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스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 남서아프리카의 괴뢰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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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명목상 독립한 반투스탄 2 남서아프리카의 자치 반투스탄 | }}}}}}}}} |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남서아프리카의 반투스탄들을 표시한 지도.
1. 개요
Bantustan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국민당 정권이 흑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설립한 자치령 및 괴뢰국들을 말한다.
'반투스탄'이라는 이름은 통칭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들 중 다수가 속한 반투족의 반투에 페르시아어로 땅을 가리키는 스탄을 붙여 만든 단어로 '반투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영어로 '홈랜드(Homeland)' 또는 아프리칸스어로 '퇴이스란트(Thuisland)'라고도 하는데 둘 다 '고향'이라는 뜻이다. 즉 반투스탄을 만든 목적 자체가 백인들 땅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빨리 너희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반투스탄'을 지정한 남아공 당국은 '반투스탄'이라는 단어보다 '홈랜드'라는 명칭을 선호했는데 '반투스탄'이라는 단어가 반아파르트헤이트 진영에서 홈랜드를 지정한 남아공 당국을 비난할 때 주로 쓰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2. 상세
홈랜드는 총 10곳이었으며, 그 중 트란스케이, 보푸타츠와나, 시스케이, 벤다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차례대로 '독립'시켰다. 자체적으로 정부와 군대를 조직하는 등 국가의 형태를 갖춰나가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남아공의 괴뢰국에 불과했다. 백인 정부는 땅을 떼서 흑인들을 독립시켜 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남아공 국민에서 배제하겠다는 뜻. 남아공 당국에서는 반투스탄 거주민들을 법적으로 외국인 취급했고 국경 바로 바깥에 흑인들을 외국인 노동자로 부려먹는 공장을 만들기도 했다.전 국토의 13%에 불과한 데다 개발도 안 되고 척박한 황무지에 인구의 39%[1]가 살았다. 당연히 교육, 복지, 의료 혜택도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시스케이를 제외한 대부분이 국토가 파편화된 비연속국이어서 그나마 정권을 잡은 흑인 지도자가 제대로 나라를 살리는 것도 불가능했고 독재자가 들어서 흑인 지도자가 흑인들의 처우에는 관심도 없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남아공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반투스탄은 남아공 국민당 정권의 위선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남아공은 엄격한 칼뱅주의 개신교 윤리를 근간 삼아 백인들에게도 문화적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극도로 금욕주의적인 사회상을 강요했다. 그런데 반투스탄은 법적으로 외국이었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라고 금지한 카지노와 스트립쇼 클럽을 비롯한 온갖 유흥업소들을 설치할 수 있었고 남아공에서 법으로 금지된 흑인 및 유색인종 여성과의 성관계도 허용되었다. 그로 인하여 반투스탄에서 아비 모르는 수많은 흑백혼혈들이 태어났다. 지금도 당시의 잔재가 꽤 남아 있는데 카지노 등 남아공의 대표 환락가로 유명한 '선 시티'는 도시 주변이 보푸타츠와나였던 1979년에 세워진 것이다.
1989년 총선 이후 집권한 F. W. 더클레르크 대통령은 반투스탄 거주민들에게 다시 남아공 시민권을 부여했고, 이 과정에서 백인정권과 유착하던 반투스탄 소수 기득권층의 반발이 있었지만 반투스탄 내 다수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대거 남아공에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이들은 항복하였고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면서 공식적으로 남아공으로 재편입되었다.
한편 남아공의 지배를 받던 나미비아[2]에도 10개의 반투스탄이 설치되었다. 이쪽도 남아공의 반투스탄들과 비슷했지만 1989년 모두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독립한다.
3. 목록
3.1. 남아프리카 공화국 반투스탄 목록
★: 명목상 독립한 반투스탄
- 트란스케이(Transkei) ★ - 1963년 자치, 1976년 독립. 반투스탄 가운데 가장 컸다. 코사족들을 몰아넣고 세운 반투스탄으로 형식상 공화정이었으나 사실상 독재국가. 남아공의 괴뢰국가로 국제사회 어느 국가들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남아공만 인정했다. 초기에는 남아공과의 관계를 끊는 등 다른 모습을 보여줄 듯 했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남아공에 마지못해 재수교했고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이 이어지다가 1990년에 마지막 쿠데타가 일어난 뒤 1994년 다시 남아공으로 재편입되어 소멸. 그래도 넬슨 만델라의 친척[3]이 통치하고 있었던 나라였기에 그나마 다른 반투스탄에 비하면 별 혼란 없이 남아공에 재편입되었고 타 반투스탄에 비해서 상태가 나았다고 평가받는다.
