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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20:56:33

브라이언 오서

브라이언 오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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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리샤르드 요한슨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안드레아스 크로그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에른스트 바이어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 6회 1952 오슬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헬무트 자입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svg 로널드 로버트슨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체코 국기.svg 카롤 디빈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11회 1972 삿포로 파일:소련 국기.svg 세르게이 체트베루힌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15회 1988 캘거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미국 국기.svg 폴 와일리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8회 1998 나가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20회 2006 토리노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21회 2010 밴쿠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22회 2014 소치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23회 2018 평창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카기야마 유마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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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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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회(1896년) ~ 50회(1945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1896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1897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3회 189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헤닝 그레난더 4회 1899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5회 1900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6회 1901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7회 1902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8회 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9회 1904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0회 1905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1회 1906 뮌헨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12회 1907 빈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4회 1909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5회 1910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6회 1911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7회 1912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8회 1913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9회 1914 헬싱키 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 20회 1915 취소WWI
21회 1916 취소WWI 22회 1917 취소WWI
23회 1918 취소WWI 24회 1919 취소WWI
25회 1920 취소WWI 26회 1921 취소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1회 1926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2회 1927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3회 192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4회 1929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5회 1930 뉴욕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6회 1931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8회 1933 취리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9회 1934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0회 1935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1회 1936 파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2회 193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3회 193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4회 1939 부다페스트 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
45회 1940 취소WWII 46회 1941 취소WWII
47회 1942 취소WWII 48회 1943 취소WWII
49회 1944 취소WWII 50회 1945 취소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46 취소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
53회 1948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4회 1949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5회 1950 웸블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6회 1951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7회 1952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59회 1954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잭슨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맥퍼슨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독일 국기.svg 만프레트 슈넬도르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1회 1966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2회 196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3회 1968 제네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6회 1971 리옹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7회 1972 캘거리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세르게이 볼코프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82회 1977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3회 1978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84회 1979 빈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9회 1984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90회 1985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브라이언 보이타노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4회 1989 파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6회 1991 뮌헨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독립국가연합 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98회 1993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9회 1994 치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
