초의 대학이기도 합니다. 고풍미, 풍요로움과 문화를 고루 갖춘 이 도시는 로마가 부상하기 전부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기원전 510년경에 도시를 세우고 펠시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보이라는 갈리아족이 펠시나를 정복했으며 기원전 190년에는 로마인들이 도시를 점령한 후 보노니아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보노니아는 수백 년간 로마의 도시로 번영을 누리다가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고트족, 서고트족, 랑고바르드족과 훈족의 손을 거친 후 신성로마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1070년에 재발견된 유스티니아누스 로마 법전은 학자에게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법전과 다른 문서를 연구하기 위해 여러 학회가 함께 뭉쳤으며 여러 비공식 집단이 점차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두 집단은 일반 및 종교 기관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함께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볼로냐의 유명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되었으며, 오늘날의 학생들에게는 이 대학의 상향식 업무처리 방식이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수를 고용하고 급여를 지불하고 해고했으며, '교수 비난회(Denouncers of Professors)'라는 위원회가 존재했습니다. 짐작건대 비난에 지치기 시작한 교수들은 이에 대한 대처로 나름의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대학에서는 박사 학위만 수여했으며, 학과 과정은 수사 신부 수련과 민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볼로냐 대학은 괴팍한 각료에 대한 신성로마제국의 법적 영향력과 권한을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는 볼로냐 학자들의 연구물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한을 굳혔고 자신의 힘을 인정하기를 거부한 도시를 상대로 개전 이유를 확보했습니다. 또한 1158년에는 대학에 인가서 교부하여 왕실 국고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여 세계 최초의 국립 대학을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대학에 대한 궁극적인 권한을 둘러싼 의문을 가라앉혔으며, 덕분에 교수들은 강의에, 학생들은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양측 모두 표면적인 법률 절차에 구속되는 대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 서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볼로냐는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석학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였으며 페트라르카, 베케트, 코페르니쿠스, 뒤러를 비롯한 수많은 권위자들이 이 대학을 졸업했으며, 코페르니쿠스는 교수로도 재직했습니다. 도시 안에서는 교역이 번창했고 도시의 부유한 재정과 대학교의 가치는 구엘프 가문과 기벨린 가문 간의 오랜 분쟁에 있어 승자의 중요한 상배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군중의 폭동으로부터 귀족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에 수많은 유명 요새탑이 건설되었습니다. 볼로냐는 16세기 초에 교황령으로 편입되어 교황의 세속적 권한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현재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며, 도시의 여러 교회, 궁전과 포르티코가 복원 및 보전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대학의 모태가 된 볼로냐 대학은 지금까지도 미술 및 과학 분야에서 권위자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곳의 문화, 음식, 음악과 정신적 삶을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특수지구에 건물이 있다면, 해당 특수지구가 유형에 맞는 위인 점수 +1점 제공 |
스웨덴 문명이 추가됨에 따라 스톡홀름 도시국가를 대신하여 투입되었고 종주국 보너스를 그대로 가져왔다.
1단계 건물이 있는 특수지구에서 해당 유형에 맞는 위인 점수 1점을 제공한다. 인게임 설명에선 극장가만 예로 들어서 예술 위인 이외에는 종주국 보너스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특수 지구들에도 정상적으로 적용된다. 즉, 모든 도시의 모든 특수지구에 반쪽자리 오라클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라클과 마찬가지로 핑갈라의 진급으로 뻥튀기도 가능하다. 승리 유형에 관계없이 내정을 하겠다면 무조건 종주국 효과를 먹어야 하는 S급 도국.
초반부터 전쟁 안하는 문명에게 1순위로 들어간다. 스웨덴, 브라질 같이, 위인에 목마른 문명은 거진 1순위로 종주국의 위치를 가져가지만, 페리클레스나, 순지타 케이타 같은 지도자라면, 거의 사절경쟁에 들어가기도 한다.
문양은 볼로냐 시내에 있는 유적인 쌍둥이 탑에서 따 왔다. 1109년에 착공되어 1119년에 완성된 것으로, 볼로냐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다.
2.1.5. [DLC][교체]팔렝케→미틀라(Mitla)
미틀라 |
오늘날 멕시코 지역의 옥사카 계곡 중심부에서 사포텍족은 여러 도시를 세웠습니다. 미틀라는 그 중 가장 번성한 대도시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이 점령했을 때 약 50만이 거주하고 있었고 태양력, 의식을 위한 별도 달력과 자체 저술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호박, 고추, 콩 등을 생산하던 번성하던 농경 사회였습니다. 건조한 옥사카 계곡에서 사포텍족은 관개 시설, 요새, 웅대한 종교 및 문화 시설물을 세웠으며, 이러한 건축물들은 이웃한 메소아메리카 부족의 잦은 침입과 스페인 정복 와중에도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현재 멕시코에는 약 100만의 사포텍족이 살고 있습니다. "미틀라"는 죽음의 장소를 의미하는 나와틀 단어의 스페인어 해석입니다. 미틀라에서 죽음은 상서로운 일입니다. 자포텍 종교는 산자와 망자를 두 개의 별도 범주로 나누며 각각 고유한 신이 존재합니다. 미틀라에 묻힌다는 것은 망자가 죽음의 신이 아니라 산자의 신(번개신과 지진신)과 융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운 좋은 자들은 "구름 사람"이 되어 하늘에서 후손들을 보살폈습니다. 스페인이 미틀라를 약탈해 사포텍의 종교 및 문화 중심부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건조한 기후 덕분에 나머지 문화유산들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돼 왔습니다. 특히 미틀라의 그라케스(석조 광장의 벽에 새겨진 기하학 무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기하학 무늬는 메소아메리카 신화 속 생물인 거대뱀의 크기를 암시하며, 미틀라의 전성기 때에는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졌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캠퍼스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의 성장률이 15% 증가. |
마야 문명이 추가되고 팔렝케가 마야의 도시로 편입됨에 따라 대신하여 투입된 도시국가로 팔렝케의 종주국 보너스를 그대로 계승했다.
공중정원 불가사의의 효과를 캠퍼스가 있는 모든 도시에 부여하는 효과인데, 공중정원의 효과가 그렇듯이 성장률 15%는 소소한 수치인만큼 쟁쟁한 다른 도국들에 비해 수수한 편이다. 하지만 플레이에 따라 선결조건 달성도 쉬운 편이고, 선결조건만 달성한다면 효과를 받기 위해 복잡한 다른 행동을 취할 필요 없이 문명의 기초 체급을 키워준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공중정원을 건설한 문명이라면 사절을 꼬라박지는 않는다. 그만큼 생산성에 여력이 없기 때문, 초반 캠퍼스를 미리 건설한 문명이라면 종주국을 탐내는 경우가 많다.
문양은 사포텍 문명의 예술품에서 가장 흔한 디자인이었던 나선형 무늬와 마름모꼴 무늬를 가져와 창작한 것이다. 사포텍 문명에서 나선형은 삶과 죽음, 마름모꼴은 신의 눈을 의미했다고 한다.
2.1.6. [GS]페즈(Fez)
페즈 |
모로코의 가장 유서 깊은 제국 도시인 페즈는 수백 년 동안 북아프리카 교역 및 교육의 중심지였습니다. 페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예 중심지와 이슬람교 학문을 자랑하며, 도시의 옛 거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와디 페스 유역에서는 두 개의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첫 번째는 789년에 샤리프 이드리스 1세가 강 동쪽에, 두 번째는 809년에 이드리스 2세가 서쪽에 건설되었습니다. 페즈를 비롯한 이슬람교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마드라사는 859년에 건설된 알 카라윈(Al Quaraouiyine)입니다. 이곳은 현재까지 운영 중인 가장 오래된 마드리사로 볼 수 있으며 세계 최초로 학위를 수여한 기관이기도 합니다(볼로냐와 분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며, 가장 오래된 대학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관련 도시 국가 항목을 참조하기 바람). 두 정착지는 11세기에 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통일되었으며, 당시에는 지역에 아랍과 베르베르의 문화적 전통이 주입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알모라비드 왕조는 통일의 결과로 도시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은 공적을 전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페즈는 13세기 초반에 모로코 마리니드 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며, 도시의 특징인 고전 모로코 건축 양식의 많은 부분이 이 기간에 도입되었습니다. 마리니드 가문은 마드라사의 건설을 강하게 독려했으며, 이는 페즈가 이슬람교 법학, 특히 수니 말리키 학파의 중심지라는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페즈는 유대인 지구의 규모, 그리고 금세공사와 보석세공사의 품질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븐 바투타라는 여행가는 1325년에 페즈를 통과하며 여행을 시작하여 1349년까지 도시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하라를 횡단하는 교역품이 알제 등의 지중해 항구로 향했던 만큼 도시 안에는 수많은 대상 숙소가 있었습니다. 도시는 무두 공장으로 유명했으며 슈아라 탄네리에서는 11세기부터 전통 패션에 사용되는 가죽을 제혁해 왔습니다. 도시는 성벽으로 요새화되었으며, 당시의 성벽은 현재까지도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페즈는 모로코의 수도가 마라케시로 이전되면서 영고성쇠를 거듭했습니다. 페즈의 마드라사는 당시에도 교육의 중심지로 남아 모로코의 지적 요람이 되었습니다. 내륙에 위치한 페즈는 중요한 교역 도시였으며 도시 위쪽의 언덕에서는 올리브와 과수가 재배되었습니다. 현재 페즈는 구도심을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으며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한 보행자 전용 지역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관광객은 푼독이라 불리는 전통 모로코식 여관이나 빌라에 머물 수 있습니다. 페즈의 보호모인 타부슈(짧고 챙이 없으며 끝이 잘린 고깔형 모자)의 정확한 역사적 출처는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터번의 크기가 그의 사회적 입지를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터번과 관련된 패션은 더욱 복잡해졌으며 윤리 규제 법령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페즈 모자는 터번이 말리는 중심으로 기능했으며 대부분이 페즈에서 생산되었습니다. 1829년, 술탄 마하무드 2세는 터번 폐지를 포함한 일련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붉은 색의 페즈를 일상적인 용도로 몸소 사용했으며 이는 관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행동으로 널리 칭송받았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종교 유닛을 사용하여 도시를 처음으로 개종시킬 때마다 그 도시의 인구수당 과학 20 획득 |
문명 5 멋진 신세계에서 모로코 문명의 도시로 등장한 적이 있다. 종교 승리 위주 플레이를 할 때, 선교사와 사도 생산에 집중하느라 밀리는 과학을 보조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국. 단순히 인구 10 도시 하나만 개종시켜도 200과학이 일시불로 들어온다.
교황직 교리같은 수단으로 종교를 전파해도 과학을 줬으면 더욱 사기였겠지만 선교사나 사도로 직접 전파하는 것만 과학 보너스를 받는다.
당연하겠지만, 종교강화교리의, 성서, 순회 전동사와 중첩되지 않는다. 그나마 효과를 제대로 보겠다면, 황금기 이외의 전도사의 대탈출이 났다. 이 경우에는 시대점수까지 부여하기 때문에, 쉽게 암흑기로 빠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문양은 모로코의 옛 국기에서 따 왔다. 정확히는 마린 왕조(1258~1420)와 사디 왕조(1554~1659) 시절 깃발인데, 문명 5에서 모로코를 이끌었던 아마드 알 만수르가 사디 왕조 시대 인물이다.
2.1.7. [NFP]타루가(Taruga)
타루가 |
타루가는 나이지리아 중부에 있는 고고학 유적지이며, 서아프리카의 초기 철 생산 증거를 보여 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이곳에서 정교한 헤어스타일과 기다란 얼굴을 한 매력적인 테라코타 조각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예술품은 이 지역의 초기 예술 및 과학적 발전을 잘 보여줍니다. 타루가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 또는 자기 자신들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다른 상징적 유적지의 이름을 따서 "노크 문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노크인"이 아니라 "노크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단합되었는지 또는 공동 문화를 공유하는 특정 사람들이나 그룹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현재 포르투갈 크기에 맞먹는 영토에 살았으며, 수도 아부자를 포함한 현재 나이지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노크 문화는 기원전 500년경에 최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새로운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노크 문화는 그보다 1000년 전에 출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들은 엘리트 지배 계급을 비롯하여 단순한 친족 관계 이상의 사회 조직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노크족의 인구가 늘면서 이러한 제품의 통제, 거래 및 저장이 점점 더 중요하고 복잡해졌고, 그로 인해 거대한 곡물 저장고와 교역 네트워크가 생겨났습니다. 노크족은 철기 문화의 조기 발견과 테라코타 조각상, 이 두 가지로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노크족은 농업 공구와 전쟁 장비를 생산했습니다. 전쟁은 노크 예술과 큰 관계는 없지만, 노크 화살과 창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크 조각품은 일상과 환상의 절묘한 조합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의식용 무기를 들고 있고, 작은 사각 수염과 콧수염이 입가까지 길게 자라 있습니다. 다른 조각품들은 인간 눈을 한 코끼리, 새 부리가 달린 남자 등과 같이 인간과 동물을 합성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노크족은 서기 200년경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몰락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서아프리카 문명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으며, 고대의 혁신과 과학적 생산의 좋은 예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모든 도시가 보유한 각각의 다른 개발된 전략 자원에 대해 5%의 과학을 획득한다. |
전략 자원 하나당 5%의 과학 증가는 언뜻 보기엔 굉장해 보이지만 각 도시에 개별적으로 적용되므로 조금 아쉽다. 특히나 과학 산출은 문화와는 달리 한 도시에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이 적기에 더더욱.
도시당 개발한 전략자원 하나라는 점 때문에 여러 도시를 운영하는 문명에 특화되어 있으며, 이는 도시를 정복한 문명에게도 포함된다. 정복을 많이 할 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과학이 넘쳐나서 인공위성을 쉽게 띄우게 해주는 사기도국에 해당한다.
문양은 녹 문화 시절에 제작된 조각상에서 따 왔으며, 비슷한 그림이 족장제 정부 일러스트에도 나온다.
2.1.8. [NFP]날란다(Nalanda)
날란다 |
'연꽃의 선물'이라는 뜻인 날란다는 불교 학문의 중심으로 기원후 첫 천년의 후반에 명성을 이룩한 동인도 도시였습니다. 나가르주나, 디그나가, 샨타락시타 등의 불교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인도 전역과 중국, 티벳에서 학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크게 세 가지 주요 학파로 나뉩니다. 네팔과 티벳에서 유행하는 밀교,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소승 불교, 동아시아에 퍼진 대승 불교입니다. 학자들은 날란다에서 이 모든 학파에 대해 토론했고, 거대 도시를 따라 이름 붙여진 불교 학교들은 이제 부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의 멀리 떨어진 장소에 존재합니다. 이 도시는 인도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그리고 기원전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에 언급된 장소인 마가다 왕국에 속했습니다. 왕국에 접근한 알렉산더 대왕은 장벽을 보고는 동쪽으로 충분히 왔다고 생각해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약 천 년이 지난 후인 기원후 629년에, 중국의 승려인 현장이 날란다를 방문하고 불교 지식을 중국으로 가져갔습니다. 현장의 여행은 가장 인기 많은 중국 설화 중 하나인 '서유기'에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윤색되었습니다. 현장은 날란다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하늘색 연못이 수도원을 휘감고, 만개한 파란색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눈부신 붉은색 카나카 꽃이 이곳저곳에 걸려 있고, 외부에는 망고나무 숲이 주민을 위해 짙고 안락한 그늘을 드리운다.” 모든 방문자가 온화했던 것은 아닙니다. 1193년에는 델리 왕조를 섬기는 터키의 군사 장군인 바크티야 키질리의 부대가 동인도와 날란다를 점령했습니다. 도시와 수도원은 약탈당했고, 인도에서 불교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쇠락했습니다(아시아 다른 곳에서는 계속 번성함). 날란다는 폐허가 되었고 수 세기가 지나서야 학문의 중심지로 부활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마하비하라 시설 건설 가능. 과학 +2 및 주거공간 +1. 인접한 성지 특수지구마다 신앙 +1, 인접한 캠퍼스 특수지구마다 과학 +1, 과학 이론 연구 이후 인접한 캠퍼스 특수지구마다 과학 +2. 첫 마하비하라를 건설한 플레이어는 무작위 기술을 얻음. 다른 마하비하라와 인접하여 건설 불가능. |
바빌론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날란다의 종주국을 확보한 후 마하비하라를 건설하고, 종주국 지위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으면 무작위 기술을 하나 더 받는 버그가 있었다. 그래서 총독 아마니를 사용해 종주국이 된 후에 마하비하라를 짓고, 총독을 재배치해도 그 턴에만 원래 도시로 5턴 제한 없이 옮길 수 있는 점을 이용해 1턴만에 모든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가 있었으나 패치되어 막혔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Sf2FZCkFVs
다만, 도시국가의 특성상 개발 불가능한 타일(사막, 툰드라, 설원)에 건설 해 두면, 파급효과가 엄청나지만, 같이 붙여서 건설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도국의 종주권을 먹어서 개발 불가타일에 끼워넣어주면 엄청난 시너지를 유발한다.
문양은 날란다 유적에 세워져 있는 주요 건물 가운데 하나인 사리푸타 탑에서 따 왔다.
2.2. 군사 중심
군사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유닛 생산 시 수도에 생산력 +2. |
3 | 유닛 생산 시 주둔지가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6 | 유닛 생산 시 주둔지가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흥망성쇠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유닛 생산 시 수도에 생산력 +2. |
3 | 유닛 생산 시 병영이나 마구간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6 | 유닛 생산 시 무기고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유닛 생산 시 병영이나 마구간 건물이 있는 수도 및 모든 도시에 생산력 +1. |
3 | 유닛 생산 시 무기고 또는 영사관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두 종류의 건물이 모두 있다면 생산력 +4.) |
6 | 유닛 생산 시 사관학교 또는 상법부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3. (두 종류의 건물이 모두 있다면 생산력 +6.) |
군사 유닛뿐만 아니라 모든 유닛에 생산력 보너스를 준다. 그리고 발레타와 그라나다와 같이 내정에 도움을 주는 도시 국가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 따라서 지배 승리를 노리지 않거나 주둔지 특수지구가 적더라도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다.
2.2.1. 발레타(Valetta)
발레타 |
몰타에 위치한 발레타는 1566년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그는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의 제 49대 단장이었습니다. 이는 기사간호단에서 1년 전에 오스만 제국의 섬 포위 및 침략을 견뎌낸 이후였습니다. 몰타는 밀려오는 오스만인들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벽 역할을 하도록 1530년 스페인의 카를 5세에 의해 기사단에 영속된 상태였습니다. 발레트는 새로운 도시와 섬을 건설하고 요새화하기 위해 기독교 국사의 국왕과 왕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예정된 일로, 이들은 자신들의 병력과 군함보다는 호전적인 광신도 집단이 밀려오는 무슬림들과 대적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황 비오 5세는 자신의 군사 건축가를 파견하여 요새를 설계하도록 했고 스페인의 필립 2세는 군함과 무기를 보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교회, 막사와 항구 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항구와 전략적 입지를 갖춘 이 도시는 제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에 걸친 전쟁들을 견뎌냈습니다. 기사단은 기독교 유럽과 라벤트 사이의 지중해 항로에 대한 치안 활동을 책임졌고 바르바리를 비롯한 여러 해적들과 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로 오스만의 선단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노예들을 무슬림인들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제노바, 베네치아, 피사가 발전하고 종교 개혁이 발발하면서 발레타의 금전적 지원은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1798년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침공 도중에 몰타를 점령했을 때에는 나폴리인들과 영국인들만 크게 걱정하는 듯 하였습니다. 2년 후에는 몰타인들이 프랑스 주둔군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며, 여기서 승리한 반란군 지도자들은 섬을 영국에 바치고 제국의 자치령으로 둘 것을 요청하였고, 1814년의 파리 조약으로 몰타는 영국의 통치 하에 있다가 1964년에 독립을 하였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심부 건물과 주둔지 건물을 신앙으로 구매 가능. 고대, 중세, 르네상스 성벽 구매비용이 저렴해지며 신앙으로 구매 가능 |
턴신앙이 어느 정도 된다면 상당히 활용도가 크다. 신도시에 곡창과 방앗간을 올려주어 빠르게 키우고, 후반에는 하수관이 뚫리자마자 4개를 사버려 민주주의 유레카를 뚫을 수 있다.
오리지널의 신권정치나 흥망성쇠 확장의 기사단장의 예배당으로 얻는 신앙 구매 15% 할인 효과를 받는다. 몰려드는 폭풍부터는 발레타의 종주국이 되면 제방 장벽도 신앙으로 구매할 수 있다. 오리지널 시절엔 신앙이 남아 돌아도 신앙을 사용할 만한 곳이 위인을 영입하는 것 또는 예수회 교육 교리를 선택한 경우에 한해 건물을 구입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당시 발레타는 카르타고 다음가는 사기 도국 취급을 받았었다.
기념비성 황금기의 존재로 인해 예전만큼 사기적인 효과로 평가받지는 않지만 있으면 굉장히 편한 종주국 효과이다.
