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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1:44:22

정몽주(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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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f22eb04474fd594aeaab90e2021864c.jpg
등장 에피소드 1회~40회, 49~50회
담당 배우 임호, 원덕현 (아역)
인간관계
【펼치기 • 접기】
정도전 (친구 → 적)
이성계 (동지, 벗 → 적)
최영 (동맹 → 적)
이지란 (동맹 당여 → 동지 → 적)
배극렴 (동맹 당여 → 동지 → 적)
조준, 남은, 윤소종 (적)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적)
변안열 (동맹 당여 → 동지 → 적)
조민수 (동맹 → 적)
이색 (스승)
박상충, 권근, 이숭인 (동지)
1. 개요2. 캐스팅 관련3. 작중 행적
3.1. 삼포지교3.2. 요동 정벌3.3. 전조3.4. 괴물이 되다3.5. 선지교에 핀 한 줄기의 대나무3.6. 해후
4. 극중 묘사
4.1. 이성계와 정도전이 바라보는 포은4.2. 단심가의 해석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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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등장인물. 임호가 연기한다. 아역은 원덕현이 연기했다.

2. 캐스팅 관련


임호의 경우 사극에서 워낙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역을 많이 맡은 편이라 정몽주 같은 거물을 연기하기엔 카리스마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조재현의 정도전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못하던 상황에서, 아무것도 없고 이상만 높은 정도전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도와준 친구이자, 기울어가는 고려에게서 희망을 찾는 젊은 관료로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평가가 좋아졌다.

임호와 안재모는 각각 KBS, SBS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을 연기한 바가 있다. 유동근과 임호는 KBS 수목드라마 욕망의 바다에서 처음에는 우애가 좋았다가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서로 대립하는 형제로 나온 적이 있다.

1회부터 정도전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단 둘만 만나는 씬들이 많았는데 5회에서 그 케미가 대폭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몽주랑 엮이기만 하면 사극 내용이 심상찮게 흘러간다. 정도전과 정몽주의 관계는 본 작품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련 OST도 무려 두 개다. 하나는 오랜 벗 또 하나는 삼봉과 포은으로 전자는 정도전과 정몽주의 우정을 묘사할 때, 후자는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결심한 이후 정도전과 정몽주의 길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주로 삽입되었다.

3. 작중 행적

3.1. 삼포지교

"이보게 삼봉!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 만들어 가세. 고려를 바로 세울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네."
"이런 신의 없는 사람 같으니. 평생을 벗하면서 살자 해놓고선, 그 먼 저승길을 혼자 가려 했단 말인가."

정몽주와 정도전의 첫만남은 1회에서 정몽주의 회상으로 등장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 나이로 치면 형뻘인[1] 정몽주에게 다짜고짜 찾아가 시 짓기 대결을 신청한다. 대결이 정몽주의 승리로 끝난후 이색 문하를 떠나려는 정도전에게 정몽주가 다시오기 힘든 기회이니 계속 수학하라고 충고하자, 이색 문하에는 이색 제자랍시고 거들먹거리기나 하는 밥버러지일 뿐이라며 자신의 동문(이자 정몽주의 동문)들을 싸잡아 욕한다. 초반부 묘사만 보면 이런 삐딱선을 받아주고 평생의 지기로 챙겨주는 정몽주가 엄청난 대인배로 보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문 내에서 왕따 신세인 정도전을 챙겨주는 몇 안되는 인물로 정도전이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불의를 보면 일단 따지고 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남의 말도 잘 안듣는 친구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4회에서 신진사대부들을 이끌고 정도전을 지원사격할 때의 포스는 훗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역대 가장 잘생긴 정몽주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8회에서는 모진 고문을 받고 있던 박상충 일행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나서던 중, 이성계에게 얻은 충고로 신진사대부 전체를 보는 등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이인임과 대왕대비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최영이 신진사대부 전원을 줄줄히 국문하는 차에 자신도 구속당하고 만다. 이 내막을 모르는지라 최영에게 깊은 실망을 하고 만다.

10회에서는 5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1380년으로 넘어가면서 복직한 상태. 원자 탄생을 기념해 이인임이 사면을 청하는 것에 유배된 자도 포함하자고 건의하여 정도전을 해배시키려 하나, 그 5년 사이 이인임의 측근으로 변절한 염흥방이 나서 유배된 자도 포함시키되 국사범은 제외하자고 하여 정몽주의 뜻을 좌절시킨다. 그 후 이성계를 믿지 못하는 이인임이 이성계가 깊이 신뢰하면서 충심이 깊어 딴 마음은 못 품게 할 적임자로 정몽주를 지목하여 그를 조전원수로 보내려 하자, 정몽주는 정도전을 경외종편(도성의 출입을 금함)하는 조건으로 유배에서 풀어준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협상을 하고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정도전의 아내에게서 나주에서 영주로 유배지를 옮긴 정도전이 왜구의 습격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정도전이 있던 곳은 다름아닌 정몽주가 조전원수로 내려간 남원. 식량을 훔치려다 잡힌 후 노역을 하고 있었다. 다만 엇갈리면서 만나지 못했으나 정도전이 탈영병으로 몰려 참수될 위기에 처하자 '맹자를 들고 있었다', '밥버러지' 등의 특징을 변안열에게 듣고는 찾아가 정도전과 상봉한다. 즉석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하려 했으나 정도전이 훌쩍 떠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황산대첩에서는 왜구의 진법을 간파하거나 전술적 안목을 보여주기도 하며 실제 역사에서 왜구 토벌에 종사했다는 면모도 묘사되었다.

이성계가 이인임을 명나라 사신으로 보내서 제거하는 공세를, 대의에 맞지 않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정쟁에서 명나라를 이용하는 것은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며, 또한 정말로 내정간섭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지를 펼쳐 이성계를 설득한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런 선례를 만들면 앞으로 너도나도 정적을 명나라의 힘을 빌려 제거하려 들 것이니 나라 꼴이 어찌되겠냐는 논리였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속상한 마음에 이지란과 술을 퍼마시는 이성계에게 찾아가 못 마시는 술도 한 대접 마시고 이성계의 반말 주정도 들어준다.[2] 이런 와중에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행방을 듣고 거처를 찾아왔으나, 아무래도 오랜 세월 헤어진 까닭인지, 정도전의 변한 사상 덕에 점점 사상의 차이가 생겨나고 있다.[3] 사이가 서서히 갈라질 것이라는걸 예고 중. 그치만 위화도 회군창왕 폐위 및 공양왕 옹립 때까지는 정도전과 행보를 같이 하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는 느낄지언정 아직까지는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론 이성계와 계속 엮이는 중으로 14화에서는 이인임의 음모로 궁지에 몰린 이성계를 구하기 위해 여진족 토벌을 명분으로 동북면으로 이성계를 빼돌리는 계책을 내놓고 최영의 도움으로 끝내 이성계를 구한다. 15화에서도 참군이 되어 여진족 토벌을 하는 이성계를 보좌[4] 하고 있었으며, 이성계에게 이인임을 칠 것이란 선언과 그러기 위한 준비가 부족해 시간을 끌 명분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듣고 동북면 왜구의 토벌을 핑계로 이성계의 주둔 시간을 늘리는 책략을 쓴다. 이방원의 과거시험 공부에도 어느 정도 조언을 해준 듯. 하지만 이인임이 어떻게든 이성계를 도성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군무사찰을 보내고, 군량의 일부를 구휼미로 사용하여 명부랑 맞지 않은 것이 들통난 것이 맘에 걸린 정몽주는 도성으로 올라가 문제가 발생할 시 해명과, 도성 내 정보 파악을 목적으로 중앙으로 올라간다. 때문에 역성혁명의 주체를 찾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온 정도전과 길이 엇갈리고 만다.

16화에서는 대학연의로 인해 이인임이 우왕에게 직접 건의해서 받아낸 소환 어명을 가지고 간다. 이 때 이성계를 만나고 돌아온 정도전을 데려가서 다시 독대를 시킨다. 17화에서는 반란을 주장한다던가 계모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이방원의 혈기와 대립하는 모습을 통해 훗날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성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며 그와의 두둑한 친분을 보이는데, 이성계가 최영의 말은 따르지 않아도 정몽주의 조언은 분명히 따를 정도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도성으로 올라온 것도 정몽주의 신뢰가 원인이었다. 좌우지간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고려의 신하로서 도성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는 단언에서 충심을, 그러면서도 장군이 그러실 분이 아님을 알기에 믿고 있다는 말로 두터운 신의를 가진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19화에서는 비록 이성계가 이인임의 당여가 되기는 했으나 그와 여전한 친분을 보인다. 하지만 본인은 이인임의 견제에 밀려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되었다. 그리고 명에 가는 길에 이성계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깐 들른 함주 막사에서 정도전의 정(井)자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끙끙대던 이성계와 이지란에게 그 답이 '정전제'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성계에게 정전제가 무엇인지 설명해 준다. 그 후에 정도전이 왜 이성계에게 정전제를 알려주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지만 아직까지는 깊이 파고들지는 않은 듯하다.

21화에서는 요동에 도착했지만 명나라에 입국 거부를 당해서 직접 요동부사와 얘기를 나누러 가던 중 명나라가 목책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명의 철령위 설치 → 고려의 요동 정벌 시도 → 위화도 회군의 떡밥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곧 개경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개경으로 돌아가게 된다.

22화에서는 개경에 다시 돌아와 한때 사형이였던 염흥방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후 최영에게 이성계의 사직을 막기 위해 며칠만 사면을 늦춰달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 며칠의 말미는 정도전과 최영이 이인임을 꾀어내는 탁월한 미끼가 된다.

23화에서는 슬슬 정도전과 앞으로의 충돌을 암시할 떡밥이 투척된다. 조정인사가 완료된 후 정몽주와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원하는 것을 바라는 글을 올리는데 정도전은 입 구(口)자에 사람 인(人)을 그어 백성들의 입에 밥을 넣어주어 민심을 잡고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달라는 의미에서 역사 사(史)를 올린 반면, 정몽주는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을 그어 변치 않는 마음을 바란다며 충성 충(忠)을 써서 바친 것.그리고 이 둘을 모두 죽인 누군가가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파일:attachment/정몽주(정도전)/Example.jpg
정도전은 그런 정몽주를 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몽주는 아직 딱히 눈치채지는 못한 듯. 물론 각자 다른 뜻이 담긴 한자를 적은 종이를 보고 이성계도 당황해하면서 둘을 번갈아 본 건 포인트.

