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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서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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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 1945 이동우.png
이동우(李東宇)
(소년기: 김수민 분 / 청년기: 김호진 분)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가족관계 아버지 이인평, 어머니 조영은[1], 남동생 이정우
약혼자 김해경
직업 군인
학력 경성제국대학
워싱턴 대학교
소속 미합중국 전략사무국(OSS)
미군정청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대한민국 육군 (중령)
1. 개요2. 극중 행적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서울 1945>의 등장인물. 배우 김호진(소년기는 김수민)이 맡았다.

2. 극중 행적

조선왕조의 먼 방계혈통 출신이다. 명색이 제2 남주지만 전반부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극의 주된 무대가 함흥에서 서울로 옮겨지고 나서야 비중이 급 커졌다. 최운혁과는 전반부에는 친구 사이였다. (경성제국대학에도 함께 입학했고 한때 최운혁, 오철형과 함께 문동기 문하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점차 반대 포지션으로 옮겨간다. 다만, 정치나 이념적으로는 서로 반대편이었지만 끝까지 우정을 간직하고 있었고, 둘 다 부드럽고 인간적인 성격이라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위해 좌우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온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두 여자(문석경김해경)과 얽혀 사각관계를 이루었는데, 친구 최운혁이 두 여자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것과 반대로 이동우는 두 여자 모두에게 사랑을 얻지 못했다. 약혼녀 문석경이 최운혁에게 반해서 떠났다가 나중에 이동우에게 돌아오려 했을 때는, 이동우 마음이 김해경에게 가버렸으니.

해방 전 유학 및 도피차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2] 시애틀에서 이승만을 만났고,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미국 정부가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강제이주 시키려 할 때 일본인으로 분류된 이동우를 이승만이 구해줘서 이승만 추종자가 되었다.[3][4]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이승만 밑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정치적으로 우익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 있는 사회주의자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온건파라서 이승만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던 시점에 미국무부가 그를 선택하게 됐고, 미군 휘하에 있던 OSS 캠프로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은 뒤 장교로 임관했다. 어쨋든 미국유학가서 독립운동을 한 셈이다.[5] 이든 중령을 만난것도 이때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고, 같은 친일파 자식인 약혼녀 문석경도 친일행각을 벌인데에 반해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있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조국의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하면서 나름 국가를 위해 일하며 헌신하는 인물이다.

해방 후 일본 동경에서 주일미군들과 있다가, 9월쯤 한반도에 상륙하게 되는 미군 선발대와 같이 상륙한다. 귀국한 이후 존 하지가 이끄는 미군정청에서 근무한다. 본인은 이승만 노선에 있었음에도 불구히고, 이승만에게 정파를 떠난 합작을 호소하기도 했고, 여운형김규식좌우 합작 운동 당시 좌우합작을 위해서 친구 최운혁을 도와주는 모습도 보였다. 출신이 귀공자고 이승만과 같이 일하다 보니, 공산주의자인 스승 문동기와는 거리를 두었는데, 특히나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문동기와 오철형이 위폐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동기와 인연을 끊는다. 그것과는 별개도 최운혁과는 친하게 지낸다. 여운형 암살 이후 이승만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최운혁을 월북시키는 바람에 남로당 스파이로 몰려 고생하기도 했다.[6]

1945년 해방 후~6.25전쟁 직전 1950년 초반 무렵까지 여주인공 김해경에 대한 순애보가 눈물없이 못 볼 지경이다. 해방 이전까지는 약혼녀 문석경의 시녀였던 해경을 그저 평범한 여친의 아랫사람 정도로 보다가 왜 갑자기 해경에게 플래그가 꽃혔는지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주인공 보정이 워낙 심한 캐릭터다 보니 넘어가자. 작중 남로당 스파이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고, 최운혁때문에 본의아닌 고초를 겪는 것도 김해경과 연관돼있다. 사랑보다는 대의와 정의를 택하는 친구 운혁과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김해경을 구할만큼 그녀를 몹시 사랑한다. 마음씨도 나름 보살인지라 김해경이 수차례 운혁 문제로 그를 실망시켜도 잠시 화를 낼뿐 용서해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한국 전쟁 시점까지 미군사고문단으로 활동했다. 한강다리가 폭파되어 피난가지 못해서 인민군 치하에 고립되기도 했다. 아버지 이인평의 친일행위와 친미행위 때문인지, 이동우가 미군사고문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는 숙청자 대상으로 선정됐다.[7][8] 서울에 고립되었을 당시 최운혁과 비밀리에 만나 전향할 것을 회유받기도 했으나, 끝내 거절하고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좋든 싫든 박창주와 박성주 그리고 정봉두와 그의 아들 정돌이의 도움을 받아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으로 내려온 이동우는 아버지를 구출해야겠다는 마음에 대한민국 육군에 편입되어 중령이 되었고 연희 고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9]