도심부, 주둔지 건물 가격은 필요 생산력의 두 배이고, 성벽들은 필요 생산력과 같다.[24] 그 중 특이한 사항으로, 도심부의 제방 방벽은 보호할 타일이 많을수록 필요 생산력이 증가하나, 발레타의 종주국 효과로 구매할 때는 보호되는 타일 수와 관계없이 비용이 할인 없을 때, 보통 속도 기준 신앙 160으로 고정된다.
별의 별 것을 신앙으로 살 수 있다. 곡창이라든가, 물레방앗간이라든가, 하수관까지 죄다 신앙으로 살 수 있어서 인구나 생산과 타국의 공성병기에도 맞설 수 있기 때문에 있으면 매우 편하지만 종교를 창시한 문명이거나 전쟁광을 선호하는 문명에게 뺏기기도 쉽다.
문양은 성 요한 기사단의 문장에서 따 왔다. 다만 기사단 자체가 몰타를 본거지로 삼은 뒤부터 몰타 기사단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따라서 이 문양도 몰타 십자가라 불리는 경우도 많다.
2.2.2. 카불(Kabul)
카불 |
아벳 라흐마니는 같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비처럼 뭉치고 바다처럼 강해지십시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카불의 시민들은 제국의 반복적인 침략을 견뎌내어 나름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이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힌두쿠시 산맥의 협곡 구석에 자리잡은 카불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전략적인 경로에 위치해 있으며 카이버 고개로 향하는 접근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침략자들을 막아낸 경험이 있는 카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용감무쌍한 전사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외세의 침략이 없는 동안 이 산악 부족은 서로 간의 분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카불은 건립된 지 3,500년이 지났지만 자유로웠던 기간은 많지 않습니다. 힌두교의 리그베다에서는 이 도시를 이상적인 도시 즉, '산 위에 자리잡은 낙원의 형상'이라 칭송하였고, 아케메네스 시대 말기에는 도시가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향후 1,000여 년에 걸쳐 여러 왕국과 제국이 카불을 소유했습니다. 1504년, 도시는 바부르에 의해 점령되었는데, 바부르는 무굴 제국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카불을 자신의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또한 도시를 너무 사랑한 바부르는 이 곳에서 이십 년을 거주했으며 그의 묘비에는 "지상 낙원이 존재한다면 카불이 바로 그 곳일 것이다."라는 페르시아어로 된 문구도 새겨져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1800년대 대부분의 시간을 영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보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자유를 얻은 카불은 60년에 걸친 문예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보주의자였던 모하마드 자히르 샤의 재위 기간에는 신식 통신, 운송 및 무기와 관련된 유럽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10년 동안 지속된 소비에트 점령 기간은 1989년에 러시아인들이 철수하면서 종식되었고 바로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강압적인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가 결성되었지만, 2001년에는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탈리반을 축출했지만, 탈리반은 2020년에 복귀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전투 유닛이 공격을 개시한 경우 경험치 2배 제공 |
빠른 속도에서 정복전을 할 때 특히 강력한 특성으로, 2배 빠른 진급은 전투력이 빠르게 높아질 뿐 아니라 진급을 찍을 때 체력을 회복시켜 유지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다만 설명에 쓰여 있듯 공격 시에만 적용된다.
4진급 유닛을 만들면, 역사적 순간으로 등장하기에 시대점수를 올리는 용도로도 좋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는 군단, 군대 유닛을 상대할때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연대한 유닛을 격파 할 경우에는 시대점수까지 주기에 더더욱 활용도가 크게 올라간다.
문양은 탈레반 정권 수립 이전까지 쓰이던 아프가니스탄 국기의 일부를 가져와 변형한 것이다. 계단과 벽 모두 모스크라면 으레 갖추고 있는 것으로, 계단(민바르)는 성직자인 이맘이 기도를 주도하거나 설교를 할 때 쓰는 공간이고 벽(미랍)은 기도를 할 때 메카를 향해야 하므로 그 방위를 표시한 것이다.
탈레반 2기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는 마지막 문구가 2001년에는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였다.
2.2.3. 프레슬라프[25](Preslav)
프레슬라프 |
9세기 초에 요새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레슬라프는 그저 조용하고 아담한 슬라브족 정착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보리스 1세가 즉위하고 플리스카 인근에 수도를 세우면서 이 곳은 중요한 전략 요충지가 되었으며 수도 수비대의 사령관이자 왕궁의 실질적인 군수권자였던 이치르구-보일의 본부가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불가르족이 864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여러 곳에 교회를 건축하면서 종교의 중심지로도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프레슬라프의 주요 사업은 전쟁이었습니다. 892년에 마침내 이교도 반란이 제압되고 보리스가 시메온 1세를 그의 후계자로 임명한 후에는 수도를 플리스카에서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프레슬라프로 이전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향후 80여년에 걸쳐 새로운 수도는 불가리아의 정치와 군사는 물론 문화, 예술과 종교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성벽은 확장과 함께 강화되었고 막사는 불가리아의 과대망상을 충족하기 위한 훈련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예프의 왕자인 스뱌토슬라프 이고레비치가 불가리아를 무찌르고 프레슬라프를 점령하면서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진 비잔티움과 키예프 간의 전쟁으로 인해 도시는 파괴되었고 비잔틴의 해방군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동맹국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예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비잔틴인들은 불가리아의 보물, 왕실 보석과 상징물들은 물론 왕립 도서관의 서적들 대부분을 빼앗아 갔습니다. 프레슬라프는 1185년 경, '불가리아 제 2제국'이 세워진 이후로 몇 십 년에 걸쳐 중요한 군사력을 복구했습니다. 실제로 투르노보의 요새를 갖춘 제 2제국은 공동공후국의 통치국 중 하나였으나, 투르노보는 방어 전략적 입지 덕분에 외부의 위협을 더욱 효율적으로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1270년대에 감행된 타타르족의 급습으로 인해 그나마 생건한 프레슬라프의 시민들이 모두 도주했습니다. 이들은 3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고 한 때는 강력했던 성벽을 약탈하여 건축 자재로 이용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시에서 각 주둔지 특수지구 건물에 충성심 +2. |
충성심이 부족한 곳은 보통 갓 정복한 도시라서 항상 효율을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종주국 보너스가 있다면 적 주둔지를 털지 말고 도심부만을 노려보자. 물론 이렇게 쓴다고 해도 다른 도시국가들에 비해 나쁜 효과인 건 맞다. 평상시 충성심 보너스는 거의 쓸모가 없고, 그나마 정복전 중에는 필요하나 이 효과가 있다고 충성심이 안정되지 않는다. AI들이 특수지구에 건물을 적게 올리는 것도 있고.
빅토르를 배치하는 것보다는 약하지만, 리미타네이와 중첩할 경우, 엄청난 시너지를 자랑한다. 수도를 먹으면 충성도가 거의 깎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시대점수와 함께, 충성도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특성까지 붙기 때문에, 효율성으로는 약하지만, 알박기로, 타 문명에게 비난이 날라올 정도라고 보면 된다.
문양은 1951년에 프리스카에서 발견된 유물인 "프리스카의 장미" 에서 따 왔다. 프리스카에서 프레슬라프까지는 거리가 살짝 있긴 한데, 프레슬라프로 천도하기 전까지 불가리아의 수도가 프리스카였으며 오늘날 불가리아의 민족주의자나 애국주의자들 가운데 이 유물을 자국의 상징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작 외에는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결정판에 추가된 이바일로 캠페인에서 이 유물을 차용했다.
2.2.4. [교체]카르타고→느가자르가무(Ngazargamu)
느가자르가무 |
은가자르가무(Gazargamo)는 오늘날의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차드호 주변 지역을 다스리며 500년간 존재했던 카넴-보르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이 이슬람교 왕국은 아프리카 북부의 교역망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아랍 문인들의 기록을 통해 입수되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인구는 약 20,000명에 달했습니다. 이 도시는 1460년경 보르누 왕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세푸와 왕조의 알리 두나마미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새로운 수도 주변의 땅은 비옥하고 목가적인 경작지였으며, 보르누는 이렇게 얻은 번영을 토대로 과거의 카넴 왕국 시절에 통치했던 지역을 재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드리스 알루마 왕(재위 기간: 1564~1596년)은 아마도 카넴-보르누의 가장 유능한 통치자였을 것입니다. 그는 오스만에서 훈련받은 머스킷 부대를 도입하는 등 일련의 군사 개혁을 감행했으며 이미 강력했던 왕국의 기갑 부대에 용병이었던 베르베르의 낙타 부대와 코토코 해병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모로코, 이집트 및 오스만 왕실(왕실에서는 대규모 사절단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과의 교역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사관들은 알루마 왕이 천 회의 전투와 삼백 회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찬양했습니다. 또한 알루마 왕은 표준화된 교역 방식과 같은 경제 개혁과 이슬람교 법률에 부합하는 법률 개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1809년의 풀라니 성전 당시에 포위된 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도시의 폐허를 여전히 볼 수 있으며 한때 강대했던 이 수도를 새롭고 현대적인 도시로 재건하자는 여론도 모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시 내 주둔지 특수지구 건물 하나마다 지상 군사 유닛 및 지원 유닛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금 및 신앙[27] 20%씩 감소 |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 페니키아가 추가됨에 따라 카르타고 도시국가를 대체하여 투입되었고 종주국 보너스를 그대로 가져왔다. 여담으로 시빌로피디아의 번역이 엉망인데, 게임 내에서는 느가자르가무로 나오지만 시빌로피디에선 은가자르가무로, 영문명은 가자르가모로 나오는 것. 영문 원판에서는 'Nagazargamu (or Gazargamo)' 라고 나오는데, 번역자가 첫머리의 N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발음은 '응가자르가무'에 가깝다.
금으로 구매 할인 보너스는 단리로 중첩되기 때문에 금으로 유닛 구매 할인이 붙어있는 말리로 플레이하거나 민주주의 정부에선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유닛을 구매할 수 있는데, 현대 전차나 로켓포 군대가 600~800골드에 뽑혀나오는 기적을 볼 수 있다.[28] 노동자와 상인같은 비전투 유닛은 할인이 안되지만 내정에도 다용도로 쓰이는 공병은 할인이 되므로 전쟁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소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단기 생산비용 할인이지, 유닛 업그레이드 할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방어전쟁을 하거나, 비상표적, 혹은 비상목표를 상대로 전쟁을 걸겠다면, 이만큼 좋은 도국은 없지만, 유지비는 따로 내야한다.
문양은 보르누 제국 국기에서 따 왔다.
2.2.5. [DLC]그라나다(Granada)
그라나다 |
옴미아드 왕조는 8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급격히 세력을 넓혀 서고트 히스파니아를 빠르게 점령했고, 오늘날의 스페인 남부 지역에 위치한 요새화된 정착지인 그라나다 또한 신속하게 점령하였습니다. 후일, 정확히 따지만 15세기 후반에 가톨릭 군주('로스 레예스 카톨리코스')[30]에게 항복함으로써 안달루시아의 레콩키스타는 이 곳에서 막을 내리게 되지만, 그 전까지 750여 년 간 그라나다는 무어인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 앞에 위치한 그라나다는 저지대 평원에 위치해 제대로 방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어인 통치자들은 이를 빠르게 인지하여 마을을 내려다보며 보다 방어하기 쉬운 작은 언덕 위로 위치를 옮겼습니다. 요새 건축은 계획의 일부였는데, 알람브라 궁전은 후일 이러한 요새 중 한 곳을 개조한 것입니다. 그라나다의 무어인 통치자들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습니다. 옴미아드 왕조는 알모라비드 왕조로, 그 후에 알모하드 왕조가 통치했습니다. 13세기 나스르 왕조 때, 가톨릭교인 카스티유 왕국과의 동맹으로 그라나다 토후국이 형성되면서 도시의 성쇠는 다시 바뀌었습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 무역 중심지들로의 직접적인 접근은 잠시나마 그라나다를 레콩키스타로부터 자유롭게 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알카사르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
바이킹 시나리오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문양은 석류인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축출된 이후에 수립된 그라나다 왕국의 국기[31]에도 나오는 과일이고 오늘날 그라나다 시기에도 그려져 있다.
알카사르 자체가 방벽이므로, 국경에다가 군사를 주둔시켜주는게 좋다. 선전포고 걸고 적 문명을 전쟁에 끌고와서 도발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물론 문화로 개발 불가능한 타일에다가 지어도 무방하다.
2.2.6. [GS]아카드(Akkad)
아카드 |
아카드는 한때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다스렸던 강대한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이 사실은 문학과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아카드의 정확한 위치는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삼천 년 전쯤에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 유역에 도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대 수메르가 있던 곳 바로 북쪽으로 티그리스강이 굽이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의 셈족 주민들은 셈족 초기의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아카드는 기원전 2334년에 사르곤 왕이 건국했거나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수메르인들에게 승리하고 나중에 세계 최초로 다민족, 다언어를 포용하게 될 제국 중 하나를 다스리며 아카드를 명실공히 지역 최강의 국가로 이끌었습니다. 국력이 정점을 찍었을 당시의 아카드인들은 고대 수메르의 도시 국가, 엘람인들, 원래의 아시리아인들과 근대 시리아의 여러 지역을 직접적으로 혹은 봉건 체제를 통해 통치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아카드 제국이 사르곤 왕에 이어 여섯 명의 왕이 즉위하고 한 번의 공위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사르곤 왕과 다른 왕들(특히 나람-신)의 전승 기념탑이 올라갔지만 이 중 일부는 나중에 아카드를 차지한 다른 정복자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여 다른 도시로 이전되고 말았습니다. 아카드인들은 국가를 위한 노동력의 체계적인 활용, 공식 서신(아카드인은 설형문자판을 외층으로 포장하여 봉투 사용을 개척했을 가능성이 있음), 은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외교 선물' 형식의 국제 교역을 비롯한 도시 구조의 초기 형식 중 일부를 활용했습니다. 또한 아카드인들은 설형문자를 자체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설형문자가 심지어는 구 수메르 영토의 수메리아어까지 대체했으며, 제국이 사라진 후에도 수천 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작가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시는 사라곤 왕의 딸이자 사제 겸 공주였던 엔헤두안나가 아카드어로 집필한 찬가집입니다. 아카드의 쇠퇴는 이집트의 구왕국과 인더스 문명이 쇠퇴한 원인이 된 기후 변화와 시기를 함께 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기후가 점점 건조해지기 시작하면서 농업으로 도시의 엄청난 인구를 부양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아카드가 몰락한 원인을 니푸르의 엔닐 신전을 약탈하여 신들이 불경한 신자들을 버리도록 만든 나람-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아카드의 연대기와 기여 공적은 고고학 문서에 보전되어 있지만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완벽하게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두 강이 만나는 퇴적지에서 아카드의 흔적이 추출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근접과 대기병 유닛은 공성 유닛 없이도 도시 성벽에 최대 피해를 가할 수 있음. |
아카드는 문명 5에서 바빌론의 도시로 출현했었다. 초중후반을 가리지 않고 정복을 좋아하는 문명에게 아주 유용한 특성. 모든 근접 유닛에게 공성추를 붙여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르네상스 성벽부터 효과가 사라지는 공성탑과는 달리 아카드의 효과는 유통기한이 없기 때문에 극후반까지도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근접과 대기병 한정이라는게 문제다. 근접의 경우애는 유지비가 싸지만, 전략자원이 요구되고, 대기병은 전략자원이 필요없는 대신, 유지비가 비싸다. 결론적으로는 계륵. 초반부 AI가 플레이어 죽이려 들때나, 도국 하나 잡아먹겠다고 병력 떼거지로 몰고 올때 외에는 쓸모가 없는 도국이므로, 초반부에 잠깐 종주국으로 삼다가 버려지기 십상이다. 정복 문명도 잡아먹으려 들지, 굳이 종주국으로 삼을려고 하는 변수가 적다.
문양은 1931년에 니네베 유적에서 발견된 두상에서 본땄는데, 아카드 제국의 창건자인 사르곤의 것이라고 오랫동안 추정되어 왔으나 그 손자이자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나람-신이라는 주장이 새로 제기되었다.
2.2.7. [NFP]라호르(Lahor)
라호르 |
오늘날 라호르는 세계 주요 도시이자 펀자브 지역의 상업 및 문화 중심지로, 히말라야 남쪽에 펼쳐져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을 가로지르는 건조한 땅입니다. 라호르는 무갈 제국, 짧은 역사로 마감한 시크 제국, 영국령 인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라호르는 아시아 내륙 교역로의 교차점에 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주변 나라의 중요한 문화 수도 역할을 합니다. 라호르는 서기 1000년경에 맨 처음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전성기는 무갈 제국 때였습니다. 남은 몽골군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형성된 무갈제국은 새 문화에 동화되어 정착했으며 16~19세기 동안 남아시아를 지배했습니다. 무갈 통치자들은 도시는 물론 성인의 무덤과 왕실 모스크를 비롯한 성지에서 시작하는 도로에 거대한 문을 건설하는 등 라호르에 화려한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18세기 라호르의 부유함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라호르는 밀튼의 '실낙원'에서 부와 권력의 도시, "위대한 무갈 제국의 도시"로 언급되었으며 밀튼의 아담에게 경이로운 세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다른 영국 작가들도 라호르에 매료되었습니다. 식민시대 영국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은 라호르를 "정오의 열기가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모스크의 비둘기를 잠들게 할 때도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고 묘사했으며, 어린 시절 라호르의 아르메니아제 대형 대포 "잠자메"를 보고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무갈 제국이 쇠퇴하자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하여 펀자브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맨 처음 라호르를 점령한 세력은 1758년 무갈 제국의 도시를 차지했던 마라타족의 힌두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라타족은 무갈 제국만큼 오래 번성하지 못했으며, 라호르는 다시 시 크와 아프간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1799년 라호르는 란지트 싱이 통치하던 시크 제국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펀자브의 사자" 싱은 새로운 제국을 위한 새로운 군대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외국 및 지역 세력과 접촉하고, 나폴레옹 병사들을 데려와 자신의 군대를 훈련시키고, 용맹한 니랑 전사 사제들을 군에 편입했습니다. 하지만 싱이 없는 시크 제국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싱이 죽고 난 후 이 지역은 대영제국에 완전히 합병되었습니다. 대영제국의 통치 아래 라호르는 식민 관료들이 무갈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건물들을 세움에 따라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펀자브는 대영제국에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겨주었습니다. 즉 펀자브는 전투가 잦은 국경과 가깝고 대영제국이 집중하던 항구와 떨어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라호르는 인도 독립 운동의 핵심지가 되었으며, 1929년 이 곳에서 판디트 네루는 대영제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하고 인도 삼색기를 게양했습니다. 하지만 독립 후에는 피로 얼룩진 분열이 발생했습니다. 무슬림 국가임을 선포한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되자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는 대규모 폭력 사태를 일으켜 서로를 죽였습니다. 라호르도 예외는 아니어서, 광범위한 힌두교도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라호르에 거주하던 힌두교도 인디라 쿠마르는 어린 시절 폭도를 피해 산으로 도망치며 "자유의 비용과 목적이 무엇이지?"라며 고뇌했습니다. 분열이 끝난 후에도 폭력 사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1965년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한 후 라호르는 다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재 라호르는 파키스탄 펀자브의 수도이며 약 1,0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종주국에서 신앙으로 구매하는 고유 유닛인 니항을 구매할 수 있다. 니항은 병영, 무기고, 사관학교를 건설하면 전투력[34]이 증가한다. |
마야&그란 콜롬비아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문명 1에서 5까지 줄곧 인도의 도시 중 하나로 개근하다가 이번에는 도시국가가 되었다.
병영 대신 마구간을 짓는 경우 니항의 전투력 증가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빌로피디아의 설명에서도 마구간이 빠져 있는 걸로 보아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유닛을 뽑은 후 병영, 무기고, 사관학교를 올리면 기존에 있던 니항들도 모두 전투력 향상 효과를 얻는다.
니항의 기본 전투력은 창병과 같은 25지만, 사관학교까지 지으면 +45가 되어서 보병과 동일한 전투력이 나온다. 신앙으로만 구입할 수 있지만 비용은 꽤 저렴하고, 전략자원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운 나쁘게 전략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니항은 근접 공격을 하는 유닛이지만 독자적인 진급체계[35]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근접 및 대기병 유닛에게 성벽 공략 능력을 부여하는 공성추와 공성탑, 아카드의 종주국 효과는 받지 못한다.
