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1. 개요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각 당 및 무소속 후보 선출 및 사퇴 과정이다.2. 새누리당 후보 선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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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새누리당 | 임태희 | 낙선 | |||||
2 | 새누리당 | 박근혜 | 당선 | |||||
3 | 새누리당 | 김태호 | 낙선 | |||||
4 | 새누리당 | 안상수 | ||||||
5 | 새누리당 | 김문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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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승리를 이끈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2년 4월 22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새누리당 주자 중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 선출 경선에 뛰어들었다. 4월 29일에는 정몽준 전 의원도 대통령 경선 후보 출마 선언을 하였다. 5월 6일에는 안상수 전 인천광역시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했고, 5월 8일에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5월 10일에는 이재오 전 의원이 출마선언을 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승리에 따라 박근혜 독주에 다른 주자들이 묻히는 경향이 강한데, 이러한 불만이 경선 룰을 두고 폭발해버렸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무조건 현행 경선룰(대의원 20% 일반당원 40% 국민참여선거인단 40%)을 유지한 채 경선을 치르자고 하고, 다른 주자들은 현행 룰로는 가능성이 없으니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으로 경선 룰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친(親) 박근혜계 인사들이 대부분 선출된 새누리당 지도부는 요지부동. 그리하여 다른 주자들은 경선 보이콧 경고까지 하는 등 극한대립으로 치달았다. 결국 비박 3인방 중 정몽준 후보와 이재오 후보는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만 경선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김태호 의원이 7월 4일 출마 선언을 했고,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역시 7월 10일 출마 선언을 공식 발표하였다. 결국 새누리당 경선은 임태희, 박근혜, 김태호, 안상수, 김문수(이상 기호순)의 5명의 후보가 출마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8월 19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을 위한 투표와 여론조사가 실시되었으며 경선 투표를 마감한 결과 투표율은 비교적 낮은 41.2%[1]로 집계되었다. 다음날인 8월 20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84.0%이라는 역대 대선 경선 사상 최대의 득표율[2]을 기록하며 8.7%를 득표한 2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을 제치고 대선후보로 확정됐다.[3]
2.1. 경선 결과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 ||||||
기호 | 후보명 | 선거인단 득표 (득표율)[4] | 여론조사득표 (득표율)[5] | 총합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임태희 | 2,341 (2.83%) | 335 (1.62%) | 2,676 (2.60%) | 4위 | 낙선 |
2 | 박근혜 | 71,176 (86.18%) | 15,413 (74.73%) | 86,589 (83.97%) | 1위 | 후보 확정 |
3 | 김태호 | 2,616 (3.17%) | 682 (3.31%) | 3,298 (3.20%) | 3위 | 낙선 |
4 | 안상수 | 739 (0.89%) | 861 (4.17%) | 1,600 (1.55%) | 5위 | |
5 | 김문수 | 5,622 (6.81%) | 3,333 (16.16%) | 8,955 (8.68%) | 2위 |
3. 민주통합당 후보 선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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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민주통합당 | 정세균 | 낙선 | |||||
2 | 민주통합당 | 김두관 | ||||||
3 | 민주통합당 | 손학규 | ||||||
4 | 민주통합당 | 문재인 | 당선 | |||||
| 사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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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문서 참고하십시오.
