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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인 우원식의 생애에 대해 서술한 문서.2. 실향민 2세
1957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서 아버지 우제화(禹濟和, 1913.12.24 ~ 1987.)와 어머니 안동 김씨 김례정(1917.9.16. ~ 2020.9.29.)[1]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우제화 옹은 황해도 연백군 출신이고, 누나 둘은 북한에 살아 있다고 한다.#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모친인 김례정 씨가 남측 최고령자(당시 나이 96세)로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헤어진지 60년 만에, 상봉신청을 한지 15년 만에 누나 정혜 씨와 상봉이 이루어졌다.
2010년, 누나와의 상봉 |
서울경동초등학교(57회), 서울 성수중학교(3회), 경동고등학교(32회)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1977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 회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학생 운동으로 박정희 정부 퇴진 운동을 벌이다 우선 징집되었다. 1978년 2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60훈련단에서 공병(야전건설 특기)으로 복무했고, 1980년 7월 24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1년 3월 전두환 정부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연세대학교로부터 제적되었다.[2] 이후 1987년부터 1988년까지 1년간 연세대학교 앞에서 '알서점'을 경영하였다.
3. 정계 입문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김대중 지지운동에 참여했다. 이듬해인 1988년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재야민주화운동가 98명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약칭 평민연)을 통해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이희호 여사, 박영숙 국회의원과 함께 |
평화민주당 인권위원회 민권부국장을 맡아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유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88-89인권백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 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
3.1. 제4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1991년 지방선거에서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노원구 제4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재검표 끝에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된 임채정 제14대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임용되었다.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노원구 제3선거구에 출마해 민주자유당 송정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한편, 1992년 노원구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문제가 불거지자 주민대책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환경운동에 나선다. 1995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는 폐기물 관련 조례 개정, 단식농성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앞장섰다. 결국 1996년 서울특별시청과 노원구 주민들 사이에 쓰레기 소각장 운영에 대한 주민협약이 타결되어 4년간 일어난 분쟁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3] 특히 1996년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의회 평가에서 전문성 등 7개 항목 모두 만점을 받아 700점 만점으로 환경관련부분 서울특별시의회 1등 의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도 얻었다.
1996년 21년 만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4] 이후 노원희망포럼 대표를 지냈고,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3.2. 제17대 국회의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권영진[5]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7대 국회에서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에 열린우리당 수석 사무부총장으로 활동했다.‘서울균형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 (대표의원 임채정, 연구책임의원 우원식)을 만들어서 강·남북간 재정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방세법을 개정하여 강북지역에 자치 재정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2007년 4월, 당시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재산세 100%를 공동과세하는 ‘지방세법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강남지역 구청장 및 한나라당 의원들의 법안처리 반대로 인해 결국 재산세 40~50%만을 공동과세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서울특별시 자치구의 재산세를 서울특별시가 2008년도에는 40%, 2009년도에는 45%, 2010년도 이후에는 50% 공동과세하여 각 자치구의 재정력, 인구, 면적 등을 고려하여 각 자치구에 배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장애인을 전체 직원의 2% 이상 의무 고용을 법제화해 장애인도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05년 대표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해 의무고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법관, 헌법 연구관, 공립 유치원 및 초등학교 교사, 정무직 및 일부 기술직 공무원 분야에도 장애인 의무고용 원칙이 적용되었다. #
2007년 주한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문제점과 미군의 기름 유출에 따른 환경오염 치유를 위한 국회청문회를 이끌어 냈고, 반환 협상의 부당함과 미군의 환경오염 은폐 사실을 밝혀냈다. #
3.3. 제18대 국회의원 낙선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재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해 경선에 승리해 후보자가 되었다.그러나 한나라당 권영진 후보에게 5.84%p 차로 밀리며 낙선해 재선에 실패했다.
2009년 2월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에서 환경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3.4.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설욕하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2년 원내대변인을 거쳐, 제18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 총무본부장으로 캠프 살림살이를 맡기도 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거쳐 2013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2014년 세월호 참사(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초동대응 실패, 해경 녹취록 공개, 해수부의 관리부실 등을 밝혀냈다.
