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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4:27

차승원/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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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패션모델로서의 활동과 명성3. 배우로서의 길
3.1. 1990년대 후반3.2. 제 1의 전성기: 2000년대 초반3.3. 2000년대 중반~지금까지

1. 개요

배우 차승원의 생애를 다룬 문서.

2. 패션모델로서의 활동과 명성

'후배양성은 1989년부터 했는데 첫 제자가 차승원이었다. 차승원씨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근무할 때 친구와 같이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교복을 입고 왔다. 너무 멋있었다. 당시 차승원씨만 보였다. 처음에는 자긴 그런 것(모델) 모른다, 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너는 타고난 모델이니깐 일주일동안 고민해보고 와라했다. 그런데 3일만에 왔다. 1년은 고생하고, 그 다음부터 승승장구하며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고은경 대표 인터뷰 중-
'키가 3~5cm 이상 다른 모델들보다 컸고, 현대적인 마스크에 잘생겼어요. 눈에 확 띄었죠.'
-시간은 달리는 tv에 디자이너 장광효 인터뷰 중-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 캐스팅이 되었다. KPLUS에 따르면,[1] 교복입은 차승원 뒤로 아우라가 보였다고 한다. 약 1년간은 고생하다 95년도에 모델로서의 최전성기를 이루게 되며 톱모델로 활동하게 된다. 차승원은 "그때 당시에는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었고, 라이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남자모델에 대한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모델=차승원 일정도로 남자모델하면 생각나는 하나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모델 출신의 배우들[2]이 차승원을 롤모델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80년대 말 패션모델로 데뷔하여, 현재는 배우로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 진지하고 심각한 정극 연기부터 무서운 악역, 능청스럽게 망가지는 개그 캐릭터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넒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몇 안되는 배우다.

3. 배우로서의 길

3.1. 1990년대 후반

최초로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 케이스며, 모델 출신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사족이지만, 이천희의 모델 데뷔 날이 공교롭게도 차승원의 모델 은퇴식 하는 날이었다고 SBS의 한 토크쇼에서 나왔을 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이야 배정남 같은 잘 나가는 모델도 있고, 김우빈이나 이종석처럼 모델 출신 배우들도 많지만, 당시는 남자가 모델을 한다고 하면 완전 정신병자 내지 게이 취급받을 정도로 인식이 안 좋은 시절이었기에,[3] 모델계 입성 당시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차승원은 담임한테서 빠따까지 맞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키가 안 닿으니 점프해서 뺨을 날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요즘 단대 부고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선생은 그때 차승원 때문에 골치 아팠지만 그래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차승원에게 미안해한다고 한다.

모델 생활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였다.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의 단역에 출현해 세기말적 암울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파일:해가 서쪽에서 뜬다면.jpg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변지민
1998년도 임창정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는 모델 출신답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랑했다.
파일:문명특급차승원.jpg
파일:문명특급차승원2.jpg
또한 쇼 프로그램에도 빈번히 출연해 '잘생기고 분위기 있는 외모' 와 어울리지 않게 재미있는 입담을 선보여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캐스팅이 영화 쪽보단 덜 까다로운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조연을 맡으면서 서서히 얼굴을 알리게 된다. 다만, 이듬해까지는 영화계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였으니 그게 바로 토크쇼였다. 1998년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에 보조MC로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김혜수의 플러스유까지 '''계속해서 연속해서 대박이 터졌던 것. 여기서 차승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본인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4] 토크쇼의 맹활약 덕분에 연기자로서도 지위가 상승,'98년 후반기부터 99년까지 각종 TV 드라마, 시트콤 등지에서 주연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쪽에서도 99년 이성재, 김희선 주연의 판타지멜로 <자귀모>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의 인식은 그냥 얼굴만 잘생긴 예능인 + TV배우 정도에 불과. 인기를 얻었지만 필모그래피 자체도 얼굴만 강조하는 뻔하디 뻔한 TV 멜로드라마였을 뿐이었다. TV 쪽보다 까다로운 영화계에서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였던 상황. 이 당시 차승원에 대해 발연기 운운하는 얘기[5]도 있었으나, 엄밀히 말해 그냥 99년 후반기 이전의 차승원은 연기력 자체를 보여줄 무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냥 잘생기고 예능감 있는 TV 연기자 내지 방송인 정도로 커리어가 흘러갔을 터인데 1999년 연말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서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에서 차승원이 자신에게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연기력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 당시 전문적인 평자들이 이 영화를 논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부분이 "차승원에게 저런 연기력이 있었는 줄 몰랐다"는 얘기다. 덕분에 영화계에서 차승원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6] 단순한 미남배우가 아니라 흥행력과 연기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로 인정받게 된 것. 이렇게 되어 이듬해인 2000년 작품인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연말 개봉한 당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리베라 메》에서도 당시에 최고 톱스타였던 최민수, 유지태와 동급으로 지위가 격상했다. 특히 《리베라 메》의 경우,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차승원을 처음 각인시킨 첫 작품이다. 《세기말》은 흥행에서 폭망했던 터라 대중들에게 차승원의 연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7]

