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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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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글로벌리서치 상임고문
이수빈
李洙彬 | Lee Soo-bin
파일:external/img.newspim.com/20130109000631_0.jpg
출생 1939년 1월 16일 ([age(1939-01-16)]세)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1][2]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본관 성산 이씨[3]
정암(正岩)
현직 삼성글로벌리서치 상임고문
학력 성주중학교 (졸업)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 학사)
세종대학교 (경제학 / 명예박사)
1. 개요2. 상세3. 경력4. 이야깃거리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삼성생명 대표이사 회장, 삼성전자 회장 직무대행, 삼성글로벌리서치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삼성글로벌리서치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2. 상세

삼성그룹 내에서 샐러리맨부터 시작해서 오너일가를 제외하면 최초로 회장단에까지 오른 전설적인 인물.[4]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당시 회장직에서 잠시 물러났던 이건희를 대신해 삼성의 대외적 대표를 맡기도 했다. 50년 넘게 삼성에 몸 담고 있으며 2019년까지만 해도 삼성 내에서 단 둘 뿐인 회장직함을 가진 사람이었다.[5] 그 사이에 이수빈 회장은 만 80세를 넘기면서 삼성생명 회장직도 2019년을 끝으로 내려놓았다.

193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에서 아버지 이건석(李建錫, 1916. 6. 27 ~ 2005. 5. 15)과 어머니 풍산 류씨(豊山 柳氏) 류두루(柳斗縷, 1918. 3. 18 ~ ?)[6]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5촌 당숙으로 천석꾼이던 이완석(李完錫, 1904. 8. 6 ~ 1950. 6. 29)에 입양되었다. 성주중학교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7],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삼성그룹에 입사하여, 입사 12년 만인 1977년 2월 제일모직 사장에 올랐다.

제일제당, 삼성증권 등 주요 계열사 사장을 거쳐 소병해의 후임으로 1991년 삼성그룹 회장실 비서실장이 되었다. 이후 1993년 10월에 티스푼 사건으로 인해 비서실장(부회장) 직에서 경질되었지만 회장으로 승진하여 삼성증권 회장으로 이동했다. 1995년부터 7년간 삼성생명 대표이사 겸 회장을 맡았다. 2002년 삼성생명 대표이사(등기이사)직을 그만둔 뒤에도 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8], 그룹 주요 행사의 좌장 역할을 하며 주로 경영 자문을 해오고 있다. 2019년 삼성생명 회장직 또한 내려놓고 삼성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3. 경력

4. 이야깃거리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kp1_080422062700.jpg
이수빈과 이재용 당시 전무

5. 관련 문서


[1]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2] 대산리 422번지에 있는 대산동월곡댁(大山洞月谷宅)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고택은 이수빈의 증조부인 이전희(李銓熙, 1862.6.20. ~ 1930.1.25.)가 1911년 건립했고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서 시집 온 자신의 아내 경산 이씨(京山 李氏, 1861.2.7. ~ 1945.12.3.) 이탁하(李鐸夏)의 딸의 고향 마을 이름을 붙여 '월곡댁'이라고 했다는데, 현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3] 정언공파(正言公派)-성주(星州) 대포(大浦)·중포파(中浦派) 33세 수(洙) 항렬.[4] 삼성 일가가 아닌 사람들 중 최초로 회장이 된 인물이라고들 흔히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 삼성전자김준성경제부총리를 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전문경영인을 회장으로 선임한 역사가 있다. 또 이건희의 장인인 홍진기내무부장관은 옛 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을 맡은 바 있다. 다만 삼성 오너 일가 출신이 아니면서 삼성에 입사해 이사, 사장, 부회장 등을 거쳐 회장에 오른 것으로는 이 사람이 최초 사례가 맞다. 두 번째는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고, 세 번째는 권오현 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이후 네 번째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인 김기남이 있다.[5] 이건희가 2014년에 쓰러져 와병하다가 사망한 이후 실질적인 총수 역할은 이재용이 담당하지만 아직까지는 회장직에 오르지 못했다. 이건희가 사망하고 2년이 지나서야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게 되었다.[6] 류시환(柳時煥)의 딸로, 류성룡의 후손이다.[7] 이건희의 선배다.[8] 그래서 현명관이 회장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오너), 삼성생명 회장 이수빈,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까지 회장이 3명 있었다. 삼성물산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었고, 삼성전자가 핵심계열사라는 점과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내의 금융권 계열사들의 본산 역할을 하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인물이었던 셈. 이후 현명관과 이수빈이 물러나고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전부 떠나게 되었지만.[9] 이 일화는 이건희가 직접 당시 상황을 녹음하면서, 사장단에게 돌렸다고 하는데, 저때 양과 질 논쟁에서 이수빈의 양과 질은 동전의 양면이니 점진적으로 가자는 말을 듣고 아 저게 진정한 충언이구나, 그래. 회장님 앞에서 저렇게 말해야지.라고 칭찬했다가 이후 티스푼 집어던져 찻잔깨지는 소리를 들었던게 현명관 삼성물산 부회장이었다고 한다.[10] 왕회장그의 아들이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하자 김영삼이 그들을 견재하기 위해 14대 총선 당시 이명박을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으로 영입했다. 이후 14대 대선을 거치며 왕회장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초원복집 사건, 국세청의 세무조사 보복 등으로 현대그룹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반면 이명박은 정계에서 승승장구하게 되자 왕회장이 굉장히 고까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