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자: 聖女-娼女 二分法영어: madonna/whore(Mary/Eve; Lily/Rose; good-woman/bad-woman) dichotomy(MWD)
남성이 성차별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대할 때, 이들을 찬미할 대상인 고귀한 ‘성녀’와 멸시할 대상인 천박한 ‘창녀’로 이분하여 바라본다는 문화비평 이론.
2. 역사
처음 이 설명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적인 맥락에서 언급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문화이론과 대중매체, 사회운동, 페미니즘 분야에서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활용해 왔다. 2019년 10월 현재, 이 개념은 구글 검색 시 14,800건이 검색되지만, 구글 스칼라에서는 1,010건의 논문이 검색되는 등 학술적인 수용이 상당히 크게 이루어졌다. 특히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피터 글리크(P.Glick)와 수전 피스크(S.T.Fiske)가 양가적 차별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거론한 이후,[1] SSCI급의 여성심리학 저널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여러 실증적 연구들이 수행되어 왔다.[2] 2019년에 출간된 백과사전 《The Encyclopedia of Women and Crime》 에는 크리스탈 쿠퍼(K.Cooper)가 본 용어에 대해 저술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 이론에 입각할 경우, 가장 정확한 방침은 '모든 여성들을 성녀처럼 고귀하게 대하라'가 아닌, '(남성에게 그러듯이) 모든 여성들을 어떠한 관념에 욱여넣지 말고 평범하게 대하라‘가 된다. 즉, 창녀 취급을 받는 여성들도 성차별의 피해자이지만, 성녀 취급을 받는 여성들도 같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을 귀하게 대해야 한다'가 아닌, "여성을 특정한 성 역할에 욱여넣지 말아야 한다"라는 진술이 도덕적 대전제가 되기 때문에 도출된다. 귀하게 대우 받는 여성들은 실상 성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녀로서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는 새로운 성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성녀라고 찬미받는 여성도 남성에게 까딱 밉보이면 순식간에 창녀로 전락할 수 있는 체제 속에선 본질적으로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섹시미로 남성들의 찬미를 받던 전효성이 ‘귀갓길 인터뷰’ 이후 페미니스트라며 남성들에게 밉보인 것이 이런 전락의 예시다. # #
실제 역사에서도 여성에 대한 극과 극으로 나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귀부인들과 영애들이 그런 고통을 견디며 살아갔다.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J.S.Mill)이 비판했듯이, 이 당시 남성들은 '젠틀맨' 이라면 으레 여성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어린 소녀가 옆집 소년과 밀애를 하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문란하다고 하여 그날로 집에서 내쫓기거나 벌을 받았다. 다음으로 《페미사이드》 에서 소개되듯이, 비록 현대에는 개혁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인도 전통문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브라만 계급 출신의 여성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숭앙을 받으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지만,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녀는 대중에게 '부정한 여자', '음란한 여자' 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불가촉천민에게 이발을 받아야 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제 발로 불구덩이 속에 몸을 던져서 자신의 정결함을 증명하는 것뿐이었고, 이렇게 사망한 여성은 정말로 '성녀' 취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한편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에서 우에노 치즈코가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조선 여성들은 창녀로 여겨져서 아무렇게나 군인들에게 조달되었지만, 동시대 일본 여성들은 성녀로 여겨져서 남편이 전쟁에 나간 동안 어떻게든 정조를 지켜주기 위해 온 일본 사회가 힘을 썼다고 한다.[3]
아닌게 아니라 성녀-창녀 이분법 개념의 역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진행되어 왔다. 일본의 여성운동가 다나카 미츠(田中美津)는 70년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제기한 일본 지식인 중 하나이며,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 군인들로부터 변소 취급을 받았다고 일본 사회에 고발했다. 이후 사회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던 중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가, 뜬금없이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침구사가 되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사람은 1970년 8월 22일에 《변소로부터의 해방》 이라는 유명한 저술을 남겼는데, 거기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이란 모성의 자애로움, 즉 어머니, 그리고 성욕 처리기, 즉 (공중)변소, 이렇게 두 가지 이미지로 나뉘어 존재한다... (중략) ...남성의 '어머니' 혹은 '변소' 라고 하는 의식은, 현실 속에서는 '결혼 대상', 혹은 '유희 대상' 이라는 식으로 나타난다... (중략) ...유희 대상으로 여겨지든, 결혼 대상으로 여겨져 선택 받든, 모든 뿌리는 하나로 이어진다. '어머니' 혹은 '변소' 는 모두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 다나카 미츠(田中美津), 《변소로부터의 해방》 中
