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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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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60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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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홀딩스(주) 47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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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96 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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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1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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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29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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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99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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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53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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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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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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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34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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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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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45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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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서정진 8 25.6
20 (▼1) 파일:HMM CI.svg파일:HMM CI.svg
H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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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 파일:중흥그룹 로고.svg파일:중흥그룹 로고 화이트.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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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선 53 24.9
22 (▲2) 파일:미래에셋 로고.svg파일:미래에셋금융그룹 CI_White.svg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30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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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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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27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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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IL
(주)S-OIL 2 21.6
26 (▼3) 파일:부영그룹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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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쿠팡(주) 13 17.6
28 (▼1)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 화이트.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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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24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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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45 17.3
30 (▲1) 파일:SM그룹 CI.svg파일:SM그룹 CI_화이트 폰트.svg
SM그룹
우오현 58 17.0
31 (▼1) 파일:HDC 로고.svg
HDC
정몽규 35 16.9
32 (▼3) 파일:영풍그룹 로고.svg
영풍그룹
장형진 28 16.8
33 (▼1) 파일:효성그룹 신로고.svg파일:효성그룹 신로고 화이트.svg
효성그룹
조현준 57 16.5
34 (-) 파일:호반건설 CI.svg파일:호반건설 CI_white.svg
호반그룹
김상열 39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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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25 15.7
36 (▼1) 파일:KT&G 로고.svg
KT&G
(주)KT&G 14 14.9
37 (▼1) 파일:KCC 로고.svg
KCC그룹
정몽진 14 14.2
38 (▼1) 파일:장금상선 로고.svg
장금상선
정태순 27 14.2
39 (▲13) 파일:교보생명 로고.svg
교보생명
신창재 14 13.2
40 (▼1) 파일:코오롱그룹 로고.svg
코오롱
이웅열 48 13.0
41 (▼3) 파일:OCI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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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현 24 12.7
42 (▼2) 파일:태영 심볼.svg
태영그룹
윤세영 82 12.3
43 (-) 파일:넥슨 로고.svg파일:넥슨 로고 다크.svg
넥슨
유정현 19 11.9
44 (▼2) 파일:세아그룹 로고.svg
세아그룹
이순형 26 11.7
45 (▼1) 파일:LX그룹 로고.svg
LX그룹
구본준 17 11.3
46 (▼5) 파일:넷마블 로고.svg파일:넷마블 로고 화이트.svg
넷마블
방준혁 35 11.3
47 (▲15) 파일:에코프로 로고.svg
에코프로
이동채 23 11.2
48 (▼3) 파일:이랜드그룹 로고.svg
이랜드그룹
박성수 31 10.9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49 (▼3)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svg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 화이트.svg
한국앤컴퍼니
조양래 24 10.3
50 (▲1) 파일:태광산업 로고.svg
태광그룹
이호진 20 9.6
51 (▼2)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svg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 화이트.svg
금호석유화학그룹
박찬구 14 9.5
52 (▼2) 파일:다우키움그룹 로고.svg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48 9.5
53 (▲6) 파일:두나무 로고.svg
두나무
두나무(주) 12 9.4
54 (▼6) 파일:삼천리그룹 로고.svg
삼천리그룹
이만득 47 9.4
55 (▼2) 파일:동원그룹 로고.svg
동원그룹
김남정 26 9.3
56 (▼2) 파일:KG그룹 로고.svg파일:KG그룹 로고 컬러 화이트.svg
KG그룹
곽재선 34 9.1
57 (▼2) 파일:HL그룹 CI.svg파일:HL그룹 CI_white.svg
HL그룹
정몽원 13 8.8
58 (▼2)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
한국GM
한국지엠(주) 3 8.8
59 (▼2)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svg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 화이트.svg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13 8.3
60 (▼2) 파일:대방건설 CI.svg파일:대방건설 CI 화이트.svg
대방건설
구교운 42 8.1
61 (-) 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
한국항공우주산업
(주)한국항공우주산업 42 8.1
62 (▲1) 파일:애경그룹 로고.svg
애경그룹
장영신 31 7.1
63 (▲2) 파일:엠디엠 CI.svg파일:엠디엠 CI 화이트.svg
엠디엠
문주현 15 7.0
64 (▲3) 파일:크래프톤 로고.svg파일:크래프톤 로고 화이트.svg
크래프톤
장병규 8 6.9
65 (▲1) 파일:삼양그룹 로고(2024).svg파일:삼양그룹 로고 화이트(2024).svg
삼양그룹
김윤 13 6.9
66 (▲3) 파일:보성그룹 로고.svg
보성그룹
이기승 65 6.8
67 (▼4) 파일:동국제강그룹 CI.svg파일:동국제강그룹 CI 화이트.svg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12 6.7
68 재지정 파일:현대해상 CI.svg파일:현대해상 CI 화이트.svg
현대해상
정몽윤 13 6.7
69 (▼10) 파일:중앙그룹 로고.svg파일:중앙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앙그룹
홍석현 54 6.6
70 (-) 파일:글로벌세아 CI.svg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20 6.3
71 (▼3) 파일:아이에스동서 CI.svg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36 6.3
72 (▼5) 파일:유진그룹 로고.svg
유진그룹
유경선 60 6.2
73 신규 파일:영원무역 로고.svg
영원무역
성기학 50 6.0
74 (▼2) 파일:DN오토모티브 CI.svg
DN그룹
김상헌 8 5.8
75 (▼7) 파일:고려해운 로고.svg
고려해운
박정석 24 5.8
76 (▼3) 파일:OK금융그룹 로고.svg파일:OK금융그룹 로고(화이트).svg
OK금융그룹
최윤 16 5.8
77 (▲4) 파일:BGF그룹 로고.svg
BGF그룹
홍석조 18 5.8
78 신규 파일:대신증권 로고.svg
대신증권
양홍석 117 5.7
79 (▼4) 파일:하이트진로 CI.svg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11 5.5
80 (▼2) 파일:농심그룹 로고.svg파일:농심그룹 로고 화이트.svg
농심그룹
신동원 23 5.4
81 (▼10) 파일:신영그룹 CI.svg파일:신영그룹 CI 화이트.svg
신영그룹
정춘보 33 5.3
82 (▼6) 파일:한솔그룹 로고.svg파일:한솔그룹 로고 화이트.svg
한솔그룹
조동길 21 5.3
83 (▼3) 파일:반도건설 로고.svg파일:반도건설 로고 화이트.svg
반도건설
권홍사 18 5.3
84 (▼5) 파일:삼표그룹 로고.svg
삼표그룹
정도원 33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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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BE
방시혁 15 5.2
86 신규 파일:대명소노그룹 CI.svg파일:대명소노그룹 CI 화이트.svg
대명소노그룹
박춘희 23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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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
이용한 54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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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그룹
전필립 14 5.0
※ 2024년 기준
※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 (주)포스코홀딩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주)케이티, 에이치엠엠(주), (주)케이티앤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6개사
※ 동일인이 외국인인 기업: 에쓰-오일(주), 오씨아이(주), 쿠팡(주), 한국지엠(주) 4개사
※ 다음 업종의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법에서 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큰 기업(가. 금융업, 나. 보험 및 연금업, 다.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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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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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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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일 1947년 1월 5일 ([age(1947-01-05)]주년)
창업주 구인회, 허만정
회장 구광모
사업 분야 가전, 화학, 통신, 생활용품, 화장품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 기업, 기업 집단
매출액 147조 622억 원(2022년 기준)
영업이익 9조 940억 원(2022년 기준)
시가총액 208조 7,805억 원 (2022년 1월 27일 기준)[1]
공정자산총액 177조 9,072억 원(2023)
종업원 수 154,888명(2023년 기준 /
소재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웹사이트 파일:LG 로고.svg

