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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02:06:07

우월 의식

우월의식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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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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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전반, 즉 한민족이나 대한민국/북한 국적자 등에 대한 차별은 anti-Korean sentimen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혐한'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인]에 대한 혐오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북한[인]에 대한 혐오는 anti-Korean sentiment에 속하지만 보통 '혐한'과는 별개로 본다. 또한 ethnic Korean (한민족) 뿐 아니라 비한민족 계열 대한민국/북한 국적자도 넓은 의미의 Korean에 포함된다. }}}}}}}}}

1. 개요2. 거짓 우월성3. 용어의 뜻4. 원인5. 현실적 문제6. 영원히 고통받는 천민7. 서열정리8. 우열과 차별9. 집단주의와 서열문화10. 관련 문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고귀한 것은 예전의 당신보다 더 우월해지는 것이다.
There is nothing noble in being superior to your fellow man; true nobility is being superior to your former self.
어니스트 헤밍웨이

1. 개요

우월 의식()은 특정 대상에 대하여 자신이 더욱 뛰어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을 얻으려는 동물의 본능적인 의식으로 일종의 욕심인 셈이다. 인간 대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대 동물, 인간 대 식물, 심지어는 국가 대 국가의 경쟁으로도 드러난다.

2. 거짓 우월성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월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로 거짓 우월성을 꼽았다. 우월의식이란 게 사실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은 xx보다 우월하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은 시궁창이니 거기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정신승리하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많이볼 수 있지만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거짓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각 커뮤니티 인기 분야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정치 극단주의자, 특정 국가빠(일뽕, 중뽕 등), 특정 국가 배척(혐일, 혐중 등), 국뽕, 국까, 선비 등 거짓 우월감에 빠진 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3. 용어의 뜻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유행어로 '우월하다'는 표현이 2000년대 들어 퍼지기 시작했다. 비교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대략 외모(신체 비율, 얼굴 등)가 아주 뛰어나다는 뜻이다.[1] 이에 서울대 홍성욱 교수는 저서에서 이런 표현이 우월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를 나누었던 우생학의 잔재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회에서 '우월하다'와 '우월의식'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선민사상'으로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타민족에 대한 '멸칭'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월 의식을 드러낸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우월하다고 하는 '뇌피셜'에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려 시도한 것이 우생학이었다.

모든 인종이 100% 똑같진 않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인종간 평균키부터 다른데 한국에서 키 작은 남자들을 루저라면서 조롱한 '루저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같은 동북아인들끼리도 서로 키가 더 크네 어쩌네 하며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하는데, 평균키가 185인 네덜란드 남성들이 보기엔 '도토리 키재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생학은 인종간 차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정치적 이유로 연구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4. 원인

인간도 서열을 가리는 무리동물이기에 자신이 서열이 높으면 우등감을 느끼고, 서열이 낮으면 열등감을 느낀다. 이 우월의식은 무력, 권력으로든, 돈으로든, 학벌로든, 직업으로든, 인맥으로든, 나이로든 모든 걸로 다 생길 수 있다. 이러려는 사람들은 내로남불, 허세, 이중잣대를 즐기며 평등과 존중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인격장애적인 성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잡대라고 비하하는 인서울 학생이 지잡대와 같은 취급 받으면 기분 나쁘게 여길 수 있지만, 본인보다 우월한 상위권 대학 학생들에게는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평등을 외칠 수 있다. 하다못해 자기 집 아파트 평수를 자랑하거나, 서울 산다고 지방을 시골로 비하하기도 하며, 지하철에서 괜히 명품시계나 명품백을 은근슬쩍 내보이면서 우월의식을 느끼며 자기만족 하기도 한다.

5. 현실적 문제

우월의식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데 못 가진 것을 가져야 주변에서 인정하고 본인도 목에 힘주며 자랑하지, 남들에게 흔한 것을 자랑하면 비웃음 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애 프로그램에서 어느 남성이 의사면허를 딱 꺼내들면 여성들의 눈빛이 달라질 텐데, 그때 다른 남성이 운전면허를 꺼내들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다. 한때는 휴대폰 자체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으나, 너도 나도 다 가져서 보편화되면 그냥 당연한 것이 된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다들 공중전화에 줄서던 시절이니 무전기만 한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의 과시였으나, 현대엔 무전기 휴대폰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스마트폰 꺼내들어야 남들 다 가진 것이니 "그거 나도 있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없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 받는다.

2023년에 한국의 10~20대 사이에서 삼성 갤럭시를 '아재폰'이라 비하하고 애플 아이폰이 과거 노스페이스 마냥 유행하여 삼성측에서도 고심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실제로 40대 이상에서는 갤럭시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저사양의 키즈폰도 대부분 삼성이고 부모들도 다 삼성이라 삼성은 개나소나 다 가진 흔해빠진 폰인 반면, 아이폰은 뭔가 특별하다는 환상이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 삼성은 다양한 프로모와 할인 행사를 하는데, 이게 오히려 저가폰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딜레마도 있어 고심 중이라고 한다. 삼성도 기능 자체는 나쁘지 않으며 특히 기본적인 기능만 쓰는 대중들에겐 더욱 그러함에도 '1위 브랜드'에 대한 선망이나 로망은 대중들의 본능에 가깝다. 기왕이면 넘사벽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지존'의 이미지가 있는 아이폰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쳐도, 굳이 갤럭시를 쓰는 친구를 놀리거나 차별하며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흔히 '거지도 위아래가 있다'라고 하는데, 어른들이야 학력, 월급 등으로 계급이 나뉘기 때문에 "월급 XXX따리 주제에"라며 무시하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애들은 딱히 서열이 나뉠만한게 없으니 언뜻 평등해보이나 아이폰을 꺼내들며 우월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마다 지능, 체격, 능력이 다르지만, 얼굴이 다른 것만으로도, 절대 물질적으로 평등은 이뤄질 수 없다. 인터넷방송 한번에 10년치 연봉…청순미모 中교사 인생역전 2023년에 중국의 한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에게 동요를 불러주는 영상이 있었는데, 얼굴이 이뻐서 인기폭발하였고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한국의 별풍선 같은 도네이션(후원) 폭탄이 쏟아져 교사직을 그만뒀으며 연예계 데뷔 준비 중이라고 한다. 딱히 비범한 능력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만 이뻤을 뿐인데 얼굴로 승부하여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그래서 댓글엔 얼굴도 능력이라느니 외모가 권력이라는 둥, 한국의 노래 가사 중에서도 '외모는 나의 무기, 뷰티풀 걸'이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해서 BTS의 멤버들에게 전세계 아미들이 다 쏠리는 반면, 가평계곡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쓸쓸히 살다가 늦은 나이에 여자가 나타나서 푹 빠졌는데, 하필 그게 무서운 이은해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방송에 출연한 여자 연예인이 살을 빼고 난 후에 남자들이 많이 접근했다고 하자 "사람이 교만해지죠?"라고 말을 하여 웃음을 안겼는데, 그 교만이 바로 우월의식이다. 누구는 유튜브 아무리 해도 구독자수가 안늘어나는데, 누구는 방송만 켜도 도네이션 쓸어담는 등 세상은 불공평하다.

