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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0:00:14

미셸 콴

미셸 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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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엘사 렌슈미트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비아 노렌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미국 국기.svg 비아트릭스 로프렌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바 파릭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텐리 올브라이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 하이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11회 1972 삿포로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디아네 드 리우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15회 1988 캘거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리자베스 맨리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미도리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8회 1998 나가노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0회 2006 토리노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2회 2014 소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23회 2018 평창 파일:오륜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4회 2022 베이징 파일: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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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도르시 그린호프 스미스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테레사 웰드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영국 국기.svg 에델 무켈트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비아트릭스 로렌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마리벨 빈슨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스웨덴 국기.svg 비비 안네 헐튼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6회 1952 오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인그리드 웰든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바바라 롤스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페트라 버카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체코 국기.svg 한나 마스코바
11회 1972 삿포로 파일:미국 국기.svg 재닛 린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독일 국기.svg 다그마 럴츠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키라 이바노바
15회 1988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8회 1998 나가노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2006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2010 밴쿠버 파일:캐나다 국기.svg 조아니 로셰트 22회 2014 소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23회 2018 평창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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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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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1906년) ~ 50회(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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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1회 1906 다보스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2회 1907 빈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4회 1909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5회 1910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6회 1911 빈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7회 1912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8회 1913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9회 1914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20회 1915 취소WWI
21회 1916 취소WWI 22회 1917 취소WWI
23회 1918 취소WWI 24회 1919 취소WWI
25회 1920 취소WWI 26회 1921 취소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1회 1926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2회 1927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3회 1928 런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4회 1929 부다페스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5회 1930 뉴욕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6회 1931 베를린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8회 1933 스톡홀름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9회 1934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0회 1935 빈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1회 1936 파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2회 1937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3회 1938 스톡홀름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4회 1939 프라하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5회 1940 취소WWII 46회 1941 취소WWII
47회 1942 취소WWII 48회 1943 취소WWII
49회 1944 취소WWII 50회 1945 취소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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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46 취소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3회 1948 다보스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4회 1949 파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5회 1950 웸블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6회 1951 밀라노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57회 1952 파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59회 1954 오슬로 파일:독일 국기.svg 건디 부쉬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캐럴 하이스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페트라 버카
71회 1966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2회 1967 빈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3회 1968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6회 1971 리옹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7회 1972 캘거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다이앤 더레이우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미국 국기.svg 도로시 해밀 82회 1977 도쿄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3회 1978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4회 1979 빈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스위스 국기.svg 데니스 비엘만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89회 1984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0회 1985 도쿄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4회 1989 파리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이토 미도리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미국 국기.svg 질 트레나리 96회 1991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8회 1993 프라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옥사나 바이울
99회 1994 치바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사토 유카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
101회(1996년)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1997 로잔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05회 2000 니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일본 국기.svg 아라카와 시즈카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1회 2006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키미 마이즈너 112회 2007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7회 2012 니스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18회 2013 런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0회 2015 상하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121회 2016 보스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2회 2017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3회 2018 밀라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FSR.svg 안나 셰르바코바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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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table bordercolor=#ffffff,#1f202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그랑프리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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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1회 1995-96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96-97 해밀턴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3회 1997-98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4회 1998-99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타티야나 말리니나
5회 1999-00 리옹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6회 2000-01 도쿄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7회 2001-02 키치너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8회 2002-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9회 2003-0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10회 2004-05 베이징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회 2005-06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회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3회 2007-08 토리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4회 2008-09 고양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5회 2009-10 도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6회 2010-11 베이징 파일:미국 국기.svg 알리사 시즈니
17회 2011-12 퀘벡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8회 2012-13 소치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9회 2013-14 후쿠오카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0회 2014-15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21회 2015-16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2회 2016-17 마르세유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3회 2017-18 나고야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24회 2018-19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키히라 리카