1. 개요2. 특징3. 지배구조4. 역사
4.1. 범LG의 금융 잔혹사4.2. LG반도체 잔혹사
4.2.1. 국민의 정부의 빅딜 정책4.2.2. 현대그룹의 LG반도체 인수 과정4.2.3. LG의 반도체 재인수 기회4.2.4. LG반도체가 모태인 기업 현황
4.3. 영속성을 구축한 LG
5. 오너 일가6. 경영진
6.1. 회장급6.2. 부회장급6.3. 사장 및 부사장급6.4. 역대 임원
7. 기업정신
7.1. 창업이념7.2. 기업이념7.3. 행동규범7.4. 비전
8. CI
8.1. 변천사8.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9. 슬로건10. 사가
10.1. 금성사 사가10.2. 럭키금성 시절 가사10.3. 현재의 가사10.4. LG 메들리
11. 대외 활동
11.1. 독립운동 지원? 친일?11.2. 사회 환원 활동
12. 계열사
12.1. 지주회사12.2. 전자 부문12.3. 화학 부문12.4. 통신·서비스 부문12.5. 공익재단12.6. 계열 분리된 범LG가 기업12.7. 매각/독립된 회사12.8. 해산된 회사12.9. 사회공헌
13. 사옥14. 채용15. 기타16. 참고/관련 문헌

[clearfix]

1. 개요

옳은미래, LG
Innovation for a better life, LG[2]
Lucky Goldstar, LG는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 집단으로 2022년 기준으로 자산 총액 기준 한국 재계 서열 4위다.[3] 시가 총액 기준으로는 한국 2위다.[4] 공동 창업주는 구인회허만정이다.

2. 특징

파일:8059_8492_177.jpg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이며 LG 트윈타워라고 불린다.
지주회사 (주)LG가 주축이며 LG화학(구 럭키)과 LG전자(구 금성사)가 주요 계열사이다. 금성사는 삼성그룹, 효성그룹과 함께 '성(星)'자 돌림이었는데 세 재벌 가문 사이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GS그룹 허정구는 진주 지수초등학교 동창으로 구 회장과 이 회장은 사돈 사이였는데, 삼성이 전기·전자 제품으로 진출하자 LG 쪽에서 삐쳐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당시 구인회 회장과 이병철 회장이 담소를 나누다가 이병철 회장이 "전자업종에 진출한다"라고 하자 구인회 회장이 "사돈이 하는 업종에 뛰어드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장례와 2019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했고 202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례에 구광모 회장이 조문한 것을 보면 가문 간의 앙금은 어느 정도 풀린 듯 하다.[5]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인 저 두 회사의 이름을 따 럭키그룹 또는 럭키금성그룹이라고 불렸다. 락희화학의 사세가 커져서 그룹의 형태로 처음 조합되던 시절의 명칭은 럭키그룹이었다. 그러다 금성사의 위세가 높아지고 (주)럭키와 금성사가 양대 주력 계열사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그룹의 공식 명칭을 럭키금성그룹으로 개명하게 된다. 럭키화학은 당시 치약, 세제 등 생활에 널리 쓰이는 제품들을 다양하게 판매하는 기업이었으며, 금성은 선풍기, 에어컨, TV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우리나라 1등 기업이었다. 오늘날의 LG보다 럭키와 금성이 더 존재감이 강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6]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자사 구단명을 따서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럭키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자경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LG의 리브랜딩 성공으로 인해 이전에는 생소했던 영어 두문자를 딴 로마자 그룹명이 쉽게 정착될 수 있었으며, 이후 KCC, SK, CJ 등 유사한 기업집단이 늘어났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한국의 재벌가 중 그나마 욕을 덜 먹는 편이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잘했고,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잘 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없이 GS와 계열분리도 무난히 했고, 주주배당도 잘 하는 편. 특히, LG전자의 유상증자 때는 무감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 때문에 화제가 됐을 정도. 한국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밖에도 꾸준히 사회에 공헌을 한 의인들에게 따로 언론 노출 없이 거액의 지원을 제공하거나, 유공자에 대한 지원등 다양한 기부를 꾸준히 하면서 네티즌 사이에 오뚜기와 함께 개념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덜 먹는거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정경유착과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 그렇지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이 없지는 않다.

3. 지배구조

<rowcolor=#fff> 주주명 지분율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광모[7]
15.95%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국민연금공단
6.83%

[[영국|]][[틀:국기|]][[틀:국기|]]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6.0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본식[8]
4.48%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영식[9]
4.20%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본능[10]
3.05%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연경
2.92%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LG연암학원
2.1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본준[11]
2.04%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LG연암문화재단
1.12%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연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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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선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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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미정[14]
0.69%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이욱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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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구형모[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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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LG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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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기준

4. 역사

LG그룹 창업자 구인회(具仁會)는 1907년에 경남 진양군에서 농인 구제서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구인회는 부친으로부터 2000원을 받아 193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아우 철회와 함께 구인회상점이란 포목상을 열었다. 1940년 6월 구인회상점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어물 및 청과물도 취급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구인회는 구인회상회를 폐업하고 그해 11월에 부산 남포동 부근에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시절인 1947년에 경남 부산시에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18][19] '럭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동동구리무'(화장품)를 제조, 판매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전력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고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했다. 1953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락희산업(현 LX인터내셔널)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한 후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이듬해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했다. 1966년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다.[20]

1968년에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1969년 그룹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왕빌딩으로 옮겼다. 그 해 구인회 회장이 사망하고 1970년에 장남인 상남 구자경이 가업을 이어받아 국제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1년 서울 중구 도동 삼주빌딩(現 GS건설 사옥)으로 이전 후 1979년에 처음으로 그룹 로고를 도입하고 1983년 그룹명칭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고, 1984년 새 CI로 변경했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LG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 종합연수원 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21]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누었다.

