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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9 16:07:44

이승만/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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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승만 본인의 저술
2.1. 단독 저작2.2. 논설/서간 등 기타 자료
3. 이승만과 관련된 주변인의 회고/저술
3.1.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의 저서
4. 이승만 연구 논문/저서5. 기타6. 다큐멘터리

1. 개요

이승만은 1800년대 후반부터 신문 발행에 참여하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생애 동안 여러 저서와 논설 등을 남긴 바 있다. 그래서 아래에 대략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부터 이승만 전집도 차례로 발간되고 있다. 동시대 다른 인물들의 전집 발간이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완료된 것과 달리 이승만 전집 발간은 뒤늦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부터 잘 알려졌던 저작들은 이승만 재평가 흐름 이후 산발적으로 출간되어 왔고, 이를 하나의 전집으로 엮어 나오려는 시도가 있지는 않았다. 또한 이화장에 있던 일기와 서간집 등 방대한 분량의 이승만 자료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학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2. 이승만 본인의 저술

이승만과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 읽어봐야 할 주요 서적들이다. 이승만을 다룬 책과 연구 논문들은 많지만, 아직까지 만 90세를 살았던 이승만의 생애에 대해서 세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이승만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해서 치밀한 고증을 한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2016년부터 ‘우남이승만전집발간위원회’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의 주도 하에 『우남 이승만 전집』 발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총 35권 발간 예정이다.

2.1. 단독 저작

파일:Syngman_Rhee's_Spirit_of_Independence.jpg
이승만의 《독립정신》 표지 이미지. 왼쪽은 1949년 판본, 오른쪽은 1954년 판본이다.
이승만이 독립협회 활동하던 중에 고종의 양위 문제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옥중인 1904년에 저술한 책이다. 집필 동기는 러일전쟁으로 나라가 더욱 위태로워지면서 민족 독립에 대한 조선 민중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04년부터 대한제국의 내정에 개입한 일본으로 인해 국내에선 출판되지 못하였고, 1910년 2월 10일에 미국 로스엔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조선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순한글로 썼다. 일제강점기 내내 금서로 지정되었고, 4.19 혁명 뒤에 절판되었다가 1993년에 다시 발간되었다. 당시 지식인으로서 국민의 계몽에 앞장서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1913년 4월 미국 하와이에서 105인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발간한 책이다. 105인 사건의 경위와 배경, 재판 과정과 사건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여론 등을 소개하며 궁극적으로 105인 사건이 일제가 한국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조작한 ‘한국 교회 핍박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
이승만이 한성감옥서에 갇혀 있던 시기인 1900년 봄부터 1903년 9월 15일까지 지은 한시를 정서하여 편집한 것이다. 제목을 ‘체역집(替役集)’이라고 붙인 까닭은 “신체적인 노역[役]을 정신적인 노역으로 바꾸겠다[替]”는 뜻이다. 이 시를 시집 마지막 장에 편집한 것은 정부가 내린 판결에 따라 감옥 안에서 노역하였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까지 바뀌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을 보인 것이다. 국문학사, 한문학사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승만이 한섬감옥서 옥중에서 남긴 문건을 정리한 책이다. 한문(21건), 영문 (12건), 국한문(7건)으로 작성된 한 논설, 에세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2년에 집필한 자서전이다. 과거 자신이 배재학당을 다니던 중 서재필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경도되었고 자신을 비롯한 배재학당 출신이 박영효계 친일파와 손잡은 것을 '불행한 연결'이라고 표현하며 독립협회 활동의 과오를 인정하는 내용도 쓰여있다.
파일:About Japan China war in 1894 by Syngman Rhee.jpg
1917년, 하와이에서 출판된 청일전기 표지.[1]
청일전쟁이 끝난지 5년 후이자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있던 1900년 옥중에서 탈고하여 1917년 하와이에서 출판한 책이다. 청일전쟁에 대한 중국의 "중동전기본말"을 발췌,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의 논설을 덧붙여 만들었다. 즉, 일종의 편역서. 조선의 대중들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한글로 썼다.
이승만이 1941년 7월에 미국에서 출판한 책으로, 일본 제국주의 사상을 낱낱이 분석하여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저술하였다. 일본 신화부터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일본인들의 성전(聖戰)사명과 전쟁 심리를 분석하여 일본에 대한 전쟁의 대비를 하지 않는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처음 출판될 당시엔 미국인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그로부터 약 5개월 후,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일으켜 일본과 미국 간 전쟁이 발발하자 그때서야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파일:Syngman Rhee's Diary Log Book 1904-1934 front cover.jpg 파일:Diary of Syngman Rhee.jpg
이승만의 일기인 로그북[2] 원본 표지. 친필로 쓰여진 일기장 내부 사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펴낸 책이다. 이승만이 1904년 ~ 1934년과 1944년에 썼던 영문 일기다. 한성감옥에서 나온 뒤 미국으로 출발하는 시점부터 시작하는데, 마치 메모의 느낌으로 매우 간략하게 기재되다가 1933년 들어서는 굉장히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서 수감 시절인 1903년 4월부터 1904년 2월까지 옥중에서 『신영한사전』 편찬을 시도했다.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전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이승만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사전을 집필했다. 둘 째, 이승만은 정확한 발음을 표시하기 위해 독창적인 방식을 고안했다. 셋째, 이승만은 표제어 정의에서도 기존의 선교사들이 발간한 사전과는 다른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결론적으로, 이승만의 영한사전은 영어의 쓰임새에 대한 순수한 교육 철학적 관점에서 집필이 시작되었으며, 사전의 구성과 내용은 자신의 해박한 지식과 언어적 통찰력을 반영하면서도 최대한 사전 사용 자의 이해력을 고양하도록 기술되었다.

