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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07:39:57

선생 김봉두

<colbgcolor=#65bdaf><colcolor=#000> 선생 김봉두 (2003)
Teacher, Mr. Kim
파일:선생 김봉두.jpg
감독 장규성
각본 장규성, 이원형
프로듀서 김미희
출연 차승원, 변희봉, 성지루, 이재응, 이봄
장르 드라마, 코미디
배급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CJ ENM MOVIE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년 3월 28일
상영 시간 117분
제작 기간 2002년 ~ 2003년
총 관객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47만 (추정)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2세이상_2021.svg 12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시놉시스3. 예고편4. 줄거리5. 등장 인물
5.1. 김봉두 (차승원)5.2. 강원도 산골마을
5.2.1. 분교 학생들5.2.2. 마을 사람들
5.3. 기타
6. 평가7. 기타8. 기타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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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규성 감독, 차승원 주연의 2003년작 한국 영화. 차승원식 코미디 영화의 후반기 대표작이다.[1] 차승원 외의 조연으로는 변희봉성지루 등이 출연.

2. 시놉시스

2003년 봄, 오지마을에 불량티쳐 부임하다!
촌지킬러 불량티처 고군분투 오지마을 탈출기!

봉투를 좋아하는 불량티쳐, 김봉두

서울의 잘나가는 초등학교 선생인 김봉두는 아이들보다 한술 더 떠, 지각을 밥먹듯이 하고, 교장선생에게 매일매일 혼나는 이른바 문제선생이다.
교재 연구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고, 학부모들의 각종 돈봉투를 적극 권장, 장려하던 어느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더니 김봉두는 봉투 사건으로 인해 오지의 시골분교로 발령된다.

김봉두 선생, 시골분교로 발령받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외제담배는 커녕 국산담배도 구할 수 없는 오지의 마을로 쫓겨난 김봉두. 전교생이라고는 달랑 5명. 더구나 돈봉투는 커녕 각종 채소, 김치, 과일 등을 나누어 주는 너무도 순진한 마을사람들의 모습 또한 그에게는 불만이다. 1교시 자습, 2교시 미술, 3교시 체육...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 김선생. 한술 더떠 괴팍스러운 최노인은 글을 가르쳐달라고 생떼를 쓰는 등
김선생의 시골살이는 더더욱 암울해 보인다.

서울입성을 위하여‘폐교작전’

하루빨리 서울로 재입성 기회를 노리던 김봉두는 전교생을 전학보내고, 학교를 폐교할 계획을 세운다. 우선 아이들 개개인의 특기를 살려주기 위해 방과후 특별과외에 매달리는 김선생.
그런 김선생의 시꺼먼 속마음과 달리 오히려 마을 사람과 교육청에서는 훌륭한 김봉두 선생으로 인해 분교폐지 방침을 재고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봉두가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마을에는 갑자기 학교를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들겠다는 사업가가 등장하고, 김봉두는 그들로 인해 그동안 잊고 지내던 돈봉투의 위력을 맛보는데...

철부지 불량티처 김봉두는 과연 이런 난관을 뚫고 서울입성에 성공할 수 있을것인가?
다음영화

3. 예고편

메인 예고편

4.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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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 대한 사명감 따윈 전혀 찾을 수 없는 악덕 초등교사 김봉두. 그의 교사 생활은 오로지 촌지[2]로만 연명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을 대할 때도 촌지를 바친 아이들만 항상 편애할 뿐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푸대접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촌지를 내지 않았다고 운동장을 수십 바퀴를 뛰게 하는 등 학대한 학생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뇌물수수 사실이 다 까발려져버렸다.[3] 이 사건을 빌미로 교장은 김봉두에게 사직서를 내는 대신 이전부터 지원자가 없어 고민이었던 강원도 정선군의 산골 분교[4][5] 좌천성 발령을 냈다. 봉두는 시골은 죽어도 못 간다며 펄쩍 뛰었지만, 교장은 어차피 내년이면 폐교되는 학교니까 1년만 참으라고 회유했고, 결국 시골 분교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6]