3.4.1.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2013년 ‘남양유업 갑질 사태’(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와 같은 연이은 대기업 갑질 사건이 벌어지자 ‘갑의 횡포를 막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자’라는 목적을 갖고 ‘을지로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을지로위원회’는 중구 을지로가 아니라 ‘乙’을 위한 길(路), 법(law), 노력(勞)라는 뜻이다.을지로위원회는 각종 불공정·부당 행위로부터 자영업, 중소기업, 간접고용 비정규직 등 을(乙)의 권리를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2017년 전당대회 때 전국위원회로 승격되었다. 대표적인 갑질 사례인 남양유업 교섭을 이끌어 낸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 기술편취로부터 중소기업 보호,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확보 및 정규직화 추진, 우체국 택배 기사 처우개선,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폐쇄 타결,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보상 중재, 간접고용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개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냈다. 더불어 2015년에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3,000명이 ‘을 당원’으로 입당하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1호 경제민주화 공약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정·청 을지로민생회의’를 만들어 민생과제 해결을 위한 당·정·청의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자영업, 중소기업, 노동자 등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 민생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민생연석회의’출범을 주도하여 카드 수수료 1%대 인하, 편의점주 최저수익보장 및 상생협력 확대, 제로페이 활성화, 택배노동자 과로사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데 기여했다.
국회 청소노동자와 함께 |
3.5. 제20대 국회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현역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하였고, 본 선거에서 새누리당 홍범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3선에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출마선언문 우상호 후보에게 결선 투표에서 7표차로 낙선하였다. 2019년 한 언론사의 초선의원 대상 설문조사에서 의정활동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배의원 1위로 뽑혔다.2016년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특위 위원들과 함께 영국에 있는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 본사를 방문하여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과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가습기살균제 특위 위원장 시절 |
3.5.1. 제3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17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홍영표 의원을 61표 대 54표로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제19대 대통령 선거)으로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 당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정치인에게 넥타이의 색은 보이는 메시지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므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당 색깔에 맞추는데, 대통령이 직접 야당의 색에 맞춘 것이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장 인준을 위해 맨 초록 넥타이[7] |
2018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법정 시한은 지키지 못했지만 자유한국당을 패싱(...) 하고 국민의당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워 공무원 인원을 양보하고 거의 모든 정부 정책을 지켜내 우 원내대표를 미심쩍어 하는 강성 지지자들도 이번에 우 원내대표가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우 원내대표 개인적으로는 이번 협상에서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상위 10%를 제외해 '보편 복지'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가장 아쉽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드루킹 특검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자,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 통과,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그 외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맞바꾸는 '빅딜'을 제안했으나 야당에서 '무조건 특검 수용'을 주장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고, 국회가 정상화되나 싶었지만 5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대상에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판이 깨졌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더 이상의 협의는 어렵겠다"고 하여 특검 관련 협의를 중단했다.#
2018년 5월 9일부로 원내대표 임기가 마무리되었다. 우 원내대표는 마지막 원내대표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원내대표 자리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그 책무와 숙명이 참 무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면서 "한국당의 정치 파업으로 6월 국민개헌의 기회를 놓친 것은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뒤 한국당에 추경 및 민생입법에 대한 협조를 촉구했다. #
마지막 대표회의를 끝마치고 같은 날 오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김성태 원내대표의 병문안을 갔다. 이때 김 원내대표가 “힘들어 죽겠다. (합의) 좀 해주고가”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됐잖나. 어제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특검 수사범위를) 문재인 대통령까지 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나”며 거절했다. #
3.6. 제21대 국회의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해당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4선에 도전하였다. 상대는 한때 같은 당 동지로서 노원구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지휘한 미래통합당 이동섭 전 의원이었지만[8], 이변 없이 62%의 득표율로 큰 차이로 4선에 성공했다.그리고 2020년 8월에 열릴 예정인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 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낙연 전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로 출마하게 되자 “당 안팎의 많은 분들과 상의한 끝에 비상한 시국에 치열한 경쟁보다는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당의 개혁을 일구며 뒷받침할 때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열린 조기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그러나 총 득표율 29.38%를 기록하며 35.60%를 득표한 송영길 , 35.01%를 득표한 홍영표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했다.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재명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이재명과 회동에서 불평등, 불균형,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 정신을 실천할 사람이 아니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이길 수 없다며 강력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해낼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리하고 정권 재창출을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출신 우원식 의원은 동문 김성환 의원과 함께 2022년 7월 13일 모교 연세대학교를 방문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청소노동자들과 면담했다. #
2022년 9월 26일 '공짜노동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및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현장에서 연장·야간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실제 근무 시간과 상관없이 정해진 임금만을 주는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법이다.