민주통합당 당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상당한 사유가 없는 한 대선 180일 전까지 치르도록 되어있었고, 따라서 2012년 후보 경선은 2012년 6월 22일까지 치러져야 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흥행을 위해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을 피해서 경선을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게 너무 독이 되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선을 하느라 그만큼 잡아먹은 시간만큼 대통령 후보에 대한 홍보를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경선을 끝내고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 삼아서 민주통합당의 경선 기간에 이미 대선후보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너무 불리한 싸움이 되어 버렸다.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경선이 끝난 후 새누리당 강세지역인 부산에서 3번 연속 당선된 조경태 의원이 6월 11일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했고 손학규 전 대표도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토를 발표하며 6월 14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사흘 후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의원도 6월 17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고, 김영환 전 의원도 7월 5일 중부권 대통령론을 내세우며 출마를 선언했다.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 역시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7월 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 외에 종로 입성에 성공한 정세균 전 의원도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며 정동영 고문은 출마를 고심했으나 2007년 대선의 패배 책임을 지고 불출마하기로 했다.[6] 마지막으로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7월 1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1-2위간의 결선투표를 하기로 하였다.# 손학규 캠프와 김두관 캠프가 결선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고, 문재인 캠프는 반대했는데, 손학규 캠프와 김두관 캠프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경선 중간에 사퇴하는 후보가 있을 시 해당 후보가 그 전까지 받은 표는 모두 무효 처리한다는 규정을 유지해 자칫 결선투표제가 무력화될 여지를 남겨두었다.#[7]
7월 28일과 29일에 걸쳐서 8명의 후보 중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하위 3명을 탈락시키고 5명으로 후보를 압축시키는 예비 경선을 치렀다. 일단 압도적 1위인 문재인 후보와 치열한 2위 싸움 중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생존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보여 사실상 김영환, 조경태, 김정길, 박준영 후보 중 한 명만 생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7월 30일에 발표된 컷오프 최종 결과 예상대로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경선 진출이 확정되었으며, 남은 한 자리는 박준영 후보가 차지했다. 다만 후보별 득표율은 이후 경선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공개되지 않았다.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은 8월 8일 시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 등을 본격적인 경선 본선에 돌입한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이고 2위를 놓고 손학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다. 본 경선은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치러줬다.
8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를 시작으로 울산광역시, 강원도, 충청북도 순으로 초반 경선이 진행되었다. 제주 지역 경선 선거인단은 모집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3만명 이상이 등록했다.[8]
이런 가운데 8월 21일, 박준영 후보가 경선 사퇴를 발표했다. 생각만큼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경선에 계속 참가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기사.
8월 25일 열린 제주 경선에서 접전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문재인 후보가 약 60%를 정도의 득표율을 보이며 압승하였다. 다음날인 26일 열린 울산 경선에서는 예상대로 역시 문재인 후보가 과반득표를 하며 승리하였다. 한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모바일 투표의 불합리한 방식 때문에 무효표가 속출한다고 주장하며 울산 경선에 불참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무효표는 1%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 전원이 다시 경선에 복귀했다.
8월 28일, 강원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며 3연승을 달렸다. 강원도 지역에선 당대표 때부터 공을 들인 손학규 후보가 유리하다고 예상했었는데,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는 26일 있었던 경선 불복이 손학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8월 30일, 역시 손학규 후보의 강세 지역으로 예상되었던 충북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여 과반수 1위를 고수했다. 2위는 손학규 후보.
하지만 초반 4연전 결과와는 별개로 흥행은 지지부진한 편인데, 서로 깎아내리는 소모적인 경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9]. 이대로 가면 문재인 후보가 확정된다고 해도 손학규 측이나 김두관 측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문재인과 손학규 - 김두관 측의 극한 대립 끝에 후보가 확정된다면 과연 패배한 쪽이 순순히 승복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경선에서 대립이 있는 건 흔한 일이라며 이런 걱정이 기우라는 소리도 있다.
그 외에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아직 경선이 초반임에도 안교수와의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결국 스스로 경선을 포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 반대로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안철수 교수인 만큼 안교수와 단일화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뻔한 정치공학적 사고가 문제[10]라는 지적도 있다.
9월 1일, 초반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어 왔던 전북[11] 지역 경선이 치러졌다. 이 지역은 김두관 후보를 제외한[12] 세 후보가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던 지역이었는데[13]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박빙 승리(38% 득표)로 끝났다. 2위는 정세균 후보, 3위 손학규 후보, 4위 김두관 후보. 문재인 후보는 연승을 이어나갔으나 누적 득표에서 득표율이 45%대로 떨어졌다. 정세균 후보는 초반의 저조한 득표율을 딛고 누적 득표율 10% 넘겨 3위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손학규 후보는 내심 승리를 기대했으나 다만 결선 투표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 반면 김두관 후보는 10% 초반대의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며 4위 정세균 후보에게도 턱밑까지 따라잡히게 되었다.