25회 2019-20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코스토르나야 26회 2020-21 베이징 취소COVID-19
27회 2021-22 오사카 취소COVID-19 28회 2022-23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미하라 마이
29회 2023-24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30회 2024-25 그르노블 파일:국기.svg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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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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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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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회(1976년) ~ 50회(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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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1976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수지 브래셔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1977 므제브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롤린 스코젠
3회 1978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질 쇼어 4회 1979 아우크스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5회 1980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6회 1981 런던 파일:미국 국기.svg 티파니 친
7회 1982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동독 국기.svg 자니아 버스 8회 1983 사라예보 파일:동독 국기.svg 시몬 코흐
9회 1984 삿포로 파일:동독 국기.svg 카린 헨드슈케 10회 198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타티아나 안드리바
11회 1986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나탈리아 고르벤코 12회 1987 키치너 파일:미국 국기.svg 신디 보츠
13회 1988 브리즈번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14회 1989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카 밀스
15회 1990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사토 유카 16회 1991 부다페스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7회 1992 헐 파일:프랑스 국기.svg 라에티티아 허벌트 18회 1993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코이와이 쿠미코
19회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1995 부다페스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1996 브리즈번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이바노바 22회 1997 서울 파일:미국 국기.svg 시드니 보겔
23회 1998 세인트 존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솔다토바 24회 199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다리아 티모셴코
25회 2000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제니퍼 커크 26회 2001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크리스티나 오블라소바
27회 2002 하마르 파일:미국 국기.svg 앤 패트리스 맥도너 28회 2003 오스트라바 파일:일본 국기.svg 오타 유키나
29회 2004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30회 2005 키치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31회 2006 류블랴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32회 2007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라인 장
33회 2008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레이첼 플랫 34회 2009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레오노바
35회 2010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카미 카나코 36회 2011 강릉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37회 2012 민스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38회 2013 밀라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39회 2014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40회 2015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41회 2016 데브레첸 파일:일본 국기.svg 혼다 마린 42회 2017 타이베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43회 2018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4회 201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5회 2020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카밀라 발리예바 46회 2021 하얼빈 취소COVID-19
47회 2022 탈린 파일:미국 국기.svg 이사보 레비토 48회 2023 캘거리 파일:일본 국기.svg 시마다 마오
49회 2024 타이베이 파일:일본 국기.svg 시마다 마오 50회 2025 데브레첸 파일:국기.svg ? }}}}}}}}}
51회(20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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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2026 탈린 파일:국기.svg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 파일:국기.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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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피겨 선수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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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14년) ~ 50회(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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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1914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1915 취소WWI
3회 1916 취소WWI 4회 1917 취소WWI
5회 1918 뉴욕시 로즈메리 베리스퍼드 6회 1919 미개최
7회 1920 뉴욕시 테레사 웰드 8회 1921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9회 1922 보스턴 테레사 웰드 10회 1923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11회 1924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12회 1925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3회 1926 보스턴 비어트릭스 로크런 14회 1927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5회 1928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16회 1929 뉴욕시 메리벨 빈슨
17회 1930 프로비던스 메리벨 빈슨 18회 1931 보스턴 메리벨 빈슨
19회 1932 뉴욕시 메리벨 빈슨 20회 1933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1회 1934 필라델피아 수잰 데이비스 22회 1935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3회 1936 뉴욕시 메리벨 빈슨 24회 1937 시카고 메리벨 빈슨
25회 1938 필라델피아 조앤 토저 26회 1939 세인트 폴 조앤 토저
27회 1940 클리블랜드 조앤 토저 28회 1941 보스턴 제인 본
29회 1942 시카고 제인 본 30회 1943 뉴욕시 그레천 메릴
31회 1944 미니애폴리스 그레천 메릴 32회 1945 뉴욕시 그레천 메릴
33회 1946 시카고 그레천 메릴 34회 1947 버클리 그레천 메릴
35회 1948 콜로라도 스프링스 그레천 메릴 36회 1949 콜로라도 스프링스 이본 C. 셔먼
37회 1950 워싱턴 D.C. 이본 C. 셔먼 38회 1951 시애틀 소냐 크로퍼
39회 1952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0회 1953 허시 텐리 올브라이트
41회 1954 로스앤젤레스 텐리 올브라이트 42회 1955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3회 1956 필라델피아 텐리 올브라이트 44회 1957 버클리 캐럴 하이스
45회 1958 미니애폴리스 캐럴 하이스 46회 1959 로체스터 캐럴 하이스
47회 1960 시애틀 캐럴 하이스 48회 1961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런스 오언
49회 1962 보스턴 바버라 롤스 퍼즐리 50회 1963 롱비치 로레인 핸런 }}}}}}}}}
51회(1964년) ~ 100회(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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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64 클리블랜드 페기 플레밍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65 레이크플래시드 페기 플레밍
53회 1966 버클리 페기 플레밍 54회 1967 오마하 페기 플레밍
55회 1968 필라델피아 페기 플레밍 56회 1969 시애틀 재닛 린
57회 1970 털사 재닛 린 58회 1971 버팔로 재닛 린
59회 1972 롱비치 재닛 린 60회 1973 미니애폴리스 재닛 린
61회 1974 프로비던스 도로시 해밀 62회 1975 오클랜드 도로시 해밀
63회 1976 콜로라도 스프링스 도로시 해밀 64회 1977 하트퍼트 린다 프래티아니
65회 1978 포틀랜드 린다 프래티아니 66회 1979 신시내티 린다 프래티아니
67회 1980 애틀랜타 린다 프래티아니 68회 1981 샌디에이고 일레인 자약
69회 1982 인디애나폴리스 로잘린 섬너스 70회 1983 피츠버그 로잘린 섬너스
71회 1984 솔트레이크시티 로잘린 섬너스 72회 1985 캔자스시티 티파니 친
73회 1986 유니언데일 데비 토머스 74회 1987 타코마 질 트레나리
75회 1988 덴버 데비 토머스 76회 1989 볼티모어 질 트레나리
77회 1990 솔트레이크시티 질 트레나리 78회 1991 미니애폴리스 토냐 하딩
79회 1992 올랜도 크리스티 야마구치 80회 1993 피닉스 낸시 케리건
81회 1994 디트로이트 - 82회 1995 프로비던스 미셸 콴
83회 1996 산호세 타라 리핀스키 84회 1997 내슈빌 미셸 콴
85회 1998 필라델피아 미셸 콴 86회 1999 솔트레이크시티 미셸 콴
87회 2000 클리블랜드 미셸 콴 88회 2001 보스턴 미셸 콴
89회 2002 로스앤젤레스 미셸 콴 90회 2003 댈러스 미셸 콴
91회 2004 애틀랜타 미셸 콴 92회 2005 포틀랜드 미셸 콴
93회 2006 세인트루이스 사샤 코헨 94회 2007 스포캔 키미 마이즈너
95회 2008 세인트 폴 미라이 나가수 96회 2009 클리블랜드 알리사 시즈니
97회 2010 스포캔 레이첼 플랫 98회 2011 그린스보로 알리사 시즈니
99회 2012 산호세 애슐리 와그너 100회 2013 오마하 애슐리 와그너 }}}}}}}}}
101회(20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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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2014 보스턴 그레이시 골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2015 그린스보로 애슐리 와그너
103회 2016 세인트 폴 그레이시 골드 104회 2017 캔자스시티 카렌 첸
105회 2018 산호세 브래디 테넬 106회 2019 디트로이트 알리사 리우
107회 2020 그린스보로 알리사 리우 108회 2021 라스베이거스 브래디 테넬
109회 2022 내슈빌 머라이어 벨 110회 2023 산호세 이사보 레비토
111회 2024 콜럼버스 앰버 글렌 112회 2025 ? }}}}}}}}}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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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bfff><colcolor=#ffffff> 미셸 콴
Michelle Kwan
파일:Michelle_kwan_1961453.jpg
2003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5번째 금메달 획득 당시
본명 미셸 윙산 콴
Gwaan1 Wing6 Saan1[1]
Michelle Wingshan Kwan
중국명 관 잉샨([ruby(關穎珊, ruby=Guān Yǐngshān)])[2]
출생 1980년 7월 7일 ([age(1980-07-07)]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토런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종목 피겨 스케이팅
은퇴 2008년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2.2. 1992-93 시즌2.3. 1993-94 시즌2.4. 1994-95 시즌2.5. 1995-96 시즌2.6. 1996-97 시즌2.7. 1997-98 시즌2.8. 1998-99 시즌2.9. 1999-00 시즌2.10. 2000-01 시즌2.11. 2001-02 시즌2.12. 2002-03 시즌2.13. 2003-04 시즌2.14. 2004-05 시즌2.15. 2005-06 시즌2.16. 은퇴 이후
3. 평가4. ISU 공인 최고점수5. 프로그램
5.1. 목록5.2. 비화
6. 커리어7. 여담
7.1. 기타7.2. 올림픽에서의 불운