2023년 6월 28일부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2023년 7월 10일 15일차 만에 이재명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단식을 중단했다. 6일간 단식을 함께한 김한정 전 의원도 단식을 함께 중단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이 장기적 대응으로 바뀐 것으로 풀이 된다.
8월에는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총괄대책위원장을 맡아 일본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8월 24일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이 나오고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는가에 대한 논란이 나오며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의원도 라디오 매체 등에 불려다니며 유감을 표명했다.
9월 이재명 대표가 단식 투쟁을 실시하자 이재명의 왼편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재명이 단식을 중단하고 국회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어 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잡히자 당 지도부가 사퇴하였는데 원내대표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홍익표 전 원내대표 선출 직후에 SNS를 통해 이재명 대표를 지키자고 말하며 본인은 이미 원내대표 경험이 있고 주변에서 타인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 그를 따랐다고 밝혔다.
3.7.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구 개편으로 3개였던 노원구 선거구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24년 만에 2개로 줄어 노원구 갑 현역이던 고용진 전 의원과 공천장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이게 되었다.[9] 자신의 지역구가 분해되어서 각각 갑, 병에 붙은 만큼 어딜 가도 불리했지만 을구 행정동 7개 중 4개가 갑에 붙었고, 갑구의 공릉동은 을구의 중계, 하계동과 연계가 되어서 좀 더 나은데다가, 무엇보다 병구의 김성환 의원과 절친한 사이라 갑구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10] 조직싸움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와 예결위원장을 모두 지낸 중진의원인데다, 범친명계이기까지 해서인지 비명계로 분류되는 고용진 의원을 꺾은 것으로 보이며, 2004년 17대 총선부터 6회 연속으로 공천[11]되는 기록을 세웠다.본선에서도 60%에 육박한 득표율로 해당 지역구에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국민의힘 현경병 후보를 무난하게 누르고 5선에 성공하였다.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출마했으나 하필이면 경선 상대가 6선의 추미애 당선인이라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고 있었다. 추미애 의원이 선수가 앞서는데다 다른 친명계 후보들과의 단일화를 이뤄내는 모양새까지 연출해 추 의원의 의장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 사실상 러닝메이트 느낌이 강했었다.
그러나 5월 16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추미애를 제치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로 선출되었다. # 언론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인데, 추미애는 초강성으로 분류되어 당 내 재선 이상 의원을 중심으로 반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12] 국회가 생산적으로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너무 강경 일변도로 갈 수 있다는 당 내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우원식 의원 역시 민주당 내에서는 꽤 강경한 성향이다.[13] 국회의장 선거 입후보 당시에도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라며 강성임을 어필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우원식을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추미애 의원은 동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강경파로 보였다는 것이다.