9월 2일, 인천광역시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50%를 약간 넘는 득표율로 승리하여 6연승으로 대세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누적 득표율은 45%대를 유지해 결선투표를 건너뛸지는 알 수 없게 됐다.
9월 4일, 경상남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가까스로 1위를 차지하며 7연승을 이어나갔다. 도지사를 지냈던 김두관 후보도 1위 문재인 후보와 2%정도 차이로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경남에서의 선전으로 김두관 후보는 손학규 후보와의 누적 득표율 표차도 3%대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한편 이 날을 마지막으로 경선참여인원 모집이 마감되었으며 총 참여 인원 수는 대의원과 이전 전당대회 투표 인원등을 포함하여 108만 5004명으로 집계되었다.
9월 6일, 약 14만명의 선거인단이 몰려 있는 광주광역시 - 전남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약 4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8연승을 이어나갔다. 2위는 손학규 후보. 민주당의 핵심인 광주 - 전남에서 승리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누적 득표율은 여전히 46%로 결선투표의 여지를 남겨둔 상황.
게다가 하필 이런 시점에 새누리당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설이 터지는 바람에 문재인 후보 입장에선 벙찔 수밖에... 그러나 이 협박설이 터지기 직전 여론조사의 결과는 안철수 교수와 문재인 후보의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걸로 나와 이후 상황에 따라선 문재인 후보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경선 흥행이 부진하고 안교수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크게 터져나오는 상황. 비주류 쪽에선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9월 8일, 부산광역시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당초 지역구가 있는 문재인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개표 결과 역시 문재인 후보가 66%대의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하며 누적 득표율을 49%로 끌어올렸다.
9월 9일, 역시 문재인 후보 강세 지역으로 예측되었던 세종특별자치시 - 대전광역시 - 충청남도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문재인 후보는 이번에도 62%대의 압도적인 득표를 바탕으로 누적 득표율 과반을 회복했다.
또한 그 동안 대세론이 있었다고 해도 신분상으론 민주당의 경선 후보들 중 한 명이었던 문재인 후보가 계속되는 연승으로 1위가 확실시되고 결선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누적 득표율 50%의 고지를 넘김에 따라 민주진영의 확실한 대권주자로 인식되면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9월 12일, 대경권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고 누적 득표율 과반을 유지했다.
9월 15일, 경기도 지역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고 누적 득표율을 과반 이상인 53%로 끌어올렸다.
9월 16일, 서울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 경선에서도 압도적인 표차였고 권리당원과 대표선거인단의 투표결과도 비슷하여 56%대의 득표율로 과반 득표율을 유지하여 결선투표 없이 바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3.1. 경선 결과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 |||||
지역 | 1. 정세균 | 2. 김두관 | 3. 손학규 | 4. 문재인 | 선거인단수 (투표율) |
제주 | 965 (4.80%) | 2,944 (14.65%) | 4,170 (20.74%) | 12,023 (59.81%) | 36,329 (55.33%) |
울산 | 387 (4.07%) | 3,053 (32.11%) | 1,117 (11.75%) | 4,951 (52.07%) | 14,798 (64.25%) |
강원 | 344 (5.56%) | 678 (10.96%) | 2,328 (37.63%) | 2,837 (45.85%) | 10,102 (61.25%) |
충북 | 466 (2.64%) | 1,931 (10.95%) | 7,108 (40.30%) | 8,132 (46.11%) | 31,323 (56.31%) |
전북[14] | 11,556 (26.53%) | 5,454 (12.52%) | 10,193 (23.40%) | 16,350 (37.54%) | 95,707 (45.51%) |
인천 | 787 (6.65%) | 1,976 (16.70%) | 3,143 (26.56%) | 5,928 (50.09%) | 24,719 (47.87%) |
경남[15] | 400 (1.55%) | 11,381 (43.93%) | 2,444 (9.43%) | 11,683 (45.09%) | 41,388 (62.60%) |
광주/전남 | 2,435 (3.48%) | 11,018 (15.75%) | 22,610 (32.31%) | 33,909 (48.46%) | 139,276 (50.24%) |