어쨌든 이런 차승원의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모델출신으로 연기자나 얼굴로 주목받은 배우들은 부지기수지만, 차승원처럼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연기력까지 인정 받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3.2. 제 1의 전성기: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충무로 특급 흥행카드가 되었다. 2003년 보디가드로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근 십 년 동안 이런저런 흥행작들의 타이틀롤로 출연하였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가 차승원의 제1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로, 강우석 감독이 운영하는 '시네마 서비스'에서 제작한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등의 코미디 영화가 연속 대박 행진을 기록하자 믿고보는 배우 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또한,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약간 어딘가 어쩌면 매우 부족할지도 모르는 캐릭터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자 잘생긴 바보 형, 오빠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파일:선생차승원.jpg
▲ 영화 《선생 김봉두》
특히 《선생 김봉두》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승원의 코믹연기를 보여줬다. 웃음뿐만 아니라 감동, 교훈까지 줄 수 있는 코믹 연기를 보여준 것. 게다가 차승원뿐만 아니라 아역들의 연기도 훌륭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파일:차승원우는연기.gif
▲ 영화 《귀신이 산다》 속 우는 연기
차승원의 코믹 연기가 성공하게 된 이유는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승원 본인의 코미디 연기가 원체 뛰어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귀신이 산다》에서 정말 서럽게 우는데 뭔가 웃기게 만드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말할 수 있다.
파일:이장과군수차유.jpg
▲ 영화 《이장과 군수》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는 전설의 케미이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해진과 함께 작품을 찍었다. 그 당시보단 지금이 더 회자되고 있는 인기있는 작품이다. 당시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 꽤 화제가 되었는데, "처음에 연기를 하려고 했을 때는 '차승원 하면 연기 잘 하는 대배우'라는 평을 듣고 싶었으나, 지금은 '차승원 나오는 영화는 돈 내고 봐도 아깝지 않다'는 소리'''만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2005년 《혈의 누》에 출연하며 코미디 연기 편향에서 벗어나 필모그래피가 다양해지고 혈의 누는 연기력과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흥행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문제가 없진 않아 있었는데, 이 당시 필모그래피가 코미디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 데뷔 초창기 필모는 코미디가 아닌 정극 연기였고 2004년 이후로 코미디 편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기를 시도했지만, 이 당시 커리어 탓에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선입견을 벗어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신라의 달밤》 감독이었던 김상진이 당시에 전성기였고, 작품 내외적으로 차승원과의 가장 호흡이 좋았기 때문에 필모그래피가 자연스럽게 코미디 영화로 흘러갔던 것으로 보인다.