친명계에게 어필하는 측면에서도 사실 '명심'은 추 당선인에게만 쏠린 것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원식 의원 역시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이재명을 지지했던 원조 친명으로 분류되면서도 당 내 신뢰가 높고 이 대표와 함께 21대 국회에서 개혁입법을 위해 호흡을 맞춰온 사이인 만큼 이재명 대표 입장에선 우원식 의원도 국회의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이재명 대표 역시 추미애 의원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 한 재선 의원 역시 언론사 인터뷰에서 "그간 의원들에게 전달된, 명확하게 '명심은 추미애'라는 확실한 시그널이 없었다"고 귀뜸했다.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구설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우원식이 의도치 않게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부 민주당원들의 여론은 썩 좋진 않은 편이다. "박병석과 김진표를 겪고도 아직도 협치 운운하며 국민의힘과 손잡길 원하다니 정신을 못 차렸다"는 비판적인 반응이 우세하며, 정청래 의원 역시 "당원이 주인이어야 하는 정당이 당원을 무시하고 묵살하며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 현실이 착잡하다"며 우원식의 후보 당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강하게 내세웠다. #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끼리만 선거를 했음에도 당심과 판이하게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의외로 볼 수 있다. 우원식 의원 입장에서는 가시적인 대정부 투쟁력을 보이면서 당원들의 반발을 달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며,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의장상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를 의식한 듯 당선 소감문에 <우리는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하나 된 민주당입니다>라며 단합의 메세지를 냄과 동시에 "이번 의장선거를 두고 언론에서 명심, 당심에 대한 부풀리기 기사가 너무 많았습니다."라며 언론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에 정청래 의원은 "현재 당원들이 분노하는 것은 우원식 개인의 능력에 관한 문제가 아닌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당원들의 여론과 의견을 묵살했다."라는 점이 논쟁점이지 이것을 당 갈라치기로 여기고 있다며 우원식 및 우원식의 지지자들이야 말로 당 갈라치기의 여론으로 몰고가지 말라며 요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우원식 의원이 논점 흐리기를 하고 있다며 정면으로 재반박 및 비판하는 답변을 했다.#
다만, 우원식의 의장 선출 자체가 중도층에 소구하기에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호평도 없진 않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인 윤상현은 추미애 대신에 그가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것을 두고, "명심 일극 체제에 대한 우려를 넘어선, 대선 승리에 주안점을 둔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항상 전략적 선택을 해왔다."면서 동시에 “패배한 우리보다 승리한 민주당이 더 먼저 변하고 있다.”고 고평가한 바 있다.##
3.7.1.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
2024년 6월 5일에 열린 제22대 국회 첫번째 본회의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꺾고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공식 선출되었다. 선출 직후 국민의힘과의 상임위원장 문제로 충돌하자 합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의견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자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개원하여 논란의 중심이던 법사위원장을 포함해 11개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과거의 의장들과 달리 현장 친화적 행보를 자주 보이고 있는데[14], 사실 이는 우 의장이 본진인 민주당에서도 을지로위원회를 처음 만든 것 등 적극적 민생주의자에 가까웠단 걸 생각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11개 상임위원장 선출 이후로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6월 17일에 했던 인터뷰에서는 여야가 최대한 협상을 해봐야 겠지만 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시점에 결단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도 초기와 달리 점차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2024년 6월 19일에 입장문을 통해 23일까지 협상을 마무리 해달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결국 국민의힘이 6월 24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추경호 대표의 사직 선언 및 7개 상임위를 수락하며 항복을 선언함으로서 줄다리기 같았던 상임위 논쟁은 일단락이 되었다.
2024년 7월 17일, 국회의장으로서 야당에게는 방송4법 단독 입법과 방통위원장 탄핵 논의 중단을, 정부여당에게는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중단하고 방송4법에 대해 범국민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안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국민의힘에서 중재안을 거부하자, "상황의 변화가 없다면 의장은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에 대해서 내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고 #, 다음날인 2024년 7월 25일 채상병 특검법과 방송4법 등을 순차적으로 처리하였다.
3.7.1.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자정이 넘은 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들을 소집했다. 회의는 개인 유튜브 계정으로 중계했다.<nopad> |
국회 정문이 폐쇄되자 담을 넘어 들어가는 우원식 국회의장 |
12월 4일 개인 유튜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업로드하였다.#
국민 여러분, 우원식 국회의장입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에 대해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국회를 믿고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국회의원께서는 지금 즉시 본회의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군경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오전 1시경 190명의 의원이 참석한 상황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진행했고,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이므로 군경 병력은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보채자 '안건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라. 본 의장도 마음이 급하지만 절차는 지켜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사태는 절차가 잘못되면 또 그것도 문제다.' 라며 진정시키기도 했다. 당장 계엄군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15] 두드러지는 침착함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 무언가 절차적 허점이 있었다면 분명 트집을 잡을 만한 형국이었으니[16] 결과적으로 이 대처는 매우 훌륭한 행동이 되었다.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에 대해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국회를 믿고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국회의원께서는 지금 즉시 본회의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군경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입구가 폐쇄되자 담을 넘어서까지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날의 행적이 기사로 남았다#
BBC News와의 인터뷰에서 "만약에 이런 사태가 생기면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또 법적인 요건은 어떻게 되는지, 이걸 숙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표결 중 박성재 법무부장관이 중간에 회의장을 나가자 이런식으로 국회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후 곧바로 실시된 윤석열 탄핵소추안 1차 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회의장을 이탈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자 이를 비판했다. 이후 투표가 불성립되자, 이를 선포하면서 울컥한 듯 뜸을 들이다가 봉을 매우 세게 내려치는 모습을 보였다.
