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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7:28:06

언어 차별/사례/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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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도권 화자의 차별
2.1. 연원2.2. 문제점
2.2.1. 지역차별 조장2.2.2. 세대 갈등 조장
2.3. 사례
3. 경상도 화자의 차별4. 전라도 화자의 차별5. 외국인과 귀화허가자를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
5.1.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자료5.2. 2020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5.3.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5.4. 기타 사례
6. 그 외7. 관련 문서

1. 개요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지역어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어기본법 제4조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단어.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표준어 정의[1]
한국의 언어 차별에 대해 서술한 문서.

한국에서는 한국어 발음이 어눌한 외국인을 놀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수도권-지방간의 표준어-방언 갈등이 둘 다 존재하지만 언론에서는 주로 후자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방언 차별조차도 언론에서 다루는 것에 비하면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정치권이나 대중의 태도 또는 반응이 미온적인 것이 현실이다.

2. 수도권 화자의 차별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서울 공화국
, 지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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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본래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다. 국경을 그어놓은들 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는다. 한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지역이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변이들이 존재하며 이들 변이들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심지어 어떤 변이들은 수시로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 경계를 넘나든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한국어’라는 가공품의 ‘발명’은 이러한 차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 한국어라는 말 속에는 ‘언어 = 영토 = 국민’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구도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한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고 균질한 하나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이 환상을 만들어 내는 장치는 다름 아닌 표준어 제정이다.
사전에 빵꾸내기, 백승주 교수
우리나라는 인종보다는 지역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파출부, 가정부들은 다 충청도 출신이에요. 공장 노동자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씁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고정관념이 되어버립니다. 20세기에 이러한 인식을 심어놓은 주요 매개체가 바로 대중문화였습니다. 바로 문화가 가지는 힘입니다.
(중략) <모래시계>(1995년)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방영돼서 빅히트를 기록했죠. 특히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인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뤄서 화제가 되었어요. 드라마에 보면 최민수, 박상원, 이 두 주인공이 광주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녀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말을 씁니다. 악당만 사투리예요. (웃음) 우리나라 드라마 주인공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아들과 딸>(1992년)이라는 드라마도 기억나네요. 충청도가 배경이었던 드라마인데 아버지로 나온 백일섭만 사투리를 써요. 자식들인 김희애, 최수종은 모두 표준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요.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모래시계>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최민수가 "시방 나 떨고 있는감?" 이러면 분위기가 살겠어요? (웃음) 우리가 보는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현실과 다릅니다. 그깟 드라마, 영화 한 편이 대수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대중문화가 성과 인종, 지역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예요. 특정 지역, 인종이 피해를 보잖아요. 마냥 웃고 즐길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권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2]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 철수와 영희. 80-81 p.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에서의 표준어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교육, 방송, 보도, 교과, 외국인 학습의 표준이 될 말 그대로 표준 언어 자체는 당연히 필요하며, 공적 대담/토론, 다른 지역 사람끼리 만날 때는 표준어를 쓰는 것이 권장사항이다. 표준어 자체가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든지 표준어만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더 나아가 표준어를 쓰지 않는 사람은 배려심이 없고 교양이 없다는 인식, 그리고 표준어가 필요 없는 곳에서 표준어를 굳이 쓰게 하는 하는 것인데, 이는 차별하기가 될 수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왔음에도 모어를 공적 장소 밖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문제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의 언어 차별은 방언(Dialect)과 억양(Accent)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 한국인의 경향 때문에 표준어를 구사하더라도 표준 억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억양을 차별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서울 방언은 표준어로 오해하기도 하고, '멍게' 같은 표준어가 된 방언은 서울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건 사람들의 인식이 표준어 = 서울 방언이고 이는 실제로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 생기는 오해이긴 한데, 사실 서울 방언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고 한다.