마기꾼 논란만 봐도 이미 얼굴 하나만으로 우열을 가리며(외모도 경쟁력), 마스크를 벗은 상대의 모습이 별로라면 '마스크 사기꾼'이라는 멸칭으로 비하할 정도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로 우열을 가리는 여성들은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외모가 우월하면 기가 죽거나, 혹은 본인이 더 이쁘다고 생각하면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외모로 서열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이후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외모의 평등'에 가까워졌지만 상대의 얼굴을 모르면 마음이 불안할 수 있다. 초면에 간단한 신상조사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그런 서열정리의 연장선이다. 대략 상대의 스펙을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열이 정해지기에 그에 맞춰 태도가 달라진다. 초반 블루오션이었던 유튜브 시장도 이제 서열정리가 되어 구독자수로 계급이 정해졌는데, 떡상한 유튜버들은 남을 웃기는 재주나 말빨이 있거나 뛰어난 정보력이나 분석, 혹은 노래를 잘한다든지 외모가 엄청 이쁘다든지 뭐 하나 특출난게 있는 사람들이며, 유명해졌다고 초심을 잃고 우월의식이나 선민의식을 드러내는 유튜버들은 욕을 먹기도 한다.

탁발 스님 머리에 손얹고 회개 강요…누리꾼들 ‘분노’(2007) 지하상가에서 탁발 중인 스님의 머리에 한 개신교인이 손을 얹고 회개를 강요하는 사진이 ‘스님의 굴욕’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종교에 관심없는 누리꾼들은 한 손에 커다란 십자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앉아있는 스님의 빛나는 머리에 손을 얹은 채 한껏 우월의식을 과시한 인증샷에 존경이 아닌 혐오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수행 부족'이라며 수행자다운 면모를 보인 두타스님에게는 대인배라며 존경을 표했다. 종교의 전도 역시 상대를 무지한 중생으로 깔보고 우월의식을 과시하며 믿으라고 하는 것보단, 두타스님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봉사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끌리는 것이다. 다만, 이후 SBS에서 두타스님이 동거녀를 죽도로 때리고 가발을 쓰고 나이트를 다니는가 하면 후원금까지 착복한 사실을 폭로하여 실제 회개가 필요한 상태였음이 밝혀져 과거 개신교인이 참교육한 거 아니냐며 종교 자체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까지 생겼다. 하지만 몸을 낮추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종교인들까지 비하하는 것 역시 우월 의식이며, 반대로 종교인들이 무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얻지 못한 가여운 중생이라며 혀를 끌끌 차거나 회개하라는 것도 우월 의식이다. 두타스님이 처음에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타 종교에 대한 너그러운 언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음을 상기해 보자.

스포츠 한일전에서 승리하거나 시험에서 1등하면 우쭐함이 드는 것은 본능적이지만 그 선을 넘어 남을 깔보고 모욕주고 본인이 신격화된 존재인 양 우월함을 드러내면 문제가 된다. 특히 졸부들 중에는 과거 열등감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유난히 부를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여 눈총을 사기도 하는데, 일례로 최고의 재력가만 발급받을 수 있다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센추리온(블랙카드)를 소지한 인플루언서들 중에는 자신의 카드를 자랑하며 "너희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걸지"라고 시청자들을 도발(?)하기도 했다. 반면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는 미국인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린카드를 소유하고 있는데, 카드색깔 따위 의식하지 않고 블랙카드에 관심없는 모습이 더 호감을 주기도 한다. 넘사벽 재력가인 것을 인정해도 굳이 카드를 흔들어보이면서 자랑하며 남을 무시하는 사람에겐 존경보단 경멸을 할 수 있고, 반면 재력가임에도 티를 내지 않고 겸손하고 기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곤 한다. 누가 누굴 비교하고 함부로 깔볼 자격은 절대 없으며 타인을 너무 의식하면 본인 자신의 주체성은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사회에서 '교수'나 '박사'들 중에는 굳이 꼭 자기를 소개할 때 교수나 박사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은연 중의 우월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강연에서 대놓고 자기가 남들보다 엄청 많이 배우고 천재적이라고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박노자 교수도 교수 타이틀은 빠트리지 않는다. 일단 교수 타이틀이 붙으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데, 교수처럼 '우월한' 사람이 목에 힘주는 것이 '우월의식'이다.

광고에서도 우월의식을 자극하며 강조한다. 2023년에는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란 아파트 광고가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차별화된' 정도로 표현했으면 괜찮았을 것이라고 하듯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파트'라거나 '개나소나 다 가진 아파트'라는 광고문구는 보기 어렵다. 항상 '특별한 당신을 위해'라며 차별화를 내세운 광고들이 많다. 저런 광고엔 불편해하기에 언뜻 평등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정작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겐 연봉과 재산이 얼마나 되냐며 자신이 고연봉자임을 자랑하고 휴거(휴먼시아+거지)라고 부르며 깔보고 우월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정보 업체도 '특별한 만남'을 강조하지, '갑남을녀의 평범한 만남'을 내세운 광고는 찾기 힘들다.

물론 정치인들의 광고는 정반대인데, 서민들과 비슷해야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없어보이려고 서민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나, 김남국 가상화폐 보유 논란처럼 라면도 겨우 먹는 줄 알았던 정치인이 알고 보니 서민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이 다른 것을 깨닫고 실망하기도 한다. 평등을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자본주의였던 중국 정부(대만)를 혁명으로 몰아내고 중국을 차지한 중국공산당은 '평등'이란 달콤한 말로 지지를 받았으나 오히려 대만 정부보다 계급의식이 더 심하다. 그래서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방중하여 혼밥했던 것에 대해 중국은 사회주의체제 국가라서 최고 지도자가 서민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기에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에 다가가고자 기획한 일정이었다고 한다. 어째 사회주의 지도자가 자본주의 지도자보다 더 권위적이고 우월의식으로 가득 찬 불평등한 모순을 보여준다.

6. 영원히 고통받는 천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계급의식의 잔재는 남아있다. 선정적인 아이돌이나 유튜버들에게는 '천민 자본주의'라고 부르며 우월의식을 드러내는데 문제는 '영원히 고통받는' 천민이다. 흙수저 천민으로 태어나서 힘들게 살다 간 것도 억울할텐데,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까이고 있는데 양반은 우월한가? 조선인 여성으로서 일본 명문 미술대학을 나온 나혜석은 1934년 잡지에 기고한 '이혼 고백서'에서 조선 남성을 대차게 깠다. 지들은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하며, 체면이나 법률 앞에 서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즐거움을 누리던 몸을 돌이켜 오늘의 군자(君子)가 돼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난폭자라 우리 여성은 모두 이런 남성을 저주한다는 내용이다. 금수저였던 나혜석은 아버지가 보수적인 사대부 집안의 사람이었는데 첩 많이 거느린게 권력이던 시절에 아버지는 당연히 첩질을 하여 딸뻘 기생 첩도 뒀으며, 주변 금수저들도 도긴개긴이었으니 결국 나혜석이 깐 것은 조선의 금수저 남성들이었다. 실제 어린 비서를 건드린 박원순 성폭력 사건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고 잘 살았던 고종 황제는 환갑에 어린 여성을 건드려 '덕혜옹주'를 낳았는데 정력 좋다고 찬양받았으니 선정적인 아이돌을 까려면 '양반 자본주의'라고 하는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다들 서로 양반 출신이라고 하지 천민 출신은 부끄러운지 딱히 내세우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 당당한 일제 피해자와는 달리 천민은 조선의 피해자라서 '천한 존재'라며 우월의식의 희생양으로 조롱당한다. 물론 나혜석은 자식이 낳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하며 반출생주의를 드러내고[2] 본인도 불륜을 해놓고선 적반하장으로 조선 남성들을 까며 우월의식을 드러냈다.

