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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2:05:14

야리 리트마넨

야리 리트마넨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아리 젤름
(1992~1996)
야리 리트마넨
(1996~2008)
사미 히피아
(2008~2010)

AFC 아약스 주장
크리스티안 키부
(2001~2003)
야리 리트마넨
(2003~2004)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2004)
}}} ||
야리 리트마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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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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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4 · 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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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
1994-95 · 1995-96

1995 Ballond'or
수상
조지 웨아
2위
위르겐 클린스만
3위
야리 리트마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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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마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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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 수상 당시 국명[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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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 리트마넨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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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0%, #fff 20%, #fff 80%, #fff)"<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 파일: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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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186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야리 리트마넨 137회 1989.10.22 2010.11.17
2 테무 푸키 125회 2009.2.4 2024.10.14
3 사미 히피아 105회 1992.11.7 2010.10.12
요나탄 요한손 1996.3.16 2010.9.7
}}}}}}}}}}}}}}} ||
핀란드의 前 축구 선수
파일:Litti-jari-litmanen-Finlande_Suomi_Finland_football_soccer_calcio_maillot_shirt_trikot_maglia_adidas_2006_Euro_2008_qualifiers.jpg
이름 야리 리트마넨
Jari Litmanen
본명 야리 올라비 리트마넨
Jari Olavi Litmanen
출생 1971년 2월 20일 ([age(1971-02-20)]세)
핀란드 라흐티
국적
[[핀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레이파스 라티 (1977~1987 / 유스)
레이파스 라티 (1987~1990)
HJK 헬싱키 (1991)
MyPa (1992)
AFC 아약스 (1992~1999)
FC 바르셀로나 (1999~2001)
리버풀 FC (2001~2002)
AFC 아약스 (2002~2004)
FC 라흐티 (2004)
FC 한자 로스토크 (2005)
말뫼 FF (2005~2007)
풀럼 FC (2008)
FC 라흐티 (2008~2010)
HJK 헬싱키 (2011)
국가대표 137경기[1] 32골 (핀란드 / 1989~2010)
등번호 핀란드 대표팀 - 10, 8, 7
AFC 아약스 - 10, 4, 14, 15, 20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출전 기록
5. 리트마넨에 대한 헌사6. 여담

[clearfix]

1. 개요

핀란드의 前 축구 선수.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자이자 1995년 발롱도르 3위, 아약스에서 에레디비시 5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준우승, 득점왕을 각각 한번씩 이끌며 절정의 폼을 구가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를 오랜 기간 유지하지는 못했던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7년 아버지의 팀이었던 레이파스 라티에서 데뷔했다. 첫 시즌에는 유망주에 불과했으나 2번째 시즌부터는 주전 선수로 발돋움했고 1990년에는 리그에서만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다. 1991년에는 자국 명문인 HJK 헬싱키로 이적해 1시즌간 뛰었고 1992년에는 MyPa로 이적했다. MyPa에서 그는 처음으로 핀란드 컵을 들어올렸고 다른 유럽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를 노리던 팀은 AFC 아약스를 비롯해 FC 디나모 부쿠레슈티, 리즈 유나이티드 FC, FC 바르셀로나, PSV 에인트호번 등이 있었고 리트마넨은 루이 판할이 이끄는 아약스로 이적한다. 첫 시즌이었던 1992-93 시즌, 윙어였던 리트마넨은 초반에는 주로 리저브 팀에서 뛰었고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상당한 데니스 베르흐캄프의 대체자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된 리트마넨은 새로운 아약스의 10번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다음 시즌 베르캄프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면서, 리트마넨은 아약스의 새 10번이 된다.[2]

리트마넨은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등과 함께 중원을 구성했고 그 시즌 리그에서만 26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그해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4-95 시즌 아약스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무패 우승(34전 27승 7무)과 함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을 격파하며 우승을 차지했고[3] 리트마넨은 그 중심에 있었다. 1995-96 시즌 아약스는 다시 한번 챔피언스리그 재패에 도전했고 리트마넨은 결승전에서 유벤투스 FC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는 등 분전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이 대회에서 리트마넨은 9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1995년에는 조지 웨아, 위르겐 클린스만에 이어 발롱도르 3위에 랭크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후 리트마넨은 점점 유리몸이 되었고 많은 경기에 결장하게 된다.

1999년 리트마넨은 아약스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는데, 그 행선지는 아약스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반 할이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였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아약스 출신의 선수들이 꽤나 많았는데 좋은 활약을 펼첬으나 리트마넨은 그러지 못했다. 첫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32경기에 나서 4골만을 기록했을 뿐이며, 최악의 영입으로 평가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반 할이 경질되자 히바우두에게 등번호 10번을 빼앗기기까지 했다.[4]

리트마넨은 바르셀로나에 잔류했으나 1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2001년 1월, 계약을 해지한다. 리트마넨은 자유계약으로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리버풀 FC에 합류했고 등번호 37번을 배정받았다.[5] 이적 초반 리트마넨은 순조로운 출발을 했으나 3월달 A매치 주간에 입은 부상으로 시즌아웃 당했다. 그를 영입한 제라르 울리에는 본인이 좋다고 영입해 놓고 정작 기용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이는 리트마넨이 불만을 갖는 계기가 된다.