부산[16] | 603 (2.20%) | 5,907 (21.58%) | 2,726 (9.96%) | 18,135 (66.26%) | 43,773 (62.53%) |
대전/세종/충남 | 1,960 (8.14%) | 2,640 (10.96%) | 4,380 (18.19%) | 15,104 (62.71%) | 46,899 (51.35%) |
대구/경북 | 938 (5.20%) | 3,621 (20.06%) | 3,214 (17.81%) | 10,275 (56.93%) | 31,122 (57.99%) |
경기[17] | 3,864 (4.90%) | 6,978 (8.84%) | 18,477 (23.42%) | 49,585 (62.84%) | 148,520 (53.13%) |
서울[18] | 18,322 (7.02%) | 30,261 (11.59%) | 54,295 (20.79%) | 158,271 (60.61%) | 419,623 (62.23%) |
총합 | 43,027 (7.00%) | 87,842 (14.30%) | 136,205 (22.17%) | 347,183 (56.52%) 후보 확정 | 1,085,004 (56.61%) |
4. 안철수(무소속)
안철수 교수는 당초 2011년 10월의 서울특별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자신보다 지지율이 한참 낮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안교수는 이후 정치 참여나 대선 출마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후보가 될지 안될지는 불확실했던 상황.그러나 공고한 박근혜 대세론과 민주통합당의 총선 패배 등으로 각종 여론조사 등에서 박근혜 후보에 유일하게 맞설만한 후보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던 중 7월 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인 "안철수의 생각"을 출판했고 이후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을 통해 국민의 여론이 원한다면이란 단서를 달아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안철수의 생각 출판 이후 잠잠하던 안철수 바람이 다시 불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제치는 걸로 나타났다. 이후 안교수에 대한 각종 검증 바람도 함께 불기 시작해 최태원 現 SK그룹 회장에 대한 구명탄원서 서명, 안랩의 친인척 기용, 딱지 구입, 뇌물 공여, 여자 문제 등의 갖가지 의혹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안교수측은 이런 흐름에 맞서서 참여정부 인사인 유민영 교수를 대변인으로 기용하고 금태섭 변호사 등이 "진실의 친구들"이라는 페이스북을 운영하여 각종 의혹들에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2012년 9월 6일, 금태섭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이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측이 안철수의 여자관계와 뇌물사건등을 언급하며 불출마를 종용했다라고 주장하여 정국에 폭탄을 떨궜다. 금변호사의 주장에 협박의 당사자로 지목된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단순한 친구관계의 전화통화였다고 반박했고 금태섭 변호사는 명백한 협박이다고 계속 주장했다. 웬만한 일에는 직접 거론을 하지 않는 편인 박근혜 후보가 직접 안철수도 구태정치라고 되받아 치는 등의 상황이 격화되는 실정이다.
그 이후 마땅한 물적 증거가 없는 관계로 박근혜측의 점점 유리하게 진행되는 상황이 되었으나... 당시 정준길이 전화를 걸었을 때 탔던 택시기사의 증언이 나오며 상황은 반전된다. 정준길의 어투가 매우 협박조였다는 증언과 더불어 애초 정준길은 직접 운전을 하며 금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불출마 협박 논란 이전까지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교수가 큰 폭의 차이로 1위였으나, 협박 논란 이후로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여 안철수 후보와 비슷해졌는데, 이것은 안철수 교수가 불출마 협박설로 인해 처음으로 새누리당에게 직접적인 반격, 공세를 가하면서 그동안 기성 정치권과는 다른 참신한 후보라는 이미지보다는 기성 정치권의 틀에 갇히게 되면서 중도, 온건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에겐 안교수를 불안하게 느끼고 문재인 쪽으로 이동하는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한편 이런 검증 흐름과는 별개로 안교수는 비공식적으로 전국의 각계각층과 각계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식으로 여론 청취를 하고 있는걸로 알려졌다. 전주에서 취업준비생들과 대담을 갖고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를 만난걸로 알려졌으며, 충청북도 진천군에서는 농업후계자들과 대담을 가졌고, 부천시에서는 YMCA 좋은 아빠되기 모임의 회원들과 호프집에서 미팅을 가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안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교육과 육아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고...