조선이 일제에게 먹히며 조선인들 자체가 피지배계층이 되었는데, 지배계층은 악, 피지배계층은 선이란 이분법적 구도가 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양반 후손 구별법' 등의 영상을 보면 댓글에 자기가 뼈대있는 양반 가문이라고 자랑하는 글 천지다. 간혹 "출신이 뭐가 중요하냐,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군자스러운' 내용을 덧붙이지만 정말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면 굳이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조상이 누구였는지를 구구절절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조상이 노비를 부린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면 굳이 말하지 않았을텐데, 결국 지배계층이란게 피지배계층을 착취한 계층이며 조선을 망하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양반 비판하는 댓글엔 "너네 집 족보 없지?" "너넨 가짜 족보" 등등 족보 부심까지 부린다. 양반들도 결국 노비를 착취한 가해자가 아니냐는 댓글엔 천민들은 무식하니 지배당했다고 피해자 비난을 하거나 양반 가문 출신들이 머리도 좋고 교양이 있다며 가해자를 실드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면 양반들이 이와 기는 하나요 둘이요 논쟁할 때 열강들은 뛰어난 항해술과 압도적인 과학기술로 무장한 군사력을 보유하여 지배한거니 못난게 죄라면 처맞아도 할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일제든 조선이든 다 서열정리한 것이고 본인이 서열이 낮을 땐 차별은 나쁘고 평등이 좋다고 하다가 서열이 높을 땐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조선의 피지배계층은 어차피 일제든 조선이든 억압하는 것은 똑같다며 아예 '국가 해체'까지 주장하며 아나키스트가 되기도 했다. 당시 조선에서도 일제에서도 차별받았던 사람들은 아예 국가 자체를 혐오하며 아나키스트나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헤이그 특사는 일본만 깐 것이 아니었다. 구체제하 정부의 잔혹한 정치에 허덕여왔기에 애원과 희망으로 일본인들을 환영하였으나(이이제이), '정의롭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구호와 달랐다며 분노했다. 당연히 조선의 피지배계층은 조선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보니 탈국가적이고 탈민족적인 아나키스트나 공산주의 이념에 빠져들만 했다. 원래 공산주의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평등을 추구하는 이념이다보니 설마 공산주의를 한다는 국가가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백두혈통이라는 왕족으로 변하리란 것을 몰랐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국가나 체제와 상관없이 삼인성호 마냥 사람은 셋만 모여도 서열이 나뉘며 갑질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갑질을 통제할 안전장치가 없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여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내 자식 왕의 DNA"…교사 아동학대로 직위해제 시킨 교육부 공무원 2023년에는 주호민 특수교사 고소 사건 등 학부모 갑질이 이슈화되었는데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왕의 DNA가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말하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고종황제의 업적이라면, 그저 금수저로 태어나서 목에 힘주고 다니며 한국과 일본에게 막대한 지원을 받아 잘먹고 잘살며 환갑의 나이에도 출산하는 등 정력을 과시한게 전부인데, 아직도 '왕'이라면 우러러보고, '천민'은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한국 사회의 여러 갑질 사례를 보면 과거에 양반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천민들을 천대하고 함부로 대하던 모습과 오버랩 되나, 계급의식을 드러내는 갑질러들에게 '양반 자본주의'라고 하지 않고 '천민 자본주의'라며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민은 그저 '을'처럼 갑질당하던 피해자였을 뿐인데, 되레 '벼슬'처럼 갑질하는 가해자들에게 천하다며 '천민'을 갖다붙이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말라던 과거에는 교사의 갑질, 현대에는 학부모의 갑질 등 이런 '갑질 DNA'로 인해 어떤 종교든 사상이든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저 학부모도 약간의 감투 좀 있다고 최고존엄 마냥 자녀가 친구들에게 폭력을 일삼았음에도 교육부 사무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나는 담임 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협박했고, 실제 아동학대로 신고하여 아이가 3학년일 때 무려 두 차례나 담임이 교체됐다고 한다.

7. 서열정리

개 훈육 전문가 강형욱과 아동 훈육 전문가 오은영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다. 오은영 박사는 훈육이란 가르치는 사람이 주도권과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다 보면 과도한 권위의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권위가 너무 없어도 문제인데, 실제 문제견의 견주나 문제아동의 부모를 보면 오냐오냐 하면서 받들다보니 훈육이 안된다. 그래서 '개통령' 강형욱도 서열정리부터 하라고 강조하며 주인을 무는 개에게는 먼저 눈싸움부터 기선제압한 뒤 약간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순식간에 순한 개로 행동을 교정한다. 특히 이 물리력이란게 서열을 인식시키는데 효과적이라서, 오은영은 체벌의 빠른 효과에 중독되어 점점 더 강도가 세질 수 있다면서 체벌을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즉, 과유불급이라고 적절한 리더십과 권위는 필요하지만, 이게 선을 넘어가면 우월의식을 느끼면서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군대에서 체벌이 암묵적으로 용인됐던 것도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 때문이었는데, 점점 선을 넘으며 과도한 갑질과 범죄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같은 부작용이 벌어져 결국 금지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범죄심리학자는 엘리베이터 CCTV만 보고도 바로 3명의 권력관계를 알아챘는데, 가장 겸손하게 서있는 청년이 서열이 낮고, 그 청년의 머리를 툭툭 치며 옆에 있는 청년이 두번째,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신 있게 머리를 만지는 청년이 가장 서열이 높다고 분석했고 실제 맞았다. 이미 '우월의식'은 엘리베이터의 몇초 장면만으로도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이다.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에 대해 분석한 박지선 교수는 3인조 강도의 경우는 보통 1명의 주범이 있고 종범들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딱 3명만 모여도 벌써 서열이 나뉘어 무리를 리드하며 이끌어가는 '리더'가 생겨나는 것이다. 딱히 누가 리더라고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았어도, 범죄를 분석해보면 누가 '리더급'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의 행동부터가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데, 상대의 지위가 높을수록 몸이 더 움츠러든다. 이미 몸이 권력관계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후임과 있으면 어깨가 펴지고 주머니에 손도 넣는 등 딱히 의식하여 행동한게 아닐지라도 뭔가 저절로 풀어지는데, 그래서 군대에서 후임과 단둘이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을 외부에서 관찰하면 계급장 떼고도 행동만으로 누가 서열이 위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실제 미국의 트럼프가 방중했을 때 시진핑의 사소한 행동만으로 '패권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유행했었는데, 바로 시진핑이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가 트럼프가 뒤돌아보자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차렷 자세'를 취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나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지도자가 방중했을 때는 목에 깁스한 듯 '황제 포스'를 취하는 거만한 모습에서 우월의식을 대놓고 드러내기에 이미 누가 서열이 위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들은 권력 있는 곳에 부패가 있다며 권력을 부정한다. 하지만 권력이란 것이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역의 노숙자들이 먼저 자리 차지하고 있다고 텃세 부리는 것도 나름의 권력이다. 한 가정만 봐도 부부 중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며, 형제 중에서도 주도권을 쥔 쪽이 서열이 높은 것이다. 국가주의자들에 맞서 아나키스트가 자신의 주장이 맞다며 이겨먹으려는 것 자체가 이미 본인이 주도권을 쥐려는 '서열정리'인 것이다. 아나키스트 커뮤니티에 가봐도 자기들끼리 논쟁붙어서 서로 맞다고 패가 갈려 싸우는데, '평등'을 좋아하는 공산주의자들끼리도 서로 파벌이 갈려 싸우다 이긴 쪽이 최고존엄이 되어 우월의식을 느낀다.