[clearfix]

1. 개요

중국계 미국인 前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만 5세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고, 다음 해부터 전문 수업을 받고 각종 지역 대회에서 우승했다. 8세 때 프랭크 캐롤 코치를 만났다. 이때 캐럴의 평가는 "기운만 세고 섬세하지도 않고 예술성도 없는 말괄량이"라고 평가했다.

그 성격을 증명이라도 하듯 콴은 빨리 시니어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캐롤 코치는 기술성과 예술성을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질세라 콴은 훈련 시간을 2배로 늘려 학교를 다니면서 하루 3시간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콴은 하루 4시간을 훈련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졸랐지만, 성장기이던 콴의 몸을 걱정한 부모는 거절했다. 그리고 가정교사를 고용하여 공부도 뒤쳐지지 않게 만들었다.

2.2. 1992-93 시즌

불과 만 12세로 1993 전미선수권을 통해 시니어 데뷔하여 6위를 차지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대회인 가데나 스프링 트로피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하였다.[3]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미셸 콴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2.3. 1993-94 시즌

1993년 7월 만 13세가 된 콴은 올림픽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이 대회에서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었던 데다 6개의 트리플 점프를 성공시켜 관중과 전문가들을 경악시킨다. 이때 떨리지 않냐고 물었던 한 인터뷰의 대답이 대단하다. "저의 기분이 어떻건, 관중이 많건 적건 저는 예정된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합니다." 과연 어렸을 때부터 기질이 보였다. 외에도 친선경기 2위, 스케이트 아메리카[4]에서 7위를 하였다. 1993년 11월~12월에 걸쳐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만 13세 5개월이 조금 안 된 나이로 우승하였다.
파일:미셸 콴2.jpg
1994 전미선수권[5]
올림픽 선발전으로 치러진 1994 전미선수권에서 2위를 하였으나, 당시 우승자였던 토냐 하딩[6] 부상으로 내셔널에 출전하지 못한 낸시 케리건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1994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7] 쇼트에서 실수가 많아 11위, 프리에서는 6위를 기록하였고 종합 8위로 경기를 마감하였다.

2.4. 1994-95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은메달, 트로피 랄리크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미선수권에서 2위, 1995 세계선수권 4위를 차지했다.

2.5. 1995-96 시즌

챔피언 시리즈 스케이트 아메리카, 스케이트 캐나다, 나치온스 컵에서 모두 우승했다.[8] 이어 1995-96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서도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의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파일:1996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6 세계선수권
전미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1996 세계선수권에서도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스윕을 달성했는데, 이 때 나이는 만 15세였다.

