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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ea2><colcolor=#fff> 삼성전자 고문 김기남 金奇南 | Kim Ki-nam | |
출생 | 1958년 4월 18일 ([age(1958-04-18)]세) |
강원도 강릉시 (現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기업인 |
현직 | 삼성전자 고문 |
학력 | 강릉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 / 학사)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전자공학 / 석사) UCLA 대학원 (전자공학 / Ph.D.) |
수상 | IR52 장영실상 2000 산업자원부 장관상 (2003) 제45회 발명의 날 기념식 금탑산업훈장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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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전자 고문.2. 상세
2.1. 경력
- (2023년 12월 ~ 현재) 삼성전자 고문
- (2022년 2월 ~ 2023년 12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 (2021년 12월 ~ 2022년 2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 (2018년 2월 ~ 2022년 3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 (2003년 ~ 현재) 미국전기전자학회 석학회원
- (2018년 12월 ~ 2021년 12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 (2018년 3월 ~ 2018년 12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사장
- (2017년 10월 ~ 2018년 3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사장
- (2017년 5월 ~ 2017년 10월)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 사장
- (2015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공학부 정회원
- (2014년 2월 ~ 2016년 3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장
- (2014년 6월 ~ 2017년 5월)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 시스템LSI사업부장 · 사장
- (2013년 12월 ~ 2014년 5월)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 사장
- (2013년 2월 ~ 2014년 2월) 제 4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회장
- (2012년 12월 ~ 2013년 12월) 삼성디스플레이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 사업부장 · 대표이사 사장
- (2010년 7월 ~ 2013년 2월) 3D융합산업협회 회장
- (2009년 12월 ~ 2012년 12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 · 사장
- (2009년 1월 ~ 2009년 12월) 삼성전자 DS부문 반도체연구소장 · 부사장
- (2007년 1월 ~ 2009년 1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RAM개발실장 · 부사장
- (2004년 1월 ~ 2007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장 · 전무
- (2002년 1월 ~ 2004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장 · 상무[1]
- (2003년 11월) 삼성 펠로우 (최고 기술 전문가) 선정 (반도체 부문 공적)
- (2001년 3월 ~ 2002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 담당임원 · 상무
- (1999년 1월 ~ 2001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 담당임원 · 이사
- (1997년 2월 ~ 1999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 담당임원 · 이사대우
- (1997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 수석 연구원 · 이사대우[2]
- (1994년 2월 ~ 1997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 수석 연구원[3]
- (1986년 4월 ~ 1988년 8월) 삼성전자 반도체 DRAM PA팀장
- (1981년 3월 ~ 1986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기술팀
3. 평가
3.1. 기술자로서
반도체 소자 설계분야의 권위자로, 전동수 사장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내 '77학번 투톱'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술 역량 차제는 삼성그룹 내에서 상위 수준에 속하며, 삼성펠로 선임, 2003년 미국전기전자학회 석학회원, 미국 공학한림원 회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1메가 D램부터 4기가 D램까지 반도체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반도체 차세대연구팀장을 맡아 S램, P램, 플래시 메모리, 퓨전 메모리 등을 개발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2016년 3월 기준 국내외 학술지에 4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국내와 해외에서 35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고 국제학회의 기조강연도 10회 이상 한 적이 있었다.
3.2. DS부문장 시기
안정적이면서도 영리한 경영전략을 구사했던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과 달리 김기남 부회장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워크하드로 꼽힌다. 평소엔 냉정하면서도 침착한 성품이지만 경쟁 상황에서는 공격적인 수를 마다하지 않는 워커홀릭 성향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7나노 이하 차세대 공정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싹쓸이’하기 시작한 것도 김기남 부회장의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로, 이 때문에 김기남 부회장 체제에서 권오현 회장 체제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장 영향력을 늘려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였다.강성의 인물인 데다 소신도 강해 윗선과 충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핵심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삼성종합기술원 등 외곽으로 돌기도 했다. 그리고 선지자적인 리더 보다는 디테일과 기술에 집중하는 경영자이다. 일본이 뻘짓한 수출규제 사태에 대응하여 탈 없이 회사를 이끌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20년 근무한 반도체맨에 의하면#, 고위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테일에 집착하는 경영[4]을 하여, 하위 조직의 자율성이 많이 사라지고 의사결정이 매우 느려졌다고 한다. 전임자 권오현 시절에는 설계 자율성으로 속도감이 있었는데, 김기남 시대에는 보고에만 1달 가까이 매진해 의사결정을 받아야 했고, 그 시간 동안 설계가 멈춰 있었다고 한다.