12월 11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해 의장 직권으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였다.#
12월 12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와 만나 현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미 대사가 현안 논의를 위해 정부 요인이 아닌 의장을 만난 것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를 패싱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12월 13일 정계 요직 인물 개별 신뢰도 조사에서 56%의 신뢰를 받으며 1위에 올랐다.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해 불신 응답을 한 사람은 26%로, 해당 조사에서 신뢰가 불신보다 높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정부가 사실상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의회의 대표인 국회의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opad> |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포하는 우원식 국회의장[17] |
<nopad> | |
탄핵소추의결서에 서명하는 우원식 국회의장 |
우원식 국회의장의 활약상을 소개한 영상 |
(위의 영상에서 10분 51초부터)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득표수 300표 중,
가: 204표,[18] 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써...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득표수 300표 중,
가: 204표,[18] 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써...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2차 표결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탄핵 의결서에 공식 서명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탄핵소추의결서 정본 및 등본에 공식 서명이 완료된 후, 정본은 제22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을 통해 헌법재판소로 송부되었으며, 등본은 김민기 국회사무총장이 대통령실로 전달했다. 탄핵소추의결서에 서명까지 모두 마친 이후, 열흘 만에 퇴근했다고 한다.
2024년 12월 19일 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인터뷰를 요청한 외신이 많지만, 개별적으로 응하기가 어려워서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계엄 사태 이후 높은 신뢰도와 인기를 보유한 탓에 일부 언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언급되었고, 때마침 한 블룸버그 기자가 대선 출마 의지가 있는지 질문했었는데, 본인의 국회의장 임기가 2026년 5월 30일까지라고 말하면서 대선 출마에 관심이 없음을 에둘러 표명했다.#[19]
2024년 12월 24일, 국회가 의결한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무회의 안건에 상정하지 않고, 국회가 지명해서 인준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또한 임명하지 않으며 윤석열을 위한 시간 끌기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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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장은 권한대행께 강력히 요청드립니다.>국회는 지난 14일,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절차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될 것을 기대했습니다만, 여전히 국민의 불안과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신인도를 평가하는 나라 밖 시선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내외적 불안과 혼란의 핵심은 국정의 불안정성입니다. 국정의 중심은 국민이고, 그 실현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대원칙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내란특검’ 및 ‘김건희 특검법’ 처리와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여야가 타협안을 토론하고 협상’할 일로 규정, 다시 논의 대상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첫째, 두 사안 모두 국회의 논의와 결정 단계를 거쳐 대통령과 정부로 넘어간 사안입니다.
국회는 국회의 일을 했고, 대통령과 정부가 자신의 일을 할 차례인데 이를 다시 전 단계로 돌리자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일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특검법은 국민의 요구입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자신의 가족과 측근의 비위에 대한 수사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거듭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분노가 매우 컸습니다. 국회는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해친 공정성을 입법 조치를 통해 확보하고자 특검법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내란 특검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를 통해 위헌적 비상계엄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자는 것이 국민의 요구가 아니라면 무엇이 국민의 요구입니까.
권한대행께서 두 특검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다시 논의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정식으로 국회로 보내면 될 것입니다.