- 보푸타츠와나(Bophuthatswana) ★ - 1972년 자치, 1977년 독립. 보츠와나의 민족인 츠와나족을 몰아넣고 세운 반투스탄. 그나마 좀 명분이 있는 지구였다. 보츠와나 근처에 설립됐고 실제로 보츠와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보푸타츠와나의 민족은 츠와나족이라는 같은 민족으로 위치상으로도 보츠와나 근처에 설립되긴 했다. 차라리 그냥 보츠와나에 통째로 넘겨주면 문제가 덜했을 수도 있지만, 남아공 측은 반투스탄은 남아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민족이 있는 타 국가에 흡수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4] 실제로 당시 국제사회는 보푸타츠와나를 보츠와나에 통합시키는 것을 나름 중재안으로 제시하기도 했을 정도. 카지노를 유치한 뒤, 백인들이 유흥비로 거액을 소비하자 나름대로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듯 보였다. 그러나 지도부가 그 돈을 횡령하는 데 급급하였고, 남아공 정부에서도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는 이유로 돈줄을 쥐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그 돈이 돌아가지 않았다. 몇 차례 쿠데타가 벌어졌지만 당시 남아공 백인정부와 유착한 지도부가 백인정권의 도움을 받아 자국민을 억압함으로 정권을 유지했기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백인정권 실각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정부를 유지하면서 남아공으로의 통합을 반대했다. 그러자 국민들과 공무원들이 파업과 시위에 나서자 결국 항복하여 1994년 남아공에 재편입되었다.
- 벤다(Venda) ★ - 1973년 자치, 1979년 독립. 보츠와나 접경지에 설치되었고 벤다족을 중심으로 한 반투스탄으로 농업과 목축을 주 산업으로 삼았지만 가뭄과 독재정치가 펼쳐지면서 국내정세는 엉망이었으며, 정치도 독재와 쿠데타로 인해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1990년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부가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아공으로 재편입될 때는 별다른 저항없이 통합되었다.
- 시스케이(Ciskei) ★ - 1972년 자치, 1981년 독립. 코사족의 분파인 시스케이족을 중심으로 한 반투스탄. 남아공은 필요에 따라 시스케이의 영역을 조정했으며 따라서 시스케이의 정확한 영역과 인구 수는 집계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시스케이족들은 그 안에서 유목생활을 주로했다. 역시 지도부가 부패했기 때문에 1990년 남아공에서 시대의 대세에 따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합법화할 때도 시스케이 지도부는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ANC를 불법화하고는 극우 백인반군과 연합하기도 했다. 결국 1994년에 항복함으로써 남아공으로 재편입되었다.
- 가잔쿨루(Gazankulu) - 1973년 자치. 총가족 중심.
- 카응과네(KaNgwane) - 1984년 자치. 에스와티니의 주류 민족인 스와티족 중심.
- 콰은데벨레(KwaNdebele) - 1981년 자치. 은데벨레족 중심.
- 콰줄루(KwaZulu) - 1977년 자치. 줄루족 중심. 남아공 재편입 이후로 나탈 주와 합병되어 콰줄루나탈 주가 되었다.
- 레보와(Lebowa) - 1972년 자치. 소토족의 분파인 페디(Pedi)족 중심.
- 콰콰(QwaQwa) - 1974년 자치. 레소토의 주류 민족인 남부 소토족 중심인 반투스탄이었으며 프리스테이트 동남부의 레소토 옆에 조그맣게 위치해 있었다.
3.2.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나미비아) 반투스탄 목록
- 부시맨랜드(Bushmanland)
- 다마라랜드(Damaraland)
- 르호보스 바스터즈(Rehoboth Basters)
- 동카프리비(East Caprivi) - 1976년 자치
- 헤레로랜드(Hereroland) - 1970년 자치
- 카오코랜드(Kaokoland)
- 카방고랜드(Kavangoland) - 1973년 자치
- 나마랜드(Namaland)
- 오밤보랜드(Ovamboland) - 1973년 자치
- 츠와나랜드(Tswanaland)
[1] 1986년 기준. 반투스탄을 만들어 흑인 350만 명을 반투스탄으로 이주시켰지만, 여전히 많은 흑인들은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 등 대도시 부근의 흑인 지정 지구 같은 반투스탄 바깥에 살고 있었다.[2] 당시에는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3] 당시 대통령이 카이저 마탄지마(Kaiser Matanzima, 1915~2003), 총리가 조지 마탄지마(George Matanzima, 1918~2000)였다. 형제지간인 이 둘은 넬슨 만델라의 조카였다.[4] "중국은 단 한 점이라도 작아질 수 없다!" 라는 수식어가 있단 걸 생각하면 당시 남아공 정부가 왜 할양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자국 교민들이 국민으로 돌아오게 된 보츠와나로부터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