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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5일 | 양석환 ↔ 함덕주 | |||||||||
2021년 7월 27일 | 서건창 ↔ 정찬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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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9일 | 최원태 ↔ 이주형, 김동규 | |||||||||
2024년 5월 28일 | 박병호 ↔ 오재일 |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No.59 | kt wiz No.36 | |
박병호 朴炳鎬 | Park Byung-ho | 오재일 吳在一 | Oh Jae-Il |
2024년 5월 28일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 사이에서 진행된 트레이드를 다루는 문서.
2.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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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실제로 박병호가 웨이버 공시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방출 요청 사유로는 2024년 들어 줄어든 출장 기회에 대한 박병호의 불만이었다고 밝혔다. 이강철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병호를) 배려를 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배려하다 끝나야 하겠다. 참는 사람에게 이기는 사람이 없다. 잘 참는 사람이 언젠가는 이긴다"라고 표현하였다. #
이강철 감독은 박병호의 타격감이 좋지 않은데도 그를 중심 타선에 배치하며 기용해왔던 적이 있기에 좁아진 입지를 이유로 방출을 요청했다는 것에서 KT 팬들은 분노하였고, 그동안 베테랑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온 선수이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로 보이며, KT 최고의 영입으로 평가받았던 박병호의 FA 계약도 최악의 마무리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불어 상승세인 팀에 언해피를 남기고 떠났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는 평을 받았다.
박병호가 스포츠경향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박병호는 4월부터 구단과 대화를 나눠왔다고 밝혔다. 부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팀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구단에게 타 팀으로의 이적을 먼저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록 트레이드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1] 25일 경기[2]가 끝난 후 은퇴를 요청했으나, 구단에서 만류했고 박병호의 깔끔한 커리어 마무리를 위해 트레이드를 다시 한 번 추진해보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트레이드가 되지 못할 경우에는 웨이버 공시를 택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고, 웨이버 공시를 했는데도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그때는 은퇴를 선언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3]
같은 날 오후 8시경, 지역[4] A팀 내야수와 트레이드가 임박했다는 베이스볼 코리아 전수은 기자의 단독 보도가 발표되었다. #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사진의 실루엣이 오재일의 사진과 똑같다는 점과 해시태그에 오재일이 뛰었던 #두산 #갤럭시s24울트라가 있었다는 점을 토대로 오재일 ↔ 박병호 트레이드가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28일 선수단과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나눴으며, 이강철 감독과도 인사를 나눴다고 밝혔다. # 그동안 섭섭함이 컸을 이강철 감독은 끝까지 박병호를 감싸며 응원 메세지를 보냈다. #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29일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 스스로 염경엽 감독에게 컨택한 것이 드러났다. 즉 은퇴를 하겠다던 박병호의 말과는 완전히 반대였던 것이다. LG 선수단 구성 상황과[5] 박병호의 가치 하락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의 박병호에 대해 냉랭했던 트레이드 시장을 짐작할 수 있다.
3. 트레이드 결과
트레이드 일자 | 2024년 5월 28일 |
박병호 | 오재일 |
5월 28일 22시쯤에 트레이드가 최종 합의, 공식 발표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삼성 소속이던 오재일은 KT에서, 원래 KT 소속이던 박병호는 삼성에서 뛰게 되었다.
4. 평가
4.1. 트레이드 당시
선수들의 이름값만 따지면 메가 트레이드이기에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박병호는 키움 히어로즈, 오재일은 두산 베어스 시절 맹활약을 펼치며 두각을 나타냈고, FA를 통해 이적한 소속팀에서도 합류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전성기가 지나 선수 생활 말년에 접어들었고, 올 시즌에는 나란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과거와 같은 활약을 펼치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두 베테랑에 대한 환기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나 두 선수의 입지와 별개로 두 팀의 이해 관계는 명확하다. 두 선수 모두 1루수 또는 지명타자로 뛸 수 있는 거포라는 것도 비슷하다. 차이라면 각각 우타와 좌타라는 점.- 삼성 라이온즈
- kt wiz
다만 양쪽 팀 모두 부활에 기대치를 걸고 있는 왕년의 대형 1루수끼리 맞바꿨다는 것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또한 박병호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틈에 오재일이 트레이드 발표 당일 대타로 나와 솔로 홈런을 치면서[6] 상당히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일반적인 트레이드는 남는 포지션을 내주고 부족한 포지션을 받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번처럼 나이, 포지션, 플레이 유형 모두 비슷한 선수들끼리 트레이드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두 선수 모두 팀에서의 입지가 예전과 같지 않은 베테랑 선수면서 한 명은 우타자, 한 명은 좌타자라는 차이점이 있고, 결정적으로 박병호가 먼저 이적을 요청하고 이게 일파만파 커진 영향을 받은 덕에 성사된 트레이드이다.