101회(1996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토드 엘드레지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1997 로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5회 2000 니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1회 2006 캘거리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2회 2007 도쿄 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7회 2012 니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8회 2013 런던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0회 2015 상하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1회 2016 보스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2회 2017 헬싱키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3회 2018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미국 국기.svg 일리야 말리닌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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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ffffff)"
{{{#!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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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케이트 캐나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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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회(1914년) ~ 50회(1963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1914 노만 스콧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1915 취소WWI
3회 1916 취소WWI 4회 1917 취소WWI
5회 1918 취소WWI 6회 1919 취소WWI
7회 1920 노만 스콧 8회 1921 던컨 호지슨
9회 1922 오타와 던컨 호지슨 10회 1923 멜빌 로저스
11회 1924 존 마카도 12회 1925 멜빌 로저스
13회 1926 멜빌 로저스 14회 1927 멜빌 로저스
15회 1928 멜빌 로저스 16회 1929 몽고메리 윌슨
17회 1930 몽고메리 윌슨 18회 1931 몽고메리 윌슨
19회 1932 몽고메리 윌슨 20회 1933 몽고메리 윌슨
21회 1934 몽고메리 윌슨 22회 1935 몽고메리 윌슨
23회 1936 오스본 콜슨 24회 1937 오스본 콜슨
25회 1938 몽고메리 윌슨 26회 1939 몽고메리 윌슨
27회 1940 오타와 랄프 맥크리스 28회 1941 몬트리올 랄프 맥크리스
29회 1942 위니펙 마이클 커비 30회 1943 취소WWII
31회 1944 토론토 ? 32회 1945 토론토 니겔 스티븐스
33회 1946 토론토 랄프 맥크리스 34회 1947 토론토 노리스 보우덴
35회 1948 캘거리 월리스 디스텔마이어 36회 1949 오타와 로저 윅슨
37회 1950 세인트캐서린스 로저 윅슨 38회 1951 밴쿠버 피터 퍼스트북
39회 1952 오샤와 |피터 퍼스트북 40회 1953 오타와 |피터 퍼스트북
41회 1954 캘거리 찰스 스넬링 42회 1955 토론토 찰스 스넬링
43회 1956 갤트 찰스 스넬링 44회 1957 위니펙 찰스 스넬링
45회 1958 오타와 찰스 스넬링 46회 1959 루인노랜다 도널드 잭슨
47회 1960 리자이나 도널드 잭슨 48회 1961 라쉰느 도널드 잭슨
49회 1962 토론토 도널드 잭슨 50회 1963 에드먼턴 도널드 맥퍼슨 }}}}}}}}}
51회(1964년) ~ 100회(2013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64 노스 베이 찰스 스넬링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65 캘거리 도널드 나이트
53회 1966 피터 버러 도널드 나이트 54회 1967 토론토 도널드 나이트
55회 1968 밴쿠버 제이 험프리 56회 1969 토론토 제이 험프리
57회 1970 에드먼턴 데이비드 맥길리브레이 58회 1971 위니펙 톨러 크랜스턴
59회 1972 런던 톨러 크랜스턴 60회 1973 밴쿠버 톨러 크랜스턴
61회 1974 멍크턴 톨러 크랜스턴 62회 1975 퀘벡 톨러 크랜스턴
63회 1976 런던 톨러 크랜스턴 64회 1977 캘거리 론 셰이버
65회 1978 빅토리아 브라이언 포카 66회 1979 선더베이 브라이언 포카
67회 1980 키치너 브라이언 포카 68회 1981 핼리팩스 브라이언 오서
69회 1982 브랜건 브라이언 오서 70회 1983 몬트리올 브라이언 오서
71회 1984 리자이나 브라이언 오서 72회 1985 멍크턴 브라이언 오서
73회 1986 노스 베이 브라이언 오서 74회 1987 오타와 브라이언 오서
75회 1988 빅토리아 브라이언 오서 76회 1989 쉬꾸띠미 커트 브라우닝
77회 1990 서드베리 커트 브라우닝 78회 1991 서스캐처원 커트 브라우닝
79회 1992 멍크턴 마이클 슬립츅 80회 1993 해밀턴 커트 브라우닝
81회 1994 에드먼턴 엘비스 스토이코 82회 1995 핼리팩스 세바스찬 브리튼
83회 1996 오타와 엘비스 스토이코 84회 1997 밴쿠버 엘비스 스토이코
85회 1998 해밀턴 엘비스 스토이코 86회 1999 오타와 엘비스 스토이코
87회 2000 캘거리 엘비스 스토이코 88회 2001 위니펙 엠마누엘 산듀
89회 2002 해밀턴 엘비스 스토이코 90회 2003 서스캐처원 엠마누엘 산듀
91회 2004 에드먼턴 엠마누엘 산듀 92회 2005 런던 제프리 버틀
93회 2006 오타와 제프리 버틀 94회 2007 핼리팩스 제프리 버틀
95회 2008 밴쿠버 패트릭 챈 96회 2009 서스캐처원 패트릭 챈
97회 2010 런던 패트릭 챈 98회 2011 빅토리아 패트릭 챈
99회 2012 멍크턴 패트릭 챈 100회 2013 미시소가 패트릭 챈 }}}}}}}}}
101회(2014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2014 오타와 패트릭 챈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2015 킹스턴 남 응우옌
103회 2016 핼리팩스 패트릭 챈 104회 2017 오타와 패트릭 챈
105회 2018 밴쿠버 패트릭 챈 106회 2019 세인트존스 남 응우옌
107회 2020 미시소가 로만 사돕스키 108회 2021 밴쿠버 취소COVID-19
109회 2022 오타와 키건 메싱 110회 2023 오샤와 키건 메싱
111회 2024 캘거리 웨슬리 치우 112회 2025 }}}}}}}}}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c3b6e;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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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503_168.jpg
이름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
출생 1961년 12월 18일 ([age(1961-12-18)]세)
온타리오 주 벨빌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신체 168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1976-77 시즌2.2. 1977-78 시즌2.3. 1978-79 시즌2.4. 1979-80 시즌2.5. 1980-81 시즌2.6. 1981-82 시즌2.7. 1982-83 시즌2.8. 1983-84 시즌2.9. 1984-85 시즌2.10. 1985-86 시즌2.11. 1986-87 시즌2.12. 1987-88 시즌
3. 커리어4. 코치 경력5. 소속 선수
5.1. 은퇴/이적한 선수들5.2. 코칭 선수 수상 기록
6. 크레이그 리스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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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 출신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자 피겨 스케이팅 코치이다. 국내에서는 김연아를 맡았던 코치로 유명했으며, 그 이후로도 많은 선수들의 코칭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2.1. 1976-77 시즌

