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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LG 엘지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다국적 기업) |
창립일 | 1947년 1월 5일 ([age(1947-01-05)]주년) |
창업주 | 구인회, 허만정 |
회장 | 구광모 |
사업 분야 | 가전, 화학, 통신, 생활용품, 화장품 등 |
규모 | 대기업 |
유형 | 복합 기업, 기업 집단 |
매출액 | 147조 622억 원(2022년 기준) |
영업이익 | 9조 940억 원(2022년 기준) |
시가총액 | 208조 7,805억 원 (2022년 1월 27일 기준)[1] |
공정자산총액 | 177조 9,072억 원(2023) |
종업원 수 | 154,888명(2023년 기준 / |
소재지 |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 |
웹사이트 |
[clearfix]
1. 개요
옳은미래, LG |
Innovation for a better life, LG[2] |
2. 특징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이며 LG 트윈타워라고 불린다. |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인 저 두 회사의 이름을 따 럭키그룹 또는 럭키금성그룹이라고 불렸다. 락희화학의 사세가 커져서 그룹의 형태로 처음 조합되던 시절의 명칭은 럭키그룹이었다. 그러다 금성사의 위세가 높아지고 (주)럭키와 금성사가 양대 주력 계열사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그룹의 공식 명칭을 럭키금성그룹으로 개명하게 된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자사 구단명을 따서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럭키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자경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LG의 리브랜딩 성공으로 인해 이전에는 생소했던 영어 두문자를 딴 로마자 그룹명이 쉽게 정착될 수 있었으며, 이후 KCC, SK, CJ 등 유사한 기업집단이 늘어났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한국의 재벌가 중 그나마 욕을 덜 먹는 편이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잘했고,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잘 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없이 GS와 계열분리도 무난히 했고, 주주배당도 잘 하는 편. 특히, LG전자의 유상증자 때는 무감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 때문에 화제가 됐을 정도. 한국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밖에도 꾸준히 사회에 공헌을 한 의인들에게 따로 언론 노출 없이 거액의 지원을 제공하거나, 유공자에 대한 지원등 다양한 기부를 꾸준히 하면서 네티즌 사이에 오뚜기와 함께 개념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덜 먹는거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정경유착과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 그렇지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이 없지는 않다.
3. 지배구조
<rowcolor=#fff> 주주명 | 지분율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광모[6] | 15.95%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민연금공단 | 6.83%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 6.03%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본식[7] | 4.48%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영식[8] | 4.20%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본능[9] | 3.05%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연경 | 2.92%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LG연암학원 | 2.13%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본준[10] | 2.04%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LG연암문화재단 | 1.12%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연수[11] | 0.72%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김선혜[12] | 0.69%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미정[13] | 0.69%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이욱진[14] | 0.61%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형모[15] | 0.60%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LG상록재단 | 0.48%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구자영[16] | 0.34%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LG복지재단 | 0.23% |
2023년 9월 기준 |
4. 역사
LG그룹 창업자 구인회(具仁會)는 1907년에 경남 진양군에서 농인 구제서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구인회는 부친으로부터 2000원을 받아 193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아우 철회와 함께 구인회상점이란 포목상을 열었다. 1940년 6월 구인회상점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어물 및 청과물도 취급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구인회는 구인회상회를 폐업하고 그해 11월에 부산 남포동 부근에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해방 이후 미군정 시절인 1947년에 경남 부산시에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17][18] '럭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동동구리무'(화장품)를 제조, 판매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전력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고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했다. 1953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락희산업(현 LX인터내셔널)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한 후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이듬해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했다. 1966년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다.[19]
1968년에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1969년 그룹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왕빌딩으로 옮겼다. 그 해 구인회 회장이 사망하고 1970년에 장남인 상남 구자경이 가업을 이어받아 국제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1년 서울 중구 도동 삼주빌딩(現 GS건설 사옥)으로 이전 후 1979년에 처음으로 그룹 로고를 도입하고 1983년 그룹명칭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고, 1984년 새 CI로 변경했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 및 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LG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 종합연수원 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20]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누었다.
1995년 1월 1일부터 그룹명을 'LG'[21]로 변경하고, 이후 럭키ㆍ금성ㆍ럭키금성ㆍ희성ㆍ반도ㆍLG 등이 혼재되어있던 각 계열사들의 명칭을 LG로 통일했다. 일각에서는 그룹명 교체 직전인 1994년 그룹 산하 야구단인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서 야구에 심취했던 구본무 회장이 그룹 명칭도 야구팀을 따라 LG로 바꾸도록 지시했다는 말[22]이 있으나 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수출 지향형 제조업 기업으로서 해외 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CI 통일이 목적이었으면 삼성처럼 굳이 기업명을 바꾸지 않고 해도 된다. 그 해 2월에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명예회장으로 영전하고, 화담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여 '3세 경영체제'를 이룩해냈다. 1998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2001년과 2002년에 기존 LG화학과 LG전자 법인을 'LGCI'와 'LGEI'란 지주사로 각각 출범시킨 후, 2003년에 두 회사를 합쳐 '(주)LG'란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허씨 일가를 중심으로 'GS홀딩스'가 세워졌고, 2005년에 57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LG그룹을 분리하여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경영하게 된다. 그 밖에도 분할된 기업이 많은 편이다. 이 기업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 범 LG그룹이다. 애초에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시작했고 그룹 성장 과정에서 회장의 형제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대그룹만큼이나 방계그룹의 규모가 크고 계열사가 많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와 많은 형제들로 인한 내부분란을 막기 위하여 인화를 상당히 강조했다.[23] 그래서 그런지 방대한 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에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 분리시 잡음이 거의 없었다. 두 가문이 무려 65년 간 동업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기업비사] 39회 LG 그리고 GS. 구씨와 허씨의 동업과 결별 |
아래는 LG그룹에서 갈라져 나간 방계 기업들의 목록인데 이들 기업이 LG에서 분리될 때 잡음이 하나도 없었다.
- 능성 구씨 가문
- 희성그룹: 1992년 구본무의 동생 구본능[24]과 구본식이 희성금속을 떼내어 독립함.
- LX그룹: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전 LG전자 부회장 구본준이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계열분리 독립.
- LT그룹: 구본무 전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회장의 동생 구본식이 희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독립.
- LF(구 LG패션): 2007년 LG상사의 패션사업부가 분리. 연암 구인회의 차남 구자승 가계
- 아워홈: 2000년 구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가 분리. 연암 구인회의 3남 구자학 가계
- LIG그룹: 1999년 LG화재를 떼내어 분리. 연암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 가계
- LS그룹: LG산전 및 LG전선 등을 중심으로 2003년 계열분리. 구인회의 3, 4, 5째 동생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가계. 현직 경영진은 이들의 자제들이고 '자'자 돌림으로 구자경의 삼촌뻘이나 조카보다 나이가 적다.
- 김해 허씨 가문
4.1. 범LG의 금융 잔혹사
범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한 금융업은 19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 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26]
LG투자증권, LG선물, LG투자신탁은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금융그룹 민영화 추진으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증권과 합병, 우리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 NH투자증권이 되었다. 선물은 우리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투자신탁과 합병, 우리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되었다. 부민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했고, 경은·부산·토마토2저축은행과 함께 가교저축은행인 예솔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중소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되었다.
IMF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LG의 차세대 먹거리는 금융으로 잡힌 적이 있었고, 실제로 매물로 나왔었던 대한생명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보험사 2위를 다투던 대한생명을 인수해서 LG의 금융계열을 삼성의 금융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화시키려 했다. 이러면 정말 삼성의 기업 포트폴리오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그룹 내 의견에 결국 구본무 회장은 인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한생명은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생명으로 개칭한다. 어차피 대한생명을 인수했어도 머지않은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인수해봤자 도로 정리했을 것이다. 향후 금산분리 이슈건까지 있으니 LG그룹 차원에서는 지주회사 체제 개편처럼 미리 금융사를 선제 정리해서 잡음없이 금융 정리를 끝냈다는 성과는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재를 주축으로 분가하여 범 LG 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LIG생명(옛 한성생명-럭키생명)은 시너지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어 우리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되었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iM라이프가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KB손해보험이 되었다.
LG증권 매각이후 범 LG가 중 LS그룹에서는 친척이자 금융전문인 LIG그룹과 함께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LS는 종합증권을, LIG는 단종증권을 희망하였기에 의견 차이로 결별했다. LIG그룹에서 설립했던 LIG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을 매각할 때 같이 팔렸다가, 인수자인 KB금융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27]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여의도 본점영업부만 남겨 덩치를 줄인 후 '케이프 인베스트'라는 조선기자재업체에 매각했고, 사명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LS그룹의 오너들이 금산분리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하여 인수했던 이트레이드증권은 재매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명을 이베스트증권 - 이베스트투자증권으로 바꾸고 계속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었다가, LS네트웍스로 대주주를 변경하고 금융위의 주주 변경 승인이 내려짐에 따라 2024년 3월 29일을 기해 LS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역시 금산분리 때문에 LS그룹의 오너 개인들이 투자자문사를 인수하여 만든 LS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DGB자산운용-하이자산운용-iM에셋자산운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씨家에서 분가한 GS그룹에서도 GS자산운용을 세웠는데, GS와 그 방계인 코스모그룹까지 휘청이는 상태라 BNK금융지주에 매각하여 BNK자산운용으로 변했다. 범 LG가 금융업체들 중 대주주가 한 번도 안 바뀐 기업은 창업투자사 LB인베스트먼트로, 구인회의 4남 구자두가 소유중이다.
