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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0:49:45

현명관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13e7d><tablebgcolor=#013e7d> 파일:krawci.png한국마사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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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현명관
玄明官 | Myeong-Gwan Hyun
파일:현명관.jpg
출생 1941년 9월 2일 ([age(1941-09-02)]세)
전라남도 제주도 성산면 온평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1]#
본관 연주 현씨[2]
학력 제주동국민학교 (졸업)
제주제일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경제학 / 석사)
제주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
경력 제주제일고등학교 교사
제4회 행정고시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
전주제지 총무부장, 관리부장
호텔신라, 삼성시계,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상임고문
삼성그룹 일본담당 회장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 대행
한국마사회 회장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 개요2. 생애
2.1. 기업인으로서
2.1.1. 한솔그룹2.1.2. 호텔신라2.1.3. 삼성그룹
2.2. 정치 경력
3. 선거 이력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공무원, 기업인, 정치인이다.

2. 생애

1941년 9월 2일 전라남도 제주도 성산면 온평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서 아버지 현여방(玄麗芳)과 어머니 동래 정씨 정갑순(鄭甲順) 사이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제주제일중학교, 서울고등학교(11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3]

서울대학교 3학년때에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그 해와 이듬해 모두 2차에 낙방했다. 졸업 후 귀향하여 6개월 간 제주제일고등학교독일어 과목 전임강사로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고시 공부를 위해 경기도 양평군용문산으로 들어갔다. 그 뒤 6개월 만에 1965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치러본 시험에 덜컥 붙은 것이다. 그래서 부산시청 사무관으로 발령받아서 2년간 근무했지만 당시 인사과 고과계장이란 보직을 맡았기에 온갖 인사청탁에 시달리다가 진절머리가 나 감사원으로 탈출했다. 감사원에서는 부감사관으로 근무하며 감사원 3국 기동반장 등을 지냈다.

이후 1973년 감사원에서 사직하고[4] 일본으로 유학하여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에 입학했다. 1977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으나 당시 경제난을 겪던 한국이라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결국 감사원에 복직한다. 허나 공직자로서 생활에 더이상 보람을 찾지 못하고 매너리즘을 느끼던 찰나 삼성 비서실로부터 영입제안을 받는다. 처음엔 중앙일보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고 이후 전주제지 입사 권유에는 응한다.

2.1. 기업인으로서

2.1.1. 한솔그룹

1978년에 전주제지에 입사하여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전주제지는 범 삼성가의 장녀 이인희가 이끄는 한솔그룹 계열사로, 총무부장과 관리부장을 역임한 후 1981년 호텔신라 이사로 삼성그룹의 임원이 된다.

2.1.2. 호텔신라

그리고 당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신뢰를 얻게되는 일이 있었으니, '신라호텔 만두 사건'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신라호텔에 대해 다른 호텔에 비해 중식 만두가 맛이 없다.라는 평가를 했었고, 회장의 한 마디에 혼비백산이 된 신라호텔 임직원들 사이에서 현명관은 호텔의 수석 셰프와 함께 만두를 가져와서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소는 얼마나 되고, 기름과 고기의 비율은 어떻고, 피의 무게는 어떤가? 식으로 아예 해부를 해서 작업했다고 한다.[5]

핀셋으로 직접 나물을 골라내서 비율을 알아내고, 만두피의 무게는 몇 그램인가를 알게 되어 다시 만든 만두는 이병철 입에서 '맛이 괜찮다.' 라는 평가를 받고 그때 이병철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삼성그룹은 신라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사장단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때 만두 사건의 현명관을 알아본 이병철 회장이 일하기 어떻냐고 묻고, '일이 재밌는것 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해서 눈도장을 찍었다고 한다.[6]

하지만 만두 이후로도 삼성가 내에서는 신라호텔을 이용하면서 맛에 대한 지적을 많이 했고[7] 초밥에 대해서 회와 밥에 대한 비율로 지적을 받자[8] 오기가 생긴 현명관은 아예 일본 오쿠라 호텔 등의 유명 호텔 일식집을 탐방하고 신라호텔에 입사하는 요리사들에게는 1~3개월별로 일본의 유수한 초밥집들로 연수를 다녀오게 지시했다.