각계 원로들과도 활발하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상용 전 주일대사, 소설가 조정래, 조용경 포스코 부회장 등이 그들로, 소설가 조정래씨는 안교수가 대통령을 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잘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11일, 안철수 측이 민주당 경선이 끝나는 대로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힌다는 말을 했다. 정치권에서는 거의 출마 확정된 분위기로 간주하는 상황. 민주당 경선 직후의 타이밍에 출마한다면 문재인의 컨벤션 효과에 안철수의 출마선언으로 추석 연휴의 화제거리를 만들어서 지지율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9월 19일, 구세군 아트홀에서 "국민보고대회"라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전까지의 모호한 태도와는 달리 여러 국민들과 다양한 인사들을 만난 결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선언했으며, 대선에서 낙선하더라도 정치인으로 남을것이라고 밝혀 권력의지를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이다. 다만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기성정치권이 변화와 혁신을 수행하고 국민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다소 추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이후 양측은 단일화 협상을 개시하나 입장의 차이로 계속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1987년 대선 정국이 재현되는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야권 지지층에서는 문, 안 양측에 단일화를 하라는 압력이 거세졌다.
단일화 룰은 처음에 당이라는 조직력이 있는 문재인측은 국민참여경선을 선호했고 조직력이 딸리는 안철수측은 여론조사를 선호했다. # 그러나 14일 문재인측이 안철수 양보론을 일부 언론을 통해 흘려서 단일화 협상안이 중단이 되었다. # 재개된 단일화 협상에서는 공론조사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여론조사중에서 문재인측은 적합도방식, 안철수측은 양자대결방식을 선호했다. 적합도방식은 야권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문재인측이 유리, 양자대결은 본선 경쟁력이 더 높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중도층 지지율이 더 높은 안철수 측이 유리했다. # 22일 단일화 협상안으로는 문재인측은 양자대결 50% + 적합도 50%, 안철수측은 양자대결 50% + 지지도 50%를 주장했다. 적합도는 문재인측이 10%이상 유리했지만 지지도는 그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문재인측이 조금 앞선 조사를 보이고 있었다. # 즉 양자대결을 포함시키는 것은 의견의 일치를 이룬 상태에서 적합도냐 지지도냐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초 지지도에서 문재인에 2~3%정도 앞서던 안철수가 11월 14일 단일화 협상 중단 이후로 지지도에서 역전당한다. # 한번 뒤집어진 지지도는 11월 21일 23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문-안 토론회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양측은 끝내 단일화 합의에 실패했으며, 안철수 측은 11월 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문재인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5. 진보정의당 후보 선출 과정
통합진보당 내분 이후 구 민주노동당 인천연합계,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출신 정치인들이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만들고 대선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였다. 정당의 틀을 갖추고 완전한 단계의 창당을 이루는 것은 2013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1차적 창당 상태에서 일단 후보를 내 야권과 연대를 모색한다고 한다. 심상정 의원이 당내 단독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정식대선후보 선출은 당원 찬반여부 투표로 결정된다. 10월 17일 심상정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되었다.6. 통합진보당 후보 선출 과정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민주노동당 구 인천연합계, 국민참여당계와 진보신당 탈당파(새진보통합연대)출신 당원들이 대부분 탈당을 해버린 (구 경기동부연합계열과 구 울산연합계열만 남다시피한) 통합진보당에서도 대통령 선거 후보를 내기로 하였다.9월 25일에 이정희 통합진보당 前 공동대표가 출마선언을 할 예정. 그런데 민병렬 당 대변인이 같이 출사표를 던졌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측에서 경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보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부정경선사태 직후 혁신비대위에도 참여했던 울산연합 출신이다.