- 다나카 미츠(田中美津), 《변소로부터의 해방》 中
물론 현대의 사회 운동가들은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에 대해서 극혐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성녀-창녀 이분법이 일부 여성들에게 "적어도 성 역할에 따라서 조신하고 정숙하게 행동한다면, 비난은 받지 않을 수 있겠지?" 라는 유인으로 작용함으로써 가부장제의 편을 들게 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그 결과 이런 '성녀' 여성들이 오히려 여성 인권 운동을 막아서게 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파괴하기 위한 운동인데,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자신들이 누리는 '성녀' 의 지위도 잃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운동가들은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이미 인간이므로 충분히 존중 받을 천부인권을 누리는데, 그런 여성들에게 "아무나 다 존중해줄 수는 없고, 존중받고 싶으면 알아서 잘 처신해야 한다" 는 메시지를 퍼뜨리는 성녀-창녀 이분법은 인권 정신에 반한다고도 본다. 존중받을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남녀가 평등하게 함께 정해야 하며,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통보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그 존중받을 조건은 보편적인 인간에게 적용되는 조건이어야 하지 특정 성별에게만 적용되는 식이어서는 안된다는 것.
박인수 사건의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라는 발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숙한 여인(=성녀)'이라는 개념을 설정해 놓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은 창녀로 간주하여 배제하기 때문.[4]
3. 기준?
여기까지 보듯이, 여성을 '칭찬받을 여성' 과 '비난받을 여성' 으로 나누는 경향 자체는 이론적 논의가 상당 부분 정립되어 있으며, 심지어 경험적이고 통계적 방법을 활용한 현대의 사회과학 연구에서도 남성들이 그런 경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뭘 기준으로 나누는 건데?" 라고 질문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정말 논의가 제각각이다. 가용한 참고자료들을 최대한 모아 보았을 때, 이 기준이 뭐냐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문제제기도 확인되지 않고, 교통정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결국, 지금까지 거론된 바 있는 기준의 '후보' 들을 단순나열식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3.1. 행동: 성녀의 규범일치적 행동, 창녀의 규범일탈적 행동
"아름답고 순결하며 죽었다는 것만으로 감화를 주는 존재로 추앙받는 처녀 순교자들의 전설은 남성의 잔혹 행위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왔다."
-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p.518
-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p.518
이 기준에서 성녀와 창녀는 성 역할이라는 지배적 규범에 여성이 얼마나 스스로를 일치시키는지 여부로 결정된다.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보상과 처벌의 전략으로서 성녀-창녀 이분법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적 규범에 대해 일탈자가 발생하는지를 판별하고 도덕적 비난을 하며, 다른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행동의 압력을 가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소위 '된장녀', '김치녀' 같은 표현들이 창녀 망신주기(slut shaming)의 일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본다.
페미니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강간을 의제화시킨 인물인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는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이 강간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가해자를 걷어차고 도망치는 쪽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쪽을 성녀로 찬미하고 귀감으로 삼으려 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아름답고 고귀하게 자결할 바에는, 차라리 가해자의 사타구니를 한 방 걷어차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후자의 선택을 한 여성보다는 전자의 선택을 한 여성을 더 미화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삼천궁녀 설화나 은장도 같은 것을 긍정적으로 보던 시대상을 꼽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 중의 일부는 온라인 상에서 여성을 비난하는 경향 역시 이를 통해 설명된다고 보기도 한다. 예컨대 주창윤(2005)은[5] 여성이 도덕윤리 또는 섹슈얼리티를 위반하거나, 남성을 비난하거나, 사치와 과소비가 의심될 때 창녀 비난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윤보라(2015)는[6] 인터넷 여론이 ①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자, ② 무능하고 한심한 자, ③ 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자, ④ 성적으로 방종한 자를 발견하면 김치녀라고 몰아가게 된다고도 하였다.