하지만 오히려 금융계열사가 없기에 금산분리로 골치 썩을 걱정없이 무난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 한화를 비롯한 금융사를 가진 재벌들은 금산분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실정이다. 금산분리를 다소 완화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동양그룹 사태를 비롯한 재벌들의 병크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금산분리를 강화시키려 하는 입장. 롯데그룹이 롯데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금산분리 문제 때문이다.
LG의 금융잔혹사가 역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전화위복까지 아니더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골치아픈 씨앗을 제거했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의 경우, 금산분리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오너 일가가 인수하지 못하면 삼성생명 지배권을 상실하는데 그 인수 자체를 돈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로 분리하는 것 또한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화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중이지만 승계 이슈와 맞물러 해법을 내놓기 요원한 상황이다.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전에 있던 금융사의 현재 상태
- 금성투자금융: 현 하나은행(구 하나은행)과 합병)
- LG카드: 현 신한카드
- LG투자증권: 현 NH투자증권(우리증권과 합병된 '우리투자증권' 시절 이후)
- LG선물: 현 NH선물(NH농협선물과 합병된 '우리선물' 시절 이후)
- LG투자신탁: 현 키움투자자산운용(우리투자신탁과 합병된 '우리자산운용' 시절 이후)
- 부민상호저축은행: 현 IBK저축은행(영남상호저축은행, 영남저축은행, 두 시절 이후)
- LG화재: 현 KB손해보험(LIG손해보험 시절 이후)
- 럭키생명: 현 iM라이프(LIG생명, 우리아비바생명 두 시절 이후)
- ???(추심업?) : 미래신용정보
그리고 LG의 방계 분리 이후에 생긴 금융사의 현재 상태
- LIG투자증권: 현 케이프투자증권
- LS자산운용: 현 iM에셋자산운용
- GS자산운용: 현 BNK자산운용
LG그룹과 방계그룹 금융사를 한국의 어지간한 금융지주회사들은 한번 이상 인수했다.
현재는 범 LG계인 GS그룹이 GS리테일을 통해 케이뱅크은행에 참여하고 있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의 아들 구본욱이 LIG투자자문을 떼내어 LK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LF가 코람코자산신탁을 계열사로 두고 있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LS가 이베스트투자증권 지분을 인수해서 LS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외에도 이러한 여파인지는 몰라도 관련 사업인 LG CNS ATM 부문도 최근 ATEC에 매각되었다.
4.2. LG반도체 잔혹사
4.2.1. 국민의 정부의 빅딜 정책
반도체 사업에 철천지 한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 신규 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했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당시 정부는 빅딜 평가를 위해 컨설턴트 업체인 Arthur D. Little(ADL)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해당 업체는 현대전자에게 후한 점수를 줬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하여 LG반도체를 현대한테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수 년 뒤에 나온 후속 보도들을 보면 말이 많은데, LG는 ADL 업체의 선정 과정을 밝혔다. LG는 “당시 업계에서는 반도체 합병 무용론이 제기됐으나, 정부의 강경 방침으로 1998년 11월 11일 반도체 통합을 위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친정부 성향이 강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추천한 미국 업체 ADL이 선정됐다”면서 “그해 12월 24일 ADL 평가보고서가 공개되자 내용이 편파적이라는 시비를 부르기도 했다”고 기술했다.
LG는 당시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총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현대가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당시 빅딜을 주도한 전경련에 발길을 끊는다. 전경련회관이 그룹 사옥인 LG트윈타워에서 고작 5분 거리인데 1999년부터 전경련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에 갔던 것도 전경련회관이 새로 지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 축하행사 참석차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자의로 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2016년도부터는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삼성, 현대, SK, 롯데를 비롯한 대한민국 5대 그룹 중에서 처음으로 전경련에 공식 탈퇴 의사를 통보하며 전경련과의 연을 아예 끊어버렸다.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NEC, 히다치 같은 일본 기업들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LG 반도체 평가를 보면 빅딜 성사 전까지 LG반도체는 램버스 DRAM에서 앞서나간 기업 중 하나이다. 또한, 삼성 램버스 개발삼성전자, 현대전자, 인텔, 마이크론, 인피니언(구 지멘스), NEC-히타치 등 6개사 컨소시엄의 차세대 초고속 D램으로 불리는 램버스D램 후속 제품 개발 합의를 보면 그 당시 램버스 DRAM은 매우 유망한 평가를 받았던 차세대 DRAM이었다. 그러나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 펜티엄 4, 참조해보면 D램의 큰 고객사였던 인텔이 공식적으로 RDRAM을 포기하고 DDR D램으로 돌아서면서 DRAM 시장을 주도하는 건 DDR D램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른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램버스' 사태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인텔을 따라서 DDR D램으로 옮겨갔고,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반도체 기업 NEC, 히타치는 끝까지 램버스 D램을 고수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LG반도체는 당시 램버스 사태 일어나기 4년 전에 빅딜로 현대그룹에 팔렸었지만 만약 LG반도체가 정부의 빅딜 대상이 아닌 상태를 가정해보자. LG반도체가 현대에 팔리지 않고 RDRAM을 계속 밀었다면 일본 반도체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고, 반대로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처럼 빨리 RDRAM 접고 DDR DRAM으로 옮겨갔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를 뒤이을 반도체 대기업이 됐을 것이다.
DDR D램으로 옮겨간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고,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10대 전자기업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순이익을 내게 된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램버스 D램에서 DDR D램으로 옮겨 결국 세계 메모리 3강에 들게 된다. 현대전자는 DDR D램을 선택했으나 적자가 만만치 않은 상태였는데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LG반도체의 부채까지 떠안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애초에 현대 그룹은 반도체가 주력 사업도 아니면서 정부의 빅딜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LG반도체 흡수를 강행한 것이다. 그에 따라 LG가 자금 수혈해주고 있던 LG반도체의 부채가 현대전자한테 넘어갔으니 현대전자는 사실상 2개 기업의 부채를 혼자 짊어지게 된 꼴이 됐다. 이후 현대전자는 사라지고 현대전자가 갖고 있던 D램 기술들은 SK하이닉스의 밑바탕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미국계 경영자문사인 '아서 디 리틀(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 중 1명이 넥센 히어로즈의 그 이장석이었다. 관련 기사 ADL 측에서 현대전자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당시 하이닉스의 계열사였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해체되었고, 이 사단의 첫 시작에 관여한 이장석이 현대의 선수단을 사들여서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한 것. 그리고 이후 LG 트윈스가 히어로즈에게 몇 차례 선수 트레이드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너무 깊은 악연이다.
4.2.2. 현대그룹의 LG반도체 인수 과정
현대 측에서는 LG그룹이 갖고 있던 LG반도체 지분을 50 ~ 60%만 인수하고 자신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허나 LG는 정부 빅딜 정책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LG반도체를 내주는 상태인데다가 현대가 가지려는 지분 비율 또한 LG를 제외한 전경련이 멋대로 정한 비율이었기에 LG그룹은 경영권을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결국 LG는 포기했다. 아예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해서 현대는 LG반도체의 지분 50%가 아닌 100% 인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말이 많았는데 현대 측에서 LG반도체 인력의 고용 보장을 하지 않겠다고 나온 것이다. 결국 LG반도체 직원들은 파업했으며 어차피 고용 보장이 되지 않으므로 핵심 인력 20명은 해외 경쟁 업체로 입사했다. 이와중에도 정부는 자신들의 빅딜을 강행하기 위해 현대 측의 편을 들어주면서 핵심 인력 이탈을 막을 방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정부는 대북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현대그룹에게 LG의 반도체 사업을 선물로 주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매우 강하게 돌았다.김대중 정권에서 현대, LG 대상으로 빅딜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을 참고.외적으로는 현대한테 이득이 되는 모습처럼 보였으나 내적으로 보면 현대전자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현대전자의 부채는 LG반도체의 부채랑 맞먹었던 시기이다. 그 상태에서 LG반도체 인수를 위해 갖고 있던 현금을 써버리고 LG반도체의 부채까지 추가로 감당해야 했으니 사태가 기존의 3배[28]는 악화된 것이었고 불과 1년만에 유동성위기에 봉착했다. 무슨 생각으로 LG반도체를 인수했는지 모를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2001년 당시 현대전자 총 부채 약 8조원 이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에 이은 형제들의 분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겹이 터지는 바람에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반도체 사업부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존속 중이었는데 위 같은 연유로 하이닉스 인수전에 LG그룹은 조건없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2008년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이 우리는 그동안 반도체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라는 그 누구도 이해를 해보려 해도 절대 이해하지 못 할 발언을 했으며, 구본무 회장의 뜻이냐는 질문에는 직접 물어보라고 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인수전에서 빠져나와버렸고,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변경된다.
그리고 2017년 8월 SK그룹에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매각하면서 이제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LG실트론은 LG측에서 반도체가 더 이상 주력 사업이 아니라서 정리한 것으로 보이고, 실리콘웍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쪽은 흔히 생각하는 반도체 제조 회사가 아닌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이며 2023년 기준, LX그룹 계열로 들어가 있다.