4.2. 트레이드 이후
이렇게 한 레전드의 은퇴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트레이드는 두 팀의 역사를 바꾼 완전한 윈윈 트레이드가 되고야 만다.박병호는 5월 29일 키움 히어로즈 전에서 장외홈런을 쳤다. 이어 31일에는 역전 쓰리런 홈런을 날리는 등 전성기 포스로 하드힛 타구를 쏘아대고 있다. 이적을 하자마자 기존의 박병호로 돌아오자 부진이나 에이징커브가 아닌 의도적인 태업 아니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이다. 물론 이적 이후 동기부여가 되며 부활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지만, 박병호는 불과 4일 전까지만 해도 이전 소속팀에서 눈 뜨고 볼 수 없는 성적을 기록한데다 안 좋은 소문이 워낙에 많았기에 태업이라는 이야기가 농담이 될 순 없다. 거기에 1군 말소 당시 말소 사유가 허리 부상이었다고 했었기 때문에 결국 허리 부상은 거짓말로 밝혀졌다.
다음날인 1일, 박병호가 첫타석부터 3점 홈런을 치면서 완벽한 부활을 알렸지만, 같은 날 오재일은 4타수 무안타 2병살 2삼진, 13타수 연속 무안타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보여줬다.
2일, 오재일도 대타로 나와 드디어 홈런을 쳤고, 박병호는 1사 만루에서 병살을 치며 문동주의 7이닝 무실점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지만, 천적이던 이민우를 상대로 8회 선취 적시타이자 결승타를 치며 4번타자의 역할을 다했다.
이후 6월, 박병호가 지속적으로 부진하며 월간 OPS 0.6대로 추락하여 결국 6월 18일 클린업에서 밀려나 7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맥키넌이 6월 2할도 못 치는 똑딱이 노릇만 하지 않았다면 아예 대타 요원으로 밀려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성적이다. 오재일은 1루수로는 아쉬운 타격 성적을 기록했지만 대타 겸 백업 1루수로 OPS 0.7은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평가가 역전될 가능성도 꽤나 생겼다. 그러나 7월 말로 접어들면서 오재일 역시 선발/대타 가릴 것 없이 부진하며 LOSE-LOSE 트레이드가 될 것 같다는 여론이 생겼다. 이름값에 간과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부진한 베테랑을 서로 맞교환[7]한 형식이라 이런 결과도 충분히 예상되었고 구단 관계자들도 감안했던 부분이다.
이후 7월과 8월, 박병호는 완전한 부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고, 오재일 또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8월 11일 기준으로 최근 10경기를 비교한 결과, 박병호는 타율 3할 3푼 3리와 홈런 2개를 기록하였고, 오재일은 3할 1푼 6리와 홈런 1개를 기록하면서 박병호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8월 후반과 9월에는 박병호의 타격감이 완전히 살아나며 시즌 20홈런 및 KBO 리그 3번째 통산 400홈런이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오재일은 선발로는 자주 출전하지 않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활약하는 등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잘 해 주고 있다. KT 입장에서는 박병호를 그냥 방출시킬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오재일을 트레이드로 데려올 수 있었고, 삼성 입장에서도 박병호가 좋은 성적을 내 줬기 때문에 사실상 KT는 팀의 분위기적 측면에서, 삼성은 팀의 성과적 측면에서 이득을 보았다. 또한 박병호와 오재일의 활약 덕분에 삼성과 KT는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다.[8]
박병호 VS 오재일 트레이드 이후 성적 비교 | ||
성적 | 박병호 | 오재일 |
타율 | 0.231 | 0.243 |
출루율 | 0.333 | 0.327 |
장타율 | 0.506 | 0.405 |
wRC+ | 106.7 | 84.3 |
안타 | 61 | 57 |
홈런 | 20 | 11 |
타점 | 60 | 37 |
트레이드 이후 성적은 종합적으로 박병호의 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방출을 요청하여 팀을 이탈한 선수를 대신할 새로운 자원을 데려왔으며 문상철이 주전으로 활약하였기 때문에 오재일은 백업 역할만 제대로 해주어도 kt는 손해볼 게 없다.