결국 2001-02 시즌이 끝나고 리트마넨은 다시 자유계약 상태가 되었고 친정팀인 아약스로 복귀한다. 리트마넨은 팀의 챔피언스리그 8강행 등에 기여했으나[6] 다시 부상에 시달렸고 03-04 시즌 도중 방출되었다. 리트마넨은 FC 라흐티로 이적하며 핀란드로 복귀했으나 2005년 겨울 이적 시장에 분데스리가의 FC 한자 로스토크로 이적했다. 로스토크는 핀란드의 슈퍼스타인 리트마넨을 영입해 강등을 모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리트마넨은 스웨덴의 말뫼 FF로 이적한다.

그러나 말뫼에서도 그는 잦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고[7] 2007년을 끝으로 팀을 떠난다. 2008년 1월 그는 잉글랜드의 풀럼 FC와 6개월 단기계약을 맺었으나 2군 경기에서나 뛰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방출, 핀란드의 FC 라흐티로 복귀했다. 첫 시즌 라티는 3위를 기록했으나 그 다음 시즌 14개 팀 중 11위를 기록하며 강등을 간신히 모면했다. 2010년 리트마넨은 핀란드 리그 통산 50호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그 경기에서 패배했고 라티는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불혹의 나이가 된 리트마넨이었으나 그는 현역 연장 욕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불러준 팀은 다름 아닌 자신의 친정팀 중 하나이자 핀란드 최강팀인 HJK였다. 리트마넨은 주로 서브로 10~30분 정도만 뛰었으며 총 18경기에 나섰다. 그가 나선 경기는 모두 승리했다.일부러 이기는 경기에만 투입했을 수도 리트마넨은 MyPa와의 핀란드 컵 결승전에도 출전했는데, 40세의 리트마넨은 후반전 교체 투입되어 연장 후반 선취골을 작렬해 팀이 2-1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리트마넨의 현역 마지막 경기는 FC 하카와의 경기였고 리트마넨은 무려 어시트릭을 작렬하며 팀의 5-2 승리에 기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조지 웨아, 라이언 긱스 등과 함께 실력은 좋으나 국가가 국가인지라 국제대회와 연이 없는 선수 중 하나이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단위 세대별로(1980, 90, 00, 10년대)를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본 유일한 선수이다.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8]

의미있는 기록은 모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기록했는데, 100번째 A매치 경기, 최초로 4개의 다른 년대에 출전한 선수가 된 경기 모두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그리고 모두 졌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80년대, 90년대, 00년대, 10년대에서 모두 출전과 골을 기록한 유일한 핀란드 선수다. 전 세계에서도 달성한 선수가 얼마 없는 희귀한 기록인데, 터키엠레 벨로조글루, 스웨덴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대한민국이동국, 파라과이로케 산타 크루즈가 이와 같은 기록을 달성한 선수들이다. 다만 1980년대에도 골을 넣어본 선수는 이 중에서 리트마넨이 유일하다.[9]

2010년 11월 17일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PK골을 작렬하면서 유로 예선전 최고령 득점자가 되었다.[10] 이 골은 리트마넨의 마지막 A매치 골이기도 하다.

3. 플레이 스타일



핀란드라는 축구변방에서 태어났지만 실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선수로, 루이 판할의 아약스 전성시대 당시에도 24살의 나이에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등 기라성같은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다. 특히 아약스 시절 판할의 전술에 감초 같은 활약상으로 유명했다.

좌/우측 미드필더, 10번 역할 등 공격 진영 어디에 배치해도 활약할 정도로 양질의 패싱, 전술적 이해도, 넓은 시야, 경기 조율 능력이 모두 뛰어났다. 슈팅과 패스를 가리지 않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헤딩이나 발리슛으로 처리하여 골을 만들어내는 부분에도 강점이 있었다.

특히 미드필더 치고는 득점력이 상당했는데, 에레디비시 득점왕과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전부 기록해보았을 정도로 골을 자주 뽑아내는 선수였다. 또한 박스 밖 타격 능력도 탁월했으며, 01-02 시즌 토트넘을 상대로 23m 중거리슛 결승골을 성공시킬 정도로 슈팅이 훌륭했다.