4.2.3. LG의 반도체 재인수 기회
LG에게는 이미 충분히 재인수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당시 하이닉스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여서 LG보다 체급이 매우 낮은 동부그룹에게도 인수 제의가 갈 정도였고 효성그룹 같은 소규모 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설이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LG에게는 당연히 수많은 인수 제의가 오갔다. 2011년 SK가 인수하기 전에도 LG는 첫번째 인수 후보군이었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의 조건으로 재인수 제의가 갔지만 LG는 인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면 구본무를 비롯한 구씨 집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으로 LG 구 회장 측에서는 원래 자기 것이었던 하이닉스를 거액을 들여 다시 인수해야 하는 것에 반감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치킨 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지금에 와서 연간 투자비가 수 조 원에 달할 수 있는 반도체 사업을 재개하기엔 부담을 크게 느껴 인수를 하지 않았다. 구본무는 반도체 사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SK가 인수를 했고 운좋게 반도체 치킨 게임이 종식되면서 한국 M&A 역대 1위를 다투는 성공적인 기업 인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LG에서 재인수했다면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분야가 반도체 분야인 걸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당시 SK와 LG는 3, 4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로 두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하이닉스 인수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LG가 근소하게 앞서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이닉스 인수 기점으로 잭팟을 터트린 SK는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모두 LG와 비교할 수 없는 3위로 올라섰다.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산 규모가 고작 몇 조밖에 차이 안 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득과 성장을 일구었다. 반면 LG는 도저히 SK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나는 4위로 주저앉았고 5위인 롯데그룹과 경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물론 LG가 GS,LS 등 그룹을 나눠서 규모가 작아진 점도 있다. SK는 삼성,현대,LG와 달리 지금까지 한번도 그룹이 분리 된 적이 없었다.)
4.2.4. LG반도체가 모태인 기업 현황
2023년 기준, LG반도체가 모태인 기업은 매그나칩반도체와 SK하이닉스[29]이다. 매그나칩반도체 인수전에서 LG그룹 명예회장인 구자경의 아들이자, LG반도체의 사장이었던, LX그룹의 구본준 회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와중에 SK하이닉스가 끼어들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에 집중하기 위해 매그나칩반도체가 갖고 있던 키파운드리를 우선 인수했다.4.3. 영속성을 구축한 LG
현시대에서 LG는 삼성, SK, 현대를 비롯한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 형태와 기업 문화가 보수적에 경직성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가 서초동(검찰청)에 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LG는 한국 5대 재벌(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중 총수 일가가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물론 방계로 따지면 존재한다. 기업 말아먹고 구속된 LIG 일가라든지, 구본무와 6촌관계인 판토스 오너인 구본호 등.[30] 그리고 판토스 인수로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바로 오너 일가 지분을 법에 맞게 정리해버렸다. 2021년 외주업체의 청소노동자 해고 시위에서 청소업체의 대주주가 구광모 회장의 고모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두 고모가 바로 지분을 처분하고, 분쟁 해결을 약속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 그만큼 LG는 서초동과 연관되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여긴다. 이는 장기적으로 엄청난 장점으로 돌아오고 있다.특히 상속 문제에서 현시대의 LG급 재벌들은 대를 이은 상속이 더이상 불가능하다. 삼성의 이재용은 뇌물과 상속 문제로 감옥에 갔다왔고 다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며 결국 대외적으로 4세 승계 포기선언까지 해버렸다.[31] 현대차의 정의선도 지금 순환출자 때문에 곤란한 실정이며, 후대 승계를 감안하면 암담한 상황이다.[32]
SK는 LG와 같은 지주회사 체제지만, 지분율이 LG보다 탄탄하지 못해서 쉽지 않다.[33] 반면 구광모의 LG 승계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상속세를 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구씨 친족들이 (주)LG의 지분율을 안정적으로 40~50%대를 계속 유지하며 대를 이은 영속을 구축했다. GS와 더불어 5세, 6세를 가더라도 구씨 오너가 바뀌지 않을 정도.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괜히 재벌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LG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LG의 상속과 지배구조는 꼬투리 잡을 이유가 없는 것. #
다른 재벌보다 당장 손익이 뒤쳐지더라도 LG만의 장단점이 있는 셈. 그룹 분가 역시 GS, LS, LIG, LX를 비롯한 방계들이 독립할 때 어떠한 잡음 하나 없었다. 2020년 확정된 구본준의 LX그룹 계열분리 역시 LG의 규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의 회사들을 가져가며, 반대로 구본준 또한 손해보지 않는 회사들을 얻었다. 구본준의 LG 지분처리는 구본준이 가져가는 LG상사 등의 LG 보유지분과 맞교환해서 LG 본가의 지배력을 유지시킨 깔끔한 계열분리다. 다른 재벌들이 상속, 왕자의 난, 계열분리로 얼마나 막장을 겪었는지 그리고 향후 치러야 할 재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아주 모범적이다.
다만 SK, 롯데 등이 아직 분가와 독립을 하지 않아서 LG와 경쟁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하면 꼭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34] 단적으로 계열분리한 범 LG가를 합치면 자산 240조 이상의 재계 2위 규모다. 경쟁 기업들이 합병으로 거대규모의 하나의 기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에서 2020년에도 발생된 LG 방계들의 독립은 LG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방계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면 LG의 사이즈는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35] 이제 독립할 방계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앞으로 LG가 어떤 식으로 다시 치고 올라올지 매우 중요한 시기다.
5. 오너 일가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문서 참고하십시오.창업주는 연암 구인회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이다.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출처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부터 구본무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의 경우 외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장자/장자녀 계승제를 선택하는 가장 큰 메리트인 안정성을 잘 살리고 있는 셈.
현재 회장인 구광모 대표는 내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회장은 취임 후 '회장'이라는 칭호 대신 '대표'로 본인을 불러달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LG를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내외부 평가다. 인사에서도 2021년에 신임 상무 132명을 대거 발탁하는 등 취임 후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하며 미래 경영 후보군을 두껍게 가져가고 있다. 외부 인재 영입도 활발해 3M 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수장으로 데려오고, 인공지능(AI) 석학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LG AI 연구원의 핵심인재로 영입했다. 구회장은 개방적 역동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LG DNA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과거 LG는 예측 가능한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 폭을 넓혀가고 있는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6. 경영진
6.1. 회장급
-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6.2. 부회장급
- 권봉석 (LG 대표이사 부회장)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6.3. 사장 및 부사장급
-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 사장)
-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 사장)
- 차동석 (LG화학 CFO 겸 CRO 사장)
-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 부사장)
- 김동춘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부사장)
-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 류재철 (LG전자 HS사업본부장 사장)
- 박형세 (LG전자 MS사업본부장 사장)
- 정대화 (LG전자 생산기술원장 사장)
- 김영락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 사장)
- 윤태봉 (LG전자 해외영업본부장 부사장)
- 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 부사장)
-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 부사장)
-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
- 정철동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 김명규 (LG디스플레이 CCO 사장)
-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
-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 문혁수 (LG이노텍 대표이사 부사장)
- 현신균 (LG CNS 대표이사 사장)
- 이명관 (LG인화원장 사장)
- 김영민 (LG경영연구원장 사장)
- 김인석 (LG스포츠 대표이사 사장)
- 이동언 (D&O 대표이사 부사장)
- 정수헌 (LG사이언스파크 대표 부사장)
- 박애리 (지투알 대표이사 부사장)
- 김무용 (팜한농 대표이사 전무)
6.4. 역대 임원
-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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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 부회장
- 구본무 (1989~1993)
- 대표이사 부회장
- 성재갑 (2001~2003)
- 강유식 (2009~2013)
- 권영수 (2018~2021)
- 권봉석 (2022~)
- 회장실 사장: 구 기획조정실 사장.
- 허준구 (1968~1970)
- 구정회 (1970~1971)
- 김주홍 (1971~1978)
- 이헌조[36] (1978~1984)
- 변규칠 (1984~1989/1991~1995)
- 김지주 (1989~1991)
- 이문호 (1995~1998)
- 대표이사 사장
- 강유식 (2003~2009)
- 조준호 (2009~2014)
- 하현회 (2015~2018)
-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 이문호 (1998)
- 강유식 (1998~2003)
- 전자 CU장
- 이헌조 (1991~1995)
- 구자홍 (1995~2003)
- 김쌍수 (2003)
- 화학 CU장
- 최근선 (1991~1994)
- 성재갑 (1994~2001)
- 정유 CU장
- 구두회 (1991~1995)
- 허동수 (1995~1998)
- 산전 CU장
- 이희종 (1991~1997)
- 이종수 (1997~1998)
- 유통 CU장
- 강말길 (1995~1998)
- 증권 CU장
- 진영일 (1995~1998)
- 보험 CU장
- 민수기 (1995~1997)
7. 기업정신
7.1. 창업이념
- 인화단결, 개척정신, 연구개발
7.2. 기업이념
7.3. 행동규범
-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실천으로 응답하자.
- 도전없이 성공없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자.
- 안되는 이유보다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자.
- 칭찬을 자주 하자. 칭찬이 신바람 나게 하는 것이다.
- 협조는 내가 먼저, 성과는 그에게 먼저 주자.
