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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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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주민 아라칸
굽타 6C 초 ~ 8C 초 팔라 (불교) 왕조 : 8C ~ 12C 세나 왕조 vs 이슬람 1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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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는 북부, J는 중북부, D는 중부, K는 쿨다, G는 남부 삼각주, C는 동남부. 편의상 서벵골 지방의 역사도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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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2. 중세3. 근세4. 근대5. 현대6. 둘러보기

1. 고대

고대에 인도 반도 북부에 인더스 문명이 발생하고, 이후 아리아인의 인도 침공 이후 인도아리아인이 인도 아대륙 동부로 이주하면서 마가다 왕국 등으로 대표되는 갠지스 문명이 일어났다. 갠지스 강 일대에 인도아리아인이 이주하고 마가다 왕국이 세워지면서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상고 시대에는 방글라데시 서북부를 중심으로 하는 푼드라 왕국(Puṇḍravardhana, ?–기원전 4세기)도 마하스탄가르(Mahasthangarh)를 중심으로 유적과 유물을 남겼다.[1] 이후 이 지역은 마우리아 왕조굽타 제국, 팔라 제국 등의 영향권에 들어갔었다.

십육대국을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후 인더스 강 지역과 갠지스 강 지역은 각각 다른 왕조들로 분열되었으나, 이후 굽타 왕조가 나와 북인도를 재통일했다. 마우리아 왕조와 굽타 왕조의 북인도 통일로 인해 당시 갠지스 강과 인더스 강 유역은 동일한 국가와 문화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슬람화 이전 벵골 지역에서는 중세 팔라 왕조가 흥기하면서 벵골어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8세기 중엽 흥기한 팔라 왕조는 대승불교를 국교로 삼은 왕조로, 날란다 대학을 중심으로 번성한 대승불교는 힌두교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밀교로 발전했다. 이후 11세기 말 흥기한 세나 왕조가 팔라 왕조의 세력을 잠식하고, 뒤이어 아프간계 무슬림들이 벵골 지역을 침공했다.

2. 중세

1204년 할지 왕조가 갠지스 강 하류를 점령하면서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할지 왕조의 동벵골 정복 이전까지는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특별히 구분되진 않았으나, 12세기 갠지스 강 하류 삼각주 일대의 밀림이 개간되고 밀림 부족들이 힌두교로 개종해 불가촉천민이 되는 대신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해 이후 벵골 동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반면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인도 문화권으로 편입된 서벵골 지역은 무슬림 왕조들의 계속된 침입에도 불구하고 힌두교 우세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1345년부터 1576년까지 벵골 술탄국이 들어섰으나 무굴 제국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후 무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16세기 갠지스 강 하류의 지류가 바뀌면서 동벵골의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고, 이는 벵골의 인구 증가는 물론 쌀과 면직물, 마직물의 생산량과 수출 증대로 이어졌다. 무굴 제국은 전성기 당시 전 세계 GDP의 약 25% 가량을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50%가 오늘날의 서벵골방글라데시 일대에서 나왔다.

벵골 주민은 대부분 무슬림과 힌두의 혼합적인 민속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벵골 술탄국의 상류층인 아프간 출신 무슬림들과 문화 양식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벵골 농촌의 수피들은 힌두교 사제와도 유사한 의식을 행한 반면, 도회지의 아프간계 출신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슈라프"라고 주장했으며, 부와 신분의 세습을 정당화하였다.

3. 근세

무굴 제국이 쇠퇴하면서 벵골의 토후가 반 독립 상태가 되어 벵골 나왑국(나와브 문서 참조)이 세워졌다. 1717년부터 1818년까지 존속된 나왑국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플라시 전투의 무대가 되었으며, 이후 무굴 제국을 붕괴시킨 마라타 동맹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 마라타 동맹이 대영제국에 의해 패배, 실질적으로는 멸망함에 따라 1877년에 세워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4. 근대

이후에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서벵골과 구분되지 않다가 1905년 무슬림이 많은 지역인 현 방글라데시 지역이 분리되었다. 분리된 목적은 명목상으로는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제론 종교를 이용해 벵골 지역의 독립운동에 분열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 벵골인들은 이에 대해 결사반대했고, 이것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자 결국 영국은 얼마 안 가 벵골 분할령을 철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힌두교도가 주도한 인도국민회의가 무슬림을 은근슬쩍 무시하게 되자 무슬림들은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설한다. 이후 인도 무슬림 연맹이 너무 온건하고 세속적이라고 불만을 품은 무슬림들은 자마아티 이슬라미라는 근본주의 정당을 세웠다.