국가가 자유를 탄압한다며 국가가 사라지면 계급에서 해방되고 만인이 평등해져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으나, 현실은 국가 없어도 골목에서 아이들이 모여도 골목대장이 탄생한다. 염천교 거지소굴의 최고존엄이었던 '거지왕' 김춘삼처럼 거지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고 무리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서열정리가 이뤄지게 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국가의 탄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보다는, 직장 등 사적인 조직생활에서 갑질을 당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염전노예나 사이비 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여 구출될 정도니, 국가가 없으면 더 약육강식의 자연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아포칼립스 작품에서는 '약육강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며, 국가가 없으면 해방된다는 것은 북한 같은 국가들이 많았던 옛날에나 먹히는 얘기일 뿐, 현대 민주국가들이라면 국가가 있어야만 약자가 복지 등의 혜택으로 생존과 자유를 얻는다. 실제로 2023년 컨선월드와이드 후원광고에서는 '살고싶다는 소망이 욕심이 되는 곳, 동아프리카 지역입니다'라고 하는데,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어 '각자도생'에 내몰리게 되면 약자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다. 애초 자연계의 법칙인 '약육강식' 자체가 철저한 위계질서이며, 호랑이와 토끼가 어깨동무하고 춤추는 세상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식량난으로 굶주려 눈이 벌개진 산적이나 조폭에게 자비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니, 그저 죽이지 않고 약탈만 하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 이미 치안이 안좋은 외국에 가도 강도 만나면 줄 돈을 가지고 다니며 죽지만 않아도 다행인 국가들이 있다.

타인들에 비해 더많은 권한을 쥔 사람이 바로 권력자다. 따라서 현대 민주국가들은 위계질서를 인정하되, 북한처럼 최고존엄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권력을 분산시켜놓고, 연임제한을 헌법으로 강제시켜놔서 권력을 순환시키고[3], 권력을 지닌 대신 책임윤리 강화,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화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권력을 서민의 투표권으로 만들게 하여, 1대1로는 권력자가 서열이 높지만, 다수의 국민들보다는 서열을 낮게 하여 국민의 눈치를 보게끔 장치해놨다. 그럼에도 민주국가들의 권력자들도 일단 서민들보다는 권력을 지니고 있으니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고, 독재국가야 말할 것도 없다.

학창시절 새학기에 서로 눈치보고 괜히 센 척하며 기싸움하는 것도 일종의 서열싸움인데 왠지 약해 보이면 무시 당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 우월의식은 크게 두 가지로 표출되는데, 상대가 좀 불쌍해 보이면 동정심으로 잘해줄 수 있고, 재수없어 보이면 무시하거나 갑질을 하며 심술을 부릴 수도 있다. 동정심과 무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란 밈이 이런 예이다. 형과 사이가 원만했을 때야 그냥 형을 속으로만 한심하게 생각하고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고 동정심에 잘대해줬을 수도 있으나, 형이 짜증나게 하자 폭발하여 본심을 드러냈다. 어느 격투기 선수는 왕따 학생들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며 학폭 가해자들을 비판했으나, 자신의 유튜브에 악플을 단 악플러들에게 "학교 다닐때 쳐맞고 다니고 친구도 없는 놈들이 인터넷에서 저런다"라면서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자 악플러들이 격투기 선수에게 양아치 같은 친구들 많아서 좋겠다고 비꼬면서 그딴 친구들 사귈 바엔 혼자 노는 게 낫다는 악플을 달았는데, 이 역시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의식이 담긴 악플, 곧 서로 친구가 많네 없네 하면서 자기가 더 낫다 하는 것을 과시하려는 서열싸움인 것이다.

절친이나 부부간에도 화가 나서 싸울 때는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며 갈등을 악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상대의 '약점'이 자신이 우월의식을 느끼는 포인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착한 노인은 '어르신', 짜증나는 노인은 '틀딱'이라는 밈도 결국 내 비위에 거슬리면 언제든 상대의 약점을 헐뜯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즉, 말로는 '어르신'이라며 공경해도 이미 자신보다 열등해 보이는 신체적 약점을 잘 파악하여 인지하는 것 자체가 '우월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수틀리면 바로 '틀딱'이라고 질러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갑게 대하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나보다 우월한 부분, 열등한 부분을 전투력 측정기 마냥 인식하여 염두에 두고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니, 일본에서도 '혼네(속마음)', '다테마에(겉치레)'란 말도 있다. 인간은 둘만 모여도 하다못해 나이로나마 서열을 가려야 마음이 편해지기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언도 있다. 특히 사업이 기울자 주변사람들이 손절하며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고 정내미가 떨어져 현타와 인간혐오를 느껴 홀로 산속으로 도피하여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기도 한다.

원래 서열정리가 끝나면, 자신보다 우월한 서열에는 겸손해지는 본능이 있다 보니 세계 대전도 패전국은 승전국에 겸손해지며 복종하듯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같은 말도 격투기 선수가 양아치를 패대기치며 참교육을 한 후에 훈계하는 등으로 '우월한' 사람이 해야 겸손하게 수긍하고 귀담아 듣지, 아무것도 없는 백수가 이런 말을 하면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 소리를 들으며 '정신승리' 내지는 '자기합리화'란 비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말도 우월한 사람만이, 곧 본인이 일단 힘이 세야 할 수 있는 특권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선수의 목엔 힘이 들어가 있는데, 그런 훈계를 하면서 우월의식을 느낄 수도 있지만 참교육에 가깝다면 우월의식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똑같은 말 후에 헤밍웨이 같은 수상자 등의 이름이 출처로 써져 있어야 권위가 있지, '무직백수'나 '위키러'가 쓰여 있으면 권위가 대폭 추락하고 위키에 인용될 수조차 없다.[4] 인터넷 기사에 인용할 가치만 있으면 출처를 덮어놓고 인용하기도 하고, 그래서 원작자들이 출처 표기를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명언도, 돈이 돈을 버는 것도, 중소기업의 특허를 대기업에 빼앗기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으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같은 말을 하거나 "A는 범죄자이니까 A의 말은 모두 틀렸다." 식으로 인신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쓴 물건을 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복신앙도 대개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갖게 해달라고 빌거나[5],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비는 등 우월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래저래 한다'라는 명언들도, 결국 '우월한 존재(지혜로운 사람들)'가 되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잘나가며 잘난 척을 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거나 재산을 잃는 등 불행이 닥칠 때 사람들이 시기하다가 '자업자득(업보)'이라거나 '천벌'을 받았다는 것도 열등해졌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반면, 엄청 외모가 빼어나거나 신체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천혜의 육체(유전자)'라는 식으로 우월함을 드러낸다.