문양은 악바르 대제 시기인 1566년에 건설된 라호르 요새의 문에서 본땄다. 이 요새는 무굴 제국 이후에는 시크 제국의 황궁으로 쓰인 적도 있으며, 오늘날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2.2.8. [NFP]볼린(Wolin)
볼린 |
슬라브족은 다수의 유럽 집단 중 하나였으며 로마인, 그리스인, 비잔틴인은 슬라브족을 로마 제국 막바지에 유럽에 등장한 '야만인'이라 칭했습니다. 독일 동부에 등장한 슬라브족은 동유럽에 정착해 러시아, 폴란드, 체코 등 여러 국가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볼린섬은 폴란드 해안 외곽의 섬에 위치한 슬라브족의 초창기 정착지 중 하나였습니다. 발트해에 있는 볼린섬은 10세기와 11세기에 주요 교역점 및 다양한 인종의 군사 전초 기지를 형성한 초기 슬라브 정착지였습니다. 바이킹 선박이 발트해를 약탈하기 시작하자, 볼린섬 같은 정착지의 상업(바이킹족은 약탈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습니다!) 및 군사 이동 기지로서의 중요성이 증가했습니다. 기독교화로 인해 도시의 힘과 영향력이 쇠락했고, 덴마크 부대의 반복적인 약탈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중세 시대 후반에 이 도시는 신성 로마 제국의 도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독일인과 슬라브인이 건설한 중세 국가인 포메른 공국의 주요 지역을 형성했습니다. 정복과 계승, 스웨덴과 튜턴 기사, 그리고 (현대 독일의 전신이 되는 국가인) 프로이센 왕국의 점령을 통해 도시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37] 소비에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물리치자, 볼린섬은 다시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현대의 폴란드였습니다. 오늘날의 볼린섬은 최후의 유럽 들소를 찾을 수 있는 야생 동물 보호 지역, 지역의 전쟁사를 기념하는 연간 바이킹 축제로 유명합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지상 유닛이 주요 또는 소수 문명의 유닛을 처치하면 상대 유닛 전투력의 25%(보통 속도 기준)에 해당하는 위대한 장군 점수 획득. 해상 유닛이 주요 또는 소수 문명의 유닛을 처치하면 상대 유닛 전투력의 25%(보통 속도 기준)에 해당하는 위대한 제독 점수 획득. |
헤타이로이마냥 위인 부스트를 할 수 있는 도국. 전쟁을 할 때 묘하게 도움이 된다.
위대한 장군이나 제독을 뽑을때 외에는 전쟁광이 아니거나, 전쟁 피로도를 줄여주는 위인(쯩짝, 조아킹)영입하는 용도외에는 없다. 애당초, 세계의회에서도 어지간하면, 장군이나 제독이 위인영입점수 금지가 매번 걸리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논 종주국을 삼으려는 문명이 거의 없다.
문양은 오늘날 볼린 시의 깃발에서 본땄다. 깃발에 그려져 있는 건 그리폰인데, 작중의 문양은 정확히는 그리폰의 머리다.
2.3. 문화 중심
문화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문화 +2. |
3 | 모든 극장가에 문화 +2. |
3 | 모든 극장가에 추가 문화 +2. |
흥망성쇠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문화 +2. |
3 | 모든 원형 극장 건물에 문화 +2. |
6 | 모든 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 건물에 문화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와 모든 원형 극장 건물에 문화 +1. |
3 | 모든 미술관/고고학 박물관과 영사관 건물에 문화 +2. |
6 | 모든 방송 센터와 상법부 건물에 문화 +3. |
2.3.1. 난마돌(Nan Madol)
난마돌 |
대부분의 저명한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미크로네시아의 폰페이 섬 동부 연안 근처에 위치한 버려진 도시, 난마돌의 폐허가 잃어버린 무 대륙의 잔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석호 주변에 건설되어 있으며 조수로 형성된 수로로 구분되는 바위와 산호초 지대 위에 건축된 약 100개의 작은 인공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선사 시대에 침몰한 대륙의 잔해라는 주장보다는 이러한 소규모 군도의 건설이 8세기에 시작되었으며 12~13세기에 이곳에 거석 구조물이 세워졌다는 설이 더욱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또한 샨들러 왕조의 상류층은 평민과 섞일 필요가 없었다는 점도 후자를 증명합니다. 이 석호 도시의 원래 이름은 손 난렝('하늘의 암초')이었으며 유럽 탐험가들은 이곳을 '태평양의 베네치아'라 불렀습니다. 이름이 있는 대부분의 섬들은 족장과 사제가 거주하는 주택가였지만 페이너링(Peinering)에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코코넛 오일을 생산하거나, 다파후(Dapahu)에서 카누를 제작하는 것과 같이 일부 섬을 사용했습니다. 장례 '구역'은 약 5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덤으로 덮여 있습니다. 난마돌은 폰페이 섬과 텐웬 섬에 거주한 총 25,000명의 부족들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 샨들러 왕조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권좌였습니다. 샨들러의 통치자는 부족 족장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이들을 새로운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습니다. 전성기에는 난마돌의 인구가 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소규모 군도에는 식량과 담수 공급원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물자를 폰페이에서 놋배로 실어와야 했는데, 속설에 따르면 샨들러 왕조를 세운 올리시파 및 올로소파라는 쌍둥이 마법사가 모든 건물과 묘지를 짓는 데 필요한 바위들을 섬으로 날려서 운반했다고 합니다. 건국 역사야 어찌됐든, 1800년대 초에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난마돌은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고, 난마돌은 1450년경에 샨들러 왕가가 몰락하면서 함께 버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해안, 호수 타일에 인접한 특수지구에 문화 +2 제공. |
도심부도 특수지구로 간주되니 곧바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쿠마시와 함께 극장가 없이 땡문화를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국으로 S급으로 꼽힌다. 해안이나 호수 위에 건설한 특수지구도 문화를 얻기 때문에 항만이나, 워터 파크도 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
TSL 모드로 진행할 경우 미크로네시아의 타일 하나짜리 섬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다보니 성장도 제대로 못해서 혼자 비실비실한 경우도 많다. 더해서 주변의 해안 타일이 외부와 이어져 있지 않아서 도시국가의 유닛이 빠르게 나오지 못하는지라 발견도 어렵다. 하지만 역으로 큰 대륙에서 멀리 떨어저있고 타일 구성도 엉망이므로 점령당해서 보너스가 끊길 염려는 거의 없다.
효과를 받는 중 문화 +2는 인접 보너스와 같이 표시되지만, 인접 보너스를 뻥튀기해주는 정책 카드 등의 효과를 받지 않는다.
도시국가 치고는 드물게도 해안가 1단계[A]로 시작 지점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생각보다 사절이 꽤 많이 박히는 도국중 하나, 그래서 전쟁광의 어그로를 대폭 끌어서, 점령한 문명의 표적에 대한 도국해방 비상에 다굴맞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문양은 바다거북이인데, 사우델레우르 왕조 시절에는 바다거북이와 개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동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2.3.2. 모헨조다로(Mohenjo Daro)
모헨조다로 |
기원전 2500년경에 건설된 모헨조다로는 하랍파 문명에서 가장 큰 정착지 중 하나였으며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번창하는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파라오를 모시기 위해 피라미드를 만들고 미노스인들은 재미를 위해 황소 위에서 공중제비를 도는 동안 약 40,000명의 모헨조다로 시민들은 불에 그을린 후 모르타르를 바른 벽돌을 사용하여 대중 목욕탕, 공용 우물을 갖춘 중앙시장, 거대한 저택, 곡물 건조를 위한 통풍구를 갖춘 대형 곡물 창고, 집회를 위한 '기둥식 강당'과 '칼리지 홀' 등 경이로운 건축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특히 78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칼리지 홀에는 사제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자들과 여러 도굴꾼들은 모헨조다로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놀라운 예술품과 공예품을 발견했으며 이 중에는 여러 좌상과 입상, 구리 도구, 공식 인장, 금과 벽옥으로 만든 장신구, 접시 저울, 유아용 장난감, 상업용 저울, 조각 가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유물로는 '춤추는 소녀'라 불리는 청동상, 파슈파티 인장. 일곱 개의 줄로 만든 목걸이(4,5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등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살기에 무척 편했던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도시에는 외부 성벽이 없었지만 동쪽에는 경비탑이 있었고 남쪽에는 여러 가지 방어 장치가 마련되었습니다. 비록 이러한 평화를 깨뜨리는 인간적인 위협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분노한 신에 의한 자연 재해는 확실히 존재했습니다. 모헨조다로는 적어도 일곱 차례에 걸쳐 파괴되었으며 매번 폐허 바로 위에 새로운 도시가 재건되었습니다. 인더스 강의 범람으로 인해 이곳의 문화가 주기적으로 물에 침수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항상 재건되어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좋은 시절에는 결국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원전 1900년경에는 하랍파 문명이 갑자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모헨조다로의 주민들은 조금씩 도시를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랍파 문명이 멸망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역사학자들의 이론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시는 1920년까지 숨어 있다가 주변을 방문 중이던 인도의 역사학자 라칼다스 바네르지가 오래된 부싯돌 긁개를 발견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모든 도시는 담수가 인접한 것처럼 주거 공간 혜택을 받음. |
맨땅에 도시를 지어도 담수가 인접한 것처럼 주거공간을 받는다. 이미 도시가 다 세워진 중반 이후에는 그저 그렇지만 아직 도시를 세우는 단계에서는 나름대로 도시를 유동적으로 세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일일이 담수를 잘 찾아 지었다면 종주국 보너스의 혜택을 하나도 볼 수 없다. 담수보다 해안 도시를 더 잘 챙겨다니는 해안 문명과 궁합이 좋다. 반대로 마야의 경우 문명 특성 때문에 담수에서 주거를 얻지 못하므로, 종주권 보너스를 전혀 누릴 수 없다.
AI는 담수를 신경 안쓰고 도시를 막 지어서 송수로를 지을 수도 없는 입지로 구제가 불가능한 도시들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정복 승리를 노린다면 이러한 도시들도 활용할 수 있다.
다도시를 운영하는 문명에게는 그다지 효율이 좋지 못한 도국중 하나,
문양은 인더스 문명 시절에 쓰였던 문자 중 하나인데, 인더스 문자는 아직까지도 온전히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2.3.3. 빌뉴스(Vilnius)
빌뉴스 |
가항 하천인 빌니아 강과 네리스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빌뉴스는 리투아니아 삼림 지대 깊은 곳의 교역소로 정착되었으며 발트 해와는 31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 도시가 역사 기록에 처음 언급된 시기는 1323년입니다. 당시 게디미나스 대공은 독일계 유대인들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이주하도록 장려했고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상업적 기회를 약속했습니다. 향후 수십 년 동안 야심만만한 공작과 후손들의 통치 하에 확장을 이어간 대공국은 현재의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트란스니스트리아 대부분의 지역과 폴란드 및 러시아 북부의 일부 지역까지 확장을 이어갔습니다. 1569년에 루블린 연합이 결성되면서 도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빌뉴스는 오지의 전초기지에서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로 극적인 변신을 이루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주민들을 환영했고 수천 명의 슬라브족, 게르만족과 유대인들이 번창하는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579년, 국왕 스테판 바토리는 한 교육 기관을 설립했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 및 문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잡은 이 기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빌뉴스 대학교로 진화하였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예술적 동직 길드가 결성되었고 도시는 스칸디나비아와 폴란드 및 북부 러시아 내륙 사이의 중요한 교역 요충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시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물론 폴란드, 스웨덴, 러시아나 독일의 분쟁 기간은 제외됩니다. 빌뉴스는 비록 '바로크풍' 도시로 불리지만 훌륭하게 보전된 독특한 분위기의 구시자기에서는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 등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 양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박물관과 기념물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게디미나스 타워, 성당 광장과 장엄한 대공 궁전, 리투아니아의 독립법이 서명된 저택(House of Signatories)과 여러 박물관 및 도서관은 수많은 적군의 점령에도 건재함을 유지했으며 1990년의 독립 이후로 다시 한 번 리투아니아의 강인한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가장 활발한 동맹 수준에 대해 극장가 특수지구가 인접 보너스 +50%를 획득. |
원문의 설명부터가 매우 애매하다.[39] 정확한 효과는 최대 동맹 레벨이 1레벨일 때 50%, 2레벨일 때 100%, 3레벨일 때 150%의 인접 보너스를 추가로 얻게 되는 것. 인접 보너스 2배 정책카드와 곱연산으로 중첩되고, 최종 수치에서 버림으로 적용된다.[40] 소도시 내정을 하며 친목을 잘 쌓아야만 효과가 극대화된다.
오리지널 시절에는 서울의 문화 버전, 그러니까 새 시대에 진입하면해당 시대의 무작위 영감을 하나 주는 능력이었다.
동맹의 특성상. 플레이어가 강대하면, 플레이어에게 대항하기 위해, 빌뉴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다만, 플레이어가 너무 약하거나,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때는 가차없이 먹히거나, 신경도 안 쓴다.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에 대항하기 위해 있는 문명이라고 할지, AI는 거들떠도 안 본다.
문양은 야기에우워 왕조의 문장에서 따 왔는데, 이 왕조 시절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수립이라는. 리투아니아 역사상에서도 큰 사건이 일어났다. 실제로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국장에도 저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2.3.4. 쿠마시(Kumasi)
쿠마시 |
신석기 시대 이래로 쿠마시에 원시 형태의 정착지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널리 알려진 시기는 오세이 투투가 이끄는 아샨티 동맹의 중심지로 도시가 자리잡기 시작한 1695년이었습니다. 1701년 오세이 투투가 덴키라 부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 쿠마시는 아샨티 민족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두 개의 사하라 교역로 한 가운데에 위치한 쿠마시는 상당한 부를 쌓았으며 왕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물론 사제이자 입법자였던 오홈포 에녹케가 하늘에서 황금 걸상을 하사받았다는 전설은 후자에 기인합니다. 이 황금 걸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아샨티 민족혼을 상징하는 화신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노예는 제외됩니다. 노예제는 아샨티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온 역사적 관습이었으며 전쟁에서 포획하거나 인접 부족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노예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예들은 때에 따라 제물로 희생되었으며 주인이 사망한 후에는 그의 뒤를 따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샨티 노예들은 나름의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학대받는다고 느낄 경우 주인을 바꿔달라고 요청도 할 수 있었습니다. 쿠마시는 상당한 번영을 누렸고 모든 면에서 '예술적' 중심지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1824년부터 1901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발발한 앵글로-아샨티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무력 충돌은 아샨티의 확장에 위협을 느낀 가나의 여러 해안 왕국이 영국에게 보호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금에 대한 영국인들의 욕심 또한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치열했던 제 3차 앵글로-아샨티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아우아풀과 오르다슈 전투에서 고전 끝에 승리를 거둔 영국군에 의해 왕국을 비롯한 쿠마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몇 차례 전쟁을 더 진행했지만 쿠마시는 승기를 잡지 못하고 무너져 갔습니다. 하지만 1926년에 아샨티인들이 쿠마시에 대한 예식 권한을 되찾게 되면서 이 곳은 아샨티의 문화 중심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영국령에 아샨티 자치구가 형성되었고 쿠마시는 이 곳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시 국가와 연결된 교역로는 교역 시작 도시의 각 전문 특수지구마다 문화 +2, 금 +1 제공. |
난마돌과 더불어 극장가 없이도 무지막지한 문화 펌핑을 시켜주는 S급 문화도국. 도시국가들은 자기 특성에 맞는 특수지구를 짓다보니 문화도국으로 가는 교역로 자체가 문화 +1을 주게 되므로, 쿠마시에 꽂는 교역로는 출발 도시에서 지은 특수지구가 2개만 있어도 문화 +5을 받을 수 있다. 교역로가 늘어나고 특수지구가 늘어날수록 이 보너스는 더욱 무시무시해진다. 주변 도국이 털리지 않게만 잘 지키면 문화로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특수지구가 많은 문명과 교역할 때 효과가 극대화 된다. 플레이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AI가 먹었다면, 교역과 동시에 첩보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가 된다. 즉, 플레이어가 특수지구가 10개라면 AI는 교역 한번에 문화 +20을 꽁으로 쳐먹는다는 소리가 되므로, AI의 사절이 엄청 많이 꽂혀 있다면, 가차없이 파괴해 버리는게 났다. 괜히 냅두면, 도시국가 비상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양은 고슴도치로, 아샨티 제국의 국장에서 따 왔다.
2.3.5. [DLC]안타나나리보(Antananarivo)
안타나나리보 |
마다가스카르의 수도는 본래 바짐바족의 여유로운 고지대 마을로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 초 메리나 왕국의 안드리안자카 왕이 택하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그의 백성을 먹여 살릴,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논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확장과 질서의 시기 후 수십 년 간 진행된 메리나 왕국의 내전으로 안타나나리보는 4개의 수도 중 하나가 되었으나, 혼돈이 정리된 후에는 왕국의 정치적 중심지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초, 라다마 1세는 도시가 유럽 정착민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경제 호황이 일어나고 있던 도시에는 장인과 제조업자와 정착민이 모였습니다. 공장이 번창하였고 도시 확장에 맞춰 공공 기반 시설 또한 개선되었으며 독특한 건축 양식이 도시의 외형을 변화시켰습니다. 라다마의 후임 지도자들 또한 문화와 기술 혁신을 추구하여, 마침내 도시의 시민들을 위한 의무 교육까지 명하였습니다. 이후 1894년에 프랑스가 침략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식민지 통치로부터 1960년에 독립하였고, 현대화된 안타나나리보 또한 지킬 수 있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게임 시작부터 영입한 위인마다 문화 +2%를 획득합니다. (최대 총 30%). |
바이킹 시나리오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초반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후반 왕귀형 종주국 보너스를 갖고 있다. 보통 문화 승리를 하려면 위인을 많이 모았을 것이므로 중후반에 보너스가 +30%, +40% 이렇게 찍히면 순식간에 사회 제도 최종 테크를 찍을 수 있다. 위인을 많이 쓸 수 있는 흥망성쇠 확장팩에서 평가가 더욱 올랐다.
문화를 곱연산으로 제공하는 능력이 끝도없이 승천하는 게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는지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 최대 +30%로 제한이 걸렸다.
하지만, 별도의 위인 영입과는 별개로, 위인영입에 관련된 유지비는 꼬박꼬박 내야한다. 여기도 주의 해야 할 것이 있는데, 후반부에 나오는 록밴드와 강제 대 이동이 해금될 확률이 올라가기에 문승과 과승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위인영입을 목표로 하는 브라질의 경우에는 사절을 꼴아박기에 가차없이 파괴 해줘야 한다.
문양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여우원숭이 자체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만 서식하며, 섬 남서부에 서식하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종이면서 멸종 위기종이다.
2.3.6. [GS]라파누이(Rapa Nui)
라파누이 |
이 조그만 섬(163평방킬로미터)은 폴리네시아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남아메리카 칠레의 해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파누이는 모아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석조 조각상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모아이는 빼어난 조각 기법을 보여주는 예이며, 모아이의 구성과 배치는 섬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파누이에는 서기 9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이 정착했으며,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마르케사스 섬에서 카누 탐사대를 이끌고 찾아온 호투 마투아가 라파누이를 세웠다고 합니다. 첫 정착민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채롭고 수많은 대체 가설이 존재하지만 섬의 고고학적 증거나 역사 기록으로 뒷받침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착과 폴리네시아산 쥐의 유입은 섬의 생태계에 상당한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모아이를 건축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인력과 자재가 필요했으며, 그래서 이런 건축은 섬의 삼림이 파괴되는 데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간은 광활한 대양의 조그만 섬에 자신들을 고립시킨 것이었습니다. 고고학과 구전 역사에서는 이후에 이어진 침울한 시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구 전체를 안정적으로 먹여 살리기에는 식량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유해를 보면 이 섬이 폭력으로 얼룩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아이의 건축은 끝이 났고 마케마케 신을 숭배하는 '버드맨' 교단이 부상하여 통솔권을 장악한 후 대중 종교로 확립되었습니다. 이곳이 이스터 섬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유럽인이 섬에 대해 처음 기록한 시기가 1722년의 부활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이로운 모아이와 생태계 파괴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1722년부터 1860년 사이에는 대부분의 모아이가 단상에서 무너져 내렸으며, 이는 사회적 격변에 따른 결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1862년에는 노예 상인이 섬을 습격하여 수백 명의 주민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잡아 남아메리카로 수송했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천연두와 결핵 등의 질병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주민들은 천연두를 보유한 채 섬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추가적인 인구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1864년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처음 섬에 상륙했고, 그 결과 전통 의상, 관례와 문화 및 종교물이 파괴되었습니다. 섬의 토지 대부분은 압수당하거나 푼돈에 강매되었으며, 섬은 양 방목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섬 주민들은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77년에는 라파누이에 방치된 채 생활하는 인구의 수가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섬에서 생존한 인구 중 90%가 10년 안에 목숨을 잃거나 도주했으며, 롱고롱고라 불리는 독특한 표기 체계에 대한 판독법, 그리고 모아이의 건축법과 관련 역사와 같은 섬의 유산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라파누이는 칠레의 피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섬의 대부분은 국립공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주민들은 정착민과 폴리네시아인들의 혼혈인들입니다. 섬의 역사는 의도치 않은 생태계 파괴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으며, 섬의 식민지 역사에는 당시 최악의 관례를 개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아이는 아후의 단상으로 복원된 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수백 년에 걸쳐 목격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모아이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문화 +1. 인접한 모아이 2개당 문화 +1, 화산토에 건설하거나 인접하면 문화 +2, 해안 또는 호수 타일에 인접하면 문화 +1. 중세시장을 연구하면 모아이 간의 인접보너스가 인접한 모아이 1개당 문화 +1로 증가하며, 비행을 연구하면 관광을 산출. |
모아이는 문화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설이다. 다만 다른 산출이 없어서 마땅히 쓸 게 없는 타일에 짓는 것이 좋다.
활용도도 미묘해서, 사실상 없는 도국인 셈 친다. 먹힐 가능성이 높거나, AI가 신경도 쓰지 않는게 태반.
도시국가 치고는 드물게도 화산과 해안가 1단계[A]로 시작 지점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문양은 보다시피 모아이.