이후 술에 취해 돌아가는 길에 정도전과의 대화에서 그의 진심이 드러나는데, 그동안 혹시 자신이 배운 유학의 도가 어쩌면 공염불에 불과한 건 아닌지, 세상이 반드시 옳게 돌아가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회의감을 느끼고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전은 자네도 그런 생각을 다 하느냐고 웃자 정몽주는 자신은 사람 아니느냐며 한숨을 쉬지만, 이내 이인임이 몰락하고 자신이 가장 인정하는 선비인 정도전이 성균관 대사성에 오르자 고려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도전과 동일한 고민을 했으나 정도전의 하늘은 오래 전에 고려를 버렸다는 결론과는 정 반대의 결론을 내린 셈. 이제는 자네의 뜻을 펼칠 때라며 미력하게나마 돕겠다는 정몽주의 말에, 정도전은 그런 정몽주를 보며 차마 속내를 털어내지 못한 채 억지로 삼킨다.

3.2. 요동 정벌

"동서고금의 모든 반역이 그렇게 정당화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그 한마디로!"
24화에서는 드디어 요동 정벌을 두고 최영과 대립하게 된다. 이자송을 죽게 만들고 이숭인을 하옥시키는 등 사대부들의 입을 틀어막은 최영이 명나라에게 굽신대기만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 호통치자, 현재 명나라와의 갈등은 사대 자체가 아니라 두 나라 간의 반목과 불신이 원인이라며 사대는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약육강식의 천하에서 소국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라고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5] 이 때 항상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편이었던 평소와는 달리 작중 거의 처음으로 버럭해 가면서 최영에게 맞섰을 정도.

25화에서는 정도전에게 최영이 출정하지 않고 서경에 남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성균관에서의 사대부 회합에서 윤소종이 다들 최영에게 겁먹어 물러난 것 아니냐고 비아냥대자 말을 고르라고 호통을 친다. 이어서 26화에서는 이성계와 조민수가 회군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색과 함께 서경의 막사까지 찾아가 우왕에게 정벌을 취소해 달라고 간언하지만 최영의 명을 받은 숙위군에게 잡혀 끌려나간다. 24화 때 첫 폭발 이후 전체적으로 톤이 강경해지고 있다.

27화에선 정도전과의 대화에서 최영은 무모했고 이성계는 왕명을 거스른 반역을 저질렀다고 표현했다. 즉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 못 하겠다는 소리다. 정도전은 이를 듣고 단순하게 생각하라며 "최영은 이상을 본 것이고 이성계는 현실을 본 것이네"라는 충고를 한다. 이에 정몽주는 "임금에 대한 충정이 현실이라는 것에 뒤엎어질 만큼 별 볼일없는 가치였던가"라며 한탄한다. 그리고 이성계의 최영 탄핵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성계를 찾아가서 직접 대면을 한다. 이성계는 정몽주에게 자신이 반역자가 아니며 회군의 대의를 항변하지만 정몽주는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반역은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한 마디에로 정당화되었다며 이성계의 결정에 매서운 질책을 가한다. 이성계는 이에 격분하지만, 사실 정몽주가 여기 온 이유는 이성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몽주는 이어 "내일이면! 수많은 병사들이 죽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이 한 사람의 역심에 희생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나라 고려의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죽는 것인지 내 알아야 겠습니다! 장군의 마음 속에는 정녕 한 줌의 역심도 없는 것입니까!"라고 외치며 이성계에게 정말 역심이 없는지 묻는다. 역심이 없다고 단언하는 이성계의 말을 듣고 그를 지지할 것을 표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는데, 정몽주가 이성계에게 역심이 없는지 한 번 더 되묻는데, 이성계가 두 번째 대답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인다. 정몽주의 이성계에 대한 지지선언은 앞서 정도전이 이성계는 현실을 본 것이란 평에 따르면 정몽주가 현실과 타협한 셈이 된다. 실제 역사에서 신진 사대부들은 위화도 회군을 방관했으니 정몽주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후 정몽주와 온건파 신진 사대부들은 창왕 폐위 때까진 이성계 일파와 함께하게 된다.

28화에선 개경의 참상을 보면서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냐고 나직하게 탄식하다 곁에서 정도전이 "언젠 고려가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가?" 하는 말을 듣고 심난해한다. 그 후 우왕에게서 이성계에게 잘 말해서 오해를 풀게 해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 윤소종이 이성계에게 한서 곽광전을 바치는 것을 보고 비난한 뒤 이성계를 설득해 군권을 반납하게 하려 하지만, 곁에서 폐위를 암시한 정도전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정도전에게 따진다.
정도전: 자네가 내게 준 서책인 '맹자'를 잊었는가? 용상에만 앉아있으면 군왕이라 하던가? '인'과 '의'를 지켜야만 비로소 군왕일세. '인'과 '의'를 해치면 군왕이 아닌 도적일세. 도적놈을 용상에서 끌어내리겠다는게,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
정몽주: 군왕의 방종을 경계하라는 경고일 뿐일세. 그 말을 지나치게 신봉하였다간, 찬탈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한단 말일세!
정도전: 자네에겐 오류일지 모르나 나에겐 진리일세.
정몽주: 뭐라...? 허면... 찬탈마저도 자네에겐 진리인 것인가?
위와 같은 정몽주의 질문에 정도전은 친구 앞에서 차마 그것만은 긍정하지 못하고 "그건 아닐세"라고 거짓말을 한다.

3.3. 전조

"내 평생에! 임금의 성씨는 오직 하나, 왕씨일세."
29화에서 간만에 정도전에게 찾아가 술잔을 나누면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인 위화도 회군, 우왕 폐위 등의 사건이 줄줄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었으나, 자신은 학자 이전에 정치가로서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후 화합으로서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그 권문세가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겠다며 그를 위해 정창군 왕요를 세우겠다는 정도전을 지지하겠다고 속내를 밝히는데 정도전은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술을 마신다.[6] 이후 편전에서 정창군 왕요의 즉위에 동의하여 소장파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한동안 정도전과 뜻을 같이 하게 된다. 이때 동의하는 사람의 수를 세던 권근이 당혹한 얼굴로 바라본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지만 꼭 필요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해야하니까요. (중략) 힘 없는 백성들이 기대야할 곳은 미우나고우나 정치 뿐입니다."
30회에서는 이성계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은퇴하려하자 정도전과 함께 그를 만류하고자 노력한다. 이 때도 정도전과 정몽주의 성격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정도전은 이성계를 비난하며 적극적으로 다시 정치로 끌어들이려 하는 반면 정몽주는 이성계의 의견을 존중하며 정 싫다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성계는 정몽주에게 난장판같은 정치를 왜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정몽주는 비록 가혹한 정치라도 그것은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며, 좋으나 싫으나 백성들이 기댈 곳은 정치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는 정도전의 도망치지 말고 싸우라는 말과 함께 이성계의 심경 변화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인임 복귀 문제를 두고서 벗 정도전과 스승 이색을 모욕하면서 갈등을 빚자 정도전의 태도를 나무라기도 하지만, 결국 대의에 목숨을 걸라는 스승에게 배운 바를 따를 뿐이니 결국 스승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라며 사실상 이색의 지시를 거부하고 정도전의 뜻에 동참하기로 한다.

그리고 혼자서 편전 앞에서 항소하다가 숙위군에게 수모를 당한 정도전 앞에 나타나 과거 북원 사신 맞이를 반대하기 위해 편전 앞에서 함께 항소하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 때와 같이 함께 편전 앞에서 엎드려 항소한다. 정몽주가 사지 멀쩡하게 나가게 된다면 스승님께 사과하라고 핀잔도 주는데 그때 정도전은 살짝 토라진 듯 대꾸가 없다. 그러다 이러고 있으니 북원 사신을 반대할 때가 떠오른다며 어디 목청도 예전 그대로인지 한 번 보자고 하자 그제야 웃는다. 숙위군에게 끌려나오던 도중 나타난 이성계 덕에 수모를 면하고, 이성계가 병사에게 맞고 쓰러져 있던 정도전에게 '함께 싸우자'며 손을 내밀자 곁에서 그 무시무시한 의미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31회에선 오랜만에 1, 2화에서 나왔던 계곡에서 정도전과 술자리를 한다. 이때 정도전은 자신은 조준이란 비장의 무기가 있었지만, 그걸 모른 자네는 왜 나와 함께 위험을 무릅썼느냐는 질문에, 대의와 명분과 정도전이 거기에 있었기에 같이 했다며 자네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어도 그리 했을 것이다며 정도전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이 말을 들은 정도전의 얼굴빛이 갈수록 어두워짐에도 불구하고 그걸 눈치 못챈 정몽주는 이성계, 정도전과 함께 나아가는 더 좋은 미래를 다짐한다. 그 말을 들은 정도전도 자신의 구상이라며 한 마디 한다. 그 구상이란 자신이 만든 나라에서 정몽주가 문하시중이 되어 화합의 정치를 펼치는 것. 정몽주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른 채, 왜 자네의 구상인데 내가 문하시중이냐며 문하시중은 자네가 해야 한다 핀잔을 주며 좋게좋게 넘어간다.

이후 조준의 상소로 사전혁파 논쟁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개혁에 부분적으로 찬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스승 이색과 정도전이 이 논쟁으로 인해 사제관계가 결단나자 정몽주는 고뇌하고 이성계에게 가서 개혁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수백년을 이어 온 사전의 혁파는 쉬운 일도 아니고, 개혁안의 급격함으로 인해 벌써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며 속도 조절을 하자는 조언을 한다. 더불어 계속 논의하다보면 실행가능한 토지개혁안이 만들어 질 것이란 긍정적인 생각도 내비친다.

이성계가 정몽주의 조언을 거절했는지 아니면 그냥 넘겼는지 나오진 않지만, 분명한 건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정치에 대해 전적으로 맡겼기에 정몽주에게 찬동한건 아니다. 파문당한 정도전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술을 사가 자리를 만든 이성계는 자리 도중 "다른 건 몰라도 포은 선생만큼은 적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포은 선생은 나에게 대업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내비치고 정도전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리 만들 것이라 하고 소생에게도 포은은 목숨과도 같은 존재라고 동의하여 정몽주도 역성혁명에 포섭할 뜻에 한 의견을 모았다. 정몽주란 존재가 두 사람에게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니, 스포일러역사를 아는 후세 시청자들 입장에선 그저 안타깝고 씁쓸한 대목.