5. 현대

1947년 인도 제국이 힌두교인 위주인 인도 자치령(후에 인도 공화국)과 무슬림 위주인 파키스탄 자치령(후에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따로 독립하면서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의 영토로 들어갔다. 이렇게 방글라데시는 동벵골(পূর্ববঙ্গ), 혹은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단 파키스탄이라는 이름 하에 한 나라가 되었으나 영토가 파키스탄의 최대 적대국가인 인도의 거대한 국토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분리된 게 아니라 비행기 타고 인도 영공을 거치거나 뺑 돌아서 인도나 스리랑카 등 다른 남아시아 나라들의 인도양 영해를 거쳐 배 타고 가야할 정도로 아주 오래 걸리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작 이 두 지역은 종교가 이슬람이라는 점을 빼고는 겹치는 게 별로 없었다. 언어도 서파키스탄은 펀자브어, 신드어, 파슈툰어 등을 비롯한 여러 언어가 쓰이기 때문에 우르두어 공용화 정책[2]에 불만이 적었던 데 비해 동파키스탄은 지주 계급이나 피난민 중 일부, 줌머인, 로힝야 등 인구의 몇% 남직이나 다른 언어를 썼고,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벵골어만 쓰이던 상황이라 굳이 우르두어를 국어, 공용어로 할 당위성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 정치의 주도권은 파키스탄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서파키스탄이 가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인구는 동파키스탄이 서파키스탄보다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서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을 경제적 식민지마냥 부려먹은 것이었다. 동파키스탄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거의 수탈 수준으로 가져가면서 예산은 서파키스탄보다 적게 배정하고 동파키스탄을 관할하는 공무원 자리에도 고위직은 서파키스탄 출신 인물만 앉히고, 현지 토착민들인 벵골인은 아예 배제하는 등 심각한 차별대우를 일삼았다.

여기에 불난 데 기름 붓듯 서파키스탄은 "한 나라가 되었으니 한 개의 언어를 써야한다"면서 방글라데시에서 많이 쓰는 벵골어를 탄압하고 서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를 쓸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분노한 벵골인들은 수천 년 간 사용해 온 벵골어를 지키자면서 벵골어 국어 운동을 벌였고 그 정점은 1952년 2월 22일 벵골어 국어 운동을 주도하던 다카 대학교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이 날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국가 기념일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에서 세계 모어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결국 서파키스탄에서 항복하여 벵골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지만, 시위에서 군인들이 폭력으로 누른 것이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벵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을 결성했다. 파키스탄 군사 독재자들의 어용 신학자 아불 알라 마우두디가 결성한 자마아티 이슬라미는 아불 알라 마우두디가 샤리아에서 고리대금업을 합법화한 것을 미끼로 방글라데시 내 아슈라프 귀족층 지역 유력자들을 끌어들여, 벵골어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세속주의 불신자라고 선동하게 만들어서 이들을 견제하였다.

1970년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준 열대저기압인 사이클론 볼라가 방글라데시를 내습해 5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에서 받은 원조물자를 불공평하게 배분해 방글라데시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서파키스탄의 빈민층에게 많이 주고 지원이 필요한 동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인들에게는 적게 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동년에 방글라데시의 자치를 주장하는 아와미 연맹이 파키스탄 총선에서 압승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3] 하지만 파키스탄 중앙정부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총선 무효화를 선언했다. 이에 동벵골 지역에선 정부의 총선 무효화에 항의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지자 파키스탄의 야히야 칸 대통령은 아와미 연맹의 당대표였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মুজিবুর রহমান)과 협상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4] 협상이 실패하자 결국 아와미 연맹의 당대표였던 무지부르 라흐만은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파키스탄군이 라흐만을 체포하자 분노한 방글라데시인들은 독립군을 결성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켜 동파키스탄 내의 서파키스탄인들을 공격하여 죽이거나 추방시켰고 방글라데시 일대를 장악했으나 반격을 가한 파키스탄군에게 진압당하고 인도 국경 지대로 밀려났다.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파키스탄군은 방글라데시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방글라데시 측은 이때 30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파키스탄 정부 측은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며 당시 사망자의 수가 2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적으론 5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독립군이 인도 국경에서 게릴라 투쟁을 함에 따라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의 독립군을 폭격하고, 벵골인들 1,000만여 명이 인도로 피난을 오자 이를 계기로 인도군이 참전해 2주일 만에 파키스탄군을 무찌르고, 결국 1971년 방글라데시는 독립했다. 한편 이 당시 파키스탄 군내의 방글라데시 출신 군인들도 집단으로 탈영해 독립군에 가담하여 파키스탄군을 공격하기도 했었다.[5] 묘하게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여 여기 살던 파키스탄 지지자들은 파키스탄에 가서 살려고 하나 거기서도 차별하는 통에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으로는 아와미 연맹의 무지부르 라흐만이 되었다.[6][7] 그는 파키스탄의 사주를 받은 이슬람 극단주의 군부 세력의 쿠데타로 피살되고, 지아우르 라흐만(জিয়াউর রহমান, 1936~1981)이 정권을 장악한다. 라흐만은 반인도 정책을 취하고 이슬람 우위 정책을 삼으면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큰 비난을 당했고 군부 세력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고 지아우르 라흐만 주석 역시 치타공의 호텔에서 부하들과 총살당했으며 이후 신군부의 모하메드 에르샤드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 경제 성장을 어느 정도 이뤄냈으나 그 역시 억압적인 정책과 기근[8]으로 불만이 극에 다한 시민들이 칼레다 지아셰이크 하시나를 중심으로 한 반정부 투쟁이 계속 일어났으며, 1990년 반정부 시위로 에르샤드 주석이 사임하고 일단 민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6년 반정부 시위가 또 일어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3년 2월부터 독립전쟁 중 파키스탄군에 협력했던 전쟁범죄자사형 여부를 두고 하탈(Hartal)[9]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2013년 6월까지 여러 번의 하탈이 있었으며, 내년에 있는 선거까지 하탈이 지속될 전망이다.

