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白旗
하얀 깃발. 항복의 상징으로 유명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교전의사 없음이다. 관련 법률에서는 휴전기(flag of truce)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항공기의 경우, 날개를 좌우로 몇 차례 흔드는 이른바 뱅크 기동(bank or roll)을 통해 백기를 대신한다.
역사적으로 처음 백기가 항복의 의미로 사용된 사료로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 군함이 하얀 천과 올리브 가지를 항복의 표시로 내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69년에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측과 비텔리우스 측이 맞붙은 베드리아쿰 전투에서도 비텔리우스 측이 항복한다는 의미로 백기를 내걸었다는 내용이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따라서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미 백기가 항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에서도 백기가 항복의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사에서는 562년, 신라의 반파국 정벌 때 화랑 사다함이 기병 5천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적진에 백기를 꽂아 병사들이 당황해 무너지는 활약을 했다는 기록과(삼국사기) 신라군이 휴전의 뜻으로 백기를 걸었는데 반파국을 돕기 위해 온 왜군 장수가 백기의 의미를 모르고 똑같이 백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가 신라군에게 잡혔다는 기록이 일본서기 긴메이 덴노 조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백기가 항복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1625년에 네덜란드의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가 라틴어로 쓴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1]에서는 백기가 암묵적이지만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협정의 상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관습법상 항복 혹은 정전의 상징으로 쓰이다가 국제법상 헤이그 협약에서 성문화되었다.
백기를 든 사람과 수행인원은 사절로 인정되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공격당하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백기를 든 사람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거나 반대로 적을 살상하기 위해 백기를 악용하는 행위는 모두 제네바 협약에 의해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보통 국기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나 색상, 화려한 장식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백기가 국기로 쓰인 사례는 거의 없으나 역사적으로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부르봉 왕정복고기 당시 프랑스 왕국의 국기가 백기였다.[2] 또한 프랑스 해군 역시 백기를 해군기로 쓴 역사가 있다. 우마이야 왕조도 백기를 사용했었고, 탈레반 집권 초기 아프가니스탄 국기도 백기였다. 국기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의 미나모토씨는 자신들의 군기로 백기를 사용했으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 등 자신들의 조상을 섬기는 신사의 이름을 백기신사(白旗神社 시로하타 신사)[3]라고 이름지었고 홍백전(紅白戰)[4]의 어원이 되었다.
경찰서의 유치장, 교정본부의 구치소, 교도소, 검찰청의 구치감에 구금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면 백기를 게양한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 사람 집어넣기 위해 만든 곳인 교도소와 구치소는 당연하고, 경찰서·검찰청도 날마다 갖가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판국이니 여기에 백기가 걸려 있는 걸 보는 것은 뒷산에서 산삼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경찰서 유치장에 백기가 걸리면 지역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이다. #1 #2 #3 이 부분은 과거 KBS 스펀지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5] 국군교도소 및 각군 군사경찰대 영창에서도 수용자가 한명도 없을 때 백기를 게양한다. 국군교도소의 경우 육군교도소 시절 1번 잠깐 올라간 적 있고, 그 외 대한민국 육군 제26기계화보병사단(#), 제39보병사단(#) 등 소수의 사례가 있다.
전쟁을 다룬 창작물에서 가끔 등장하는 클리셰로 백기가 없어서 곤란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가령 적에게 항복하려 하거나, 임시 교섭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백기가 없어서 붕대나 비닐봉지나 손수건이나 속옷을 찢어 임시로 백기를 만드는 것. 그런데 깃발의 천이 하도 더러워서 적군이 그걸 보고 "저거 백기라고 봐야 하냐?"라며 황당해 하는 내용이다. 전투 장면 이후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개그씬으로 가끔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이는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는 상황이다. 급박한 최전선에서 일일이 백기까지 챙기고 다닐 여유는 없기에 급조 백기를 만들어 항복하는 것이다. 당장 맨 위의 예시 사진도 사실 비닐봉투다. 미얀마 내전 당시에는 흰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투항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
이종족, 외계종족이 등장하는 창작물에서는 백기의 의미가 해당 종족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라 분란을 유발하는 요소로 쓰이기도 한다. 전설거신 이데온의 외계종족인 버프 클랜에선 백기는 결사항전, 정확히는 절멸전 선포를 의미하며 붉은 깃발이 항복을 뜻한다.
비군사적 용도로, 일기예보에서 맑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달 탐사 당시 달에 꽂힌 성조기들은 모두 자외선에 의해 탈색되어 현재는 백기로 변해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껏해야 뿌옇게 흔적만 남은 성조기로 변해있을 것이다.
2. 인명
- 실존 인물
- 白起 (기원전 ?년 ~ 기원전 257년) - 전국시대 진나라의 인물
- 苩奇 (생몰년 미상)
백제의 장수 - 백제 무왕 때의 장군으로 충청남도 공주지역에 지지기반을 가진 백씨 가문의 인물이다. 616년 10월, 달솔(達率)로 있으면서 8천의 군사를 이끌고 전북 운송에 위치한 신라의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했다. - 가공 인물
3. 百奇
포키의 중국식 명칭.[1] 근대국제법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책이며 이 책 덕분에 후고 그로티우스는 국제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2] 잘 알려진 흰 배경에 노란 백합 문양이 들어간건 왕실기다.[3] 쓰루가오카하치만궁의 섭사. 섭사는 그 신사의 부속신사격이다.[4] 홍색은 타이라씨의 군기에 쓰인 색으로, 따라서 저 말은 겐페이 전쟁을 가리킨다. 현대에는 NHK 홍백가합전의 어원으로도 유명함.[5] 스펀지에서도 어렵게 무주군까지 가서야 백기가 걸린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방영 이후 백기가 걸려 있는지 다시 한 번 갔는데, 그때는 유치장이 인근 지역 경찰서와 통폐합되어서 사라지는 바람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