2.3.7. [NFP]카구아나(Caguana)
카구아나 |
콜럼버스가 카리브해로 항해했을 때, 그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현재의 푸에르토리코, 히스파놀라, 쿠바 지역에 살던 농경 부족인 타이노족이었습니다. 타이노족은 모계 혈통 중심의 사회였으며, 타이노족 여성과 남성은 분리된 마을에서 거주했습니다. 이들은 호전적인 카리브족("카리브해"의 어원)과 항상 긴장된 관계에 있었습니다. 카리브족은 때때로 카누를 타고 타이노족 정착촌을 공격했지만, 타이노족은 귀족 계급과 복잡한 종교, 스포츠 문화를 갖춘 번성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당시 이 지역에 2백만 명의 타이노족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타이노족 인구는 질병, 노예화, 전쟁 등으로 인해 크게 감소합니다. 스페인 사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콜럼버스 도착후 10년 동안 약 3백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는 "후세 사람들이 아무도 이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이노족에게 중요한 장소인 카구아나 유적지는 푸에르토리코 중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메소아메리카 구기 경기가 치러졌던 원형 경기장이 30곳 가까이 있습니다. 또한 암각화가 새겨진 암석들은 인근의 산과 자신들의 신을 연관지었던 타이노족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최고 전성기였던 1200년대에 카구아나 유적지는 종교 축제, 천문학 관측, 스포츠 경기와 같은 타이노족과 관련된 행사가 열리던 주요 장소였습니다. 현재 이곳은 푸에르토리코의 문화 유산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바테이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문화 +1을 제공하고 인접한 보너스 자원 및 유흥단지마다 문화 +1을 얻으며, 탐험을 연구하면 +2로 증가한다. 비행 연구 후에는 관광도 제공하며 언덕 또는 다른 바테이 인근에 건설할 수 없다. |
마야&그란 콜롬비아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이쪽은 지형제한이 평지에 한정이지만, 거의 개발 불가능한 지형(사막, 툰드라, 설원) 같은것에 붙여 지으면 그나마 났다. AI도 거의 종주국은 가져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문양은 푸에르토리코 유적지의 바위벽에 새겨진 벽화에서 따 왔다.
2.3.8. [NFP]아유타야(Ayutthaya)
아유타야 |
크메르 제국이 14세기에 몰락하면서, 그 영토는 자립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태국의 영토인 차오프라야 계곡에서는 태국어를 구사하는 인구와 라오스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거주하는 소승 불교 도시 국가인 '므앙'이 크메르로부터 분열하기 시작해, 크메르의 종교, 왕족 전통, 여타 문화 및 법적 특징은 유지하는 동시에 언어 및 문화적 독립성을 발휘했습니다. 므앙은 뚜렷한 국경은 없지만, 미와 예술적 성취, 범세계적인 외관을 중시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왕국인 '만다라 상태'였습니다. 이 당시의 국가들은 오늘날 지도상에서 보는 것처럼 퍼즐 조각이나, 현재 게임상의 국경이 둘러진 문명이 아니라, 시골에서 사람들과 힘을 불러오는 자석 같은 존재였습니다. 특히 자기와 향 등(같은 시기 라오스의 '므앙'인 비엔티안이라는 이름은 '백단유의 도시'라는 뜻이었습니다)과 같은 특정 물자의 왕족 독점은 힘과 이익을 불러왔습니다. 므앙이 크메르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14세기와 15세기를 거치며 한쪽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힌두교의 서사시 라마야나(태국어로는 라마키안)에 나오는 도시를 따라 이름 붙여진 아유타야는 처음에는 차오프라야 곡저평야의 구심점이 되었고, 그 후에는 동남아시아 본토의 엄청난 힘이 되어 유럽인 여행자들이 인도와 중국에 비견할 정도였습니다. 아유타야는 번성하는 과정에서 이웃 국가들, 특히 1500년대에 아유타야를 점령했으나 야심 넘치는 전사 왕 나레수안 때문에 약해졌던 버마와 정치적 및 군사적인 분쟁을 겪었습니다. 아유타야는 침략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일부 그리고 라오스가 아유타야 왕에게 점령을 당했습니다. 도시는 1600년대에 번성했고, 왕국은 여행자들로부터 더욱 친숙한 이름인 샴(크메르 단어나 중국어에서 유래됨)으로 불렸습니다. 아유타야의 왕들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개방적이었으며 일본인, 아랍인, 유럽인 의원들을 고용해 국제 외교라는 까다로운 영역의 개척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차오프라야 강 중앙의 섬에 위치한 도시 자체는 당시 25만 명이 거주할 정도로 거대했으며, 범세계적이고 다언어적인 특징을 가졌습니다. 일본인, 중국인, 유럽인 지역 사회가 도시에 수립되어 주민들과 교류했습니다. 성별 역할도 동아시아, 남아시아,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습니다. 한 중국인 여행자는 '만사를 아내가 관리하는 것이 샴의 풍습'이라고 언급했으며, 알렉산더 해밀턴은 '샴의 여성들은 유일하게 물자를 구입하는 상인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아유타야는 쇠퇴하는 대신 붕괴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버마 군대에 의해 붕괴된 것입니다. 버마는 1767년에 아유타야를 약탈 및 파괴하며 사원의 금과 다수의 실력 있는 장인들을 노략하고 도시 대부분을 불태웠습니다. 샴은 수년 후에 남쪽의 크룽 텝, 외국인들에게는 방콕이라고 알려진 도시에 재건했습니다. 오늘날의 태국인 샴은 공식적으로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지역 유일의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물 건설 완료시 건설 비용의 10%에 해당하는 를 획득. |
바빌론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금이나 신앙으로 건물을 구매하여도 문화를 준다. 그러다보니 구매 할인 효과와 궁합이 좋다. 금이 많은 문명에게 최고이며, 신앙이 많은 문명의 경우 발레타의 종주국 효과를 받으면 쏠쏠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특이한 경우로, 먼저 지은 대학교, 기념비, 은행이 비밀 결사 모드의 결사 전용 건물 진급을 찍음으로서 대체되었을 때도 건물을 새로 지은 판정을 받는지라 종주국 보너스가 적용된다.
문양은 아유타야 왕국 시절에 세워진 와트 차이왓타나람에서 따 왔다. 아유타야 시를 대표하는 유적 가운데 하나이면서, 타이 전국을 통틀어서도 아유타야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다.
2.4. 산업 중심
산업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수도에 생산력 +2. |
3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산업구역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6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산업구역이 있는 모든 도시에 추가 생산력 +2. |
흥망성쇠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수도에 생산력 +2. |
3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작업장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6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공장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수도나 작업장 건물이 있는 모든 도시에 생산력 +1. |
3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공장이 있는 모든 도시나 영사관이 있는 도시에 생산력 +2. (두 종류의 건물이 모두 있다면 생산력 +4.) |
6 | 불가사의, 건물, 특수지구 건설 시 발전소가 있는 모든 도시나 상법부가 있는 도시에 생산력 +3. (두 종류의 건물이 모두 있다면 생산력 +6.) |
2.4.1.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부에노스 아이레스 |
라플라타 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뻗은 매혹적인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태동기 이래로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해 왔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자신들 포르테뇨라 부릅니다. 이들은 스페인인, 포르투갈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아일랜드인, 폴란드인, 유대인과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화려하고 풍부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 도시를 '남미의 파리라 부릅니다. 이곳의 생활양식과 건축양식은 남반구의 그 어떤 도시보다 뚜렷하게 유럽적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배치 형태는 인종, 요리와 음악만큼이나 다양한 모자이크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리우데자네이루를 제치고 남미에서 가장 방문객 수가 많은 도시로 기록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도시는 1536년 스페인 탐사대에 의해 '바람이 좋은 성모 마리아의 도시'로 건립되었으며. 1816년에 독립한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880년에서 1940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 전역의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예술적 탄압에서 도망쳐 온 이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굶주린 아일랜드에서 독실한 유대인에 이르는 각 이민자의 물결로 도시는 각자의 전통과 재능이 섞인 다양한 곳이 되었고, 그리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세계의 어떤 수도와도 견줄 수 있는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예술과 문화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차적인 제조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으며 중장비 산업이 도시 경제의 1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도시 스프롤(확산)이 남부에 집중돼 있는 공장에서는 직물, 화학물, 자동차, 음료와 석유 제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류, 유제품, 담배, 곡물과 울을 비롯한 아르헨티나에 풍부한 농산물 수출을 위한 중심지 역할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제 더 이상 탱고로만 표현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보너스 자원이 사치 자원과 같이 취급되어 유형별로 쾌적도 +1을 제공. |
같은 종류 보너스 자원을 2개 이상 갖는다고 쾌적도가 더 오르지는 않는다. 보너스 자원은 총 10종류나 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쏠쏠한 쾌적도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 다만 보너스 자원은 수확하는 경우가 많아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마오리는 어차피 보너스 자원까지 안고 가야 하기에 종주국을 얻어두면 효과를 나름 잘 누릴 수 있다.
AI가 잘 거르는 도국중 하나. 효과도 미묘해서, 사실상 없는 셈 취급이다.
문양은 아르헨티나 국기에 그려진 "5월의 태양" 에서 따 왔다. 태양은 잉카 제국의 인티 신에서, 5월은 아르헨티나 독립의 시발점인 5월 혁명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후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큰 빚을 진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의 국기를 본떠 깃발을 만들면서 우루과이 국기에도 이 문양이 그려지게 되었다.
2.4.2. 브뤼셀(Brussels)
브뤼셀 |
브뤼셀은 서기 979년에 로렌의 샤를이 세느 강 주변의 작은 가톨릭 예배당과 마을 주변에 처음으로 요새를 건설하면서 생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는 강 주변의 낮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었던 관계로 홍수가 잦았는데, 네덜란드어 명칭인 '브롹셀(Broeksel)'은 '습지의 집'을 의미합니다. 시민들은 수백 년에 걸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도시를 신 유럽의 산업 중심지로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11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건축 및 확장된 높은 성벽으로 도시의 성장, 확장, 그리고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상당한 안전성을 선사했습니다. 약 200년의 시간 동안 도시는 여러 통치자를 거치며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는 1695년에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브뤼셀로 병력을 보내고 대포로 도시를 폭격하면서 갑작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공격으로 인해 그랑 플라스와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예상한 대로 1830년 '벨기에 혁명' 당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네덜란드 남부지역과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분리되었고 브뤼셀 대부분에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벨기에의 독립에 이어 새로 왕에 오른 레오폴트 1세는 수도의 새로운 건축물과 현대적인 건물을 올리기 위해 옛 성벽을 허물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도시의 동맥과도 같았던 센 강이 개방 하수가 되었으며 1867년부터 1871년 사이에는 오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브뤼셀은 전략적 중요성 부재, 독일 점령군의 무관심과 주민들의 전반적인 소극성 덕분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별다른 피해 없이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이런 요소, 혹은 이곳이 주요 운송의 중심지라는 사실 때문에 브뤼셀이 현재 국제 상업의 중심지이자 사실상 유럽연합의 수도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본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불가사의 건설 시 생산력 +15% 제공. |
불가사의 위주 플레이를 한다면 상당히 유용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꼭 먹고싶은 원더만[46] 먹는데에도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개사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A급은 되는 도국. 망치 전용 도시를 하나 키우면 원더 싹쓸이가 가능하다. 불가사의 생산에 이집트 특성이 +15%, 프랑스 특성이 +20%로, 그것도 시대 한정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생각하면 꽤 강력한 특성. 종주국을 먹었다면 불가사의 가속 정책카드와 자원 수확까지 활용해서 효과를 중첩시키자.
상당히 강력한 도국임에도 이상하게 AI의 사절넣기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랜덤으로 부여되는 안건중, 불가사의 옹호자, 진시황(천명)의 경우에는 무조건 종주국을 먹는다고 보면 된다.
문양은 붓꽃으로, 오늘날 쓰이는 브뤼셀 시 문양에서 따 왔다.
2.4.3. 홍콩(Hong Kong)
홍콩 |
진정한 도시 국가의 형태로 99년에 걸쳐 지속된 홍콩은 중국 해안의 거대한 항구입니다. 홍콩은 '향기로운 항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7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홍콩 섬과 내륙지에는 외국 상인들이 건설한 정착지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정착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홍콩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통상 무역을 위해서입니다. 금나라 시대에는 주변이 막힌 연안과 인접한 염전 지대 덕분에 섬 안의 마을이 지역의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300년 동안 지속된 당나라 시대에 홍콩은 국제 항구로 번영을 누렸고, 툰먼 구는 중요한 군항이 되었습니다. 1513년에는 포르투갈의 조르제 알바레스가 도착하면서 유럽과의 교역이 시작되었지만 명나라의 해금 칙령(쇄국 정책) 이후에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영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9세기의 청나라 시대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아편이 수입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 속에서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갈수록 값이 치솟는 중국의 차 무역을 상쇄하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아편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수입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의 통치자는 이를 반대했고 수입된 아편 화물에 대한 압수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결국 1839년의 아편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랜 분쟁 끝에 체결된 난징 조약을 통해 영국은 홍콩에 대한 99년의 임대 권리를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얻게 되었습니다. 100년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로 큰 번영을 누린 홍콩은 1997년에 평화로운 권한 이양을 거쳐 중국에 반환되었습니다. 인민공화국의 공공연한 공산주의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자유 무역을 지원하는 반자치적 정부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의 금융 중심지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시 프로젝트 건설 시 생산력 +20% 제공. |
초중반에도 몇몇 중요 위인들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돌리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승리 유형을 노리든 게임 후반엔 프로젝트만 주구장창 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반에는 홍콩의 종주국이 어디인가가 무척 중요하다.
빅토르의 군사 프로젝트와 중첩이 되기 때문에, 유용한 편도 있지만, 이 도국의 진가는 (재난, 구호, 경쟁) 비상 관련 프로젝트에도 붙는다. 덕분에 외교승리에 특화되어 있는 캐나다 같은 문명이 종주국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문양은 양자형(홍콩란)으로, 홍콩의 깃발에서 따 왔다. 흥미로운 건 별이 빠진 것인데, 이 별은 중국 오성홍기에서 가져온 것으로 중국에 대한 홍콩의 소속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2.4.4. [교체]토론토→멕시코시티(Mexico City)
멕시코 시티 |
멕시코시티라는 거대한 도시 군은 텍스코코 호수에 자리 잡은 한 섬의 아즈텍 정착지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도심화 지역, 그리고 금융, 제조, 정부 및 문화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를 품고 있습니다. 14세기에 고향을 떠나 멕시코의 높은 협곡에 정착한 아즈텍인들은 현지의 멕시코 부족과 연합한 후 텍스코코 호수 연안에 정착하고자 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사제가 위칠로포츠틀리라는 아즈텍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이들은 계시에 따라 가시 돋친 배 선인장 위에 앉아 부리로 뱀을 물고 있는 독수리가 목격된 곳에 정착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독수리, 뱀과 선인장의 이미지는 여전히 멕시코 국기에 반영되어 있으며 오랫동안 멕시코의 국가적 상징 중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새로운 아즈텍 도시의 이름은 테노치티틀란이었으며, 원래 이곳은 텍스코코 호수의 아주 작은 섬이었습니다. 아즈텍인은 호수와 도시를 빠르게 변화시켰으며,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호수 바닥을 매립하여 경작지를 만들었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의 원래 섬은 세 개의 둑길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제방, 수로와 운하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체계 덕분에 카누로 도시를 횡단하는 빈도가 도보만큼이나 잦았습니다. 서구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건설 방식을 찾아볼 수 없지만 굳이 비슷한 사례를 꼽으라면 베네치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정복자들은 유럽과 접촉 후 두 도시 간의 유사점을 찾아야 했음). 아즈텍의 수도는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 각지는 물론 아즈텍 제국의 국경 너머에서까지 물건이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거대한 우에이 테오칼리 단지는 아즈텍 종교와 관례의 중추적인 장소였습니다. 에르난 코르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도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머지않아 스페인을 위해 아즈텍 제국을 훼손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1521년에는 도시를 포위한 후 강제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도시는 멕시코시티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스페인 식민지 제국 정부의 가장 큰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은 텍스코코 호수에서 물을 빼냈고(홍수는 도시의 오랜 골칫거리였으며 스페인의 건축 기술로 이 문제를 완화시켰음) 도시는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멕시코시티를 대주교 관할구로 지정하여 도시의 입지를 더욱 높였습니다.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의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수도로 남았으며, 심지어 이러한 정부의 성격조차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변화했습니다. 도시는 1968년에 하계 올림픽을, 1970년과 1986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했습니다. 도시의 면적과 인구는 계속해서 성장했으며 이 도시 군은 멕시코 GDP의 5분의 1에 가까운 수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 대 국가 비율 중 하나입니다. 현재 도시가 직면한 문제 중 일부는 생태계 악화, 소득 불평등, 수질과 같은 기존 문제이지만 시민들은 계속해서 공식적, 비공식적 사화 체계에서 나름의 역동적인 열의와 유연성을 발휘하며 이에 대응해 나감으로써 이 고대 도시를 지속적으로 쇄신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산업구역과 유흥단지, 워터 파크의 지역 효과 범위가 3 타일 증가. |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에서 캐나다가 정규 문명으로 합류하면서 토론토를 대체하여 투입되었고 종주국 보너스를 그대로 가져왔다.
공장 범위 중첩이 가능하던 오리지널 시기 때는 강했지만 중첩이 불가능하게 된 뒤로는 소소하게 도움이 되는 평범한 수준. 산업구역은 도시마다 지어주는 일이 꽤나 되어서 범위 증가 효과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그래도 산업구역을 짓지 않는 일도 적잖다보니 평범하게 좋다. 유흥단지와 워터파크를 적게 짓는 도시 계획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도 장점. 유흥단지와 워터파크가 극장가에 상당한 인접을 주도록 패치된 이후로 유흥단지와 워터파크를 여러개 짓는 것도 큰 손해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극장가 인접 보너스 챙길 겸 더 지어도 좋으나, 이때도 더 짓기엔 부담이 될 때 멕시코시티의 효과가 소소한 도움이 된다.
다만, 산업의 경우에는 이산화탄소 배출 비율이 더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그나마도 마그누스의 3진급인 수직적 통합과 시너지가 잘 맞기 때문에, 유흥보다는 산업에 더 몰빵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여담이지만 상단의 설명에도 나와있다시피 멕시코 시티는 사실 테노치티틀란의 미래 모습이다. 게임 내에 아즈텍과 멕시코 시티가 같이 있다면 고증 상으로는 중복인 셈.[48] 아즈텍은 캐나다가 나오기 한참 전인 예약구매 때부터 있던 DLC 문명인데 왜 이렇게 했는지는 의아할 따름.[49]
문양은 선인장. 용이나 그리폰 같은 게 그려져 있는 다른 문양에 비하면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아즈텍 제국 창건 이전에 여기저기 떠도는 생활을 하던 메시카인들에게는 선인장 위에서 독수리가 뱀을 물고 있는 땅에 도시를 세우면 번영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고 이 예언이 들어맞은 땅에 세운 도시가 바로 테노치티틀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테노치티틀란의 상징[50]은 선인장이 되었으며, 오늘날 멕시코의 국기에도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서 뱀을 물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2.4.5. [DLC]오클랜드(Auckland)
오클랜드 |
지금에 뉴질랜드 북부에 있는 지협에 마오리 족의 정착했을 때 이들은 비옥한 토지, 무성한 정글, 그리고 휴면기에 있는 화산들로 형성된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지협 양쪽에 천연적으로 보고된 항만은 풍부한 어업을 제공했고 '와카 타우아'로 불린 전투용 카누 기지로도 적합했습니다. 정착자들은 그곳을 '타마키 마카우라우'라 불렀는데, 이는 대략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처녀'로 해석됩니다. 마오리 정착 이후 500여 년이 지난 1840년에 새로운 영국인 총독 윌리엄 홉슨은 타마키 마카우라우가 새로이 개척되는 뉴질랜드 식민지의 수도로 매우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이곳을 오클랜드로 명명했는데, 이는 '제 후원자가 오클랜드 백작인데, 이렇게 하면 제가 더 많은 후원금을 요청할 때 도움이 되겠지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후일에 수도는 웰링턴으로 옮겨졌지만, 오클랜드가 잃어버린 정치적 위신은 활기찬 경제로 충분히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몇 안 된 전투상황에서도 경제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마오리 부족의 족장이 체포에 항의하며 도시를 공격하자, 시는 그들에게 상당량의 담배를 넘겨주어 상황을 해결했습니다. 20세기 초 파나마 운하의 개통은 오클랜드의 역할을 남태평양 해상 운송 노선에서 필수적인 정박지로 추가 확장시켰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보유하고 있는 얕은 물 타일에서 생산력 +1, 산업시대 이후로 추가 생산력 +1. |
바이킹 시나리오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종주권 보너스는 해안 타일과 호수 타일에도 모두 적용된다. 판게아에서는 호수가 덕지덕지 나오지 않는 이상 그저 그런 도국이지만, 7대양이나 프랙탈, 섬판 등 해안의 비중이 높은 맵에서는 개사기급. 이 도국이 있으면 애매한 물 타일들이 모두 자원의 보고가 되며, 해안 시설과 조합된다면 게임을 터뜨릴 수 있다. 굳이 인도네시아나 총독 량이 아니더라도 스타팅 특성상 해안 위주 도시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굉장히 유용하다. 해양 자원들은 반드시 산호초와 같이 나오는 거북이, 고래만 생산력을 주기에 해안 도시들은 생산력이 매우 고달프기 마련인데, 가장 필요한 생산력을 주는 효과의 유용함은 더 말하는 게 입 아플 수준.