결과적으로 2020년대 최고의 윈윈 트레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두 선수 모두 트레이드 이전 기존 소속 팀에서 심각하게 부진하며 초라한 말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나, 트레이드 이후 살아나며 새로운 팀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 아쉽게도 이 두 선수 모두 가을야구에 와서는 부진했다. 오재일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나서 공수 양면으로 체력 저하의 징후를 보이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박병호는 플레이오프부터 정신적 압박을 받는 모습을 보이며 2023년과 다를 바 없는 아쉬운 가을야구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에서 은퇴 수순을 밟던 두 선수를 바꾼 뒤 발생한 정규시즌의 호성적으로 인해 성공한 트레이드로 평가된다.
5. 기타
- 이 트레이드는 양 팀 간에 이루어진 첫 번째 트레이드이며, KT는 이 트레이드를 통해 전 구단을 상대로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 사실 삼성은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이승엽의 은퇴로 인한 1루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네소타 트윈스를 퇴단해 국내 리그로 돌아올 예정이던 박병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박병호를 영입하기 위해 당시 보류권을 가지고 있었던 넥센 히어로즈[9]에게 사인 앤 트레이드를 제안한 적 있었다. 하지만 넥센 측이 거부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결렬되었다.
이땐 잘 잡아놓고 왜..
- 두 선수는 2005년에 데뷔한 동갑내기이자 상무 입대 동기로 모두 트레이드 경험이 있었고, 트레이드 후 기량이 만개했던 선수다. 박병호는 2011년 7월 31일 KBO 공식 트레이드 마지막 날에 LG 트윈스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가 있었고, 오재일은 2012년 7월 9일 이성열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넥센에서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된 적이 있었다. 두 선수는 2011년 7월 31일부터 2012년 7월 9일까지 넥센에서 약 1년간 같이 동료로 지낸 적이 있다. 또한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보낸 팀을 뒤로하고 FA로 팀을 옮겼으며, 트레이드 당시 FA 계약 마지막 해였다.[10] 둘 다 성격이 내향적이라 그런지 아주 친한 사이라고.[11]
- 트레이드가 확정되자마자 KT 구단의 공식 홈페이지 선수단 목록에서 박병호가 삭제되었고 곧바로 오재일이 추가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수가 새로운 팀의 유니폼을 입고 사진 촬영을 했거나 합성 사진이라도 만든 후에 추가하는게 대부분인데 삼성 시절 프로필 사진으로 바로 추가되었다. 심지어 2024년 최신 프로필 사진도 아닌 2023년까지 쓰던 프로필 사진이다. # 더군다나 트레이드가 성사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KT위즈파크에 걸려있던 박병호의 개인 현수막이 철거되었으며, 박병호의 사진이 있던 대형 선수단 단체 현수막도 오재일이 합성된 현수막으로 교체되었다.
- 오재일은 프로 입단 당시 홈구장이었던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당시 수원야구장)로 돌아오게 되었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2차 3라운드 지명을 받고 데뷔한 오재일은 5월 15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데뷔 타석을 가져 삼진을 기록했다.
- 트레이드 직후 두 선수 모두 원래 쓰던 응원가를 그대로 쓰고 있다. 박병호는 상징과도 같은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에서 팬들이 일찌감치 예상한대로 구단명만 '라이온즈'[13]로 바꿔서 썼고, 오재일은 김상헌 응원단장이 작사작곡한 응원가를 팀명만 바꿔서 썼다. 박병호의 응원가야 KT도 키움의 것을 그대로 썼으면서 충분히 유서깊은 응원가이기에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김상헌 응원단장이 스스로 작곡한 오재일의 응원가를 그대로 넘겨주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다.[14] 그래서 이 트레이드는 박병호 + 응원가 ↔ 오재일 + 응원가로 사실 2:2였다는 드립이 있다. 하지만 오재일은 며칠 뒤 새로운 응원가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
-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이적 후 첫 번째 경기에서 전성기를 보낸 팀을 상대했다. 박병호는 키움전에서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오재일은 두산전에서 대타로 나섰다.