1977 캐나다 노비스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2. 1977-78 시즌

197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4위, 1978 캐나다 주니어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3. 1978-79 시즌

1979 캐나다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4. 1979-80 시즌

비엔나 컵에 시니어 부문으로 참가해 동메달을 따고 1980 캐나다선수권에서 4위에 올랐다.

2.5. 1980-81 시즌

네벨혼 트로피에서 은메달, 세인트저베이스에서 금메달을 땄다. 스케이트 캐나다에서는 6위에 올랐다. 1981 캐나다선수권에서는 처음으로 우승하였으며 1981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에 올랐다.

2.6. 1981-82 시즌

세인트 이벨에서 우승하고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2 캐나다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하고 1982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2.7. 1982-83 시즌

세인트 이벨에서 우승하고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3 캐나다선수권에서는 3연패를 달성하고 1983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8. 1983-84 시즌

스케이트 캐나다와 1984 캐나다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과 1984 세계선수권에서는 스캇 해밀턴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2.9. 1984-85 시즌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우승하고 NHK 트로피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5 캐나다선수권에서는 5연패를 달성하고 1985 세계선수권에서는 알렉산더 파데예프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2.10. 1985-86 시즌

세인트 이벨에서 우승하고 NHK 트로피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6 캐나다선수권에서 6연패를 달성하고 1986 세계선수권에서는 브라이언 보이타노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2.11. 1986-87 시즌

펜타컵에서 우승하고 1987 캐나다선수권에서는 7연패를 달성했다. 1987 세계선수권에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12. 1987-88 시즌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우승하고 1988 캐나다선수권에서는 8연패를 달성했다.
파일: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포디움.jpg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경쟁했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1]은 이른바 "브라이언 전쟁" 으로 불리는 세기의 명승부로 남았다. 대회 직전까지 라이벌인 보이타노와의 전적은 올림픽 전까지 5승 1패로 오서가 우세하였으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보이타노였다. 당시 이 둘의 점수차는 0.1점 차이로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가장 작은 점수 차로 금메달과 은메달이 갈린 상황이었다. 나중에 오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일본 심판이 나에게 0.1점만 더 주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라고 웃으며 이 때를 회상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1988 세계선수권에서는 보이타노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3. 커리어

올림픽
은메달 1984 사라예보남자 싱글
은메달 1988 캘거리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7 신시내티남자 싱글
은메달 1984 오타와남자 싱글
은메달 1985 도쿄남자 싱글
은메달 1986 제네바남자 싱글
은메달 1988 부다페스트남자 싱글
동메달 1983 헬싱키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76–77 77–78 78–79 79–80 80–81 81–82 82–83 83–84 84–85 85–86 86–87 87–88
올림픽 2nd 2nd
세계선수권 6th 4th 3rd 2nd 2nd 2nd 1st 2nd
NHK 트로피 2nd 2nd
스케이트 캐나다 6th 2nd 2nd 1st 1st 1st
노바라트 1st
St. Ivel 1st 1st 1st
St. Gervais 1st
네벨혼 트로피 2nd
비엔나 컵 3rd
국제대회:주니어
주니어 세계선수권 4th
국내대회
캐나다선수권 1st N 3rd J 1st J 4th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J=주니어, N=노비스