량의 수산시장과 중첩이 되기에 해안 도시를 필려고 작정하는 쿠페, 디도, 기타르자와 궁합이 아주 잘맞기 때문에 의외로 도국을 선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양은 오클랜드 시가 "돛들의 도시"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듯 하다. 시빌로피디아에도 짧게 서술되어 있듯이 이 도시는 해양 운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트나 보트 등을 위한 마리나와 항구들도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2.4.6. [GS]카디프(Cardiff)
카디프 |
카디프는 석탄 공급 및 산업 도시로 정점을 찍었던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큰 호황을 누렸던 웨일스 최대의 도시입니다. 지금도 카디프는 웨일스의 수도로서 산업 및 행정의 중요한 중심지로 남아있습니다. 로마인들은 타프캉의 여울에 작은 요새를 건설했으며, 정확하게는 타프강이 세번강과 브리스틀 해협과 합류하는 글로스터와 카마던 사이의 도로였습니다. 웨일스어 지명인 케어-타프(Caer-Taff)는 말 그대로 '타프강의 성'을 의미합니다. 노르만 영주들은 로마의 요새를 점령했으며, 도시에는 1150년에 건설된 석조 아성이 지금까지 보전되어 있습니다. 성 주변으로는 성곽 도시가 번영을 누렸으며, 중세 시대를 거쳐 영토와 항구 교역이 늘어나면서 성과 도시 모두가 확장되었습니다. 카디프의 역사는 영국의 산업 혁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개발된 철 및 석탄 광산의 자원이 산 밑으로 운반되어 배에 선적되기 시작하면서 카디프 항구는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에 급증한 철도를 이용하여 제철 및 제조 업체는 철과 석탄이 가까이 있는 이곳을 활용했습니다. 웨일스, 잉글랜드, 아일랜드의 노동자들이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항구는 계속해서 성장과 확장을 이어갔고 1913년의 카디프는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자원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석탄 항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뷰트의 후작, 존 크라이튼 스투아트는 카디프의 산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일 것입니다. 카디프 성의 영주였던 그는 타고난 기획력과 잔혹한 중세 법률을 활용하여 카디프 부두를 통한 교역을 개발 및 촉진하고 주변의 경쟁자를 배척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노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19세기의 카디프 역사는 노동 사태 및 분쟁으로 얼룩졌습니다. 카디프의 석탄 산업은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정점을 찍었으며, 종전 이후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조업은 20세기 동안 계속해서 축소되었지만 도시는 웨일스의 정치 행정 중심지로 더욱 중요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1955년, 카디프는 웨일스의 수도로 인정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카디프는 계속적이고 자체적인 쇄신을 이루는 동시에 제조 및 엔지니어링 산업을 위한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도시는 강력한 영화 및 TV 산업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카디프는 비록 석탄 도시로서의 명성은 잃었지만 드라마 '닥터후(먼 행성에서 온 기발한 시간 여행자)'의 모험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항만 건물을 건설할 때마다 도시가 전력 +2를 얻습니다. |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의 전력 시스템과 함께 추가되었다. 후반에나 효과를 보는 종주국 효과인데다 후반에는 전력을 확충할 수단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소소한 효과라고 평가받는다. 다만 대륙이나 군도 등 바다의 비중이 큰 맵이라거나 해안 도시가 많다면 조금 괜찮게 볼 여지도 있는데, 영토 내에 육지가 비교적 적을 경우 대체 에너지 시설을 짓기 여의치 않을 수 있기 때문. 물론 이럴 경우를 대비하라고 연안 풍력 발전소가 있는 거긴 한데, 얘는 원자력도 정보화도 아니고 미래 시대 기술을 필요로 하므로 너무 늦게 나온다. 그렇다고 대체 에너지를 포기하고 화석 연료를 때자니 해안 타일들이 수몰될 판이고.
덧붙여 이 도시국가가 제공하는 전력도 불가사의 바이오스페어의 보너스를 받아 전력과 관광을 추가로 제공한다.
해양을 겨냥한 도시국가답게, 노르웨이, 영국, 일본 같은 해군력을 양성하는 국가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2라는 적은 수치로는 (경기장 or 아쿠아틱 센터, 공장, 공항, 식료품점 or 쇼핑몰)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으므로, 추가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문양은 현대 웨일스의 상징기에도 나올 정도로 웨일스를 대표하는 상징인 용. 그 중에 머리를 따온 것이다. 붉은색 용이 웨일스의 상징이 된 것은 적어도 7세기 중엽부터.
2.4.7. [NFP]싱가포르(Singapore)
싱가포르 |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끝에 위치한 도시 국가입니다. 조호르 해협에 자리잡은 싱가포르는 남아시아와 인도양을 동아시아와 태평양과 연결하는 핵심 교역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식민 시대 이전에 이 지역은 수마트라 섬의 스리비자야 왕국, 자바 섬의 마자파히트 왕국을 비롯한 다양한 제국과 말레이 술탄국이 지배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한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현지 주민들을 가톨릭교로 개종하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향신료 거래로 이익을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 이전 싱가포르는 말레이 본토 너머의 말레이 왕국인 조호르 술탄국의 지배를 받던 작은 어촌 마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19년에 수익성이 높은 위치에 있던 싱가포르는 대영제국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영제국은 이곳을 통제해 인도 아편을 영국 선박에 실어 중국 시장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영국 장교 스탬퍼드 래플스는 조호르에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새로 임명된 술탄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영국에 섬에 대한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모두 래플스가 계획한 대로였습니다. 싱가포르는 대영제국 식민지 운영의 핵심부가 되었으며, 무역 허브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금 작물을 재배하고 인도 동부로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한 실험실 역할을 했습니다. 대영제국은 호키엔족, 광둥인, 중국 남부의 하카 이민자, 인도 남부의 타밀 노동자, 말레이 반도 내 다른 이민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섬에 이주시켰습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의 대영제국 식민지(해협 식민지)를 운영하기 위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00년대 싱가포르는 또다른 불운을 겪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군이 섬을 포위해 점령한 것입니다. 결국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지만, 영국이 이 섬을 보호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해협 식민지 주민들은 이전의 식민 통치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 제국주의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대규모 시위와 봉기를 통해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지만, 대영제국 이후 말레이 반도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무슬림이 다수인 말레이 반도에서 말레이 사람은 이전 식민지의 자연 상속자이고 중국인은 침입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 튀기는 종족 간 폭력 사태가 일어났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다수가 중국인인 싱가포르와 그곳 지도자 리콴유에게로 도망쳤습니다. 1965년 긴장된 협상 끝에 말레이 반도(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퇴출했습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번성하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며, 때때로 엄격하게 국가를 통제하며 경제적 번성을 위해 인종 및 노동 갈등 간에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리콴유의 결단력 또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싱가포르는 21세기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온 600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는 역동하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공에는 주변 지역의 노동자들과 부를 이용하는 식민지 유산과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전반적으로 실용적인 정치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교역로가 연결된 외국 문명마다 도시가 생산력 +2를 얻습니다. |
번역이 좀 묘하게 되어있는데, 실제 효과는 도시에서 출발하는 상인들이 향하는 다른 문명의 개수×2의 생산력이 추가된다. 다른 문명으로 꽂는 첫 교역로에 생산력 +2라고 생각하면 편할듯. 페니키아나 포르투갈처럼 상인을 여러 경로로 꽂을 수 있는 문명이라면 나름 쓸만하지만 다른 문명은 동맹 한 명 정해두고 비셀방켄 넣어서 그 문명으로만 상인 꽂는 게 이득이라 영 애매하다. 모든 문명에 최대한 교역로를 꽂아 교역로 관광 증폭을 챙기는 문화승리를 노릴 때 궁합이 좋다. 의외로 교역에 목숨거는 몽골과 궁합이 맞는다.
문양은 싱가포르 국기에서 따 왔다.
2.4.8. [NFP]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요하네스버그 |
요하네스버그의 이야기는 부와 갈등의 이야기입니다. 요하네스버그가 정착한 토지에는 인류가 수백만 년간 존재했으며, 근래에는 산족, 소토츠와나족, 여타 아프리카인들이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그 후 영국이 지역에 출몰하면서, 유럽 제국들의 쇄도는 남아프리카를 영원히 뒤바꿨습니다. 후자가 전자를 몰아내자, 네덜란드 개척자들은 북부의 남아프리카 내륙으로 이동해 내륙 깊은 곳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한 개척자가 1880년대에 요하네스버그가 된 땅에서 비트바테르스란트 금광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후로 탐사자들이 금을 찾아 지역에 모이고, 대지주들이 영토 지배권을 찾고, 남아프리카 전역의 노동자들이 광산에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도시는 급격히 번성했습니다. 광부, 폭력배, 그리고 줄루족이 지배했던 세탁업계를 비롯한 온갖 지역에서 온 인간군상들이 모인 거친 장소였습니다. 네덜란드계 아프리카너와 영국 개척자들이 성장하는 도시에 이름을 붙였지만('요하네스'는 당시 가장 인기 많은 네덜란드 이름이었음), 인구 대부분은 아프리카인이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제1차 보어 전쟁 때 영국 확장에 저항하고 독립 공화국으로서 잠시 존재했던 보어(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인 트란스발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2차 보어 전쟁 때는 제국에 대항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요하네스버그의 인구가 줄고 중국인 지역 사회가 건설되었습니다. 광산에 대한 주목은 요하네스버그의 특징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광부들의 정착지인 소웨토는 수도와 크기가 대등하거나 추월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1948년에 도입된 인종주의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이 광부들의 움직임은 제한되고 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흑인 학생들이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며 행진하는 1976년 소웨토 폭동의 형태로 폭발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경찰은 총을 쐈습니다. 그 결과, 소웨토와 ANC(아프리카 민족 회의)는 아파르트헤이트 저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ANC가 1994년에 집권하며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냈습니다. 오늘날,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채굴의 중요성은 감소했고, 여전히 광부와 경찰 사이의 갈등이 있지만, 도시는 산업 중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각각의 개발된 자원 종류마다 해당 도시에 생산력 +1, 산업화 이후로 생산력 +2. |
보너스 자원, 사치 자원, 전략 자원 위에 시설을 건설하여 개발하면 생산력을 준다. 해당 시설에 시민을 배치할 필요없이 도시에 생산력을 제공해주는 데다가 산업화를 연구하면 그 수치가 2배가 된다. 여러모로 강력한 효과이지만 같은 종류의 자원에서 중복하여 생산력을 얻을 수는 없다.
역시나, 다도시를 운영할때 가장 강력하다. 외교관계고 뭐고 간에, 대장군의 왕좌를 찍고 정복문명으로 가면, 생산력이 폭발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AI가 개발한 사치, 보너스, 전략자원을 잡아먹고, 또 미친듯이 정복활동을 하면, 비상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즈텍과 궁합이 가장 최고다.문양은 오늘날 요하네스버그의 상징기에서 유래했다.
2.5. 상업 중심
상업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금 +4. |
3 | 모든 상업 중심지에 금 +4. |
6 | 모든 상업 중심지에 추가 금 +4. |
흥망성쇠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금 +4. |
3 | 모든 시장 건물에 금 +4. |
6 | 모든 은행 건물에 금 +4.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금 +4. |
3 | 모든 시장 및 등대 건물에 금 +2. |
6 | 모든 은행 및 조선소 건물에 금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와 모든 시장 및 등대 건물에 금 +2 |
3 | 모든 은행, 조선소 및 영사관 건물에 금 +4 |
6 | 모든 증권 거래소, 항구 및 상법부 건물에 금 +6 |
2.5.1. 잔지바르(Zanzibar)
잔지바르 |
소위 향료제도의 일부를 이루는 잔지바르 섬에서는 석기시대 야만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이래로 약 20,000년에 걸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서기 632년에 무함마드가 사망할 무렵까지는 잔지바르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랍, 인도 및 페르시아의 경로에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입지를 갖추고 있었으며 세 지역의 상인들과 다양한 무리들 잔지바르로 이주해왔고, 또한 이 섬은 아프리카 동부 해안지역을 따라 노예 약탈을 감행하는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주둔지 역할도 하였습니다. 노예 거래는 당시 또 다른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습니다. 1498년에 있었던 다가마의 방문은 고국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1503년경, 잔지바르는 소규모의 원정군이 상륙하여 평화를 빌미로 현지의 술탄으로부터 공물을 요구하여 받아냄으로써 포르투갈 제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포르투갈의 관리는 생각보다 허술했고, 1592년에 이곳을 경유한 영국의 한 선장은 포르투갈 교역소를 제외한 그 어떤 요새나 주둔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에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정향, 바닐라, 계피와 육두구를 비롯한 향신료와 여러 값싼 작물을 경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은 식민지 곳곳에 생겨난 수많은 농장에서 노동에 시달렸으며 유럽과 아시아의 각종 교역선이 항구를 드나들었습니다. 술탄은 향후 이백 년 동안 스톤타운(현재 잔지바르 시의 도심 지역)에서 계속 통치를 이어갔으며 자신들의 몫만 꾸준히 들어온 이상 포르투갈인들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인 자치권은 영국에서 포르투갈과 아랍의 노예 거래를 장악하면서 박탈되었고, 수십 년에 걸친 협상, 협박과 간헐적인 폭력에 이어 1873년에 체결된 앵글로-잔지바리 조약으로 술탄은 자치권을 잃었고 잔지바르의 경제는 붕괴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철수했고 1890년에는 이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던 다른 유일한 강대국인 독일이 '영국의 잔지바르 보호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보호령은 1963년 12월에 영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종료되었고 잔지바르는 탕가니카와 연합하여 탄자니아를 건립하였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방법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계피와 정향나무를 사치 자원으로 제공받음. 각각 쾌적도 +1을 제공(최대 6개의 도시까지). |
일반적인 사치 자원이 도시 4개까지 쾌적도를 제공하는데 그보다 더 많은 6개의 도시에 쾌적도를 제공하여 많은 도시에 쾌적도 걱정을 덜게 해주는 종주국 보너스이다. 전쟁 중엔 전쟁 피로도를 크게 덜어주고 내정만 할 때도 유흥단지를 지을 생산력을 다른 특구로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도국.
AI는 사치자원에 눈알이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도국 1순위 대상으로 꼽힌다.
문양은 정향으로, 잔지바르 술탄국 시절(1856~1964)의 국기에서 따 왔다.
2.5.2. [교체]자카르타 →반다르 브루나이(Bandar Brunei)
반다르 브루나이 |
캄퐁 아에르의 수상 마을은 한때 여행자들 사이에서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수도는 16세기부터 브루나이 술탄왕국의 심장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브루나이강 북부에 위치한 반다르 브루나이의 역사는 최초의 말레이인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서기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많았던 해적들을 모조리 뿌리 뽑은 이 도시는 1500년대에 접어들면서 술탄왕국의 항구 도시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코타 바투의 수도, 그리고 캄퐁 아에르를 이루는 42개의 마을(나중에 반다르 브루나이에 편입됨)에 이어 브루나이의 세 번째 수도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이 보석 같은 도시를 놓고 분쟁을 이어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뜨거운 분쟁 지역이었던 반다르 브루나이는 이후 독립적인 석유 허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문명 도시에 있는 플레이어 교역소를 지나가는 무역로마다 금+ 1 제공. |
DLC에서 인도네시아가 정규 문명으로 합류하면서 반다르 브루나이가 자카르타를 대체하여 투입되었고 종주국 보너스를 그대로 가져왔다. 약간 설명이 복잡해 보이지만 요약하면 교역로 사이에 외국도시에 만든 교역소가 있으면 추가로 금 +1을 얻는다. 교역로를 어느정도는 원하는대로 유도할 수 있어도 완벽히 원하는 경로로 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놓고 노리기도 힘들고 있으면 좋은 정도의 효과다.
AI는 도시국가의 종주국 보다는 사절 효과만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주국 희망확률은 낮은편이다. 그래도 상업 도국인지라, 초반에만 금 보유고가 흑자로 돌아서면, 손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담으로 이 도시국가의 문양으로 도시국가 시절 자카르타의 것을 쓰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문양을 이어받은 건가 하는 추측도 있었지만[56], 문양이 따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출력되는 버그임이 밝혀지고 2020년 10월 말 패치에서 수정되었다. 문양은 브루나이의 국장 가운데 윗부분을 따 온 것.
2.5.3. [교체]암스테르담→안디옥→베네치아(Venice)
베네치아 |
시인 요세프 브로드스키는 베네치아를 “영원 그 자체”라고 표현했습니다. 14세기 토스카나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베네치아를 “또 하나의 세계(mundus alter)”라 표현했습니다. 칭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이런 경, 토마스 맨, 윌리엄 셰익스피어, 대프니 듀 모리에 등의 작가, 영화 제작자, 시인들이 바닷가에 붙은 이 오래된 도시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도시의 심장부가 석호 중앙의 섬에 세워졌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물과 밀접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무역 역사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사실 베네치아 총독(Doge: 라틴어 “duke”에서 유래됨)은 특별한 경우에 바다와 상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베네치아와 같은 국가를 일컫는 올바른 용어는 해양 공화국, 해양 국가라는 뜻의 “탈라소크라시(Thalassocracy)”입니다. 베네치아의 기원은 로마 제국 말기의 게르만족과 훈족에서 유래합니다. 로마의 이탈리아 통치가 무너지면서, 부유한 로마 가문은 곧 부유해질 훈족 가문에게 부를 강제로 뺏기지 않기 위해 섬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탈리아가 혼란에 빠지자, 베네치아는 로마의 잔여 세력인 비잔티움인들과 동맹을 맺었으나, 결국 관계를 끊고 독립 도시 국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이 1204년에 십자군의 강탈을 당한 이후로 비잔티움의 힘이 쇠락하자, 베네치아는 새롭게 등장한 지중해의 아랍 세력과의 거래를 독점했습니다. 베네치아의 힘은 이 기간 동안 정점에 올랐으며, 베네치아 미술은 특히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베네치아 미술가로는 그림과 자연광의 상호 작용을 중시했던 벨리니 가문이 있으며, 베첼리오 티치아노, 조르조네, 베로네제 등의 미술가는 모두 질감, 관능성, 조명, 풍경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정교한 가면과 복장을 갖춘 베네치아 축제는 사치와 관능성의 유명한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베네치아 유리 제조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기술입니다. 베네치아 제국은 무역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역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선창 내에 숨은 쥐 가죽으로 전파된 흑사병과 잇따른 전염병은 도시를 몇 번이고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15세기의 베네치아는 동쪽과 서쪽에서 한 번씩, 총 두 번의 중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동부에서는 베네치아가 오랜 동맹국인 비잔티움이 오스만 술탄이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는 존재인 오스만 터키에 대항하는 일을 도왔고, 오스만이 지중해 동부에서 힘을 얻으면서 베네치아의 선박이 약탈당하고 항구가 파괴되었습니다. 게다가 서쪽에서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동아시아와 장거리 해상 교역을 완성시키며 지중해 및 베네치아 선박과 거래할 필요성을 완전히 앗아갔습니다. 나폴레옹이 본인의 이름이 걸린 19세기 초 전쟁에서 베네치아를 정복하면서 베네치아는 자주권을 잃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베네치아는 자주성을 잃었으나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베네치아의 유대인 인구가 살기 위해 필요한 도시 구역인 게토 관문들을 없애고, 도시의 유대인이 원하는 곳에 살도록 허가를 내려 베네치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정복된 이후로 베네치아는 자주권을 되찾지 못한 대신, 오스트리아, 그 후에는 초기의 이탈리아 왕국에 양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의 영토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이 도시는 세계에서 매우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로 가라앉고 있기도 합니다.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은 도시에 심각한 위협을 주며, 해수 석호 위의 습지 섬이라는 이전까지 유리한 위치는 가장 위험한 지형 특성으로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도시의 80%가 침수되었습니다. 상징적이었던 바다와의 결혼식이 오늘날에는 더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많은 물이 밀려오면서 말이죠.[58]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문명과 연결되는 교역로에서 목적지 도시의 사치 자원마다 금 +1 제공. |
2020년 9월 25일 비잔틴&골 추가 이후 안디옥이 베네치아로 다시 대체되었다. 베네치아는 문명 5 2번째 확장팩 멋진 신세계에서 플레이 가능 문명으로 등장했었다.
교역로에서 보너스를 주는 다른 상업 도국인 반다르 브루나이보다 효과를 보기 좋아서 평이 더 좋았으나, 아예 상인의 이동 거리로 보너스를 주는 훈자의 등장으로 조금 밀리게 되었다. 이동 거리가 짧으면 훈자보다 베네치아의 종주국 보너스가 더 좋을 수 있으나, 훈자의 효과는 내부 교역로에도 적용되는 장점이 있어서 훈자보단 약하다.