2.2. 논설/서간 등 기타 자료

3. 이승만과 관련된 주변인의 회고/저술

이승만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던 인물들의 회고록은 방대한 양의 사료들과 비화들을 제공하여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3]
임영신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참상을 담은 사진들을 미국에 있는 이승만에게 전달하러 도미한 20대부터 그와 독립운동을 같이 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 제헌 국회의원이자 초대 상공부 장관을 맡은 바 있다.임병직3.1 운동이 벌어진 1919년부터 이승만의 비서로 발탁되어 시체가 들은 관이 가득한 배를 타고 이승만과 함께 상해로 밀항했던 인물이다. 해방 이후, 미국에 머무르면서 UN 대사, 외교부장관 역할을 수행하며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경무대와 핫라인으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전보로 실시간 통신하면서 남긴 희귀한 사료들을 책에서 다수 소개한다.허정은 1920년대부터 미국에 유학하면서 이승만의 구미위원부 활동을 적극 도왔으며 초대 교통부장관, 사회부장관,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고 2공화국 출범 전 과도정부 수반으로서 가장 중요한 4.19 전후의 비화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이원순은 1910년대 하와이로 건너가 처음에는 박용만의 비서로서 활동하다가 그의 죽음 이후 이승만의 요청으로 동지회 회장을 역임하고 그의 아내 이매리는 한인기독학원 원장을 이승만을 대신해 맡아주는 등 하와이에서의 이승만에 대한 숨겨진 일화들을 많이 드러내준다. 1890년 생인 그는 거의 100세까지 살면서 88올림픽까지 보았기에, 구한말부터 대한민국이 번영하는 초기 모습까지 지켜본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이범석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첩을 치른 독립운동가로서 청산리 대첩 직후 이승만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에도 자주 서신과 자금으로 이승만은 그를 많이 도와주었으며, 해방 후에는 초대 국무총리이자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을 지내며 대한민국 제1공화국 내각 조각의 야화라든지, 부산 정치파동과 자유당 창당 등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윤치영은 1923년, YMCA 야구단으로 하와이로 가서 이승만과 함께 여러 사업들 다년간 진행시켰다. 동지회 간부, 《태평양잡지》 주필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유학을 위해 워싱턴 D.C.로 가서는 1937년 귀국하기까지 구미위원부 업무를 담당하였다. 해방 후에는 돈암장에 기거하며 이승만의 비서실장으로 물심양면 그를 도왔으며, 정부수립 후에는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승만의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었던 인물이다. 민주공화당 의장으로 대한민국 제3공화국 출범에도 큰 기여를하면서 88올림픽까지 보았기에, 이승만 정부로부터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그리고 민주화까지 모두 지켜본 건국 1세대의 회고록이라 정말 내용이 알차고 풍부하다.1919년 4월,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대회에 참석해서 이승만을 만나고 후에 파리에서 김규식과 구미위원부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해방되고는 송진우의 암살을 계기로 미군정 기간동안 경무국장 조병옥과 함께 치안을 담당하는 수도경찰청장 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4번의 국회의원으로서 이승만과 협조하기도 때론 대립하기도 하면서 다사다난한 의정 활동을 벌였다. 짧은 회고록임에도 이승만에 관한 내용이 아주 많기에 참고가 된다.1933년, 첫 만남부터 이승만의 공적인 면모와 더불어 사적인 내밀한 부분에 관해 자세한 정보를 찾고 있다면 위의 책들을 참고. 이승만이 같이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와 일화들을 접할 수 있다.

