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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8:47:10

윤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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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ea2><colcolor=#ffffff> 삼성전자 고문
윤부근
尹富根 | Yoon Boo-keun
파일:삼성전자_윤부근.jpg
출생 1953년 2월 6일 ([age(1953-02-06)]세)
경상북도 울릉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현직 삼성전자 고문
학력 울릉수산고등학교 (전학)
대륜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통신공학 / 학사)

1. 개요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평가2.2. 이력
2.2.1. 주요 경력2.2.2.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전 삼성전자 CE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 현 삼성전자 고문.

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평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분야는 기어이 1등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다. 사내에서 ‘승부사’로 통하는 이유다. 업무 스타일은 굉장히 터프해서 조금만 일이 늦어지거나 업무 처리가 미숙하면 가차 없이 질책하고 밀어붙인다고 한다. 때문에 사장 취임 전 일선에서 한창 뛰던 때에는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윤불끈이라 불렸다고 한다.

윤 사장은 “가장 경계하는 게 1등이라는 자만심”이라며 “직원들에게도 방심하지 말 것을 늘 주지시킨다”고 강조한다. 경영자로서는 엄격하지만, 사석에서는 임직원들에게 편하고 서슴없이 대해 ‘맏형’ 이미지도 있다고 회사 직원들은 전한다.

그룹 2인자였던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윤부근 부회장은 최 전 부회장이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를 맡을 당시 글로벌운영팀장으로 인연을 맺었고 TV사업부의 개발팀장으로 최지성과 오랜 시간을 함께 일했다.

어릴 때부터 키운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카리스마로 무섭게 임직원들 기강을 잡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름난 주당이라는 말도 안팎으로 빈번하게 나온다.

‘히트 상품 제조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완벽과 디테일을 중시하는 열정적 경영 스타일을 보이며 혁신제품을 믿고 글로벌 1등 DNA를 강조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이끌어낸다. 삼성전자 TV사업 성장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되며 신종균 사장과 함께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일한 대표적 장수 CEO로 꼽힌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임원회의를 진행한다. 이는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 부문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그는 항상 직접 회의 자료나 서류 등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후술할 상사와의 갈등,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 등 그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주어진 환경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했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결과가 좋게 나온다."라고 회고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마음 속에 한계를 두지마라. 한계란 단어를 맘에 두면 도망가거나 핑계를 대게 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저질러라. 그리고 들이대라. 한계에 부딪혔을 때 시작하는 게 도전이다.”라고 조언하고 있다.

2.2. 이력

고향 지인들 사이에선 '울릉도의 전설'로 통한다. 울릉도에서 약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울릉수산고등학교[1]를 2학년까지 다녔지만, 체력이 약해 뱃사람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 뭍으로 나가 더 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대구로 나와 독서실에서 앉아서 새우잠을 자고[2] 라면으로 빈번히 때우며 공부해 다시 대륜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대륜고 3년을 더 다님으로써 총 5년간 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을 갖고 있는데, 대륜고 입학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한 후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1973년에 대륜고를 졸업했다.

당초 의사를 꿈꿨으나 낙방하여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한양대학교에서 통신공학(1974학번)[3]을 전공한 뒤 삼성그룹 공채를 통해 삼성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그룹 내 신생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에 배치됐고, 그중에서도 자신이 원래 원했던(자신의 전공 분야인) IT 부문이 아닌 가전 부문에 배치됐다고 한다. 통신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삼성과 미국 통신사와의 합작이 깨지면서 TV 사업부로 배치받았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 불만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심지어 입사 전에는 안경을 안 썼는데, 입사 후 복잡한 TV 회로도를 그리다보니 4년 뒤에는 안경을 써야 할 만큼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삼성그룹 CEO가 되려면 천재 아니면 독종이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장 때 개발팀장과 맞지 않아 사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 인사부장이던 문병대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고문이 삼성전자는 크게 발전할 것이라며 극구 말리고 사표를 반려했다.

독일에서 주재원을 하기도 했으며 개발팀 부장으로 잘 나갈 때 인도네시아 신설법인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발령나면서 좌천됐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 당시 윤부근의 처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 경험을 쌓고 국내로 돌아와 경영혁신팀에서 일하게 됐다. 경영혁신팀에서 일했던 2년 동안 본 책이 평생 본 책보다 많다고 회고하고 있다. 1999년 샐러리맨들의 꿈인 임원[4]으로 승진했다.

2017년 11월 2일 2018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CR담당업무(삼성전자의 외부 소통창구 역할)를 하게됐다.

2.2.1. 주요 경력

2.2.2. 수상


[1] 현재 울릉고등학교[2] 발이 부어서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한다.[3] 현재 융합전자공학부[4] 장교들의 꿈이 장성 진급인 것처럼 평사원이 임원이 됐다는 것을 "별을 달았다"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