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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신세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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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SK신세기통신
SK Shinsegi Telecom
파일:SK신세기통신 CI.jpg
기업 CI
파일:신세기통신 로고.png
2001년 이전 CI
<colbgcolor=#2E63AA><colcolor=#fff> 기업명 정식: 주식회사 신세기통신
영문: Shinsegi Telecom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94년 5월 2일
해체일 2002년 1월 1일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6 (을지로1가)
업종명 무선 이동통신업 및 위성통신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후신 SK텔레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

1. 개요2. 역사3. 마케팅4. 여담5. 역대 임원

[clearfix]

1. 개요

과거 SK 계열 이동통신 업체. 한국 최초로 CDMA 기술을 이용해 무선 통신망을 만든 업체였다. 사용 번호는 017, 브랜드명은 '파워디지털'.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shinsegi.com'이었다.

2. 역사

당초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었던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1]이 정치적인 구설[2]로 사업권을 반납한 후 1994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사업자 선정이 재추진됨에 따라 포항제철코오롱그룹이 선경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체신부에 로비전을 펼쳤는데, 이는 전경련이 두 기업 간의 이전투구를 막기 위해 포항제철을 1대 주주, 코오롱을 2대 주주로 하는 후보 단일화를 종용, 이에 따라 '신세기이동통신'이 설립됐다. 창업 당시 국내 주주는 포철과 코오롱 등 242개 기업이었으며, 외국 주주는 미국 에어터치 커뮤니케이션즈[3], 사우스웨스턴 벨, 퀄컴 등 3개사였다.

창립 얼마 후 '신세기통신'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식별번호를 '017'로 확정했고, 그해 말에는 INMARSAT의 이동통신사업 '프로젝트 21'에 참여했다. 1996년 4월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통하고 지앤지텔레콤의 합작투자를 받아들였다. 1997년 수도권 지하철서비스를 개시하고 1998년에 일본 DDI 및 IDO와 기술제휴 협정을 체결한 뒤, 1999년 12월부터 무선인터넷 'i-touch'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러한 공적과는 달리 포철에서 스카웃 해 온 인사들과 코오롱에서 스카웃 해 온 인사들이 파벌을 이루어서 내전이 일어난데다가 SK텔레콤의 위상은 넘사벽 급이었고, 그래서 만년 콩라인이었다.

1999년에는 코오롱 측이 일부 지분을 에어터치로 팔려고 했으나, SK텔레콤이 향후 IMT-2000 사업, 인터넷 사업 등에서 라이벌이 될 화근을 없애기 위해 12월 20일 자사 지분과 포철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는 1999년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해야 하는 코오롱의 이해와 업계 자율로 정보통신 분야의 구조조정을 이뤄내야 하는 SKT 및 포철 간에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당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1997년 10월 PCS 사업자의 출현에 따른 지나친 경쟁으로 5개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채비율이 높아져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이는 매각 1년 전인 1998년 9월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에선 이동통신 산업의 자율적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구조조정 움직임으로 처음 감지되었다. 한편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측은 미국 부즈앨런&해밀턴에 컨설팅 용역을 의뢰한 결과,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예상 최대 가입자 수에 비해 사업자별 투자 규모가 너무 커서 구조조정기를 거쳐 기지국 연동이 가능한 사업자끼리 합병하는 게 최선이라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통신 구조조정 사업은 1999년 일본 통신사업자 6개사의 3개사 축소와 미국 AT&T의 TCI 인수, 동년 말 영국 보다폰의 미국 에어터치 인수합병 등에서 보듯 세계적 추세로 점차 자리잡았으며, 위와 같은 식으로 세계 통신시장이 다시 짜여져 이는 소비자들이 1등 제품만 선호하는 통신사업의 특성상 선두업체가 아닌 이상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고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이다. SKT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으나, 당시 SK그룹 회장이던 손길승은 통신사업 구조조정 시 1등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았고, 합병 뒤 예상되는 약 4조원의 시너지 효과와 향후 IMT-2000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검토에 따르면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따르는 6가지 예상 시너지 효과로는 통신망 통합에 따른 비용 절감, 판매조직 공동 활용, 단말기 구입가 인하, 연구개발 공동 활용, 주파수 자원 활용, 국제 경쟁력 강화 등이 꼽혔다.

