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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27 08:42:13

아랍계 아르헨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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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Árabe-argentinos
아랍어: عرب الأرجنتين

파일:레바논계 아르헨티나인.jpg
파일:시리아계 아르헨티나인.jpg

1. 개요2. 이민사3. 관련 항목

1. 개요

아랍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레바논, 시리아 출신 후손들을 의미한다.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역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레바논과 시리아, 팔레스타인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현재 레바논 혈통을 가진 아르헨티나인의 총 인구 수는 약 130만 여명으로 추정되며, 시리아 혈통을 가진 총 인구 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 혈통을 가진 총 인구 수는 그에 비해서 적은 약 3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아랍계 아르헨티나인의 상당수는 마론파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같은 동방 가톨릭 교회 신도이며, 드루즈교 신도나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시리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정교회 신도들은 대개 현지 가톨릭 사회에 동화되었다.

파일:카를로스메넴.jpg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이 있다. 본래 시리아 출신 순니파 무슬림이었던 카를로스 메넴은 기독교도만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 선거 출마 와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1]

2. 이민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레바논과 시리아, 팔레스타인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아랍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았고 남미 현지에서는 이들을 (오스만) 튀르크 출신이라는 뜻의 투르코(Turco)라고 불렀다. 1891년부터 1920년까지 367,348명이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아르헨티나로 이민하였는데 이들 중 튀르크인은 거의 드물었고 대개 아랍인이나 세파르딤, 미즈라힘 유대인이었다.

오늘날에 레바논에 해당하는 지역은 산림이 우거진 산악 지형으로 이웃 건조지대의 외부인들의 출입이 비교적 어려운 편이라 마론파, 드루즈교 신도들 같은 종교적 소수자들이 모여사는 지역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레바논 산악 지대 일대는 인구 부양력에 비해 인구가 과밀한 편이었고 드루즈교도들과 마론파 사이에 잦은 충돌이 일어나는 지역이었다. 드루즈교도들과 마론파들간의 싸움은 멀리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번져 1860년에는 다마스쿠스 내 드루즈교도들이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신도 수천여 명을 기독교인은 다 똑같겠거니 해서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마스쿠스의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신도 학살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의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프랑스나 미국, 아르헨티나로 이민하기 시작했다.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경제난을 해결하는 편이었다. 20세기 초반 레바논의 마론파 신도들은 산에서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자 양잠을 해서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팔면 프랑스에서는 선교 지원차 마론파들이 생산한 비단을 비싼 값에 사주곤 했는데,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마론파들을 신경써줄 여력이 안 되자 지원이 끊기면서 1915~1918년 레바논에 대기근이 찾아왔다. 대기근 이후 레바논 산악지대의 마론파 신도들은 자신들 이전에 유럽과 아메리카 각지로 이민간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신도들을 따라 이민 대열에 합류하면서 마론파 신도 상당수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빠져나갔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멜키트파 신도들과 마론파 신도들은 이민간 현지에서 멜키트파 교회, 마론파 교회를 짓고 아랍어로 예배를 보는 풍습을 유지하였다. 이들 외에도 시리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정교회 신도들 및 상당수의 드루즈교도, 순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알라위파 신도 등이 이민 대열에 합류하였다.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정교회 혹은 순니 무슬림 계열 이민자들은 동방 가톨릭을 믿는 레바논 출신 아랍인들과 갈등 끝에 상당수가 칠레로 이민하였다.[2] 드루즈교와 알라위파는 구전으로 교리가 비밀리에 전승되는 특성상 남미 이민 이후 이민자 사회에서 존속되지 않고 신도들이 사실상 거의 즉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편이었으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이나 남미로 이민가는 아랍 무슬림들은 영구 정착을 위해 가는 것으로 무역을 위해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개 현지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편이었는데, 아예 새로 이민 가는 지역에서 차별을 피하기 위해 여권이나 인적사항을 적은 서류 등에 무슬림이라고 쓰지 않고 기독교인이라고 위조해서 쓰는 경우도 흔했다 한다.

1958년 이후 레바논 내전으로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유입되고 대신 마론파 인구가 레바논에서 해외로 이민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마론파 신도들이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친척들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마론파의 아르헨티나 교구에 소속된 신도는 교회 측 주장에 따르면 75만여 명이라고 한다. 시리아 출신의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 신도 수는 오늘날 3천여 명 안팎이다.

3. 관련 항목



[1] 그의 재임 중에 해당 조항은 폐지되었다.[2] 팔레스타인계 칠레인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