4. 코치 경력

현역 은퇴 이후로는 프로 스케이터 겸 코치로 전향하여 아이스 쇼에 출연하는 한편 각지의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토론토 크리켓 클럽의 메인 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4.1. 김연아

코치로 전향하였지만 전담하는 선수는 없었고, 처음 김연아를 만난 2006년에도 전담 코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캐나다 클럽 소속이었고 한국 소속이었던 김연아가 해외까지 오는 것은 힘들어 보였고, 그가 한국으로 갈 수는 더더욱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연아 측은 토론토 클럽으로 해외원정을 오면서까지 오서가 코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그녀와 만난 후 그 능력을 알아본 오서는 헤드 코치로서의 자리를 승낙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오서는 "마법 같은 4년이었다"라고 평했다.

오서는 김연아에게 표현력과 연기력[2]을 가르친 코치였으며 그는 이를 "우리는 그녀가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도록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결과 시니어 무대에서 김연아는 화려한 데뷔를 했고 이후의 성과는 이루어졌다. 해외 언론은 김연아를 "오서의 금메달 꿈을 이루어줄 제자"로 평하며 이 둘의 친밀한 관계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결국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 이루지 못했던 금메달까지 이루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받은 금메달은 오서에게도 무척 특별했던 듯하다. 하지만 김연아를 코칭하던 시절 코치로서 아주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몇 번 했다. 첫 번째로 2007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의 부상과 체력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프리 스케이팅에서 2번의 트리플 러츠를 모두 후반으로 배치하였다. 두 번째로 2009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에서 마지막 컴비네이션 스핀이 규정에 어긋나 0점 처리를 받았다. 이에 대해선 본인과 스핀 코치가 바뀐 규정을 몰라서 나온 실수라고 인정했다.

5종 점프를 구사할 수 있는 김연아에게 트리플 악셀로 유명한 오서가 붙음으로서 모든 점프를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다. 트리플 악셀 자체가 여성이 뛰기에 쉬운 점프는 아니다. 2009-10 시즌 올림픽 이후에 오서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트리플 악셀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전체적으로 2008-09 시즌에 있어 김연아가 올림픽을 위한 안정 노선을 추구한 것과 달리, 오서는 선수 기량을 위한 도전적인 안을 제시하는 편이었다. 트리플 룹으로 컴피를 변경한 사안의 경우 오서는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사후 통보를 받았을 정도였다.

2010년 4월에 있었던 KCC 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 쇼에서 본드걸 컨셉인 김연아에 맞춰 제임스 본드 컨셉으로 공연해 팬들을 놀래켰다. 이건 2009년 아이스 쇼에서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으면 자신이 뭔가를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거라고 한다.

김연아의 코치를 맡던 당시 오서는 한국 국민들, 특히 김연아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아빠 미소"로 대표되는 김연아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기도 하였다. 김연아가 점프하면 본인도 점프하고 김연아의 경기를 온 몸으로 따라하면서 응원하는 제스처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 김연아와의 시간이 "매우 특별한 시간"이며 김연아에게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기품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8월 24일, 브라이언 오서가 '올댓스포츠의 박미희 대표[3]로부터 일방적인 결별 통보를 받았다'고 오서의 매니지먼트사 IMG가 밝혀서 논란이 일었으며, 오서는 김연아와 결별하게 되었다.[4] 자세한 설명은 여기로. 해외에서는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가 헤어진 후 그를 설명할 때 더 이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코치'라고 말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4.2. 아담 리폰, 크리스티나 가오