3.1.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의 저서

파일:Dr. Robert Oliver who helped Syngman Rhee.jpg
1942년 8월부터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꾸준히 후원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교수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 박사. 해방 후 그는 이승만의 정치고문 역할을 담당했고 그의 공식 전기를 집필했다.

로버트 T. 올리버(Robert T. Oliver)는 이승만의 친구이자 공보·선전분야 고문이자 개인 대변인이었다. 올리버는 연설소통학(Speech Communication)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가 (공식/비공식적으로) 역임한 직위 특성상, 그의 저작은 다른 주변인의 저술과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 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원제: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원서
올리버가 1954년에 미국에서 낸 책인데 한글로 번역되었다.

◈ 이승만의 대미투쟁 (원제: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승만과 주고받은 서한, 전보 등 원사료 중심으로 쓰여져 있으며 이승만이 미국의 정책입안자들과 벌여온 투쟁을 보여준다.

4. 이승만 연구 논문/저서

실제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이 쓴 책이다.[5]

유영익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연세대 교수 시절을 포함하여 거의 일평생을 이승만 연구를 천착해온 학자이며, 1989년 탈냉전 이후 학계 일각에서 이승만에 대해 재평가하는 연구를 선도하였다. 이승만과 관련된 1차 자료들을 두루 섭렵하여 저술과 연구를 남기고 있다. 특히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로부터 이승만이 소장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수집한 편지, 문서, 수첩, 사진 등과 같은 방대한 문서군들을 기증받아서, 이를 바탕으로 이승만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를 진행했다.[6]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이승만의 전반에 대한 책이고, 『젊은 날의 이승만』은 청년기 이승만의 사상에 관한 책으로 이승만이 24세부터 29세까지 한성감옥에 수감된 시기에 집필했던 옥중잡기를 바탕으로 그의 초기 생애와 사상을 분석했다. 옥중잡기의 원문을 원본과 일일이 대조해가며 번역하고 그 해제를 썼다는 것이 특징이다. (월간조선 2008년 11월호 기사)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승만 연구를 종합하고 보완하여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이라는 책을 썼는데 대중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은 책이다.

◈ 고정휴고정휴의 이 책은 이승만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차분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다. 3.1 운동 시기, 한성정부 시기 이승만의 행적, 이승만의 구미위원부 조직과 활동, 이승만의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이승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외교활동 등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승만과 구미위원부,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알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봐야할 책이다. 이 밖에도 고정휴는 이승만의 독립운동활동과 사상에 대해서 상당한 연구를 남겼다.

◈ 오영섭오영섭은 이승만 연구의 권위자 유영익의 제자이다. 이승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및 자료정리 및 번역출간 등을 수행해왔다. 이승만에 대해서 단독저서로 낸 책은 아직까지 없지만 공저 및 학술지 논문을 통해서 이승만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다.

◈ 이정식이정식 경희대 교수는 비교적 이승만을 중립적 시각에서 연구했으며, 특히 《이승만의 청년시절》에선 올리버가 소장한 이승만 관련 문건을 토대로 저술했다. 또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에선 서재필-김옥균-박영효-박지원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했다.

◈ 정병준정병준이 출판한 "우남 이승만 연구"도 일독할 만하다. 정병준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여운형과 좌우합작운동으로 석사 학위를, 이승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건국 초기 북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출간된 이 책은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제1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이승만의 행적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수립 이전 이승만의 정치활동과 사상, 특히 해방정국 시기 행적에 관한 독보적인 저작으로 인정받는다.