개발된 사치자원이 아닌, 도시내에 존재하는 사치자원 하나당이기에 개발하지 않아도 되고 이 사치자원은 중첩이 되기에 사치자원이 10개라면 10개가 모두 중첩이 되므로 금+10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문양은 베네치아공화국의 국기에서 따 왔는데, 이 국기의 유래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이며 마르코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다.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베네치아의 국기는 평시용과 전시용 두 가지가 있었는데, 평시에는 사자가 기독교 경전에 발을 올려놓은 모습의 깃발을 썼고 전시에는 검을 든 모습을 썼다고. 사실 전작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문명으로 나오는 베네치아를 봤다면 배경 지식이 전무하다고 하더라도 연관성이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2.5.4. [교체]리스본→모가디슈(Mogadishu)
모가디슈 |
소말리아의 해변은 고대 시대부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인도의 아대륙을 가로지르는 교역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은 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로마 시대에 소말리아 및 아랍 상인은 로마 시장들과 너무 가까운 아프리카 대륙 북부의 항구에 인도 상인이 방문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수익성이 좋은 로마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인도 상인은 모가디슈와 같은 항구에서 입지를 다졌으며, 따라서 이 도시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인도 상인들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인도와 로마 외에도 소말리아 상인들은 의류를 비롯한 상품들을 페니키아,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및 그 너머로부터 스와힐리 해안까지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는 수단과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서쪽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14세기 아랍 철학자 이븐 할둔은 모가디슈를 번성한 도시로 묘사했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유목민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할둔은 유목민과 정착민이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는 역사의 순환을 주장했으며 모가디슈는 유목민의 승리를 대표합니다. 뒤늦게 식민주의를 추구하며 다른 유럽 세력과 합세한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는 영국에게서 현재의 에리트리아(라틴어로 '홍해')를 '받았고', 에티오피아를 정복하려고 했으며(에티오피아 황제 메넬리크 2세에 의해 실패), 소말리아 술탄으로 하여금 이탈리아의 피보호국이 되도록 서명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모가디슈는 곧 이탈리아의 소유가 되었지만, 1940년대에 이탈리아가 소말리아를 영국에게 잃게 되었고, 영국은 1960년대에 독립하기 전까지 이 영토를 UN에게 맡깁니다. 소말리아가 독립하자 모가디슈는 수도가 됩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상인 유닛이 물 타일에서 약탈당하지 않음. |
뉴 프론티어 패스 마지막 문명으로 포르투갈이 등장하여 리스본 대신 등장한 도시국가이다.
리스본 대신 등장한 도시국가답게 국제 교역로가 항상 바다를 통해 이어지는 포르투갈과 매우 잘 어울린다. 물론 리스본처럼 상당히 심심한 효과인 것은 변함이 없다. 주화 개혁 황금기에 완벽히 대체되는 것도 그대로다.
야만인 해적을 완벽하게 무시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해상교역에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해군을 굴리는 문명의 사절에게 쉽게 무력화가 되므로, 상인이 야만인에게 털리면 혈압 올라가는건 기본.
도시국가 치고는 드물게도 해안가 1단계[A]로 시작 지점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사실 이 곳은 과거 동아프리카 황금 및 상아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동네다. 다만 오늘날 해적으로 유명한 소말리아의 수도가 약탈 방지 효과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긴 한데, 따지고 보면 해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교통이나 교역의 요충지라는 뜻이다.
문양은 소말리아의 옛 국가 가운데 하나로 해양 교역으로 번영했던 아주란 술탄국의 국기에서 따 왔다.
2.5.5. [DLC]무스카트(Muscat)
무스카트 |
무스카트를 통과하는 교역로는 최소한 2천 년 동안 무스카트의 생명소와 같았습니다. 알 하자르 산맥 기슭의 언덕 앞에 위치한 이 도시를 프톨레마이오스는 1세기경 부터 숨겨진 항구('크립투스 포르투스')라 불렀습니다. 페르시아 만 입구의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이는 외부에 쉽게 노출되는 지리적 특성이어서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여러 세력으로부터 점령당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스카트의 항구는 다양한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사산 왕조, 아라비아(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됨), 아바스조, 셀주크 왕조, 페르시아 등 열거하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16세기 초 한 포르투갈 제독은 교역 관계를 맺기 위해 대포와 포탄으로 협상하여, 무스카트 대부분을 파괴했습니다. 이후 재건되어 포르투갈 지배하에 있다가 1650년 오만 세력이 그들을 몰아내고 이 항구 도시를 되찾았습니다. 무스카트는 주로 자치 문제로 오랫동안 오만의 내륙지역 부족들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갈등이 있던 18세기에 알 부사이드 왕조가 세워졌고, 현시점까지도 끊김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현대화된 무스카트는 오늘날 오만의 수도이며 여전히 중요한 무역항으로 남아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상업 중심지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 쾌적도 +1. |
바이킹 시나리오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해안 도시가 아니면 상업 중심지는 대부분의 도시에 짓게 되므로 쾌적도 관리에 소소하게 도움이 되는 도국이다.
문양은 칸자르라는 단검의 일종으로 적어도 17세기 중반부터는 쓰였으며, 과거에는 평범한 검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결혼식이라든가 축제, 행사 등에서 남성만 착용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오만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2.5.6. [GS]카호키아(Cahokia)
카호키아 |
미시시피강 유역의 평원에는 거대한 둔덕이 솟아올라 있습니다. 이곳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도시이자 전례지였던 카호키아가 있던 곳입니다. 이 도시의 중요성은 최근의 고고학 연구 이후에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도시는 약 8세기경에 후기 우드랜드인이 건설했습니다. 이 무렵에는 방대한 옥수수 경작이 특징인 독특한 미시시피 문화가 분기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인구는 증가했고 사회 구조는 복잡해졌습니다. 카호키아 마운드는 이 무렵에 건설이 시작되었고, 도시에는 종교적으로 의식을 진행하는 중심지가 있었습니다. 카호키아의 주요 구조물은 천문학적 축선과 기본 방향을 따라 배치되었으며 대형 목조 건물의 흔적이 현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천문학적 지표에는 향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진 관측소(구어체로 '우드헨지')가 있었으며 주택 상층과 하층 사이가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청키(Chukey) 경기를 위한 운동장도 있었으며, 청키 선수는 주로 카호키아 미술의 주된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인트루이스의 주민들은 지역 특유의 스포츠 팬덤이 진정한 고대적 요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50년에 카호키아에는 런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미시시피의 범람원으로 인구를 먹일 수 있는 풍요로운 경작지가 형성되었으며, 유물을 통해 멀게는 멕시코와의 교역까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화되는 갈등의 흔적도 존재했습니다. 같은 세기 중반에는 길고 거대한 방책이 건설되었고 나중에는 이 방책이 보강되기까지 했습니다. 카호키아 인구와 부의 감소는 중세 온난기의 종식과 때를 함께 했습니다. 기온이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미시시피 주민들의 경작 체계로는 더 이상 카호키아의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도심지의 역할은 줄었지만 카호키아는 계속해서 종교적, 전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카호키아는 결국 14세기에 황폐해졌으며 17세기에 일리니웨크의 카호키아 무리가 다시 장착하여 카호키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원주민이 원래 사용했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선교단과 교역단은 카호키아 지역에 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1809년에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승으로 이루어진 지역 사회에서 가장 큰 둔덕 중 하나에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이후에는 이 둔덕이 '몽크스 마운드'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둔덕의 정확한 용도가 알려지기 전이었으며, 둔덕의 용도에 대한 단서가 발견된 건 한 진취적인 농부가 둔덕에 우물을 판 19세기 중반이었습니다. 카호키아 마운드 역사 유적은 1979년에 제정되었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카호키아에서 진행된 연구는 서구의 식민지화 이전에 있었던 북미 원주민의 삶, 특히 도시 개발 및 교역망과 관련된 거시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집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미시시피를 따라 아메리카 최초의 위대한 도시를 건설한 민족의 삶에 대한 창구로 기능하기를 모두가 희망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카호키아 마운드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
카호키아 마운드는 주거공간과 금을 제공하며 도시나 특수지구, 산, 자연경관, 숲, 밀림이 아닌 육지라면 어디든 지을 수 있지만 붙여서 짓지는 못한다.
AI가 도국을 먹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서로 종주국을 가져가겠다고 하루를 멀다하고 박 터지게 싸우거나, 비난공세를 퍼붓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문양은 종주권을 얻으면 지을 수 있는 시설물인 카호키아 마운드.
2.5.7. [NFP]훈자(Hunza)
훈자 |
스페인 탐험대는 남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 황금도시 "엘도라도"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대부분 단순한 탐욕에서 비롯되었지만, 후세 작가들은 어도비 벽돌로 지은 마을들의 해질녘 모습이 탐험가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했을지 궁금해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엄청난 부를 자랑했던 많은 남미 도시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무이스카족의 심장부 훈자는 황금으로 가득찬 장소였습니다. 스페인 탐험대가 발견했을 당시 훈자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 중 하나였으며, 무이스카를 정복한 후 그들의 땅을 스페인 정착지의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이 지금의 콜롬비아입니다. 치브차어를 사용하던 무이스카족의 인구는 스페인 탐험대가 도착했을 당시 120,000~160,000명이었습니다. 무이스카족은 두 개의 주요 정치 체제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지파라고 불리는 왕들이 통치했고 다른 하나는 자크라고 불리는 왕들이 통치했습니다. 이들은 일종의 연합체 왕들이었습니다. 즉 반자치 공동체의 개인들은 단장에 의해 통합되었고, 단장은 지배 자크 또는 지파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무이스카 마을은 초갓집, 다양하고 복잡한 신들의 사원, 통치자들을 위한 궁전으로 빽빽히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종교와 통치권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지파와 자크는 자신이 비밀 마법 지식의 근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통성을 확장했습니다. 무이스카 대지는 풍요로웠지만 건조했습니다. 이들은 옥수수를 재배하는 한편, 인근의 습지 저지대 마을들을 약탈해 곡식을 빼앗고 밭일, 집안일, 제물로 사용할 노예들을 확보했습니다. 이 "게차 전사"들은 등에 미라 시체를 등에 이고 다니며 힘을 과시했습니다. 실제로 이름이 "죽음을 부르는 자"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무이스카족은 정교한 직물과 광산 전리품을 이웃 부족들과 거래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안데스 지역의 광산은 에메랄드와 석탄(무이스카족은 집안 화로에 사용)을 생산합니다. 또한 무이스카족은 금도 가공했습니다. 무이스카족은 말 그대로 온몸에 금칠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무이스카 신자들은 과타비타 호수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몸에 금 가루를 칠하고 호수에서 목욕을 하곤 했습니다. 지파와 자크를 위한 장식물은 순금(무이스카 광산이 아니라 무역을 통해 확보)이었으며, 그러한 인물을 만난 것이 스페인 탐험대에게 정복, 또는 사라진 황금도시 발견으로 인한 이익을 상기시켰을 것입니다. 1537년 엘도라도를 찾던 스페인 탐험대는 보고타 사바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무이스카 영토의 중심부인 선사 시대 호반이었습니다. 무이스카 지도자 퀘무엔차토차는 스페인 탐험대의 위협을 인지하고 그들로부터 숨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은신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스페인 탐험대가 금과 에메랄드로 치장한 그를 발견했을 때 그의 부족민들은 도망쳐버렸습니다. 스페인 탐험대는 보물을 빼앗고 그를 구금했습니다. 그의 땅 훈자에 스페인 마을 툰자가 세워졌고, 비옥한 무이스카 수도는 이후 보고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최근 인구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콜롬비아에 남아있는 무이스카인은 15,000명도 되지 않습니다. 최근 현지 단체들은 콜롬비아의 환경 파괴에 항의하고 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상인이 이동하는 5개 타일마다 교역로가 금 +1을 생성한다. |
문명 6는 출발도시나 교역소가 있는 도시에서 육상 15타일, 해상 30타일 떨어져 있는 도시에 교역로를 보낼 수 있다. 이를 활용해서 일부러 출발도시 가까이 있는 도시중에 하나에만[64] 교역소를 만들고 다른 도시는 일부러 삥 둘러서 오는 교역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상인이 이동하는 거리를 늘리면 상상을 뛰어넘는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교역소를 즉시 만들 수 있는 몽골이나 로마같은 경우는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종주국 보너스이다.
상술한 것처럼 작정하고 활용하려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력한 종주국 보너스인건 맞다. 다른 비슷한 효과를 가진 도시국가 보너스와 다르게 국내 교역로에도 적용된다. 괜히 최신 DLC를 구매해야 쓸 수 있는 도시국가인게 아닌 셈.
다만, 엄청 멀어야 이득을 본다는 특성상, 교역로가 출발지보다 멀어야 한다는 특성때문에, 가까우면 이득이 없다는 것은 단점중의 하나.
문양은 툰호라고 불리는 조각상의 머리 부분으로, 무이스카 문명에서 종교 등의 의례를 위해 금을 비롯한 귀금속으로 만든 물건이다.
2.5.8. [NFP]사마르칸트(Samarkand)
사마르칸트 |
실크로드는 고대부터 15세기까지 중앙아시아 초원을 가로질렀던 교역로를 칭합니다. 이것은 실크뿐만 아니라, 옥과 다른 물자, 미술품, 문학, 종교의 교역로이기도 했습니다. 실크로드의 중심에는 초원의 권력이 있었습니다. 강성했던 터키인과 몽골인 집단이 교역로의 운영 허가를 내렸습니다. 전쟁과 갈등은 자연스럽게 교역을 방해했으며, 이로 인해 몽골 제국이 몰락했습니다. 유럽 선박 기반 교역의 융성은 실크로드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있었고, 작가 이븐 바투타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미적으로 완벽한 도시 중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역사는 깁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9년에 도시를 점령했고, 도시는 수 세기 동안 페르시아, 몽골, 터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징기스칸이 기원후 1220년에 도시를 파괴했지만, 칸의 후예이자 전사로서 한 번도 정복 중 패배를 경험한 바 없었던 타메를란인 티무르 왕조가 14세기에 부활시켰습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 기반을 둔 터키 제국인 티무르 제국을 세웠습니다. 이어서 티무르 제국은 영국이 나타나기 전까지 인도를 호령했던 무굴 제국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전성기 시절 사마르칸트에는 다양한 인종과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이 티무르 제국의 종교였을 때, 도시의 모스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 마니교가 모두 도시에 존재했습니다. 사마르칸트는 19세기에 러시아에 함락되어 러시아(향후 소비에트) 제국의 일부로 남았다가,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했습니다. 도시는 유산과 더불어 교통의 요지이자 방직의 중심지로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돔 시장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금 +2 제공. 인접 사치 자원 당 금 +1, 외부 국제 교역로가 출발지의 돔 시장 당 금 +1 부여. 다른 돔 시장 옆에 건설 불가능. |
바빌론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역시나 AI가 서로 먹겠다고, 하루를 멀다하고 비난을 벌이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콩라인이라서, AI들도 큰 싸움은 벌이지 않는다.
문양은 사마르칸트의 중심부에 위치한 레기스탄 마드라사의 입구.
2.6. 종교 중심
종교 도시 국가 | |
오리지널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신앙 +2. |
3 | 모든 성지에 신앙 +2. |
6 | 모든 성지에 신앙 +2. |
흥망성쇠 ~ 몰려드는 폭풍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에 신앙 +2. |
3 | 모든 성소 건물에 신앙 +2. |
6 | 모든 사원 건물에 추가 신앙 +2. |
뉴 프론티어 패스 | |
사절 수 | 사절 보너스 |
1 | 수도 및 모든 성소 건물에 신앙 +1. |
3 | 모든 사원 및 영사관 건물에 신앙 +2. |
6 | 모든 예배 건물 및 상법부 건물에 신앙 +3. |
2.6.1. 라벤타(La Venta)
라벤타 |
고대 올메크(메소 아메리카의 '모태 문화')의 도시 유적을 발견한 스페인 탐험가들은 '라벤타'와 같이 스페인식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원래의 올메크 도시인 '산로렌소'는 기원전 구백년 경에 버려졌고 라벤타가 지역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라벤타 역시 기원전 사 백년경에 버려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중간에 오백 년 동안 이곳은 올메크 문화, 예술과 종교의 심장부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에 메소 아메리카 도시와는 달리 주변의 석재를 거의 공수 할 수 없었던 라벤타는 건설의 대부분 점토와 흙을 이용했습니다. 면적이 5제곱킬로미터인 섬 해안 습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라벤타는 팔마 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아주 쾌적한 장소로 보기에는 무리한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경이로운 공학 및 부의 가치를 지닌 성스러운 땅이었습니다. 이 곳에 있었던 대피라미드는 당시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었습니다. 2,500년에 걸친 부식에도 34미터의 높이로 솟아 있는 이 구조물은 평지 위주의 섬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유적 단지는 여러 개의 기념비와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봉토분과 제단도 이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올메크 인들이 조각한 상징적인 '거대 두상' 중 가장 유명한 4개의 두상을 라벤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이 커다란 바위를 올메크 인들이 어떻게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고고학자들의 이론만이 분분할 뿐입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유적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1,000톤 분량의 사문석 벽돌, 커다란 모자이크, 48곳의 옥 매장 지, 도자기, 조각상과 전철석 거울을 비롯한 화려하고 수많은 '봉헌물'은 물론 수많은 노예들의 유골, 그리고 피를 내기 위한 위한 용도로 보이는 장치(예식용 못 등)까지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진보라는 명목 하에 라벤타 대부분이 파괴될 만큼 이 도시의 역사를 확실하게 유추해 볼 수 있는 방도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섬의 남단 지역 전체는 석유 정제소로 뒤덮여 있습니다. 또한 2009년에는 소위 '프레 콜럼비아' 시대[66]의 종교 예식을 진행하려던 한 집단에 의해 여러 개의 거대 두상이 파손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거대 두상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
초반부 보다는 중, 후반부에나 쓸모있는 문명. 설원에 지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신앙수급에는 그나마 효율이 좋다.
문양은 종주권을 얻으면 건설할 수 있는 시설인 거대 두상이다.
2.6.2. 예레반(Yerevan)
예레반 |
아르메니아의 수도 근처에서는 선사시대 인간 주거지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예레반 동굴에서는 가공된 석기 도구가 발부되었습니다. 예레반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3,200년경에 정착이 이루어졌습니다. 벽에 둘러싸인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청동시대의 고고학 유적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예레반 자체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의 가까우면 2,500년전 '에레부니'라 불리는 요새가 있던 곳에 원래 건립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4세기 초에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한 첫 번째 국가였습니다. 예레반 역시 가죽 세공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아르메니아 국립 역사박물관에는 5,000년 전에 제작된 가죽신발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와 근동의 여러 제국이 교차했던 지점에 위치한 예레반은 메대, 로마, 비잔틴, 아랍, 페르시아, 오스만 및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도시에 보전되어 있는 건축물과 문화에는 이런 옛 문화의 흥망성쇠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레반 곳곳에는 고대 교회들이 서 있습니다. 아담한 카토히케 교회는 세대 세계 최대 아르메니안 교회인 세인트 그레고리 일루미네이터 교회와 대조됩니다. 하지만 5세기의 성 바울 및 베드로 교회를 비롯한 몇몇 교회는 흔적이 사라졌고 일부 잔해만 역사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블루 모스크는 몇 십 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예레반 시립 박물관으로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복구되어 다시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레반에는 예레반 체스 하우스도 있습니다. 체스와 기존 게임들은 적어도 9세기부터, 이르게는 6세기부터 아르메니아에서 즐기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체스 경연에서 높은 성적으로 모국의 긍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는 사도 유닛은 무작위 진급이 아닌 모든 진급 목록 중 선택을 할 수 있게 됨. |
종교 승리의 치트키라 볼 수 있는 개사기 도시 국가. 종교 승리를 원활하게 하고 싶다면 무조건 이 도시국가의 종주국 효과를 먹어야 한다.
변론가 진급을 꽂고 상대 영토에서 신나게 땅밟기를 하며 이단심문관과 상대 사도를 박살낸다든가, 포교자로 상대 도시의 종교를 지워버린다든가, 통역사로 포교자 사도가 지운 도시를 한번에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킨다든가 등등 매우 강력한 사도 부대를 아주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굳이 종교 승리를 노리지 않는다고 해도 사제 진급을 찍고 십자군 교리와 조합해서 정복에 나선다거나, 순교자 진급을 준 다음 적진 한복판에 던져넣어 성유물을 얻는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플레이어가 이전에 선택한 진급은 다음 사도의 진급 선택지에서 제외되어 결국 플레이어가 선호하지 않아 선택하지 않은 진급들도 일부 선택한 이후에야 원하는 진급을 다시 찍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예레반의 효과는 그러한 제한도 무시한다.
종교를 창시했고, 사도가 나올정도의 신앙이 있다면, AI는 사절을 거의 꼬라박는다. 이 때문에 종교전쟁이 박터지게 벌어지고, 상대가 종교 창시자라면, 해방전쟁 명목으로 선전포고를 걸어오거나, 종교비상으로 죽이려 든다.
문양은 "아레바카츠" 라고 불리고 영원함을 상징하는 심볼. 늦어도 5세기부터 쓰였으며, 오늘날에는 국기나 국장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아르메니아의 상징이 되어 있다.