8. 우열과 차별

건강한 사람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 실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선망의 대상으로서 광고에 많이 출연하는 등 관심을 받으나,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동정의 시선이 있고 광고도 그리 많이 찍지는 못한다. 특히 과거엔 '레임덕(절름발이 오리)'처럼 비유적으로 '절름발이', '귀머거리', '병신'처럼 장애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많이 쓰였다. 심지어 한 진보 언론인은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다가 '투표 안 하면 정박아'라는 말을 하여 장애인 단체에 항의를 받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노인의 틀니나 주름 등 신체적인 약점을 비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진보 팟캐스트에서는 투표날에 노인들이 못 투표하게 에스칼레이터 고장내놓자면서, 노인들이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것을 흉내내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장애인 단체와 여성 단체들은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어서인지,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비판하면 '장애인 혐오'라든지, 여성 단체를 비판하면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혐오와 차별은 안 된다며 '평등'을 외치기도 한다.

장애인을 '목발'로 지칭하고 흉내내며 '목발 압수'니 이런 말을 하면 참 저열하고 인성이 안된 사람이듯이, 노인을 '틀니'로 지칭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발언에서 차별의식과 자신이 우월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자신이 막상 장애를 입거나 틀니를 하면 그걸로 남을 비웃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장애를 입거나 노인이라도 비하 발언을 못할텐데, 실제 2020년에 신체적으로 '우월한' 격투기 선수 유우성은 할머니가 자신을 키워줬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94세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나왔다. 반면, 10대들이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괴롭히고 놀리는 영상을 재밌다고 찍어 올리거나[6] 사회복무요원들이 노인요양시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학대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 패륜적 사건들은 '인간 혐오'와 더불어 '반출생주의'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좋았던 옛날 편향의 원인이기도 하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인해 '고통의 대물림'을 끊자는 것도 명분이지만, 저 가해자들이나, 저 노인들이 먼 훗날 자기 자녀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해봐도 꺼림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노인을 낳은 부모들도 출생 당시엔 기뻐하며 박수쳤을 텐데, 어느덧 자신들이 먼저 떠나고 남은 자녀는 이제 늙고 병들어 움직일 기운도 없어 손자뻘 청년들에게서 '장난감'처럼 놀려지고, 자녀가 굴욕과 고통을 겪는 모습을 가해자들은 낄낄대며 촬영하고 영상을 공유한 사실을 안다거든 부모들은 저승에서도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수평 폭력을 즐기던 사회복무요원들은 요양시설 관계자가 알자 급 공손해지며 사과했고 원래는 '착한 청년들'이랬는데, 강약약강의 본성을 잘 보여줬다.

한편으로 남들이 가진 것을 안 가졌다고 우월해하기도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자랑하는 것이 이 예이다. 복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수집가들끼리는 오래된 물건이나 수집품을 가져오면 좋아하겠지만, 새로움을 쫓는 일반적 사람들은 왜 그런 물건을 쓰냐며 싫어할 것이다.

꼭 자기 자랑만이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일부러 여주인공이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도 우월의식이다. '난 이런 애랑 놀아주는 착한 여자야'라는 우월의식인 것이다. 유명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버스나 지하철에 탄 것을 스스로 인스타에 인증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이유를 얘기하지 않고 상대의 얘기를 무시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쩐다거나 어쩌지 않는다는 것도 은연 중의 우월의식 내지 오만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어떤 예의/예절을 질병 등 때문에 지키기 어려워하는데도 원인은 무시하면서 예의/예절을 지키라고만 하는 것도 그 대상을 낮잡아 보는 은연 중의 우월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래저래 한다라는 명언들은 "이래저래 하지 않으면 지혜롭지 않다=열등하다"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 직설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들도 있는데, 획일적으로 '살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어 그 말을 하는 화자 자신은 스스로 살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우월의식의 시선으로 남을 가르치려 저런 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우월의식을 느끼며 남을 비하하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식으로 모순된 말을 하기도 하는데, 타인에게 자신의 잣대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살 가치"라는 것을 대체 누가 정한 것이며,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충분히 우월해보이는 사람도 스스로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목숨을 끊기도 하는데,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기준으로 타인에게 살 가치가 있니 없니 함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자 독선일 수도 있다. 일례로 이슬람 남성이 히잡을 안 쓴 여성은 살 가치가 없다고 자신의 종교적 관점으로 재단하여 히잡 안 쓴 여성을 살해하여 논란이 됐었다.

주차요원들이 값비싼 외제차가 오면 자격지심을 느끼고 조그마한 소형차나 허름한 차가 올 때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대우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달라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차만 좋은 카푸어족들도 있다. 애초에 무시하고 싶다는 느낌 자체가 우월의식을 전제로 한다. 사우나에서도 웃통 벗고 앉아 있는데 옆에 마동석 같은 사람이 앉을 때는 그 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괜히 위축되고 움츠러 들 수 있으나, 한민관처럼 비쩍 마른 사람이 옆에 앉을 때 본인이 근육이 더 많으면 괜히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며 우월의식이 들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 '한 마음', '민심', '인류애' 같은 말들도 우월해 보이는 유명한 가수 등이 나오는 무대나 월드컵, 종교 시설, 시위 장소 등에서 잘 나오지,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말들은커녕 서로 어울려 노는 것을 보기도 어려우며, 외로운 사람이 뭘 같이 하려 하면 관심병자로 몰려 병먹금을 당할 수도 있고,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에 적힌 것처럼 오히려 수평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곧, 수평 관계는 외면하고 수직 관계를 선호하는 것이며, 그래서 찬물(거지)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월드컵, 올림픽에 있는 '금메달'도 결국 어느 선수(국가)가 더 우월하냐 경쟁이며(한일전 등) 시상식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수의 애국가만 울려퍼지고 국기가 제일 위에 올라가는 게 어떤 사람들에겐 우월의식과 국뽕(선민사상)을 충족해 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원래 히틀러의 독일 올림픽 등 올림픽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스포츠 팬들은 손흥민이나 메시 등 '우월한' 선수들에게 대리만족을 하며 가끔 지나치게 빙의(감정이입)하여 동일시하고 논쟁에 목숨걸기도 한다. '고트 논쟁' 때는 종종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훌리건 등으로 과도하게 집착하는데, 대개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빠져든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도 별로 없어서 가볍게 즐기는 정도지만, 열등감이 큰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격투기 선수가 챔피언이라도 되면 자신이 챔피언이 된 것처럼 기뻐하고 대리만족하며 우월감을 느끼기에, 더욱 집착하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도 이런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스님들도 종파 분쟁이나 내부 권력투쟁으로 스님들간에 각목들고 패싸움 벌이는 진풍경도 종종 펼쳐져 '소림무술 대회'란 비판도 받는다. JMS 같은 것은 이단이라 치더라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목사가 '최고존엄'처럼 군림하며 여신도에게 빤스 벗으라고 했을 때 빤스 벗어야 내 신도라는 둥의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나마 조용하다는 천주교에서도, 고해성사에 참가한 여신도가 하필 변태 신부를 만나, 신부가 성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심지어 직장까지 찾아와 스토킹까지 해서 신도가 참다못해 천주교 윗선에 항의했는데 윗선에서는 대충 묻으려고 하고, 오히려 여신도가 꼬리를 쳤다는 식으로 몰아가서 언론사에 제보한 적도 있다. 물론 일부 사례들을 확대해석해 종교인들을 싸잡아 위선자로 비판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으며, 무종교자인 자신을 드높이는 또다른 우월의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 단체에서 '권력' 수직 구조가 뚜렷하다.