32화에서 이색이 이성계를 적대시하며 음모, 술수의 정치를 쓰자 이를 비판하고 이성계를 이해하자며 설득하지만 끝내 실패. 뒤이어 온 정도전이 사대부들을 말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정몽주는 정도전이 자신 앞에서조차 이색을 '이색 대감'이라고 부르며 사제간의 연을 회복할 생각을 포기하는 모습에 노여워하며 자신이 개혁의 속도를 늦춰달라고 했는데도 무시한 점을 들어 이 이상 협조를 바라지 말라며 부탁을 거절한다. 끝내 이방원이 이성계를 대신하여 명나라로 가게 된 이후, 그들의 안전을 답보하기 위해 최영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고뇌하는 이성계에게 안타깝지만 최영을 죽여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사신이 돌아온 이후 이색의 1전1주제가 대체책으로 나오자 이성계에게 비록 계민수전 만큼은 아니지만 이도 분명 개혁안임을 적극 설명하며 이색에게 양보를 하자고 한다. 뒤이어 온 정도전이 물러서는 것은 항복이라며 반대하자 그 과격함을 비판하며 이러니까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려는 오해를 산다는 비판을 한다. 이 말을 듣자 정도전은 순간 당황하고, 이성계는 정몽주가 나가자 점쟁이가 따로 없다며 혀를 찬다. 이후 조준의 계민수전과 이색의 1전1주제를 표결하는 자리에서 표결에 붙일 것이 아니라 대화로 결론을 이끌어내자고 주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기권하고 나가버린다. 표결로 붙이면 당파간 세불리기가 주력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33화에선 정도전이 이색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을 음모로 척결하자, 이것이 정도전의 짓임을 직감하고 살벌하리만치 분노에 찬 눈빛을 보내고는 도당을 뛰쳐나간다. 정도전이 이색과 동문들을 무마시켜 달라고 요구하자 대로하여 "나더러 이 비열한 짓거리에 동조를 하라고!!"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을 정도의 분노를 보이며 정도전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정도전에게 끝까지 전제개혁에 실패한다면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기라도 할 것이냐고 묻지만 이색이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때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동문들에게 누명을 씌워 숙청하려는 정도전파의 계획을 막기 위해 그들의 뒷배 이성계를 찾아가 이야기하지만 이성계가 그들을 '말로만 백성을 떠들면서 제 땅만 챙기는 미친개들'이라며 절대 풀어주지 않겠다고 소리치자 백성의 아픔을 직접 어루만져야 하는 이는 신하가 아니라 군주라며 신하의 금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7]

만약 왕 외의 인물이 필요 이상으로 민심을 얻을 경우 그 자는 민심을 얻어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인물, 즉 역적모의를 꾸미는 자로 의심받게 된다. 이 말을 하는 극 중의 정몽주는 절대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며 이성계만큼 민심을 대놓고 얻으려는 인물은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는다. 민본을 주장하는 정도전조차 선을 넘지 않는다. 즉 본 드라마는 시대상의 반영, 시대적 한계를 드라마상에 묘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와중 김저의 변에 연루되어 변안열 등의 보수파들이 숙청을 맞고 창왕마저 폐위의 위기에 몰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근비에게 이성계를 찾아가 폐위를 저지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이성계의 오해받는 김에 뒤집어버리면 어떻냐는 불온한 발언과 전제개혁 이상으로 금상의 폐위에 집착하는 정도전을 보면서 불길한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정도전을 찾아가 "자네는 역성을 꿈꾸는가?"라며 따져 묻는다.

이성계 일당에 대한 의혹이 강해지면서 이성계, 정도전과의 다툼이 일어났지만 33화 시점까지도 정몽주는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할 마음이 없다고 믿는 모습을 보였다. 작중 정몽주는 자신이 이성계와 알아온 세월이 24년이라며 맘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단언하는데, 확실히 그만한 신뢰가 쌓일 만한 시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도성 내에 퍼진 목자득국(木子得國)의 노래를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 그 신뢰도 불안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3.4. 괴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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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맨 위에 있는 캐릭터 프로필 사진의 눈빛과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의 눈빛과 비교하면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만큼 인상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그만큼 이 때의 정몽주가 굉장히 비정해졌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못난 부모라고 외면하면, 그것을 어찌 자식이라 하겠습니까. 못난 부모라서 더 애착이 가고, 가슴이 아립니다."[8]
"40년지기 삼봉과 포은은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각자의 대의에 함몰된, 두 마리의 괴물이 있을 뿐입니다."[9]
"스승님! 그러기엔 저들은 너무 강하고, 소생은 너무나 나약합니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소생도 괴물이 될 것입니다."



34화에서 결국 두 사람의 역성에 대한 야망을 확인한다. 이에 정몽주는 진노. 정도전은 그런 정몽주를 회유하지만 정몽주는 역성혁명이 일어나는 순간 나라는 끝없는 반란의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런 정도전의 마음을 걷어 차버린다. 그 후 이성계 일파가 선위를 위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흥국사로 중신들을 초청하자 창왕에게 같이 가서 신료들에게 폐위를 거부하는 말을 해 달라고 요청하나 근비와 창왕 둘 다 안전을 이유로 거부하고 정몽주는 결국 왕씨 성의 종묘사직이라도 지키기 위해 폐가입진(廢假入眞)의 논리[10]를 내세워 창왕의 폐위와 정창군의 옹립을 주장한다. 이성계와의 독대에서 자신의 고려에 대한 충심을 명확히 밝히고 끝내 정창군 옹립을 관철시키는데 성공, 사실상 정도전파의 1차 대업 시도를 혼자서, 그것도 말 몇 마디로 뒤엎어버리는 무서운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창왕의 폐위를 주도하면서 정비 앞에서 목소리를 싹 깔고 교지를 내려달라고 말한다. 정몽주에 대한 배신감에 사무친 정비가 "대제학은 이러시는 게 아닙니다! 이성계 대감을 설득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폐위라니요! 폐가입진이라니요!"라며 절규하자 떨리는 목소리를 꾹 참고 "모르고 계셨사옵니까. 금상은 신씨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결국 폐위 교지가 내려지자 편전으로 군사를 몰고 들어가 창왕과 근비를 끌어낸다. 철석같이 믿고있던 정몽주에게 배신당하자 군사들에게 끌려나가면서도 독설을 퍼붓는 근비와 영문도 모른 채 끌려나가는 창왕을 차갑게 외면하지만 이내 털썩 주저앉아 혼자서 치밀어오르는 분루를 삼킨다. 여기서 정몽주 역할의 임호의 열연이 돋보이는데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 우왕의 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다 손자뻘 되는[11] 어린 임금을 폐위시키고 성씨와 혈통까지 바꿔버렸다. 고려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던 정몽주에게 그 고통스러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정도전의 회유는 계속 됐으나 다 거부. 그리고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바보짓을 하는 공양왕의 의도를 알고 공양왕의 자신이 무언가를 해도 그것은 자신의 뜻이 아닌 정몽주의 뜻이어야 한다는 고려를 지키기 위한 몸바둥을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이색의 정계 복귀를 앞장서게 되고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정도전에게 멱살을 잡으며 이제 싸울 마음이 드느냐고 일갈한다.

35화에선 이성계의 야심을 알면서도 그와의 접촉을 계속하는데 이를 이용해 윤소종 등이 낸 이색에 대한 탄핵[12]을 물리고자 하나 결국 실패. 눈뜨고 스승의 고초를 지켜보게 된다. 공양왕 2년으로 건너뛴 후에도 문하찬성사로서 계민수전 찬성파인 조준과 반대파인 우현보의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으로 나와 여전히 화합의 정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정도전에게 '아직 간관의 3할은 나의 사람이며 뭔가 걸리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라며 삼봉에 경고를 할 정도로 살벌한 사이가 되어 버렸고, 윤이와 이초의 거짓 고변으로 명나라와 트러블이 발생하자 정도전을 사신으로 추천하여 조정에서 손을 떼게 만든다. 정도전은 이를 순순히 받아 들였으나, 오히려 자신이 가기 전에 계민수전을 끝내기 위해서 우현보 등의 중신들을 별다른 혐의도 없이 숙청해버린다. 이에 대로한 정몽주는 정도전을 이인임을 능가하는 괴물로 평가하며 인간과의 싸움이 아닌 괴물잡는 싸움을 할 것을 선언한다.

정도전이 떠난 뒤 전제개혁의 필두가 된 조준과 얘기를 나누며 과전법이란 현실적인 대안을 끄집어 내고 이로 계민수전을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13] 그리고 요양에서 돌아온 이성계를 무릎까지 꿇어가며 설득하여 계민수전을 포기시키고 절충안인 과전법을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한다. 정몽주가 이성계를 설득할 때 계민수전을 민심을 얻어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고자하는 정도전 일파의 음모라는 말을 하는데, 31화에서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전재개혁은 정적을 가르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거니와 36화 예고에서 정도전의 말을 보면 그 말 그대로다. 정몽주의 정치적 안목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급진파가 처음 내세운 것보다는 온건한 방향이지만 고려의 오랜 문제였던 전제개혁에 성공했고 그러면서 계민수전으로 이성계를 절대 선으로 메이킹해 보위에 앉히려던 정도전의 '대업'은 또 다시 한참 물러섰다. 정도전이 스승과 절연하고 온갖 정치적 숙청을 자행하면서까지 추진하던 민본대업의 근간인 정도전의 계민수전을 통한 역성혁명 전략을, 어떠한 강압적 방식도 사용하지 않고 좌초시키며 개혁과 역성 저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말 그대로 먼치킨 정치가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36화에서는 포은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이룬 대업은 무의미하다는 이성계의 뜻에 따라서 수문하시중으로 천거되며, 문하시중이 되었으나 도당에 나오지 않는 이성계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조정을 총괄하게 된다. 정도전이 명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수시중이 된 후였다. 그래서 명에서 돌아온 직후라서 아직 인사 이동을 모르는 정도전이 '내정을 총괄하는 수시중(이성계)에게 전제개혁 재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하자 새 수시중 정몽주는 가소롭다는 듯이 "한번 열심히 해 보시게. 내 들어는 줄 테니까."라며 냉소한다.