2.6.3. 예루살렘(Jerusalem)
예루살렘 |
구시가지의 일부가 6,000년 전에 건설된 예루살렘은 현재까지 건재한 도시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던 예루살렘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틀어 여러 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며, 욕심 많은 제국과 종교 광신자들은 도시에 대한 지배권을 서로 빼앗기 위해 수천 명씩 서로 학살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인 '다윗의 도성'은 전설적인 왕, 다윗이 기원전 1000년에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진 수백 년 동안 수 많은 이민자와 난민들이 여러 왕, 사제 및 예언자의 밑에서 삶을 영위하며 도시를 확장했습니다. 7세기에 이슬람의 칼리프들이 권좌에 올라 638년에 알라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 이미 예루살렘이 마케도니아, 로마와 비잔틴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이후가 되었습니다. 도시의 통치자들이 맘에 들지 않았던 교황 우르바노스 2세는 서기 1095년에 기독교 기사들에게 청하여 검으로 예루살렘을 해방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200년의 시간이 이어졌고, 잠시의 공백기는 있었지만 결국에는 아랍인들이 이 곳을 통치했으며, 그 뒤를 오스만, 브리튼과 요르단이 따랐습니다. 1967년의 6일 전쟁에 이어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도시 전체가 이스라엘에 합병된 지난 세기는 슬픔으로 물든 예루살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컸던 시기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성지가 있는 플레이어 도시는 성도처럼 영향력을 발휘(10타일 내의 모든 도시에서 종교 영향력 4배). |
오리지널 때 효과가 '예루살렘이 종주국의 대중 종교로 즉시 개종하고 성도처럼 영향력을 발휘'였는데 변경되었다.
종주국 보너스를 받으면 종교 전파력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자신의 종교에서 거리가 좀 있는 도시를 개종시키려면 영향력을 많이 행사해야 하는데 그 컷도 많이 낮출 수 있다. 판게아에서 종교 승리를 할 때 꽤 유용한 편에 속하는 도시국가. 다만 좋게 말하면 이렇고, 직접적으로 신앙을 주는 다른 도시국가들과 달리 종교를 창시하지 못하면 별로 쓸 데가 없으므로 이 "유용함" 을 노리고 이 도시국가에 사절을 넣느니 직접적으로 신앙을 주는 다른 도시국가에 넣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종교를 창시한 문명들이, 거의 사절을 꼴아박는 도국중 하나, 종교탭에 3개이상의 개종 종교문명이 보이면 가차없이 성도를 부수는 것으로 무력화가 가능하다.
문양은 유다의 사자에서 유래했다. 혹시 에티오피아에 관심이 있거나 이 문서로 들어오기 전에 본작의 에티오피아 항목을 거쳤다면 이거 에티오피아의 상징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에티오피아 황가는 유대 왕 솔로몬의 후예임을 자처했다.
2.6.4. 캔디(Kandy)[67]
캔디 |
역사 기록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도시인 캔디는 감폴라의 군주 비크람바후 3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원래의 이름은 와타푸루와 인근의 센카다가라푸라였습니다. 작은 도시의 이름 치고는 상당히 긴 편입니다. 서기 1400년경, 캔디는 코테 왕가의 세나삼마타 위크라마바후가 통치하는 독립 왕국이 되었습니다. 캔디 왕국은 독립 체제로 유지되었고 상당한 번영과 안정을 이루었지만 영국인이 침략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제 2차 캔디 전쟁에서 영국군은 상대편의 아무런 저항 없이 1815년 2월에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의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도시는 소승 불교, 힌두교, 이슬람 교, 심지어는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여러 신앙의 성스러운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595년에 건축된 불치사는 왕궁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교 신도들은 매월 한 번씩 포야데이를 지켜왔으며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힌두교(약 13%)와 무슬림(약 10%) 신도들 역시 열의를 다해 자체적인 기념일과 성일을 지켜왔습니다. 실론 섬(스리랑카)은 유럽의 여러 지배자 하에서 빠르고 극단적인 '근대화'를 거쳤습니다. 우바(1818년)와 마탈레(1848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반란을 제외하면 캔디는 대영제국의 고요한 한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캔디는 연합군의 동남아시아사령부의 본부였지만 위협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1930년대의 도나우모 개혁은 종교적 관용을 강요했고 이는 마침내 스리랑카가 1948년에 독립 자치령 지위를 획득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로 섬은 정치적 내전으로 인한 문제를 겪었고 여러 차례의 암살, 간헐적 반란과 내전(1983-2009)이 발생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새로운 자연경관을 발견할 때마다 성유물을 받으며, 모든 성유물에 신앙 +50% 제공. |
성유물을 다수 굴리는 유저에게는 매우 강력할 수 있지만, 몽생미셸 운영, 예레반 사도 운영 등을 제외하면 다수의 성유물을 확보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연경관 발견 성유물도 안정적으로 얻기는 쉽지 않다. 소형/중형 대륙맵에서 정상적으로 정찰을 하며 플레이했다면 자연경관 발견 타이밍이 캔디의 종주국 확보 타이밍보다 빠를 것이기 때문. 2번째 이상 성유물 슬롯은 보통 사원을 지어야 열리는 것도 문제. 보너스를 터뜨리는 건 로또 맞는다는 느낌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만 맞는다면 유골함과 시너지가 미쳐 날뛸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TSL등 자연경관의 위치가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캔디보다 좋은 도국이 없을 정도.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정찰을 할 때 타일 매력도와 산출을 확인하면서 한칸씩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성유물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전까지 자연 경관을 발견하지 않았다가 캔디 종주국 지위를 획득하고 성유물 슬롯이 생기면 그때 자연경관을 발견하는 방법도 있다. 초반에 얻는 성유물은 이런 수고를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68]
비밀결사인 보이드 싱어스에 가입한 경우라면, 성유물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공위성 발사로 모든 자연경관이 개방되면, 남아도는 성유물을 감당 해 낼 수가 없다.
문양은 스투파에서 따 왔는데, 스리랑카는 아니고 미얀마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보보지 파고다가 대충 비슷하게 생겼다.
2.6.5. [DLC]아마(Armagh)
아마 |
아일랜드 마을 아마는 오래전부터 종교와 친숙했습니다. 고대 이교도 의식이 열리던 곳으로 알려진 아마는 5세기 기독교 선교사인 성 패트릭이 언덕 정상에 석조 교회를 짓고 축성하며 유명해졌습니다. 그 주위로 수도원이 지어졌고, 그 주변에 아일랜드 전역 기독교 전파에 헌신한 마을이 지어지며 신학의 상륙 거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마가 해안 도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북아일랜드 바다에서 내륙으로 16km 정도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에 보물을 탐하는 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 바이킹은 9세기에 아마 수도원을 두번 약탈했고, 여러 종교 유물을 약탈하기 위해 매번 육상으로 침략하였습니다. 침략한 노르만 기사 존 데코시 또한 이 전통을 계승하여 12세기 말에 마을을 약탈했습니다.[70]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수도원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
바이킹 시나리오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수도원이 가장 효율이 좋은데, 자원이 있는 타일을 제외한 모든 타일에 개발가능하고, 종교유닛 체력회복, 주거지+1 이 무시무시한 사기성 덕분에, 의외로 종교를 신봉하지 않아도, 록밴드를 뽑아서 문승할려는 문명이 존재 할 수가 있다.
문양은 보다시피 세잎클로버. 아마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성 파트리키우스의 상징이다. 전통 종교를 믿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면서 클로버를 예로 들었기 때문인데, 잎이 셋이지만 한 풀이듯이 성부, 성자, 성령도 이런 이치로 하나라는 식으로 설명했던 것. 그리고 오늘날 성 파트리키우스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며, 아일랜드 정부에서 3월 17일을 이 성인을 기리는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2.6.6. [GS]나스카(Nazca)
나스카 |
나스카는 페루 남부 해안을 따라 형성된 도시, 지역과 문화를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창의적인 나스카 라인(사막에 새겨진 일련의 거대한 지상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800년까지 건조한 해안 지역에서 부상한 나스카 문화는 시기적으로 잉카를 앞서고 있습니다. 나스카는 아름다운 도자기와 화려한 장식의 직물을 만들었지만 가장 놀라운 공학적 성과는 푸키오였습니다. 푸키오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된 지하 수로 체계입니다. 이 수로망은 대부분이 온전하며 현재까지도 물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스카 라인의 역사는 문명 백과사전 항목을 참조하십시오. 나스카 문화의 전례적 중심지는 카우아치 단지였습니다. 카우아치는 둔덕, 그리고 매장지를 비롯한 아도비 구조물로 이루어진 시설입니다. 카우아치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곳은 도시나 궁전이 아니라 상주하는 인구가 적었던 전례지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카우아치의 유기와 나즈카 문명의 쇠퇴는 기후 변화와 후아랑고 숲의 파괴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연이은 홍수로 지역이 침수되면서 이곳에서 거주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나즈카는 결국 와리족에게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은 16세기에 나스카에 정착했습니다. 이 지역은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축출되기 전까지는 나스카 지역에 있는 다수의 자산을 예수회에서 관리했으며, 이후에는 영토가 왕실에 의해 몰수되었습니다. 지금은 나스카 라인 주변의 관광 산업이 지역의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이 신비로운 지상 그림의 목적을 고찰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나스카 라인 주변의 건조한 땅은 여전히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건설자가 나스카 라인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됨. |
도시국가 치고는 드물게도 사막 1단계[A]로 시작 지점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사막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도국, AI도 거의 거른다.
문양은 종주권을 얻으면 건설할 수 있는 시설물인 나스카 라인에서 따 왔다.
2.6.7. [NFP]바티칸 시국(Vatican City)
바티칸 시국 |
0.44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1,000명이 살고 있는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 국가입니다. 바티칸의 유산은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티칸 시국에는 교황이 머무르는 곳이자 가톨릭 교회 행정을 총괄하는 교황청이 있으며, 10억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자리 잡은 언덕의 이름을 딴 바티칸 시국은 역사적 중심지 로마의 티베르 강 맞은편에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바티칸 언덕은 이교도 신의 무덤과 사원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네로 황제는 이곳에 정원과 대규모 유흥단지를 건설했습니다. 가톨릭 전통에 따르면 이 장소에서 사도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로마의 만행에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300년대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가 죽은 자리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설했습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의 인기 성지순례 장소로 지정하면서 바티칸을 찾는 여행객들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숙박시설, 시장(보르고), 높고 정교한 벽 등과 같은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네로 황제와 그의 정원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바티칸 시국이 네로 황제 시절을 능가하는 르네상스 예술의 본산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곳의 천장에는 1508년에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의뢰를 받고 그린 천장벽화가 있습니다. 율리오 교황은 지은지 천년이 넘은 당시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개축하기 위해 새로운 성 베드로 성당 공사를 시작했으며, 공사는 100년 뒤인 1626년에 끝났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심장인 바티칸 시국은 중대한 결정이 많이 내려진 장소였습니다. 바티칸 시국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동방 정교회 분립, 중세 시대 이후까지 존속했습니다. 14세기에 교황이 프랑스 때문에 잠시 바티칸 시국을 떠난 적이 있지만, 몇 십 년 뒤 다시 돌아왔습니다. 가톨릭 왕들은 바티칸을 통해 정통성을 인정받고 지원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충분하지 않게 되자 진취적인 교황은 이탈리아 본토로 진출해 교황령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세속 군대가 세력을 늘리면서, 1870년 통일 이탈리아가 바티칸 외부의 모든 교황령을 점령했습니다. 이 분쟁은 1926년까지 해결되지 않다가, 베니토 무솔리니가 교황에게 손실을 보상해주고 바티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해주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황은 바티칸 내에 거주하며, 바티칸은 전 세계 문화, 종교 및 정치 분야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바티칸 시국에는 웅장한 미술관, 건축물, 정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위인을 활성화하면 창시한 종교 또는 대중 종교의 영향력 400을 10타일 이내의 도시로 전파한다. |
마야&그란 콜롬비아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설명은 10타일이라고 되어있지만 위인을 활용한 타일에서 최대 6타일까지 떨어진 도시까지 영향력을 퍼뜨리는 효과를 제공한다. 10타일이라 적힌게 거짓말은 아니고 도시 기준 양방향을 모두 합한 것이다.[74] 위인을 활성화할 때마다 효과를 받기 때문에 문화 계열 위인이나 일부 기술자같이 여러번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위인과 궁합이 좋으며, 위대한 장군이나 제독처럼 자신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위인과 조합해서 다른 문명의 도시를 개종시킬 수도 있다. 다만 사실상 종교를 직접 창시해야만 이득을 준다는 것이 흠이며[75], 이 도시국가의 효과를 보겠다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위인만 골라서 가져오는 것도 본말전도.
브라질의 경우에도 종교창시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의외로 종교승리를 가져가는 경우가 높다.
문양은 교황의 삼중관에서 왔다.
2.6.8. [NFP]싱게티(Chinguetti)
싱게티 |
싱게티는 사막 끝에 있는 도시입니다. 항상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선사시대 암벽화를 보면 인류 역사상 기후가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알 수 있고, 우거진 풍경에 기린과 여타 사바나 생물도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사하라가 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하라는 완전한 황무지가 아닙니다. 북아프리카의 유목민인 베르베르족에게는 말이죠. 싱게티는 거대 사막을 가로지르는 경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슬림은 메카 순례를 떠나기 전에 이곳에 집합했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돌아올 때 불가사의한 물건들을 들고 왔습니다. 싱게티는 11세기와 12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16세기까지 중요성을 유지한 알모라비드 제국의 학문 보고였습니다. 더 큰 동류인 팀북투처럼, 싱게티는 순례자들이 여행 중에 발견한 온갖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인 유명 도서관들을 보유했습니다. 그 범위는 종교를 넘어 수학, 과학, 천문학, 특히 이슬람 법학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학문의 중심지인 크수르는 이슬람 생활과 상업의 보루였으며, 사막에 있는 배움의 오아시스였습니다. 도시는 항해로 인해 사하라 횡단로가 폐기되면서 몰락했습니다. 조금 덜 위험하고 훨씬 빠른 항해가 있는데 위험한 낙타 행렬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을 횡단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싱게티는 13세기 금요일의 모스크로 잘 알려진 모리타니라는 국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출발 도시에 있는 플레이어가 창시한 종교 또는 대중 종교 신자당 국제 및 국내 교역로가 신앙 +1. |
바빌론 팩에서 추가된 도시 국가.
종교를 먹었을 때 신앙 수급을 도와준다. 종주국 보너스를 최대로 보고 싶다면, 출발 도시를 기준으로 적용되니 인구가 많고 신자가 많은 도시에서 교역로를 만드는 게 좋다. 물론 보통은 이게 주력이라보단 겸사겸사 신앙을 챙기는 용도.
AI 선호도가 낮다. 종주국이 되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므로, 시대점수 약간 챙기는 용도로 쓰는게 났다.
문양은 13~14세기경 지어진 싱게티 모스크의 미나렛에서 왔는데, 이 미나렛은 북아프리카 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직까지도 종교용으로 쓰이는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다.
2.7. 문명의 등장으로 대체된 도시 국가
확장팩이나 DLC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 등장하는 도시 국가들이다. DLC와 확장팩으로 인해 대체된 순서으로 배치했다.2.7.1. 자카르타(Jakarta)
자카르타 |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는 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입니다. 4세기 힌두의 순례자들이 자카르타 지역에 처음 정착지를 건설한 이래로 이 도시는 역사상의 수많은 제국이 통치했고 따라서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자카르타는 인도양 주변의 여러 영토를 통치한 순다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의 탐험대가 섬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수익성 높은 향신료 교역이 빠르게 활성화되었고 자카르타는 주요 항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순다 왕국은 결국 파타힐라 무슬림 술탄의 손에 무너졌고, 파타힐라는 지역에서 포르투갈인들을 추방했습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포함한 네덜란드와 영국의 상인들이 다시 도착하였고, 즉시 교역로가 다시 활성화되었습니다. 두 강대한 식민지국 간에는 무역권 장악을 위한 분쟁이 반복되었고 결국에는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승자로 부상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향료 제도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남았지만 네덜란드에서 자체 식민지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건설을 선언하면서 결국 1800년에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1950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온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한 인도네시아 독립주의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고 자카르타는 수도로 지정되었습니다. 도시와 시민들은(2010년 기준 약 958만 명) 정치 소요 및 불안정에 휘말릴 때가 많았지만 자카르타의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카르타의 부유한 경제는 은행, 금융 투자, 주식 및 상품무역, 부동산 등의 금융 서비스 분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향신료와 여러 사치품의 수출도 지속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막강한 루피아가 핵심적인 중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문명 도시에 있는 플레이어 교역소를 지나가는 무역로마다 금+ 1 제공. |
DLC에서 인도네시아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반디르 부르나이로 대체되었다.
문양은 자카르타 중심부에 세워진 국립 기념비. 통칭 모나스의 탑에서 따 왔다.
2.7.2. 서울(Seoul)
서울 |
서울의 변방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정착지가 형성되었지만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도시가 세워진 것은 백제 왕국에서 이곳에 위례성이라는 도읍을 세운 기원전 18년이었습니다. 소국이었던 백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삼국시대의 한 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세 국가는 서기 1000년까지 약 1,000년의 세월에 걸쳐 한반도를 지배하였고, 서울은 차차 정치적, 문화적, 상업적 중요성을 가진 막강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마침내 삼국은 하나로 통일되었고 1394년에는 이 새로운 통일 국가의 도읍이 서울로 이전되었습니다. 도시 주변에는 도적패, 곰과 같은 맹수 그리고 성가신 야만인들을 막아내기 위한 커다란 성벽이 건설되었습니다. 1800년대 말기에 서울은 결국 극동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인들에게 성문을 열어 주어야 했고 도시는 빠르게 근대화되었습니다. 실제로 서울은 전기, 수도와 전화기를 모두 갖춘 아시아 최초의 도시였습니다. 서울이 수백 년에 걸쳐 첨단 기술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234년, 평장사[77] 최윤의는 상정예문 50부를 인쇄하기 위해 가동 금속활자본을 고안했습니다. 이는 구텐베르크가 같은 아이디어를 창안하기 한참 전의 일이었습니다. 조선 왕조 시대에는 물시계, 수표, 측우기를 비롯한 여러 기발한 장치가 발명되었고, 1442년에는 칠정산을 통해 천문학 기술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칠정산은 일곱 행성에 대한 계산값을 모아 놓은 역서입니다. 또한 1860년대에 고안된 최초의 방탄조끼는 조선군에 유용함을 선사했습니다. 삼성과 엘지를 비롯한 여러 전자 기업이 서울[78]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걸 보면 과학적 진보가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2008년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연구개발 비용을 지출했으며 대부분의 지출이 서울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서울은 전자, 컴퓨터, 로봇공학, 재생 에너지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새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무작위 과학 기술 하나에 유레카 부스트를 제공 |
흥망성쇠 확장팩에서는 한국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바빌론으로 대체되었다. 대체되면서 종주국 보너스도 달라졌다.
종주국 효과는 운빨 요소가 많은데다가 현대 시대까지 유레카 조건이 많이 어려운 편이 아니라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문양은 태극인데, 좌우가 바뀌어 있다.
2.7.3. 암스테르담 (Amsterdam)
암스테르담 |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의 본명인 암스텔레담머는 12세기 암스털 강 부근에 건설된 작은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곧 인접한 다리에서 통행료를 걷거나 주변의 흙더미에서 토탄을 채집하여 더 많은 주화를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우연한 계기로 마을 주변에 폴더(네덜란드의 해안 간척지)를 간척하기 시작했고, 1300년경에 홀란트 및 질란트의 백작이었던 영주는 암스테르담을 도시로 인정했습니다. 네덜란드가 가톨릭 스페인의 통치에 대항하여 봉기하자, 스페인 통치 지역의 경제 난민과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신교도 난민들이 암스테르담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스테르담은 자유 네덜란드 최대의 도시이자 번창하는 항구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영국-네덜란드 전쟁에서 영국이 네덜란드를 무찌르고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네덜란드를 짓밟기 전까지만 해도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홀란트의 상인이 북미, 아프리카, 극동과 유럽 전역을 항해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활동을 펼치면서 다시 '황금기'를 꿈꾸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이곳은 멋진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암스테르담 사무소는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로 자체적으로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은 1800년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이로운 항구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라인 운하와 북해 운하는 상업 환경을 극적으로 개선했고 초기의 기차역은 중앙 유럽의 수입품을 부두로 운송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결과 암스테르담에는 산업혁명이 좀 더 일찍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홀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 여파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대의 상업 중심지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도심 지역에만 약 15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문명과 연결되는 교역로에서 목적지 도시의 사치자원마다 금 +1 제공. |
흥망성쇠 확장팩에서 네덜란드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안디옥으로 대체되었다.
문양은 오늘날 네덜란드의 시기에서 따 왔다.