그리고, 팀의 코너킥, 프리킥, 페널티킥을 도맡아 찼으며 양발을 통한 강력하고 정확한 킥력을 바탕으로 데드볼 처리 능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페널티킥에 상당히 강했는데, 통산 40번의 PK 시도 중 39번을 성공했고 실패가 단 1번 뿐일 정도로 어마무시한 성공률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상대 수비를 바보로 만드는 드리블과 동료를 이용하며 패스를 통해 전진하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속력이 빠르진 않았으나, 다른 능력들이 워낙 출중했으며, 그 천재성에 판할이 인테르로 이적했던 데니스 베르캄프의 '수비력까지 겸비했던 완벽한 대체자'로 평가했을 정도. 실제로 아약스 황금세대의 일원으로서 베르캄프도 이뤄내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팀 상태부터가 막장 일변도였던 바르셀로나에서의 부침에서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이 이를 심화시켰다. 결정적으로 실로 안타까울 정도로 잦은 부상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로날트 더부르의 회고에서 리트마넨이 '하루종일 스트레칭에 집착했고, 웬일로 부상이 없이 훌륭한 경기를 마치고 차에 탔는데 타자마자 등 부상을 당해 구급차를 부를 뻔 했을' 정도로 오늘날 기준에도 오언 하그리브스급 유리몸이었다. 리버풀 시절에도 훈련 때 마다 부상을 당하고, 말뫼에서는 풋볼 디렉터가 딴 레모네이드 뚜껑에 눈을 맞아 부상당하는 등 온갖 기묘한 방식으로 부상을 당한다. 결국 '시간제 선수'라는 오명까지 얻을 정도로 출장시간이 급감했고, 결국 그 재능을 모두 만개하지 못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FA컵기타[11]유럽대항전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87 레이파스 라티 베이카우스리가 9 0 1 0 - - - -
1988 레이파스 라티 베이카우스리가 26 8 4 0 - - - -
1989 레이파스 라티 베이카우스리가 25 6 4 2 - - - -
1990 레이파스 라티 베이카우스리가 26 14 3 0 - - - -
1991 HJK 헬싱키 베이카우스리가 27 16 0 0 - - 2 0
1992 MyPa 베이카우스리가 18 7 6 4 - - - -
1992/93 아약스 에레디비시 12 1 1 0 0 0 1 0
1993/94 아약스 에레디비시 30 26 3 4 1 2 5 4
1994/95 아약스 에레디비시 27 17 4 2 1 1 11 6
1995/96 아약스 에레디비시 26 14 2 0 0 0 10 9
1996/97 아약스 에레디비시 16 6 1 0 1 0 7 2
1997/98 아약스 에레디비시 25 16 3 4 0 0 6 2
1998/99 아약스 에레디비시 23 11 5 1 1 1 4 1
1999/00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21 3 3 1 - - 8 0
2000/01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0 0 0 0 - - 0 0
2000/01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5 1 2 1 2 0 2 0
2001/02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21 4 1 0 1 0 9 3
2002/03 아약스 에레디비시 14 5 1 0 0 0 7 2
2003/04 아약스 에레디비시 6 0 0 0 0 0 3 0
2004 FC 라흐티 베이카우스리가 11 3 1 0 1 0 - -
2004/05 한자 로스토크 독일 분데스리가 13 1 1 0 0 0 0 0
2005 말뫼 알스벤스칸 2 1 0 0 - - 2 0
2006 말뫼 알스벤스칸 8 2 0 0 - - - -
2007 말뫼 알스벤스칸 0 0 0 0 - - - -
2007-08 풀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0 0 0 0 0 0 - -
2008 FC 라흐티 베이카우스리가 6 3 0 0 0 0 - -
2009 FC 라흐티 베이카우스리가 13 2 2 0 3 1 6 1
2010 FC 라흐티 베이카우스리가 21 5 0 0 2 0 - -
2011 HJK 헬싱키 베이카우스리가 18 1 1 1 1 0 2 0

5. 리트마넨에 대한 헌사

헌신적인 선수만 있던 리버풀에 처음으로 번뜩임을 가져왔던 선수. 리트마넨이 경기할 때마다 우리는 모두 경외심에 차서 바라보게 됐다. 특히 아스톤 빌라전에서 그 천재성에 나는 속으로 작게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제이미 캐러거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내가 같이 뛰었던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였다.
디트마어 하만
베르캄프아약스에서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내가 본 아약스 최고의 10번은 야리 리트마넨이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6. 여담


[1]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2] 혹자들은 리트마넨이 반 할이 가장 원하는 No. 10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3] 이 우승으로 리트마넨은 핀란드 선수로는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리트마넨의 뒤를 이어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한 핀란드 국적의 선수로는 챔피언스 리그 2004/05 시즌 이스탄불의 기적 핵심 센터백이었던 사미 히피아가 있다.[4] 이전까지 히바우두의 등번호는 11번. 리트마넨 이전 바르셀로나의 10번은 지오반니.[5] 리트마넨은 케니 달글리시를 동경했으며 7번을 달길 원했으나 스미체르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17번(제라드), 27번(비그널)역시 사용중이라 37번을 선택했다고 한다.[6] 이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가 1,2차로 나뉘어 있었다. 1차 조별리그에서 1,2위 팀들이 4개조로 나뉘어 2차 조별리그를 치렀고 거기에서 1,2위를 한 팀이 8강에 진출했다.[7] 이 중에는 팀 임원이 딴 음료수 캔 뚜껑에 맞아 눈 부상을 당한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8] 최다 득점 기록은 2021년 10월 12일에 푸키가 경신했다.[9] 나머지 4명은 모두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에 걸쳐서 출전과 골을 기록한 선수들이다.[10] 만 39세 270일. 종전 기록은 아일랜드의 존 알드리지, 만 37세 23일.[11] 슈퍼컵, 리그컵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