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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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정왕(定王) |
성 | 희(姬) |
휘 | 유(瑜) |
아버지 | 경왕(頃王) |
생몰 기간 | 기원전 ???년 ~ 기원전 586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606년 ~ 기원전 586년 |
1. 개요
주나라의 제21대 왕. 경왕(頃王)의 아들이며, 광왕의 아우이고, 간왕의 아버지이다. 형이 일찍 죽는 바람에 동생인 그가 왕이 된 것이다. 이 당시의 춘추오패는 중원 국가가 아닌 초나라의 초장왕(楚莊王)이었다.[1]2. 재위 기간
2.1. 초 장왕이 춘추 오패로 등극하다
정왕 원년(기원전 606년), 초나라에서는 장왕이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가 충신들의 간언을 듣고, 제대로 정사를 돌보고 난 뒤 장왕은 초나라의 강력한 국력으로 육혼 땅에서 융족을 물리치고 주나라에 가서 천자(天子)의 상징인 구정(九鼎)의 무게를 물었다. 그러자 정왕은 사촌인 왕손 만(王孫 滿)을 보냈다. 그래서 왕손 만이 대답하기를 힘이야 초나라에게 있지만 명분은 아직 주나라에 있음을 알려주니 장왕은 생각이 깊은 인물이라 그 말을 알아듣고 더 묻지 않았다. 이 고사를 문정(問鼎)이라고 한다.정왕 10년(기원전 597년), 초 장왕이 서(舒)나라를 멸하고 요(蓼)나라를 완전히 멸했다. 그리고 진(陳)나라와 송나라를 굴복시켰다. 특히 진(陳)나라의 경우는 진 영공(陳靈公)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하징서(夏徵舒)를 죽이고 진(陳)나라를 되일으킬 정도로 큰 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초 장왕은 춘추 오패로 공식적으로 등극하였다. 이로써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이후 새로운 패자(霸者)가 탄생한 것이다.
3. 당시 진(晉)나라의 상황
비슷한 시기에 조돈(趙盾)이 죽고 그 아들 조삭(趙朔)이 진경공(晉景公)을 섬겼다. 진 영공(晉靈公)[2]의 총신인 도안고(屠岸賈)[3]가 조돈에게 원한이 있어서[4] 조삭을 모함해 죽이고, 그 아들 마저 죽이려 했다. 그러나 공손(公孫) 저구(杵臼)의 기지로 조삭의 아들 조무(趙武)를 살리고 대신 정영(程嬰)의 아들을 대신 죽였다. 그런데, 도안고는 조무가 죽었는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매우 기뻐하며 권력을 마구 휘둘렀다.[5]4. 최후
정왕 21년(기원전 586년) 11월, 정왕이 붕어하고, 그 아들인 희이(姬夷)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간왕이다.[1]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진나라가 중원의 패자이나 국력은 당시 초나라가 더 앞섰으므로 그가 춘추오패가 되는 것이 가능했다.[2] 하징서에게 죽은 진 영공이 아니다.[3] 賈는 이 때는 발음이 '가'가 아닌 '고'로 발음한다.[4] 그 원한의 이유는 바로 진 영공에게 빌붙어 권세를 누리던 자신의 권력이 조돈에 의해 빼앗겼기 때문이다.[5] 이 이야기가 후대 소설화 된게 조씨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