김연아와 결별한 오서는 아담 리폰과 크리스티나 가오의 담당 코치가 되었다. 그러나 2010-11 시즌 리폰은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진출하지도 못했고, 2011 사대륙선수권 5위에 머무르는 는 등 성적이 좋지 않았다. 가오는 2010-11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6위[5], 2011 주니어 세계선수권 5위를 하였다. 두 선수 다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이 시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걸 감안하면 더욱 미래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후 2011년 4월 1일, 오서의 남은 제자 중 한 명인 아담 리폰이 메인코치를 브라이언 오서에서 지슬란 브라이어드로 변경했다. 브라이어드는 오서와 같이 크리켓 클럽에 있었으며 리폰의 보조코치였다. 즉 리폰은 보조 코치를 자신의 메인코치로 기용함과 동시에 메인 코치였던 오서를 해고해 졸지에 오서는 보조 코치에게도 밀려난 신세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김연아와는 다르게 리폰은 오서와 계약기간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4.3. 하뉴 유즈루,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1과 2012년에는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와 하뉴 유즈루의 코치를 맡았다. 당시 페르난데스는 스페인 최초로 그랑프리 시리즈 2곳에 배정을 받았으며, 하뉴는 2012 세계선수권 동메달의 경력이 있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하뉴 유즈루가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김연아에 이어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코치라는 명예를 얻었다.[6] 또한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도 4위를 차지했다. 이후 페르난데스는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하였으며, 하뉴는 세계선수권에서 2번을 우승하고 그랑프리 파이널 4연패를 달성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하뉴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세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코치가 되었으며 또한, 페르난데스가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4.4.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제이슨 브라운

2018년 5월부터 코치를 맡았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는 투트베리제 코치와 결별한 후, 오서 코치 밑에서 러츠의 엣지 교정을 시도하고, 체중을 늘려 아이스 커버리지가 넓고 빠른 스케이팅으로 알려진 북미식 스타일로 노선을 변경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러츠 엣지도 교정은 커녕 교정 전과 똑같이 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캐나다 입국이 어려워져서, 2020년 9월 16일 원래 코치인 에테리 투트베리제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제이슨 브라운은 코치를 바꾸고 첫 시즌에는 큰 성과가 없었으나, 두번째 시즌에 사대륙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5. 소속 선수

5.1. 은퇴/이적한 선수들

5.2. 코칭 선수 수상 기록

<colcolor=#000> 대회
올림픽<colbgcolor=#ffe970,#c3a100> 4 <colbgcolor=#c0c0c0,#555555> 0 <colbgcolor=#d7995b,#6d441a> 1
세계선수권 5 5 7
유럽선수권 7 0 1
사대륙선수권 3 4 0
그랑프리 파이널 7 5 2
주니어 세계선수권 1 0 0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1 0 2
합계 18 14 13

올림픽
금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10 밴쿠버여자 싱글
금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4 소치남자 싱글
금메달 2018 평창남자 싱글
금메달 파일:캐나다 국기.svg 가브리엘 데일먼단체전
동메달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09 로스앤젤레스여자 싱글
금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4 사이타마남자 싱글
금메달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015 상하이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보스턴남자 싱글
금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7 헬싱키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10 토리노여자 싱글
은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5 상하이남자 싱글
은메달 2016 보스턴남자 싱글
은메달 2019 사이타마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준환2023 사이타마남자 싱글
동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07 도쿄여자 싱글
동메달 2008 예테보리여자 싱글
동메달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013 런던남자 싱글
동메달 2014 사이타마남자 싱글
동메달 파일:캐나다 국기.svg 가브리엘 데일먼2017 헬싱키여자 싱글
동메달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2019 사이타마여자 싱글
동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21 스톡홀름남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013 자그레브남자 싱글
금메달 2014 부다페스트남자 싱글
금메달 2015 스톡홀름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브라티슬라바남자 싱글
금메달 2017 오스트라바남자 싱글
금메달 2018 모스크바남자 싱글
금메달 2019 민스크남자 싱글
동메달 파일:조지아 국기.svg 엘렌 게데바니시빌리2012 셰필드여자 싱글
사대륙선수권
금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09 밴쿠버여자 싱글
금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20 서울남자 싱글
금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준환2022 탈린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3 오사카남자 싱글
은메달 2017 강릉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캐나다 국기.svg 가브리엘 데일먼여자 싱글
은메달 파일:미국 국기.svg 제이슨 브라운2020 서울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여자 싱글
금메달 2007-08 토리노여자 싱글
금메달 2009-10 도쿄여자 싱글
금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3-14 후쿠오카남자 싱글
금메달 2014-15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금메달 2015-16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금메달 2016-17 마르세유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2008-09 고양여자 싱글
은메달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2012-13 소치남자 싱글
은메달 2019-20 토리노남자 싱글
은메달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014-15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은메달 2015-16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동메달 2011-12 퀘벡남자 싱글
동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준환2018-19 밴쿠버남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파일:캐나다 국기.svg 남 응우옌2014 소피아남자 싱글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파일:캐나다 국기.svg 스티븐 고골레프2018-19 밴쿠버남자 싱글
동메달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나 가오2009-10 도쿄여자 싱글
동메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준환2016-17 마르세유남자 싱글
이적한 선수는 기울임체 로 작성