1995년 1월 1일부터 그룹명을 'LG'[22]로 변경하고, 이후 럭키ㆍ금성ㆍ럭키금성ㆍ희성ㆍ반도ㆍLG 등이 혼재되어있던 각 계열사들의 명칭을 LG로 통일했다. 일각에서는 그룹명 교체 직전인 1994년 그룹 산하 야구단인 LG 트윈스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서 야구에 심취했던 구본무 회장이 그룹 명칭도 야구팀을 따라 LG로 바꾸도록 지시했다는 말[23]이 있으나 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수출 지향형 제조업 기업으로서 해외 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CI 통일이 목적이었으면 삼성처럼 굳이 기업명을 바꾸지 않고 해도 된다. 그 해 2월에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명예회장으로 영전하고, 화담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여 '3세 경영체제'를 이룩해냈다. 1998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2001년과 2002년에 기존 LG화학과 LG전자 법인을 'LGCI'와 'LGEI'란 지주사로 각각 출범시킨 후, 2003년에 두 회사를 합쳐 '(주)LG'란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허씨 일가를 중심으로 'GS홀딩스'가 세워졌고, 2005년에 57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LG그룹을 분리하여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경영하게 된다. 그 밖에도 분할된 기업이 많은 편이다. 이 기업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 범 LG그룹이다. 애초에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시작했고 그룹 성장 과정에서 회장의 형제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대그룹만큼이나 방계그룹의 규모가 크고 계열사가 많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와 많은 형제들로 인한 내부분란을 막기 위하여 인화를 상당히 강조했다.[24] 그래서 그런지 방대한 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에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 분리시 잡음이 거의 없었다. 두 가문이 무려 65년 간 동업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기업비사] 39회 LG 그리고 GS. 구씨와 허씨의 동업과 결별

아래는 LG그룹에서 갈라져 나간 방계 기업들의 목록인데 이들 기업이 LG에서 분리될 때 잡음이 하나도 없었다.

4.1. 범LG의 금융 잔혹사

범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한 금융업은 19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

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 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27]

LG투자증권, LG선물, LG투자신탁은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금융그룹 민영화 추진으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증권과 합병, 우리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 NH투자증권이 되었다. 선물은 우리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투자신탁과 합병, 우리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되었다. 부민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했고, 경은·부산·토마토2저축은행과 함께 가교저축은행인 예솔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중소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되었다.

IMF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LG의 차세대 먹거리는 금융으로 잡힌 적이 있었고, 실제로 매물로 나왔었던 대한생명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보험사 2위를 다투던 대한생명을 인수해서 LG의 금융계열을 삼성의 금융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화시키려 했다. 이러면 정말 삼성의 기업 포트폴리오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그룹 내 의견에 결국 구본무 회장은 인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한생명은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생명으로 개칭한다. 어차피 대한생명을 인수했어도 머지않은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인수해봤자 도로 정리했을 것이다. 향후 금산분리 이슈건까지 있으니 LG그룹 차원에서는 지주회사 체제 개편처럼 미리 금융사를 선제 정리해서 잡음없이 금융 정리를 끝냈다는 성과는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재를 주축으로 분가하여 범 LG 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LIG생명(옛 한성생명-럭키생명)은 시너지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어 우리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되었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iM라이프가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KB손해보험이 되었다.

LG증권 매각이후 범 LG가 중 LS그룹에서는 친척이자 금융전문인 LIG그룹과 함께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LS는 종합증권을, LIG는 단종증권을 희망하였기에 의견 차이로 결별했다. LIG그룹에서 설립했던 LIG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을 매각할 때 같이 팔렸다가, 인수자인 KB금융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28]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여의도 본점영업부만 남겨 덩치를 줄인 후 '케이프 인베스트'라는 조선기자재업체에 매각했고, 사명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LS그룹의 오너들이 금산분리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하여 인수했던 이트레이드증권은 재매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명을 이베스트증권 - 이베스트투자증권으로 바꾸고 계속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었다가, LS네트웍스로 대주주를 변경하고 금융위의 주주 변경 승인이 내려짐에 따라 2024년 3월 29일을 기해 LS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역시 금산분리 때문에 LS그룹의 오너 개인들이 투자자문사를 인수하여 만든 LS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DGB자산운용-하이자산운용-iM에셋자산운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씨家에서 분가한 GS그룹에서도 GS자산운용을 세웠는데, GS와 그 방계인 코스모그룹까지 휘청이는 상태라 BNK금융지주에 매각하여 BNK자산운용으로 변했다. 범 LG가 금융업체들 중 대주주가 한 번도 안 바뀐 기업은 창업투자사 LB인베스트먼트로, 구인회의 4남 구자두가 소유중이다.

하지만 오히려 금융계열사가 없기에 금산분리로 골치 썩을 걱정없이 무난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 한화를 비롯한 금융사를 가진 재벌들은 금산분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실정이다. 금산분리를 다소 완화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동양그룹 사태를 비롯한 재벌들의 병크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금산분리를 강화시키려 하는 입장. 롯데그룹롯데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금산분리 문제 때문이다.

LG의 금융잔혹사가 역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전화위복까지 아니더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골치아픈 씨앗을 제거했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의 경우, 금산분리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오너 일가가 인수하지 못하면 삼성생명 지배권을 상실하는데 그 인수 자체를 돈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로 분리하는 것 또한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화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중이지만 승계 이슈와 맞물러 해법을 내놓기 요원한 상황이다.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전에 있던 금융사의 현재 상태
그리고 LG의 방계 분리 이후에 생긴 금융사의 현재 상태
LG그룹과 그룹 금융사를 한국의 어지간한 금융지주회사들은 한번 이상 인수했다.

현재는 범 LG계인 GS그룹이 GS리테일을 통해 케이뱅크은행에 참여하고 있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의 아들 구본욱이 LIG투자자문을 떼내어 LK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LF가 코람코자산신탁을 계열사로 두고 있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LS가 이베스트투자증권 지분을 인수해서 LS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외에도 이러한 여파인지는 몰라도 관련 사업인 LG CNS ATM 부문도 최근 ATEC에 매각되었다.

4.2. LG반도체 잔혹사

4.2.1. 국민의 정부의 빅딜 정책

반도체 사업에 철천지 한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현대그룹현대전자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 신규 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했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

당시 정부는 빅딜 평가를 위해 컨설턴트 업체인 Arthur D. Little(ADL)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해당 업체는 현대전자에게 후한 점수를 줬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하여 LG반도체를 현대한테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수 년 뒤에 나온 후속 보도들을 보면 말이 많은데, LG는 ADL 업체의 선정 과정을 밝혔다. LG는 “당시 업계에서는 반도체 합병 무용론이 제기됐으나, 정부의 강경 방침으로 1998년 11월 11일 반도체 통합을 위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친정부 성향이 강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추천한 미국 업체 ADL이 선정됐다”면서 “그해 12월 24일 ADL 평가보고서가 공개되자 내용이 편파적이라는 시비를 부르기도 했다”고 기술했다.