표준어가 존재하는 곳은 사투리가 공통적으로 유머 소재처럼 쓰인다. 청중에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뒤틀려있는 느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해당 방언을 구사하는 지역 사람들에겐 자신들을 웃기는 유머도 아니라 '저게 유머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지식 전달 정도로 느껴진다.

흔히 지방 사투리 앞에 '투박한', '토속적인', '구수한' 등 수식을 쓰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런 태도는 표준어와 사투리를 '보편과 특수'로 놓는 생각에서 나온 편견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언어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인 표준어로 풀듯, 사투리 화자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인 지역 사투리로 푸는 것일 뿐이다. 사투리에 부여하는 구수함, 토속적, 투박함 같은 특성은 표준어를 보편으로 전제하면서 사투리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 미디어가 발전하고 표준어 보급 정책이 강력해지자 토크 방송에서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차별이 심해 '비속어'를 쓴다고 지적받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그맨 이경규. 90년대를 지나면서 다시 사투리를 포용하기 시작해, 이제는 토크에서도 사투리 그대로 방송에 출연하거나 MC까지 한다. 하지만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요구되는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표준어에 가까운 언어를 쓰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사투리를 쓰는 경우는 사투리에 대한 선입견을 특징과 재미로 내세우며 쓰는 상황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표준어와 사투리 간 위계상황의 억압감을 서울~경기 방언 화자는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그 외 방언 화자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간혹 혹은 종종 느낀다. 특히 공개 석상이나 많은 대중과 접해야 하는 경우, 수도 방언을 보편적으로 써온 서울말 화자와 달리 사투리 화자는 억압감과 함께 '훈련'을 해야 한다. 또한 이의 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서울말만 써온 학생이 경상도 학교에 초중고에 들어간 경우, 자신은 외로운 '특수 언어인 서울말 쓰는 극소수'가 되고, 나머지 절대 다수는 '보편적인 경상도말'을 쓰는 다수가 되어 놀림을 받다 보면 최소한은 학교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게 된다.

이는 또래 집단에서 흔히 보이는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는 집단괴롭힘처럼 심각한 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위에서 심하게 놀리는 일이 없게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사회에서 다수가 소수 위에 서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좋은 일은 아니다. 물론 표준화해서 표준어로 모두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이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차별하는 부작용도 생기는데, 이는 언어 사대주의, 우월의식과 유관한 문제이다.

2.1. 연원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 시대 이래로 서울~경기 지역은 한반도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한반도 전체에서 통용되었고, 교양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서울~경기 지역 이외에서 쓰이는 한국어 즉, 지방에서 쓰는 언어는 방언(方言)이라 불렸으며 방언은 촌스럽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3]

이러한 인식이 한반도 전체의 한국어 및 후대의 맞춤법에 영향을 크게 준 사례 중 하나가 '역구개음화'(depalatalization) 현상이다. 16세기 이래로 남부 지역에서는 'ㄱ' 뒤에 'ㅣ' 모음이 오면 'ㅈ'으로 바뀌는 '구개음화'(palatalization) 현상이 활발히 일어났다. 서울 지역의 사람들은 이 현상을 꺼리고 촌스럽다고 여긴 나머지 'ㅣ' 앞에 놓은 'ㅈ'을 전부 'ㄱ'으로 바꿔 불렀는데 'ㄱ'에서 구개음화된 'ㅈ'뿐만이 아니라, 원래부터 어형이 'ㅈ'였던 것까지 전부 'ㄱ'으로 바꿔 불렀다. 일종의 과도교정(hypercorrection) 현상이며, 후에 이것이 표준어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어휘가 바뀐 대표적인 예시로는 길쌈 ( < 질삼), 깃( < 짗)(羽), 키 ( < 치)(舵), 기와 ( < 지애 < 디새), 김치 ( < 김ᄎᆡ < 짐ᄎᆡ) 등이 있다.[참고문헌]

서울 방언이 다른 한반도 지역의 한국어에 비해 교양있다는 인식은 조선 시대 뿐만 아니라 일제 시대에서도 지속되었다. 한국어의 표준어는 일제시대 때 탄생하였는 데, 1912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에서도 '서울 방언'을 기준으로 맞춤법을 제정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한국어의 맞춤법의 뿌리가 되는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도 역시 표준어를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하였다.