그러나 그는 이성계의 뜻과 달리 고려를 위해서 정도전과의 지난 우정까지 모두 도려내고자 굳게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정도전과의 옛 우정을 생각하며 선죽교로 추측되는 다리에서 고뇌하다 역시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다리를 찾은 정도전과 마주치는데, 정도전이 수시중이 된 것을 축하한다하며 '계민수전을 포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지만, 정몽주는 단호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은 협조가 아니라 정도전이 역성을 포기하고 망나니같은 당여들과 정치판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정도전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한숨을 쉬더니 조만간 답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사직을 위태롭게 만드는 정도전과 그 일파를 상대로 고려사수를 위한 외롭고 괴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정도전의 축하 인사에 대한 답례로 먼저 성균사예 유백순을 뒤에서 조종해 정도전에 대한 탄핵 상소를 올리게 한 뒤, 이를 처벌하여 연막을 펼치면서 동시에 정도전의 자택유폐를 최대한 신속히 그리고 철저하게 하여 사건에 끼어들 여지를 없게 만든다. 그 후 관리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재상이 추문의 대상이 된 것은 정도전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논지[14]를 들어 그를 평양부윤으로 강등시키고 사실상 조정에서 물러나게 만든다.

'고려실록 편찬' 작업을 계획하면서 이색과 그 제자들을 정계에 복귀시키려는 시도를 하며, 이 때 정몽주가 성균사예를 정도전 제거를 위한 총알받이를 사용했음을 눈치 챈 이색은 '군자는 더러운 곳에 있더라도 고결함을 잊지 않는다'는 구절을 말하며 정몽주다움을 잃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에 정몽주는 상대는 너무도 강대하고 자신은 나약하다며 공명정대만으로는 도저히 혼자서 싸울 수 없다는 한탄을 토로하고, 괴물과 싸우기 위해 자신도 괴물이 될 것이라며 왕조를 지키기 위해 손을 더립히는 길을 선택했음을 내보인다.

이방원에게 정도전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부탁받지만 거절하고, 넌지시 경고를 건네는 이방원을 더이상 유치한 협박을 들어주지 않겠다며 묵살한다. 이 문제로 남은을 비롯한 정도전파 인물들과 크게 마찰을 일으키지만 정도전이 평양행을 수용함으로써 정국은 잠시 진정된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이를 정몽주에 대한 정치적 양보 정도로 여기고 있는데, 문제는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명예도 사상도 다 버릴 기세라는 것이 문제.

37회에서 이성계의 고향의 처(한씨)가 위독하여 이성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현보를 개경의 주막에서 만나며, 여기서 과전법을 환영하는 백성들이 쌀밥을 이밥, 곧 이성계가 준 밥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정몽주가 계민수전을 무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의 전제개혁을 통한 역성혁명 전략은 성공 직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군사력도, 권세도 이성계의 손에 있는 상황에서 민심조차 명백히 이성계에게 향하고 있는 것, 이전의 아이들의 목자득국의 노래와는 달리, 이밥은 사리분별이 가능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였고, 이는 차원이 다른 민심의 이동이다.

그리고 정몽주는 이 만남에서 정도전의 모계가 노비 출신인 것을 끄집어내, 간적이자 노비인 정도전을 탄핵한다는 강경수를 두기로 결의한다. 참고로 이는 고려사 정도전 열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남은이 정도전이 천출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료를 가져오자 조소를 지으면서 정도전이 쓴 것이니 믿을 수 없다면서 남은을 향해 던진다. 이 장면에서 세상 어느 유자가 아버지에 대한 걸 조작하느냐고 따지는 남은에게 정몽주가 하는 말이 참으로 차갑다. "삼봉 정도전이 유자였던 모양이구려." 동문수학했던, 아니 그 이상으로 절친했던 벗을 부정해가는 모습에서 정몽주 역시 철저한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지껏 단 한번도 힘이 있어 싸운 적은 없었네. 내가 믿는 것은 오로지 대의, 내게 힘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대의네."
국문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뒤 옥에 갇힌 정도전을 찾아가 천출임을 자백하라는 권유를 하지만, 정도전에게 도리어 아직 자신은 포은과의 대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듣는다. 낡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상적인 성리학의 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정도전에게 '이 고려 안에서, 나 정몽주가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일축한다. 이에 정도전이 고려에서는 불가능하다며 분통을 터뜨리자 이렇게 말한다.
고려를 우습게 보지 말게. 천하에 존재하는 나라 중에 가장 오래된 나라일세. 몽고족에 맞서 육십 년을 싸워 지킨 나라이고, 중원의 대국조차 만들지 못한 쇠활자대장경을 만든 고매한 정신의 나라이고, 나 포은 정몽주에게 뼈와 살을 만들어준, 나의 전부일세![15]

그 후 각자의 대의를 밝히며 끝까지 고려를 수호할 것임을 선언하고 정도전을 유배보낸다. 이 때 이성계가 도성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웃음을 띠며 이성계를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이성계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무시해버리고 도리어 공양왕과의 독대에서 사직을 통보해버린다. 이에 정몽주는 공양왕의 불윤비답을 가지고 이성계를 찾아간다. 이때 정몽주는 아직 이성계에게 충심이 남아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성계의 대업은 삼봉과 새 왕조를 여는 것이 아닌 자신과 함께 고려를 이끄는 것이라며 그를 설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를 무시하고는 도리어 자신의 대업은 정도전과 정몽주를 좌우에 두고 용상에 앉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자신은 왕이 될 것이라 소리친다.

20년 넘게 친분을 유지했고 자신의 능력으로 교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이 알고보니 역적 무리의 수괴였음을 깨달은 정몽주는 그놈의 대업 운운에 이성계마저 괴물이 되었다며 냉소한다. 이에 상을 엎어버릴 정도로 격노한 이성계가 도성을 피바다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네 손으로 옥새 갖고 와 바치라고 협박하지만 아랑곳없이 "날 죽이고 내 손목을 잘라 거기에 옥새를 쥐게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라고 응수한다. 그리 못할 것 같냐며 재차 위협하는 이성계에게 내가 당신에게 전해줄 것은 공양왕의 불윤비답 뿐이라고 일침을 놓고 나가버린다.

언제나 이성계에게 정중히 존대를 하고 자신을 '소생'이라고 낮추던 정몽주가 이때부턴 '나'라는 1인칭과 하오체를 쓴다. 극중 정몽주는 인품있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한 훌륭한 무장을 정도전의 무리들이 대업을 구실삼아 잘못된 길인 역성혁명으로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도전만 족치면 이성계를 다시 고려의 수호자로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정도전에겐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와중에도 이성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이성계가 본심을 드러냈으니 결국 이성계 역시 자신의 적임을 선언하는 장면이 된다.

38회에서 이성계가 낙마하여 삶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독수리가 땅에 떨어진 틈에 날개를 꺾어버려야 할 것이라며 이성계의 당여들을 숙청해나가기 시작한다.[16] 조준 등은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자 했으나, 아직 낙마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진즉부터 이성계의 동향을 살펴서 정보를 알고 있던 정몽주의 행동이 더 빨랐다. 이 숙청에 불만을 품은 배극렴이 무장한 채 도당에 난입하여 정몽주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유배를 취소하라고 협박하지만, 정몽주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유배 문제를 재론하고 싶다면 문하시중 이성계를 모셔오라며 냉소한다.

이성계의 사고를 숨겨야 했던 배극렴이 꼼짝없이 물러난 뒤, 이성계를 차제에 아예 제거해야 한다는 공양왕의 의견에 도당에서 홀로 고민하다가 숙위병을 벽란도로 보내서 의식을 잃은 이성계의 암살을 지시하지만 병사들은 이성계의 허실지계에 속아 소득 없이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이성계는 결국 개경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쓰러져버렸고, 정몽주는 이성계가 회복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한다.

역성혁명파 사대부들을 전부 귀양보내고 이색 계열 사대부들을 재등용하며 세를 불리는 중에, 하륜에게서 얼굴에 살(煞)[17]이 끼었으니 너무 일을 서두르지 말라는 말을 듣지만 그냥 유하게 웃어넘긴다. 여기서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린것이라 말했는데 이방원이 처음 등장할 했을 때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인명은 재천이라 말했지만 이방원은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유배갔던 정도전을 개경으로 압송, 그 술잔을 기울이던 냇가에 술잔을 놓고 내일 참형에 처하라는 명이 내려졌다는 말을 하면서 정도전과 최후의 술잔을 들이킨다. 술을 마시면서 정도전 그대는 자신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으면서 죽이지 않았는데, 나도 그거 알고 있으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살려달라고 자신에게 부탁해달라고 하지만, 정도전은 되려 담담하게 죽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정몽주는 만약 젊은 시절 정도전이 유배를 갔을 때 자신이 맹자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비극도 없었을까 묻지만, 정도전은 나의 스승은 맹자가 아니라 백성이었기에 결국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참으로 나약해 보이지만 더없이 끈질기고 강인한 존재, 그게 백성들일세. 해서 나는 믿네. 이번이 아니되면 그 다음에, 그 다음이 아니되면 또 그 다음. 언젠가, 진정한 백성의 나라가 이 삼한 땅에 세워질 것이라고 말일세."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정몽주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편히 가시게'라는 말로 작별을 고하며 울먹거리다 기어이 눈물을 쏟고, 정도전도 건승을 빌며 작별인사를 전한다.

3.5. 선지교에 핀 한 줄기의 대나무



아침에 집을 나서려는데 개가 말리려는 듯 신 한 짝을 가져갔다. 그리고 조정에 나와 이성계가 깨어났다는 급보를 듣는데, 이성계가 그대로 집에 머무르면서 '숨 쉬는 것 빼곤 조정의 모든 대소사는 자신의 허가를 받으라'는 명을 내리는 바람에 정몽주의 권력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정도전의 처형이 미뤄지자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처형을 막으려는 상소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성계를 찾아간다.