- 트레이드 전날 오재일의 삼성에서의 마지막 타석이 추격 솔로홈런이었으며, 트레이드 직후 박병호의 삼성에서의 두 번째 타석 역시 추격의 솔로홈런이었다.
- 삼성은 왕조시절인 2014년 전설의 핵타선 14넥센을 상대로[15] 치열한 혈투 끝에 우승을 가져온 전적이 있는데[16], 14넥센의 4번 타자였던 박병호가 돌고 돌아 삼성으로 오게 되자 삼갤에서 "어린 시절 정말 갖고 싶었지만 이제는 낡아버린 장난감을 어른이 되어서 가진 기분."이라는 명언이 올라왔다.# 그리고 삼성 이적 후 갑작스런 회광반조로 MVP 모드에 돌입하자 그 장난감은 낡지 않은 명품 장난감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 시즌 중의 트레이드는 선수단의 등번호가 다 결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므로 남는 번호도 자연스레 마땅치 않아서 일단은 트레이드 맞상대의 등번호를 그대로 달고 다음 시즌에 등번호를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삼성과 KT 전부 몇몇 번호를 비워두고 시즌을 시작한데다 두 선수 모두 등번호에 애착이 있어 서로의 등번호가 아닌 새로운 등번호를 달고 시즌을 재개하였다. 박병호는 52번이 코너 시볼드가 사용하고 있어서 52번과 형상이 유사한 59번, 오재일은 두산 시절 등번호 36번과 삼성 시절 등번호 44번에 제일 가까운 공번이었던 40번을 잠시 사용했다가 트레이드 전까지 36번을 썼던 류현인이 상무로 입대하면서 36번으로 다시 등번호를 바꿨다. 이로서 두산 시절 이후 4년만에 36번을 달게 되었다.[17]
- 박병호는 이 트레이드 과정에서의 추태와 그동안의 박병호의 행동[18]으로 KT 팬덤과 일부 선수단 내에서 금지어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19] 트레이드 이후 첫 수원 방문 경기에서 박병호가 팬들에게 인사를 했음에도 삼진이나 플라이 등 아웃카운트를 적립할 때마다 응원석에서 엄청난 환호(!)가 나오는 등 인터넷 여론 뿐만 아니라 현지 여론도 완전히 돌아섰다. 선수단 내에서도 민심이 완전히 작살난 것으로 보이는데, kt wiz 유튜브에 올라온 KBO 카드깡 영상에서 박병호 카드를 뽑은 황재균이 "이게 뭐야?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웃으며 박병호를 저격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20][21] 박병호가 트레이드 후 첫 위즈파크 타석에서 홈런을 치자 엄상백과 고영표 등 KT 선수들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 잡혔으며 무엇보다 박병호가 삼진 먹을 때마다 KT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내는 모습. 반대로 삼성 시절 23시즌부터 24시즌까지 부진하다 팀을 떠난 오재일은 현재도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이다. 오재일은 21년의 활약으로 6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고 이듬해인 22년에도 준수하게 활약해 잘 데려온 선수라는 평가도 받았으며, 젊은 선수들이 많은 삼성에서 베테랑의 역할도 잘 해주었기 때문에 대구 원정 방문 경기에서 인사를 했을 때도 홈 팬들이 환호로 맞이해주었다. 사실 마지막 2년간의 부진으로 인해 반쯤은 먹튀로 평가되기는 하는데 첫 2년간 잘해주며 가을야구 진출을 이끈 것은 물론 삼성의 좋은 팀케미를 이끈 선수 중 하나이기도 하고 에이스 원태인의 포텐 만개에 가장 크게 공헌한 선수이므로 오재일이 KT에서 활약할 때에도 삼성전에서 잘할 때만 빼면 삼성 팬덤의 반응은 대체로 좋았다. 어쨌든 이 문제로 인해 삼성 팬덤과 KT 팬덤의 사이가 한때 상당히 안 좋아진 적이 있다.[22]
[1] 기사에 따르면 KT는 4월부터 일부 구단에 박병호의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성사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박병호의 극심한 부진과 적지 않은 연봉, 포지션 문제와 더불어 트레이드를 논의하던 시점이 아직 시즌 초반에 가까웠던지라 타 구단들이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2]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기 바로 전날이다.[3] 사실 웨이버 공시를 하고 원하는 팀이 없을 시, 그 선수는 자유계약선수로 분류되며, 해당 시즌은 1군 출장이 불가하고, 전 소속팀과의 계약은 유지된다. 즉 KT는 연봉이 7억이나 되는 고연봉자인 박병호를 웨이버 공시 할 시, 대가 없이 상대팀에게 선수를 넘겨주거나, 선수를 기용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잔여연봉을 지급해야하는 손해만 보는 상황에 놓였었던 것이다.