2.7.4. 스톡홀름(Stockholm)
스톡홀름 |
스톡홀름이 기록된 최초의 문서는 서기 1252년에 작성되었습니다. 이 문서에는 스톡홀름을 철 교역 도시로 설명하고 있지만 노르웨이의 몇몇 전설에서는 이 곳을 아그나피트(사로잡힌 신부 스카잘프에 의해 전설의 앙주 왕이 교살 당한 곳)의 잃어버린 도시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설화에 따르면 스웨덴의 비르예르 얄이 신생 국가를 현지인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도시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기원이야 어찌됐든 이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여 상업, 광업 및 어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나중에는 한자 동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5세기에는 스웨덴 국민들이 덴마크 통치자가 물러나길 갈망했고 이로 인해 스톡홀름 내에서 독립 운동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안 2세가 도시에 입성하여 스톡홀름 대학살을 통해 스웨덴의 반대 세력을 대부분 처형하였습니다. 이후에 스웨덴에서 벌어진 반란은 보다 성공적이었고, 스칸디나비아에 대한 덴마크의 지배권의 순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는 칼마르 동맹이 와해되면서 스웨덴은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됩니다. 스웨덴의 초대 국왕인 구스타프 바사가 1523년 왕위에 올랐고 스톡홀름의 인구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는데,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시민의 수는 여섯 배로 늘어났습니다. 20세기 후반 스톡홀름은 유럽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군사 학교인 칼베르크 사관학교(1792년), 유럽에서 매우 명망 있는 의과 대학 중 하나인 카롤린스카 연구소(1811년)와 왕립 공과대학(1827년) 등이 연이어 설립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은 노벨상의 고향인 스웨덴 왕립과학 아카데미였습니다. 이 학교는 유명한 박물학자인 칼 린네가 1739년에 설립한 곳입니다. 도시는 계속해서 어업, 광업, 운송 등의 전통 상업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연구 및 최신식 제조 분야로 전환하고 있으며 무명의 과학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특수지구에 건물이 있다면, 해당 특수지구가 유형에 맞는 위인 점수 +1점 제공 |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는 스웨덴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볼로냐로 대체되었다.
오리지널에서는 특수지구만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위인점수 +1을 제공해서 수위급의 도국 중 하나였으나, 확장팩에서 건물이 있는 특수지구 한정 점수를 얻을 수 있게 너프당했다. 하지만 위인플레이의 중요성이 중요해진 확장팩의 특성상 여전히 매우 강력한 과학도국으로 꼽힌다.
문양은 현대 스웨덴의 국장에도 나오는 왕관 셋에서 따 왔다. 전작과 본작 스웨덴의 문양이기도 한데, 13세기부터 쓰인 것은 확인되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2.7.5. 카르타고(Cathage)
카르타고 |
전설에 따르면 로마의 장군, 푸블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땅을 갈아 엎고 소금을 뿌려 제 3차 포에니 전쟁을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카르타고는 가장 위대한 고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전설적인 초대 여왕 디도가 튀니스 만에서 이루어 낸 카르타고의 건국 신화 역시 매우 유명합니다. 사실 카르타고는 기원전 1000년 이후에 건설된 페니키아의 식민지로 시작되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아프리카 북부 연안을 따라 이상적인 형태로 자리잡은 카르타고는 향후 몇백 년에 걸쳐 지중해의 교역 중심지로 그 중요성을 더해갔지만, 이러한 성공에 따른 부작용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카르타고는 그리스와 로마의 분노를 사게 되었으며 그 뒤로 이어진 두 위협적인 경쟁국과의 분쟁이 극에 달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칠리아의 도시 지배권과 교역로 중첩을 둘러싼 그리스와의 긴장 상태는 시칠리아 전쟁이라는 일련의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하밀카르 마고와 그의 손자인 한니발 마고와 같은 당대 최고의 사령관들을 보유한 카르타고는 기원전 3세기까지 섬 전체에 대한 온전한 지배력을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로마는 이탈리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피로스 전쟁이 종식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로마의 확장으로 인한 계속적인 압박은 카르타고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두 경쟁국은 영토와 교역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충돌 중에 있었습니다. 기원전 264년, 두 강대국이 메시나라는 시칠리아 도시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개입하면서 지금은 포에니 전쟁으로 알려진 일련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한니발을 비롯한 여러 유능한 사령관의 훌륭한 리더십에 힘 입은 카르타고는 기원전 146년까지 버티다가 결국에는 사방으로 포위되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고 남은 인구의 대부분은 학살되었으며 생존자는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도시 내 주둔지 특수지구 건물 하나마다 지상 유닛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금 20% 감소 |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는 페니키아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느가자르가무로 대체되었다.
오리지널에서는 종주국 보너스가 '주둔지 1개당 교역로 1개 추가'였기 때문에 반드시 종주국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 개사기 도국이었다.
문양은 카르타고를 비롯한 페니키아인들이 섬기던 여신 타니트의 상징에서 따 왔으며, 문명 4의 카르타고 문양으로 활용된 바 있다.
2.7.6. 토론토(Toronto)
토론토 |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높은 토론토(2011년 기준 약 260만명)는 비버 전쟁 말기에 이로쿼이족이 지역을 버리고 떠난 직후인 서기 1750년부터 프랑스의 조그만 교역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입지가 좋지 않았는지 1759년에는 프랑스인들마저 이곳을 떠났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시소가에서 지역을 상속받았지만,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 기간 동안 온타리오 호 북부의 미개화 개척지에 영국의 왕당파 지지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이어 1787년에는 영국인들이 미시소가와 '토론토 매입'을 체결하여 1,012 제곱 킬로미터가 넘는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영국은 토론토 항만 초입에 요크 요새를 건설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1812년의 전쟁 당시 미국군에 의해 점령되어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영국군이 워싱턴을 불태운 주된 계기가 요크 약탈 사건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불화, 그리고 1837년에 토론토의 윌리엄 맥켄지가 이끈 어퍼 캐나다 반란의 실패 이후 토론토는 성장, 발전 및 산업화의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랜드 트렁크 및 노선 철도 회사가 힘을 합쳐 유니언 스테이션을 건설했고 온타리오 호의 증기선과 범선 덕분에 토론토는 대륙 내륙지의 자원으로 접근하기 위한 관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토론토가 산업 요충지가 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증류소가 가동을 시작함으로써 토론토는 북미 최대 주류 생산지로 거듭났으며 구더햄 앤 워츠 양조장은 1806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세계 최대 위스키 공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0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도심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도심이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재건축되면서 대부분의 산업 시설은 외곽 지역에 재배치되었고 조차장과 항구 주변에는 공장과 창고가 가득 세워졌습니다. 현재 토론토에서는 증류주뿐만 아니라 자동차, 철강, 화학, 제지 및 가공식품까지 생산하고 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산업구역과 유흥단지의 지역 효과 범위가 3 타일 증가. |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는 캐나다 문명의 등장으로인해 멕시코시티로 대체되었다.
머나먼 과거 공장 보너스가 중첩되던 시절에는 1등 자리를 다투는 엄청난 사기 도국이었지만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니다. 후반에 산업구역은 그냥 많이 올려주기 때문에 6타일이 9타일이 된다고 보너스를 더 받고 안받고 여부 차이가 크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을 훨씬 편하게 해 준다. 특히 유흥단지와 관련해서.
문양은 캐나다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단풍잎.
2.7.7. 팔렝케(Palenque)
팔렝케 |
잊혀진 마야 도시 팔렝케는 천 년 간의 성장, 고도화 및 침체 후 버려졌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가장 오래된 유적지는 기원전 3세기에 모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여러 왕과 여왕의 통치를 받았지만 거의 모두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암울했던 시점은 7세기 초로, 경쟁 도시 칼라크물과의 잔인한 전쟁으로 지도자들 대부분의 잡혀가거나 죽었고 도시 전역이 약탈당했습니다. 섭정 여왕 삭쿡은 3년간 통치 후 그녀의 12세 된 아들 키니치 하나브 파칼에게 왕위를 물려줬습니다. 어린 왕은 후대에게 파칼의 번영을 가져온 파칼 대왕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70여 년의 재위 동안 칼라크물이 남긴 상처를 치료하며 도시를 재건하고 확장하였고, 새로이 건설된 신전과 궁전에 도시의 역사가 새겨지도록 명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팔렝케는 동맹을 맺고 적 왕을 포획하였으며 패배한 경쟁국들에게 강제적으로 공물을 받았습니다. 팔렝케는 파칼의 죽음 이후 경쟁 지역 토니나와의 고된 무력 충돌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9세기 초반 도시는 버려져 정글 속에 묻혔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캠퍼스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 성장률 +15% |
팔렝케는 문명 3, 4, 5에서 마야의 도시로 등장했다. 4편 확장팩 비욘드 더 소드와 5편 확장팩 신과 왕에선 파칼이 지도자로 등장하는[79] 마야 문명의 수도였다.
문양은 케찰코아틀의 머리인데, 이 신은 마야를 비롯해 아즈텍, 톨텍 등 사실상 메소아메리카 문명권 전체에서 숭배되었다.
2.7.8. 안디옥(Antioch)
안디옥 |
안디옥은 여느 정상적인 마케도니아 도시와 같이 신이 내려보낸 독수리에 의해 위치가 선정되었습니다. 도시의 창시자이자 과거에 알렉산더 대왕 아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에게는 다행이도 독수리가 오늘날 터키에 속한 오론테스 강 옆의 골짜기를 선택했습니다. 자라나는 도시에 강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동, 방어, 낚시에는 좋았지만, 홍수가 나면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왔습니다. 안디옥은 시리아가 로마에 편입된 기원전 64년 이후에 주도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사원, 송수로, 원형 극장, 궁전과 목욕탕이 지어지면서 제대로 된 로마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퍼지면서 교회도 증가했고, 과거 신들의 성소를 대체했습니다. 안디옥 성도는 번창하였으나, 재난, 기근과 여러 침략자(5세기의 훈족과 7세기의 아랍인)에 의해 결국은 쇠락하였습니다. 오늘날 고대 도시의 잔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물품은 강 깊은 곳에 유실되어 잊혀졌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다른 문명과 연결되는 교역로에서 목적지 도시의 사치 자원마다 금 +1 제공. |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는 비잔틴 문명의 등장으로 인해 베네치아로 대체되었다. 흥망성쇠 확장팩에서는 암스테르담 대신 등장한 도시국가이다.
문명 3부터 비잔틴 문명의 도시로 개근했다.
문양으로 그려진 인물은 안티오크 대주교가 아닌가 생각된다. 안티오크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2.7.9. 바빌론(Babylon)
바빌론 |
바빌론 초기의 역사는 세월 속에 유실되었고, 이후 문명에서 기록한 부분만 전해집니다. 하지만 모든 기록에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가 권력을 잡은 부분은 일관적으로 나타납니다. 궁극적으로 바빌론을 변화시킨 그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유프라테스 강가를 중심으로 함무라비 세력의 기반을 굳힌 것 외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글 모음으로 유명합니다. 이 법전은 경제학 관련 법과 법죄자 취급 방법을 제시하고 결혼과 이혼에 관해 성문화하였습니다. 이 초기 제국은 함무라비와 함께 몰락했습니다. 바빌론은 쇠락하며 히타이트, 카시트와 아시리아 등 다양한 민족의 정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즉위로 바빌론은 재건되며 요새화되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공중 정원도 짓고, 후대 통치자를 위한 기반을 다졌습니다. 물론 바빌론은 결국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정복으로 멸망했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1년 도시를 점령한 후에 사원들을 재건하였고 더 많은 교역로를 설립했습니다. 도시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장군들은 누가 도시를 통치할 것인지에 대해 때로는 창끝을 겨누며 '토론'했습니다. 계승 고비의 참상과 익숙한 바빌론의 대다수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유혈 사태가 적은 셀레우키아로 피신했습니다. 이로서 바빌론의 중요도는 급속히 하락했습니다. |
종주국 보너스 |
걸작 저서마다 과학 +2, 성유물 및 유물마다 과학 +1 제공 |
확장팩 들어서 위인 포인트 100% 보너스를 주는 핑갈라를 활용한 작가 독점 플레이의 중요성이 늘어났는데, 바빌론의 종주국 보너스를 활용하면 과학과 문화 두 마리 토끼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
여담으로 바빌론은 문명 1부터 지금까지 쭉 개근해온 문명이다.
문양은 사자의 머리로, 고대 바빌론에서 사자는 왕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2.7.10. 리스본(Lisbon)
리스본 |
세계에서 크고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이베리아 반도의 중요한 교역 요충지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리스본은 어떤 형태로든 천 년에 걸쳐 존재해 왔고 도시는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로마의 교역망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서기 711년 8월에는 무슬림 세력인 베르베르군이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무어인들은 상당히 진보적인 면모를 가진 통치자였으며 무슬림, 유대교, 심지어는 기독교를 아우르는 각종 종교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엄청난 세금이 수반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무어인과 북유럽 국가 간의 교역을 위한 중심지이자 활발한 항구로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나중의 포르투갈의 왕 알폰소 1세로 즉위)가 이끄는 십자군 기사단은 레콩키스타의 일환으로 도시를 점령하고 모든 이교도를 즉시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이교도에 대한 모든 편협성과 단죄 의식에도 불구하고 리스본은 도시의 항구가 전세계를 누비는 포르투갈 외항선의 출발지가 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15세기의 대항해 시대에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탐험가 중 다수가 리스본에서 출발했으며 이 중에는 최초로 유럽에서 인도까지 항해한 바스코 다가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755년, 기록된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로 손 꼽히는 리스본 대지진이 이베리아 반도를 뒤흔들었고 리스본 대부분의 지역이 파괴되었습니다. 근대 역사학자들은 이 지진으로 인해 최대 100,000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허물어진 도시를 재건설하기 위해 엄청한 노력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실이 브라질로 도주해야 했던 나폴레옹 전쟁을 비롯한 유럽의 다양한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리스본은 건재함을 유지했습니다. 현재 리스본에는 500,000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여전히 유럽의 중요한 상업 및 무역 요충지 중 하나입니다. 또한 리스본에는 수많은 역사 건축물과 다수의 박물관 및 문화 축제가 있어 인기 높은 관광 명소이기도 합니다. |
종주국 보너스 |
플레이어의 상인 유닛이 물 타일에서 약탈당하지 않음. |
원래도 상업도국 중에는 별로였는데, 흥망성쇠 확장팩에서 주화 개혁 황금기 정책이 나온 이후로 더욱 애매해졌다.
문양에 그려진 물결 무늬는 현대 리스본의 시기에 나오는 것을 따 왔다. 다만 물결 자체는 포르투갈 역사와도 큰 관련이 없고 깃발의 유래에서도 배가 중요하지 물결은 영 아니기에, 문명 별로 문양이 처음 나온 문명 4에서부터 포르투갈을 상징해 온 방패 문양이나 국기와 국장에 그려져 있는 육분의 같은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1] TSL 지구맵이 아닌 이상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2] 정확히는 도시 국가가 사회 제도 '초기 제국'을 발견해서 국경을 막으면[3] 오리지널에서는 플레이어 시대/R&F부터는 세계 시대[4] 정치 철학 사회 제도[5] 이데올로기 사회 제도[6] 정치 철학 사회 제도[7] 정치 철학 사회 제도[8] 기계 과학 기술[9] 냉전 시대 사회 제도[10] 예외적으로 정부 청사가 포함된다.[11] 유닛들의 전투력 합이 높을수록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고유 유닛이 아닌 이상 전투력이 높을수록 생산 비용이나 구입 비용이 비싸므로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할인 보너스를 받지 않는 한 유닛이나 건물을 금으로 구입하는 비용은 생산 비용보다 4배 비싸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시한부인 대신 4분의 1 가격으로 유닛들을 구입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12] 업그레이드하면 고유 유닛이 되는 경우, 일반 유닛이 아니라 고유 유닛이 된다. 예를 들어 검사를 대체하는 고유 유닛인 군단병이 있는 로마가 전사를 징병해서 업그레이드하면 검사가 아니라 군단병이 되며, 징병이 끝나도 그 유닛은 군단병으로 남는다. 이를 이용하면 고유 유닛이 있는 도시 국가를 징병해서 다른 문명의 고유 유닛을 조종해 볼 수도 있으나, 실전성은 낮다.[DLC] 바이킹 시나리오 팩 DLC에서 추가.[GS] 몰려드는 폭풍 확장팩에서 추가.[NFP] 뉴 프론티어 패스 DLC에서 추가.[16] 히타이트의 주신인 테슈브.[교체] 새로운 문명의 등장으로 교체됨.[교체] [DLC] [교체] [GS] [NFP] [NFP] [24] 일반적으로 생산력 1이 신앙 2, 금 4와 맞먹으므로, 생산력과 같다는 건 사실상 구입비가 절반인 셈이다.[25] 893년부터 972년까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곳. 현재는 벨리키 프레슬라프(Veliki Preslav)라고 불린다.[교체] [27] 기사단장의 예배당을 보유한 경우[28] 비율로 말하자면 민주정이 할인율 15%, 말리의 수구바가 할인 20%, 이 도시국가가 최대 60% 해서 95%까지 깎아먹을 수 있다.[DLC] [30] 이사벨 1세, 페르난도 5세[31] 명목상의 나라로, 카스티야 왕이 이 나라의 왕도 겸하는 형식으로 1833년까지 존속했다.[GS] [NFP] [34] 건물당 +15[35] 측면공격 방어시 전투력+7(티어1) / 유닛처치 시 해당유닛의 전투력의 절반만큼 신앙획득(티어1) / 이동력+1(티어2) / 피해를 입었을 때 전투력 패널티 없음(티어2) / 라호르의 종주국일 때 전투력 +10(최종진급)[NFP] [37] 엄밀히 말하면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며 독일 기사단이 아니다. 국가승계 문서 참조.[A] 숫자가 작을수록 우선도가 높다. 다만 도시국가의 시작 지점은 모두 1단계 하나씩이다.[39] For the highest active Alliance Level, all your Theater Square districts recieve +50% adjacency bonus.[40] 4.5면 +4로 적용된다는 소리[DLC] [GS] [A] 숫자가 작을수록 우선도가 높다. 다만 도시국가의 시작 지점은 모두 1단계 하나씩이다.[NFP] [NFP] [46] 보통 유저들은 자금성, 빅 벤 같은 슬롯제공 원더나 오라클, 피라미드, 킬와의 선호도가 높다.[교체] [48] 마치 도시국가 한양과 한국의 수도 서울이 같이 있는 것과 같다.[49] 다만 비잔틴과 오스만이 나온 문명 3 이래 본작에 이르기까지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이 같이 나오고 있고 문명 3 같은 경우 그리스 도시 중에서도 비잔티움이 있는 등 같은 도시가 중복해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긴 하다. 어떻게 보면 파이락시스 쪽에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 독립한 중남부 아메리카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실제로 멕시코시티가 추가된 것을 두고 문명이 새로 나온다면 그란 콜롬비아가 유력하다고 예측했다가 엉겁결에 들어맞은 경우도 있었다.[50] 아즈텍 삼각동맹의 기. 좌측은 텍스코코, 우측은 틀라코판의 상징이다.[DLC] [GS] [NFP] [NFP] [교체] [56] 사실 문양의 유래를 안다면 이렇게 볼 수는 없었던 게,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자카르타에 세워진 모나스의 탑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교체] [58] 한글 번역판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맨 마지막 두 문장의 원문은 "Wow. Much water." 로, Doge라는 인터넷 밈을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베네치아공화국의 국가원수도 도제(Doge)라고 불린 데에서 착안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그닥 유명한 밈이 아니라서 반영이 안 된 것인가 싶기도 한데 자세한 사항은 수정 바람.[교체] [A] 숫자가 작을수록 우선도가 높다. 다만 도시국가의 시작 지점은 모두 1단계 하나씩이다.[DLC] [GS] [NFP] [64] 해안 도시면 더욱 좋다[NFP] [66]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시대.[67] 인도네시아의 '찬디(Candi)'를 오역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쪽은 도시 이름이 아니라 건물 이름.[68] 캔디 종구국은 성유물당 기본 +6 신앙을 획득하는데 성유물 슬롯이 모자라서 판매하더라도 어지간한 ai는 전재산에 가까운 금액으로 성유물을 구매하고 외교 관계에 큰 보너스를 받는다.[DLC] [70] 12세기까지 서술하고 말아서 오늘날에는 유적이 됐나 싶을 수도 있지만, 2011년 기준 15000명이 조금 안 되는 주민이 사는 도시다. 다만 12세기 이후 딱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특별히 중요시되거나 한 적이 없긴 하다.[GS] [A] 숫자가 작을수록 우선도가 높다. 다만 도시국가의 시작 지점은 모두 1단계 하나씩이다.[NFP] [74] 다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N타일 이내" 라고 할 경우 양방향을 합쳐서 계산하지는 않으므로, 설명이 잘못됐다고 봐도 좋다. 문명 위키아 같은 경우 아예 버그라고 규정해 놓았다.[75] 다른 종교적 도시국가를 모두 살펴봐도, 종교를 창시하지 않으면 종주권 보너스가 있으나마나 한 경우는 바티칸이 아니면 예루살렘 정도. 나머지는 직접적으로 신앙을 보조하는 식으로 범용성 있는 보너스를 주며, 종교 승리와 무척 잘 맞는다는 평을 받는 예레반도 사제 진급을 고르면 정복 승리, 순교자를 고르면 문화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NFP] [77] 원문에도 Pyeongjangsa... 라고 쓰여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그건 아니고, civil minister(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문신(文臣) 정도)라고 나왔다. 역사적으로 정확해지는 건 좋지만 번역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번역이라기보다 번안인 셈.[78] 다만 삼성전자의 실제 본사는 경기도 수원시에 있다.[79] 3편에서는 코판의 왕 스모킹 재규어가 지도자였다. 코판은 온두라스 서부에 있었던 마야 도시국가였다. 팔렝케는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