당시 세간의 인식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양 출신 주요한은 “평양은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평양 출신의 문화인이나 예술가는 평양보다는 경성(서울)을 무대로 하고 활약해야 할 줄 압니다.”라고 주장하고, 경상도 진주 출신 엄흥섭은 “내 고향 영남은 문학 작품에 집어넣을 만한 찬란한 언어미를 갖지 못한 곳입니다. …영남말은 어휘가 적고, 발음이 정확지 못합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라도 군산 출신 채만식, 함경도 경성 출신 김광섭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

이러한 인식은 북한의 표준어 제정에도 영향을 끼쳤는 데, 북한의 수도는 평양이고, 예로부터 평양에서는 서북 방언이 쓰이지만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는 서울 지역의 방언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이다. 김일성은 문화어는 '토백이말(토박이말)'이 아니라면서 서북 방언을 극도로 부정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서울 지외의 지역의 한국어에 대한 제재가 굉장히 강하게 이뤄졌고 지방어(지역어)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승철 교수에 따르면 '표준어의 탄생'이 그 이유의 결정판이었으며, 당시에는 그게 옳은 것처럼 여겨졌는데 제재가 사라진 지금까지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경기 지역의 언어가 교양있고 그 외 지방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는 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2. 문제점

사투리, 틀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입니다.
스브스뉴스
표준어라는 수도권의 중류 계급이 쓰는 발화 습관들이 한 언어의 표준이 된 것에는 정치적 연원을 제외한 어떤 언어학적으로 필연적인 정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사투리나 은어라고 문법성이나 표현력에 하등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방언이야말로 그를 모어로 삼는 화자 집단의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가장 잘 반영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창조성이 자극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인간의 본성 하나라는 것이 놈 촘스키의 결론이며, 이는 문법성이란 누군가가 표준으로 정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언중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학자들이 기록해서 법칙성을 찾아내야 하는 성질의 것임을 의미한다. 사투리 문법이든, 표준어 문법이든 모든 문법은 동등하게 복잡하고 논리적이며, 표현하고 싶은 어떤 생각도 표현할 수 있도록 무한 집합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생각이 한 언어 또는 한 사투리에서 표현될 수 있다면 다른 언어나 사투리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비언어학적 논거를 제외하고는 어떤 문법도 다른 것보다 우월하지 않다.

상기했듯이 표준어의 의의에 맞추어 공적인 대담이나 문서, 여타 매체의 표준이 될 언어는 필요하겠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지역민간의 대담, 서면 언어에서까지 표준어를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언어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을 계속 바꾸어 적응하지만, 태생적으로 표준어란 정부 차원의 제정이 필요해서 유동적인 언어의 변화 과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언중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표준어는 1933년1988년 단 두 번만, 그도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개정하였다. 그 반면에 현대 한국어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서 100년 정도 전의 글도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언중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문법성보다 표준어 규정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어의 표현력과 다양성은 억압받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역설적이게도 또한 표준어로 선정된 대표 방언 자신의 발달마저 저해될 것이다. 사상적 맥락이 비슷한 언어순화 운동이 비슷한 폐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방언은 점점 그 영향력을 잃고 있다. 서부 경남 방언의 중심지인 진주에서조차 청소년 세대들은 주로 서울말을 구사하는 상황이며 고등학교에 진학해 인간 관계가 재정립된 뒤에 동남 방언을 배워서 사용하는 사례들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방언은 점차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가는 추세로 볼 수 있으며 러시아어처럼 방언이 크게 약화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소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표준어 우월주의가 심하면 표준어 체계에 논란이 존재함에도 해당 상황에 표준어 사용을 강요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짜장면', '자장면'의 예가 대중에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사롄데, 그나마 짜장면은 표준어 개정 이후로 공감을 많이 산 사례다. 그와 반대로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키는 '괴팍하다'의 사례가 있다. 까다롭고 별난 성격을 두고 괴팍(乖愎)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과거에는 '괴퍅하다'로 표기되고 발음되는 게 표준 방식이었다. 개정 후로 바뀌었을 뿐이다. 문제는 같은 한자를 쓰는 '강퍅(剛愎)'과 '퍅성(愎性)'이라는 다른 단어들은 개정하지 않고 유독 '괴퍅하다'만 '괴팍하다'로 표준 발음을 바꾸었다는 것. 현재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부는 다른 한자어의 사례를 들어 '괴퍅하다'가 옳다고 주장하며 표준어 우월주의자들도 여기에는 쉽사리 반박을 할 수가 없다. 표준어가 결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며 문제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2.2.1. 지역차별 조장