위험하다며 공양왕의 만류를 받지만 백성들과 신료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가야 한다며 결국 이성계를 문병하러 찾아간 정몽주는[18] 단검을 내밀며 이성계에게 삼봉과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성계는 자신, 삼봉과 포은 셋이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면서 삼봉과 함께 손 잡고 오길 부탁하면서 손을 잡지만, 정몽주는 그 손을 뿌리치고 거절하여 이성계로부터 절연 선언을 듣는다. 이때 정몽주의 어투는 이성계와 적대하기 전인 온화한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이성계와 정도전이 정몽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방원은 고심 끝에[19] 하여가를 통해 정몽주를 자신의 사저에 초대하여 "한 번 쯤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지 않는가?"라며 마지막으로 진심어린 설득을 하지만[20] 정몽주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라면 그러겠지만 역류에는 그럴 수 없다."대답과 함께 단심가를 이성계에서 전해달라며 거절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상가에 들르고자 선지교를 지나려고 했지만 말이 갑자기 멈춰서서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자 말에서 내려 같이 온 종에게 말을 이끌고 먼저 사저로 돌아가라고 하며, 자신은 선지교로 간다.[21] 그리고 선지교에서 정도전과 이성계의 눈물과 성심어린 설득을 회상하던 중, 이내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 자객들에게 둘러싸인다. 조영규가 이방원의 전언인 '대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정몽주에게 전한다.
내 이런 순간이 오리라 예감은 하고 있었다만, 정녕 천하의 몹쓸 망종이 아니더냐!
(조영무: 닥치시오!)
방원이에게 전하거라. 고려의 충신으로 죽게 해주어 고맙다고! 이제 너희의 대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찬탈이 되어버렸다고![22]
(조영규 일당이 접근해오기 시작)
...네 이놈들!!!
소생 정몽주. 존경하는 장수이자 평생의 벗. 이성계 대감에게 시 한 수 적어봅니다.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조영무, 조영규 일당에게 칼에 난자당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向主一片丹心寧有改理與之)...
(이성계는 정몽주한테 받은 서찰을 본 후 손에 힘이 풀리고 통곡을 한다. 그리고, 조영규는 철퇴를 받고 죽어가는 정몽주를 기합을 하며 정몽주의 머리를 내리친다. 결국 정몽주는 눈을 뜬 채로 사망한다. 그리고 조영규가 들고 있는 철퇴에는 피가 줄줄 흘린다.)
(이성계: 포은 선생! 포은!! 포은 선생!!!)

결국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칼과 철퇴에 난자당해 사망한다.[23] 다른 자객들이 칼로 몸통을 여러 번 베었고 마지막에 조영규가 철퇴로 머리를 내리쳐 마무리했다.[24] 그가 난자당할 당시 얄궂게도 그가 남긴 단심가가 이성계에게 도달하며, 단심가가 낭송되는 동시에 정몽주의 난자 장면이 오버랩된다. 더구나 피살당하는 정몽주의 눈가에 피가 맺혀 흐르는 모습이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은 바로 그날 석방된 정도전의 눈에 띄게 되고, 정도전은 피투성이가 된 40년 지기의 시신을 껴안고 울부짖고 만다. 이 때 정도전을 안내한 배극렴조차 정몽주라는 인물이 정도전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아서였는지 차마 어떤 말도 그에게 꺼내지 못하고 그저 "가보시면 압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쉬며 저기로 가보라고 밖에 하지 못했다.[25]

이 때 그의 인생을 회고하는 나레이션이 깔렸다.
포은 정몽주.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대과의 초장, 중장, 삼장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명석했는데, 스승인 이색은 그를 가리켜 성리학의 조종이라고 극찬하였다. 당대 최고의 외교가로서 경색되었던 명나라와의 관계를 개선시켰으며, 왜구에게 잡혀갔던 수백 명의 고려 백성을 귀국시키기도 했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함께 고려의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갈라섰다. 망해가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는 서기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목숨까지 바쳤던 정몽주의 충절은 그가 남긴 단심가와 더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본관은 영일, 시호는 문충이다.

40화에는 39화 마지막 장면에서 살짝 이어진 후 시신이 적당히 정리되어 묻혀있는데, 사후 나라의 간적으로 몰려서인지 묘비도 없이 정말 황량하다.[26] 그리고 그가 죽자마자 이성계 일파는 왕실을 맹공격하여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백성들은 이성계 일파에게서 온건파 신진사대부로 마음을 돌리게 되고 이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3.6. 해후

"삼봉, 이제 됐네. 자넨 할 만큼 하였어. 이제 가세."

49회에서 오랜만에 개경을 방문한 정도전이 묘지를 찾으면서 정몽주와 추억을 나누었던 장면을 회상하는 것으로 등장했다.

2014년 6월 29일 방영된 50회(최종회)에선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방원에게[27] 베인 정도전이 죽어가면서 정몽주의 환영을 보게 되는데 그는 정도전에게 이제 할만큼 했다며 손을 내민다. 이후 정도전은 그전까지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손을 풀고 웃으면서 포은의 손을 마주잡으며 떠난다.

첫 회 첫 장면에서 정도전이 함주의 이성계를 만나러 가면서 고려를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정몽주를 회상하는 것과 정도전이 최후를 맞을 때 정도전을 맞이하는 역할을 모두 맡아서 결국 작중 정도전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인물인 셈이다.

4. 극중 묘사

등장인물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에 발 담그고 있는 인물들의 선악의 구분을 딱히 하지 않는 이 드라마에서, 그나마 절대 선에 가까운 사람들중 하나다. 다만 정도전이 현실의 비정함에 절망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급진적 이상가라면 정몽주는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필요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려 하는 온건한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이 백성들의 현실을 그들의 입장에서 보려 노력한다면 정몽주는 백성들의 현실을 어디까지나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한계였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 그대로 진정한 선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

또한 극중 가장 불행한 사람 중 하나로, 화합의 정치를 꿈꿨으나 세상의 흐름은 자신의 의도와 이상과 완전히 정반대로 간다. 정몽주가 신뢰하던 자들은 서로를 죽이려 하며, 그 자신은 고려에 희망이 있음을 의심치 않으나 그 고려는 내부의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하고 있다. 결국 그 자신도 화합의 정치라는 모토를 버리고 정적이 되어버린 지기를 가차 없이 제거하려는 냉혹한 정치가로 흑화하다 종래에는 비참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정몽주가 이인임을 방조하거나 이성계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인임의 집권 당시 정몽주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할 만한 힘이 없었고, 이성계의 경우는 이성계 측에서 정몽주를 따돌리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만큼 이성계와 정도전이 정몽주를 아꼈기에 험한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 했다. 이래선 돕고 싶어도 못 돕는다. 그래도 정몽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고려 사직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보자면 이색과 그 제자들과도 언뜻 같아 보이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오히려 이인임 시대가 좋았다고 반동주의를 걷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신념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정몽주는 중도주의자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다만, 이 장면에서 비판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이색은 분명 이성계가 고려에 있어 위험한 존재라는 것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몽주는 어찌 보면 정도전의 커밍아웃 전까지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등, 이전에도 이색이 정도전에 대한 사적인 연으로 최영에 맞서려던 것을 비판한 것과 그대로 이번에도 자기 사적인 연에 눈이 흐려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도전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을 포함해 어설프게 이상만 앞선 인물들이 물을 먹고 좌절하며, 그 중 일부는 보다 현실적인 면모를 보이는 식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정도전은 이인임을 잡겠다고 했다가 좌절한 적이 있고, 최영[28], 이성계[29]도 그랬고, 훗날의 조준 역시 그러했다. 정몽주 역시 사전개혁에서 어설픈 이상만 앞세우다 좌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비록 뜻은 달랐을지라도, 이성계가 가장 신임하고 믿는 이는 정몽주였다. 주인공 정도전보다도 더. 창왕 즉위 과정에서 불안해진 이성계는 정몽주가 자기 곁에 있자 든든하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정도전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자신과 뜻이 다른 자들을 정적이라며 적극 숙청하고자 하는 정도전조차 정몽주를 적으로 돌리는 것을 흑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도 망설일 정도였다. 그만큼 사대부를 포함해 만백성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으니 어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났던 인물.

33화 이래로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은근히 위협과 회유를 하는 이성계 앞에서 두려움이나 흔들림 없이 역성혁명을 반대한다. 특히 '대감이 보위에 오르는 날 자결할 것'이라는 조용하지만 차가운 대답이 고려 왕조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잘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정몽주 자신도 본격적으로 흑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정도전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 정몽주를 수 차례 회유한다. 다른 동문들을 필요하다면 부정한 방법까지 써서 처리해 버렸으면서, 가장 강력한 정적인 정몽주에겐 자신의 편에 서 주기만 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개국주도파는 모두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현실적으로 말이 될 수가 없는 공수표까지 날리면서 끝까지 회유하려 애썼다. 정도전의 마음 속에 정몽주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이때의 정몽주는 이미 사심 따윈 버리고 싸울 의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 감성으로 호소하는 정도전에 대해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아 그가 그저 단순한 엘리트 관료가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스승이나 동문에게도 자신의 대업에 걸림돌이 된다면 일말의 정을 보이지 않고 제거하던 정도전이 최대의 장애물인 정몽주를 상대로는 회유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반면, 화합의 정치를 표방하며 어떤 견해 차이가 있어도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정몽주가 정도전만큼은 가차없이 싸워 없애고자 하는 모습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러니. 500년 왕실을 지키기 위해 가차없이 두 왕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습은 정몽주가 단순히 평면적인 충신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는 현재 정몽주에 대한 역사적 주류 해석과 비슷하다.

37화에서는 한 술 더 떠 출신을 이유 삼아 정적을 공격하는 사실상의 인신공격을 행한다. 사실 용의 눈물에서도 정몽주가 정도전을 유배 보낼 때 비슷한 말로 유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정도전이 정몽주를 설득하려 들 때 '우리가 배운 경전 어디에 천한 출신을 박대하란 말이 있는가?'라는 말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의 눈물에서의 정몽주와 달리 정도전에서의 정몽주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군자이자 충신인 정몽주'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라 시청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표정도 그 옛날의 훈훈했던 정몽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싸늘해지고 독기 어린 모습이 돋보인다. 고민 끝에 공양왕의 의견에 찬동한 것이기는 하나 심지어 암살이라는 방법조차 택할 정도.