LG는 당시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총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현대가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시 빅딜을 주도한 전경련에 발길을 끊는다. 전경련회관이 그룹 사옥인 LG트윈타워에서 고작 5분 거리인데 1999년부터 전경련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에 갔던 것도 전경련회관이 새로 지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 축하행사 참석차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자의로 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2016년도부터는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삼성, 현대, SK, 롯데를 비롯한 대한민국 5대 그룹 중에서 처음으로 전경련에 공식 탈퇴 의사를 통보하며 전경련과의 연을 아예 끊어버렸다.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NEC, 히다치 같은 일본 기업들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LG 반도체 평가를 보면 빅딜 성사 전까지 LG반도체는 램버스 DRAM에서 앞서나간 기업 중 하나이다. 또한, 삼성 램버스 개발삼성전자, 현대전자, 인텔, 마이크론, 인피니언(구 지멘스), NEC-히타치 등 6개사 컨소시엄의 차세대 초고속 D램으로 불리는 램버스D램 후속 제품 개발 합의를 보면 그 당시 램버스 DRAM은 매우 유망한 평가를 받았던 차세대 DRAM이었다. 그러나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 펜티엄 4, 참조해보면 D램의 큰 고객사였던 인텔이 공식적으로 RDRAM을 포기하고 DDR D램으로 돌아서면서 DRAM 시장을 주도하는 건 DDR D램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른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램버스' 사태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인텔을 따라서 DDR D램으로 옮겨갔고,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반도체 기업 NEC, 히타치는 끝까지 램버스 D램을 고수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LG반도체는 당시 램버스 사태 일어나기 4년 전에 빅딜로 현대그룹에 팔렸었지만 만약 LG반도체가 정부의 빅딜 대상이 아닌 상태를 가정해보자. LG반도체가 현대에 팔리지 않고 RDRAM을 계속 밀었다면 일본 반도체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고, 반대로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처럼 빨리 RDRAM 접고 DDR DRAM으로 옮겨갔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를 뒤이을 반도체 대기업이 됐을 것이다.

DDR D램으로 옮겨간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고,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10대 전자기업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순이익을 내게 된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램버스 D램에서 DDR D램으로 옮겨 결국 세계 메모리 3강에 들게 된다. 현대전자는 DDR D램을 선택했으나 적자가 만만치 않은 상태였는데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LG반도체의 부채까지 떠안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애초에 현대 그룹은 반도체가 주력 사업도 아니면서 정부의 빅딜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LG반도체 흡수를 강행한 것이다. 그에 따라 LG가 자금 수혈해주고 있던 LG반도체의 부채가 현대전자한테 넘어갔으니 현대전자는 사실상 2개 기업의 부채를 혼자 짊어지게 된 꼴이 됐다. 이후 현대전자는 사라지고 현대전자가 갖고 있던 D램 기술들은 SK하이닉스의 밑바탕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미국계 경영자문사인 '아서 디 리틀(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 중 1명이 넥센 히어로즈의 그 이장석이었다. 관련 기사 ADL 측에서 현대전자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당시 하이닉스의 계열사였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해체되었고, 이 사단의 첫 시작에 관여한 이장석이 현대의 선수단을 사들여서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한 것. 그리고 이후 LG 트윈스가 히어로즈에게 몇 차례 선수 트레이드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너무 깊은 악연이다.

4.2.2. 현대그룹의 LG반도체 인수 과정

현대 측에서는 LG그룹이 갖고 있던 LG반도체 지분을 50 ~ 60%만 인수하고 자신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허나 LG는 정부 빅딜 정책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LG반도체를 내주는 상태인데다가 현대가 가지려는 지분 비율 또한 LG를 제외한 전경련이 멋대로 정한 비율이었기에 LG그룹은 경영권을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결국 LG는 포기했다. 아예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해서 현대는 LG반도체의 지분 50%가 아닌 100% 인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말이 많았는데 현대 측에서 LG반도체 인력의 고용 보장을 하지 않겠다고 나온 것이다. 결국 LG반도체 직원들은 파업했으며 어차피 고용 보장이 되지 않으므로 핵심 인력 20명은 해외 경쟁 업체로 입사했다. 이와중에도 정부는 자신들의 빅딜을 강행하기 위해 현대 측의 편을 들어주면서 핵심 인력 이탈을 막을 방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정부는 대북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현대그룹에게 LG의 반도체 사업을 선물로 주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매우 강하게 돌았다.김대중 정권에서 현대, LG 대상으로 빅딜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을 참고.

외적으로는 현대한테 이득이 되는 모습처럼 보였으나 내적으로 보면 현대전자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현대전자의 부채는 LG반도체의 부채랑 맞먹었던 시기이다. 그 상태에서 LG반도체 인수를 위해 갖고 있던 현금을 써버리고 LG반도체의 부채까지 추가로 감당해야 했으니 사태가 기존의 3배[29]는 악화된 것이었고 불과 1년만에 유동성위기에 봉착했다. 무슨 생각으로 LG반도체를 인수했는지 모를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2001년 당시 현대전자 총 부채 약 8조원 이후 현대그룹왕자의 난에 이은 형제들의 분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겹이 터지는 바람에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반도체 사업부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존속 중이었는데 위 같은 연유로 하이닉스 인수전에 LG그룹은 조건없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2008년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이 우리는 그동안 반도체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라는 그 누구도 이해를 해보려 해도 절대 이해하지 못 할 발언을 했으며, 구본무 회장의 뜻이냐는 질문에는 직접 물어보라고 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인수전에서 빠져나와버렸고,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변경된다.

그리고 2017년 8월 SK그룹에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매각하면서 이제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LG실트론은 LG측에서 반도체가 더 이상 주력 사업이 아니라서 정리한 것으로 보이고, 실리콘웍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쪽은 흔히 생각하는 반도체 제조 회사가 아닌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이며 2023년 기준, LX그룹 계열로 들어가 있다.