손세일손세일은 학자 출신은 아니지만[8]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비교 연구에 오랫동안 천착하며 이 책 역시도 선행 연구 및 자료들을 소화해낸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심인물이자 한국독립운동사의 두 거목인 이승만과 김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1969년 신동아에서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글을 처음으로 투고한 이래, 이후 월간조선 연재활동 및 단행본 출간을 통해서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 김명섭김명섭은 한국정치외교사 연구자로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석사과정 시절까지만 해도 이승만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고 『해방전후사의 인식』 집필에도 참여했으나, 지금은 한국근현대사에서 이승만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는 학자이다.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제자들과 함께 이승만에 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아직 이승만에 관한 단행본을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독립노선, 외교활동과 연설, 지정인식, 저술 등에 대한 광범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중석서중석은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학자[9]로 이승만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서중석을 좌파 성향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그의 연구논조를 살펴보면 박헌영 및 남로당에 대한 비판이 단정세력에 대한 비판 못지 않게 강력하다.[10] 다만, 본래 이승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며[11], 이승만에 관한 연구의 시간 범위는 해방정국 시기, 제1공화국 대통령직 수행 시기에 국한되어 있다.

◈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공동연구 총서

5. 기타

◈ 전기 부류이승만이 하와이에서 거진 30여년간 머물면서 그의 조직을 관리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업가 이원순의 이승만 전기이다. 자료의 종류 자체가 상당해서 버릴 것이 없지만, 1960년대에 나온 책이라 날짜나 숫자면에서 꽤 오류들이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시인 서정주는 그가 청년기였던 1948~9년도에 대통령으로 재직 중인 이승만에게 불려가 구술로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였다. 이후 이화장에 기거하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찾아가 인터뷰하여 추가 내용을 보강한 후 재출간 되었다.

◈ 이한우의 저서언론인 이한우가 1995년 설날부터 12월 26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연재 시기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해이며 '이승만 신드롬'을 대중적으로 널리 불러일으키며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도서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승만을 재조명한 선구적인 책으로 평가받는다.

◈ 김인서 목사의 저서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 서적정보김인서 목사가 1963년에 쓴 책인데, 2016년에 비봉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하였다.

◈ 이덕희의 저서이덕희 교수는 하와이 한인 이민사와 이승만의 활동과 관련하여 상당한 연구와 사료 수집을 십수년간 해온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지식들을 접하고 싶다면 위의 책들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 이주영의 저서이승만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다룬 책이다. 이승만의 경험과 그가 남긴 유산을 조명하고 있다.

◈ 김삼웅의 저서저자는 참여정부 시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고 오마이뉴스에 정치, 역사 글을 연재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2012년에 출간되었고 202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다룬 책으로 이승만의 친일파 등용이나,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과 이승만 독재에 대해 주로 강력하게 비판하며, 김구의 암살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하기도 한다. 김삼웅이 쓴 인물 평전이나 한국현대사를 서술하는 책에서는 이승만과 이승만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2020년 개정판

◈ 김용삼의 저서저자는 조선일보 출신의 언론인 김용삼. 2014년 6월 출판. 이승만의 국가건설 과정에 대한 책이다.

◈ 최기일의 저서저자는 해방정국 시기 돈암장 시절 이승만의 공보비서를 역임했던 최기일. 책 자체는 전반적으로 본인의 일생을 회고하는 회고록이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승만의 개인적인 면모들에 대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 이승만 연구자들이 자주 참고하는 서적이기도 하다. 돈암장 시절 이승만을 비롯하여 주변 측근들이었던 윤치영, 임영신, 프란체스카 도너의 면모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저자 최기일의 경우 1948년 정부수립 전에 이승만 곁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가서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고[12], 훗날 김대중미국으로 망명갔을 때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고[13], 계훈제, 함석헌 등과도 교류하면서 재미 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기여하였다. 여담으로 김준엽장준하의 유년시절 친구이기도 해서 장준하의 수기 <돌베개>에도 막판에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14]

◈ 공저저자는 남정욱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우남 이승만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5년 11월에 출판하였다. 한강철교 폭파와 같은 민감한 주제도 포함하고 있다.

◈ 청소년용 위인전2020년 6월에 출간되었으며 청소년용 위인전이다.