서울 수복 이후 북한측에서 정치범들을 대리고 도망치자 이들을 추적하는 데 앞장섰고, 박창주 그리고 박성주랑 연합하여 끝내 아버지 이인평을 포함한 북송되는 정치범들을 따라잡는데 성공한다.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 정치범을 대리고 있던 인민군 측이 최운혁과 오철형이어서 퇴로보장을 전제로 정치범들을 인수받으려고 했으나, 개인적 원한에 불타던 박창주가 오철형을 자극하여 결국 재교전에 돌입하게 된다. 여기서 적잖은 정치범들이 사살되었으나, 아버지 이인평과 동생 정우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동생 정우는 건강이 악화된 상태여서, 결국 어린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는 김해경을 탈출시키거나 같이 떠날 생각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 중공군이 다시 밀고 오면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중공군의 서울 탈환을 앞둔 시점에서 후퇴명령이 떨어진 시점 까지 전선을 사수하기도 했다.[10] 인민군의 서울 재탈환 작전에서 중간에 인민군이 쏜 바주카 포화에 휩쓸려 부상을 당하기도 했으나, 한때 원수였지만 전우인 박창주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11] 문석경의 극진한 도움으로 1951년 여름이 돼서 건강을 회복했고, 이번에는 다시 박창주와 협력하여 치악산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최운혁 오철형 휘하의 빨치산 토벌에 앞장서게 된다. 전쟁 말기에 인민군의 총에 죽을 뻔 했지만 최운혁이 이동우를 감싸고 대신 죽었고, 전쟁 후 신변이 위험해진 김해경을 살리고자 문석경에게 김해경을 탈출시켜달라고 부탁한다. 김해경이 배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에필로그 부분에서 휴전 후 부모에게 인사를 드린 후 홀로 멀리 떠난다.

아마도 미국으로 떠난 듯.[12]

이동우의 모델은 실존인물이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이자 여명의 눈동자의 장하림, 김수임의 연인인 베어드 대령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주요인물 셋에 비하면 실존 인물과 가장 관계성이 적어보인다. 김규식 역할은 나레이션이 좌우합작운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단역으로 잠깐 나올 뿐 이동우와는 접점이 없다. 또 장하림 캐릭터와도 차이를 두기 위해 작가가 꽤 애써서 창조한 티가 역력히 나는데, 그러다보니 좀 심한 주인공 보정이 들어갔다.

[1] 당시 가족법상 계모자 관계도 가족으로 인정됐다.[2] 피신차 떠난 유학이었다. 이동우가 친구 최운혁의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되자, 아버지 이인평과 예비장인인 문정관이 의논해서 결혼 문제를 미루는 대신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동안 해외로 나가서 공부하라고 한 것. 그러나 얼마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나서 이동우의 소식이 끊기게 된다. 참고로 미국 유학을 먼저 제안한 것은 바로 문정관이었다. 미국으로 보내는 것이 감시를 피하기 좋은 것이라 생각한 것.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게될 줄은 예상 못한 듯 하다.[3] 동료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최강욱을 만나게 된 시점도 바로 이때다.[4] 이때 최강욱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인데, 왜 우리 조선사람들까지 끌려가야 하냐."는 식으로 이동우에게 물어봤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선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우리도 일본인[13]으로 미국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한국계 미국인 또한 이 시기 일본인들처럼 강제이주를 당했으며, 그중에는 김영옥(군인)도 존재한다. 그나마 조선계는 나중에 억압정책에서 열외되긴 했다.[5] 극중에 따르면 이동우가 훈련받는 곳은 켈리포니아 카탈리나 섬 근처에 있는 OSS훈련지고 이 작전은 냅코작전(NAPKO Project)이라고 불렸다. 이동우가 OSS기지에서 훈련받던 시점으로 1945년 중순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쯤이다. 실제로 이승만쪽 인물들이 이 섬에서 훈련받으며 대일전에 투입될 준비를 했었다. 자세한 건 이승만/일생 참조.[6] 이때 이승만을 설득하러 간 이인평은 "친일한 이 위원은 용서가 되지만 공산당은 용서할 수가 없네!"라는 후덜덜한 얘기를 들었다.[7] 이를 보고 박창주는 "빨갱이 세상에서는 김해경은 인민영웅, 이국장은 사형수"라고 비꼰다.[8] 작중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미군사고문단의 경우 제주 4.3 사건여순사건에서 군을 지휘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러한 기관에서 높은 직책을 맡았으니, 6.25전쟁 초기 북한 정부의 숙청자 명단에 오른 것일 수 있다.[9] 작중상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거나, 상륙작전 이후 지원병력으로 상륙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10] 그 때 이동우와 박창주의 상관이 바로 김종오 대령이다.[11] 한때는 최운혁만큼 그를 싫어했던 박창주였으나, 전쟁 와중에 같이 싸우면서 전우애가 급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병원까지 같이 가줘서 꽤나 생명에 신경써주며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이는데, 마찬가지로 이동우 또한 이후 박창주가 죽기직전에 그의 죽음을 다소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2] 작중에서 이동우는 일제 말기 도피차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이승만을 따라 귀국했지만 그 이승만에게 버려졌으니, 아마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국으로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이지만 OSS부터 시작해서 미국정부와 관련된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쌓은것으로 보아 미국에서 이든중령의 추천을 받아 미국방성이나 CIA에 들어가서 커리어를 이어나갔을 확률이 높다. 과거에도 실제로 그런사례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래리우타이친(후에 중공스파이로 밝혀짐)이나 마이클 리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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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뜻하지 않게도 손기정, 역도산 같은 유명 운동 선수들도 그 시절에는 태어난건 조선인 이지만 국가와 영토가 일본에게 병합된 시기라 엄연한 일본인으로 간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