그러나 이 대회가 캐나다가 아닌 다른 대륙(아시아유럽)에서 열렸다면, 중국 심판이 없이도 예술점수 6.0점을 2개나 받은 천루가 금메달이었을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미국일본 심판이 프리에서 의도적으로 예술점수 6.0점을 마지막 출전 선수인 콴에게 주었는데, 이 점만 아니었다면 전년도 우승자인 천루에게 금메달이 돌아갔을 것이다.[9]

2.6. 1996-97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트로피 랄리크에서 모두 우승하고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지만 타라 리핀스키에 밀려 1996-97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파일:1997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2.jpg
1997 세계선수권
1997 전미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도 타라 리핀스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7. 1997-98 시즌

친선경기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하였다.
파일:1997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1997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1998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7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7 스케이트 캐나다 1998 전미선수권
1997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7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모두 우승했으나, 발에 스트레스 골절 부상을 당해 1997-98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을 기권했다. 1998 전미선수권에서는 발가락 골절 부상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경기를 선보이며 우승했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파일: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1998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1998 세계선수권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막그룹 초반에 나왔음에도, 3-3 컴비네이션 점프 없는 안정적인 구성과 더구나 평소보다 느린 스케이팅으로 인해, 프리 2위로 결국 타라 리핀스키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10]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1998 세계선수권 프리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우승을 차지했다.

2.8. 1998-99 시즌

비록 그랑프리 시리즈를 건너뛰고 TV를 위해 만들어진 Pro-Am 시리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이 시즌에도 계속해서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다. 1999 전미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번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파일:1999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2.jpg
1999 세계선수권
1999 세계선수권에서는 마리아 부티르스카야에 이은 은메달을 땄다.

2.9. 1999-00 시즌

파일:1999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1999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9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9 스케이트 캐나다
1999 스케이트 아메리카1999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모두 우승하여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1999-0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제치고 1위였으나, 1-2위 선수들끼리 프리 경기만으로 다시 겨루는 '슈퍼 파이널'에서 이리나에게 밀리는 바람에 최종 은메달을 땄다.
파일:2000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0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0 전미선수권 2000 세계선수권
2000 전미선수권에서는 4번째 우승이자 3연패를 달성했다. 2000 세계선수권에서는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10. 2000-01 시즌

이 시즌부터 향후 5년 동안, 콴은 대회와 갈라 의상의 대부분을 디자인할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기도 한 베라 왕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는 낸시 케리건[11]에 이은 두번째 사례였다.
파일:2000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0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0 스케이트 아메리카 2000 스케이트 캐나다
2000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 2000 스케이트 캐나다 2위, 2000-01 그랑프리 파이널 2위를 하였다.
파일:2001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1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1 전미선수권 2001 세계선수권
2001 전미선수권에서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9명의 심판들에게 만장일치 1위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5번째 우승이자 4연패를 달성했다.

2001 세계선수권에서는 2연패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대회 우승자는 3연속 점프(3-3-2 점프)까지 성공시킨 이리나 슬루츠카야였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유로 해설자는 콴의 우승이 말이 안된다고 생중계로 해설할 정도였고, 또 한번 국적빨 우승이라는 말이 많았다.[12]

2.11. 2001-02 시즌

파일:2001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1 스케이트 캐나다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1 스케이트 아메리카 2001 스케이트 캐나다
친선경기에서 2위를 하며 시즌을 시작하였다. 2001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 2001 스케이트 캐나다에선 동메달을 땄다.
파일:2001-02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2 전미선수권 여자 싱글 포디움.jpg
2001-02 그랑프리 파이널 2002 전미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3년 연속 은메달이자 4번째 은메달이다. 전미선수권에서는 5연패이자 6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었다.
파일: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2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2.jpg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002 세계선수권
올림픽 쇼트 경기에서 트리플 플립의 회전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감점 없이 쇼트 1위를 기록했다.[13] 프리 경기에서는 2번의 실수로 인해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금메달은 사라 휴즈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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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휴즈는 회전수 부족, 엣지 문제, 국적빨 점수로 평생 얻어먹을 욕을 그때 다 먹었다. 그러나 이 분이 등장하며 드디어 저주가 풀렸다.

올림픽 이후에 열린 2002 세계선수권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2.12. 2002-0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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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3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3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2 스케이트 아메리카 2003 전미선수권 2003 세계선수권
그랑프리는 2002 스케이트 아메리카에만 출전하여 우승했으며 전미선수권에서 7번째이자 우승이자 6연패를 달성했다.

2003 세계선수권에서 전무후무한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사샤 코헨이리나 슬루츠카야는 부상과 개인사정으로 부진했다.

2.13. 2003-0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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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4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4 전미선수권 2004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시리즈를 스킵하였고, 구채점제로 치러진 전미선수권에서는 8번째 우승이자 7연패를 달성했다. 역시 구채점제로 치러진 2004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에서 한차례 더블링 실수가 나오며[14] 아라카와 시즈카[15]사샤 코헨에 이어 동메달을 땄다.

2.14. 2004-0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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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미선수권
역시 그랑프리 시리즈는 참가하지 않았고 전미선수권에서 9번째이자 8연패를 달성하였다. 처음으로 신채점제로 열린 2005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머물렀다. 이로써 10년 연속 포디움 기록은 아쉽게 9년에서 멈추었지만 이미 대단한 기록이다.