재의요구든 수용이든 그것은 권한대행께서 판단할 일이고, 그 판단을 미루기 위해 명백한 국민의 요구를 견해의 충돌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 자체로 옳지 않을뿐 아니라 국회 의사결정의 무게를 무시하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은 정치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9인 체제의 헌법재판소 구성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한 바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의장은 헌법재판관 추천 몫의 배분 이견을 해소하고자 11월 22일로 일자를 지정해 여야 간 합의를 촉구한 바 있고, 여야 원내대표 간 협의를 통해 국민의힘 1인, 민주당 2인으로 합의한 것입니다. 그 합의를 토대로 헌법재판관 3인이 추천되었고 어제오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가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을 선출해서 보내면 권한대행께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일뿐입니다. 헌법기관의 정상적 작동을 위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것을 정치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국회는 탄핵 심판의 청구인으로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충실하게 임할 책임이 있습니다. 권한대행이 마치 국회의 헌법재판관 추천에 여야합의가 없었던 것처럼 상황을 왜곡하는 것은 국회의 책임과 역할을 방해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소추 심판과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한덕수 권한대행이 자신에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더 이상의 혼란을 만들지 않는 길입니다.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을 때 불확실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장은 권한대행께 강력히 요청드립니다. 본분에 맞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주십시오. 그것이 권한대행이 말씀하신 긴 공직생활의 마지막 소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 독립유공자 김한의 딸이다.[2] #[3] 1996년 9월 12일 연합뉴스 기사[4] #[5]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민선 6·7기 재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냈다.[6] 20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뽑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7] 김근태 전 장관이 선물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의결할 때도 맸으며, 해제요구안 의결 직후 이 넥타이를 누가 주었는지를 밝혔다.[8] 이동섭 전 의원은 당시 민주당 노원구 병 지역위원장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턱걸이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뒤 지역구를 모교 용인대학교가 있던 용인시 갑으로 정했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노원구로 리턴한 상황. 자신의 원래 지역구에는 이준석 최고위원이 공천을 이미 받은 탓에 노원구 을로 대신 나오는 것.[9] 3개 지역구 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 당시 상대의 지역구들에 플래카드를 걸어서 노원구 곳곳에서 의원 2명의 플래카드가 걸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10] 김성환은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우원식이 깜짝 선출되어서 당원들의 거센 항의가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우원식에게 투표했음을 밝히며 그를 응원할 정도였다. 물론 친분을 떠나서 고용진도 지역에 상당한 기반을 구축한 지역 밀착형 정치인이긴 하지만 재선 구청장 출신인 김성환보다는 훨씬 쉬운 상대로 여겨졌을 것이다.[11] 다만 선거구가 개편되어 (구) 노원구 을 일부가 노원구 갑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동일 지역구라는 조건은 충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구로구 갑에 7회 연속 공천된 이인영의 사례가 있다.[12]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중진인 정성호 의원이 21대 국회 시절 추미애에게 보였던 모습을 보면 의원들의 표심은 생각보다 쉽게 짐작 가능하다.[13] 특히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노동 현안에 있어서는 꽤 진보적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14] 국가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된 이후에도 지역구에 거의 매주 주말마다 나타나 민원을 청취하고 있다. 심지어는,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 개최 여부를 지역구 현장민원 청취 자리에서 선언하였다.[15] 사태가 진정된 후에야 계엄군조차 지휘부와 현장 지휘관들이 다투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임이 밝혀졌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이를 알 수 없었고 실제로 국민들과 국회 보좌진이 막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16] 당장 위헌 요소가 뻔히 보이는데도 대통령실에서는 합법적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마당이니, 절차상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계엄해제요구를 거부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7] 1차 당시 투표 불성립에서 봉을 세게 친 반면, 2차 표결에서는 봉을 경쾌하게 친 모습이 대조된다. 여담으로 그가 매고 있는 연두색 넥타이는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의 유품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맨다고 한다.[18] 그 소리를 들은 방청객들의 환호성이 잠시 터져나왔다.[19] 애초에 당내 대선주자로 이재명 대표가 확정적이고, 본인 입장에서는 대선 출마를 위해 1년도 안 되어 사퇴하기보다는 계엄 사태 해결 및 차기 정부 출범 이후의 역할을 다한 국회의장으로 퇴임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다.[20] 해당 영상 기준, 9:45분에 우원식 국회의장의 입장과 함께 기자회견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