"사투리 고쳐달라" 논란…표준어 우월 인식, 언제부터?

또한 극심한 수도권 편중화 현상, 계급화 현상과 같은 사회적 계급화에 표준어 우월주의가 미시권력적 도구로 쓰이면서 정치적 차별을 가속화되는 문제점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사투리 쓴다고 까냐?", "저소득층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말투 다르다고 까냐?"[5]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표준어, 또는 그와 가장 가까운 서울말이 소위 벼슬인 세상이 온 것. 이를 보여주는 사례 하나로 제주도 방언의 소멸을 들 수 있다.

다른 사례로 전라도 사투리, 즉 서남 방언도 있다. 이 쪽은 호남소외론과 같은 호남 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다. 방송에서 서남 방언을 쓰는 캐릭터는 가난하거나, 학력이 부족하거나 폭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빨갱이의 짓이라고 믿는 사람이 2020년대에도 꽤 있는 대한민국에서 전라도=빨갱이라는 공식은 적어도 90년대까지는 그 이외 지역에서 거의 진실인 것처럼 여겨졌고, 불이익을 받던 전라도 출신들은 자신의 출신지를 숨기고 말씨도 바꾸었다. 반면 수도권을 제외하면 거주 인구가 가장 많을 뿐더러 집권당의 본거지였던 경상도 출신은 정치적 이유로 자신의 출신지를 감출 필요가 없었으며, 안 그래도 억양이 심한 말투도 힘들여 바꿀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예외는 연기자나 아나운서 등 표준어를 정확히 구사하여만 하는 직종 뿐.[6] 강호동, 이경규 등이 제주도나 전라도 출신이었다면 방송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방언을 꿋꿋하게 사용했을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출신지 외 지역에서 사회 생활(직장 생활)하며 살아가는 젊은 층 여성들이 출신 지역 불문하고 대개 방언을 쓰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사투리를 쓰면 무식하다, 수준 낮다 하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 또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권력의 표현 방법, 과시 수단이기도 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 서울말 표현이 자기 말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서울말이 아닌 표현이
1. 쉽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2. 덜 세련된 표현이라는 인식을 받거나
3. 덜 지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사거나
4. 극도로 타자화당하거나
5. 넷 중 둘 이상이 결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나비 학자이자 제주어 연구자인 석주명이 그의 평안도 사투리를 듣고 간첩으로 오인한 술 취한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고, 영화 국제시장에는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피난민이 빨갱이 취급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동북 방언은 한중관계가 악화되자 조선족 백청강이 '앙까?' 같은 유행어를 만들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니 내 누군지 아니?' 같은 무섭고 험악한 말투의 이미지가 씌워졌고, 실제 동북 방언 사용자인 탈북민이나 심지어 성조가 있는 생소한 말투를 쓰는 남한 토박이도 조선족 같다며 비하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전국의 방언이 모두 금기시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지역에서 쓰는 표현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이 생기면, 자신이 그 집단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게 되고 서로 그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옛 미국이나, 현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특정 지역에서 쓰는 표현에 색안경을 씌우는 것은 그 악성 집단이 원하는 방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중들은 그것에 휩쓸려버려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스스로 형성하게 된다.

