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집행 날짜에 따라, 수감중인 사형수는 사형 확정 연도에 따라 정렬되어 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되는가는 차이가 있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와 정권에 따라, 혹은 그 전해 사형 집행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사형 집행건수가 달라지는 편이다.
1990년대 초반(1989년~1993년)에는 4년간 사형 집행이 동결되었는데 총 4명의 법무대신들이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 시기 하세가와 법무대신이 병으로 쓰러지는 등(사임 직후 사망) 사무 쪽에 혼선이 있었고, 1989년에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1991년에 아키히토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등 국가적 사정도 있었지만, 자신이 정토진종의 주지로 있었기에 신념상의 이유로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토 메구미(재임 1990년 12월-1991년 11월)의 예도 있다. 그러나 1993년 3월 26일 3명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동결은 끝났다. 이 당시 유럽 국가들은 일본의 사형제 폐지에 희망을 걸었으나 이는 좌절되었다.2010년대 들어 일본의 전반적인 국민여론이 엄벌주의로 가는 추세인 데다 2018년에는 아베 정권 이래 가장 많은 15명이 집행되었는데, 그 다음년에 헤이세이가 끝나고 차기 덴노가 즉위하는 시기라 헤이세이의 극악 무도한 사건은 헤이세이에서 처리한다는 아베 내각의 시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과 2020년, 2023년은 사형 미집행년이 됐다. 총리 교체도 영향이 있어 2020년 스가 내각은 코로나 위기로 사형을 집행할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후의 제2차 기시다 내각은 2021년 12월에 흉악범 3명의 사형을 집행하고, 이후 2022년 7월에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카토 토모히로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또다시 동결을 끝냈다. 2023년에는 다시 사형 집행을 동결했다.
위의 사례는 극히 일부로, 이 시기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 행보를 걸었고 인권 억압과 후진적인 정치 및 사법체계, 정치 탄압과 식민지 경영, 그리고 군부의 폭주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수많은 사형집행을 실시했다. 그 범위도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걸쳤으며, 전쟁 및 전투 중 약식으로 재판을 거쳐 사형을 집행하거나 아예 재판도 없이 처형된 케이스도 많았다.
2차대전 패전 이후 미 군정기를 거쳐서야 현대적인 의미의 법률과 사법체계,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되었으므로 위의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후쿠오카 일가족 살인사건(2003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와 2명의 아이를 포함, 일가족을 강도 살인. 일본 법무성이 사형수 신원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외국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번이 2번째이다. 나머지 공범 두 명은 중국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했으나 양국의 사법공조로 귀국 즉시 공안에게 체포되어 각기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당해에 집행되었다. 이러한 협력을 기념(?)하고자 함인지, 특이하게도 이번 집행은 아베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차 중국에 방문하고 있었을 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피아노 소음 살인 사건. 일본 최장기간 복역(현재 [age(1974-08-31)]년) 사형수 및 최고령(1928년생, 현재 [age(1928-06-04)]세) 사형수.
후쿠다 다카유키
2008년 4월 22일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1,2심까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피해자 유족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고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개선의 요지가 보이지 않자 최고 재판소가 2심으로 파기 환송을 보내면서 아이러니하게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상고를 기각. 사형이 확정되었다. 현재 사형 대기중인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