6. 다큐멘터리



▲한국사전: 이승만 2부작 (2008.8.30.~2008.9.6. KBS1)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대통령 이승만 (2011.9.28.~2011.9.30. KBS1)
총 3부작으로 구성돼 있으며, 김정수 CP가 기획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1부는 '개화와 독립', 2부는 '건국과 분단', 3부는 '6.25와 4.19'로 각각 구성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선 이승만이 미국과의 원조 협상에서 기선제압식으로 성사시켜 외교 주도권도 양보 못할 사람으로 그려 친미주의자 프레임을 벗었고, 원자력의 필요성을 제창하고 과학자를 키운다거나 의무교육을 확대시킨 점, 반공포로 석방을 지시한 점 등의 공적을 많이 다뤘다. 물론 손세일이나 유영익 등과 같은 이승만에 긍정적인 인물들 중심으로 인터뷰가 나오지만,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김삼웅이나 주진오, 브루스 커밍스 그리고 김동춘 등의 인물들의 입장과 인터뷰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됐는데, KBS 2노조 측이 '독재자 미화'라며 제작을 반대한 바 있으며, PD저널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15] 그 1부에선 임시정부 위임통치 파문에 대해 사실만 얘기했지 파장은 안 다뤘고, 2~3부에선 친일청산 실패를 '인력 부족' 탓이라 한다거나 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훈련이 안 된 병사들이 한 짓'이라 하고, 이승만에게 민간인 학살의 큰 책임이 있는 제주 4.3 사건은 일체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최악의 행적이라 할 수 있는 국민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내용이 다큐멘터리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1960년 4.19 혁명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책임을 거론하는 대신 교수 시국선언 후 이승만이 직접 사태를 파악해 병원에서 부상자를 위로하는 모습도 내보냈다. 새로운 사실 전달마저도 이승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선물인 나전칠기를 전달한 얘기 정도다.

2013년에는 청미디어를 통해 단행본으로 나왔다.


▲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2012.11.29. 민족문제연구소)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다큐멘터리다. 친일파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했으며, 서중석, 정병준, 주진오, 이만열 등의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의 인터뷰와 미국 측 상당히 많은 근거자료를 토대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승만의 독립운동 시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 후속작은 박정희 편인 프레이저 보고서와 함께 나오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 시절의 이승만에 대해 비판의 강도가 꽤나 높다 보니, 한국 정치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편집으로 객관성을 훼손했다며 고등법원에서 중징계 제재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2019년 대법에서 파기환송되었다.[16]


[1] 원고는 옥중에서 탈고되었다.[2] Log Book, 항해일지[3]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아카이브는 전국 각 지역 도서관 내에 지정된 원문 PC를 사용하여 무료로 볼 수 있고, 본문 검색과 저가에 프린트까지 가능하다. 관외 무료인 책들은 도서관이 아닌 어느 PC에서도 열람이 가능하다.[4] 주의해야할 점은 1998년에 외교부에서 출판한 버전은 이승만과의 일화들을 빼고 외교적 기록만 부분 발췌한 것이라 내용이 부실할 수 있다.[5] 여기에는 각 학자들의 연구서중 이승만을 제목/주요 소재로 다룬 연구서만 기술했다. 해당 학자들의 다른 저서에도 이승만의 행적과 평가가 언급된 경우가 많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해당 학자들의 다른 연구성과 및 연구사도 찾아보길 바란다.[6] 이인수가 기증한 문서군들은 오늘날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들이 많다.[7] 위 저서의 증보판[8] 손세일은 신동아 및 사상계 편집장 등을 지낸 언론인으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래 주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9] 역사학계에서 최초로 한국현대사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링크[10] 조선공산당/남로당과 같은 본래 의미의 좌익에게 매우 비판적이며, 좌우합작 및 통일을 지향한 중도파 세력에게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좌익 및 중도파가 모두 사라진 1948년 이후에는 이승만의 대항마로 조봉암을 매우 강력하게 띄워준다.[11] 이승만을 다룬 연구서 전반의 서론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 대두된 이승만 재평가론에 대항하기 위해 이승만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12] 공교롭게도 본인의 상사 이승만이 재학했던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초의 한국인 학부생이 되기도 했고, 이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3] 단순히 지지를 한 것을 넘어서 김대중에게 하버드 대학교 인사들과 미국 상원의원들을 소개시켜주는 등 실질적으로 김대중에게 미국 정계 인맥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14] 해방 이후 장준하김구의 비서, 최기일은 이승만의 비서를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힘을 합쳐서 김구이승만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우익진영에 더할나위 없이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장준하의 수기 <돌베개>에 나온다. 하지만 신탁통치 문제로 정세가 점점 악화되어가서 결국 이 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최기일은 아예 정부수립 전에 이승만 곁을 떠나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래도 미국에 체류하면서 가끔 장준하의 잡지 사상계에 글을 개재하기도 했다.[15] 아무래도 2부가 '건국과 분단'이라는 제목을 쓰다보니 그런 듯 하다.[16]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다소 이승만에 대한 '밈(Meme)'적인 표현들도 있다. 그것이 악의적인 편집으로 반대측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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