성차별이 심했던 과거에는 여성이 사투리를 쓰거나 잘 알고 있으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이러면 시집도 못 간다', '순결하지 못하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는데,[7] 외국에 나가서 알아 듣지 못하는 외국말을 들으면 누가 내 욕을 하지 않을까,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한다.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 하는 사람이 직접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에 가면 막연한 공포심이 생기거나 실제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사투리를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성급한 일반화에 해당하며, 한 지역에 사는 불특정한 사람들을 모두 싫어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언어차별의 폐해는 서울과 수도권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서울 방언을 기반으로 제정된 표준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다보니 정작 표준어의 기반이 된 지역의 고유 방언이 멸실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일선 교사들도 경기 방언이나 서울 사투리를 잘 몰라서 이를 표준어가 아닌, 틀린 말이라고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례로 80년대에 드라마 서울뚝배기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 국민학생들 사이에서 ~했걸랑요가 유행어가 되자, 일선 교사가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지 말라고 훈계를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했걸랑요"는 무식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경기도 사투리였다. 경기 방언은 표준어와 대동소이하기에 이게 원래 표준어였다고 착각하기 쉽고, 게다가 대다수가 이런 말을 쓰기 때문에 굳이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므로, 직업상 표준어 교육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일부 국어 교사나 공무원시험 강사가 이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인식이 바뀌어서 사투리를 대놓고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등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경기 방언이나 서울 사투리는 사투리라는 인식이 없어서 존중해야 할 향토 문화라는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

2.2.2. 세대 갈등 조장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는 신세대와 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성 세대 사이 갈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성 세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현재는 표준어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쓰시는 언어는 과거에는 어법에 맞는 표준어였지만 현재는 표준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서 옛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시절이나 해방 직후 기사문들이 좋은 예이다. 예를 들면 '하루'를 \'하로'로 표기하는 등, 모음조화를 철저히 지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 시절 언어를 쓰는 세대가 대부분 사망한 상태이므로 이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괴팍'이 맞느냐 \'괴퍅'이 맞느냐는 논란이 그러한데, 실제로 이게 헷갈려서 오히려 자녀에게 물어보는 노인들도 있을 정도.

젊은 세대가 노년층 언어에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서울 사투리, 경기 사투리가 많이 등장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한 예인데, 같은 젊은 세대일지라도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 시청자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나, 이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젊은 시청자들은 김수현 작가가 언어 파괴를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특히 청년 중심이고, 정파성이 강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들에서는 더욱 공격적으로 발전해 더욱 노골적으로 사투리를 희화화하거나 공격하는데, 남방한계선(취업)이 공식용어화 될 정도로 현재 청년세대는 서울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직업적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도태된다는 위기감에 노출되어있고, 그렇다보니 점점 기성세대들만 쓰는 사투리나 과거의 언어에 대해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까지 얹어 공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해 비표준어에 대한 정치적 공격은 오히려 남초 커뮤니티에서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전라도 사투리는 아예 쓸 수 없는 정도고, 경상도 사투리를 일베포밍한 ~노체,~누체등을 시작해 화자가 적은 충청도 돌굴러와유,강원도 감자골,이북 김정은 몰이,외쿡사람 한쿸말 잘 몰라효등 충청도 사투리 이하의 적은 화자들이 쓰는 방언에 대한 비하,희화화는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유머취급이다.

이것이 더 나아가 계층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이한 사례이긴 하지만, 말투나 어휘가 요즘 아이와 달리 어딘가 예스러운 아이를 접한 때에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양육된 아이인가보다라고 선입견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 다만 이는 선입견을 갖고 아이를 차별하는 어른들이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조부모 손에 큰 아이들은 조부모 세대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선 시대에 집필된 양아록은 할아버지의 손자 양육 기록서이며, 조부모가 빠진 핵가족은 현대에 와서 생긴 가족제도이다.