2.15. 2005-06 시즌

2005 세계선수권 이후 부상으로 한 번도 대회에 나오지 않았던 콴은, 그나마 2005년 12월 TV 프로그램을 통해 쇼트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그 직후 부상이 심하게 도져버려 결국 올림픽 선발전인 2006 전미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동안의 업적을 인정해준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의 특별 혜택으로, 5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비공개로, 2006년 1월 27일 이전에 콴의 건강 상태와 프로그램 경기를 선보이는 것을 조건으로 올림픽 행을 미국 연맹은 승인했다. 콴은 쇼트와 프리 모두를 선보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재차 부상으로 결국 직전에 기권하게 되었다.[16] 운명의 장난처럼 미셸 콴이 불참한 자리에는 사라 휴즈의 여동생인 에밀리 휴즈가 들어가게 되었다.

2.16. 은퇴 이후

2008년 현역 은퇴를 하고, 아이스 쇼로 돈을 벌며 프로 생활을 하기보단 학업에 정진했다. 학업을 완전히 마쳐 졸업하고는 아이스 쇼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김연아한국에서의 아이스 쇼는 그녀의 첫 복귀 이후로 매년 참가했고, 덩달아 콴의 팬들도 방한 주기가 잦아졌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도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17](그야말로 엄친딸), 고향인 토랜스 시가 있는 LA 지역의 UCLA에 1년 간 다니다가 훈련지인 콜로라도 주의 덴버 대학교로 편입학을 했다. 이유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은메달이 아쉬워 다음 올림픽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2008년 11월에 덴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으며, 보스턴의 명문 터프츠 대학교의 플레처 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다가 2010년 2년제 사립대학인 사우스 버몬트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며 졸업하였다. 또한 이런 축사도 전했다. 상당히 감명이 깊은 연설로, 기회가 되면 한 번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스포츠계를 위한 일도 상당히 했다. 2006년 11월 미국 국무부장관으로부터 최초의 공공외교사절로 임명, 전세계를 누비며 젊은이들과 리더십에 대해 논하고 사회와 교육을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2009년 1월에는 일상 체육활동을 통한 미국인의 건강증진방안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체력단련 및 스포츠 자문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2012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수 생활을 2006년에야 마감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빨리 헌액된 셈이다.[18]

2013년 1월 19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위원회에서 일하는 클레이 펠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2013년 11월 남편 클레이 펠이 로드아일랜드 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에 도전을 검토 중이란 뉴스가 떴다. 그러나 2017년 3월에 이혼 소송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올라왔고, 결국 둘은 이혼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판정 논란김연아의 경기에 대해 "Unbelievable"이라는 트윗을 했는데 국내에서는 "미셸 콴이 판정 결과를 믿을 수 없어한다" 라는 내용으로 와전되어 보도되었고, 같은 시기에 FOX의 인터뷰를 받고 한 말로 인해 김연아의 팬들 사이에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28/2014022801205.html|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링크된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트리플 점프의 개수로 인해 소트니코바가 이길 수 있었다고 콴이 인터뷰했고 나중에 콴이 말을 바꾼 것이다. 채점 시에는 트리플 점프의 기초점, 질, 그리고 비점프 요소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콴의 말에는 상당히 어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콴의 언행은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2021년 12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남미의 벨리즈 대사에 임명,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3. 평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근 10년 동안[19] 군림한 미국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의 최강자였다. 토냐 하딩 습격 사건으로 미국에서 급속도로 식어가고 쓰러지던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를 되살린 주요 영웅 중 한 사람이다. 세계선수권 5회 우승, 전미선수권 9회 우승(8연패), 동계올림픽 2회 입상[20]을 포함, 무려 43회 우승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21]을 쥐고 있는 챔피언 중 챔피언이다.

피겨 스케이팅 역사 상 전세계 선수들의 순위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순위권에 지명되는 선수이다. 여자 싱글의 레전드라고 하면 꼭 카타리나 비트[22]와 미셸 콴, 이리나 슬루츠카야, 김연아를 거론한다.[23]

우아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녔지만 기술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플러츠를 뛰었고, 3-3 실전 성공률이 낮았고, 특히,유연성이 안좋아서, 스핀 구성과 스파이럴 포지션이 떨어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레이백 스핀 레벨4 구성을 위해 비엘만 스핀이 필수였는데, 비엘만 스핀을 연습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빠른 스피드, 더블 비엘만으로 대표되는 스핀 구성, 스케일이 큰 점프, 연기의 넓은 스펙트럼이 장점을 갖고 있었고 콴은 좋은 체력, 안정적인 컨시, 우아함, 카리스마(관중 장악력)가 장점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콴은 피겨 스케이터의 몸매치곤 굴곡이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8등신도 아닌, 속히 말해 예쁘지 못한 몸매이지만 그녀의 포스는 관객을 장악할 만한 압도력이 엄청나게 있다.

43회 우승이라는 먼치킨이기도 하지만, 구채점제 시대에서 만점이었던 6.0점을 국내대회를 포함하여 무려 57번을 받았고 이것은 구채점제 시대의 최다 만점 기록이다.[24] 1998 전미선수권 때는 18명의 심사위원 중 15명이 만점 6.0점을 주기도 했다.

