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ulture-bound syndrome / 文化依存症候群문화 관련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문화 특정적으로 발병하고 진단되는 정신질환. 이 병의 존재는 한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분류법과 진단법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의 확산과 교류에 따라서 문화고유장애도 비슷하게 확산되고 전파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화고유장애는 그 환자가 속해 있는 문화권에서의 역사, 사상, 세계관, 압력, 정신세계에서 기인한다. 타 문화권에서 보기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양상을 띠며 똑같은 질병의 조건에 해당되더라도 이 문화에 속한 사람은 발병하지만 저 문화에 속한 사람은 전혀 발병하지 않는다. 심지어 발병한 징후에 대해서도 명확하고 객관적인 이상 여부를 찾기 힘들다. 이민자들은 문화고유장애를 고스란히 가지고 이주하기도 한다.
집단 히스테리와도 유사하게 문화고유장애들을 살펴보면 사람의 세계관이나 사상, 신념, 믿음, 가치, 정신적 상태가 신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 개념이 엄밀한 의학적 이슈에 마구잡이식으로 추가된 인류학 배경의 '추측성 용어' 라고 생각하여 실제 정신건강의학계에서 사용하는 명칭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개념 자체가 이미 DSM-IV-TR에서부터 DSM-5[1], ICD-10에서 전부 엄밀하게 정의 및 등재되었고 그 목록까지 완성되어 있므로 의미 없는 주장이다. 물론 DSM이란 게 늘 그렇듯이 이런 작업에 대해서도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논쟁은 단순히 '수스토[2]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타당한가' 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어쩌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도 수스토를 겪고 있는데 그걸 오히려 미국인들이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는 게 아닌가' 식의 역발상(?)까지도 나왔다.
문화고유장애에 대해 "사실은 전부 기존 질병분류체계 인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똑같은 질병들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기존의 진단 및 검사체계에 환자들의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여 개선하고자 하는 현대 미국 정신의학계의 추세와도 잘 맞지 않는 과격한 주장이다.[3] 사려 깊은 정신의학자들은 질병의 본질은 동일하되 문화적 요인이 그 증상의 발현과 타인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2. 사례
예를 들자면 이하의 몇몇 종류가 있다. 위키백과에서 DSM에 실린 사례들을 열람할 수 있다. # 한국의 문화고유장애는 ★ 표시.- 다트 증후군(Dhat syndrome): 인도, 네팔 등을 비롯한 힌두교 문화권
자신의 소변에 정액이 섞여 매 순간 빠져나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 초래되는 불안, 무기력, 권태, 발기부전, 조루 등의 증상. 이쪽 문화권에서는 정액이야말로 생명의 액체라고 이해되었고 이것이 시시각각 빠져나간다고 믿음으로써 엄청난 공포와 불안이 초래된다. 소변에 정액이 섞여 나오는 병이 있기는 한데[4] 정액이 소변 볼 때마다 시시각각 빠져나가는 병이 그렇게 흔할 리는 없다.[5] 일부 연구자들은 남성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꼭 문화고유장애라고 불러야 할지 회의적으로 본다.[6]
- 대인공포증(対人恐怖症; Taijin kyofusho): 일본[7]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현대의 임상심리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공포증의 일본 버전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다양한 증상들을 수집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진다고 믿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고 믿거나, 자신의 외모가 보기 흉하고 추하다고 생각하거나, 남들 앞에서 글씨를 쓸 때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거나 하는 증상이 있다. 대인공포증이 일본의 고유장애라는 것이 좀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국제적으로 더 널리 사용되는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라는 용어가 있으나, 대인공포증이라는 용어가 이해가 더 쉬워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도 일반인에게 널리 사용되었고 이 때문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의사들도 종종 대인공포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익숙하게 느껴진다. 추가적 연구에 따르면 대인공포증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했다.[8]
- 라타(Latah):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직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상태. 미친 듯이 웃기, 욕설 퍼붓기, 춤추는 것처럼 움직이기, 괴이한 비명을 지르기 등이 있다. 현대 정신의학계에서는 놀람장애(startle disorder)의 한 종류로 이해되는데 전통적으로는 이게 또 질병이 아니라 개인차 정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이 병은 그래도 심각한 피해를 입힐 정도까지는 아닌데 어쩌면 이 때문에 라타가 질병의 범주에 속한다고 여겨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문화가 화나도 슬퍼도 잔잔히 웃을 것을 강하게 권장하는 탓에 억눌린 울분에서 기인한다는 설도 있다.