그렇다 보니 "이제 보니까 정몽주도 나쁜 놈이었다."라는 반응도 올라왔을 정도. 용의 눈물에서는 사극에서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이 전형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던데다 배우들의 이미지도 있다 보니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도전에서는 인물 묘사 방식의 변화와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 반영되어 아무리 고고한 선비와 백성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는 최영, 이성계와 같은 무장일지라도 각자의 이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몽주가 저러는 이유는 결국 고려를 지키기 위해서다. 즉 충신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더 강하게 두드러진다. 정말로 무너진 것은 군자로서의 정몽주이다. 그리고 어쨌든 정몽주는 우현보에게서 이 정보를 제공받았을 뿐 악의적으로 조작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정도전이 천출임이 사실이라면 정도전은 나라법을 어긴 것이 맞다. 그러니 정몽주의 정도전의 출신에 대한 공격은, 현대인 입장에서는 질 나쁜 인신공격에 불과하고 당대에도 도의적으로는 매우 더럽고 졸렬한 방식이지만 명분이 되는 것은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현대에도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출신이나 가족 관계는 고금예하를 막론하고 여전히 잘 먹히는 정치 공격성 소재이다. 무엇보다 먼저 정몽주의 신뢰와 우정을 배신하고 역적질을 하고 있는 건 정도전과 이성계이니만큼, 유독 정몽주만 이런 비판을 받는다는 건 사실 불공평한 측면이 많다. 당장 정도전만 해도 정몽주가 천출을 거론한 그 시간에 애꿎은 생사람인 이색과 우현보에게 누명을 씌워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본 사극의 정몽주에 대한 묘사는 현대 사학계의 해석과 거의 들어맞는다. 오히려 정몽주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그만큼 변하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정도전의 흑화가 드라마 초반 약 20화를 소비해 가면서 굉장한 디테일을 들여 묘사된 데 반해 정몽주의 흑화는 약 4화만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이벤트이기 때문에 묘사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그야 이 드라마 제목이 정도전이잖아 다만 정도전과 정몽주의 충돌은 오래 전부터 복선으로 깔려 있었다. 양지의 죽음 사건 때도 그랬고, 이성계 앞에서 둘이 각각 사(史), 충(忠)의 대조적인 뜻이 담긴 글자를 올린 것도 그렇고, 위화도 회군에 대한 둘의 시각 차이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둘이 서로 반목하게 될 것이라는 건 시청자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드라마 스토리가 워낙에 폭풍같이 진행되다 보니 정몽주의 흑화 과정이 상대적으로 압축적이고 빨라져서 서서히 진행된 정도전의 흑화보다 더 돋보인 감도 있다.

중도에 2년을 타임워프했는데, 사실 2년 정도면 정도전의 흑화 과정 못지않게 정몽주의 흑화 과정을 세세히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 2년의 기간은 정도전의 계민수전을 통한 역성혁명 전략에 휘말린 스승 이색과 사형제들인 그의 문하생들이 정도전에 의해 고통받는 기간이었다. 게다가 이색과 그의 문하생들이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었던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작중에서 정몽주 본인이 제시한 폐가입진 탓에 되려 이색이 가짜 왕씨를 왕으로 올린 역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덤으로 이인임, 최영, 조민수, 이색 세력의 연이은 몰락으로 이성계 일파에 맞설 반대파들이 전멸하다시피 했고, 격이 떨어지는 우현보 등의 소수의 보수파들만이 반대파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정도전이 정략적으로 내세운 계민수전은 어쨌거나 그 자체로는 백성이 원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이기에 정몽주는 반대할 수도 없이 중립적 입장만을 고수해야 했다.

그리고 계민수전은 사실상 고려 왕조의 최후를 뜻함에도, 백성이 원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인 이상 반대파가 없다면 정몽주는 이걸 찬성해야만 한다! 설사 반대파의 제거 과정이 모략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흑화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수준. 하지만 사극 정도전은 50화 완결인데 이 시점에 이미 36화였고, 그래서 제작진은 정몽주의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묘사를 포기했다. 결국 그놈의 화수가 원수. 아아 4화만 더 뽑아주지!

사실 정몽주는 평소의 온화한 성품에 가려져서 그렇지, 젊었을 적부터 한번 작심하면 거리낌이 없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정도전이 귀양 가기 직전 정도전을 구하기 위해 동문들을 죄다 최영의 칼날 아래 몰아넣는 것도 감수했고(그를 간파한 이색이 중단시킨 덕에 큰일은 없었지만), 양지가 무고죄로 잡혀 들어갔을 때도 이성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양지와 무덕의 억울한 죽음을 방조했으며, 위화도 회군 때는 고려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희생으로 생각하겠다며 병사들의 죽음을 눈 감겠다 말했으며, 창왕 즉위 후 명나라에서 태클이 들어와 사신단을 보낸 후 사신단의 안전을 위해 최영을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에 고심하던 이성계에게 최영을 처형해야 한다고 확인사살한 사람도 정몽주다.

그와는 달리 정도전은 양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품었던 이상마저 던져버리고 이인임에게 무릎을 꿇었고, 정몽주가 정도전의 역성계획을 알고 냉정하게 돌아섰을 때에도 포은만은 꼭 대업에 동참시키기 위해 몇 번이나 매달리다시피 하다가 급기야 정몽주가 자기 편에 서 주면 자신은 대업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말까지 했다. 목적을 위해선 가차없이 행동하는 정도전이었으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겐 한없이 무른 구석도 가지고 있으니, 정도전과 정몽주는 완전히 대비되는 포지션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성계는 고려를 위하는 충심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정몽주가 마음에 들어서 배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몽주는 그것까진 헤아리지 못하고, 단순히 이성계가 정도전의 말에 휘둘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정도전에게 화살을 집중하였다. 이런 오판을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정몽주가 아니라 삼봉과 포은 둘 다 놓치기 싫은 이성계의 두루뭉실한(어찌보면 우유부단한) 처신 때문으로, 이방원의 말마따나 이성계의 사사로운 정이 대업에 큰 지장이 되었다. 결국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이방원의 극단적인 결단이었다.

'왕조만 지키면 장땡이고 고통받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가'하는 비난도 있으나, 이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정주행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30] 당장 사서 기록만 봐도 정몽주는 누구보다 고려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고 또 민생의 개혁에 힘쓴 정치인이었다.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유배생활을 겪기도 했을 뿐더러, 이성계의 옆에서 조전원수로서 황산대첩에 참여해 왜구와 싸우기도 한 인물이 정몽주다. 작중 정몽주가 역성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 역시 역성혁명은 고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거대한 난세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실제로 한반도는 조선 이전까지 선위를 통한 왕조 교체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으며[31], 중국사에서도 선양을 통해 제위를 인계받은 나라들이 폐단 개혁은 고사하고 가면 갈수록 막장으로 전락해가다가 몇 대 못 가서 멸망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왕조 교체가 근본적인 개혁은 되지 못한다는 정몽주의 주장은 당시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주(周)나라 건국 이전까지의 역사는 확실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므로 제외하고 전한신나라, 후한조위서진 등. 북송도 후주로부터의 선위로 건설된 왕조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후주 자체가 제대로 된 기반을 만들기도 전에 멸망했으며, 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았지만 수나라 역시 채 40년도 지속되지 못한 불안정한 왕조였다.[32] 이미 500년 가까이 나름대로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던 고려 왕조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조선 초기 계속하여 배출된 명군들의 활약으로 조선왕조는 안정적인 치세를 이루기는 했으나, 당대 사람인 정몽주 입장에서 정도전과 이성계가 새 세상을 만들지 아니면 이 들도 역시 왕망 같은 존재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정도전에게 혁명사상과 그 필요성을 인식시켜 준 인물은 바로 정몽주 자신이라는 점이다. 공민왕 사후 정도전이 이인임과 무모하게 맞서려다가 되려 당하고 귀양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정몽주가 유배살이 동안 심심풀이라도 하라며 사서삼경 중 하나인 <맹자> 한 권을 선물해줬는데, 이것이 정도전의 인생과, 정몽주 자신의 인생, 그리고 고려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 풍파에 치일 대로 치인 정도전은 <맹자>에서 인과 의를 해치는 임금은 임금이 아니라 잔적에 불과하다거나, 백성이 가장 중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든가, 신하가 사람을 볼 줄 모르거나 장수가 군사를 부릴 줄 모르면 해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군주도 정치 제대로 못하면 백성들에게 해임당할 수 있다는 등의 구절로부터 자신의 혁명사상을 길러냈고 양지의 죽음을 계기로 이 결심을 굳히게 된다. 맹자에는 왕조 시대의 관점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상당히 급진적으로 민본 사상을 주창하는 구절이 많아서, 철저한 황제 독재를 추진한 명의 주원장은 아예 맹자의 3할 가량을 덜어낸 맹자절문을 만들어 과거 교재로 쓰게 했을 정도였다.

더구나 일찍부터 '동방이학의 비조'라고 칭송받던 정몽주가 <맹자>에 담긴 그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맹자>는 고려 유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널리 읽히던 경전은 아니었다. 원나라도 그렇고 명나라 역시 맹자 안에 담긴 혁명사상을 위험하게 여겨 함부로 연구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 고려에서 맹자의 사상을 처음으로 통찰해낸 인물도 정몽주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정몽주가 변안열에게서 '<맹자>를 가진 유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삼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러나 설마 유자로서 그 구절들을 진짜로 실행에 옮길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고,[33]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다음이었다. 정몽주도 정도전과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그때 맹자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는 안 되지 않았을까' 하고 회한의 넋두리를 하기도.

결정적으로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맹자>를 선물했다는 내용은 드라마적 각색이 아니라 실제 사서에 기록된 사실이다.[34] 순전히 그것 때문에 정도전이 역성의 꿈을 갖게 된 건 아니겠지만 이후 역성혁명의 기린아가 되는 사람에게, 그의 사상의 기초가 되는 서책을 건네준 사람이 다름아닌 구 왕조 최후의 버팀목이라는 점은 아주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35]