1999년 12월 24일 SKT 측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기통신의 지분 51.19%를 코오롱과 포철로부터 사들인다는 기업결합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PCS 이동통신 경쟁사들이 "SKT가 신세기를 인수하면 경쟁력이 과도하게 강해져 산업합리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공동 대응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고, 노동조합 측도 양사 통합 후에 발생할 인력 감축을 우려하며 합병 반대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에 2000년 1월 SKT 측은 인수팀을 꾸려가며 구조조정 대신 통합된 구성원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식으로 인력관리를 시행했고, 성공적인 조직 통합을 위해 기업문화의 사전 공유, 통합비용의 최소화, 노조 단일화 등 통합 준비를 체계적으로 추진했다. 2월 12일 정통부 측은 공정위에 계류 중인 기업결합신고서에 대해 두 회사가 합병 이후 가입자 및 매출액 기준으로 50% 미만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연말까지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양사 매출액의 5%를 정보화 촉진기금으로 내도록 하는 등으로 기업결합 승인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SKT 측은 현실을 무시한 비합리적인 판단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제한 조치이자 세계적 추세인 구조조정에 반하는 정통부의 의견에 대해 공정위가 합리적인 의견을 내 주었으면 한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SKT의 뜻과는 달리 공정위는 4월 26일 현재의 시장 점유율 57.9%를 2001년 6월까지 50% 이하로 낮춘 후, SK텔레텍의 단말기 대수를 2005년까지 연간 120만대로 제한[4]하며 미이행 시 하루 11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여하는 등의 조건으로 합병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SK 계열사로 정식 편입되어 SKT 측은 2001년 6월까지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다 해당 시점에서 49.99%로 점유율을 낮추어 영업 중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마케팅 경쟁력을 유지하는 '연착륙' 전략을 추진토록 했고, 세부 전략으로 고객구조 개선, 경쟁사 간 경쟁체제 유도, 이해 관계자 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토록 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SKT는 2000년 6월부터 4개월 간 신규가입 축소 및 가입자 해지를 강화하는 '역마케팅' 정책을 추진하자, PCS 업체들이 격렬한 마케팅을 추진하면서 점유율이 53.9%로 떨어졌다. 다른 한편 동년 8월 20일부터 공정위 측의 시정명령을 이행코자 이동전화 단말기 신규 공급을 중단하자, 시장 점유율 축소는커녕 단말기 가격 폭등과 기기 교체의 어려움 등 고객들의 피해가 급증하여 회사의 장기적인 이미지 타격이 우려되자, 9월 30일 단말기 판매를 재개했다.[5]

같은 시기 월 기본료 10만 원에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1년정도 가입할 수 있게 했는데 이로 인해 2010년대 초반에도 017 요금제를 진득하게 쓰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더 낮은 요금에 음성통화 무제한인 요금제는 널리고 널린 관계로 017 요금제를 쓰는 경우는 없다. 또한 그 해에 011(SK텔레콤) - 017(신세기통신) 기지국 공동서비스를 시작하고 멤버십카드 '017 아이클럽'을 발급하였다.

2001년 4월에는 CI만 'SK신세기통신'으로 바꿨고, 법인명은 '주식회사 신세기통신' 그대로 했다.(2001년 9월 반기보고서) 2002년 1월 1일을 기해 SKT에 합병된 이후 017아이클럽은 011리더스클럽에 합병되었고, 합병조건에 따라 2003년 1월 1일부터 일반인의 017 신규가입을 종료했다. 2002년 말경까지 일선 대리점에서 신규가입을 이어갔지만 011 마케팅에 집중하는 바람에 017을 홀대했다.

여담으로 합병 초기 옛 신세기통신 단말기에서는 전파가 잡히는데 SK텔레콤 단말기는 전파를 못 잡는 경우가 있었다.[6]

3. 마케팅

1996년 '디지털 017' 서비스를 실시한 이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명성을 알렸다. 초기에는 이순재강부자, 도지원, 김호진, 송승환 등 <목욕탕집 남자들> 출연진 7명을 캐스팅했다가, 이듬해인 1997년에는 배우 박상원을 모델으로 기용했고, 이후 1998년에 코미디언 김국진이창명이 콤비로 활약한 "짜장면 시키신 분 시리즈"로 대변되는 CF들은 대 히트를 치면서 인지도를 올리는 등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7]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017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짜장면 시키신 분 시리즈" CF들을 많이 떠올리며, 현재까지도 발견되는 "마라도에서 짜장면 시킬 수 있나요" 질문은 이 CF에서 유래한 것이다. 1999년에는 배우 정우성을 모델로 내세워 코믹 이미지를 벗어던진 광고를 선보였고[8], 2000년에 들어서는 전지현유재석을 모델로 내세워 무선인터넷 '아이터치 017'로 마케팅을 했으나 큰 인기는 못 얻었다.