음식에 대한 평가를 겨우 오너 일가에게 인정받자 다음에는 직원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매일 5시에 출근해서 포스트잇으로 '여기 청소가 덜 됐다.' 주방에 가서 '행주가 더럽다.' '수도 위생이 안좋은 것 같다.' '회계문서가 종류별로 정리가 안된거 같다.' '소화기 안전상태 확인해라.' 등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관여해서 지적사항을 붙이고 다녔다고 하며 호텔 부서에는 저런 현명관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9]

그 뒤로 내건 슬로건은 비포 서비스 라는 것으로, 손님이 직원에게 주문을 요청하는 애프터 서비스를 앞서 먼저 다가가서 제공한다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건데, 이건 딱 단골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할수 있다. 또한 손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먼저 알아야된다는 마인드로 신라호텔 사내에서는 차량번호 맞추기 대회가 있다고 하며 여러장의 사진을 놓고 김사장의 차는 여기서 몇 번이냐? 해서 알아맞추면 상금을 주는 문화였다고 한다.[10]

그러나 이병철의 뒤에 이어 삼성그룹 회장이 된 이건희는 현명관을 상당히 싫어했다고 하는데[11] 한번은 지방으로 출장을 와 임원진들과 경영 회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새벽 2시에 이건희가 전화를 해서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오라는 말에 부아가 치밀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현명관을 부른 이건희는 '호텔 내 직원들을 죄다 힐튼에 빼앗겼다.[12] 인력관리를 어떻게 하는거냐, 돈을 그렇게 처발랐으면서 어떻게 할 거냐?' 는 등으로 마구 갈궜다고 한다. 그 속에서 현명관이 '회사채를 발행하고, 신라호텔을 상장하겠다'는 해결책을 내놓아 1991년에 신라호텔을 주식상장시킨다.

신라호텔 재직시절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 불도장 사건이었다. 호텔 내에 신메뉴를 만들어보라는 이건희의 지시로 후덕죽[13] 셰프와 같이 중국 광동 요리인 불도장을 국내에 선보였고 이건희의 극찬까지 받았지만 생소한 음식에 대한 광고를 재밌게 내겠답시고 수행을 하는 스님이 그 냄새를 맡고 파계승이 되었다는 유래의 불도장.이라는 신문광고를 올려버렸다. 결국 조계종의 항의를 받아서 불교신문에 직접 삼성의 이름으로 사과광고를 내었다고 한다.

2.1.3. 삼성그룹

호텔신라 이후 이건희는 현명관을 삼성시계[14] 대표이사 사장직으로 보내는데, 좌천과 다름없었다.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된 현명관은 실무 시작과 동시에 대수술을 단행했는데, 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그룹 사옥 내에서 삼성시계 본사를 성남으로 이전하고, 구미사업장 역시 같이 이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이사 자신의 월급을 자진삭감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재무구조를 좋게 만들었지만, 세이코와의 기술제휴 문제에서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하여서 처음으로 이건희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3년 이건희는 그룹 내에 중요 사장단을 모두 LA로 호출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전에 있었던 LA 가전제품 비교였다.[15] 이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면서 이건희의 지시사항으로 사장단에게 녹음 파일을 전당했는데, 그게 바로 티스푼 사건'이었다. 이건희가 품질경영을 주장했을때, 당시 비서실장이던 이수빈이 '질적 품질성장도 중요하지만, 양과 질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라는 말에 현명관을 포함해 다른 사장단들도 아 비서실장이 정말 충언을 하는구나. 그래 저런 말을 해야지.라고 이수빈을 칭찬할때, 이건희가 격노해서 티스푼을 던져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됐다고 한다.[16]

그리고 자신이 칭찬하던 이수빈 비서실장이 좌천된 이후 역으로 현명관 본인이 이수빈의 후임으로 삼성그룹 비서실장 자리에 임명됐다고 한다.[17]

3년간 비서실에서 근무한 뒤 후임인 이학수에게 비서실장 자리를 넘기고,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의 자리에 앉게되었으며 삼성 내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이수빈, 권오현에 이은 몇 안되는 회장 직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 구단주 대행을 하다가, 김응용을 영입하고, 드라마틱한 준우승으로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으로 이건희는 정식 구단주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에 드디어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2008년 삼성그룹 이건희 비자금 문제에서, 자신이 이건희의 개인 비자금으로 삼성생명 28만주에 대한 존재를 검찰조사에서 실토하고, 고문 활동을 하다가 2010년 자신이 몸담은 삼성을 떠나게 된다.