- 바람병(Wind illness): 중국, 베트남, 태국
아기를 낳은 여성에게서 발현되는 추위, 바람에 대한 두려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다고 여기기에 차가운 요소를 피하여 치료한다고 한다. 후술하지만 한국에서도 '바람 든다'고 하여 매우 유사한 장애가 있다.
- 빌리스(Bilis)[9]: 라틴아메리카
격심한 화나 분노를 경험한 뒤 신체 균형이 교란되어 기존의 증상이 악화되는 것. 빌리스에 걸리면 만성 피로, 신경증적 긴장, 위장 장애, 두통이 발생할 수 있다.
- 수스토(Susto): 남미 원주민 및 라틴계 거주자들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장애. 영유아 어린이들에게 특히 더 잘 발생하고, 체중의 감소와 체력의 고갈, 극도의 불안과 흥분, 그리고 우울증이 온다. 이 동네에는 사람이 극한의 공포나 놀람을 경험하게 되면 영혼이 육체로부터 빠져나가 버린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 섭식장애(Anorexia; Eating disorder): 현대문화가 유입된 모든 국가들 #
거식증을 포함하여 식이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모든 종류의 정신병으로, 문화권마다 발현 양상이 다르며 서구화와 달라지는 미디어의 인식에 따라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섭식장애 항목 참고.
- 신경쇠약 증후군(Brain fag syndrome): 아프리카 서부 일대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학업에 매진하다가 나타내는 특유의 신경쇠약. 심한 두통과 목 근육의 통증, 머릿속에 뿌옇게 안개가 낀 듯한 느낌, 심하면 두개골 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고 한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성공에 대한 강박감에 내몰리는 학생들이 주로 경험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 신병(神病): 대한민국 ★
대한민국 무교(巫敎)에서 무당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이해되는 무당의 자질이 있는 사람에게 신이 빙의했지만 무당의 길을 거부했을 때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일반적으로 불면증과 식욕 감퇴, 환시와 환청, 체력의 고갈 등이 증상으로 꼽힌다. 주로 30세 이하의 젊은이에게 발병하고 전통적인 해결책은 내림굿을 받아서 무당이 되든지, 누름굿을 받든지, 가까운 혈족이 대신 무당이 되든지 하는 것이다. 망상, 환각 등이 나타나므로 조현병, 우울증,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아목(Amok)[10]: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동남아시아 원주민들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타인이나 사물에 대해서 갑작스럽게 공격성을 보이는 정신병.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엄연히 현재진행형이며 심지어 이민자들을 따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도 한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잘 발병하며 손에 식칼이나 과도 같은 흉기를 잡기라도 했다간 정말 사람 여럿 잡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것이 갑작스러운 분노의 폭발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연구자들은 이 동네 특유의 자살 양식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서구권에도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문화고유장애 중 하나로, 이에 빗댄 '이성을 잃고 매우 폭력적으로 날뛰는 상태'를 뜻하는 'Run amok'이라는 숙어도 존재할 정도다.[11]
- 웬디고 정신증(Wendigo psychosis): 미국/캐나다의 알곤킨 족
초자연적인 괴물 "웬디고"가 사람의 혼을 먹어치워 짐승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신념. 심각하면 식인 행위까지 동반할 수도 있다. 웬디고를 처치하려면 그 괴물의 얼어붙는 심장을 녹이면 된다고 한다. 동명의 전설 혹은 민담 "웬디고"에 기초하고 있는 문화특정적 장애인데 말하자면 망상장애의 일종이다.
- 유령병(Ghost sickness): 미국의 나바호족
자신이 망자에 빙의되었다는 믿음과 함께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작게는 현기증과 무력감 정도에서 크게는 악몽이나 공황장애, 불면증, 환각 등이 초래된다. 나바호족 인디언들은 망자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가끔은 주술(witchcraft)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애도장애(grief disorder)의 한 종류로서 죽음이나 사후세계, 망자에 대한 추억 등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인디언 사람들이 겪기 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 자르(Zar): 북아프리카, 중동
악령이 들려 무감각해지고 내면으로 철수한다는 관념. 처음 악령이 들린 사람은 발작을 일으키는 것 처럼 울거나 웃거나 노래를 부른다. 그 중 일부는 자기 몸에 들어온 귀신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그로부터 치유와 점술의 힘을 받기도 한다.