4. 여담

5. 역대 임원


[1] 현 SK주식회사 C&C.[2]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씨와 결혼한 관계로 선경그룹이 특혜를 받았다고 논란이 됐었다. 특히 당시 집권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했다.[3] 구 팩텔 셀룰러.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동통신사로서 1998년 US 웨스트 미디어로부터 뉴 벡터를 인수했으나, 1999년 영국 보다폰에 먹혀 '보다폰 에어터치'가 됐다가 벨 애틀랜틱 모바일과 합쳐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가 되면서 2000년에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4] SK텔레텍은 2005년 당시, 연간 단말기 대수 제한이 해제될 경우를 대비해 PCS 사업자에게 단말기 공급을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 확대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경쟁사들이 연간 대수 제한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등 압박해오자 결국 SK텔레텍은 같은 해 팬택에 팔리게 된다.[5] 출처: SK텔레콤 사사 <Mobile Story: Since 1984> p330~334.[6] 이는 통신망의 품질격차 때문이 아니다. 합병 당시 사용 중인 017용 단말기 전량에 대해 로밍 업그레이드를 실시하여 011용 주파수 대역을 함께 사용하도록 한 반면, 이용자수가 훨씬 많았던 011용 단말기에는 별도의 조치를 시행하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017 전용 중계기를 철거해 재배치하고 신규단말기는 당연히 모든 대역을 사용하도록 세팅되어 차이가 없어졌다.[7] 하지만 이 광고 이후 활발하게 활동한 김국진과는 달리 이창명의 행보는 좋지 못했는데, 이는 바로 이 광고 이후 출발 드림팀을 진행하던 2000년 말 KBS2의 '행복채널'에서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사건을 시발점으로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고 이후로도 방송에서 막말을 하는 등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키다 2016년에 음주운전으로 몰락했다.[8] 애초 포항 스틸러스의 이동국 선수를 모델으로 쓰려고 했으나 어른의 사정 탓인지 무산되고 정우성을 모델로 선정했다.[9] 현재는 010-47XX로 통합되었다.[10] 보통 사단 사령부 인근이나 부대가 집중되어 있는 곳에 군폰 취급 대리점이 있다.[11] 2006년까지 군폰 뿐만 아니라 SK텔레콤 휴대폰이라면 교환시설 없이 군전화로 직통연결이 가능 (이 경우 휴대폰에서 군전화로만 가능) 했으나 2007년부터 군폰에 한하여 직통연결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군 보안 문제로 군 010 번호 통합과 함께 직통연결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12] 다만, 현재는 koreamsc.kr로 연결된다.[13] 이 건물의 소유주는 포항공과대학교였다가 현재 포스코와이드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것만 봐도 신세기통신과 포항제철(포스코)의 관계를 알 수 있다. 포스코가 포항제철 시절 서울사무소를 이곳에 두었다가 대치동에 포스코센터를 신축하면서 금세기빌딩을 떠났다. 금세기빌딩은 2024년 4~5월 철거 예정이며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14] 이 당시 SK라는 이름을 달았던 농구단이 두 개였고 이미 "서울 SK"라는 적자(適子)가 있었기에 방송에서는 빅스 농구단을 "인천 빅스", 아니면 그냥 "SK 빅스"로 언급해야 했다. "인천 SK"라는 표현은 그다지 잘 쓰이지 않았다.[15] 포항 스틸러스 특유의 검빨 가로줄무늬 유니폼이 아닌 흰색-검정색 / 하늘색-흰색 조합의 유니폼을 입었던 때에 유니폼 스폰서였다. 그리고 저 유니폼은 2017년에 올드 유니폼 행사 때 입고 전북과 경기를 했었다.[16] 조선투위 출신으로, 이후 GT웹코리아, 교보정보통신, 한겨레 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