2.3. 사례

3. 경상도 화자의 차별

일부 동남 방언의 화자들은 동남 방언에 지나친 자부심우월의식을 느끼며 동남 방언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역 사람을[12] 따돌리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4년에 일어난 한국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은 피해자가 김해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고문, 살해당한 사건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전학 온 피해자를 다른 방언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왕따시키고 지독하게 괴롭힌 예시다.

조금만 찾아봐도 서울말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왕따 당한 예시가 넘쳐난다.

파일:모멸적 발언들1.jpg
파일:모멸적 발언들2.jpg

4. 전라도 화자의 차별

지역감정의 여파로 전라도에서 경상도 방언을 쓴다는 이유로 욕설이나 핀잔을 듣는 사례가 종종 존재한다.

5. 외국인과 귀화허가자를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대한민국/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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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쿡사람"이라는 표현은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찝찝한 걸까요? 저만 그런가요?? 왜 이렇게 거슬리지.
타일러 라쉬트윗
한국인들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차별하는지 느낄 때가 있다. 제가 한국 사람과 외모가 비슷하므로 처음에는 존댓말을 한다. 그러다 한국말이 서툴다는 게 느껴지면 반말을 하기 시작한다. 외국 사람한테는 존댓말 하면 안된다는 게 있는 거 같다.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법은 우리 편이 아니다"
외국인과 귀화허가자를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에 비해 적게 알려져있다. 이것은 외국인과 귀화허가자를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이 적어서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차별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로 백인이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이 많으며,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차별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언어차별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인종차별 혹은 외국인 차별 실태조사에 포함되어 있다.

5.1.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자료

이주민 면접결과에서 드러나듯,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로 간주되고 이주민 여성의 경우 성희롱 또는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험들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중에서
이주민 3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거친 결과 응답자의 62.3%가 한국어 능력에 대한 차별을 겪었다고 했고, 56.6%가 억양에 대한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한국어 능력에 대한 차별의 응답비율은 다른 사유들보다 비율이 가장 높다.

통번역의 부재로 인한 시설 이용의 어려움이라는 문항에서 가끔, 자주, 항상 있다고 응답한 장소가 은행(44.9%), 병원(44.9%), 직장(41.0%), 출입국·외국인 사무소(34.6%),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24.7%), 지방노동사무소(25.4%), 근로복지공단(25.9%), 고용지원센터(27.9%), 행정복지센터(18.6%), 경찰서(21.9%), 법원(18.3%), 다문화가족지원센터(16.4%)인 것으로 나왔다.

차별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 중 응답자의 21.7%가 통역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5.2. 2020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통계청2020년 자료에 따르면 언어차별에 관련된 통계는 아래와 같다.

5.3.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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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의 문제는 그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한국어를 못하는 것을 일종의 질병으로 만드는 한국 사회였다.
재난과 언어, 다시 찬드라의 경우, 백승주 교수
그녀가 ‘좀 모자라는 사람’, 어린애 취급을 당한 건 단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한 사람들은 그녀가 구사하는 네팔어를, ‘우리보다 못한 나라’인 네팔어를 우리말과 동등한 위상을 가진 한 나라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네팔어를 사용하는 그녀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출처
네팔 노동자인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혔던 사건이다.

5.4. 기타 사례

6. 그 외

간혹 인터넷에서 잘못된 맞춤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면 이 단어를 들어 오히려 맞춤법 오류를 지적한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맞춤법이란 동일한 언어(표준어 혹은 방언 등)에서의 표기 규범에 관한 문제로 다른 문제이다. 언어의 표기 규범에 관한 논쟁은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꼭 맞춤법 문제인 게 아니어도 어떤 표현이 규범상으로 바르며 자신이 언어 전공자이면서도 읽어봐서 자신에게 부자연스러우면 지적하거나 공격하는 일도 있다. 이는 틀렸다고 오해하기 쉬운 한국어가 생기는 원인일 수도 있다.