-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 스웨덴, 호주[12]
특이하게도 스웨덴으로 망명하거나 난민으로 입국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과거에는 소련, 유고슬라비아 출신 망명자, 현재는 중동 난민에게서 발생한다. 특히 아동들이 식사와 물을 끊고 말도 잊다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증상을 보인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원인으로 보이지만 희한하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증상이 없다고 한다.
- 코로(Koro): 동남아시아 및 중국 남부, 수단 공화국
남성의 음경이 쪼그라들어 복부로 말려들어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라는 믿음과 그 믿음에 수반되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 상태. 신기한 것은 자신의 음경이 멀쩡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더라도 그 불안감이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상이 증상이라 그런지 굉장히 많이 연구되고 널리 알려진 문화고유장애다. 전통적으로 도교 문화권에서는 음양을 조절하는 약이 처방되는데 사슴, 물개, 호랑이 등의 음경을 재료로 만든다고 한다. 1984년에서 1985년에 걸쳐서는 심지어 중국 16개 도시에서 3천여 명이 집단으로 발병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심리적 요인에 의한 망상장애, 성기능장애로 볼 수 있다. 뜬금없게도 아프리카의 수단 공화국에 외국인과 악수를 하면 음경이 쪼그라든다는 미신이 있었다.
- 피블록토(Piblokto): 이누이트 및 북극 문화권
주로 겨울에 여성들이 발병하는 심한 히스테리 증세와 함께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정신병. 갑자기 몇십 분 동안 동물 울음 소리를 낸다거나, 추운 바깥날씨에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나체로 뛰어다니거나, 그렇게 눈밭에 마구 구르다 동사하거나, 살아남았다면 일체의 기억상실을 보인다는 등의 증상이 있다. 어째서 여성이, 어째서 겨울에 발병하는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데 어떤 연구자들은 칼슘이 결핍된 식이생활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누이트 사회가 외부와 접촉하고 많이 근대화된 후에는 점점 발병률이 감소하고 있다.
- 화병(火病, Hwa byung)[13]: 대한민국 ★
화나 분노를 억누르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나타나는 만성적인 신체적/정신적 장애. 우울장애와 식욕감퇴, 불면증, 불안장애, 오심, 오한, 근육통 등이 대표적인 장애이다. 가끔은 히스테리구(球) 비슷하게 목이나 명치 언저리에 뭔가 뭉친 듯한 답답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남성보단 여성에게서 주로 발견되며 현대의학에서는 정서장애의 한 양상으로 본다.
[1] 여기서는 고통에 대한 문화적 개념(cultural concepts of distress)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다.[2] 앞선 링크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고유장애. 남미 특유의 패닉, 트라우마성 장애다. 자세한 것은 사례 문단 참고.[3] 이런 비판론자들은 아래 목록 중에서 오직 섭식장애(anorexia)만을 신뢰할 만한 보고라고 생각하는데 흥미롭게도 섭식장애는 서구문화 기원의 문화고유장애로 분류되고 있다.[4] 'spermaturia'라고 부른다.[5] 오랫동안 사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용변을 보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주면 오르가즘 없이 전립선액이 배출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6] 중국에는 "셴쿠이"(Shenkui)라고 하여 다트 증후군과 유사한 문화고유장애도 있다. 후술할 "코로"도 큰 맥락에서는 비슷하다.[7] 보기에 따라서는 파리 신드롬도 일본의 문화고유장애로 간주할 수도 있다.[8] 사실 틀린 말이 아닌게, 우리나라의 눈치 문화도 일본보다 강도가 약하다 할 뿐 메이와쿠와 양상이 비슷하며, 서양인들이 눈치 또한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낀다. 즉 애초에 겉치레라도 남을 위해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은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9] 무니아(munia)라고도 한다.[10] 아묵(Amuk)이라고도 한다.[11] 레 미제라블(뮤지컬)의 넘버 One Day More의 테나르디에 부부 파트에도 'Watch them run amuck, catch them as they fall...'이라는 가사가 있다.[12] 나우루 이민자 한정이다.[13] 정말 영어로 이렇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