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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6:23:23

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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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도 있다


파일:external/youlimpilbang.co.kr/P9244473.jpg
<colbgcolor=#dddddd,#222>언어별 명칭
영어 Inkstone
한국어 벼루
한자
중국어 [ruby(砚台, ruby=yàntai)]
일본어 [ruby(硯, ruby=すずり)]
베트남어 [ruby(硯, ruby=nghiȇn)]
1. 개요2. 기타3. 창작물
3.1. 현대 이전3.2. 현대
4. 외부 링크5. 같이보기

1. 개요

을 갈 때 쓰는 그릇 형태의 도구로 서예에 필요하다. 문방사우 중 하나다.

제작재료와 디자인이 천차만별이다. 직사각형 형태가 가장 흔하지만 동그란 것도 있으며, 고급 벼루에는 뚜껑도 있다. 예부터 오석 같은 로 많이 만들었다. 먹이 잘 갈려야 하고 돌의 흡습성이 중요하다 보니 아무 돌로나 만들지는 못한다. 단단해 먹이 잘 갈리면서도 조직이 곱고 치밀하여 물이 쉽게 마르거나 스며들지 않고 잘 담는 재질이 적합하므로 현무암 같은 돌로는 당연히 못 만든다. 한국에선 충청남도에서 산출되는 남포석, 그 중에서도 보령시 쪽에서 채굴하는 남포오석(藍浦烏石)을 제일로 친다.[1] 충북 단양군이나 진천군에서 나는 자석(紫石) 벼루도 조선시대에 유명했다고 한다. 그외에도 등 보석류, 또는 쇠나 나무, 도자기, 자석, 흙, 기와 등으로도 만들기도 한다. 벼루에 화려한 장식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귀한 대접을 받고 가격도 그만큼 비싸다.

현대에는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검은색 플라스틱 싸구려 벼루가 많이 보인다. 가끔 돌가루를 섞어서 제작했다고 광고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벼루는 먹 갈기에 도통하지 않은 한 오래도록 먹을 갈아도 좀처럼 갈리지 않으므로, 귀차니즘을 느낀 학생들은 그냥 문구점에서 파는 먹물을 사다 쓴다. 이런 벼루는 그냥 먹물을 담아 놓는 그릇일 뿐이다. 진짜 돌로 된 벼루는 먹을 한 바퀴만 돌려도 벼루 바닥에 새까맣게 먹이 갈린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먹이 갈리면서 특유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플라스틱 벼루에서는 웬만해서는 이 소리를 듣기 힘들고 미묘하게 먹이 겉돌면서 미끄러진다는 느낌이 든다. 한 마디로 먹이 안 갈린다는 것. 단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무게가 가볍다는 것. 돌 벼루는 재료가 재료인 만큼 굉장히 무겁다.

벼루를 사용하다 보면 먹물이 마른 자리에 찌꺼기가 남는다. 이 찌꺼기가 너무 많이 끼면 먹물이 금방 없어지고 붓에도 찌꺼기가 묻으므로, 쓰고 남은 먹물은 가급적 빨리 씻어내고 칫솔 등을 사용해서 벼루 면에 낀 찌꺼기를 벗겨주며 관리해야 한다.

2. 기타

한쪽 면엔 먹을 갈아 쓰고 다른 한 쪽 면에는 먹물을 담아 쓸 수 있게 만든 양면 벼루라는 것도 있는데, 일본 쿠레타케社 제품이 수입/판매된다.

벼루는 흉기로도 제격이다. 넓이만 해도 거진 마우스패드와 비슷하고 두께도 두꺼운 덩이인데, 심지어 뭉툭한 편이긴 해도 각까지 져 있으니 이걸로 사람 머리라도 후리면 그대로 중상 내지는 사망이다. 조선 인조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받아온 용연석(龍硯石) 벼루를 던졌는데 여기에 맞은 세자가 다쳐서 죽었다는 유명한 야사[2]가 생겼을 정도.

사극에서도 종종 분노하여 상대에게 벼루를 던지는 클리셰가 있다. 일명 벼루샷. 대표적으로 1996년 방영된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형제들을 죽인 후 찾아온 이방원이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자 분노하여 벼루를 던졌고, 이방원은 이마에 맞으며 피를 흘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할 말을 끝까지 한다.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한 뒤의 장면에서 비슷하게 오마쥬했다[3]. 태조 왕건에서는 능애가 아자개와 견훤에게 번갈아가며 벼루에 맞았다.

3. 창작물

전래동화 훈장님과 꿀단지에서 박살나는 물건이다.

3.1. 현대 이전

硯乎硯乎 연호연호
爾麽非爾之恥 이마비이지치
爾雖一寸窪 이수일촌와
寫我無盡意 사아무진의
吾雖六尺長 오수육척장
事業借汝遂 사업차여수
硯乎吾與汝同歸 연호오여여동귀
生由是死由是 생유시사유시

벼루여 벼루여, 네가 작다 하나 너의 부끄러움이 아니로다. 네 비록 한 치쯤 되는 웅덩이지만 끝없는 뜻을 쓰게 하노라. 내 키가 비록 여섯 자나 되지만 사업(事業)은 너를 빌려야 이뤄진다. 벼루여, 나와 너는 함께 돌아가리니, 살아도 너 때문이요, 죽어도 너 때문이라.

3.2. 현대

4. 외부 링크

5. 같이보기



[1] 남포석만큼 널리 알려진 것으로 평안북도 위원군에서 나는 위원 단계석(渭原 端溪石)이 있으나 남북 분단으로 잊혀졌다.[2]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소현세자가 청나라 황제로부터 선물로 받은 벼루를 인조에게 보이면서 자랑했는데, 같이 돌아온 봉림대군은 선물 대신 조선인 포로들을 청해서 받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속이 터져서(또는 세자가 밉살스런 청나라 물건을 칭찬하는 모습에 배알이 꼴려서), 벼루를 내던졌고 이게 세자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또는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야사이다.[3] 재미있는 건 용의 눈물에서 벼루를 맞는 이방원 역을 한 유동근이, 정도전에서는 이성계 역을 맡아서 벼루를 던지는 역할이고, 용의 눈물에서 세종대왕을 연기한 안재모가 정도전에서는 이방원을 연기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