봉두는 문화와 단절된 깡촌 생활을 1분 1초도 견디기 어려워했고, 동네가 어찌나 깡촌인지 촌지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실정이었다.[7] 그러다가 점점 봉두는 순박하고 착한 동네 주민들과 학교 아이들에게 점점 감명을 받아가게 되긴 하지만, 어쨌든 하루빨리 시골 생활만큼은 벗어나고 싶었던 김봉두는 학교를 폐교하고 서바이벌 게임 시설을 세우게 해 달라는 한 업체의 담당자에게 뇌물을 받고 청탁을 수락한다. 그 때문에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전학시키기 위해 부모들을 설득하고 학교에서 서울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들만 줄창 늘어놓으며 유혹하는 등 온갖 애를 쓰지만, 아이들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고, 부모들도 설득에 잘 넘어가지 않았으며, 이 와중에 서울에선 전학생까지 하나 오는 바람에 김봉두는 스트레스가 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전학생의 부모가 김봉두에게 촌지를 건넸고 이 사실이 다른 학부모들에게 알려지는데, 그제서야 학부모들은 가시오가피나 인삼주 같은 것들을 뇌물이랍시고 들고 찾아오기 시작한다.[8]

다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홀어머니만 있는 소석은 그마저도 불가능하여 학교를 말도 없이 빠지고 직접 궂은 일을 해서 돈을 받아 김봉두의 집에 몰래 가져다 놓는데, 물론 그 일로 소석은 무단결석 혐의로 종아리를 맞으며 크게 꾸중을 듣지만, 소석이 단지 선생님이 좋아서 함께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울면서 고백하자, 김봉두는 교사인 자신이 순수한 아이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깨닫고 드디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게 된다. 결국 돈타령만 했던 그간의 부패한 교직 생활을 반성하고 인간성을 되찾지만, 끝내 학교는 폐교되고 만다.

졸업식 겸 폐교식 당일날, 김봉두에게 한글을 배웠던 최노인이 동네 사람들끼리 모았다며 떳떳하게 돈봉투를 건넸고, 처음엔 진심으로 거절하던 김봉두도 이것은 그간 숱하게 받아왔던 그런 뇌물 같은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받는다. 또한 최노인은 덕분에 손자에게 편지도 쓰게 되었다며 김봉두를 최고의 선생이었다고 칭찬했고, 김봉두는 교사로서 큰 깨우침을 받게 된다.

5. 등장 인물

5.1. 김봉두 (차승원)

그동안 이 선생님을 괴롭히던 아주 나쁜 놈이 있었다. 근데 어젯밤, 그 악당 같은 놈을 선생님이 아주 멋지게 해치웠다. 그놈이 써놓은... 이제 이건 필요 없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초등학교 교사다. 하지만 뇌물을 밝히는 전형적인 부패 교사로, 촌지를 받은 부모의 아이만 편애하는 악덕 교사였다. 결국 이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9][10] 서울의 학교에서 폐교 예정인 강원도 산골의 어느 분교로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문화와 단절된 깡촌생활을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해서 어떻게든 폐교를 앞당기기 위해 아이들을 도시로 전학보내기 작전, 레저 사업가 청탁 수락 등 각종 방법을 모두 총동원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여러가지 소동을 겪고 소박하고 행복한 마을 사람들과 학교 아이들을 보면서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도시에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인 준석이라는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었고, 준석의 부모님에게서 자신이 과거 그렇게도 원했던 촌지를 받게 되지만, 반 아이들을 체벌할때 준석도 똑같이 체벌했고, 그때문에 준석과 소석이 싸움을 벌이게 되자, 다음날 준석의 부모가 찾아와 항의를 하고, 준석을 데리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사표를 발견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소석을 다시 학교에 오게 하기로 결심하고, 소석의 행적을 수소문하여 결국 찾아낸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잘못을 물어 매를 대지만, 결국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석을 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의 앞에서 사표를 찢고, 정말로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교사가 된다. 하지만 결국 폐교 수순은 막을수 없었기에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을 지켜보며 학교를 떠나 도시로 돌아간다. 학교의 졸업식이 마지막 장면이기에 이 이후의 행적은 알수 없지만,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만큼 진정한 교육자가 된걸로 보인다.