6. 크레이그 리스크 사건

동성애자이다. 1998년 애인 크레이그 리스크(Craig Leask)가 이혼소송과 비슷한 것[7]을 거는 바람에 동성애자라는 게 알려졌다. 아웃팅을 우려한 그는 어떤 스케이터도 아웃팅을 반겨하지는 않는다며 소송을 비공개로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언론에 이미 공개가 된 후였다. 다행히도 '브라이언 대결'로 유명한 미스터 트리플 악셀을 바라보는 캐나다 언론의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받아들이고 옹호해주었다. 그는 나중에 당시 불안감을 표명했던 게 지나친 걱정이었다며 "지난 며칠간 나는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것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라며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크레이그 리스크가 결혼 전 혼전합의서를 작성하자고 요청했을 때 사랑한다는 이유로 작성하지 않았고, 나중에 자신이 바람을 피우는 사실이 들통나자 연인을 내쫓고, 자기 재산은 그대로 가지면서 상대방의 개 2마리를 죽였다. 이는 캐나다에서는 유명한 사건인데, 당시 오서는 자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지만, 판사는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공개재판으로 했고, 이때 오서가 게이라는 것도 함께 알려진 것이다.[8]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김연아와의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당시 김연아 측에서 계약서를 쓰려고 할 때 계약 기간이 끝나도 스승과 제자로 영원히 남아있고 싶다며 계약서 쓰길 거부했다.

참고로 저 사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느니 스폰서가 끊겼다느니 하는 건 다 거짓말이다. 애초 법정에 동성애인의 위자료 청구 소송이 받아들인다는 것부터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척도 그 자체이다. 이런 상태에서 김연아와 만났다는 것은 더더욱 구라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김연아와 함께 일한 시기는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일이다. 오서에게는 김연아 이전에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처음 그가 전담코치 자리를 거절했던 것도 그의 제자들을 고려해서였다.

2015년 5월 시점에서 그의 성적 지향에 대해 신경 쓰는 한국인은 거의 없으며, 사실 모르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9]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하고 받은 대접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여담으로 브라이언 전쟁의 당사자인 브라이언 보이타노2013년 12월 커밍아웃을 했다.

[1] 개막식에서 캐나다 선수단이 입장할때 기수로 나왔다.[2] 다만, 김연아가 브라이언 오서를 선택한 건 트리플 악셀을 배우기 위해서였고, 오서는 기술 부분을 전담하는 코치였다. 표현력과 연기력을 가르친 건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일 가능성이 높다.[3]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이다.[4] 김연아는 이후 미셸 콴의 제부인 피터 오퍼가드와 코치 계약을 맺고, 2011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다.[5] 출전한 미국 선수들 중에선 제일 잘하긴 했다. 다른 미국 선수들은 각각 7위와 8위를 했다.[6] 김연아와 하뉴 모두 주니어 때 시즌스윕을 달성하며 오서에게 가기 전부터 이미 특출난 유망주였다. 오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선수를 고르는 운도 좋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7] 동거하는 동안 연인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며 이별 후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었다.[8] 물론 게이라고 차별받은 적은 없다. 그 이전에 법원이 이러한 걸 한다는 것이 동성애자도 법적인 존중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9] 코치와의 결혼설이 돌았던 안도 미키를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