7.4. 비전
도약2005 (1996~2005)- 가치관
최고의 추구, 성과주의, 정도 경영
- 기본철학
세계적 관점에서의 경쟁
고객, 사원, 주주의 최고 가치를 추구
정도 경영을 바탕으로 일등 추구
기업시민으로서 사회 발전에 공헌
고객, 사원, 주주의 최고 가치를 추구
정도 경영을 바탕으로 일등 추구
기업시민으로서 사회 발전에 공헌
- 성장 목표
질/양에서 1등 실현
고객감동 Brand Image 구축
최고의 보람있는 직장 달성
고객감동 Brand Image 구축
최고의 보람있는 직장 달성
- 성장 전략
미래형 사업 구조로의 전환, 세계화, 집중과 철수
- 성장 역량
성장에 필요한 Cash 확보
미래형 차별화 기술 확보
성장 필요 Skill 확보
한계 돌파 능력 확보
미래형 차별화 기술 확보
성장 필요 Skill 확보
한계 돌파 능력 확보
- 성과 실현 문화
도전, 단순성, Speed, Boundaryless
- 그룹 경영 체제
CU장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유지하며 높은 성취 욕구와 주도적인 추진 능력, 세계 최고의 전문 Skill을 갖춘 도전적인 조직
- 혁신 리더의 확보
최고 인재의 발굴과 확보에 주력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체계적인 육성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체계적인 육성
LG Way (2005~ )
- 비전
고객이 신뢰하는 LG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
인재들이 선망하는 LG
경쟁사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LG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
인재들이 선망하는 LG
경쟁사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LG
- 행동방식
정직, 공정한 대우, 실력을 통한 정당한 경쟁
8. CI
8.1. 변천사
<rowcolor=#fff> 1979년 | 1984년 | 1995~2014년 | 2015년~현재 |
8.2. 사명 변경 후 CI 통합
럭키금성이 LG로 바뀝니다(1995년) 광고 |
2015년 1월부터 옆에 붙은 글꼴이 바뀌었다. 기존의 LG 로고와 크게 다른 점은 글꼴과 심볼의 색이 더 진해졌다는것. 2014년 하반기에 LG전자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다가 12월 LG유플러스에 적용된 후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글꼴은 LG Smart 글꼴로, 해당하는 한글 글꼴은 산돌에서 만들었다.
LG가 유명한 것으로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로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로고는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바꾼 1995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GE,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유명기업들의 CI를 제작했던 미국의 Landor社에서 CI 개발 작업을 진행했으며, Landor社는 이후 한국의 KB, GS그룹, 대한항공 등의 CI 개발도 담당했다. 최종 채택된 시안의 제목은 "The Face of the Future." 즉 미래의 얼굴이다. 신라 기와(얼굴무늬 수막새)의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했는데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의미는 기업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5가지 개념과 정서를 형상화해 인간이 경영의 중심에 있음을 상징한다는 것. 눈을 하나만 넣은 것은 한가지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본무 회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39] 그리고 이 로고를 이어폰에 넣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CI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L,G 글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얼굴 로고를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에 나오는 LG 휴대폰은 보통 "LG Electronics"[40] 레터링만 넣거나 이마저도 없이 제품명과 통신사 로고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41].
사람 얼굴을 형상화해 왠지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살짝 변형된 LG 짝퉁 로고가 판을 치고 있기도 하다.
근래에는 얼굴만 남겨놓고 다양한 뒷배경을 커스텀하는 경우도 있다. #
9. 슬로건
인간 기술 미래 (1984~1989)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1990~1994)
럭키금성이 이제 LG로 바뀝니다. (1995)
이젠 LG입니다 (1995)
사랑해요 LG (1995~1998/2003~2009)
正道경영 초우량 LG (1995~1998)
도전 50년, 도약 50년 (1997)
새 생각 새 기술 새로운 미래 - 밀레니엄 드림 LG (1999)
무한커뮤니케이션 - LG (2000)
기본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생각합니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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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가
1978년 6월부터 <럭키가족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그 이전인 1975년 4월에는 금성사 한정으로 <금성사가>가 있었다. 작사는 동일하나, 작곡은 김희조가 맡았다.10.1. 금성사 사가
(1절) 보아라 이 나라의 젊은 역군들 겨레의 얼과 슬기 이어 받았다 역사를 창조하는 보람찬 대열 사랑과 단결 속에 힘이 솟는다 (후렴)새 연구 새 기술은 금성의 자랑 날마다 우리 살림 새 모습 짓자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나 금성 금성 금성이 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 (2절) 시대를 선구하는 산업전사들 조국의 부강번영 우리의 소원 고난과 시련이 앞에 닥쳐도 성실과 신념으로 헤쳐 가리라 (후렴)새 연구 새 기술은 금성의 자랑 날마다 우리 살림 새 모습 짓자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나 금성 금성 금성이 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 |
10.2. 럭키금성 시절 가사
(1절)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동지들이다 무궁화의 낙토건설 우리 손으로 (2절) 시대를 선구하는 산업전사들 새롭고 꾸준한 창의와 연구 거룩한 우리 사명 다하는 곳에 겨레와 인류의 행복이 있다 (후렴)나라의 자랑이다 럭키금성 세계로 뻗어가는 럭키금성 |
10.3. 현재의 가사
우리는 이 나라의 젊은 일꾼들 번영을 향해가는 보람찬 대열 사랑으로 한데뭉친 LG인이다 아름다운 미래건설 우리 손으로 나라의 자랑이다 LG LG 세계로 뻗어가는 LG LG |
10.4. LG 메들리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도입교육에서 배우던 노래로 여러 야구 응원곡이 짬뽕된 음악이다.
11. 대외 활동
11.1. 독립운동 지원? 친일?
1979년 방송작가 한운사가 쓰고 럭키그룹 연암기념사업회가 낸 <연암 구인회 일대기>[42]에 따르면 창업주 구인회가 독립운동가인 안희제에게 1만원[43]을 건네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외 근거 사료 및 타당한 사료가 부족하다.반대로 구인회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 8천원을 대출받고, 일제가 조직한 진주상공회의소의 의원직을 역임함과,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신문광고에 후원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시에 조선의 물자통제를 담당했던 경남상공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내는 등 친일 행적에 대한 관련 근거가 더 부각된 편이다. 구인회가 독립운동을 지원했을 수는 있으나 친일적 행보가 더 명확하다는 점에서 독립운동만 부각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대부분 LG가 독립운동가에게 지원했다는 일화만 알려졌다.
반면 범 LG가인 GS그룹의 독립운동 지원에 대해서는 잡음이 적다. GS그룹 초대 회장 허창수의 아버지 허준구[44]는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백산상회는 당시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던 곳이다. 기사 또한 그의 할아버지 허만정도 일제 몰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했다.
결론적으로, LG의 경우 근거가 상당히 미흡하고 확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는 애매하다. 실제 창업주 부친이 지원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GS의 경우 독립운동지원은 확실한 편이다. 이로 봤을때 GS가 계열 분리전 LG에 있었고 구씨와 허씨가 2005년까지 동업했기 때문에 허씨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이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시절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이중플레이를 했을 수도 있다. 구씨, 허씨가 합심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구씨 측은 일제에 표면상으로 소극적으로 협조(자금 지원 등)하는 척하면서, 허씨 측을 통해 독립운동을 몰래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LG와 GS는 그룹이 분리 되기 전 대외적인 경영은 구씨가문이, 내외적인 활동은 허씨 가문에서 했다.
11.2. 사회 환원 활동
- 2012년부터 에티오피아에 LG희망마을이라는 이름의 마을을 만들어 마늘 재배를 알려준 뒤[45] 주민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알려졌다. 마을 자체를 설계부터 LG에서 했다.
-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측이 재정난을 겪자 LG하우시스에서 윤봉길 의사 기념관 건물 보수를 해주기도 했다.
- 복지시설에 있는 LG전자 제품은 무료로 수리를 해준다. #
- 2015년 8월 12일 LG그룹이 비무장 지대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장병 2명에게 각각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기사[46] 국가에서 저 위로금에도 세금을 매길게 뻔하기에 기부의 형태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것이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한 상업적 목적의 행동이라 할지라도 칭찬해 마땅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 2016년 1월 31일 대구지하철 1호선에서 한 장애인이 선로에 떨어지자 해병대에 복무하다 휴가 나온 해병대원이 구출했는데 LG그룹은 그가 대학을 마치는 대로 신입사원 특별 채용하기로 했다.
- 2016년 10월 11일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수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30억원을 기탁했다.#
- 체조 선수 양학선이 생활고 걱정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5억을 쾌척하기도 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팀 킴을 LG전자 청소기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다음 올림픽 준비를 위해 4년간 후원하기로 했다.[47]
12. 계열사
12.1. 지주회사
<colbgcolor=#a50034><colcolor=#fff> 주식회사 LG LG Corp.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947년 1월 5일 |
본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
대표자 | 구광모, 권봉석 |
업종명 | 지주회사 |
기업 규모 | 대기업 |
상장 유무 | 상장기업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1970년 ~ 현재) |
종목 코드 | 003550 (보통주) |
003555 (우선주) |
본사의 모태는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 설립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럭키크림'으로 생활용품 사업에 진출한 후 1951년에는 플라스틱을 시초로 소재사업에도 손을 뻗었으며, 1958년에 금성사를 세우는 등 그룹 확장의 중추로서 한몫했다. 1966년 락희비니루공업, 1968년 락희유지공업을 각각 합친 후 플라스틱-비니루-유지 3개 사업부로 조직을 개편했으며, 1970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다.
