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손에 죽을 때는 죽더라도, 지금은 하고 잡은 걸 해야겄소”판소리 천재 소녀. 타고난 음색, 풍부한 음량,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넓은 음역대, 사무치는 감정표현까지 그야말로
소리꾼의 바탕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다. 정년이는 어릴 때부터 소리하기를 좋아했다. 마음먹은 대로 소리가 죽죽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정년이의 소리를 듣고 반응해주는 것도 다 짜릿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 용례는 정년이가 소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정년이 소리를 할 때마다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을 치고, 종아리에 매질을 하고, 밥을 굶겼다. 그래도 정년이는 소리하는 것이 좋아서 엄마의 눈을 피해 소리를 했다. 거기다 시장바닥에서 소리를 하면 쏠쏠하니 용돈벌이도 되는데 엄마는 왜 그러는 걸까.
소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야무지기로 소문나서
바지락도 잘 캐고,
생선도 잘 팔고, 뭐든 마음먹은 일이면 악착같이 해낸다.
사막에 10번 갖다 떨어트려 놔도 10번 다 살아남을 무서운 생활력과 악바리 근성을 갖고 있다. 마음에 그늘이 없고 넉살도 좋아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무서운 친화력을 갖고 있다. 19살이 될 때까지 정년이의 세상은
목포가 다였고, 그저 소원이라고는 삼시세끼 끼니 걱정 안 하는 거였다. 그런 정년이의 손바닥만한 작은 세상은,
서울에서 내려온 옥경이를 만나면서 뒤집혀버린다.
당대 유명한 국극배우인 옥경을 통해서 정년은 국극 공연을 난생 처음 보게 되고, 상상도 못한 세계에 정년은 사로잡혀 버린다. 우여곡절을 겪어 서울의 매란국극단에 들어가게 된 정년. 목표는 단 하나. 문옥경처럼 국극단의 남역이 되는 것. 정년은 국극단에 들어가자마자 국극단의 왕자님 옥경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모두의 미움을 한몸에 받게 된다.
그나마 주란만이 정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준다. 남들이 미워하거나 말거나 타고난 생존본능과 근성으로 버텨가는데, 그런 정년이에게도 도저히 해결 안 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운명의 라이벌이 될
룸메이트 영서! 쌀쌀맞고 도도하기가 북풍한설 같은 싸가지 없는 가시나.
영서 본인은 명창 밑에서 정식 루트를 밟아서 온 엘리트고, 정년이는 시장바닥에서 노래 부르다 온 애니 상종 못하겠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정년을 무시하는 영서. 열받기는 하지만 영서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평생 소리라면 자신 있었는데 영서의 소리를 듣고 나서 정년은 움찔 놀랐다. 그래, 잘난 척 할만 하구나...
정년이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연기. 어떤 역할이든 무섭게 몰입해서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연기를 할 줄 아는 정년, 그 재능이 막 꽃피워 나가면서 영서에게 맞설 다크호스로 급부상해나가려는 찰나, 정년은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 좌절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