3.2. 자아: 성녀의 자아, 창녀의 자아
"성은 단지 개인적인 취향이나 입맛이 아니라 자아를 가장 확실히 규정하는 성질이 되었다. '밝히는' 여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가 있는 것이다. 하는 여자가 있고 안 하는 여자가 있는 것이다."
- 몰리 해스켈(M.Haskell), 《숭배에서 강간까지》(From Reverance to Rape), p.16
- 몰리 해스켈(M.Haskell), 《숭배에서 강간까지》(From Reverance to Rape), p.16
위의 구분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선호된다면, 이번 구분은 대중문화 비평 분야에서 선호된다. 이 구분법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성의 특징을 성녀의 자아로 지정하고, 섹스하고 싶은 여성의 특징을 창녀의 자아로 지정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두 자아는 상호배타적이며, 수많은 대중매체 속에서 공히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매체 캐릭터 분석은 이미 197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저메인 그리어(G.Greer)는 자신의 저서 《여성, 거세당하다》 에서, 남성향 어드벤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죄다 성녀 아니면 악녀라고 지적했던 적이 있다. 나무위키에도 관련 클리셰로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위협적인 대마왕과 악당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붙잡힌 히로인의 '성녀' 로서의 자아, 그리고 악독한 성격에 육감적인 몸매와 검정 비키니 아머 차림을 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용사의 힘에 굴복하게 될 '악녀' 로서의 자아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 두 종류 유형 말고는 다른 여성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리어의 비판이었다.
여기서 그리어는, 이런 구분법에 익숙해진 남성들은 현실의 여성들이 꼭 그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연애나 부부생활, 성관계 등에서 불감증, 권태기, 발기부전 등을 겪을지도 모른다며 우려하였다. 여담으로, 그리어의 비판은 여성향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았다. 그리어는 여성들이 읽는 여성향 로맨스 소설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는데, 여기서는 남성 주인공을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님" 처럼 묘사하는 통에 여성들을 수동적 연애상에 제한시킬 것을 우려했다.
3.3. 가치: 성녀의 거래적 가치, 창녀의 거래적 가치
"성처녀 마리아의 뒷면에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찰싹 달라붙어 있다. 양자가 마리아라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성을 '생식 전용 여성' 과 '쾌락 전용 여성' 으로 분단시킨 남성의 '성의 이중 기준' 에 남성 스스로가 농락당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p.237
-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p.237
여성학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이론적 분류는 이쪽으로 보인다. 이 기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뤼스 이리가레(L.Irigaray)가 언급했던 "여성 거래 시장" 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남성들은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처럼 대하며, 여성을 특정한 도구적 목적성을 갖고 남성 간에 거래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리가레는 재생산을 목적으로 거래되는 도구를 성녀의 가치에, 쾌락을 목적으로 거래되는 도구를 창녀의 가치에 대응시킨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머니나 성매매 여성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이미 섹스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쪽의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른 쪽의 용도로 뒤늦게 용도전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리가레의 이론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는 바로 처녀로서, 순결하고 젊은 미혼의 여성은 향후 성녀로서 거래될 수도 있지만 창녀로서 거래될 수도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 받아서, 남성들의 여성 거래 시장에서 가장 비싸고 귀하게 대접 받는다고 하였다. 즉, 처녀들은 결혼 상대의 특징과 섹스 상대의 특징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권김현영(2002)은 자신의 학위논문에서[7] 군 위문공연을 주제로 하여 성녀-창녀 구분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군인들은 '그리운 어머니' 를 성녀로서 바라보고, TV나 위문공연의 여가수들을 창녀로서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우정의 무대〉 진행자 이상용 씨의 2013년 JTBC 〈뉴스콘서트〉 인터뷰에서 뒤늦게 인정한 바에 따르면, 오프 더 레코드인 소위 '2부' 는 군인들을 위한 여가수들의 스트립쇼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하니, 10년 넘게 전에 쓰였던 학위논문의 분석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8]
또한 루시 블랜드(L.Bland)는 《페미사이드》 에 기고한 자신의 글에서, 이런 이분법이 연쇄살인마에게 살해 당한 여성을 법정에서 공정치 못하게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비판하였다. 예컨대, 피해자가 '윤락녀' 라면 죽어도 싸거나, 여성 쪽에서 뭔가 범죄를 촉발했을 거라는 인식이 발생하고, 그렇게 보도되며, 경찰 수사가 늦어지게 된다. 반면, 피해자가 '정숙한 여성' 이라면 비로소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히며, 비로소 전국에 수배가 붙게 되고 특별전담수사반이 설치된다는 것.