1991년 럭키소재 및 럭키제약을 합병한 후, 각 사업부를 '사업문화단위(CU)'로 묶었다. 1995년에는 'LG화학'으로 사명을 바꾸고 2000년 사업부문별로 개편한 후, 2001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주회사 전환 신고를 하며 'LGCI'로 개편해 화학사업부문을 'LG화학', 생활건강부문을 'LG생활건강'으로 각각 분할했다. 2002년 생명과학사업부문을 'LG생명과학'으로 분할하고 이듬해 LGEI[48]를 합병하여 단일 지주회사가 됐다.
12.2. 전자 부문
- LG전자: 1958년 금성사로 설립되어 이어온 전자기업. LG의 핵심 계열사이며 현 법인은 2002년에 'LGEI' 출범으로 분할된 회사다. 지주회사에서 33.7%를 가지고 있다.
- 하이프라자: 법인명은 하이프라자고 브랜드명은 LG베스트샵이다. 1997년 세워진 대경유통을 모태로 한 회사로, 2002년 LG전자가 인수했다.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삼성디지털프라자와 경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LG대리점이라고 하면 여길 뜻한다.
- 하이텔레서비스: 간단하게 말해서 LG전자 콜센터 기업이다. 2010년 자회사로 분리되었다.
- 하이엠솔루텍: LG전자의 서비스 전문 자회사로 시스템 에어컨과 공조 기기 등을 관리 서비스 하고 있다.
- 하이케어솔루션: LG전자의 가전렌탈 전문 자회사로 정수기, 냉장고, 스타일러 등 케어솔루션 제품들을 관리 서비스 하고 있다.
- 에이스냉동공조: 2011년 인수한 공조 회사.
- 로보스타: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는 회사로, 2018년 LG전자가 인수했다.
- 하누리: LG전자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 LG전자와 마그나 인터내셔널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
- HITACHI LG Data Storage: 약칭으로 HLDS라고 부르며 2000년 HITACHI와 합작으로 설립한 ODD전문 제조사. LG지분 49%, HITACHI지분 51%로 설립되었다.
- LG이노텍: 소재ㆍ부품 기업. 카메라 모듈 및 차량용 전장 부품 사업, LED 조명과 기판 소재 사업을 영위한다.[49] 매출은 광학솔루션사업부 외 47.69%, 기판소재사업부 23.13%, 전장부품사업부 15.93%, LED사업부 13.25% 구분된다.
- 이노위드: LG이노텍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LG디스플레이: 구 LG필립스LCD. 필립스가 지분을 팔고 철수하면서 현재 사명으로 변경. 휴대폰, TV, 모니터 등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를 제조한다. 특히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이며, 디스플레이 전체로 봐도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다. 외형(매출)로 보나 내실(영업이익)으로 보나 LG에서 손꼽히는 알짜 계열사. 애플의 제품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의 주요 공급사도 LGD다. OLED 분야에서는 SMD가 중소형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대형 OLED 시장은 LGD가 꽉 잡고있다. 다만 중소형과 달리 대형 OLED 시장은 개화가 늦어지고 있는 반면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며 LCD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소형 OLED에 대한 대응은 삼성에 비해 크게 늦어지면서 시장의 우려가 있다.
- 나눔누리: LG디스플레이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ZKW: 오스트리아의 자동차용 헤드라이트 전문 업체. 2018년 LG전자가 인수했다.
12.3. 화학 부문
- LG화학: 석유화학, 생명과학기업으로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뿌리로 하는 LG의 모태로, 현 법인은 2001년에 분사된 법인이다. 바이오 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2017년 1월 1일자로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했다.
- 씨텍: 구 현대석유화학으로 롯데그룹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대산석유화학단지 시설 지원 회사다.
- 팜한농: DB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동부팜한농을 2016년 인수했다.
-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에서 물적분할된 배터리 사업 법인이다.
- LG BCM: 2021년 설립한 구미형 일자리로 양극재 생산 회사다. BCM은 Battery Core Material의 줄임말이다.
- 행복누리: LG화학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LG생활건강
- 코카콜라음료: 본디 한국에서 코카콜라 사업은 코카콜라 본사에서 원액을 공급받아 우성식품(부산·경남), 호남식품(호남), 범양식품(대구·경북·충청), 두산음료[50](서울·경기·강원) 등 4개 음료회사에서 완제품을 제조, 판매하던 형태였다. 그런데 1996년 코카콜라 본사에서 직영체제로 전환하면서 4개 사의 라이선스를 회수했는데, 범양식품은 이에 반발하여 독자 출시한 것이 '815 콜라'고, 나머지 3개사는 1997년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으로 통합되었다. 이 회사를 2007년에 LG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이름을 바꾼 것이다.
- 한국음료: 2010년 인수한 비탄산음료 제조회사.
- 고운누리: 코카콜라음료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해태htb: 구 해태음료. 2011년 인수된 후 2013년 다이아몬드샘물을 합병했다.
- 더페이스샵: 화장품 업체. 1984년 미주산업으로 시작해 2003년 더페이스샵으로 변경한 뒤, 2009년 LG그룹에 인수되었다.
- 태극제약: 구 태극약품. 2017년 인수되었다.
- 밝은누리: LG생활건강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루치펠로코리아: 2019년 인수한 치약 회사
- 울릉샘물: 울릉도 먹는 샘물 개발을 위해 2019년 설립한 생수 회사.
- 로아코리아: 2021년 인수한 화장품 회사
- 미젠스토리: 2016년 마크로젠과 합작하여 설립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 회사. 2019년 전량 인수하였다.
- LG파루크: 미국 파루크와 합작하여 세운 헤어케어 회사.
- 에프엠지: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자회사
12.4. 통신·서비스 부문
- LG U+: 1996년 7월 LG텔레콤으로 설립된 회사이며 2010년 1월, LG데이콤과 LG파워콤을 합병한 뒤 동년 7월에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하였다.
- 미디어로그: LG유플러스가 90% 이상 지분을 가진 알뜰폰 사업자이며, 영화 배급사다.
- 씨에스리더: LG유플러스의 콜센터 자회사이다.
- 아인텔레서비스: 2001년 LG텔레콤 영호남 고객센터가 분사된 업체로, LG유플러스의 콜센터 전담 업체이다.
- LG헬로비전: 2019년 2월, LG U+가 인수를 발표했으며, 정부의 허가 관문을 통과하고 2019년 12월 24일, 공식적으로 LG 계열사에 편입되었다. 고로 LG U+ 자회사.
- CV파트너스: LG헬로비전의 콜센터 담당회사.
- 위드유: LG유플러스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유플러스홈서비스: 홈·미디어 고객서비스를 전담하는 자회사
- 씨에스원파트너 : LG유플러스의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회사
- 데이콤크로싱: 해저 육양케이블 사업을 하는 회사. 텔스트라와 합작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 LG CNS: 1987년 설립된 종합 IT서비스 기업. 2018년 4월, 자회사 LG엔시스를 흡수합병했다. B2B기업이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만 2018년 기준 대한민국 SW기업 중 삼성SDS와 네이버에 이은 매출액 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급부상하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SW기업인 LG CNS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Y LG ID를 운영하고 있다.
- 비즈테크파트너스: 기업 솔루션 전문 기업이다.
- 행복마루: LG CNS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라이트브레인: 2021년 인수한 UX 업체
- D&O: 건설[51] 계열사 내 사업들이 GS건설과 강력하게 연결되었으나, 레저, AM, F&B사업을 하는 토털 서비스 회사. 종합 리조트 및 스키장 곤지암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다. 2015년 8월 LG솔라에너지를 합병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와 공유 오피스인 플래그원을 운영한다. LG경영개발원, LG스포츠와 더불어 지주회사인 (주)LG 지분 100%의 비상장기업이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 해소를 위해 2021년 10월 맥쿼리에 건설 부문을 매각하였고 사명을 S&I코퍼레이션에서 D&O로 바꿨다.
- D&O CM: 건설사업관리업 자회사
- 미래엠: 호텔 운영 법인
- 드림누리: D&O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 LG스포츠: 서울 LG 트윈스와 창원 LG 세이커스 등의 운영을 맡고 있다.
- HSAD: 1984년 LG애드로 설립된 광고회사로 그룹 내 광고마케팅 전문 지주회사다. 2002년 WPP에 매각했다가 2008년 재인수됨.
- LG경영연구원
- LG경영연구원, LG AI연구원, LG인화원
12.5. 공익재단
12.6. 계열 분리된 범LG가 기업
범LG가 | ||
- 희성금속, 국제전선, 한국엥겔하드, 상농기업 (현 희성그룹): 1996년 금속 등 소재 부문 6개 계열사를 분리하여 출범했다.
- 삼보이엔씨, 희성금속, 희성정밀, 희성소재 (현 LT그룹): 희성그룹에서 2019년 분리하여 출범했다.
- LG화재, 럭키생명, LG이노텍 시스템사업부 (현 LIG그룹): 1999년 보험 부문 계열사를 분리하여 출범했다. 이후 2004년 LG 이노텍 방산사업을 추가로 인수했다. 모체였던 보험사는 다시 매각되어 KB손해보험과 iM라이프로 바뀌었다.