[4] 어느 지역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복수의 팀이 있는 수도권, 영남권과 달리 호남권과 충청권은 팀이 1팀씩밖에 없어서 유추가 쉽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5] LG는 우선 굳건한 주전 1루수인 오스틴이 있고 주포지션은 아니지만 1루수를 볼 수 있는 김현수, 문보경, 팀의 핵심 유망주인 김범석도 1루수로 자주 나서고 있기 때문에 박병호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KT보다도 기회가 밀릴 수도 있었다.[6] 트레이드가 경기 종료 직후 발표됐는데 오재일의 추격포는 9회 말에 터졌다. 즉 홈런이 나온 후 트레이드 발표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7] 그래서 이 트레이드는 길 터주기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8] 박병호는 후반기부터 날아다니기 시작하며 삼성의 플레이오프 직행을 이끈 선봉장으로 활약했고, 오재일도 팀의 가을야구 진출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맹활약하며 KT가 타이브레이커를 거쳐 가을야구 막차에 탑승하고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을 달성하는 데 공헌했다.[9] 미네소타로 이적할 당시 FA로 나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임의탈퇴 신분으로 보류권이 넥센 측에 있었고, 따라서 국내 복귀를 하려면 보류권을 가지고 있는 넥센으로만 복귀할 수 있었다. 만약 이 당시 넥센이 아닌 다른 팀이 박병호를 영입하려면 넥센의 동의를 얻어 임의탈퇴를 해제한 뒤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10] 다만 박병호는 FA 자격 재취득 최소 기한인 4년이 경과하지 않아 2025년에는 비FA 계약 대상자이다.[11] 다만 오재일은 두산으로 온 뒤 외향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12] 이승엽은 신인 드래프트 지명, 심정수는 FA 이적, 박병호는 트레이드.[13] 트레이드 직후에는 '최강삼성'으로 하자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14] 사실 김상헌 단장은 이학주 응원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타 팀에서의 사용을 허가했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각 팀에서 새로운 응원가를 만들어서 썼다. 삼성시절 이학주 응원가는 팀 응원가로 개사되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15] 물론 이 당시 삼성도 팀 타율 3할을 기록하는 등 만만찮은 핵타선이였다.[16] 공교롭게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이 우승을 확정지을 당시 상태 팀의 마지막 타자가 박병호였다.[17] 삼성 이적 후엔 36번이 이승엽의 영구결번으로 되어 있어 달 수 없었는데, KT는 영구결번 선수가 없어서 달 수 있게 되었다.[18] KT 이적 후 팬서비스가 많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며, 심지어 구단 유튜브 출연도 패싱하는 등 KT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이 나왔던 상황이었다.[19] 방출 요청 및 트레이드 직후 kt 팬들 사이에서 이대은보다 더 나쁜 놈 아니냐는 말까지 거론될 정도였다.[20] 카드에서는 삼성 박병호가 아닌 KT 박병호로 나왔는데, 컬렉션 카드 제작 당시 5월 20일 등록을 기준으로 제작되었기에 KT 소속으로 제작되었다.[21] 특히 이 영상에서 챕터 이름 또는 자막으로 타 팀 선수들은 잘 보여주다가 박병호 카드가 나왔을 때 의도한 행동인지는 모르겠으나 검지로 얼굴 부분을 가리면서 카메라에 보였으며(이후 KIA 김도영, SSG 이지영, NC 손아섭을 보일 때는 선수 얼굴을 가리지 않게 잡아 보였다), 자막 또한 침묵했다.[22] 이는 시즌이 지나면서 서로 관심이 줄어들어 차츰 풀렸으며, 박병호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하자 삼성 팬덤이 KT 팬덤의 2023시즌에 공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삼성과 KT 모두 이번 시즌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미라클 런을 한 주인공들이기에 일단은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서로 격려를 해주는 분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