큰 이변 없이 이정희 후보가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6.1. 경선 결과
[[통합진보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 |||||||
기호 | 후보명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
1 | 이정희 | 8,622 | 64.92% | 1위 | 후보 확정 | ||
2 | 민병렬 | 4,659 | 35.08% | 2위 | 낙선 | ||
선거인단 총 수 | 36,696 | ||||||
투표수 | 13,522 | 무효표수 | 241 | ||||
투표율 | 36.85% |
7. 선진통일당 후보 선출 과정
이인제 대표는 일단은 제3후보를 낼 생각으로 정운찬을 비롯한 다른 정치인들과 접촉중이나, 정 인물이 없으면 이인제 자신이 직접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2년 10월 24일,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가 독자 후보 선출을 포기하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였다. 기사. 결국 바로 다음날인 10월 25일, 새누리당과 합당 발표.[19]
8. 기타 (예비)후보
- 4월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최초로 등록한 대통령 예비후보(정식 후보로 등록한 것은 아니다)인 무소속 박광수씨는 부모교라는 신흥 종교의 교주라고 한다.
- 9월 4일 강지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청소년보호법의 아버지로 유명한 그 분 맞다.
- 9월 25일 이건개 전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 10월 4일 박찬종 전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참고로 박찬종 변호사는 이미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신정치개혁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바 있으며,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한국당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가 사퇴한 바 있다.
- 10월 25일 박찬종-강지원 두 후보가 정책연대를 결성하였다.
- 11월 22일 이건개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후보사퇴하였다.
9. 관련 문서
[1] 참고로 5년 전인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의 투표율은 70.8%였다.[2] 종전 기록은 2002년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68%).[3] 총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자수는 대략 30000명 정도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대선 경선은 국민참여선거인단 30% + 권리당원(진성당원) 30% + 새누리당 대의원(경선 후보자 본인 + 당 대표 + 최고위원 + 국회의원 + 중앙위원 + 전당대회 대의원) 20% + 여론조사 20%의 합산이다. 국민참여선거인단이 3만명 투표했다고 전체가 3만명이 아니다. 대략 8만 명 정도다.[4] 환산 수치이며 반영비율 80%.[5] 환산 수치이며 반영비율 20%.[6] 제6공 이후로 대선에 본선에서 2위한 후보들중 유일하게 차기 대선에서 불출마했다. 김영삼(13대), 김대중(14대), 이회창(15,16대), 문재인(18대), 홍준표(19대) 모두 차기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었다. 이중 김영삼과 김대중, 문재인은 재수 끝에 당선되었고, 홍준표는 경선에서 윤석열에게 낙선당했으며, 이회창은 16대때 재수를 도전했으나 다시 2위를 하고 다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3위를 했다. 만약 20대 대선 2위인 이재명이 21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시, 이 타이틀은 깨지게 된다.[7] 손학규, 김두관 측은 1위 후보의 과반 돌파 여부를 계산할 때 사퇴 후보들의 득표수도 포함해야 한다며 반발했으나, 결국 룰은 수정되지 않았다.[8] 제주도의 인구 수를 감안하면 꽤 높은 참여 비율이다.[9]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상황이라 다른 후보들이 모두 문재인 후보의 꼬투리를 잡는 식으로 경선이 흘러갔다. 그 역풍으로 손학규 후보가 강력한 기반이라던 강원에서도 패배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듯. 이를 의식했는지 강원경선 이후의 후보 토론회에선 서로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책 토론이 이뤄지는 모습으로 흘러갔다.[10] 호남+수도권에 영남후보로 영남표 잠식=대권이라는 구도.[11] 이전 4개 지역(제주+울산+강원+충북)의 선거인단보다 전북지역 선거 인단이 더 많다.[12]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LH 이전 문제 등으로 전북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다.[13] 정세균은 전라북도에서만 4선을 한 터줏대감이고, 손학규는 지역 조직이 우세하며, 문재인은 지지율이 높다.[14] 정세균 후보의 고향이며 전 지역구인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이 있는 곳.[15] 문재인, 김두관 후보의 고향이며 김두관 후보가 전 도지사를 지낸 곳.[16] 문재인 후보의 전 지역구인 사상구가 있는 곳.[17] 손학규 후보의 전 지역구인 광명시와 성남시 분당구가 있는 곳. 그리고 도지사를 역임한 곳.[18] 손학규 후보의 고향[20]이며 정세균 후보의 전 지역구인 종로구가 있는 곳.[19] 공식 합당은 11월 16일 자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