4.2.3. LG의 반도체 재인수 기회

LG에게는 이미 충분히 재인수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당시 하이닉스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여서 LG보다 체급이 매우 낮은 동부그룹에게도 인수 제의가 갈 정도였고 효성그룹 같은 소규모 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설이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LG에게는 당연히 수많은 인수 제의가 오갔다. 2011년 SK가 인수하기 전에도 LG는 첫번째 인수 후보군이었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의 조건으로 재인수 제의가 갔지만 LG는 인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면 구본무를 비롯한 구씨 집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으로 LG 구 회장 측에서는 원래 자기 것이었던 하이닉스를 거액을 들여 다시 인수해야 하는 것에 반감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치킨 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지금에 와서 연간 투자비가 수 조 원에 달할 수 있는 반도체 사업을 재개하기엔 부담을 크게 느껴 인수를 하지 않았다. 구본무는 반도체 사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SK가 인수를 했고 운좋게 반도체 치킨 게임이 종식되면서 한국 M&A 역대 1위를 다투는 성공적인 기업 인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LG에서 재인수했다면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분야가 반도체 분야인 걸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 SK와 LG는 3, 4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로 두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하이닉스 인수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LG가 근소하게 앞서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이닉스 인수 기점으로 잭팟을 터트린 SK는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모두 LG와 비교할 수 없는 3위로 올라섰다.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산 규모가 고작 몇 조밖에 차이 안 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득과 성장을 일구었다. 반면 LG는 도저히 SK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나는 4위로 주저앉았고 5위인 롯데그룹과 경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물론 LG가 GS,LS 등 그룹을 나눠서 규모가 작아진 점도 있다. SK는 삼성,현대,LG와 달리 지금까지 한번도 그룹이 분리 된 적이 없었다.)

4.2.4. LG반도체가 모태인 기업 현황

2023년 기준, LG반도체가 모태인 기업은 매그나칩반도체SK하이닉스[30]이다. 매그나칩반도체 인수전에서 LG그룹 명예회장인 구자경의 아들이자, LG반도체의 사장이었던, LX그룹의 구본준 회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와중에 SK하이닉스가 끼어들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에 집중하기 위해 매그나칩반도체가 갖고 있던 키파운드리를 우선 인수했다.

4.3. 영속성을 구축한 LG

현시대에서 LG는 삼성, SK, 현대를 비롯한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 형태와 기업 문화가 보수적에 경직성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가 서초동(검찰청)에 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LG는 한국 5대 재벌(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중 총수 일가가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물론 방계로 따지면 존재한다. 기업 말아먹고 구속된 LIG 일가라든지, 구본무와 6촌관계인 판토스 오너인 구본호 등.[31] 그리고 판토스 인수로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바로 오너 일가 지분을 법에 맞게 정리해버렸다. 2021년 외주업체의 청소노동자 해고 시위에서 청소업체의 대주주가 구광모 회장의 고모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두 고모가 바로 지분을 처분하고, 분쟁 해결을 약속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 그만큼 LG는 서초동과 연관되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여긴다. 이는 장기적으로 엄청난 장점으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상속 문제에서 현시대의 LG급 재벌들은 대를 이은 상속이 더이상 불가능하다. 삼성의 이재용뇌물상속 문제로 감옥에 갔다왔고 다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며 결국 대외적으로 4세 승계 포기선언까지 해버렸다.[32] 현대차의 정의선도 지금 순환출자 때문에 곤란한 실정이며, 후대 승계를 감안하면 암담한 상황이다.[33]

SK는 LG와 같은 지주회사 체제지만, 지분율이 LG보다 탄탄하지 못해서 쉽지 않다.[34] 반면 구광모의 LG 승계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상속세를 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구씨 친족들이 (주)LG의 지분율을 안정적으로 40~50%대를 계속 유지하며 대를 이은 영속을 구축했다. GS와 더불어 5세, 6세를 가더라도 구씨 오너가 바뀌지 않을 정도.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괜히 재벌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LG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LG의 상속과 지배구조는 꼬투리 잡을 이유가 없는 것. #

다른 재벌보다 당장 손익이 뒤쳐지더라도 LG만의 장단점이 있는 셈. 그룹 분가 역시 GS, LS, LIG, LX를 비롯한 방계들이 독립할 때 어떠한 잡음 하나 없었다. 2020년 확정된 구본준의 LX그룹 계열분리 역시 LG의 규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의 회사들을 가져가며, 반대로 구본준 또한 손해보지 않는 회사들을 얻었다. 구본준의 LG 지분처리는 구본준이 가져가는 LG상사 등의 LG 보유지분과 맞교환해서 LG 본가의 지배력을 유지시킨 깔끔한 계열분리다. 다른 재벌들이 상속, 왕자의 난, 계열분리로 얼마나 막장을 겪었는지 그리고 향후 치러야 할 재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아주 모범적이다.

다만 SK, 롯데 등이 아직 분가와 독립을 하지 않아서 LG와 경쟁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하면 꼭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35] 단적으로 계열분리한 범 LG가를 합치면 자산 240조 이상의 재계 2위 규모다. 경쟁 기업들이 합병으로 거대규모의 하나의 기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에서 2020년에도 발생된 LG 방계들의 독립은 LG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방계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면 LG의 사이즈는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36] 이제 독립할 방계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앞으로 LG가 어떤 식으로 다시 치고 올라올지 매우 중요한 시기다.

5. 오너 일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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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는 연암 구인회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이다.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출처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부터 구본무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의 경우 외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장자/장자녀 계승제를 선택하는 가장 큰 메리트인 안정성을 잘 살리고 있는 셈.

현재 회장인 구광모 대표는 내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회장은 취임 후 '회장'이라는 칭호 대신 '대표'로 본인을 불러달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LG를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내외부 평가다. 인사에서도 2021년에 신임 상무 132명을 대거 발탁하는 등 취임 후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하며 미래 경영 후보군을 두껍게 가져가고 있다. 외부 인재 영입도 활발해 3M 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수장으로 데려오고, 인공지능(AI) 석학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LG AI 연구원의 핵심인재로 영입했다. 구회장은 개방적 역동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LG DNA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과거 LG는 예측 가능한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 폭을 넓혀가고 있는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6. 경영진

6.1. 회장급

6.2. 부회장급

6.3. 사장 및 부사장급

6.4. 역대 임원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a50034><tablebgcolor=#a50034> 파일:LG 로고 화이트.svgLG
회장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50034 0%, #a50034 20%, #a50034 80%, #a5003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구인회
(1947~1969)
제2대
구자경
(1970~1995)
제3대
구본무
(1995~2018)
제4대
구광모
(2018~ )
}}}}}}}}}}}}}}} ||

7. 기업정신

7.1. 창업이념

7.2. 기업이념

7.3. 행동규범

7.4. 비전

도약2005 (1996~2005)
최고의 추구, 성과주의, 정도 경영
세계적 관점에서의 경쟁
고객, 사원, 주주의 최고 가치를 추구
정도 경영을 바탕으로 일등 추구
기업시민으로서 사회 발전에 공헌
질/양에서 1등 실현
고객감동 Brand Image 구축
최고의 보람있는 직장 달성
미래형 사업 구조로의 전환, 세계화, 집중과 철수
성장에 필요한 Cash 확보
미래형 차별화 기술 확보
성장 필요 Skill 확보
한계 돌파 능력 확보
도전, 단순성, Speed, Boundaryless
CU장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유지하며 높은 성취 욕구와 주도적인 추진 능력, 세계 최고의 전문 Skill을 갖춘 도전적인 조직
최고 인재의 발굴과 확보에 주력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체계적인 육성