국내의 한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혼 남성들은 자신이 결혼할 여성이 유학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혼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유학 경험이 배우자의 순결을 의심하게 할 만한 사유가 된다는 것. 이는 워킹홀리데이나 장기 유학을 다녀오는 여성들은 백인 남성들과 무절제한 섹스 파티를 즐긴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유학생 경력을 내세워 신분상승을 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와 연관되어있다. 즉, 이들은 자신의 신부가 성녀로서의 가치를 잃고 이미 창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붓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3.4. 내가 사랑할 여성, 기타 여성
"비록 남성 일반이 여성 일반을 열등하다고 믿지만, 모든 남성은 자신과 결합한 덕에 나머지 다른 여성들보다 더 위로 격상시킬 한 여성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음 속에 마련하고 있다. (중략) ...일단 거기에 오르면, 그 여성은 그녀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산 기성품 받침대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 위로 격상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략)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미리 가지고 있던 환상에 맞게 그녀가 연기를 너무 잘 했기 때문에 그녀를 들여보낸 것이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Firestone), 《성의 변증법》, p.205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Firestone), 《성의 변증법》, p.205
그리어 및 케이트 밀렛(K.Millett)과 함께 래디컬 페미니즘의 3대장으로 꼽히는 파이어스톤은 자신의 저서에서, 남성이 사랑해 주고 싶은 단 한 명의 성녀, 그리고 여기에 간택되지 못한 다른 모든 창녀로의 구분을 제안하였다. 파이어스톤에 따르면 남성들은 헌신적인 사랑을 받기를 원하지만 정작 상대방에게 그만큼의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 생각은 부족한데, 이는 사랑에 얽매이는 것이 그들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들이 선호하는 성녀는 남친에게 충분히 헌신을 받지 않아도 아무 불만이 없으면서, 그녀 자신은 남친에게 아낌 없는 무한한 헌신을 베푸는 여성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 이런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이어스톤에 따르면 여성들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런 성녀로 위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남성들은 여친을 사랑할 때 자신의 애인이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믿지만, 실상 그는 여친이 연기하는 '성녀'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인 이유는,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선택지로 여기고, 이를 위해 지배적 남성 판타지에 맞게 스스로를 연기하기 때문이라고.
3.5. 남성편 : 전사-시인 이분법
"여성들이 매춘부-성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면, 남성들도 똑같이 전사-시인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 노라 빈센트(N.Vincent), 《548일 남장 체험》, p.139.
- 노라 빈센트(N.Vincent), 《548일 남장 체험》, p.139.
성녀-창녀 이분법에 대한 비판 역시 페미니스트로부터 제기되었다. 대학생 시절 열성적인 페미니스트 활동 이력이 있으며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한 바 있는 노라 빈센트는, 여성을 사랑하는 '부치' 스타일의 강한 페미니스트였다. 이 인물은 이미 외모부터가 남성에 가까워 보였으므로 548일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남성을 연기하면서 남성들 사이에 섞여 살아갔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548일 남장 체험》 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때 빈센트는 남성의 연애를 체험하기 위해서 시험삼아 여친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즉, 레즈비언 여성이 헤테로 남성으로 위장해서 헤테로 여성과 사귄 것.
이때의 경험은 빈센트를 충격에 빠뜨렸다.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았고, 때로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것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스트인 빈센트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수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남성성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자신이 힘들고 위험하고 아쉬울 때에는 남친에게 으레 매달려서 자신을 듬직하고 늠름하게 보호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다가도 막상 상황이 또 바뀌게 되면 성차별 의식이 없고 젠더 감수성이 있으며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자상한 남성을 원했다. 때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해서 빈센트를 짜증하게 만들기도 했다. 남성들이 이렇게 연애에 뛰어든다는 것을 깨달은 뒤, 빈센트는 한동안 (문자 그대로의) 여성혐오에 빠져서 여자라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실망한 적도 있다고 한다.