4.1. 이성계와 정도전이 바라보는 포은

"백성까지 바라지도 않슴메! 내는 포은만 인정을 해주면 그것이 정당성이우다! 고려에서 제일 잘났다는 포은 정몽주, 그 사람이 집정대신의 자격으로 바치는 옥새가 아이믄, 내는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임메."
- 이성계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있어 정몽주는 아주 중요한 존재다. 그렇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데, 극을 처음부터 찬찬히 보면 그 이유가 단순히 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위 대사와 같이 이성계에게 있어 정몽주는 정당성이다. 이성계는 본디 철들어 고려에 귀화한 이방인이고 정체성 때문에 고민도 한다. 정몽주는 그런 이성계를 고려인으로 인정해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게다가 정몽주는 '이학의 비조'라 찬사를 받으며 학자로서, 관료로서, 군인으로서 이름을 날린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인 고려인이고, 현시창과 같은 고려 내에서 언제나 당당하고 올바름을 지향하는 정몽주는 완벽한 도덕성의 화신인, 그야말로 눈부신 존재인 것. 그런 그가 변방의 촌뜨기에 고려에 녹아들지 못하는 자신을 허물없이 대해 주고 지지해 준다는 점은 이성계에게 '자신이 고려인이다'라는 사실과 자신의 행보가 선이라는 확신에 보증수표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이는 회군 때도 창왕 옹립시기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성계는 정몽주의 동조를 얻음으로서 힘을 얻어 위화도회군 때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최영에게 칼을 겨눴고 창왕 옹립시기에는 정몽주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하다며 안심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영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는 이성계에게 결정타가 된 말도 정몽주의 최영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전법 선포 이후 정도전과의 대담에서 남긴 "내는 백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포은만 날 왕으로 인정만 해주면 된다."는 정몽주가 이성계에 있어 정당성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이다. 그런 점에서 정도전과 정몽주를 동시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이성계의 모습은 야심을 지향하면서도 정당성을 얻고 싶어하는 그의 심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도전에게 있어 정몽주는 이상적인 재상이다. 역성계획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한 말인 "새 왕조의 첫 번째 문하시중은 정몽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든 역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 말 중 "역성이후 정몽주가 원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개국 공신들은 이선으로 물러날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정도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이성계가 왕으로 있고 정몽주가 재상으로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실제 정도전이 지향한 체제가 재상 중심의 통치 체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몽주는 정도전이 그린 용 그림의 눈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도전은 심지어 정몽주를 회유하려 자신의 또하나의 이상인 계민수전까지 포기해 버리며, 정몽주의 모략으로 인해 좌천되어 역성이 한 발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이를 달게 받는다. 37화에서 정몽주에게 온갖 치욕을 당하고도 옥중에서 정몽주가 손을 더럽혔다는 사실과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통곡한다. 정도전에게 있어 정몽주의 괴물화는 자신의 이상향이 오염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것이 자신이 겪은 치욕보다 더 괴로웠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결국 이성계도 정도전도 정몽주를 어찌 못하는 것이다. 정몽주가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이니...하지만 이성계와 정도전의 이런 감정적인 혼란과 그에 의한 계민수전 포기와 정몽주 회유 결정은 오히려 정몽주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36] 앞서 서술되었다시피 정몽주는 고려에 대한 단순한 감정적 애착을 넘어 백성을 위해 역성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런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선 감정적인 회유를 넘어 역성혁명이 고려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욱 백성을 위하고 백성이 원하는 일이란 것을 합리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이성계와 정도전은 정몽주를 감정적으로 회유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역성혁명이 백성의 뜻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인 계민수전을 포기해 버렸다. 정몽주는 결국 마지막까지 역성혁명을 거부했고, 결국 피살당한다. 이를 해석하면 이성계는 정당성을 잃었고, 정도전은 이상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실은 정몽주라는 개인을 위해 계민수전, 곧 백성을 포기해서이기도 하며, 그러므로 정몽주의 죽음으로 그들 손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정몽주의 죽음은 더 큰 비극성을 지니게 된다. 게다가 그 정몽주를 죽인 사람이 이성계, 정도전에게 더 큰 비극의 결말을 준다.

정도전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조선 건국 이후, 그의 빈자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도전은 정몽주를 대신할 존재로 조준을 내새웠지만, 정몽주와는 다르게 조준은 정도전과 화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도전과 멀어지고 있다. 아무도 정도전을 제어할 사람이 없으니, 그렇찮아도 타협따윈 없고, 이상주의적이던 정도전은 그야말로 폭주하는 기관차가 되어버렸다.

4.2. 단심가의 해석

"소생 정몽주, 존경하는 장수이자 평생의 벗, 이성계 대감에게 시 한 수 적어 보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를 이방원에게 읊어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적어놓은 글귀를 이성계에게 전해주라며 이방원에게 넘겨주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이는 단심가를 쓰고 있을 때는 하여가가 이방원을 통해 이성계가 뜻을 전한 것이라고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극중에서 정몽주가 하여가를 가리켜 아버님(이성계)이 너를 통해 전할 말이 있는 듯하여 왔다고 이방원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37]

그렇다면 여기서 단심가의 임을 고려가 아닌 이성계로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단심가는 고려에 대한 충심을 보여주는 시조가 아닌 이성계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이는 시조가 되고 이성계에게 전달되는 당위성도 확실해진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단심가를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자신이 비록 죽을지 언정 나는 당신을 일편단심으로 믿고 있다. 지금까지 정몽주가 이성계에게 보인 무한한 신뢰를 아직도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단심가에 앞서 이성계를 자신의 벗이자 존경하는 장수라고 써둔 점이 이런 느낌을 더 강조한다.

하지만 다르게도 해석이 가능한데 임을 여전히 고려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정몽주가 하여가를 본 뒤 이방원의 집으로 간 이유는 이성계가 이방원을 통해 자신에게 하여가를 통한 전향 권유 의사 및 그에 관련된 딜을 이방원을 통해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단심가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준비한 것. 당신이 역성의 대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난 당신이 뭘 하든간에 끝까지 고려를 지키기위해 버틸거니 알아서 해라라는 뜻. 당초 정몽주의 목적은 이방원을 통해 하여가를 보낸 이성계에게 '의지의 천명'을 담긴 단심가를 이방원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또한 극중에서 정몽주가 직접 단심가를 적은 종이를 이방원에게 너의 진심(하여가)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 말하며 이성계에게 전해달라고 말한다. 그저 전향 요구에 대한 답일 뿐이라면 원래 이성계의 글인 줄 알고 그에 대한 답장으로 썼더라도 이방원에 대한 대답 역시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도 단심가에 딱히 직접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데다가, 나레이션을 통해 충정을 담은 시라는 해석에 이론을 재기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이방원은 이미 그날 낮의 이성계와 정몽주의 독대의 대화를 대부분 들어 상황이 어찌 돌아가나 아는 상태로, 단순히 대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조상 이의방이나 이전의 이인임처럼 권신으로 살거 아닌 이상 이방원이 판단하기에 엉망이 된 상황에서 자신이 꺼내들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작중 이방원의 입장에서 정몽주는 이성계를 일관되게 적대하며, 이성계가 아내의 상을 치르러 간 사이 핵심 참모인 정도전을 모략으로 귀양보냈고, 이성계의 낙마 이후 이성계의 당여들을 모두 체포해 죽이려 들었으며, 이성계 본인 또한 암살하려 들었고, 그것이 실패하자 이성계 일파의 군권을 박탈하고[38], 이성계가 깨어나고 나서 이런 모든 적대행위를 불문에 부치고 용서하며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애원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계속 적대할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이런 시각에선 단심가는 의심할 여지 없는 고려에 대한 충정의 표명이고, 더 설득하려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정몽주가 선지교에서 잠시 주춤한 것은 이성계의 애절한 권유가 (더군다나 오늘 당장 왕위정도는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며 자신은 그에 대해 단호한 거절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잠시 번민에 휩싸였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작중의 이성계와 정도전의 입장에선 전혀 다른 의미였다. 어차피 정몽주가 아무리 저항한다고 한들, 이성계는 군사력과 권세, 민심을 모두 얻은 상황이었다. 여기선 정몽주의 정도전에 대한 공격이 이성계가 부인의 상을 치르러 갔을 때 이뤄졌다는 건, 이성계가 있는 한 정몽주는 그 어떤 유효한 위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계가 낙마한 이후 이성계 일파에 대해 정몽주가 대공세를 취했지만, 어차피 이성계가 죽는다면 역성혁명은 실패고, 역성혁명이 실패한다면 그 가담자가 죽는 건 정몽주가 있건 없건 당연한 일이다. 공양왕의 겁쟁이 흉내가 속임수임을 눈치챈 상황이면 정몽주가 있건말건 이성계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게 곧 역성혁명파 전체의 목숨도 경각에 달려있다는 건 더욱 명확했다.

더군다나 결국 정몽주의 공세는 이성계가 일어나자마자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삼군부의 좌우총제사를 가져가지도 못했고[39] 죽이려고 시도했던 이성계의 당여들마저, 형조가 이성계에게 알아서 기며 어명을 거역하고 멋대로 정도전의 사형집행을 연기할 정도였으니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전과 이성계는 각각 정몽주와 이전에 비해 더욱 감정적인 교류를 했으며[40] 그렇기에 단심가를 이성계에게 주는 정몽주의 뜻은 이성계에 대한 신뢰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38화 마지막 밤의 정도전과의 술자리와, 39화 중반의 이성계 병문안, 선죽교에서의 정몽주의 회상 등에서 정몽주가 정도전/이성계와의 우정을 회상하며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에서 더욱 강화된다. 무엇보다 유언 중 '고려의 충신으로 남게 해주어 고맙다고.'란 말도 이성계와 고려 사이의 흔들림 끝에서 마음을 다잡게 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기도 하다.

제작진은 단심가를 이방원이 아닌 이성계에게 주는 것으로 각색하는 것을 통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가능한 해석을 만들었다. 특히 이는 이방원과 정도전/이성계의 정몽주에 대한 시각이 정반대라는 것을 통해 각각 정당화될 수 있는 두 가지의 해석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며, 두 가지 해석 모두 합리적인 근거와 일리가 있는 해석이 된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았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어떻게 생각할 지는 시청자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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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인증샷을 찍은 역적들.[41]

