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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21:32:41

박근혜 정부/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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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박근혜 개인과 관련된 문서는 틀:박근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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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 청와대가 시민단체를 비난했다→ 청와대가 주도한 것임으로 거론가능
) 시민단체가 청와대를 비난했다→ 청와대가 주도한 것이 아님으로 불가능
EX
) 여당이 국정감사 도중 도시락을 까먹었다→ 여당만 한 것임으로 불가능
) 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도시락을 까먹었다→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한 것임으로 가능

2014년, 박근혜 정부의 각종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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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제주도수학여행을 떠났던 250여명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50여명의 일반인 승객이 사망한 해상 사고가 발생했다.

박 대통령은 탑승자 구조 실패 및 여러 논란 때문에 해양경찰을 해체했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또한, 4월 16일을 국가기념일국민안전의 날로 제정하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7시간 뒤에나 돌아와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없이 구조대를 질책만 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다 입었다고 하던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관계자가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 때문에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현황도 모르고 있었느냐?'라는 질책이 뒤따랐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사고가 발생한 후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렸던 이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정윤회[3]와 박 대통령이 이 7시간 동안 밀회를 가졌다"는 칼럼을 내보냈고, 산케이신문이 조선일보의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다 곤욕을 치렀다.

구조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으로 국민들이 안전을 보호하지도 않은 정부을 보면서 시민들은 박근혜 정부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야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박근혜 정부는 안정을 되찾아 갔다.

이 당시 경비 문제로 박근혜가 진도에 내려가는 것을 반대했으나 박근혜가 가겠다고 했고, 이 일을 두고 정몽주니어미개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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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임후 300여일 만에 이루어진 기자회견이라 굉장히 늦었다고 비판을 받았다.[2] 시작은 윤일병이 전입온 시기부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터진건 4월 6일이다.[3]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이던 시절부터 보좌했던 비서실장이었고, 최순실의 전남편이자 정유라의 아버지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