3.3. 이후 평가
파운드리 공정의 경우 14nm 성공 이후 TSMC에 계속 밀리고 있었다. 10nm 공정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장 오판으로 TSMC 7nm에서부터 완전 밀리게 된다. 시장과 고객의 의도를 간과한 점이 실책으로 꼽힌다. 2022년 상반기에 GAA 기반의 3나노 반도체 양산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하반기 양산이 목표인 TSMC를 앞서게 되었으나기사링크, 수율문제로 인해 대형 고객사를 제대로 유치하지 못한 점도 부정적 평가 요인을 더하고 있다.삼성반도체의 7세대 176단 V낸드는 업계의 100단 초반의 6세대급 V낸드와 높이가 비슷하고, 업계 유일하게 싱글스택 에칭 방식이어서 기술력에서는 경쟁력이 있다는 반론도 있었으나(기사링크), 해당 기사는 삭제되었으며 결국 삼성의 7세대 176단 V낸드는 주요경쟁사인 하이닉스, 키옥시아 등과 동일하게 더블스택 에칭이라는 사실이 테크인사이츠의 분석에서 확인되고 있다.[5] 여전히 메모리 부분은 1위를 지키고 있으나, 과거처럼 초격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기사링크 176단 플래시 개발 실패와 더불어 DRAM 1a 세대 또한 마이크론에 밀리면서 비전 제시에 실패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수십년간 노력하며 쌓아온 초격차가 좁혀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 DRAM 공정 전환이 늦어지면서, 2023년에는 DDR5 메모리 분야에서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와의 거센 추격과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수익성 적은 HBM 기술 투자를 축소해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삼성전자 출신 연구원들에게 HBM 기술 뒤지는 원인 제공자로 비난받고 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업지원TF라고 부르는 정현호 부회장의 입김이 어느정도 들어간 듯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업지원TF의 입김을 DS부문장으로서 설득하여 저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경계현 DS부문장이 당시 경영진의 판단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임직원 대상 라이브 방송에서 직접 했다.해당 기사링크
2021년, IT업계 역대급 연봉인상 대란과 맞물려 임직원 연봉 기본인상률 협상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성과급 포함하여 작년 대비 2.4배 증가한 급여를 수령한 것이 재조명되었다. 기사링크 임직원들에게 위기를 부르짖으며 우수한 영업이익에도 OPI 최대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기사링크
3.4. 기타
- 매일 오전 6시 40~50분 사이에 출근 오후 9시 퇴근을 반복할 정도로 시간관리에 철저하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1시간 정도를 할애하여 등산화를 신고 사업장 주변을 산책하고 주말에는 등산을 즐기는 등 체력을 꾸준히 관리한다고 한다. 출장다니는 비행기에서도 논문을 읽고 각국 주재원을 통해 책을 구매하여 읽을정도로 일단 본인이 보고만 받는게 아니라 최신기술 연구에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메모리사업부장 취임직후 사업부장실에 샤워실을 새로 만들었다는 말도 있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증언이 있다.
- 자율출퇴근을 반대했었고, 안전사업장이라는 말로 사내에서 걸으면서 휴대폰을 못보게 하였다.[6] TF를 만들어 잠복하고 있다가 걸어서 휴대폰을 하는 임직원이 있으면 다가가서 지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