2015년부터는 다에시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들까지 계속 발생하는 판국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현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주장하지만 다에시가 공식적으로 주장함에 따라 기정 사실로 여기고 있다. 다만 2017년에 IS의 본거지였던 시리아이라크의 IS 거점지들이 시리아군과 이라크군에게 함락당해 IS가 몰락하게 되면서 지금은 다소 잠잠해진 편이다.

방글라데시의 국교를 폐지해 달라는 세속주의 활동가들의 청원을 고등법원에서 기각했다.기사 링크

2018년에는 7월 29일에 10대 2명이 과속하던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자 반정부시위가 발생했다.#

2018년 12월 30일에 방글라데시는 총선에서 여당인 아와미 연맹이 승리했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3연임을 했다.# 하지만 군부 독재 세력의 후신으로 구성된 야당은 반발하면서 재검표를 요구했다.#

2020년 6월 29일에 다카 인근의 강에서 여객선이 전복돼 최소 23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실종됐다.#

2021년 3월 26일과 27일부터 인도 총리는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으며, 28일, 수많은 시민들이 인도의 무슬림들을 탄압하지 말라며 인도 총리 방문에 대한 시위를 벌였고, 여기서 경찰과 충돌해 사망자들도 나왔다. #, #

2021년 12월 24일에 방글라데시의 남부 강에서 여객선 화재가 일어나 최소 37명이 사망했다.#

2022년 1월 5일에 다카시 인근의 강에서 여객선이 전복돼 8명 이상이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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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하스탄가르의 비문은 기원전 3세기의 것도 남아 있으며, 이후 마하스탄가르 자체는 기원후 8세기까지 존속하였다.[2] 인도 무슬림 근대화 및 파키스탄 독립 운동가 상당수가 우르두어 부흥 운동에 연계되었기 때문에 우르두어를 공용어로 삼으려 했다.[3]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현재 1억 6,000만으로 파키스탄의 인구 2억보다 적지만, 저 당시에는 방글라데시의 인구가 7,500만 명, 서파키스탄의 인구는 6,000만 명으로 정작 방글라데시 인구가 더 많았다.[4] 이 당시 아히야 칸 대통령은 총선 과정에서 동파키스탄 측과 아와미 연맹 측의 부정 행위가 있어 무효화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했으나 라흐만 아와미 연맹 당대표는 아와미 연맹과 동파키스탄을 중앙 권력에서 배제하려고 서파키스탄 측이 총선 무효화를 했다고 격하게 반발하여 협상이 실패했다.[5] 이러한 사례는 과거 다른 나라의 일부였던 국가가 독립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구 유고 내전에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자 유고슬라비아 군내에 있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출신 군 장병들이 신생 국가들의 군대로 신분을 옳기거나 귀순하기도 했고, 1950년대 알제리 전쟁에서도 프랑스 군내에 있었던 알제리 출신 군인들이 프랑스군에서 나가 알제리 독립군에 합류하여 프랑스군과 싸우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역시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군으로 강제 징병되어 끌려갔던 조선 출신 학도병들이 일본군에서 탈영하여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6]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무지부르의 장녀이다.[7] 무지부르 라흐만의 별명이 '벵골의 친구'라는 의미의 '봉고본두(বঙ্গবন্ধু)'인데 방글라데시 해군 주력함으로 한국에서 수입한 프리깃 방가반두 함의 함명도 여기서 온 것이다. 그래서 반 무지부르 파가 집권했을 때는 강제 퇴역을 당하거나 함명이 변경되는 등 나름대로 수모도 겪었다.[8] 방글라데시의 최빈국 이미지가 이 시기를 상징한다.[9] 남아시아에서 파업을 일컫는 말. 하지만 말이 파업이지 사람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소리지르며 돌아다니며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부수거나, 심하면 길가의 가게들의 유리창을 부수고 약탈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론 파업이 아니라 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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