- LG창업투자 (현 LB그룹): 2000년 분리하여 출범했다.
- 코스모신소재, 코스모화학, 코스모앤컴퍼니 (현 코스모그룹): GS그룹에서 2015년 분리하여 출범했다.
12.7. 매각/독립된 회사
- 금성의료기: 독일 지멘스와의 합작사로, 1993년 계열분리 후 1995년부터 '지멘스메디칼시스템'이 됐다가 2001년 지멘스(주)에 합병됨.
- 데이콤시스템테크놀로지: 2002년 분리 후 'SQ테크놀로지'로 변경해 이듬해에 한국IBM 자회사로 들어갔으나, 2015년 신규법인 에스큐앤티에 사업부가 넘어간 후 2016년 폐업됨.
- 럭키디씨실리콘 (현 디디피스페셜티프로덕츠코리아): 럭키와 미국 다우코닝의 합작사로, 1992년 지분매각.
- 럭키자동차서비스손해사정: 1994년 최승언 대표에게 매각됐다가 1999년 LG화재에 매각된 후 '럭키자동차손해사정', 'LIG손해사정'을 거쳐 2010년 LIG타스손해사정서비스(현 KB손해사정)에 합병됨.
- 미래신용정보: 1999년 계열분리. 2020년대 들어 YTN 등에 경쟁사인 고려신용정보를 저격한 비교광고를 내보내고있는 그 회사 맞다.
- 부민상호저축은행: 2006년 SLS중공업에 매각했다가 2007년 한국종합금융그룹에 편입돼 '영남상호저축은행', 2010년 영남저축은행으로 각각 변경됐으나, 2013년 퇴출 후 자산이 IBK저축은행으로 인수됨.
- 삼우특수금속 (현 지앤피): 1993년 한국전선에 매각되어 1994년 신한전선, 2001년 지씨아이를 각각 거쳐 2004년 LG전선그룹으로 매각됨.
- 코코넛: 1999년 데이콤이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펜타시큐리티시스템 등과 함께 설립한 보안관제/컨설팅 업체. 2000년 데이콤 등과 세트로 인수됐다가 얼마 뒤 계열분리 후 안철수연구소 자회사로서 2005년 '안랩코코넛'으로 변경했다가, 2007년 안철수연구소와 합병됨.
- CIC코리아 (현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텔레마케팅 전문 업체. 2006년 계열분리.
- LG선물 (현 NH선물): 2004년 계열분리.
- LG산전 승강기사업부 (현 오티스 엘리베이터): 일본 히타치의 기술제휴를 받아서 국내에 대량의 승강기를 생산해서 납품했으나 1999년 LG-오티스로 분사 후 미국 오티스 엘리베이터에 인수되었다. 한편 미쓰비시전기의 기술을 전수받고있던 신영전기를 인수하여 금성기전으로 두었다가 완전히 흡수한 전적이 있는데 이쪽 부문은 미쓰비시그룹이 직접 나서서 현재는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로 존속중이다.
- LG투자신탁운용 (현 키움투자자산운용): 2004년 우리금융그룹에 매각되어 '우리자산운용', '우리크레디트스위스자산운용' 등이 되었다가 2014년 키움증권에 매각됨.
- LG쉬플리: 1999년 미국 롬&하스 사에 지분을 팔고 '쉬플리코리아'로 변경됐으나 2001년 폐업됨. 현재 있는 쉬플리코리아와는 업종이 다르다.
- LG실트론 (현 SK실트론): 반도체 소자 기판으로 사용되는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한다. 1983년에 설립된 동부그룹과 미국 몬산토의 합작기업이 전신이다. 1990년 LG에 편입되었다. 2017년 다시 반도체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노리는 SK그룹에 매각해 결국 반도체 사업에서 대부분 철수했다.
- LG얼라이드시그널: 1998년 미국 얼라이드시그널 사에 지분매각된 후 1999년 엘라이드시그널코리아(현 가레트모션코리아)에 합병됨.
- LG오웬스코닝 (현 한국오웬스코닝): 구 럭키화이바그라스-럭키오웬스코닝. 1999년 미국 오웬스코닝에 경영권을 매각함.
- 루셈: 일본 OKI반도체와 합작하여 2004년 7월에 설립한 회 평사로판디스플레이의 핵심부품인 Drive IC와 BLU용 LED를 생산한다. 2018년 1월 LB세미콘에 매각했다.
- LG정밀 음향기기사업부문 (현 에스텍): 구 금성포스타-LG포스타. 1999년 사원주주업체로 분리됨.
- LG-히타치 워터 솔루션 (현 테크로스 워터 앤 에너지): 2012년 합작 출범한 기업으로 LG는 51%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업용 수(水)처리, 하수 재이용, 해수담수화, 대기오염방지, 폐자원 에너지화 등의 환경사업을 하다가 2019년 테크로스에 하이엔텍과 함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 하이엔텍 (현 테크로스 환경서비스): 2011년 대우건설로부터 인수한 환경 엔지니어링 업체로 주로 공공, 민간 수처리 시설 O&M 사업을 하고 있다. 2019년에 테크로스에 매각함.
- LG CNS ATM 사업부: 2000년대 이후 국내 현금 자동 입출금기 시장에서 효성과 더불어 양대산맥 이었으나 2019년 이후 ATEC에 매각됨. 2000년대 당시 효성 ATM 영업기밀 침해 의혹이 있었다.
12.8. 해산된 회사
- 곤지암레저: 2006년 서브원에 합병됨.
- 국제신문: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부산일보에 합병된 후 1983년 청산됐다. 현 법인은 복간을 1년 앞둔 1988년에 설립됐다.
- 금성계전: 1995년 LG산전에 합병됨.
- 금성광통신: 1995년 LG전선에 합병됨.
- 금성기전: 1995년 LG산전에 합병됨.
- 금성로토렉스: 미국 페더스 사와의 합작사로, 1990년경 계열제외.
- 금성마그네테크: 비디오테이프 제조업체. 1987년 금성사에 합병됨.
- 금성부품: 1992년 금성사에 합병됨.
- 금성자판기: 1989년 금성산전에 합병됨.
- 금성전기: 1991년 금성통신에 합병됨.
- 금성통신: 1995년 LG전자에 합병됨.
- 금성판매: 1972년 폐업 후 사업부문이 금성사로 넘어감.
- 금성특수기기: 1993년 금성산전에 합병됨.
- 금성팩토링: 1988년 LG신용카드에 합병됨.
- 다이아몬드샘물: 2013년 해태음료에 합병됨.
- 대한유조선: 1994년 호남탱카에 합병됨.
- 데이콤새틀라이트멀티미디어시스템: 2001년 청산 후 폐업됨.
- 데이콤아이엔: 2002년 청산 후 2003년 폐업됨.
- 동양전기화학공업사: 1953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락희비니루공업: 1966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락희유지공업: 1968년 락희화학에 합병됨.
- 럭키섬유: 1970년 반도상사에 합병됨.
- 럭키소재: 구 한국콘티넨탈카본-럭키콘티넨탈카본. 1991년 럭키에 합병됨.
- 럭키체인: 1980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럭키해외건설: 1979년 럭키개발에 합병됨.
- 럭키훽스트: 1993년 럭키석유화학에 합병됨.
- 반도스포츠: 구 태양공업-반도스포츠공업. 1992년 LG상사에 합병됨. 이에 일부 직원들이 독립해 동명의 법인을 또 세웠으나 2008년에 문을 닫았다. 반면 낚시용품 사업은 1992년 '반도레포츠(현 바낙스)'로 독립했다.
- (구)서브원: 2005년 LG MRO에 합병됨.
- 삼경석유: 1994년 세방석유에 합병됨.
- 성요사: 반도체 제조업체로, 1995년 일부 종업원이 독립해 '스마트전자'를 세운 후 1998년경부터 청산됨.
- 성호기업: 구 성호부동산. 1994년 세방석유에 합병됨.
- 세계산업: 1978년 럭키개발에 합병됨.
- 신정개발: 1988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신정유업: 구 신정운수-신정상운. 1989년 대한유조선에 합병됨.
- 심마니: 2002년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에 합병됨.
- 온산동제련: 1982년 한국광업제련에 합병됨.
- 원전에너지: 1999년 LG칼텍스가스에 합병됨.
- 정우에너지: 옛 정우개발 계열사로, 1985년 여수에너지에 합병됨.
- 켐그린에너지: 2016년 팜한농에 합병됨.
- 트윈와인: 2012년 폐업됨.
- 팜흥농: 구 대농종묘. 2016년 팜한농에 합병됨.
- 픽스딕스: 디지털카메라 수입/유통업체. 2012년 철수 후 2014년 폐업.
- 하우시스이엔지: 2018년 LG하우시스에 합병됨.
- 하이로지스틱스: 구 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 2016년 범한판토스로 합병됨.
-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 2006년 데이콤에 합병됨.
- 호유해운: 2000년 LG칼텍스정유에 합병됨.
- 희성전자: 구 새한정밀-서통전자. 현재 있는 희성전자와 다른 회사로 1980년 구로공장을 금성사에 넘긴 뒤 서서히 사라졌다.
- 희성제지: 1984년 희성산업에 합병됨.
- LG교통정보: 1999년 LG인터넷에 합병됨.
- LG금속: 1995년 LG산전에 합병됨. 현 LS-nikko동제련 및 LS메탈의 뿌리이기도 하다.