탈북민의 경우 서울말과 다른 말투를 쓸수록 차별이 심하다. 개성 출신 같은 경우 '서울말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등 호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평안도 쪽은 본인은 간혹 차별을 두려워하나 말투가 정감이 간다는 반응도 섞여 있다. # 그러나 함경도 쪽은 성조가 있는 사투리를 쓰기에 서울말과 차이가 커 조선족이냐며 차별을 심하게 받는다. 연변 출신도 함경도에서 유래한 말투를 쓰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말투 때문에 안 받아준다고 스피치 학원을 다닐 정도다. #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함경북도 출신인 강새벽이 차별을 못 견디고 서울말 같은 말투를 쓴다는 설정이 있을 정도다. 탈북민 90% 가량은 함경도 계열이므로 이에 대한 고충이 어느 정도 있다.

특정 계층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이 소외감이 드는 경우도 일종의 언어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7. 관련 문서


[1]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서울 방언을 사용하지 않으면 \'교양이 없는 사람이나 쓰는 말씨로 대화한다'로 해석되는 차별적인 정의이다. 특히 언어가 표준어보다 다소 이질적인 남부지방(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학교나 지역 출신 교사 몇 명은 이러한 정의는 차별적인 표현으로 가르치기도 한다.[2] 이는 자칫하면 창작물의 반영 오류가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3] '한국의 방언과 방언학'(정승철, 2013)[참고문헌] "‘김치’의 어원 연구", 백두현(2019)[5] 이런 사회적 방언의 격차가 극단화된 곳이 영국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화장실을 가리키는 단어로 많이 아는 Toilet(토일렛)은 하류층 영어고, 중산층은 Bathroom(배스룸), 상류층은 Loo(루) 라고 칭한다. 영국 영어에서는 계층에 따라 억양과 발음도 뚜렷한 차이가 나는 동네다. 이는 영국의 귀족층이 평민층과 달리 프랑스어나 라틴어 등만을 향유하던 시기가 길다는 것에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상경과 계층이동이 수십년간 활발해온 한국의 경우는 이런 문제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한국의 경우 양반층은 한문을 문어(文語)로 사용하였으나, 동시에 구어(口語) 사용에서는 한국어로 소통했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입말이든 글말이든 모두 프랑스어로 소통하던 영국 귀족층(최소한 셰익스피어 이전의)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6] 억양이 세다고는 하나, 표준어 말씨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건 전혀 아니다. 연기자, 아나운서 등 연예인 중에는 어른이 될 때까지 해당 지역에서 자랐음에도 방언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7] 인종차별의 근본적 원인도 사실 이거다. 사람의 공포는 거의 대부분 무지에서 온다. 예로 죽음이 막연하게 두려운 이유는 죽은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반대로 성소수자나 외국인 등을 "직접 만나보니 그 사람 의외로 괜찮던데?"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임사체험 경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죽음에 초연해지는 것 역시 이로 인한 것이다.[8] 추가로, 맞춤법 규정의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부분을 보면 맞춤법은 표준어만을 바라보고 설계되었으며 방언의 경우는 고려에서 제외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9] 물론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니 진짜 뼛속까지 고증대로 맞춘다고 하면 자막 없이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중세국어로 연기를 해야 할 텐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어차피 현실과 타협해서 현대어로 연기를 하는 것이니 그냥 표준어로 통일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타국어 더빙판이 만들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굳이 머슴들만 충청 방언을 쓰는 것은 확실히 언어 차별의 소지가 있다.[10] 김슬옹,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저놈을 매우 쳐라[11] '테아라이(手洗い, 손 씻는 곳)'의 축약형이 어원이다.[12] 특히 서남 방언 그리고 서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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