LG Way (2005~ )
고객이 신뢰하는 LG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
인재들이 선망하는 LG
경쟁사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LG
정직, 공정한 대우, 실력을 통한 정당한 경쟁

8. CI

8.1. 변천사

파일:럭키그룹 1979년.png 파일:럭키금성 로고.svg 파일:LG 로고(1995-2015).svg 파일:LG 로고.svg
<rowcolor=#fff> 1979년 1984년 1995~2014년 2015년~현재

8.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럭키금성이 LG로 바뀝니다(1995년) 광고
파일:img_ci_story03_pc.jpg
보다시피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LG의 로고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파일:엘지유사상표.jpg
변경한 로고는 표절 논란이 있었다.
파일:LG 로고(1995-2015).svg
2014년 12월까지 쓰인 로고로, 이 때 사용된 전용 라틴 문자 서체는 Unica SH라고 한다.
파일:LG 로고.svg

2015년 1월부터 옆에 붙은 글꼴이 바뀌었다. 기존의 LG 로고와 크게 다른 점은 글꼴과 심볼의 색이 더 진해졌다는것. 2014년 하반기에 LG전자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다가 12월 LG유플러스에 적용된 후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글꼴은 LG Smart 글꼴로, 해당하는 한글 글꼴은 산돌에서 만들었다.

LG가 유명한 것으로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로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로고는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바꾼 199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GE,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유명기업들의 CI를 제작했던 미국의 Landor社에서 CI 개발 작업을 진행했으며, Landor社는 이후 한국의 KB, GS그룹, 대한항공 등의 CI 개발도 담당했다. 최종 채택된 시안의 제목은 "The Face of the Future." 즉 미래의 얼굴이다. 신라 기와(얼굴무늬 수막새)의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했는데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의미는 기업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5가지 개념과 정서를 형상화해 인간이 경영의 중심에 있음을 상징한다는 것. 눈을 하나만 넣은 것은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본무 회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40] 그리고 이 로고를 이어폰에 넣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CI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L,G 글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얼굴 로고를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보통 "LG Electronics"[41] 레터링만 넣거나 이마저도 없이 제품명과 통신사 로고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42].
파일:attachment/lgpacman.gif
하지만 해외에선 팩맨같이 생겼다고 놀림받기 일쑤. 특히 LG의 부진한 스마트폰 실적이 겹치면서 언제부턴가 저놈의 로고만 안 붙어있으면 스마트폰이 더 잘 팔릴 거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LG G6에도 18:9 풀비전 디스플레이 탑재로 베젤이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로고는 여전히 붙어있었으나, 비판을 의식한 건지 LG V30부터는 전면에서 LG 로고가 빠졌다.

사람 얼굴을 형상화해 왠지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살짝 변형된 LG 짝퉁 로고가 판을 치고 있기도 하다.

근래에는 얼굴만 남겨놓고 다양한 뒷배경을 커스텀하는 경우도 있다. #

9. 슬로건

인간 기술 미래 (1984~1989)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1990~1994)
럭키금성이 이제 LG로 바뀝니다. (1995)
이젠 LG입니다 (1995)
사랑해요 LG (1995~1998/2003~2009)
正道경영 초우량 LG (1995~1998)
도전 50년, 도약 50년 (1997)
새 생각 새 기술 새로운 미래 - 밀레니엄 드림 LG (1999)
무한커뮤니케이션 - LG (2000)
기본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생각합니다. (2001)
Life's good (2001~ 현재)
With LG (2002~2003)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2004)
Think New LG (2005)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07~2008)
LG는 사랑입니다. (2009~2012)
사랑해요 코리아 (2010)
함께해요 다문화 (2012)
innovation for a better life (2014)
옳은미래. (2017)
미래, 같이 (2024~ 현재)

10. 사가

1978년 6월부터 <럭키가족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그 이전인 1975년 4월에는 금성사 한정으로 <금성사가>가 있었다. 작사는 동일하나, 작곡은 김희조가 맡았다.

10.1. 금성사 사가


(1절) 보아라 이 나라의 젊은 역군들
겨레의 얼과 슬기 이어 받았다

역사를 창조하는 보람찬 대열
사랑과 단결 속에 힘이 솟는다

(후렴)새 연구 새 기술은 금성의 자랑
날마다 우리 살림 새 모습 짓자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나 금성 금성
금성이 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

(2절) 시대를 선구하는 산업전사들
조국의 부강번영 우리의 소원

고난과 시련이 앞에 닥쳐도
성실과 신념으로 헤쳐 가리라

(후렴)새 연구 새 기술은 금성의 자랑
날마다 우리 살림 새 모습 짓자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나 금성 금성
금성이 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

10.2. 럭키금성 시절 가사

(1절)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동지들이다
무궁화의 낙토건설 우리 손으로

(2절) 시대를 선구하는 산업전사들
새롭고 꾸준한 창의와 연구

거룩한 우리 사명 다하는 곳에
겨레와 인류의 행복이 있다

(후렴)나라의 자랑이다 럭키금성
세계로 뻗어가는 럭키금성

10.3. 현재의 가사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LG인이다
아름다운 미래건설 우리 손으로

나라의 자랑이다 LG LG
세계로 뻗어가는 LG LG

10.4. LG 메들리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도입교육에서 배우던 노래로 여러 야구 응원곡이 짬뽕된 음악이다.

11. 대외 활동

11.1. 독립운동 지원? 친일?

1979년 방송작가 한운사가 쓰고 럭키그룹 연암기념사업회가 낸 <연암 구인회 일대기>[43]에 따르면 창업주 구인회가 독립운동가인 안희제에게 1만원[44]을 건네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외 근거 사료 및 타당한 사료가 부족하다.

반대로 구인회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 8천원을 대출받고, 일제가 조직한 진주상공회의소의 의원직을 역임함과,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신문광고에 후원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시에 조선의 물자통제를 담당했던 경남상공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내는 등 친일 행적에 대한 관련 근거가 더 부각된 편이다. 구인회가 독립운동을 지원했을 수는 있으나 친일적 행보가 더 명확하다는 점에서 독립운동만 부각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대부분 LG가 독립운동가에게 지원했다는 일화만 알려졌다.

반면 범 LG가인 GS그룹의 독립운동 지원에 대해서는 잡음이 적다. GS그룹 초대 회장 허창수의 아버지 허준구[45]는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백산상회는 당시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던 곳이다. 기사 또한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다.