서민들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서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차별했다며 난리를 치고 '서민비하 논란'을 벌인다. 정치인이 명품구두를 신었다고 논란을 벌이기도 하니, 유명인들은 '서민 코스프레'를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가, 기업가들이 우월의식으로 목에 힘주고 다닌다며 까기도 한다. 이것만 보면 서민들은 우월의식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본인이 '갑'이라면 어떨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도 우월의식이 드러난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을 거지라며 비하할 때 쓰는 저질은어인 '휴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잔인하냐면, 원래 주공아파트 이미지가 안 좋아 '주공아파트+거지=주거'라는 은어가 있기도 해서 주공아파트가 나름은 '휴먼시아'란 폼나는 브랜드를 런칭했더니 바로 '휴먼시아+거지=휴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휴거'라고 조롱하며 우월의식을 느끼는 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서민 차별하지 말라며 평등을 외치는 것은 이중잣대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 같은 브랜드 아파트에서도 평수 가지고 차별하기도 한다. 원래 '다같이 어울리라고' 대형평수와 소형평수를 같이 지었더니만, 오히려 차별이 더욱 심하고, 대형평수에 사는 사람이 억대의 외제차를 몇 대씩 굴리는 등 위화감 조성이 심해서 소형평수에 겨우 빚내서 사는 사람들은 차라리 따로 짓는 게 낫다고도 한다.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고 열폭하는 것 자체가 본인이 우월해지고자 하는 심리이니 부자에게서 괜히 열등감 폭발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부자처럼 우월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사람들은 별로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관심이 없다 보니, 부자에게 관심을 안 준다.

<이외수 감성마을>에 살던 소설가 이외수는 <이외수의 감성사전>에서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으로 폄하했다. 이외수 "감성마을 '아방궁'으로 놀러오세요" 감성마을에는 이외수의 주거 공간과 집필실, 교육과 강연 시설인 모월당, 문학전시관 등이 조성돼 있는데, 혈세가 100억 가까이 투입되어 마광수 교수는 "군민 혈세로 미친 X 호화주택이나 지어주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비난했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특정인의 이름을 딴 '마을'을 통째로 지어주는 인물이 바로 '우월한 인물'이다. 박물관처럼 넓은 곳에서 여유있게 살던 이외수가 보기에, 좁은 아파트에 다닥다닥하게 붙어 사는 사람들이 하천의 가재, 게, 금붕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을 갖으려 영끌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그림의 떡'인 사람들도 있기에 폄하 자체가 우월의식일 수도 있다.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7] '피해자 비난' 문서의 '피해자다움' 문단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9. 집단주의와 서열문화

시골개인주의화가 덜 되어 집단주의 문화가 심한 곳이 많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할 정도로 이웃 교류가 많다보니 상부상조하는 장점은 있지만,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이장과 가까운 순으로 권력자 행세를 하며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도시에서 무턱대고 시골을 선망하며 떠났다가, 상납을 안 했다든지 등의 사유로 왕따를 당해 떠나는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주의화되어 사생활이 보장되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아파트도 부녀회 등 교류가 많은 사람들은 또 남편자랑, 자식자랑 등 남과 비교를 하며 우월의식을 드러내고 집단주의 문화가 형성되어 차별을 하거나 텃세를 부리곤 한다. 아파트 난방비 비리 사건에서 김부선은 '난방 열사'라고 불릴 정도다. 그나마도 도시에선 어차피 이사가면 그만이고, 아파트 자체가 개인주의화된 공간인지라 부녀회에서 왕따를 한들 피해가 크지 않으나, 뼈를 묻을 각오로 사는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을때도 이웃의 손길이 필요하므로 집단에 대항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폐쇄된 시골마을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종종 나왔는데,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마을 주민들은 범인이 대충 누군지 알고 있어도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한다. 서로 다 아는 사이인지라 '우리가 남이가' 조폭식 의리처럼 되는 것이다. 실제 마을 주민들이 지적 장애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어도 마을에서는 이미지 나빠진다고 쉬쉬하며, 심지어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화를 내며 공격하기도 할 정도다. 닫힌 사회의 무서움은 완도 아령 살인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집단 이기주의'는 도시에서도 이어지는데, 박완서가 1979년에 쓴 작품 '옥상의 민들레꽃'에서는 '궁전 아파트'에서 할머니의 자살로 집값 하락을 어떻게 막을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혐오시설 들어서면 땅값 떨어진다고 강제로 마을주민을 반대시위에 참여시키는 시골의 모습과 유사하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식량생산의 증가로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 수가 폭증하게 되어 현대문명의 기반이 되었다고 했으나(대형병원, 맥도날드, CGV 등은 인구가 많은 곳에만 들어선다), 그로 인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분화하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증가하고 자유도 잃었다고 평가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화는 수렵생활과 농경생활의 중간 정도의 포지션이 되었다. 농경생활 당시에는 태어난 곳에서 뼈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고, 직장, 친구, 생활 등이 일원화였기에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직장이나 친구, 집 등이 각자 떨어져 분산투자된 느낌이기에, 그나마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긴 했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면 데미지가 좀 크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전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파트 부녀회에게 찍혀 왕따를 당한다고 한들, 어차피 현대사회에서 집은 대개 잠만 자는 용도 정도로 격하되었기에 수렵생활처럼 훌쩍 떠나면 그만이니 별로 무섭지 않다. 좀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농촌도 현대에는 그곳의 '터줏대감'들이 죽거나 떠나고, 돈많은 외지인들이 별장처럼 오는 곳이 많아 개인주의화가 된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농촌사회는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을 보면 지역사회가 완전히 유착되어 심지어 경찰과 판사까지 한통속이라서 고인물(지역 카르텔)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공중보건의가 신안을 떠나면서 제보하여 알려졌다. 영화 '구타유발자들' 코멘터리에서는 과거에 어느 시골에 갔다가 왠지 기이한 마을 주민들에게 불안함을 느꼈다는 일화를 설명한다.