- LG대산유화: 구 현대석유화학 대산공장 1단지. 2006년 LG화학에 합병됨.
- LG데이콤: 2010년 LG텔레콤에 합병됨.
- LG돔: 뚝섬 돔 경기장 건립업체. 1998년 청산.
- LG레저: 1999년 LG유통에 합병됨.
- LG마이크론: 2009년 LG이노텍에 합병됨.
- LG미디어: 1997년 LG소프트웨어(現 LG디스플레이에[52] 합병됨.
- LG백화점: 2002년 LG유통에 합병됨.
- LG생명과학: 2017년 LG화학에 합병됨.
- LG석유화학: 2007년 LG화학에 합병됨.
- LG솔라에너지: 2015년 서브원에 합병됨.
- LG수퍼센터: 2002년 LG유통에 합병됨.
- LG엔지니어링: 1999년 LG건설에 합병됨.
- LG인터넷: 채널아이 운영사로, 2000년 사업부문이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으로 넘어간 후 2001년 청산됨.
- LG전자부품: 구 금성알프스전자. 1998년 LG포스타에 합병됨.
- LG전자서비스: 1999년 청산.
- LG정보통신: 2000년 LG전자에 합병됨.
- LG정유유통: 구 대일석유-호유판매. 1997년 LG정유판매에 합병됨.
- LG정유판매: 구 세방석유. 1998년 LG칼텍스정유에 합병됨.
- LG종합금융: 구 부산투자금융. 1999년 LG증권에 합병됨.
- LG파워콤: 2010년 LG텔레콤에 합병됨.
- LG폴리카보네이트: 2011년 LG화학에 합병됨.
- LG할부금융: 1998년 LG카드에 합병됨.
- LG ENC: 구 진로엔지니어링. 1998년 LG엔지니어링에 합병됨.
- LG C&D: 구 금성포스타-LG포스타. 1999년 LG정밀에 합병됨.
- LG-IBM PC: 2001년 정식 편입된 후 2005년 LG전자에 합병됨.[53]
- LGEI: 구 LG전자 법인을 모태로 한 지주회사. 2003년 LGCI에 합병됨.
- V-ENS: 2013년 LG전자에 합병됨.
- HS애드: 2004년 구 LG애드에서 물적분할되다가 2023년 지투알에 재합병됨.
- LBEST: 2007년 설립된 광고회사로 2023년 지투알에 합병됨.
12.9. 사회공헌
- LG배 조선일보 세계기왕전을 후원하고 있다.
13. 사옥
- LG트윈타워
LG그룹의 본사 사옥이다. 1987년 개장한 이래로 쭉 그룹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마포대교 남단 입구에 있는데다 쌍둥이 빌딩이라 눈에 잘 띈다. 베이징에 있는 LG 중국법인 건물도 트윈타워로 건설되었으나 2020년 싱가포르투자청에 매각했다.
- LG광화문빌딩
경희궁 맞은편에 있으며 미래에셋, 옛 금호본사, 흥국생명과 함께 광화문 오피스타워를 이루고 있다. 2010년 개장하였으며 LG생활건강 본사와 계열분리된 LX그룹 계열사 등이 입주해 있다.
- LG서울역빌딩
2010년 서울스퀘어에 몇 몇 계열사가 입주를 시작했는데 2016년 옆에 있는 옛 STX 건물을 아예 매입하여 LG이노텍 본사 등이 입주해 있다. LG그룹의 옛 사옥이었던 메트로타워[54]와도 가깝다.
- LG마포빌딩
트윈타워 그룹 본사와 비슷한 시기에 개장하였으며 여의도에서 가까운 공덕역에 위치해 있다. LG의 광고계열사인 지투알, HS애드가 입주해 있다.
- LG사이언스파크
2018년 마곡에 개장한 R&D센터다. LG CNS 본사 및 LG전자 등 9개 계열사 R&D 부서가 입주해 있다. GS그룹 본사에 동거하던 LG아트센터 또한 2022년 마곡으로 이전한다. 바로 옆에는 LG의 방계인 희성그룹의 통합연구센터도 있다.
14. 채용
자세한 내용은 LG/채용 문서 참고하십시오.15. 기타
- 계열사들의 광고 컨셉이 대체적으로 보수적이고 고급스러운 면을 강조한다. 오너 가문이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라 그런지 생기 넘치고 발랄한 면은 부족한 편. 실제로 내부의 광고기획사인 HS애드에서도 광고 컨셉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오너들이 행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4대 총수 구광모가 현재 5대 재벌 총수들 중에서 가장 젊은 축인 40세인지라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해야 할 듯.
- 1989년에 안진제약을 인수하여 럭키제약으로 변경, 2010년엔 해태htb를 인수하고 영진약품 익산공장을 인수한 뒤 해태htb에 통합시킴으로서, LG가 생산하는 모든 약은 전북지역에서 만들어진다.는 태극제약이 LG생활건강에 인수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한동안 친중 논란이 있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않는 추세인데 LG유플러스는 홀로 화웨이 장비를 고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LG의 친중 행보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물론 일각에서는 SKT, KT도 5G 이전의 통신장비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LG유플러스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LG유플러스만 친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5G라는 차세대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수요처가 된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반감까지 샀기 때문에 이때 LG의 행보는 친중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LG의 이러한 친중 행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으로, 최근 들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LG는 중국과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LG그룹의 주력 사업인 배터리 분야에서 LG는 중국과 가장 격렬하게 경쟁하는 기업이다.[55] 또한 중국 배터리 기술굴기를 견제하고 자국 중심으로 ‘배터리 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반중 노선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기업도 LG인데, 단적인 사례로 2022년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방한했을 때 한국 기업들 가운데 유일하게 LG화학 사업장만 방문했고 이때 LG는 미국에 2025년까지 14조원 이상의 배터리 분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적극적인 친미 행보를 보였다.# 또한 LG와 미국 1위 자동차기업인 GM과의 협력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미국도 이러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천안의 식품 제조업 회사인 수향식품(주) 및 수향농장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유는 구자경이 경영에서 은퇴한 뒤 취미로 운영했던 농장이기 때문이다. 농장 및 제조 사업장 자체도 LG연암학원에서 운영하는 연암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LG 임직원들에게 명절 선물 등으로 뿌리는 선물세트로 이 수향식품에서 판매한 제품이 많다. 지분 자체는 구본능과 구본식이 절반씩 소유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영은 구자경이 주도했다.
- 유튜브에서 유명한 네모바지 스폰지밥 한국어 더빙판에서 뚱이가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그 때 당시 LG그룹의 슬로건이었다. 심지어 멜로디도 거의 같아 LG그룹의 광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
- 21세기 들어서 LG가 운영하는 스포츠단은 우승 복이 더럽게 없었다. 1990년에 창단한 LG 트윈스는 1990년 한국시리즈와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마지막 기록이었고 1997년에 창단한 창원 LG 세이커스는 챔프전 준우승 2번과 정규시즌 우승만 1번 했을 뿐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력은 없다. 다만 LG 트윈스는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 과거 F1에서 미나르디 F1 팀에 후원하였고,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렸을 적에 레드불 레이싱에도 스폰서로 후원했으며, F1의 타임키퍼로도 선정되어 2014년까지 등장했으나 이후 바로 롤렉스로 바뀌었다.
-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잡음이 적고 사회환원 활동도 활발하여 이미지가 좋은 편이지만 안팎으로 비판이 있다. LG 계열사는 전반적으로 동종업계 경쟁사보다 연봉이 낮은 편이라 재직자들의 평가는 미묘한 편이다.[56] 게다가 2021년 1월 LG트윈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용역들이 나타나 청소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 2022년 부터 슈퍼스타트라는 이름으로 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16. 참고/관련 문헌
- 사진으로 본 럭키금성 40년사 (1987)
- LG 50년사 (1997): 본문, 화보
- LG 60년사: 고객을 향한 도전 미래를 향한 열정 (2007): 2017년 이전까지 'LG사이버역사관' 홈페이지에서도 별도의 뷰어 프로그램으로 서비스했다.