4.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00bfff><colcolor=#ffffff>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61.22(2005 세계선수권)
프리 113.98(2005 세계선수권)
총점 175.20(2005 세계선수권)

5. 프로그램

5.1. 목록

<colcolor=#ffffff><rowcolor=#ffffff> 시즌 쇼트(SP) 프리(FS) 갈라(EX)
<colbgcolor=#00bfff> 2005-2006 죽음의 무도[25]Prelude in C Sharp Minor Op. 18A Song for You
2004-2005 아다지오볼레로You Raise Me Up
This Used To Be My Playbround
2003-2004 The Feeling Begins토스카Fallin
2002-2003 아랑훼즈Field of Gold
2001-2002 피아노 협주곡 3번세헤라자데Fields of Gold
에덴의 동쪽A csodálatos mandarin
2000-2001 O canto do cisne negro아름다운 세상
RushThis time Around
1999-2000 A Day In The LifeThe Red ViolinThe World Is Not Enough
Hands
1998-1999 카르멘ArianeKissing You
1997-1998 피아노 협주곡 3번Lyra AngelicaOn My Own
단테의 기도
1996-1997 관현악 모음곡 3번Gyulistan Bayati Shiraz윈터
1995-1996 Romanza살로메에덴의 동쪽
Just Around the Riverbend
1994-1995 황하 협주곡론도푸른 옷소매 환상곡
에덴의 동쪽
1993-1994 송 오브 인디아에덴의 동쪽 -
1992-1993 - 미스 사이공
1991-1992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5.2. 비화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 많은데 김연아의 2008-09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세헤라자데는 콴의 세헤라자데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이다. 김연아초등학생 시절, 미셸 콴의 세헤라자데를 비디오로 녹화해두고 여러 번 돌려보았다고 한다. 김연아는 보통 프로그램에 쓸 음악을 데이비드 윌슨이 가져온 곡들 중에서 선곡하는 편이었는데, 세헤라자데 만큼은 그녀가 하고 싶다고 먼저 말한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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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 시즌 프리 프로그램 '세헤라자데'
실제로 김연아의 세헤라자데가 처음으로 발표되자, 복장과 피니쉬 포즈 등이 어느 정도 콴의 세헤라자데를 떠올리게 하여 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콴의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 세헤라자데를 김연아2009 세계선수권에서 그 누구도 아닌 콴의 눈앞에서 경기를 펼쳤다.[26]

아사다 마오의 2009-10 시즌이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프리 프로그램이던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의 종을 미셸 콴도 탈 뻔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주제곡이었고 당시의 안무가가 바로 아사다 마오의 2009-10 시즌 코치이자 안무가이던 타티야나 타라소바였다![27]

그러나 결국 콴은 부상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28] 2005-06 시즌 쇼트 프로그램인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는 그나마 2005년 12월 TV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였었지만 그 직후 부상이 악화되어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전인 2006 전미선수권에 나오지 못했다.

아사다 마오의 종을 본 콴의 팬들은 '미셸이 안하길 잘했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 선수가 저랬을 뿐이지 우리 미셸이 했다면 상황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6. 커리어

대회
올림픽<colbgcolor=#ffe970,#c3a100> 0 <colbgcolor=#c0c0c0,#555555> 1 <colbgcolor=#d7995b,#6d441a> 1
세계선수권 5 3 1
그랑프리 파이널 1 4 0
주니어 세계선수권 1 1 0
합계 7 8 2

올림픽
은메달 1998 나가노여자 싱글
동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6 에드먼턴여자 싱글
금메달 1998 미니애폴리스여자 싱글
금메달 2000 니스여자 싱글
금메달 2001 밴쿠버여자 싱글
금메달 2003 워싱턴 D.C.여자 싱글
은메달 1997 로잔여자 싱글
은메달 1999 헬싱키여자 싱글
은메달 2002 나가노여자 싱글
동메달 2004 도르트문드여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1995-96 파리여자 싱글
은메달 1996-97 해밀턴여자 싱글
은메달 1999-00 리옹여자 싱글
은메달 2000-01 도쿄여자 싱글
은메달 2001-02 키치너여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여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91–92 92–93 93–94 94–95 95–96 96–97 97–98 98–99 99–00 00–01 01–02 02–03 03–04 04–05 05–06
올림픽 Alt 2nd 3rd WD
세계선수권 8th 4th 1st 2nd 1st 2nd 1st 1st 2nd 1st 3rd 4th
GP 파이널 1st 2nd 2nd 2nd 2nd
GP 프랑스 1st
GP 네이션스 컵 1st
GP 스케이트 캐나다 1st 1st 1st 2nd 3rd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1st 1st 1st 1st 1st 1st 1st
트로피 드 프랑스 3rd
스케이트 아메리카 7th 2nd
친선경기 2nd 1st 2nd
국제대회:주니어
주니어 세계선수권 1st
가데나 스프링 트로피 1st J
국내대회
전미선수권 9th J 6th 2nd 2nd 1st 2nd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GP=그랑프리, WD=기권, Alt=대기, J=주니어