3.3. 2000년대 중반~지금까지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마땅한 흥행작이나 대표작이 별로 없다는 게 다소 아쉬운 편이다. 폭망까지는 절대 아니고 아직도 충분히 많은 수요가 있는 배우이며,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지만, 본인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 커리어에 다소 위기감을 느꼈는지 2009년부터 꾸준히 TV드라마 작품을 하고 있다.
파일:시티홀 차승원.jpg
《시티홀》의 조국
2000년대 후반 대표작으로는 《시티홀》이 있다. 비록 김은숙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어쨌든 최고시청률 18.7%를 달성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수목극 1위를 하였다. 여기서 보여준 차승원의 애달프고 서럽고, 어딘가 안아주고 싶게 우는 연기는 기가 막혔다.
파일:아테나_차승원.gif
《아테나:전쟁의 여신》의 손혁
2010년대 초반 대표작으로는 《아테나:전쟁의 여신》이 있다. 정우성, 이지아, 수애 등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캐스팅을 통해 1화 만에 시청률 22.8%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켰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되면 될수록 부정적인 반응이 커지게 되고, 결국 마지막 회차에서는 13.3%를 달성했다.
파일:최고의 사랑_독고진_차승원.gif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
또 다른 2010년대 초반 대표작은 차승원의 제2의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며 최고 시청률 21%를 달성했다. 차승원의 드라마 중 가장 큰 히트를 쳤으며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톱스타 독고진 연기는 각종 예능프로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고, 차승원은 이 드라마를 통해 역대급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극뽀~옥, 띵동, 충전 등 명대사도 생겨났으며, 이때 당시의 차승원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파일:너포위차승원.jpg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서판석
2010년대 중반 대표작으로는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있다. 《최고의 사랑》 이후 다시 이승기와 만난 작품이다. 최고 시청률 14.2%를 기록하며 높은 시청률을 달성했다.

2017년 드라마 화유기 출연 이후로는 영화에서만 4편[8]을 작업했으나 2021년 김수현과 공동주연을 맡은 드라마 '어느 날'에서 신중한 역으로 오랜만에 드라마 복귀를 알렸으며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파일:우블차승원.jpg
《우리들의 블루스》의 최한수
2022년 노희경 작가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기러기 아빠이자 말못할 사정을 가지고 고향 제주로 돌아온 '한수' 역으로 캐스팅 되었고 초반 드라마의 스타트를 끊었다. 극 중 '은희' 역의 이정은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고 쓸쓸하고 떳떳하지 못한 '한수'의 내면을 잘 표현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친구이자 자신을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는 은희'앞에서 괴로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아테나:전쟁의 여신 같은 평작·범작도 있고 화정 같은 망작도 있긴 하다. 드라마 쪽으로는 약간 부침이 있긴 해도 호성적[9]을 어느 정도 거뒀다.

반면, 영화 쪽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 중에 평가나 흥행 어느 한쪽이라도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 없다시피 하다. 사실 눈빛, 억양, 표정, 액션, 애드립, 사소한 행동 등등 하나하나 아주 완벽한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차승원이 코믹 연기하나로 대박을 터트리자 오로지 흥행에 눈이 먼 제작자들이 계속 코미디로 차승원의 재능을 낭비해서 그렇다. 차승원은 장르 관계없이 연기력이 매우 출중한데 흥행파워가 꺽여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2006년 국경의 남쪽은 30만명도 동원하지 못하며 차승원의 네임밸류에 큰 타격을 입힌 망작이 되었고, 이후 장진 감독과 여러 편을 함께하면서 2005년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아들하이힐은 실패. 하이힐 같은 경우, 개봉 당시 아직은 트랜스젠더의 대한 정체성을 다룬 소재들이 조금은 거부감이 들 뿐더러 젠더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닥 좋지 않을 때 개봉했기에 흥행에 득이 되지는 못했으나, 지금 개봉하면 호응이 좋다는 평과 '차승원의 액션연기와 눈빛연기가 소름돋는다는 평'이 있다.

