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07:07:48

이슈타르의 문

이슈타르 문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바빌론의 문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바빌론의 문(동음이의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83D8B 0%, #445C91 20%, #445C91 80%, #483D8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4C77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역사 <colbgcolor=#FFF,#1F2023>우루크 시대 · 젬데트 나스르 시대 · 초기 왕조 시대 · 아카드 · 구티 왕조 · 우르 제3왕조 · 이신-라르사 시대 · 고바빌로니아 · 카시트 왕조 · 미탄니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민족 수메르인 · 아카드인 · 아시리아인 · 아모리인 · 카시트인 · 칼데아인
지리 메소포타미아 · 비옥한 초승달 · 티그리스강 · 유프라테스강 · 자그로스 산맥
도시 니네베 · 니푸르 · 님루드 · 라가시 · 라르사 · 마리 · 바빌론 · 아수르 · 우루크 · 우르 · 움마 · 이신 · 에리두 · 키쉬
종교 메소포타미아 신화
문화 길가메시 서사시 · 에누마 엘리시 · 우르남무 법전 · 함무라비 법전 · 메소포타미아 문명/성문화 · 우르의 게임 · 메소포타미아 음악 · 메소포타미아 미술
언어 수메르어 · 아카드어 · 아람어
문자 쐐기 문자 · 아람 문자
건축 지구라트 · 우르의 지구라트 · 에테멘앙키 · 바빌론의 공중정원 · 이슈타르의 문 · 행진의 거리 · 라마수
인물 길가메시 · 사르곤 · 나람신 · 우르남무 · 슐기 · 함무라비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 아슈르바니팔 · 네부카드네자르 2세
}}}}}}}}}}}}}}}

파일:attachment/바빌론의 문/Ishtar Gate.jpg

1. 개요2. 역사3. 복원

1. 개요

이슈타르의 문(بوابة عشتار[1], Ishtar Gate) 또는 통칭 바빌론의 문(Gate of Babylon)은 고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인 바빌론(현 이라크 바빌 주)을 둘러싼 내성의 8번째 성곽 출입구였다.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의 국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왕궁 동쪽에 건설되었으며, 성문 가운데서도 가장 거대하며, 상징적인 푸른 벽돌로 축조되었다.

이 문은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했다. 문에 새겨진 소와 마르두크 신을 상징하는 (무슈후슈)의 이미지도 아름다움의 극치여서, 튼튼한 요새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그 앞의 개선로였던 행진의 거리 역시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2. 역사

파일:이라크 바빌론 2.jpg
실제 유적의 이슈타르 문 유적
파일:external/www.notjustanotherbook.com/ziggurat%20-%20babylon_ma.jpg
추정 복원도

그 전술적 중요도는 만리장성산해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금각만에 필적할 정도였다. 성벽 덕에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인 바빌론이었으나,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도하 가능할 정도로 수위를 낮춘 후 진격, 이 문을 통해 군사를 침투시켜 손쉽게 정복해 버리고 말았다. 즉 바빌론의 수호의 상징인 신성한 문이 오히려 멸망을 부른 셈. 이후 바빌론이 폐허가 되면서 바빌론 유적은 전설처럼 전해지다 근대에 들어서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가 발굴(1902년)한 뒤 재조명받았다.

3. 복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Ishtar_Gate_at_Berlin_Museum.jpg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의 복원

베를린 최대의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에 현존하는 이슈타르의 문은 오스만 제국독일 제국이 관계가 좋을 때 발굴한 유적을 통째로 실어와 1930년까지 10여 년간 모사하여 복원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당대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박물관 규모에 맞춰서 복원하다 보니 실제 높이보다 훨씬 작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는 후문까지 있는 이중문이었지만 박물관 크기의 한계상 후문은 전시되지 못하고 창고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존하는 유일한 바빌론의 문이다.

놀이공원 미니어처 같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이는 오히려 고증을 따른 복원이다. 수호의 의미를 가진 푸른색을 내기 위해 도기 기술(!)을 이용하여 짙푸른 색으로 구워낸 벽돌로 지었다고 기록에 전해진다. 이 아름다운 푸른색을 내려면 가마에서 매우 높은 온도를 낼 필요가 있는데, 이게 또 일반 목재로는 안 나오는 온도라 이걸 어떻게 했느냐가 사학자들 사이에서 미스터리였다. 오늘날에 연구된 바로는 역청, 즉 지면에 노출된 원유로 구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역청은 성경 시대까지 다용도로 광범위하게 쓰였으며 당장 그 바빌론도 해자나 건물 등에 방수 용도로 발랐다. 이 푸른 벽돌들은 바빌론에서도 매우 귀해서 이 외에는 바벨탑으로 알려진 에테멘앙키 대신전의 꼭대기에나 사용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Ihstar_Gate_RB.jpg

한편 본고장인 이라크바빌론에도 이를 재현한 물건이 있는데 페르가몬 박물관에 복원된 문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재현도도 떨어지는 편이다.[2] 당연히 이라크에서 독일에 있는 이슈타르의 문 원본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럽 박물관이 그렇듯이 무시로 일관 중이다.
[1] '바와바트 에슈타르' 정도로 읽는다.[2] 푸른 유약을 발라 구운 벽돌이 아니라 일반 벽돌에 페인트칠만 한 것이 쓰였고, 용 부조도 원본은 모자이크처럼 벽돌 하나하나에 조금씩 양각된 것이 합쳐져서 용의 형상을 이루는 반면, 여기서는 그냥 용 부조를 따로 만든 다음 붙인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