7. 여담

7.1. 기타

7.2. 올림픽에서의 불운

유난히도 올림픽 금메달과는 지독히도 인연이 없었다. 다만 놓친 건 올림픽 금메달 뿐이라서 콩라인이라 하기엔 무리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미셸 콴이 거둔 다른 대회에서의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올림픽과의 악연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이기도 한 1994년 전미선수권으로부터 시작한다.[35] 프리 스케이팅에서 2위를 해서 결과적으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될 수는 있었지만, 미국 빙상 연맹의 규정 중 하나던 "연맹은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를 선발할 수도 있다"가 적용되어, 당시 우승자이던 토냐 하딩과 연맹 국제위원회 투표에 따라 그 당시 최고의 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출전하지 못했던 낸시 케리건이 출전하게 되었다. 이렇기에 콴은 대기 선수로 지정되었고 노르웨이까지 날아가 경기 시작일이던 2월 23까지 대기 상태에 있게 된다. 사실 이때 콴은 거의 참가가 가능했다. 하지만 상황이 꼬일 대로 꼬여서 마치 될 듯 말 듯 싶었다. 2월 1일 토냐 하딩이 유죄를 시인했고, 그에 따라 연맹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10일 하딩 측이 미국 연맹에 2천만 달러 손해 배상 소송을 접수하고, 막후 협상 끝에 12일 연맹은 토냐가 올림픽에 가는 것을 승인하며 올림픽 후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론 못 나가게 되었다. 또 노르웨이에서 토냐는 발목을 접질렀지만 의사가 OK 사인을 내버려서 결국 진짜 헛고생을 하였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드디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는데, 이 대회에서는 타라 리핀스키피겨 스케이팅 역대 최연소[36] 3-3 컴비네이선 점프 2번이라는 승부수를 성공시키며,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콴은 안전한 경기운영으로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37] 쇼트에서 단독 점프가 상위권 중 가장 난이도가 낮았다.[38]

홈그라운드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콴, 그리고 이번이 2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39] 점을 의식한 듯 엄청난 부담감에 억눌리던 콴은,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프리에서 2번의 실수를 했고, 같은 미국 동료 선수인 사라 휴즈가 금메달을 차지한 가운데 콴은 결국 동메달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스캔들 문서에 설명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참가할 수도 있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2005 세계선수권 이후의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엔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오랜 전부터 앓고 있던 고관절염증이 심해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 가서 개회식에 참석했으나, 그것이 무리가 되어 다음날 연습에서 여러 번 넘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올림픽 프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밝혔다.