[1] 정몽주는 정도전보다 5살 연상. 이색 문하에 들어온 것도 5년 빠르다. 5살 차이가 적지 않은 나이 차이긴 하지만 옛날 유학자들은 나이와 관련없이 교분을 맺기도 했기 때문에 틀린 묘사라고 볼 수는 없다.(그 유명한 오성과 한음도 5살 차이다. 물론 이쪽은 이덕형이항복을 '형(兄)'이라고 불렀는데 이 당시에는 형이라는 호칭도 굉장히 격의 없는 호칭이다.) 특히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선생'이라고 존경을 표하기도 했지만 격의 없이 '정달가'라고 자를 부르는 서신이나 시도 발견된다.[2] 다음날 필름이 끊겨 간밤에 자신이 결례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묻는 이성계에게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해준다.[3] 외세를 빌어 정적을 제거하는 것은 대의에 어긋난다고 믿는 정몽주와는 달리, 정도전은 이인임을 명나라로 보내 제거하는 것이 대의에 어긋나기는커녕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명나라에게 집정대신을 보내는 것은 고려의 존엄을 깎아먹는 행위라는 정몽주에 비판에 고려의 존엄 따위가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할 정도.[4] 정몽주는 황산대첩에 이어 두 차례 이성계의 조전원수(참모장)로 활약한바 있다.[5] 사실 이 둘의 논쟁은 어디가 옳고 어디가 그르다 단정지어 평가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사대 참고.[6] 직전에 조준을 만나 권문세가와 전쟁을 결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정도전으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7] 이 대사는 작가의 전근대적 시대상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전근대사회에서 백성을 어루만져 민심을 얻어야 하는건 오로지 왕이어야만 했다.[8] 이성계의 "이런 개떡같은 나라가 그리도 좋수까?"란 질문에 한 대답. 정몽주 역을 맡은 배우 임호는 이 대사를 작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라고 언급했다. 이 대답을 들은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나는 이런 사람의 왕이 되고 싶다. 이 사람만큼은 반드시 내 신하로 만들 것이다"라고 속내를 토로했다.[9] 정도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함몰'되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괴물을 자처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완전히 떳떳한 행동이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는 뜻.[10] 이것도 꽤 반전. 본래 폐가입진은 조선 건국세력이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었기에 정도전 일파의 음모로 묘사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극중에선 정몽주가 고려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 정몽주도 폐가입진에 찬성하여 흥국사 9공신에 올랐기에, 이 사실을 정몽주의 행보를 고려하여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폐가입진을 정몽주가 주도하게 되면서 본작에서는 정몽주가 이성계에게 보내는 왕 씨가 아닌 이성계 또한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의 역할도 하게 된다.[11] 정몽주는 1337년생으로 이 내용의 배경이 된 1389년 당시에는 한국 나이로 53세. 당시 나이로 봤을 때 창왕 나이 또래의 손자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는 나이였다.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 같은 어린 임금을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리고 역적으로 몰아가야 했던 것이다.[12] 윤소종이 독단적으로 낸 것으로 정도전은 처음엔 이를 찬동하지 않았으나 결국 뒤늦게 윤소종의 행위에 찬동한다. 다른 혐의도 아닌 정몽주 본인이 직접 신돈의 핏줄로 몰아 폐위시킨 창왕을 옹립한 혐의로 탄핵한 거라 정몽주도 이색과 자신의 사형들인 그 휘하의 문하생까지 죄다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걸 막지도 못하고 추국장 앞에서 무릎꿇은 채 눈물만 흘린다.[13] 조준 역시 이전에 한발짝 물러설 것을 정도전에게 조언했다가 퇴짜맞은 경력도 있었다. 이는 조준이 정도전보다 온건한 성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또한 정도전에 의해 스승과 동문들이 억울한 옥사에 휘말리는걸 보면서 쌓인 원한이 적지 않음에도 정도전 일파인 조준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여 개혁을 추진하는 정몽주의 큰 그릇을 보여주는 장면이다.[14] 이 논지는 이인임이 이성계의 군권을 몰수하려 할때 들었던 이유인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맨 죄'와 논리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15] 성리학자가 불경을 자랑으로 생각한다며 말이 많았는데, 이색은 물론이고 정몽주 역시도 불교에 어느 정도 이해를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이것 때문에 성리학자들에게 이단이라고 욕을 먹자 정도전이 커버를 쳐 주기도 했을 정도. 따라서 대장경을 언급하는 것은 고증오류가 아니다.[16] 이 사건은 정도전의 입을 통해 45회에서 다시 언급된다.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이 사건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 참고로 45회의 정도전의 낙마 사건에 대한 언급은 실록에 기록된 실제 역사이다.[17]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고 파괴하는 독하고 악(惡)한 기운을 살이라고 한다. 무속·관상·사주팔자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18] 이때 NG인지, 문하시중인 이성계를 대면하자마자 "수시중 대감"이라고 부른다.[19] 아이러니하게도 이전부터 정몽주의 숙청을 주장했으나, 막상 정몽주를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20] 이 때 하여가에 대한 조금 색다른 해석인지 만수산에서 따 온 칡으로 담근 술을 대접했다.[21] 사실 정도전과 정몽주의 추억이 담긴 다리가 바로 선지교였다. 또한 참고로 이 부분 역시 용의 눈물과는 다소 전개가 다른데, 용의 눈물에서는 정몽주의 시종도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함께 선지교로 가서 그 곳에서 같이 최후를 맞는 것으로 그려졌다. 또한 정몽주는 시대의 역류를 표현하듯 말을 거꾸로 타고 있었다.[22] 잘 생각해보면 이인임이 정도전에게 남긴 저주보다 더 무시무시한 저주이다. 후세를 보면 심지어 그들이 세운 조선왕조 안에서임에도 불구하고 역성일파가 그리도 마음을 얻고자 했던 민심은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을 숭배하고 역성일파의 대의는 무시하다시피 하여, 그들이 정몽주의 말대로 민심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23] 임견미와 염흥방과 더불어 제일 끔찍하게 살해당했다.[24] 이 때 조영규 역시 정몽주를 죽이는 게 마음은 편치 않았는지, 착잡한 표정으로 정몽주를 내려 보다가 철퇴를 내려친다. 이후 더 자리를 지킬 필요도 없는데 시체를 둘러싼 군중 사이에서 정몽주를 바라보는 것으로 확인사살. 적에게도 정몽주의 위상이 어떠한지 단적으로 나타난다. 정몽주 사망 직후 자객들의 표정을 하나씩 비추는데 조영무를 제외한 나머지들 역시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조영무는 혼자 분을 삭이는듯한 표정을 짓지만 조영규와 기타 자객들은 '정말 이 사람을 죽이는거 외엔 방도가 없었던걸까?'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25] 고려 멸망기 극을 이끌어가던 두 축 중 한 명이자 주인공의 막역지우였던 자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 때문인지, 이 화의 예고편에는 평소에 사용되던 '정도전(OST 1번)'이 아니라 '정도전의 삶(OST 2번)'이라는 슬픈 분위기의 곡이 사용되었다. 이 곡은 예고편으로서는 드물게 정도전이 죽음을 맞이하는 최종회의 예고편에도 사용되었다. 예고편 참고.[26] 드라마에서는 나오진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성계측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사후 시신의 목까지 잘려 효수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태종 대에 신원된 이후에는 묘역이 관리되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27] 참고로 정도전은 죽기 직전, 자신을 죽인다고 해서 하늘(민본의 대업)이 가려지지 않는다고 이방원에게 쏘아붙였고, 이에 방원은 포은이라는 새로운 하늘로 삼봉의 하늘을 덮어버릴 것이라고 말하며, 이제 조선을 포은을 숭상하고 삼봉을 경멸하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 냉소한다.[28] 이인임을 잡겠다고 했지만 자기 편을 만들지 못해 좌절했다.[29] 명나라의 힘을 빌어 이인임을 제거하려 했다가 아무도 찬동을 안 해 물을 먹었고 사전개혁에서 한번 더 물을 먹었다.[30] 아무래도 초반부에 정도전과 이성계, 이인임이 중심축이 되다 보니 드라마에서 정몽주의 업적과 백성을 위해 힘쓴 부분에 대한 묘사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몽주는 정도전이 흑화하기 전인 이 초반부에 백성을 구제하려던 정도전을 누구보다 아껴준 친구였으며 후술되듯이 그가 귀양중에도 개혁을 꿈꾸게 한 기틀을 마련해준 사람이었다.[31] 다만 이는 한반도 역사상 폐단으로 인해 망국까지 몰린 나라가 보기 드물었기 때문으로, 무혈 왕성 교체는 자주 있었다. 신라에서는 3개 성씨가 왕위를 돌려먹기했던 것이 확실하다. 백제에서도 정황상 무왕은 적법한 후계자가 아니었다가 진평왕의 지원으로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탈법적인 선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2] 그러나 신, 조위, 서진 등과 조선은 상황이 달랐다. 위의 왕조들은 명패만 바뀌었을 뿐 지배 세력은 이전 왕조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조선은 권문세가에서 신진사대부로 지배 계층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조선 초의 수 많은 변화는 단지 우연이 아니라 이러한 지배층의 변화에서 기인한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33] 다만 정도전이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따른 것만은 아니다. 맹자에 의하면 역성혁명은 폭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우왕은 그렇다 쳐도 창왕과 공양왕은 폭군과는 거리가 멀다. 창왕은 신돈의 후계라는 루머라도 있었고, 분명 난세를 헤쳐나갈 기개는 없음이 분명했기에 어찌어찌 넘어가준다 치더라도, 공양왕의 폐위가 맹자에 기반해 있다면 그것은 정도전의 왜곡이다. 이렇게 본다면, 진정으로 맹자의 사상을 잘 실천한 것은 오히려 정몽주 쪽이 된다.[34] 다만, 드라마에서는 귀양 가기 직전에 선물하는 것으로 묘사되나, 실제로는 정도전이 부모의 상을 연속으로 당해 시묘살이 하는 중에 선물한 것.[35] 역사저널 그날에서 출연진이 말하길 드라마 촬영 전 강병택 PD는 이 사실을 알자마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본 드라마에서 정도전, 정몽주 라인의 감정선이 애틋했던 건 어쩌면 그런 연유였을지도.[36] 반론: 극중에서 정몽주는 정도전의 계민수전은 반대파를 절대악으로 몰아버리는 정치공작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고 정도전을 평양으로 보내는 등의 계민수전 무력화작업을 착착 진행해나간 걸 고려해 보면, 계민수전의 포기가 정몽주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해석하긴 어렵다. 정몽주는 백성을 위한 것은 고려의 개혁이지 계민수전이 아니라는 의지를 굳힌 상태였다.[37] 이는 수문하시중이자 이성계 반대파의 수장인 정몽주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의 격에도 맞지 않고 수상쩍기까지 한 초대에 응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사이기도 하다.[38] 39화 초반에 정몽주는 이성계 본인의 삼군부 도총제사를 제외하고, 정도전, 조준이 각각 차지하고 있던 삼군부의 좌/우 총제사의 지위를 뺏으려 들었다. 이성계가 실신한 상황이니 삼군부를 통한 공식적인 군권은 모조리 정몽주 일파에게 넘어가려는 셈.[39] 설령 정몽주가 좌우총제사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한들 이성계가 삼군부 도총제사직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소용이 없고, 이것마저 제거했다고 한들 실제 숙위병 외에 군사적 기반이 없는 정몽주측 사람이 앉아봤자 할 수 있는건 얼마 없다. 있었으면 저런 상황이 올 때까지 무력하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심지어 사병혁파가 거의 완료되고 삼군부의 좌/우/도총제사를 모조리 차지했던 정도전 본인이 후일 1차 왕자의 난에서 기습당해 죽었을 정도로 한계가 있는 권한이다.[40] 정도전은 38화 마지막 밤의 술자리에서, 이성계는 39화 중반의 정몽주의 이성계 병문안에서 정몽주와 만났으며, 이때 정몽주와의 만남은 서로를 죽이겠다는 말이 오가던 바로 전의 심각하게 험악한 만남과는 대조적으로 온화했다.[41] 종영 후 이PD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