[1] LG그룹의 상장된 계열사 시가 총액을 더한 것이다.[2] 이 광고부터 LG의 글꼴타입(폰트)를 변경했다.[3] 1위는 삼성, 2위는 SK, 3위는 현대자동차그룹이다.[4] 2022년 9월 5일 기준. 1위 삼성(592조), 2위 LG(216조), 3위 SK(153조), 4위 현대차그룹(127조). 출처 여담으로 시가총액 기준 5위인 포스코는 시가 총액이 40조 정도로 1~4위와 차이가 큰 만큼, 사실상 한국 경제에 이 4개 그룹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5] 이는 현재 재벌 오너들이 대부분 3세대로 세대교체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마찬가지로 사이가 안좋은 삼성과 CJ도 이재용 체제 이후에는 관계 회복이 되고 있으며, 재벌 오너들끼리의 회동 또한 잦아지고 있으며 이 영향으로 재벌간 협력도 늘어나고 있다.[6] 구광모 외 29인이 41.70% 소유하고 있다.[7] 구자경의 사남. LT그룹 회장[8] 구광모의 양모. 구본무의 아내[9] 구광모의 친부, 구자경의 차남. 희성그룹 회장[10] 구자경의 삼남. LX그룹 회장[11] 구광모의 양동생[12] 구자경의 외손녀[13] 구자경의 차녀[14] 구자경의 동생 구자영의 아들[15] 구광모의 사촌이자 구본준의 아들[16] 구자경의 동생[17] LG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LG 역사의 시작은 이 때부터다. 이 당시 구인회가 살던 서대신동 자택 마당에서 크림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이며 훗날 연지동으로 전용 공장을 옮겼다. 현재는 연지동 옛 공장 부지에 연암기념관이 있다.[18]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할 때 정부가 LG그룹 측에 부산·경남 연고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각 지역별 연고팀은 해당 지역 출신 기업인이나 연고지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한 기업으로 하여금 창단하게끔 했는데 구자경 회장의 출신지도 경남이었고 LG의 창업지도 부산이었기에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에 딱 맞았다. 그러나 내부 사정 탓에 실제 야구단 창단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결국 울산 출신 신격호가 있던 롯데그룹으로 부산·경남 연고팀의 창단 권한이 넘어갔고 이후 LG그룹은 1989 시즌이 종료되고 매물로 나온 MBC 청룡을 인수하여 야구계에 진출하게 된다.[19] 이 흑백 텔레비전의 생산은 일본 히타치의 기술 도입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다른 대기업들이 일본기업과 기술제휴를 할 때 그 사실을 크게 부각해서 품질 좋은 물건이라는 주장을 할 때 (이를테면 대한-도시바 TV라던가) 금성사는 히타치와의 제휴 사실을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이 때부터 지금까지 LG의 전기, 전자, 정보 부문에서 일본과의 기술제휴 및 부품도입이 필요할 때는 주로 히타치와 이루어 졌으며 지금도 히타치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양 사의 합작회사도 Hitachi-LG Data Storage 등 제법 되었다.[20]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 자율경영[21] 공식적으로 LG그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언론에선 편의상 LG그룹이라고 한다.[22] T1과 T(SK텔레콤)의 관계와 유사하다.[23] 흔히들 인화의 LG, 관리의 삼성, 뚝심의 현대라고 칭했다. 이는 일본의 거대 기업집단 중 '인화(人和)의 미쓰이, 조직의 미쓰비시, 결속의 스미토모'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하다.[24] 19~21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25] 과거 기업 휘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룹명 GS가 과거 금성사의 영문 상호이던 GoldStar의 약자이다. LS의 경우, LG그룹에서 분리할 때 LG의 L과 GS의 S를 따서 만들었다. LIG는 LG손해보험 영문 상호의 두문자다.[26]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원인이었으며, 이 여파로 LG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위였다가 현재 4위로 순위가 내려가 버리는데 결정타가 되었다.[27] 사정1.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보험회사는 손자회사로 보험과 관련 없는 회사를 둘 수 없다는 규정. 사정2. KB금융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KB투자증권(자산6조)조차도 그룹에 어울리는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추가 M&A전에 뛰어드는 판에 자산 6000억의 LIG투자증권은 합병해 봐야 자산증식에 도움이 안 되는 계륵만도 못한 존재라는 판단.[28] 현대전자의 부채 + LG반도체의 부채 + 인수할 때 지불한 현대전자의 자금[29] LG반도체를 인수한 하이닉스(현대전자)를 SK가 인수했으므로.[30] 그러나 LIG는 LG 본가와 계열분리가 된지 오래되었고, 판토스는 돌연 LG가 판토스가 LG 인수를 거부할 경우 LG의 일감을 줄이겠다는 반강제식으로 인수를 해버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판토스 오너가 줄곧 사고를 친 탓에 불편한 LG가 이를 정리하려 했다는 뒷소문이 파다했다.[31] 다만 이쪽은 그래도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삼아, 지배구조를 대폭 개선해 꽤나 지배력은 강한 편이다. 거기다 승계 포기선언이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32] 이쪽이야 말로 진짜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삼아 지배구조를 개편하려고 했으나, 현금이 너무 많이 필요한 상황이며, 아직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조차 못한 상황이다.[33] 이쪽은 소버린 사태와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 실패로 지분이 계속 줄어들었다.[34] 단기적으로 봤을 때 단점이 맞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가 아주 다르다. 삼성과 현대는 형제의 난부터 후대승계까지 문제가 많았고 SK는 최태원 친척의 (주)SK의 총지분율이 29%에 최태원의 지분은 18%에 불과하다.(최태원-노소영의 이혼분쟁이 돌발변수) 3세 승계를 감안하면 적은 지분이며, 최태원 이후 후계자부터 불투명하다. 그리고 최종건 계열의 계열분리 또한 잠재적 문제점이다. 롯데는 왕자의 난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신동주 지분이 신동빈 이상으로 많아 계열분리 하려해도 큰 출혈이 불가피하다. 언제까지 이사회에서 신동빈 편을 들 수 없을 것이며 순환출자로 지배한 탓에 신동주, 신동빈의 보유지분이 높지 않다. 한화는 의외로 김승연의 (주)한화 지분이 22%라서 승계가 쉽지 않고, 아들이 3명에 서로 지분 차이가 아주 크게 나지 않아서 각자 몫을 챙겨주면 한화의 규모가 크게 축소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정기선으로 승계가 거의 완성되었다. GS는 LG만큼 허씨 일족의 지배력이 탄탄하지만 형제들의 계열분리 소문이 있다. 두산은 사세가 크게 축소되었고, 한진은 경영권 분쟁에 아시아나 인수(산은이 돈을 대주는 조건) 등으로 당장 조원태부터 위태위태하다. 재벌은 고사하고 중견기업들도 상속세 문제로 사모펀드에 팔려나가는 상황에서, LG가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선제적으로 문제를 정리한 것이 큰 빛을 발하고 있다.[35] 특히 GS가 독립하면서 정유 회사를 분리해 나갔는데 만약 LG그룹에 화학+생건+정유가 있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36] 그룹 창업공신인 이연두 전 락희화학공업사 부사장의 아들,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생질.[37] 1990년 2월 20일 구자경 회장 시절에 선포됐다.[38] 2018년부터 사용되는 표어다.[39] 참고로 새 CI 발표는 구본무 회장의 LG그룹 회장 승계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취임부터 본인의 이미지를 크게 각인시킨셈.[40] 2015년부터 서체가 바뀌었다.[41] 단 일본 Y!모바일에서 팔매된 안드로이드 원 X5(LG Q9 One)는 명확하게 LG 로고가 삽입되었다.[42] 1984년에 동광출판사를 통해 <총수의 결단>으로 재출간됐다.[43] 현재 가치로 약 1억 원[44] 허준구의 부친인 허만정이 구인회가 하던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그 이후로 계속 LG 창업주 구인회를 도와 오늘날의 LG그룹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비슷한 연배인 구인회의 장남 구자경이 구씨 가문을 대표한다면, 허준구는 허씨 가문의 좌장 역할을 했다.[45] 여러 작물을 테스트해본 결과, 마늘이 에티오피아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와 마늘로 결정했다고. 더불어 에티오피아 요리에 마늘이 많이 사용되어 꽤나 고소득 작물인 점도 고려.[46] 2013년에는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하려다 순직한 인천 강화경찰서 경감의 유가족에게 5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고, 2014년 7월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추락해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각각 1억원씩 전달하기도 했다.[47] 그런데 이 때문에 팀 킴의 삼성 라이온즈 시구가 무산되었다.[48] 구 LG전자 법인.[49] 카메라 모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 적용되는 초슬림, 고화소 카메라모듈을 얘기하고, 차량용 전장부품사업은 기존 자동차부터 전기차, 스마트카 등에 장착되는 모터와 센서, 통신모듈,파워모듈, 카메라모듈, LED조명모듈, LED사업에서 친환경 조명으로 주목 받고 있는 LED조명의 핵심인 LED칩과 패키지를 한국 내외 조명 업체에 공급하며, 기판소재사업에서는 스마트폰, 노트북PC, 올인원PC 등 IT기기의 핵심 부품인 터치스크린패널과 반도체 패키지용 기판 등을 판다.[50] 두산그룹 계열이었으며 창립 시 한양식품임. 1997년 OB맥주에 합병됨.[51] 2005년 GS그룹 분가로 LG건설이 떨어져 나가면서 LG그룹 내 건설회사는 없었으나, 전자나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공장에서 보안성이 요구되기에 GS의 사업분야로 웬만하면 진출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건설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 사명 변경 이전의 서브원이다.[52] 단, 소프트웨어 부문은 후에 LG전자로 넘어갔다.[53] 반면 씽크패드, 씽크센터 등 일부 브랜드는 한국IBM으로 넘어감.[54] 서울스퀘어 문서에 있는 대우빌딩 시절 사진 좌측에 LG건설 본사로 사용하던 LG역전타워의 모습이 보인다. 위키피디아의 서울스퀘어 문서에는 럭키금성 시절 건물 전체 모습도 볼 수 있다. GS의 계열 분리 후 GS건설 본사로 사용되다 GS건설이 종로 그랑블루로 이전하여 메트로타워로 바뀌었다.[55] 2022년 점유율을 기준으로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가 중국 CATL이며, 2위가 LG에너지솔루션이다.# 또한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LG에너지솔루션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배터리 시장을 놓고 중국 업체들과 엄청난 경쟁을 하는 중이다.#[56] 물론 어디까지나 대기업 기준에서 낮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