[1] 광동어식 월어병음이며 콴의 집안은 홍콩 출신 이민자 집안이었기 때문에 중국식 보통화보다는 광동어에 더 익숙한 집안이다. 미들네임인 Wingshan 또한 穎珊의 광동어식 월어병음이며, 따라서 이쪽이 더 정확한 중국식 이름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 콴은 가정에서 광동어영어 둘 다 구사하면서 자랐다.[2] 번체자이며, 간체자로는 关颖珊이다.[3] 참고로 이 때 프리 프로그램은 미스 사이공이었다.[4] 이 시기에는 그랑프리 시리즈가 아닌, 그냥 국제대회들 중 하나였다. 그랑프리 시리즈라는 포맷은 1995-96 시즌부터 생겼다.[5] 왼쪽부터 차례로 4위목메달 엘레인 자약, 동메달리스트 니콜 보벡, 금메달리스트 토냐 하딩, 은메달리스트 미셸 콴.[6] 그러나 이 대회에서의 토냐 하딩의 우승 기록은 삭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 문서 참조.[7] 토냐 하딩은 예정된 대로 올림픽 이후에 징계를 먹었고, 낸시 케리건은 부상 때문에 결국 은퇴하였다.[8]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3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9] 프리에서 예술점 6.0점 2개 이상이 나와야, 콴이 우승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예술점 6.0점(만점)은 받기 힘든 점수이며, 시니어 2년 차에 받을 수 있는 점수는 더욱 아니다.[10] 피겨 스케이팅은 스케이팅 속도가 프로그램 인상에 중요한데, 콴 뒤에 스피드가 좋은 슬루츠카야와 리핀스키가 경기를 한 부문도 이유로 지적되었다.[11]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12] 콴은 기술답보라고 불릴 정도로, 3-3 컴비네이션 점프 성공률이 낮았으며 스핀 구성도 낮았다.[13] 이 콴 밀어주기 밑밥 때문에 슬루츠카야가 금메달을 놓쳤다.[14] 당시 콴의 순서 직전에 한 관중이 빙판 위로 난입해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난입 관중을 제지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그동안 콴은 빙판에서 웜업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15] 프리에서 3-3 컴비네이션 점프(3S+3T)와 3연속 점프(3Lz+3T+2Lo)를 성공시켰다.[16] 원래 출전권은 에밀리 휴즈에게 있었지만, 내셔널에 출전하지 않고 콴이 연맹 측에서 출전권을 따낸거라 말이 많았다.[17] 미국 대학이라고 한국 대학이랑 많이 다른 것이 아니다.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유명인과 그 자제들을 일류대학에서 거의 모셔가려는 것은 도리어 한국보다 심하기도 하다.[18] 예를 들어 선수 생활을 2003년에 마감한 알렉세이 야구딘이 아직도 헌액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19] 피겨 스케이팅 항목에 써 있지만, 피겨 스케이팅은 결코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20] 은메달과 동메달 각 1회씩인데 아쉽게도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었다.[21] 미국피겨 스케이팅 역사 100년 간 남녀 선수를 통틀어 이처럼 많은 세계선수권 타이틀과 전미선수권 타이틀, 동계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없다.[22]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여자 싱글에서 단 두명 뿐인 올림픽 2연패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다. 나머지 한명은 소냐 헤니로 3연패 기록을 갖고 있다.[23] 물론 카타리나 비트,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미국에서 저평가를 받고, 미셸 콴은 유럽에서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24] 지금은 채점 제도가 바뀌었지만, 대단한 기록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25] 재미있게도 이때 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 역시 같은 곡을 사용했는데,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죽음의 무도(Totentanz)였다. 김연아가 사용한 죽음의 무도와는 다른 곡이다.[26] 이때 이 경기를 중계했던 NBC는, 메인 스포츠 아나운서인 밥 코스타스와 남자 싱글 올림픽 2연패를 이룬 미국 피겨 스케이팅의 원로 딕 버튼이 함께 한 별도 중계석에 미셸 콴을 초대했다. 프리 프로그램 마지막 그룹의 웜업 도중 당시 컴백설이 돌고 있었던 미셸 콴을 두고 다른 2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컴백설의 진위를 물었는데 이때 미셸 콴은 트리플 점프도 연습 중이라며 나름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다가, 프리 프로그램이 끝나고 답변을 하겠다고 미뤘다. 프리 프로그램 종료 후 김연아의 칭찬을 자자하게 늘어놓던 미셸 콴에게 다시 컴백설에 관해 물으니 미셸 콴의 대답은 "김연아의 경기를 보고 나니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라고 답하였다. 이 때 딕 버튼은 콴의 컴백의 관건은 자기와 함께 페어로 컴백하느냐 아이스 댄싱으로 컴백하느냐라고 농담을 했다.컴백 기대는 하지 마세요 Mr. 코스타스 대회가 끝난 후 김연아와 마주쳤을 때, 김연아가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있었다고 하였다. 콴이 "Hi Yuna, Nice to meet you!" 라고 인사를 건네도 아무 소리도 못했다고 한다.[27] 타라소바의 "빙상의 신은 아사다 마오를 사랑하신다" 라는 대사는 원래 "God loves Michelle(빙상의 신은 미셸을 선택하셨다)" 라는 미셸에 대한 칭찬이었다.[28] 정확히는 2005 세계선수권 4위 이후 한 번도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29] 이 때문에 트로피 이름이 "미셸 콴 트로피" 로 바뀌었다.[30] "남나리가 1999년 전미선수권 2위를 했을 때 1위가 미셸 콴이었고, 이것이 한국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경기 결과는 맞지만 남나리가 2위를 해서 1위인 미셸 콴이 알려졌다기보다는 그 미셸 콴에 이어서 2위를 한 대단한 선수로 남나리가 알려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31] 그 당시 최고 수준의 대학을 졸업한 MBA가 받는 연봉이다![32] 베라 왕은 콴이 현역 시절 프로그램 의상을 자주 맡았다.[33] 이건 일종의 취향이며 몇몇은 콴처럼 부츠를 내놓는 데 반해, 몇몇은 스타킹으로 부츠를 전부 덮는다. 물론 반만 덮는 선수들도 있다.[34] 실제로 미국에서 아시아계 여성이거나 캘리포니아 출신이면 거의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자일 때가 많다. 전 남편 클레이 펠도 민주당 소속이였다.[35] 1996년부터는 ISU가 정한 연령 제한 규정에 따라 시즌이 시작되는 해의 7월 1일을 기준으로 만 15세가 넘어야 시니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콴은 1980년 7월 7일 생이니, 1994 동계올림픽이 열린 1993-94 시즌에는 만 15세를 넘기지 못하므로 현재 규정으로는 나갈 수 없다. 참고로 현 규정대로 하면 6일 차이로 노비스 레벨이다. 그렇지만 이때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출전은 가능했다.[36] 국제빙상경기연맹에서 1996년부터 연령 하한선을 설정했다. 시즌 개막일인 7월 1일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출전이 가능하다. 리핀스키의 경우는 연령 제한을 겨우 20일 넘겨서 출전했다.[37] 평소보다 아주 느리게 스케이팅을 했다. 상위권 중 유일하게 3-3 점프, 3-3 시컨스 조차도 없었다.(타라 리핀스키:3-3 컴비네이션, 3-3 시퀀스, 미셸 콴: 3-2 컴비네이션 점프, 천루:3-3 컴비네이선 점프,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3-3 시퀀스, 이리나 슬루츠카야:3-3 컴비네이션 점프)[38] 리핀스키는 플립, 부티르스카야와 이리나는 룹, 콴과 천루는 토룹을 뛰었다. 그럼에도 쇼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39]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여자 싱글 종목은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대부분 여자 선수들에게 올림픽에 2번 참가하면 그것이 많은 거고, 3번을 참가하면 메달은 기대도 안하고 마무리 기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분은 예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