그가 과거 이렇게까지 촌지에 집착하는 교사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악덕교사로 보이던 김봉두에게도 가슴 아픈 뒷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촌지를 받았던 이유가 중병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였던 것. 게다가 김봉두의 학창시절에 아버지는 그가 다니던 학교 소사[11]로 근무했는데 이를 부끄러워한 김봉두는 아버지를 참관 수업이나 학부모 면담에도 전혀 부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교사가 수업 도중 아버지를 모욕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등 깊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들이 선생이 되자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는지, 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꼭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건강의 악화로 그럴 수도 없었다. 세상을 떠난 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문상을 오자,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소개한 뒤 아이들과 맞절을 하다가 결국 감정에 북받쳐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린 채 통곡하고 만다.[12]

작중 그의 자가 차량은 GM대우 매그너스다.

5.2. 강원도 산골마을

5.2.1. 분교 학생들

5.2.2. 마을 사람들

5.3. 기타

6. 평가

조용하고 소박한 산골 초등학교를 잘 표현한 배경, 차승원을 비롯한 배우들[26]의 연기, 전형적이지만 감동적인 스토리도 호평받으며 전국 24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아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양희은'내 어린 날의 학교'[27]가 BGM으로 흐르는 엔딩 크레딧이 백미.

7. 기타

8. 기타 상영



[1]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등도 후반기 대표작으로, 2002년부터 연이어 삼연타를 친다.[2] 당장 봉두라는 이름부터가 '돈(金)봉투=촌지'를 슬쩍 비튼 것이다.[3] 근데 김봉두는 학부모에게 사죄하기는 커녕 주변 교사들에게 말려달라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4] 작중에서는 정선청림초등학교 산내분교다. 다만 실제 촬영은 1999년 폐교된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 교사에서 이뤄졌다.[5] 여담으로, 배경이 강원도 산골이라서 강원도 방언을 구사하는 아이들이 많다. 본래 이 분교에는 젊은 시절부터 재직한 교사가 있었는데,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가 지병으로 쓰러졌다. 회복은 됐지만 워낙 고령이라서 요양이 필요해 대리할 신임교사가 필요했던 상황이였다.[6] 참고로 교장 역시 김봉두를 통해 촌지를 받은 사실이 있으니 무조건 사직서를 내라고 강권할 수가 없어서 대신 도피성 발령을 제안한 것이다.[7] 근데 어쩌다 보니까 업적도 하나 세웠는데, 본래 이 학교에서는 점심시간만 되면 애들이 잠시 귀가한 뒤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김봉두는 주변에 마땅한 식당도 없다 보니 항상 라면으로만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등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서울의 교육 환경을 따라잡기 위해 이 곳에는 존재하지 않던 급식이라는 색다른 제도의 실시를 제안했고, 덕분에 본인의 점심 해결은 물론 결식아동 양소석의 점심까지도 단칼에 해결되었다. 이것만큼은 김봉두의 확실한 공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과 싸움도 어찌저찌 나서서 봉합해주다 보니 역시 서울특별시에서 온 젊은 선생님은 다르다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 주었다.[8] 보통 같으면 종전 학교처럼 난리가 났을 일이지만, 본의 아니게 김봉두가 해 왔던 게 업적 아닌 업적이 되어 시골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덕분에 김봉두가 조금씩이나마 개과천선하게 된 계기가 된다.[9] 교장 선생님이 당시 학부모한테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흥분하지 마시고..."라고 말렸으나 도영의 아버지는 "흥분을 하지 말라그랬어, 어??? 돈 몇푼 안 쥐어줬다고 애를 완전 병신을 만들어????"라고 하면서 항의했다.[10] 훗날 이 아버지는 스토브리그에서 백 단장을 견제하게 된다.[11] 小使, 교내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보직으로 오늘날에는 주로 '주무관', '주사님' 등으로 불린다. 사실 주무관이나 주사는 꼭 학교 교내 시설 관리자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고, 그냥 (관리직이 아닌) 실무직 공무원에 대한 적당히 쓰기편한 존칭으로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다. 