빈센트가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성녀와 창녀로 이분된 대우를 받는다면, 남성들은 '전사'로서의 가부장적 면모와 '시인' 으로서의 현대적 면모를 한 몸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빈센트 본인부터가 이미 대학생 시절에 페미니즘 강연도 적극 참여하고 젠더분리주의에도 뛰어들었을 만큼 열성적이었기에, 성녀-창녀 이분법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노라 빈센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성녀-창녀 이분법 자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것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들 또한 가부장제 하에서 받는 요구와 기대가 모순되고 상반되는데다, 그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면 마치 남성으로서 자격 미달인 것처럼 자책하게 되는 문화적인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남성들도 일종의 맨박스에 시달리고 있는 셈.
4. 기타
- 낮에는 성녀, 밤에는 창녀
소수 의견이기는 하나,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은 자신의 저서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에서 남성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이중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제기하였다. 드워킨은 이를 "모래시계 속 모래의 양의 차이" 라고 말했는데, 요컨대 여성은 타인에게는 조신해야 하지만, 적어도 내게만큼은 성적으로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모순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남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처럼 굴면서도 모텔만 갔다 하면 어떤 체위든 겁먹지 않고 선뜻 즐길 수 있는 여성을 가장 선호한다는 것. 소위 말하는 낮져밤이와도 일부 관련성이 있다. 이는 '다수의 여성 간의 구분' 이 아닌, '한 명의 여성 내의 구분' 이라는 점에서 위의 구분법들과 달라지는 개념화이기도 하다.
[1] Glick, P., & Fiske, S. T. (2001). An ambivalent alliance: Hostile and benevolent sexism as complementary justifications for gender inequality. American psychologist, 56(2), 109-118.[2] e.g., Baraket, Kahalon, Shnabel, & Glick, 2018; Kahalon, Baraket, Vial, Sassenhagen, et al., 2019.[3] 다만 이 부분은 절반 정도만 사실이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힘이 없는 일본 여성들의 처지는 조선 여성에 비해 특별히 더 낫다고 볼 수 없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중에서는 일본인 여성들도 상당히 많았다.# 특히 본격적으로 조선이나 중국에서 여성들을 모집하기 전에는 일본인 윤락 여성이나 하층민 여성을 돈 벌게 해준다고 데리고 와서 위안부로 소모했다. 또한 하층민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내선 결혼'을 장려하여, 조선인 남성과 결혼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수는 해방 후 '더 이상 일본인 아내는 쓸모가 없고, 남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생각한 남편들에 의해 학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 국적을 소지했기에 한국 정부로부터도,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없는 일본 정부로부터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남편이 죽은 후 빈곤층으로 전락해 살아가기도 했다.[4] 실제로 박인수가 기소된 혼인빙자간음죄의 객체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였다.[5] 주창윤 (2005). 젠더 호명과 경계 짓기. 한국언론학회 심포지움 및 세미나, 307.[6] 윤보라 (2015).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김수기 편저,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pp.11-45). 현실문화, 서울.[7] 권김현영 (2002). 병역의무와 근대적 국민정체성의 성별정치학.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학위논문, 서울.[8] 사실 우정의 무대는 '창녀'에 해당되는 여자 연예인들 안에서도 또 성녀 창녀를 나눈 케이스에 속한다. 1부 녹화 때 나오는 초청 연예인들은 '모두가 떳떳하게 좋아할 수 있는 군인들의 이상향' 같은 가수들이 나왔다면, 2부에 나오는 여가수들은 이른바 밤무대 전문이거나, 혹은 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의 연예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핀업 걸이나 관물대 여인에 속하는 연예인들은 의외로 직접적인 성적 망상이나 희롱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잠시 사진을 보며 희망과 활력을 얻는 '꿈의 여인' 으로 소비되었지만, 기지촌 근처에서 밤무대에 오르는 여성들은 그냥 매춘 여성이었던 것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