결론적으로, LG의 경우 근거가 상당히 미흡하고 확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는 애매하다. 실제 창업주 부친이 지원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GS의 경우 독립운동지원은 확실한 편이다. 이로 봤을때 GS가 계열 분리전 LG에 있었고 구씨와 허씨가 2005년까지 동업했기 때문에 허씨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이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시절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이중플레이를 했을 수도 있다. 구씨, 허씨가 합심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구씨 측은 일제에 표면상으로 소극적으로 협조(자금 지원 등)하는 척하면서, 허씨 측을 통해 독립운동을 몰래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LG와 GS는 그룹이 분리 되기 전 대외적인 경영은 구씨가문이, 내외적인 활동은 허씨 가문에서 했다.

11.2. 사회 환원 활동

12. 계열사

12.1. 지주회사

<colbgcolor=#a50034><colcolor=#fff> 주식회사 LG
LG Corp.
파일:LG 로고.svg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47년 1월 5일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대표자 구광모, 권봉석
업종명 지주회사
기업 규모 대기업
상장 유무 상장기업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1970년 ~ 현재)
종목 코드 003550 (보통주)
003555 (우선주)
한국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수지주회사를 유지하고 있고, 재무건전성도 매우 뛰어나다. 보통 지주회사는 '지주'나 '홀딩스'가 붙는데, LG는 지주회사 이름도 '주식회사 LG'다. 이는 한때 동업관계였던 GS그룹도 마찬가지.

본사의 모태는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 설립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럭키크림'으로 생활용품 사업에 진출한 후 1951년에는 플라스틱을 시초로 소재사업에도 손을 뻗었으며, 1958년에 금성사를 세우는 등 그룹 확장의 중추로서 한몫했다. 1966년 락희비니루공업, 1968년 락희유지공업을 각각 합친 후 플라스틱-비니루-유지 3개 사업부로 조직을 개편했으며, 1970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다.

1991년 럭키소재 및 럭키제약을 합병한 후, 각 사업부를 '사업문화단위(CU)'로 묶었다. 1995년에는 'LG화학'으로 사명을 바꾸고 2000년 사업부문별로 개편한 후, 2001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주회사 전환 신고를 하며 'LGCI'로 개편해 화학사업부문을 'LG화학', 생활건강부문을 'LG생활건강'으로 각각 분할했다. 2002년 생명과학사업부문을 'LG생명과학'으로 분할하고 이듬해 LGEI[49]를 합병하여 단일 지주회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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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전자 부문

12.3. 화학 부문

12.4. 통신·서비스 부문

12.5. 공익재단

12.6. 계열 분리된 범LG가 기업

범LG가
파일:LG 로고.svg 파일:희성그룹 심볼.svg 파일:LT그룹 로고.svg
파일:LX그룹 로고.svg 파일:LF(기업) 로고.svg 파일:아워홈 로고.svg
파일:LIG그룹 로고.svg 파일:LS그룹 로고.svg 파일:LK그룹 로고.png

12.7. 매각/독립된 회사

12.8. 해산된 회사

12.9. 사회공헌

13. 사옥

파일:img_seoul.jpg

14. 채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LG/채용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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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5. 기타