2016년에는 강우석 감독과 재회하여 고산자, 대동여지도로 컴백했지만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실패했다.[10] 다만, 2000년대 후반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포화속으로, 독전 등 빌런으로 나오는 영화들은 흥행했던 편이었다. 이중 독전에서 차승원 특유의 목소리로 인한 연기 때문에 차승원 성대모사가 화제를 일으켰다.
폭군》의 임상
2024년 8월 공개된 박훈정 감독의 4부작 드라마 폭군에서 전직 국정원 요원이자 살인청부업자 역할인 '임상' 역을 맡아 다중인격적인 인물의 성격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태스러울정도로 정중하지만 죽여야 할 타겟이 정해지면 냉혹할 정도로 잔인하게 제거하는 인물의 모습을 다채롭게 표현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전,란》의 선조
2024년 10월 공개된 김상만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선 조선의 14대 임금이자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선조[11]을 맡아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을 받았다.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모든 것을 '역모'라고 생각하고 궁궐의 재건에 집착하며, 백성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음흉하고 저열한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 차승원의 연기 인생이 물이 올랐다는 극찬을 받았다.

독전낙원의 밤 이후로 진중하고 속 모르는 캐릭터를 맡아 '본업'이라고 불리던 코믹적인 모습을 많이 덜어냈고, 이후 작품들에서 진지한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다가 폭군전,란에서 비로소 차승원만의 새로운 캐릭터 세계를 구축해 연기 인생의 새로운 막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예능 《삼시세끼》
예능 쪽에선 데뷔 이후 꾸준히 활약해왔다. 다만 1998년 이후로는 자신의 출연작을 홍보하기 위한 1회성 게스트 출연만 고수했다. 물론 처음으로 주목 받은 것이 예능 쪽이었을 정도로 예능감이 특급인 사람인 까닭에 차승원의 예능 출연은 늘 반응이 좋았다.그러던 중 2015년 1월 23일부터 3월 20일까지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유해진, 손호준과 함께 출연, 무려 16년 만에 예능 타이틀롤을 맡았다. 첫방송 시청률 9.7%로 시작해 회차별 최고 평균 14.2%를 달성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요리에 정통한 아줌마 캐릭터까지 보여주면서 차줌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음과 동시에 유해진과 부부같은 케미를 보여주며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 높은 인기 탓에 2016년 어촌편 시즌 2까지 만들어졌다.
파일:스페인하숙차승원.jpg
▲ 예능 《스페인 하숙》
2019년에는 삼시세끼시리즈의 후속작인 스페인 하숙이 시청률 10%를 돌파하는 대박을 기록하는 등 커리어가 다시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1] 현재는 배우로 전향하며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2] 김우빈, 이수혁, 한혜진, 홍종현 등이 있다.[3] 당시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와 같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홍석천 같은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희화화되는 개그 소재로라도 편하게 쓰일 수 있지만, 당시엔 게이가 정신병자와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였다.[4] 지금이야 김혜수의 진행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김혜수의 플러스유 초창기에는 토크쇼 진행에 미숙하여 전임자였던 이승연과 비교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조MC로 들어온 차승원이 이를 잘 메워줬기 때문에 PC통신 게시판에서는 '김혜수가 아니라 차승원의 플러스유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까지 있었다.[5] 이런 반응은 1999년에 방영했던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에서 두드러졌다. 차승원의 경우 캐릭터성이 뚜렷한 배역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 드라마에서의 셋째 아들 배역은 거의 생활연기 위주였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한 감이 있었다.[6] 한국에선 이런 경우가 아직 흔치 않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짐 캐리, 아담 샌들러나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와 같은 코미디 전문 배우들이 정극 배우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꽤 흔한 편이다. 극에 잘 녹아들 정도로 코미디 연기를 잘 소화할 경우 다른 장르에서의 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7] 다만 리베라 메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서울관객 53만을 모아 나름 성공하지 않았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던 45억 원을 투입한 작품이었다.[8] 독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낙원의 밤, 싱크홀이 있다.[9] 시청률은 낮아도 연기력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MBC 사극의 종말이라고도 불린 화정에선 광해군 역으로 화정 초중반부의 시청률을 거의 혼자 이끌었다.[10] 2018년 여름에 개봉한 독전은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차승원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캐스팅 목록 상으로는 조연이 아니고 카메오다.[11] 선조는 권력욕과 왕권 강화에 관심이 많은 왕이었지만 공을 세운 노비를 면천하고, 재능있는 신하들의 활동을 장려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도 있어 영화 속에 구현된 인물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 물론 왜란 시기의 행동은 선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후대의 역사가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행을 보여주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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