주로 '을'이 평등을 강조하는 것도, 갑과 평등해지는 것은 '레벨 상승'으로서 전보다 우월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같이 망하자는 심리도 결국 남이 나보다 우월한 꼴은 못 보겠다는 열폭의 심리다. 간혹 갑이 평등을 강조하나 '평등팔이'로 본인이 더 우월해지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목수의 망치나 판사의 망치는 똑같은데 왜 판사가 돈을 더 받냐며 평등을 외치는 강연으로 떡상했던 인플루언서는 '고액 강연료 논란'이 있었을 때 다른 강연자들과 똑같이 돈을 받겠다고 한 게 아닌, 자신은 기부도 한다며 결국 다른 강연자들보다 우월한 '황금 마우스'임을 정당화했다. 또 '기부'를 어필하며 자신의 상품성과 몸값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하천의 가재, 게, 금붕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말로 유명해진 교수는 정작 교수자리로도 성이 안 찼는지 장관까지 노리다가 여러 논란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또 딸은 조기유학에 억지로 의사 시키려 부정을 저지르다가 법적 처벌까지 받았다. 자기 밑에 있는 하천의 가붕게들끼리는 평등하길 원하지만, 본인과 자녀는 '우월하게' 하늘의 용이 되고 싶은 것이 갑이 말하는 평등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교수 자리 포기하고 아파트 경비를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거나, 자녀를 공장 노동자로서 보내는 갑은 보기 매우 어렵다.

특목고에 다니는 어느 정치인의 자녀는, 학교에서 자기만 선정되어 유학갈 줄 알았는데 자기 친구들도 같이 가게 됐다며 SNS에 '개나소나 다 간다'고 불평을 했던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티타늄(마스터카드)' 문서 개요에는 '개나소나(...) 다 받을 수 있는 플래티늄'이 적혀 있다. 신용카드 '플래티늄' 문서에도 요샌 개나소나 다 플래티늄 들고 다니기에 가치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실제 플래티늄은 원래 프리미엄 등급이었으나, 너도나도 다 플래티늄을 들고 다니다 보니 희소성이 떨어져, 정말 상위 1%를 대상으로 한 등급까지 나왔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고, 초청을 받아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그들만의 카드'까지 등장한 것이다. 굳이 신용카드 따위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카드를 가지고 싶다 보니 엄청난 연회비를 들여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데, 이들이 일행과 식사하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며 '명품' 신용카드를 딱 내보일 때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몇몇 연예인들도 이런 카드 소지자로 알려져 있으나 대중들이 다소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플래티늄조차 아닌 그냥 일반 평범한 신용카드 쓰는 연예인들을 더 친근하게 느끼기도 한다. '못 가지는 사람'과는 달리 '가질 수 있는데 안 가지는 사람'은 우월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 신용카드의 광고는 일시불로 결제 후에 할부로 전환하는 기능을 강조하며, 부하직원들 데리고 식당에서 계산할 때 할부로 결제해달라고 말하며 부끄러워 하다가, 카드를 바꾼 뒤에는 목에 힘주며 일시불로 시크하게 계산한 후 집에 와서 할부로(...) 바꾸는 장면을 보여줬는데, 이런 사소한 것에도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 탓이라는 의견도 있는 듯하나, 자신들이 '을'이었을 때 자본가들에게 분노해 '평등'을 명분으로 체제를 뒤엎은 공산주의자들은 막상 자신들이 '갑'이 되어 칼자루를 쥐자 자본가들을 최하층 계급으로 돌렸고, 그 중 일부는 기어이 '최고존엄'까지 올라갔다. 이들 및 후계자들은 우월의식의 끝판왕 수준이며, 백두혈통은 아예 신격화됐다. 내가 갑이 되겠다고 하면 견제될 게 뻔하니 평등을 외쳤던 것일 뿐이며, 한 예로 북한은 2019 세계 최악 현대판 노예국가로 선정됐다(워크프리재단).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 처형 후 세월이 흘러도 바뀔 수 없는 것이 백두혈통이라며, 이 하늘 아래서 감히 원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절대로 용서치 않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우월의식을 선언했다.

진중권 교수는 갑질을 비판하다가 갑질로 논란이 된 사례에 대해 "그저 권력이 없어 부패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가해자인 이찬희 병장 역시 이병 시절에는 고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소원수리를 긁으며 인격적인 대우를 호소하던 피해자였기에 만약 그때 죽었으면 불쌍한 피해자로 언론에 묘사됐을 수 있다. 실제로 군 입대 전에는 친척의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여 돈을 수천만 원 벌어 거의 쓰지 않고 착실하게 모았다고 했으니, 유흥비로 흥청망청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들보다는 나름대로 성실한 청년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본인이 갑이 되자 을을 배려하기커녕 갑질을 넘어 잔혹한 학대 수준으로 괴롭히다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처럼 가해자가 된 피해자들 중에는 본인이 을이던 시절에는 평등, 인권 같은 좋은 말을 하다가 막상 갑이 되면 보상심리로 더욱 갑질을 하는 사례들이 있고, 그래서 '흉보면서 닮는다'는 속담도 있다.

엇비슷한 목표를 향해 모두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니 소수만이 성공(우승감)을, 다수는 실패(열패감)를 경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실제 기사에서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원인으로 꼽았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럽다 보니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것이다. 또한, 강요하지는 않는 척하거나 존중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자기가 바라는 진로의 장점은 엄청나게 부각하고, 나머지 진로는 단점만 열거해 서서히 세뇌하면서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려는 부류의 헬리콥터 부모가 생각보다 널려 있다는 말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 사례를 다룬 기사를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대놓고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런 일 해"라며 멸시하거나, 배달기사에게 여성이 진상부리면서 "못배워서 그런 일이나 하는 거야"라며 무시하는 녹취 등 남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는 문화가 있다.[8] 코로나 이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 열풍이 불었을 때 호주에 앞다퉈 가려는 청년들이 많았기에 시사다큐에서도 다루기도 했는데, 남과 비교하는 한국사회에서 탈출하려는 이유도 많았다. 저런 인성을 못갖춘 사람들에게서 인정되는 것도 싫고, 무시되는 것은 더 싫기 때문에 일종의 탈출이었던 것이다.