16. 참고/관련 문헌



[1] LG그룹의 상장된 계열사 시가 총액을 더한 것이다.[2] 이 광고부터 LG의 글꼴타입(폰트)를 변경했다.[3] 1위는 삼성, 2위는 SK, 3위는 현대자동차그룹이다.[4] 2022년 9월 5일 기준. 1위 삼성(592조), 2위 LG(216조), 3위 SK(153조), 4위 현대차그룹(127조). 출처 여담으로 시가총액 기준 5위인 포스코는 시가 총액이 40조 정도로 1~4위와 차이가 큰 만큼, 사실상 한국 경제에 이 4개 그룹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5] 이는 현재 재벌 오너들이 대부분 3세대로 세대교체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마찬가지로 사이가 안좋은 삼성과 CJ도 이재용 체제 이후에는 관계 회복이 되고 있으며, 재벌 오너들끼리의 회동 또한 잦아지고 있으며 이 영향으로 재벌간 협력도 늘어나고 있다.[6] 오늘날에야 전기전자 분야는 삼성도 있고 수많은 외국 기업들도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엔 외국 가전제품이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으며 삼성 제품은 금성 제품보다 내구성이 낮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7] 구광모 외 29인이 41.70% 소유하고 있다.[8] 구자경의 사남. LT그룹 회장[9] 구광모의 양모. 구본무의 아내[10] 구광모의 친부, 구자경의 차남. 희성그룹 회장[11] 구자경의 삼남. LX그룹 회장[12] 구광모의 양동생[13] 구자경의 외손녀[14] 구자경의 차녀[15] 구자경의 동생 구자영의 아들[16] 구광모의 사촌이자 구본준의 아들[17] 구자경의 동생[18] LG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LG 역사의 시작은 이 때부터다. 이 당시 구인회가 살던 서대신동 자택 마당에서 크림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이며 훗날 연지동으로 전용 공장을 옮겼다. 현재는 연지동 옛 공장 부지에 연암기념관이 있다.[19]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할 때 정부가 LG그룹 측에 부산·경남 연고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각 지역별 연고팀은 해당 지역 출신 기업인이나 연고지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한 기업으로 하여금 창단하게끔 했는데 구자경 회장의 출신지도 경남이었고 LG의 창업지도 부산이었기에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에 딱 맞았다. 그러나 내부 사정 탓에 실제 야구단 창단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결국 울산 출신 신격호가 있던 롯데그룹으로 부산·경남 연고팀의 창단 권한이 넘어갔고 이후 LG그룹은 1989 시즌이 종료되고 매물로 나온 MBC 청룡을 인수하여 야구계에 진출하게 된다.[20] 이 흑백 텔레비전의 생산은 일본 히타치의 기술 도입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다른 대기업들이 일본기업과 기술제휴를 할 때 그 사실을 크게 부각해서 품질 좋은 물건이라는 주장을 할 때 (이를테면 대한-도시바 TV라던가) 금성사는 히타치와의 제휴 사실을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이 때부터 지금까지 LG의 전기, 전자, 정보 부문에서 일본과의 기술제휴 및 부품도입이 필요할 때는 주로 히타치와 이루어 졌으며 지금도 히타치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양 사의 합작회사도 Hitachi-LG Data Storage 등 제법 되었다.[21]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 자율경영[22] 공식적으로 LG그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언론에선 편의상 LG그룹이라고 한다.[23] T1T(SK텔레콤)의 관계와 유사하다.[24] 흔히들 인화의 LG, 관리의 삼성, 뚝심의 현대라고 칭했다. 이는 일본의 거대 기업집단 중 '인화(人和)의 미쓰이, 조직의 미쓰비시, 결속의 스미토모'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하다.[25] 19~21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26] 과거 기업 휘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룹명 GS가 과거 금성사의 영문 상호이던 GoldStar의 약자이다. LS의 경우, LG그룹에서 분리할 때 LG의 L과 GS의 S를 따서 만들었다. LIG는 LG손해보험 영문 상호의 두문자다.[27]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원인이었으며, 이 여파로 LG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위였다가 현재 4위로 순위가 내려가 버리는데 결정타가 되었다.[28] 사정1.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보험회사는 손자회사로 보험과 관련 없는 회사를 둘 수 없다는 규정. 사정2. KB금융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KB투자증권(자산6조)조차도 그룹에 어울리는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추가 M&A전에 뛰어드는 판에 자산 6000억의 LIG투자증권은 합병해 봐야 자산증식에 도움이 안 되는 계륵만도 못한 존재라는 판단.[29] 현대전자의 부채 + LG반도체의 부채 + 인수할 때 지불한 현대전자의 자금[30] LG반도체를 인수한 하이닉스(현대전자)를 SK가 인수했으므로.[31] 그러나 LIG는 LG 본가와 계열분리가 된지 오래되었고, 판토스는 돌연 LG가 판토스가 LG 인수를 거부할 경우 LG의 일감을 줄이겠다는 반강제식으로 인수를 해버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판토스 오너가 줄곧 사고를 친 탓에 불편한 LG가 이를 정리하려 했다는 뒷소문이 파다했다.[32] 다만 이쪽은 그래도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삼아, 지배구조를 대폭 개선해 꽤나 지배력은 강한 편이다. 거기다 승계 포기선언이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33] 이쪽이야 말로 진짜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삼아 지배구조를 개편하려고 했으나, 현금이 너무 많이 필요한 상황이며, 아직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조차 못한 상황이다.[34] 이쪽은 소버린 사태와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 실패로 지분이 계속 줄어들었다.[35] 단기적으로 봤을 때 단점이 맞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가 아주 다르다. 삼성과 현대는 형제의 난부터 후대승계까지 문제가 많았고 SK는 최태원 친척의 (주)SK의 총지분율이 29%에 최태원의 지분은 18%에 불과하다.(최태원-노소영의 이혼분쟁이 돌발변수) 3세 승계를 감안하면 적은 지분이며, 최태원 이후 후계자부터 불투명하다. 그리고 최종건 계열의 계열분리 또한 잠재적 문제점이다. 롯데는 왕자의 난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신동주 지분이 신동빈 이상으로 많아 계열분리 하려해도 큰 출혈이 불가피하다. 언제까지 이사회에서 신동빈 편을 들 수 없을 것이며 순환출자로 지배한 탓에 신동주, 신동빈의 보유지분이 높지 않다. 한화는 의외로 김승연의 (주)한화 지분이 22%라서 승계가 쉽지 않고, 아들이 3명에 서로 지분 차이가 아주 크게 나지 않아서 각자 몫을 챙겨주면 한화의 규모가 크게 축소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정기선으로 승계가 거의 완성되었다. GS는 LG만큼 허씨 일족의 지배력이 탄탄하지만 형제들의 계열분리 소문이 있다. 두산은 사세가 크게 축소되었고, 한진은 경영권 분쟁에 아시아나 인수(산은이 돈을 대주는 조건) 등으로 당장 조원태부터 위태위태하다. 재벌은 고사하고 중견기업들도 상속세 문제로 사모펀드에 팔려나가는 상황에서, LG가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선제적으로 문제를 정리한 것이 큰 빛을 발하고 있다.[36] 특히 GS가 독립하면서 정유 회사를 분리해 나갔는데 만약 LG그룹에 화학+생건+정유가 있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37] 그룹 창업공신인 이연두 전 락희화학공업사 부사장의 아들,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생질.[38] 1990년 2월 20일 구자경 회장 시절에 선포됐다.[39] 2018년부터 사용되는 표어다.[40] 참고로 새 CI 발표는 구본무 회장의 LG그룹 회장 승계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취임부터 본인의 이미지를 크게 각인시킨셈.[41] 2015년부터 서체가 바뀌었다.[42] 단 일본 Y!모바일에서 팔매된 안드로이드 원 X5(LG Q9 One)는 명확하게 LG 로고가 삽입되었다.[43] 1984년에 동광출판사를 통해 <총수의 결단>으로 재출간됐다.[44] 현재 가치로 약 1억 원[45] 허준구의 부친인 허만정이 구인회가 하던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그 이후로 계속 LG 창업주 구인회를 도와 오늘날의 LG그룹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비슷한 연배인 구인회의 장남 구자경이 구씨 가문을 대표한다면, 허준구는 허씨 가문의 좌장 역할을 했다.[46] 여러 작물을 테스트해본 결과, 마늘이 에티오피아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와 마늘로 결정했다고. 더불어 에티오피아 요리에 마늘이 많이 사용되어 꽤나 고소득 작물인 점도 고려.[47] 2013년에는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하려다 순직한 인천 강화경찰서 경감의 유가족에게 5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고, 2014년 7월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추락해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각각 1억원씩 전달하기도 했다.[48] 그런데 이 때문에 팀 킴의 삼성 라이온즈 시구가 무산되었다.[49]LG전자 법인.[50] 카메라 모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적용되는 초슬림, 고화소 카메라모듈을 얘기하고, 차량용 전장부품사업은 기존 자동차부터 전기차, 스마트카 등에 장착되는 모터와 센서, 통신모듈,파워모듈, 카메라모듈, LED조명모듈, LED사업에서 친환경 조명으로 주목 받고 있는 LED조명의 핵심인 LED칩과 패키지를 한국 내외 조명 업체에 공급하며, 기판소재사업에서는 스마트폰, 노트북PC, 올인원PC 등 IT기기의 핵심 부품인 터치스크린패널과 반도체 패키지용 기판 등을 판다.[51] 두산그룹 계열이었으며 창립 시 한양식품임. 1997년 OB맥주에 합병됨.[52] 2005년 GS그룹 분가로 LG건설이 떨어져 나가면서 LG그룹 내 건설회사는 없었으나, 전자나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공장에서 보안성이 요구되기에 GS의 사업분야로 웬만하면 진출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건설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 사명 변경 이전의 서브원이다.[53] 단, 소프트웨어 부문은 후에 LG전자로 넘어갔다.[54] 반면 씽크패드, 씽크센터 등 일부 브랜드는 한국IBM으로 넘어감.[55] 서울스퀘어 문서에 있는 대우빌딩 시절 사진 좌측에 LG건설 본사로 사용하던 LG역전타워의 모습이 보인다. 위키피디아의 서울스퀘어 문서에는 럭키금성 시절 건물 전체 모습도 볼 수 있다. GS의 계열 분리 후 GS건설 본사로 사용되다 GS건설이 종로 그랑블루로 이전하여 메트로타워로 바뀌었다.[56] 2022년 점유율을 기준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가 중국 CATL이며, 2위가 LG에너지솔루션이다.# 또한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LG에너지솔루션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배터리 시장을 놓고 중국 업체들과 엄청난 경쟁을 하는 중이다.#[57] 물론 어디까지나 대기업 기준에서 낮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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