다만 80년대 말 이전까지 각 학교에서 직접 고용하던 소사들을 10급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해주면서 호칭 역시 공무원답게 변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충 이 시점 이후 학교 방호원에 대한 사회적 시선 및 대우도 확 개선되었다.[12] 동시에 이 장면은 김봉두가 그동안의 행동을 아이들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구도로 비춰지기도 한다.[13] 물론 공부를 잘 했다거나 인기가 있다거나 리더십이 강해서 뽑힌 건 아니고 그저 6학년인 남옥에 이어서 2번째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임된 것이다.[14] 김봉두가 점심시간에 혼자 라면을 먹고 있지만 봉두 본인은 라면은 이제 질렸다면서 먹다 말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잠시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소석은 혼자 남아 김봉두한테 다가가서 라면을 얻어먹었다. 사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홀어머니 밑에서 초등학생이라고 해봐야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쉽게 요리하면서도 어느정도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라면으로 반강제 끼니를 때울 수 밖에 없던 점도 있다.[15] 김봉두가 처음에는 소석이를 시키려 했으나, 애순이가 남옥은 6학년이고 소석은 5학년이라 하자 남옥으로 바꾸고 소석은 대신 부반장을 시킨다.[16] 소석이와 애순이가 계속 싸우자 자신이 차분하게 말리기까지 할 정도였다.[17] 나중에 전학을 온 준석이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면서 애순이를 밀치자 아까까지 애순이와 치고박고 싸웠던 소석이가 직접 나서서 준석이를 패기까지 할 정도면 둘은 보통 사이는 진짜 아닌 걸로 보인다.[18] 정확하게는 김봉두가 필 담배가 떨어져 아이들한테 담배를 사오라고 시키는데, 근처에 슈퍼가 없어서 못 살뻔 했으나, 마침 담배를 많이 쟁여놓은 최 노인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아이들은 최 노인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는지 무서워서 가기 싫어한다. 결국 김봉두가 직접가서 담배를 얻으러 갔는데 당시로는 단종된 지 5년이나 지난 청자를 불쑥 내민다. 양담배에 길들여진 김봉두가 처음에는 소브라니, 말보로, 던힐같은 양담배를 찾다 시마, 타임, 디스같은 국산담배라도 괜찮다 했지만 이름만 듣고 양담배로 착각한 최노인이 봉두에게 어디 양담배를 피냐며 물벼락을 쏟아붓는다.[19] 그 전에는 성미가 괴팍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읽어달라는 부탁을 할 때마다 거절당했고, 결국 답답해서 김봉두에게 직접 한글을 배우려고 했던 것이다.[20] 안타깝게도 2019년 비인두암으로 작고했다.[21] 서울 SK 나이츠 치어리더 출신으로, 출연 뒤 예명을 '김예니'로 정했다. (매일경제 기사)[22] 2009년을 끝으로 배우에서 승마선수로 전향해서 왕성히 활동했으나, 나체사진 몰카로 여친 협박과 도박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버려 아역 배우, 나아가 모든 연기자들 중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23] 무인시대에서 한뢰로 출연하였다.[24] 당시 한 말이 "도대체 자네 어떻게 한 거야? 어쩔 수 없이 받는 거라면 적당적당히 해 먹던가 해야지!"라면서 노발대발했다.[25] 매직키드 마수리에 박호태 역으로 나왔다.[26] 특히 아역 배우들의 사투리 열연이 돋보였다.[27]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따라 시냇물을 따라 한참을 가면 어려서 내가 다니던 우리 학교'라는 가사로 유명하다.[28] 작중에서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는 촌지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서 부모도 자진해서 촌지를 주고 아이도 당연히 자기 부모가 촌지를 줬으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29] 현재는 지방에 발령되는 교사들도 죄다 임용고시를 합격한 사람들이거나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교장을 비롯한 인사담당자를 일일이 붙여가며 뽑은 우수한 인원들이라 교사 자체의 편차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지 교육 환경의 차이가 좀 날 뿐이다.[30] 당장 촌지란 뜻 자체도 시골 동네에서 주는 정이란 의미이며, 본래는 무급으로 봉사하던 동네 훈장에게 부모들이 주던 감사사례금을 뜻하던 용어였다. 촌지 문서에도 지방에서 이런 일이 더 빈번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31] 실제 많은 시골의 폐교들은 각종 체험 시설 및 수련원, 캠핑장 등으로 개조되고 있다.[32] 참고로 차승원도 주성치처럼 코믹 연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이야 코미디 영화보다는 정극 위주로 더 활동하지만, 한때 한국 코믹 영화라 하면 차승원이 대표 주자였다.[33] 사실 이 당시에도 학부모가 교사에게 갑질하는 경우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체벌에 대한 인식이 너무 심하게만 패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교사의 학생 체벌이 아직은 당연시되었던 것이었다.