상술됐듯이 우월의식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고 무리동물 사이에서 서열을 나눌 때 생겨나는 것인 만큼, 획일화된 집단주의 국가에서 경쟁이 심하다. 하지만 서구처럼 개인주의화가 되면, 즉 타인에게 신경 안 쓰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면 각자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 즐기니까 스트레스가 덜하다. 서구에서도 엄연히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다 나눠져 있으며 서구권의 개인주의 국가일수록 도시에 사람들이 많지만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유는, 각자 '자신만의 섬'에서 살면서 굳이 하류층이 상류층과 비교해 열등감에 빠지는 일이 덜하기 때문. 물론 "누가 칼들고 협박함?" 식으로 무시하는 정도로는 말고, 그냥 자신의 수준이나 적성, 취향에 맞춰 분수에 맞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즐기고, 딱히 누가 남과 비교하며 잔소리 하지도 않고 본인도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쓰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집단주의 국가보다는 덜하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들이 굳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듯 말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 때도 우월의식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니 명품에 관심을 안 줄 수도 있다. 초면에 나이 물어보는 것도 비매너인 서구에서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비교질부터 끊어라” 불행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호주로 떠난 청년들이 기껏 호주까지 가서 한다는 일이 한국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일들이어도 종사하면서 만족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니 살 것 같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엄친아처럼 자꾸 남과 비교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과거엔 명절 스트레스 중 하나로 친척을 만나면 결혼이나 취업 물어보거나 거기다 자기 자녀까지 자랑하면 더 비교되니 굉장한 스트레스로 꼽혀서 현대엔 그나마도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잘 물어보지 않는게 매너처럼 정착되기도 했다. 설사 금수저라도 더 잘난 타인과 자꾸 비교하고 넌 왜 못하냐고 다그치거나 너도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너 그거 하면 남들이 흉본다는 식으로 계속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면서 자기가 하고싶은 것도 못한다면 족쇄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아예 낯선 외국으로 떠나면 그곳에선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안하니 해방감과 함께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누군가에게서 우등감을 느낀다면 누군가에게서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상대가 같잖은 우월의식으로 갑질을 하며 멸시하면 본인이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서 '우월의식을 우월의식으로' 반격하기도 하는데, 어느날은 문득 현타가 와서 이런 것 자체가 다 싫어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무시하는 것도 싫고, 무시 당하기도 싫은 청년은 호주로 떠나 아예 남과 비교하기 자체를 안 해버리니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이다.

혜민은 정작 본인은 '풀소유'라 논란이 있긴 했지만[9] '남과 비교하는 게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예전의 당신보다 더 우월해지란 말도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 결국 '서열정리' 본능으로 인해 콩콩콩 귀신처럼 피튀기는 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본인이 능력자라면야 행복할 수 있지만 모두가 원하는 상위 1%는 결국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지라 나머지 다수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한양대 교수의 행복칼럼에도 내가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보다 잘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전보다 잘 하려고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상위 1%와 비교하며 열폭해봐야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속담도 있다. 남과 비교하다 보면, 설사 본인이 1등이래도 2등을 견제하느라 항상 남을 의식하고 불안과 긴장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놀 때 남들 공부할까 봐 신경을 쓰다가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서열에 집착하고, 최대한 우등감을 누리려 하고, 최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건 본능적인 부분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체들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낳을 수 있었다. 태곳적부터 진행되어 온 진화의 서사시에서 그런 유전자는 생존에 유리했고, 우월의식에 강하게 집착하게 하는 유전자일수록 더 잘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했다고 해도 현대인이 '단 걸 좋아하는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 설탕을 많이 먹으면 충치, 비만, 당뇨 등에 걸린다. 마찬가지로 우월의식이 아무리 본능적인 감정이라도 거기에 휘둘려 사는 건 현대인에게 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처럼 복잡하고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우월의식에 집착했다간 자기애성 성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에 걸려 정신건강을 깎아먹는다.[10] 남들과 비교해 날아갈 듯한 우승감을 느끼는 잠깐의 순간들을 위해 나머지 인생을 열패감과 불안으로 지새울 것인가? 물론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의 대다수가 그렇게 살고 있긴 하고,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는데 '난 상관없어' 따위의 초연한(무시당하는 것이 아닌 무시되는 것으로 보는) 마음을 기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마음이 바로 자존감이다.[11] 최근 10여 년간 '자존감'이 큰 화두가 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가 어느 정도 집단적 자정작용을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10. 관련 문서



[1] 구글에서 '우월한'으로 검색해 보면 대부분 선남선녀의 사진이 상위권에 표시되는 것으로도 쉽게 확인된다.[2] 대개 반출생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자녀에게 고통을 대물림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데, '원조 페미'인 나혜석은 그냥 자기 인생에 방해가 되니 아이에게 분노했다. 금수저 출신으로서 당시 여성이 일본 대학까지 나오고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나혜석도 결국 말년엔 비참하고 초라했듯이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인해 반출생주의 사상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나왔던 것이다. 부모가 금수저를 물려주고 당시 일본 대학까지 유학보내주며 최고로 키웠음에도 결국 '늙고(로), 병들고(병), 죽어가는(사) 고통'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30대의 유명 암투병 블로거는 병세가 악화되며 고통이 심했는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고통이 두렵다며 걸어나갈 힘만 있다면 나가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라면서 "이렇게 아플지 알았음 태어나지 말았음 좋았을 것"이라고 소리치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어차피 아기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태어나진 않으니 나혜석은 자기가 좋아서 임신해놓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니 아이에게 악마라고 욕하는 등 오히려 반출생주의 철학자들이 보기엔 더 악마같은 짓을 했다. 왜냐하면 이런 철학자들은 아이를 잘 키우는 부모에게조차 생로병사를 물려주느냐며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임신해놓고 생로병사를 물려주면서 도리어 죄없는 아이에게 자기 몸 힘들다고 악마라고 성토하는 등 훨씬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3] 중국의 시진핑은 셀프개헌으로 연임제한을 없앴다.[4] 반대로 '고령화의 해법은 노인들이 집단자살하는 것'이라는 상당히 과격해 보이는 말의 출처로 '예일대 교수'가 붙어 있으면 나름대로 권위가 있어 보인다. 예일대 조교수 나리타 유스케가 실제로 한 말이다.[5] '부자되세요'란 덕담도 있다.[6] 유우성 같은 사람에게 걸리면 '참교육' 당할 수도 있다.[7] #1-1, #1-2, #1-3[8] 그러나 이 또한 과유불급이다. 애당초에 소수의 인원만 선발하는 직종에 경쟁률이 높아지는 건 뒤로 해도, 만약에 국민 모두가 공부를 잘 해서 공장 일, 길거리 청소, 배달 등을 안 하면 사회가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 아무리 낮게 쳐도 로봇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노동자의 처우를 보장해야 사회가 돌아가지만 덩달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9] 물질적 욕망에 비판적인 강연을 하는 사람이 정작 본인은 '풀소유'라 비판을 받았던 거지, 무소유이냐 풀소유이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사실 본인이 진짜로 우등해서 우월의식을 가지는 거야 당연한 것이고, 다만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갑질이 될 수 있고 타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원한을 살 수도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부하면서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지만, 소유한 것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게 사회에도 이롭고 우월의식을 덜어내는 데에도 좋다. 그 돈을 자기 명품 소비에 쓰는 것보단 말이다. 사회에는 오히려 별로 못 가졌는데 알바생에게 갑질하는 사람, 풀소유이지만 매너가 더 좋은 사람도 있다. 물론 이때는 풀소유인 사람은 어차피 자신이 우등하니 알바생의 태도가 공손하지 않아도 너그럽게 넘어갈 여유가 있을 수 있고, 귀차니즘에 알바생과 다투면 본인의 격이 떨어진다 생각해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격투기 선수들이 오히려 시비거는 양아치들에게 먼저 사과하며 피하기도 하는데,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반면 평소에 사회에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알바생의 태도가 공손하지 않으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어린애들마저 나를 무시한다는 괜한 자격지심에 열폭하여 난동을 부릴 수도 있다.[10] 물론 자신이 건강하다고 아픈 사람들을 깔보면 그 또한 우월의식이다. 하지만 남들과 상관 없이 나 자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11] 자존감=우월감이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