2.2. 정치 경력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현역 제주지사이자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태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친여 무소속 후보로[18]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후보였던 우근민 전 지사[19]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두 번의 낙선에서 실의에 빠졌을때, 당시 한나라당 제주특별자치도당 홍보부장이었던 전영해를 만나 결혼한다.[20][21]

2013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한국마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지역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112,774 (41.10%)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무소속(정치)|
무소속
]]
108,344 (40.5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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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근의 시흥리와 함께 연주 현씨 집성촌이다. 강기권남제주군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2] 제주목사공파-양의막(羊衣幕) 문중 30세. 족보에 기록된 이명은 현수남(玄秀男).[3] 이재용과 학석사 동문이다.[4] 본래 휴직하고 유학을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휴직이 불가함을 듣고 고민 끝에 사직을 결정했다고 한다.[5] 물론 자사의 만두뿐만 아니라 프라자호텔이나 하얏트 호텔에서도 중식만두를 공수해 와서 똑같이 해체해보고 평가했다고 한다.[6] 과거 삼성그룹 내 중요 회의를 하는 승지원에서 사장단 회의를 할 때 신라호텔에서 음식을 납품했는데 이병철 회장이 대뜸 현명관을 보더니 '아, 그때 그 만두 해체한 사람 아이가? 니 일하기 어떻노?'라고 물었고 현명관은 '그냥 일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병철이 '그래? 마 일이란건 재밌으면 된기다!'라고 껄껄 웃으면서 보내줬다고 한다.[7] 오너 일가가 수시로 음식을 먹으며 이 음식의 맛은 어떻고 저건 어떻다 식의 상이한 결과가 나와서 하나로 맛을 통일하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한다. 여담으로 범삼성가는 다른 재벌가에 비해 먹는것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는데 이건희 역시도 평소에 먹던 초코쿠키가 조금 눅눅해진거 같다는 이야기를 바로 헤드쉐프에게 알릴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모두가 그러진 않은지 이재용이나 정용진 등의 3세대는 굽네치킨이나 매운 라면등의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걸 보면 그냥 이건희나 이병철이 유독 입맛이 까다로웠던것 같다.[8]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왔던 "밥알이 몇개고?"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이다.[9] 위의 만두 일화도 보면 알겠지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세밀하게 분석해서 파고드는 것이 자신의 경영 철학이라고 한다.[10] 그래서 신라호텔의 OB들은 한번에 1,000대의 차량을 보고서 누구 차인지 바로 외울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11] 소병해 비서실장 숙청건도 그렇고, 이건희는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와 관련이 없고, 선대 이병철의 가신이었던 임원들을 사장단 회의에서 상당히 질책하고,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12] 당시 힐튼호텔은 국내에서 대우그룹의 김우중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었다.[13] 화교 출신 요리사로 호텔 조리사 출신으로 삼성그룹 내 임원대우를 받은 셰프다.[14] 일본 세이코와 합작으로 나름 국내 손목시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적도 있으나 해외 브랜드에 밀리고 당시 30개 계열사중에 매출 꼴찌로 1997년 외환위기때 계열사에서 분리되어 현재는 SWC라는 기업으로 독립경영을 한다.[15] 미국에 출장갔던 이건희가 도시바나 소니등의 제품은 잘팔리는데, 삼성제품은 구석에 먼지쌓이는 곳이 있다 해서 빡쳐서 사장단을 모두 호출해서 직접 비교하라고 시킨 일이다.[16] 이전까지 이건희 티스푼 사건은 그냥 언론사에서 떠드는 이야기라는 말이 많았는데, 직접 들은 사장단들이 인정한 사실이었다고 한다.[17] 본인의 생각으로는 삼성그룹의 공채가 아닌 타 출신이니 이리저리 인맥에 휘둘리지 않으니 그 자리에 임명한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고 한 반면 현명관과 김현철의 측근 김기섭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8] 원래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공천을 또 받았으나, 동생의 수뢰 혐의로 인해 공천이 박탈되었다.[19] 역시 당시 야당인 민주당 공천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성희롱 논란으로 인해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가 공천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근민 지사는 민선 5기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13년 말 새누리당에 입당한다.[20] 둘 다 이혼 이후 재혼이었는데 나이차가 32살이었다.[21] 이혼에 대해 타이밍이 겹쳐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는데, 양측의 입장으로는 첫 4회지선에서 전부인 오씨의 병으로 서울을 오가며 간병을 했었고, 당시에 이혼설이 있다 선거 이후 이혼을 했는데, 현명관이 삼성 시절부터 잦은 출장으로 인해 가정에 소홀했고, 그러다보니 불화로 인해 이혼을 하고, 5회 지선에서 홍보부장인 전영해를 비서로 쓰면서 선거 활동을 했으나 낙선 이후 실의에 빠진 전영해와 눈이 맞아 애 둘을 가진 이혼녀 전영해와 재혼했다고 한다. 이후 가족사진을 보면 자녀 3명을 둔 가족사진을 찍은것으로 보아 양육권도 모두 현명관이 가진듯 하다.[22] 역대 광역단체장 선거 최소표차 낙선(2,252표차), 역대 최소%p차 낙선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기록하였다. (0.15%p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